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칼 포퍼 지음, 이상헌 옮김 / 생각의나무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 Jake 평점 : ★★★★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는 열린사회 뿐이며, 점진적 사회공학에 의해서만 그런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대답을 엄밀한 논증에 기초하여 제시한다.

'열린사회'는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이며, 전리의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이다. 또한 인간의 존업성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추구할 때, 우리는 역사의 능동적인 창조자로 등장한다. 이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역사의 주체자임을 주장하고, 스스로의 결단과 행위에 의해 역사가 진전되어 간다는 것을 확신한다.

반면, 열린사회와 대립되는 닫힌사회는 전체주의의 사회이다. 전체주의가 기초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역사법칙주의의 정체가 하나의 허구적 신화라는 것을 폭로함으로써 포퍼는 전체주의를 근원적으로 비판한다.

전체주의의 닫힌사회는 열린사회의 신념이 약화될 때는 언제나 다양한 모습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계속 의미를 갖는 것은 문명사에서 이성에 대한 반역과 옷을 갈아입은 전체주의와의 대결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한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포퍼는 현재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으며 아주 유명해진 그의 학생, 즉 헝가리계 미국 금융가 조지 소로스가 1992년 8월에 발간된 <타임스>에 게재한 호소문에서 표명한 견해를 전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만일 민족적 동일성이 국가의 교리가 되고 시민의 기준이 된다면, 인권은 침해되고 우리 문명의 기초는 위협받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것은 경쟁 집단의 파괴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될 것이며, 연쇄반응이 더욱 넓게 퍼져 나가서 우리의 행성 전체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지안카를로 보세티(Giancarlo Bosetti)


1. 책소개

이 책은 1991년과 1993년에 이루어진 이탈리아의 언론인 지안카를로 보세티(Giancarlo Bosetti)와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인터뷰를 정리해 놓은 책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94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루어진 인터뷰라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는 20세기 대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유럽의 한가운데에서 제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그리고 서구와 공산진영의 대립을 온몸으로 겪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에 매료되어 '사회주의중등학생연맹'의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이내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검토하면서 공산주의의 오류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히틀러의 등장, 전체주의 사회의 대두와 광기를 목격하면서 1945년 그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출판하였다.

필자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열렬히 존경해 마지않는 런던정경대학의 스승이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소로스가 만든 오픈소사이어티재단(Open Society Foundations)은 칼 포퍼의 열린사회(Open Society)에서 차용되었다. 그 역시 2차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전체주의의 공포와 광기를 경험한 세대로 인간의 불확실성, 불완전성, 개인의 자유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작 칼 포퍼는 소로스의 학생시절을 잘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우연하게도 조지 소로스라는 거물을 제자로 둔 덕에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저자 약력

1902년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출신의 변호사였으며 사회적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칼 포퍼는 아버지 시몬 포퍼(Simon Sigmund Carl Popper)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18년부터 빈대학에서, 1925년부터는 빈교육연구소에서 철학·수학·물리학·심리학 등을 배우고,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당시 칼 포퍼의 주된 관심사는 과학철학이었으며 1934년 《탐구의 논리 Logik der Forschung》를 출간하였다. 이 저술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고 영국의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하게 되었다. 1937년 뉴질랜드 캔터베리대학의 철학교수로 초빙되어 이주하였다가 1946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런던대학교 강사를 거쳐 논리학·과학방법론 교수를 지내고, 1965년 기사 작위(爵位)를 받았다.

최초의 저서 《탐구의 논리》(1934)에서, 과학(지식)은 합리적인 가설의 제기와 그 반증(비판)을 통하여 시행착오적(試行錯誤的)으로 성장한다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인식론을 제창하였다. 그 후 이러한 기본사상을 바탕으로 사회과학론·역사론·인간론 등을 전개하였는데, ‘실수로부터 배움’으로써 진리에 접근한다는 생각은 현대의 지적(知的) 세계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1963년에 저술한《추측과 반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 1972년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에서 출간한《객관적 지식 Objective Knowledge》 등의 저서가 있다. 칼 포퍼는 《객관적 지식》에서 귀납적 논리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가설과 연역적인 논리에 의해 합리적인 지식의 도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언어의 기능에 의해 주관적이거나 심리적인 관계에 속박되지 않는 객관적인 지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철학에 대한 비중있는 저서를 남겼는데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역사주의의 빈곤 The Poverty of Historicism》등이 유명하다.


3. 책 내용 소개(인상깊은 구절)

질문자:

선생님은 자사전에서 실제로 어떻게 해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을 파악하게 되었는지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을 해낼수 있도록 도와라!' 라는 도덕 법칙에 대한 암묵적인 호소와 결합된 역사적 예언으로 이루어졌다 라고 선생님은 쓰셨습니다. 덭에 대한 이런 생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칼 포퍼:

공산주의자의 교의는 보다 나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그것은 역사의 법칙에 대한 지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어떻든 간에 도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를 달성해 내거나,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공산당을 지원하는 일은 분명히 모든 사람의 의무, 특히 전쟁과 폭력을 증오하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의무였습니다. 만일 공산주의의 도래를 방해하여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범죄자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도래해야 하는 어떤 것에 저항한 것이고, 그의 저항으로 인해서 공산주의가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확립할 때 일어나게 될 모든 지독한 폭력과 죽음에 대해서 그는 책임을 지거나 또는 공동책임을 지게 된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는 도래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스스로 확립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소한 저항이 있기를, 가능하면 희생되는 사람이 적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의 불가피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 사람들은 누구나 사회주의의 도래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하는 의무를 가졌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이상한 일을 하고 어제와 오늘이 모순되는 태도를 보인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권력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정당화 되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중대한 의문이었으며, 모든 행위에 대한 주요 이유였으며,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문제입니다. 중요한 점은 공산주의자들은 종국에 도래해야 하는 것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내가 덫이라고 말한 것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한때 그 덫에 걸렸었습니다.

(p. 60~62)

질문자:

최근 몇 년 사이에 러시아에서는 입회점(point of entry)이라고 부르는 것, 즉 '실수' 또는 '부정적 과정'이 시작되는 점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에 의해서 대체된 것 같지만 그 이념은 '탈퇴점(point of exit)', 다시 말해서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선생님께선 '입회점'을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훨씬 뒤쪽에 놓으시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칼 포퍼:

나는 마르크스 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은 친구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을 발견함으로써 인류를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당신과 나는 인류의 주요문제를 푸는 해결책을 발견하여 인류를 돕는 일에 협력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근절되어야 할 적을 발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본주의라는 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마르크스에서 시작해서 흐루시초프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오류였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입회점'은 없었습니다. 출발에서부터 오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책임대신 증오를 선택했으니까요. 커다란 야망을 지니고 그 야망을 달성할 수 없기 떄문에 세계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은 커다란 오류를 저지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다르게 실행되었더라면 모든 것이 옳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p.127~128)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현대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넘어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반 공산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종결된 것으로 또는 거의 종결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지금, 좌파와 우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칼 포퍼:

내 대답은 이미 말한 것에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파의 원래 기능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능은 변질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들로 인해서 좌파는 이른바 노동자를, 그들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닌 경우에도 노동자 편에 계속해서 섰습니다.

(p.132~133)

질문자:

'전쟁은 전쟁으로' 라는 원칙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습니까?

칼 포퍼:

제2차 세계대전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정확하게 '전쟁은 전쟁으로' 라는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기간은 실제로 평화를 유지하는데 정부의 책임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네빌 체임벌린(Naville Chamberlain)의 경우 흥분한 나치 독일을 달래는 것이 분명한 의무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평화의 이름으로 양보하는 것이 자신의 주요한 임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히틀러를 도왔습니다. 그 당시 그는 나치의 지배를 강화하는데 있어서 이미 상당히 진보적이었습니다.

(p. 142~143)

나는 마르크스 주의를 거부한 후에도 몇 년 동안은 사회주의자였다. 개체적 자유와 결함된 사회주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사회주의자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등주의적 사회에서 수수하고,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한낱 아름다운 꿈에 불과하다는 것, 자유가 평등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자유를 잃어버린 부자유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평드잉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을 얼마동안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p. 184)

탐미주의와 급진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이성을 던져 버리게 하고, 그 대신 정치적 기적을 바라는 절망적인 희망을 갖도록 한다. 그러나…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옥, 인간만이 그의 동포를 위해 준비하는 그런 지옥을 만들 뿐이다.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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