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거짓말쟁이가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격언이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곧 '조중동'을 떠올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히 <중앙일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전했을 때, 거의 같은 수치의 득표율을 놓고 한쪽은 '과반수에도 못미치는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다른 한쪽은 '과반수에 육박한 진정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제목을 뽑았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물론, 어느 쪽을 '반쪽짜리 대통령'으로 평가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굳이 득표율을 따지자면 노무현 대통령 쪽이 0.2% 높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앙일보>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앙일보>가 원했던 것은 자명한 '숫자'가 아닌, 자명한 숫자를 '이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혹은 사실)를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 '조중동'의 왕초격인 <조선일보>가 빠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일단 '숫자'를 이용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조선일보>를 거짓말쟁이라고 놓고 보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하는 질문의 답은 너무도 명백하고 간단해서 심지어 하품이라도 나올 지경이다. 거짓말쟁이가 좋은 의도로 거짓말을 할 리 만무하니 거짓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과의 싸움은 필연적이고, 양자의 시시비비 또한 자명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언뜻 명명백백해보이는 듯하는 싸움을 큰 틀에서 통찰하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사례들을 인용,분석함으로써, 양자의 싸움이 내포한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들을 일목요연하게 구성해 놓고 있다. 싸움의 단초를 제공했던 '노무현 프로필 사건'부터 노무현의 반격과 경과, 그리고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공격한 이유와 노무현이 막강한 <조선일보>에 맞설 수 있었던 배경 등을 저자는 '공정하게 편파적으로'라는 기치 아래 사뭇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대목은, 여론을 주도하는 능력을 지닌 <조선일보>의 의제설정 능력에 <한겨레>마저 휘둘리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두고 <조선일보>는 끈질기게 누무현에게 동조 혹은 반대를 강요했는데, 이러한 '친DJ 혹은 반DJ' 프레임에 <한겨레> 또한 가세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무현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분석하며, <조선일보>의 의제설정 능력의 막강함에 냉소어린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반대로,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타 신문사들이 동조하지 않았던 사례 또한 제시하면서, 그러한 경우에는 <조선일보>의 '노무현 죽이기' 의도는 확연히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결국 이 대목에 이르면, 이 책은 단순히 '<조선일보> 까기'를 넘어서, ''숫자(사실)'의 비판적 수용'으로 외연의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객관적인 관찰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누군가에게는 오로지 '편파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 저자가 다름 아닌, 노무현의 적자라고도 불리는 유시민이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대단히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대단히 공정하다."는 김어준 딴지 총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 책이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물론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조를 의심할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외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판적인 태도를 <조선일보>(혹은 <한겨레>라 할지라도)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지닐 수 있는 '공정함'이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격언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에서, '몰상식'의 거미줄에 빠지지 않기 위한 유용한 경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숫자(사실)'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숫자(사실)'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 ps.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율을 두고 <중앙일보>가 상반된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인터넷을 통해 그런 내용을 접하고 당연한 '사실'로 믿었었는데, 검색을 하던 중 그것이 엄밀히 증명된 '사실'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았다(http://www.minoci.net/349). 어쩌면 이 경우도 내가 그저 믿고 싶은 대로, '편파적으로' 믿은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중앙일보>를 비롯한 '조중동'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털끝만큼의 동요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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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까지 집결이란 것쯤은 물론 잘 알고 있지만, 그 시간에 정확히 가봐야 어차피 기다려야 될 것은 더욱 잘 아는 바라 결국 1시도 넘어서 슬슬 집을 나섰다. 날씨는 무진장 더웠고, 내가 아는 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뛰어난 기능성 옷인 '군복'은 그 망할 놈의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발을 위한 신발이라고는 볼 수 없는 '군화'까지 사람을 힘겹게 하여 마음속으로 '이 신발'이랄지 '이런 신발'이랄지 하는 단어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중, 문득 신분증을 안 가지고 온 게 생각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분증을 챙겨 나와야만 했다. 신분증 따위, 어차피 본인 확인에도 별무소용인 형식적인 절차를 위한 것일 뿐이지만, 그 놈의 형식이 특히 중요한 데가 바로 '군'인 데야 별 수 없는 노릇이다.

집결 장소에 1시 25분쯤 도착하고 보니 놀랍게도 이미 인원파악까지는 마친 모양인데, 별로 상관은 없다. 그냥 소대장으로 선임된 예비군에게 좀 늦었다고 이름만 말하면 그뿐이다. 일단 첫 시간에는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인지 귀에다가 뭔 조그마한 기계를 들이 밀고는 체온을 재서 확인시켜 준다.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을 일일이 다 해주는데, 따분하긴 해도 화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딱히 날 생각해서 그리 해주는 건 아닌 듯해도, 어쨌든 해될 건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하고 나서 용지를 나눠주고 이메일과 연락처를 적도록 하는 데는 분명 화를 낼 필요가 있다. 이 짓은 훈련을 받으러 올 때마다 반드시 하는데, 바뀌지 않은 연락처와 이메일을 왜 1년에 몇 번씩 꼬박꼬박 적어줘야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가끔씩 오는 스팸 문자의 정보 획득 루트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는데 한 30분쯤이나 걸렸으려나, 그게 끝나면 한 20분 가량은 쉰다. 물론, 이때 '첫 시간'과 '쉬는 시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양쪽 모두 더위 먹은 개처럼 헥헥거리며 그늘에 앉아 있기는 마찬가지니까.

해가 움직이며 그림자의 위치를 바꿔줌에 따라 예비군들도 집결지 건물 뒤편의 그늘로 이동했다. 이동도 역시 교육의 일환이기 때문인지, 이동 후에는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날 들어 본격적이라 할 만한 교육이 한 15분쯤 진행되었다. 물론, 이 교육은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일 뿐인데, 어차피 듣는 쪽에서 매번 제대로 듣지 않아 항상 새로우니 그 점은 문제 될 게 없다. 잠도 안 오고 가만히 있기도 따분해서 오랜만에 대충 귀 기울인 바에 따르면, 북한군이 어느 쪽으로 침투할 것을 대비해서 우리 중대가 어쩌고, 또 몇 소대가 저쩌고 하는 이야기다. 유비무환이라 했으니 일단은 훌륭하다. 다만, 대체 내가 몇 소대인지도 매번 헛갈리는데,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뭐, 물론 이건 순전히 내 탓이겠지만.

잠깐의 교육 후 또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총기를 실은 차량이 도착하자 드디어 총기분출이 시작되었다. 이때 나눠주는 총으로 말하자면, 현역에서는 한 번도 만져볼 일이 없는 칼빈 소총. 과연 총알이 나가기나 할까 의심스럽지만, '군'에서는 이 녀석을 꽤 애지중지 하는 모양인지 나눠주는 데 30분쯤 소요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줬다가 또 금세 회수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물론, 도대체 왜 굳이 훈련에 소용도 되지 않는 걸 악착같이 나눠주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예비군들은 의자나 베개 대용으로 사용할 뿐인데,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의자나 베개 대용으로도 그리 유용하지는 않다. 아무튼 예비군 훈련에서는 오로지 실내에서만 교육을 해야 할 때도 1시간 가량을 반드시 총기를 나눠줬다가 다시 회수하는 데 사용하고, 이것은 예비군 훈련의 '뻘짓'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식'과도 같다.

총기분출이 끝나면 당연한 휴식을 취하고, 곧이어 자신의 근무지(?)로 투입되는 훈련(?)을 했다. 이 훈련은 소대장이 소대를 인솔하여 집결지 부근의 요소요소에 3-4명을 배치하는 게 요체인데, 달리 말하면 다 함께 모여서 앉아 있다가 몇몇으로 분산해서 앉아 있게 된다,가 이 훈련의 유일한 특이점이다. 그러고 보면 이 훈련에서도 알 수 있듯, 아마도 예비군 훈련의 목적이란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끈기와 진득함의 향상이 아닐까 싶은데, 이와 관련해서 예비군 훈련에서는 첨단장비ㅡ예컨대 DMB tv나 아이팟 따위ㅡ를 장착한 예비군들이 특히 강점을 보인다는 데에서 군의 첨단화가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새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군'에서 예비군에게 직접 그런 장비를 마련해주지는 않아서, 나는 2년 전쯤에 휴대폰 게임 하나를 다운로드 받으며 최소한의 무장을 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나는 군 가산점 따위는 필요 없으니, 예비군에게는 휴대폰 게임 다운로드 무료 쿠폰이나 달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그러니까 대체 6시간짜리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서 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휴대폰 게임만 죽어라고 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데, 물론 누구도 내게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서 휴대폰 게임 따위를 하라고 얘기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나는 추호도 호도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그 흔한 휴대폰 게임 하나 다운로드 받지 않고 그럭저럭 살다가 순전히 예비군 훈련을 위해 요금을 지불하게 된 것도, 그렇게 접한 휴대폰 게임을 꽤 자주 심심풀이로 하다가 배터리의 소모를 진척시킨 것도, 무엇보다도 숫자 패드를 열나게 누른 탓에 숫자 패드가 약간 망가진 것도 나는 모조리 내 탓이라는 점을, 심히 불만이긴 해도 부인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끝끝내, 대관절 신성한 예비군 훈련을 왜 그따위로 받느냐고 추궁한다면, 나는 억울한 심정이 되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지루함과의 이길 수 없는 싸움만을 강요하며,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하는 예비군 훈련에서 난들 달리 어쩌란 말인지.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끔찍하게 무의미하고 지루한 시간을, 열악한 장비에 의존하며 6년이나 꿋꿋이 버텨낸 스스로가 제법 대견할 따름이다.

ps1. 현재의 예비군 훈련이 지닌 문제점 때문에 예비군 훈련을 좀 더 강도 높게 개편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면(나는 그 사람이 예비군이 아니라는 데 내 예비군 훈련 2년치를 기꺼이 걸 수 있다), 핵심을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은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예비군 제도가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면 몰라도 예비군 제도가 박정희 시대의 유산으로서 고작 30여 년 밖에 안 된 것이고 보면, 예비군 제도는 존폐 여부부터 새로이 따져봐야 마땅하다.

ps2. 예비군들은 다른 지역으로 출타 시에 동대에 꼭 연락을 하라고 하는데(이것은 비상소집 시에 지역 내에 있는 예비군들은 6시간 내에 집결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로 웃기는 노릇이다. 식구들에게도 말 안하고 어디 다른 지역으로 무시로 갈 수도 있는 판에 동대에다가는 꼬박꼬박 알리라니, 빈집털이범의 정보 획득 루트가 심히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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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8-3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말할 것도 없이 동감입니다. 끝난건지 일년 더 해야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간 경험한 바로 이건 쓸데 없는 시간 낭비, 돈 낭비입니다.

Fenomeno 2009-08-31 14:2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이제 이 쓸데 없는 짓을 끝내서 한시름 덜었지요(사실은 자랑 페이퍼였다, 랄까요. ^^;). 뭔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면 싶지만, 이 정부 들어서는 무엇이든 그저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니 아마도 나중을 기약해야겠지요.
 

2년여 만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동국이 지난 12일, 파라과이와의 A매치에 선발 출전하여 4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경기 전에는 물론, 경기 이후에도 이동국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동국이 대표팀에 복귀하며 남긴 메시지는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 메시지란 이동국이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대표팀 선발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러므로 여전히 2010년 월드컵 대표팀 승선을 위한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라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가 유효한 한, 그리운 이름 하나를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대표팀의 중추였던 이름, 바로 김남일이다.  


                                                                                                   (C) 피파 홈페이지

사실 김남일의 대표팀 하차는 꽤나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거니와, 특히 대표팀의 주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아주 잠깐 부상으로 하차해 있던 동안 상황은 일변하고 말았다. 박지성이 주장 완장을 차고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며 박지성의 리더십이 새삼 화제가 되었고, 더욱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김두현과 영건 기성용이 급부상하며 김남일의 부재는 자연스런 '세대교체' 바람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결국, 김남일은 부상에서 회복하며 J리그에서 꾸준한 선발출장을 했지만, 끝내 대표팀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김남일은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대체 그 동안 김남일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002 한일 월드컵 : 김남일의 발견 
2002년 월드컵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찬란하게 빛냈던 선수들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그 중에서도 김남일은 여러모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선수이기도 했거니와, 특히나 그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는 본래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당당히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오른 김남일의 존재는 한국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존재와 역할을 환기시켜주었고, 아울러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이상적인 모델로 자연스레 김남일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김남일의 활약은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손색이 없었다. 왕성한 활동량과 끈질긴 수비를 바탕으로 한 그의 분전은 그 자신에게는 '진공청소기'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안겨주었고, 한국 대표팀에게는 상대적으로 강팀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다. 김남일이 빠졌던 독일 전과 터키 전에서 유이하게 대표팀이 패배했던 것은 반드시 김남일의 존재여부와 직결되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전력에 차질을 빚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김남일은 바야흐로 한국대표팀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전력이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 에레지디비에 리그 : 도전과 실패, 그리고 진화 
2003년 초, 박지성과 이영표 그리고 송종국의 네덜란드 에레지디비에 리그 진출 이후, 김남일은 2002년 월드컵 선수로서는 4번째로 네덜란드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은 김남일에게 그리 유쾌한 순간만은 아니었다. 페예노르트의 위성구단에 불과한 엑셀시오르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하며 차후 페예노르트로의 입성을 노렸지만, 워낙에 처지는 팀 전력으로 인해 빛을 보기가 어려웠다. 나름대로는 데뷔전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끝내 김남일은 엑셀시오르가 강등되면서 페예노르트 혹은 타 구단의 제의는 받지 못한 채 한국으로 쓸쓸히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전남과 단기 계약을 맺으며 K리그 무대에 복귀한 김남일은 분명 이전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전의 그가 단지 악착 같은 수비로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면, 유럽 축구를 경험한 후의 그는 이제 세련된 전개 플레이에 눈을 뜨며 공,수에 걸쳐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김남일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전에는 무조건 수비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 가보고 나서 수비만 해서는 반쪽 선수밖에 안되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의(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그러한 깨달음은 그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55번 등번호를 단 김남일이 골을 넣고 나서 동료들과 기차 세리머니를 한 것은 김남일의 '진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내 뇌리에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다. 네덜란드로의 도전은 흔히 실패로 평가되지만, 분명 그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K리그 : 최고의 순간에서 계륵으로 
2005년 김남일은 수원으로 이적하며 차범근 감독의 품에 안긴다. 송종국을 영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 김남일마저 영입한 수원은 본격적으로 아시아 최고를 꿈꾸게 되었고, 곧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첫 번째 무대는 A3 챔피언스컵. 김남일은 나드손과 환상적인 호흡으로 수원에 우승컵을 안기며 화려하게 수원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선보인다. 그리고 2006년에는 수원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물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선발로 활약하며 대표팀에서 역시 그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더욱이 2006년 K리그 올스타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 김남일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로 등극했다. 


                                                                    (C) 수원 삼성 홈페이지

그러나 탄탄할 것만 같던 김남일의 위치에 미묘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해 5월에 있었던 국내 프로축구 경기에서 김남일은 수비수로 출장한 적이 있는데,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김남일은 그가 가장 자신 있는 포지션을 다른 선수에게 내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김남일이 이후 일본으로 진출한 뒤에, <포포투>의 'My perfect 11' 코너에서 차범근 감독을 후보로 선정하며 굳이 "수비수로 넣은 것"이라고 부연한 대목은, 차범금 감독이 '수비수'로 출전시킨 것이 김남일에게는 그리 달가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일화다. 김남일이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며 수원과 다소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불만이 쌓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2007년 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허정무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임명된 김남일은 대표팀에서는 여전히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지만, 그 기간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들어서 대표팀 경기 중, 김남일은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나왔다가 경기 종반 교체 아웃되는 경우가 점차 잦아졌다. 그런데 특이했던 것은, 교체 상황을 보면 주로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수비를 굳히기 위해 김남일이 빠지고 대신 조용형 등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대개였다는 것이다. 언뜻 수비 강화를 위해 '진공 청소기'의 코드를 뽑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지만, 그것은 당시 김남일의 수비 능력에 대한 허정무 감독의 의문을 방증하는 것이며,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김남일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최고'였던 김남일은 어느새 허정무 감독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2008년 9월 10일,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1차전에 출전했던 김남일은 후반에 홍영조에게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고, 그 다음 경기를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이래 결국 국가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김남일의 하차 이후 신예 선수들의 성장과 대표팀의 선전이 맞물리면서 대표팀의 터줏대감이던 김남일은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다.

J리그 : 김남일의 현재와 미래
2008년 빗셀 고베에 입단하며 J리그에 진출한 김남일은 첫해 무난하게 팀에 적응한 것은 물론, 2008 조모컵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선발되는 영예를 누리며 건재를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 J리그 올스타 선발은 이제 막 1회 대회로 개최되는 조모컵의 흥행을 위해 다분히 전략적으로 선발된 측면이 없지 않았고, 더욱이 2009년 들어서는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부상과 악운이 겹치면서 김남일은 '45M 자책골'로 새삼스레 화제가 되었을 뿐, J리그에서 꾸준히 경기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더 이상 태극마크와 관련된 논의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C) 빗셀 고베 홈페이지

그러나 최근, 이동국의 복귀와 부상에서 회복한 김남일의 J리그 선발 출전이 맞물리면서, 김남일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 또한 조심스레 수면 위로 올라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여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현재 대표팀 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며 여전히 대표팀의 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음을 시사했고, 김남일 또한 다시 한 번 대표팀에 승선하기 위한 각오를 결연히 밝힌 바 있다. 특히 김남일은 대표팀에서 설령 벤치 멤버라 할지라도 상관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에, 향후 그가 J리그에서 보이는 활약 여부에 따라 한두 번 정도의 기회는 더 부여해 보는 것도 대표팀 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괜찮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김남일이 네덜란드 무대를 경험하며 '진화'를 겪었듯, 일본 무대를 경험하면서도 분명 무언가 얻은 것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또한, 언제나 자신의 자리라고 믿었던 대표팀의 중앙을 후배들에게 내어 주면서 국가대표가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좀 더 많은 노력과 의지를 보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을 재인식 했으리라고도 믿는다. 그래서 마침내 김남일이 다시 대표팀에 승선하는 날, 나는 한국 대표팀의 전력이 보다 탄탄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남일에게는 뛰어난 전개력이 있고, 여전히 녹록치 않은 수비력이 있으며(그가 다시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고 가정할 때), 무엇보다도 큰 무대를 누벼 본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김남일의 이름이 그저 그리운 이름이 아닌, 다시 한 번 익숙한 이름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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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눈이 멀었을 때의 일을 상상하기란 꽤나 어렵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눈이 먼 내 삶이 지금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 물론 눈이 보일 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상당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가령 먹고 싸고 자고 씻고 듣고 걷는다거나, 혹은 웃고 울고 찡그리고 화내고 즐거워한다거나, 또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슬퍼하거나 하는 따위의 일들을 여전히 나는 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현재 내가 '인간'이기에 향유하는 많은 것들을 불편하게나마 계속해서 누릴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눈이 보이지 않아서 좀 더 불편해지더라도 빨간불일 때는 서고 파란불일 때 가는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과 가치와 양식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우리는, 과연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가정하는 상황은 위의 상상보다 좀 더 극단적이다. '백색질병'이 엄습하여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 버리고 그중에 단 한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눈이 보인다. 당연히 세상은 결국 눈먼 사람들의 것이 되어 버리고, 눈먼 자들의 세계는 '누구도 볼 수 없다'라는 인식이 지배하면서 인간이 그간 마땅히 그리해야 된다고 믿어왔던 도덕과 가치와 양식들은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인간'으로서 누려왔던 존엄은 이제 먼 과거의 일이 되었고, 그저 먹고 살아가기 위해 그들은 각 '개인'으로서 고립된 채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빛과 어둠이 명멸하는 세상에서 은밀히 자리하고 있던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오직 하얗게만 보이는 세상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이제 더 이상, 빨간불이 어쩌고 파란불이 저쩌고 따위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었으며, 유독 의사의 아내만은 어떻게 그 백색질병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가질 법한 의문이지만,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비로소 남김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모에도 불구하고, 끝내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의사의 아내의 의식과 행동을 통해 저자는 '눈이 먼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킬 뿐이다. 눈이 먼 자들을 무자비하게 격리시키는 당국의 비인도적 태도와, 격리된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잔인하고 추악한 행태, 마침내 혼돈이 되어버리는 눈먼 자들의 도시의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만은 여전히 눈먼 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의 손길을 결코 놓으려 하지 않고,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눈이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즉 인간적 가치를 여전히 '지닌다(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의사의 아내가 시종일관 '보려 함'으로 인해 '보지 않는' 세상의 참상을 고발하는 관찰자라면,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는 '보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며 마침내 '눈을 뜨는' 흥미로운 존재다. 그녀는 남자를 상대로 몸을 파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적어도 책속에서는 그렇게 묘사된다) 여자이지만 그녀가 볼 수 없게 된 때부터, 엄마와 떨어지게 된 사팔뜨기 소년을 계속해서 돌봐준다거나, 소년에게 자신의 먹을 몫을 나누어준다거나, 자신의 부모님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등 눈이 보일 때의 그녀와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을 어떤 외적인 가치와는 상관없이, 단지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모습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비로소 벗게 되는(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인 장면처럼 보인다(또한 그 순간은 그녀의 외면만 보고 어떤 편견에 사로잡혔던 독자들의 눈을 뜨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종의 '성장'의 순간이며, 그렇기에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절망은 희망을 잉태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보이는 세상에서는 끝내 우리가 눈을 뜰 수 없을 테니까.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니어야 한다고 믿어지는 가치들의 나약함은 주제 사라마구의 대담한 상상력이 빚어낸 '하얀 세상'에서 거침없이 발가벗겨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저자는 "자기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격려와 함께 여전히 희망이 존재함을, 그러므로 그 희망의 손을 부여잡아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하여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자에게 되묻는다. 의사의 아내가 보여주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연민어린 시선이 없다면, 혹은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가 말하는 "우리 내부에 있는 이름이 없는 뭔가"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면, 과연 그러고도 우리가 눈을 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를.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눈먼 자들의 도시'는 환상이 아니라 실제에 다름 아니며, '만물의 영장'으로 대변되는 '인간'에 대한 막연하고 오만한 믿음이야말로 오직 환상으로 남을 뿐이다. 타인의 슬픔과 인간의 존엄을 위해 흘릴 '눈물'의 의미를 잃어버린 '눈먼 인간'을 더 이상 '눈물을 핥는 개'가 따를 이유는 없고, 그렇다면 다만 생존을 위해 경쟁할 뿐인 '눈먼 인간'과 '개'의 근본적인 차이란 그리 쉽게 정의될 수 없을 테니까.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나는 보고 싶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p419)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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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 조모컵 공식 홈페이지]
 

어제 저녁,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맞붙은 2009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J리그 올스타에게 1대4로 무너졌다. 패배 자체보다도 K리그 올스타의 실망스러웠던 경기력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한판이었지만, 경기 후에 쏟아지는 많은 비판성 기사들을 보니 언제나 그렇듯, 결국 무엇보다도 '패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논란과 비판을 양산하는 원인인 듯해서 씁쓸하기만 하다. '패배'에만 집착해서는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 이후에 비판 받는 대목들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서울에서 갑자기 인천으로 장소를 바꿨다거나, 현재 K리그 하위권에 처져 있는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거나, 감독의 전술이 애초부터 문제였다거나, 선수 선발과 합숙 훈련 문제로 잡음이 있었다거나,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이 부족했다거나 하는 등의 비판들은 모두 나름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이러한 비판의 가장 주요한 근거는 결국 K리그 올스타가 '패배'했다는 데에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러한 비판들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어제 경기 이후에 나온 비판의 많은 부분은 실상 이미 경기가 치러지기 전에 나옴직한 것들에 불과하다. 장소와 선수 선발, 그리고 합숙 훈련 등의 문제들은 이미 K리그 연맹에서 확고한 원칙들을 정했어야 마땅했고, 특히 감독 선정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의 우승팀이 올해 부진에 빠질 수도 있음을 예상해서 다른 방식으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불행히도 그러한 원칙이 부족해서 약간의 잡음이 나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조모컵이 이제 2회째를 맞이한 새로운 대회인 걸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비판들은 앞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소소한 운영상의 지적에 불과하거니와, 특히 '패배'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비판이 집중되는 감독과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해에 처음 열렸던 2008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경기력 측면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비해 전혀 나을 게 없었지만, 결국 문전 앞에서의 찬스를 놓치지 않은 덕택에 3대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수장은 공히 감독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했고, 양 팀 선수들은 진지한 승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었다. 그리고 어제 경기를 앞두고도 그러한 인식과 각오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년의 경기 직후 차범근 감독이 환하게 웃고, 일본 선수들이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면 반대로 어제, 차범근 감독은 경기 내내 웃을 수 없었고, K리그 올스타들은 프로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혹독한 비판과 직면해야만 했다.  

이렇게 위치가 뒤바뀐 이유는 단 하나, 경기의 '승패'일 뿐이다. 물론 지난해 패배를 당했던 J리그 올스타가 상대적으로 전의를 불태웠던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제한된 역할의 감독과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단지 '승패'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특히 실점 상황들이 대개 선수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그 결과를 두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본의 세밀한 플레이에 경기 내내 밀렸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그건 작년과 다르지 않은, 한일 간의 축구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어느 특정 감독이 잠깐 벤치에 앉는다고 해서 선수들이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믿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결국, 작년의 '어설픈 승리'에 가리어져있던 문제점들이 올해의 '완벽한 패배'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셈이다. 당연히 경기 이후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일정 부분 감독과 선수들이 비판을 면할 길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오직 감독과 선수 탓만을 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패배(지난 승리도 마찬가지지만)에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은 '사람'보다 언제나 빠르다."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K리그에 부임한 외국인 감독이나 용병들이 종종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K리그의 선수들은 모두 빠르고 기술도 좋지만 정작 공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K리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게 바로 어제 경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K리그 올스타는 일단 공을 잡으면 치고 나가려는 성향을 보이면서 몸만 빠져나가려 할 뿐 정작 공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던 반면, J리그 올스타는 간결한 패스로 중원을 효과적으로 점유하면서 K리그 올스타들을 하릴없이 우왕좌왕하며 체력만 소모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제 J리그 올스타의 경기력은 충분히 아름답고 효율적이었으며, 세밀한 패스 게임의 강함은 최근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가 증명한 바와 같다. 즉, 이제 세밀한 패스 게임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세계 축구의 지향점이며, K리그는 바로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어제의 패배 이후 매서운 비판을 하면서 조모컵이 득보다 실이 많은 대회라고 하지만, 그건 패자가 하기에 그리 적합한 말이 아닌 듯하다. 물론 이제 고작 한 경기를 졌고, 또 그것이 현재 K리그와 J리그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도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두 경기 동안 얻을 것이 많았던 팀은 분명 K리그 올스타였다. 더욱이 올시즌 들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J리그 팀들의 훌륭한 경기력에 K리그 팀들이 고전했던 것을 상기시켜 보면, 더 이상 K리그가 그저 막연히 K리그의 강함을 자신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J리그를 배워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조모컵은 그러한 자극과 교류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나는 K리그 올스타전보다 조모컵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인기투표를 통해 선수들을 모아놓고 설렁 설렁 골만 많이 넣는 올스타전보다, 각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진심으로 한번 부닥쳐보는 조모컵이 축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경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때로는 패배의 쓰라림도 맞보게 마련이겠지만, 본래 축구 경기란 건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조모컵을 환영하는 것은 패배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승리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모컵은 꽤나 재미있는 축구경기이기 때문이다. 축구팬으로서 축구경기를 즐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나머지는 차후의 문제일 뿐이다.

ps. 어제 경기를 중계했던 SBS는 K리그와 J리그의 연맹로고 대신 한국과 일본의 국기를 사용했는데, 이건 정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령, K리그 올스타의 리 웨이펑이 한국인이고, J리그 올스타의 이정수가 일본인이란 말인가. 어느 블로거가 지적한대로, SBS가 그 경기의 시청률을 위해 의도적으로 내셔널리즘에 기대려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캐스터의 다소 편파적인 발언들 또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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