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 Men's Style Book - 대한민국 남자 스타일 메이커 채한석의 '남자 옷' 이야기
채한석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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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에 스타일북이라는 책이 나왔다. 표지만 봐도 사랑스럽게 생긴 책이었던데다 워낙에 옷입는것에 재주가 없어 읽어본 책이었다. 이런주제로 책이 나오는게 새삼스러울건 없지만 아직 남자에 대한 책이 안나온걸 보면 꾸미는데에 여자가 아직은 더 절대적인가보다 라고 잠깐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일년만에 그 생각을 떠올리고 멋쩍게 됐다. 떡하니 나오지 않았나.. 남자의 스타일북이. 이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 라는 여자마저 끌어들일 부제를 달고.

 
 나에겐 남동생 하나뿐이다. 여자인 나보다 남자인 동생이 외모에 더욱 관심이 많다. 내가 봐도 동생은 보통 아니 윗세대의 남자들보다 외모에 관심이 많다. 특히 옷입는데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 묻지 않아도 어느매장의 어떤옷이 어떻고 누가 무엇을 입었는데 어떻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직은 화장하는것까진 꺼려하지만 피부에도 관심을 두어 내게 가끔 물어오기도 해서 한때 내가 남자의 피부에 대해 간략히 공부(?)를 하기도 했다. -몇줄로 쉽게 적을수 있을만큼 알량한 그 지식마저 이 책에 모두 나와있어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문제는, 그다지 감각있지 않은 내 눈에도 동생이 열심히 차려입는 옷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면 누나는 나쁜소리만 한다며 불쾌해하고 고치지도 않는다. 스타일링에 관심이 있지만 동생 역시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것은 거부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였던 것이다. 안타까운건 내가 그 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만 할뿐 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스타일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거였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안타깝던지...... 이것이 남자를 위한 이 책을 여자인 내가 읽게된 이유다.
 
 대중을 위해 정보나 노하우를 제시하는 책들은 지식전달과 이해를 도울 사진, 그리고 지루하지 않고 친근하게 느낄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등이 비율을 잘 맞춰 담겨있어야 한다. 나처럼 스타일링에 거의 젬병인 사람에겐 사진이나 그림이 절대적이다. 조금 부족한 감이 느껴질때도 있었지만 설명과 사진이 충실한게 마음에 든다. 단순히 옷입는것뿐이 아니라 구입하는 곳과 보관, 세탁법까지 꼼꼼히 설명되어있어 내게도 도움이 됐다. 좀더 맵시있는 차림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본에 충실한 설명이 돋보이는 이 책이 필요할것이다.
 
 옷 그거 몸에만 맞게 입으면 그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는 남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있을것이다. 언젠가 알게된 남자는 30대 중반임에도 노총각이라 챙겨줄 아내가 없기때문에 옷은 형수님이 사준다고 했다. 얼마나 기가 찼는지 모른다. 그렇게 자신에게 무관심한 이들은 예쁜여자를 찾는다. 하지만 여자 역시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은 남자를 좋아한다는걸 알려주고 싶다. 남자다운것을 착각하고 어울리지도 않게 하고다니는 사람을 보면, 자신의 옷마저 다른사람에게 맡기는 무성의한 사람을 보면 동생이 얼마나 이쁜지 대견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마음가짐이 안된 사람을 제외한 많은 사람에게 아주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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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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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난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이전의 우리집을 그릴 수 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그런일이 없었다면 지금쯤은... 이란 상상을 자주 하고는 했다. 누군가를 잃은, 특히 가족이나 가족만큼 마음을 깊이 주고 의지했던 그런 사람을 잃은 그 상실감은 먹먹한 회색같다. 아직 믿기지 않고 믿고싶지 않아 밝지 못하지만 누구든 그 비워진 자리만큼의 상처안에서 살아가는법을 배운다. 혹시 알고 있는가? 회색이 분홍색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것을.

 
 그리움이란, 모든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p.49) 이런 생각을 해낸 미쓰코가 대견하다. 나보다는 당당하게 현실을 바라볼수 있었기에 생각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5년간을 눈먼 장님처럼 지내오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나도 그런것같다 라고 여길뿐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모댁에 들어가게 되면서 달라진 현실에서 미쓰코가 깨달은 것이 그리움의 정의이다. 아내를 잃고 점점 없어져가는 일감마저 놓아버린 아빠의 모습을 보는 미쓰코는 아마 더욱 과거가 그리웠을 것이다.
 
 변해버린것, 달라져버린것에 대한 상실감이 전부라면 큰 실망을 했을것이다. 누구도 접근을 안하던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빌딩으로 들어가버린 아빠를 찾은 미쓰코를 따라 가면서 나는 넋놓고 감상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샌가 나도 가족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미쓰코의 언니라고 해두지 뭐. 다른사람을 곁에 두는 아빠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미쓰코가 다시한번 대견하다. 아빠를 제대로 이해할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아빠의 인생과 마음을 헤아려보고 더불어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모습도 보이는 그대로 보고 헤아려보기 시작한다. 이런게 비워진 자리만큼의 상처안에서 배우는 살아가는법이 아닐까?
 
 미쓰코는 미쓰코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회색빛 현실에서 살아간다. 슬픔은, 상처는 이겨내는게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보는 나도 안타까워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받고말았다.
 
"사람이 왜 유적을 만드는지 알아?" 유리씨는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오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서일거야."
그건 인간이 영원토록 지니는 허망한 바람인거야, 그리고 위에서 보면 목걸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신마저 부러워 매혹당하는 아름다운 빛의 알갱이지, 라고 유리씨는 말했다. (p.86 ~ p.87)
이 인생에서, 나는 나를 위한 유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p.83)
 
이 인생에서, 나를 위한 유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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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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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읽는 순간, 당신도 공범이다!
이 한문장이 사람을 얼마나 끌어당기는지 모른다. 더욱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비교되고 있으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실망스러웠지만......

이 책은 크라머라는 작가가 주인공이 되어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서전쓰는 일을 맡아 자서전의 주인공인 두번째 희생자의 집으로 가면서 시작되지만 이미 첫번째 살인은 끝난 후이다. 두번째 살인을 하는 과정과 첫번째 살인에 대해 회상하는것이다. 이야기의 아니 크라머의 동선만을 놓고 보면 적당히 자연스럽고 평범하다. 나의 실망은 그의 내면이다.

주인공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아끼던 먼 친척인 야콥이 첫번째 희생자이다. 크라머는 2년간이나 쓴 작품이 부족한게 많다는 그의 말에 자신도 인정을 했지만 그날 살인을 한다. 야콥의 소개로 자서전을 써줄 늙은 프라이킨에겐 젊은 부인 사라가 있다. 그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프라이킨을 죽인다. 이 두번의 살인에서 이를 인정하게 할만한 이유가 부족하다. 합당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그 작품을 좋게 평가하기 힘들어진다. 어떤면에서 이 작품이 수상작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하게하는 그의 심리상태가 이 책의 알맹이라고 해도 될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크라머의 심리상태가 너무 불안정해보였다. 자신도 이해못하는 눈물을 흘리거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속에서부터 웃음이 터져나오는 그를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볼 것이다. 마치 절반은 가려진 무대를 보는것같다. 그 가려진 절반의 무대내용을 볼수가 없어 줄거리를 이해할수 없는 연극같다. 위태로운만큼 상황판단이 빠른 그를 보고 있으려니 정신병원에 보내고 싶어졌다. 내눈에 그는 환자이다. 어긋나있는 감정과 이성이 왜 그렇게 됐는지 짐작하게 하는 내용도 없어 가장 아쉽다. 살인의 이유를 조리있게 밝히지 않았듯이 말이다. 그의 내면에 처음부터 이질감을 느끼고 지켜보았기 때문에 빠져나올수 없는 크라머의 내면에 초대를 받고 결국엔 독자 자신도 모르게 살인에 동참했다는 문구엔 동의할수 없다.

짧은 작품이해력으로 인한 아쉬움인지는 모르겠지만 늑장부리지 않고 빠르게 전개되는 것은 좋았다. 거기다 흡입력이 있어 책을 잡은 그자리에서 다 읽어냈다. 그건 아마 재미있다 라고 해도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간결해서 이해하기 쉽다. 재미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 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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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와 겐이치로 B - 짓궂은 겐이치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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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만큼이나 사전지식이 없이 접한책도 흔치 않을것같다. 간략한 설명을 읽고도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읽고싶었다. 호기심이 잔뜩 동했다. 표지도 너무 인상적이어서 만화를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분명 내용도 표지만큼이나 무척 신선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표지에 쓰인것처럼 A는 대단한 겐지, B는 짓궂은 겐이치로이다. 미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는게 없는 죄로 책을 받아 읽기 시작하고난 후에야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그 문제는 죄였다. 아는게 없는죄. 겐지의 동화를 겐이치로가 패러디해 엽기소설로 변한것이 이 책인데 겐지의 동화에 대해서도, 겐이치로의 작품에 대해서도 아는게 전혀 없었다. 두 작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을 접하면서 두 작가의 존재를 알았고 간략한 이력을 알게됐다. 기껏 알게된 정보도 이정도가 다였으니 이번 독서는 내겐 험난한 것이었다.
 역시나 짧은 이 단편들은 내가 즐기기 이전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소리가 하고싶은건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것도 있었고 글만 봐서는 원작을 어떻게 패러디 한것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 그야말로 몰라서 아쉬웠다. 적어도 겐지의 작품은 사전에 알아두는것이 이 책을 맛있게 읽는데 큰 도움이 될것같다.
 원작과의 관계는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이 책 자체를 읽어내려가면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비틀린 설정으로 인상적인 내용들도 제법 있었다. 처음부터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했기때문에 이건 말도 안돼 라고 드리울 잣대가 거두어진 탓인지 무척 자유로운 서술이 눈에 띄였다. 내가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할일이 없어 자살을? 하루하루 나이가 적어진다면? 누구는 첫키스만 많이도 하던데 이사람은 과연? 글의 분량이 왜 여기서 끝인지 볼멘소리를 하게 만드는 기발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들어있다.
 비록 깊은 깨달음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겐이치로의 짓궂음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 톡톡튀는 내용과 설정으로 이번엔 만족해야 할것같다. 나중에,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을 접한 후에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그때라면 훨씬더 풍자성이 강한 패러디를 느끼면서 겐이치로의 짓궂음에 박수를 보낼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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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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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자도 담배처럼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몸에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좋지않은 것이 아니라 나쁘다. 감자칩은 감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감자는 알칼리성 음식으로 몸에 좋으므로 감자칩도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감자칩은 이미 감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쌀과자는 쌀이 아니고, 새우로 만든 과자도 새우가 아니며, 양파로 만든 과자도 양파가 아니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라고 광고한 햄버거 역시 게가 아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이러한 가공 식품들은 원재료가 갖고 있던 장점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며 해로운 것이 잔뜩 첨가된 돌연변이다.

 팜유 앞에 접두어처럼 늘 붙는 말이 있다. 바로 '식물성' 이라는 말이다. 팜은 야자 중에서도 짜면 기름이 나오는 기름야자(oil palm)를 말한다. 팜유는 분명 식물에서 나오는 기름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성지방과 매한가지이다. 심장병 전문가들은 심장병을 예방하는 데 있어 팜유같은 기름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팜유를 많이 먹으면 심장병이 생기기 쉽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포화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포화지방은 대개 동물성 지방에 많다. 하지만 팜유에는 동물성지방만큼이나 포화지방이 많이 들어 있다.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피 속에도 기름이 둥둥 떠나디고 혈관 벽에 기름 찌꺼기가 덕지덕지 달라붙고 결국에는 혈관이 막혀 심장병, 중풍도 생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밀은 주로 미국에서 들어오는 것이고, 캐나다, 호주에서도 들어온다. 밀을 비행기로 실어나를 수는 없기에 배로 수송하는데 수확하고, 선적해서, 태평양 건너 한국까지 당도하려면 몇달은 걸린다. 갓 수확한 햇밀이 아니라면 수확한 지 몇 년이나 지난 밀도 들어올 수 있다. 이것이 배을 타고 한국까지 오는 동안 과연 벌레도 안생기고 깨끗한 상태로 올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포스트 하비스트(Post Harvest)이다. 포스트 하비스트란 수확을 한 뒤에 유통 과정 중에 벌레가 생기지 말라고, 썩지 말라고 농약을 치는 것을 말한다. 농사를 짓는 중에 농약을 치는 것은 그래도 비바람을 맞으며 씻겨갈 수도 있으나 수확한 것에 농약을 치면 소비자의 입안으로 들어올 위험은 훨씬 더 크다.  이렇게 농약에 찌든 밀은 국내로 들어와서 새하얀 밀가루로 거듭난다. 그 과정에서 껍질과 씨눈은 다 날아가 버린다. 껍질에 있던 섬유질은 온데간데없고, 씨눈에 들어 있던 노화방지 물질과 비타민들도 다 날아가 버린다. 밀 속 알갱이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껍질과 씨눈이 함께 섭취될 때에만 몸을 제대로 이롭게 할 수 있건만, 좋은 것은 다 없어지고 표백까지 된 이 가루는 그야말로 형편없는 먹거리이다. 그래서인지 수입 밀가루는 쥐도 안먹는단다.- 생각을 바꾸면 살이 빠진다에서 발췌-

 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읽은 책이다. 건강적인 면에 중심을 두고 체중감량을 이야기 한 책으로 바른 먹거리부분에 있는 내용이다. 몰랐던 내용이어서 놀라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기름이나 과자가 좋은음식이 아니라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밀가루에 대해선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고있던 식빵을 놓아버리게 만들었다. 그 후로 마트에 가면 반은 습관적으로 라면이나 과자코너에 갔지만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하나같이 밀가루는 수입산이고 라면을 튀길때 쓴 기름은 특별히 큰 글씨로 팜유라고 쓰인걸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밀가루음식을 좋아해 라면이나 빵을 잘먹었다. 오죽하면 라면공장의 공장장에게 시집가라고 어머니가 놀리셨을까...... 이제껏 그렇게 사랑했던 음식들이 이런것이었다니...... 자취하면서 밥을 잘 못먹어 라면을 거의 안찾게 된게 그렇게 다행스러울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렇게 싫어하던 나물이 어쩐일인지 맛있게 느껴져 밥 한공기를 뚝딱 비웠더니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께서 이제야 어른이 되는 모양이라고, 씁쓰름한 나물을 맛있게 먹을 줄 알면 그제야 인생의 맛을 아는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그 글을 볼때만해도 대부분의 나물을 입에도 안대는 편이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어서 기억을 해두었었다. 그리고 작년, 내게도 그런일이 찾아왔다. 어느 봄날, 밥상에 못보던 풀이 올라왔다. 내 입에 좀더 좋으라고 빨갛게 양념을 한, 파랗고 빨간 미나리였다. 초봄에 나오는 어린 미나리라고 해서 돌미나리라고 한다고 했다. 양념탓인지 조금은 더 나이를 먹은 탓인지 그 미나리가 너무 맛이있어 결국은 뒷집에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가 캐온 미나리마저 얻어먹어버렸다. 다먹고도 어머니에게 미나리 캐오라며 아양을 떨기도 했다. 억세지도 않고 향도 은은한게 쓰지 않고 풀내음마저 느껴졌다. 그 미나리를 시작으로,  쌈을 싸먹으며 호박잎을 먹어보기도 하고 상추로 겉절이 한것을 먹기도 하고 쑥국도 먹었다. 이렇게 나는 풀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읽고 있는 책에서 푸성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이 건강서적에서건 소설에서건 산문집에서건 요리책에서건 미나리를 떠올리며 먹고 싶어 입맛을 다시다가 배고픔을 느끼곤 했다. 이 책을 알게 되고나선 내 손에 잡고 읽기까지 서점에 갈때마다 표지한번 쓰다듬고 입맛한번 다시고 표지한번 쓰다듬고 미나리를 떠올려가며 눈독을 들였다. 손에 쥐고 읽은 농부의 밥상은 단순히 채소설명으로 그친 책이 아니었다. 제목만 봐서는 내용의 범위를 짐작하기 어려웠고 표지에 떡 하고 차려진 밥상에 정신이 나가있어 몰랐는데 읽어보니 우리 자연을 사랑하고 우리 음식과 우리 몸과 우리 이웃을 사랑해서 어렵게 유기농 농사를 짓고있는 농부들의 삶과 마음이 담겨있었다.

 수확량을 늘리자고, 벌레 먹지 말라고, 좀더 보기 좋고 크자고, 좀더 입에 달고 맛있자고 억지로 변형을 가하는 농사를 거부하고 우리땅에서 나는 건강한 우리음식을 키워내고자 애쓰는 분들의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농사라는 말의 농자는 별 신 辰 자에 노래 곡 曲 자가 합쳐진, 별의 노래라는 뜻으로 하늘의 기운을 따르는 일이 농사라고 한다. 이런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며 우리 먹거리를 아끼는 분들이셨다. 서글서글한 그분들의 모습과 정겨운 밥상, 푸른잎이 가득한 농경지 사진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았다. 다 같이 좋은 음식 먹고 같이 잘 지내자고 부지런히 농사짓는 그 마음이 얼마나 넓고 평온한지 모른다.

 이제껏 생각없이 먹었던것에 놀라고 우리 땅에서 나온 먹거리를 보면서 먹는다는것에 대해 조금은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먹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담는다는건 드라마속 요리사만 하는 말이 아닌것같다. 나라의 힘이 약해 불필요한 먹거리가 쏟아져 들어오는 요즘이지만 생각하지 않고 있던 곳에 우리 자연과 우리 음식을 지키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걸 알면 한번쯤은 우리네 밥상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기회를 갖게되지 않을까? 

 장마다 빠지지 않고 음식이야기가 나와 힘들었다. 사진은 또 어쩜 그리 맛있어 보이는건지...... 하지만 난 아직 어른이 덜 된 모양이다. 아직 쓴맛에 덜 익숙해져 손이 가지 않은 달래가 냉장고안에서 장기투숙중이니 말이다. 오늘 저녁엔 다시한번 달래를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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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 2007-03-3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쓰신 것 같아요.^^

kassia 2007-04-02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댓글달아주신걸 이제야 봤네요.. 잘쓰긴요.. 아니예요~~ 감사합니다.. 봐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