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의 영시 번역 비교

 

 

 

 

 

 

 

 

 

 

 

 

 

 

 

 

#. 0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see the bright eye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 my darling, my life and my bride,

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

In her tomb by the side of the sea.

 

-'애너벨 리' 중에서-

 

 

#.1

 

사이러스님이 에드거 앨런 포의 영시번역을 비교하는 포스팅을 쪘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모든 번역은 어차피 틀렸다. 원전과 1:1로 대응할 수 있는 역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고전 번역은 늘 새로워야 한다. 그 시대의 지성과 감성으로 원전을 해석하여 감수성을 새로 드러내고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에서만 진리는 이따금 반짝거린다. 그것은 역자들에게 시지포스의 형벌과 같은 숙명이다.

 

내가 보기엔 네 수의 시 모두 각각의 문제가 있다. 특히 마지막 김정환 시인의 번역은 엉망진창이다. 생각은 갸륵하나, 그럴 거면 굳이 번역은 왜 하나? 옆에 네이버 사전 링크나 해 두지.

 

보기에 껄끄럽다면 그 때가 새 번역을 해야 될 때다. 영어전문가 김늘보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포스팅을 읽고 내게 뜬금없이 세 편의 시와 링크를 보냈다. (그는 요즘 들어 서재를 눈팅하는 듯하다. 나는 과문하여 사이러스님의 위명을 미처 알지 못했다.)

 

 

#. 2

 

다음의 세 편은 늘보의 번역이다. 

 

1.

 

내가 꾸지 않으면 달은 결코 빛을 내지 않기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내가 보지 않으면 별도 결코 떠오르지 않기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을.
그리하여, 모든 밤의 조류에 실려, 나는 그 곁에 눕네,
나의 그대, 그대, 삶, 신부의 곁을,
저 바닷가 그녀의 무덤 속에서--
바다 옆 그녀의 묘지 속에서.

 

2.

 

달이 빛나는 것이란 내가 꿈을 꾸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별이 뜨는 것이란 내가 빛나는 눈을 보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을.
그리고 그리하여, 온 밤의 조류에 실려, 나는 그 곁에 눕네
나의 그대, 그대, 삶. 내 신부의 곁을.
저 바닷가 그녀의 무덤 속에서--
바다 옆 그녀의 묘지 속에서.

 

3.

 

달이 빛난다는 것은 꾸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별이 뜬다는 것은 보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을.
그리하여, 온 밤의 조류에 실려, 나는 그 곁에 눕네
나의 그대, 그대, 삶, 신부의 곁을,
저 바닷가 그녀의 무덤 속에서--
바다 옆 그녀의 묘지 속에서.

 


늘보에 따르면 1의 번역은 의역이다. 그러나 1, 2, 3모두 네 사람이 번역한 것보다 직역에 가깝다. 또 포가 의도한 운율을 다 맞췄다고 한다. 그것이 본늘 번역의 장점이란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영어와 모국어를 깊이 이해하고, 절제된 언어로 시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질 수 없지. 나도 한 수 거들었다.

 

 

내가 꿈꾸지 않으면, 달은 빛을 내지 않기에,
아름다운 에너벨 리의 꿈을;
내가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별은 결코 떠오르지 않으니,
아름다운 에너벨 리의 눈을;
그리고, 모든 밤의 밀물, 내가 곁에 누울 때
나의 달링, 나의 달링, 나의 삶 나의 신부
바다 곁 그녀의 무덤가에서--
바다 곁 그녀의 묘지에서

 

 

내 번역의 단점은 1, 2행의 쉼표를 영어식의 도치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데 있다. 한국어에서는 도치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어색하다. ‘달링’은 ‘그대’로 굳이 번역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놔뒀다. 달링은 달링이니까. 그 달착지근한 뉘앙스를 가진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지 않은가.

 

나의 발번역을 본 늘보는 쿠사리를 놨다. 특히, "never ~ but(without)의 의미는 그 자체로 시적이기에 잘 생각하고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It never rains, but it pours’라는 속담은 대개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로 의역된다. 그런데 그것의 실제적 의미는 ‘비는 절대 살살 오지 않는다. 쏟아진다.’다. 뉘앙스를 살려 해석하면 ‘세상의 비란 비는 죄다 쏟아지는 것뿐이다.’ 늘보는 이 속담이야말로 세상에 rain을 동사로 쓰는 경우는 없다는 선언과 같다고 했다. 이 문장에서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는 pour(쏟아붓다)다.

 

같은 맥락에서 ‘They never meet, but they quarrel.’이라는 문장을 네이버는 ‘그들을 만나면 꼭 다툰다’로 해석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그들에게 meet이란 행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마주하는 일반적인 meet의 상황이란 오로지 quarrel밖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의 3행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나의 별은 그녀의 눈 뿐.”

 

모든 해석은 이 뉘앙스 위에서 노닐어야 한다는 것이다.

 

 

#. 3

 

 

 

 

 

 

 

 

 

 

 

 

 

 

 

그레이트 개츠비를 원서로 읽고 있다. 전에 읽었을 땐 큰 감흥이 없었는데, 최근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영하의 번역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옮긴이에 말에 기존 번역들을 디스했다. 개츠비를 원서로 읽으면 생동감이 넘치는데, 한국어 판본을 보면 빡빡하게 느껴지며, 이것은 모두 번역이 거지같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부분을 위해 번역을 하게 됐다는 것.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거다. 정말 그런가?

 

막상 원서를 읽어보니, 이건 뭐 다른 책이다. 장중해야 할 소설의 뉘앙스가 가벼운 어휘로 부서져있다. 피트제럴드가 성 베드로 성당을 그려놨다면, 김영하는 그걸 보고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옮겨놓은 격. 한마디로 김영하의 개츠비는 기품이 없다.

 

나는 그래서 의심하게 됐다.

 

원서를 읽지 않고 개츠비를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개츠비처럼 감정선이 섬세하고 복잡한 소설들, 예컨대 하루키라던가. 다니엘 글라타우어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나는 정말 읽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 소설들을 읽은 감동의 정체는 작가들의 의도와 사맞디 아니하는, 다만 기표의 영감을 받아 내 마음 속에 마구 지어낸, 뜨거운 의미의 덩어리들인지도 모르겠다.

 


#. 4

 

어차피 틀렸다.

 

영어전문가인 김늘보도 30분 만에 자신의 번역을 후회했다. But의 용법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시든 번역이든,

 

틀려도, 끝내 고쳐 쓰는 것이 문장이 아닌가. 어쩌면,
 
그게 아름다워서 문장은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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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0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미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점이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경주 시인의 번역이 읽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역이 시원찮다는 평을 보고 의아했습니다. 포의 시뿐만 소설도 번역하기 까다롭다고 합니다. 새로 나온 포 소설 전집에도 오역 몇 군데 보였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6-10-06 11:27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김경주 시인의 번역은 문학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달빛`이 마치 살아있는 듯 옮긴 부분이 좋습니다. `달빛은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면 따라오고` 이 부분이요. 하지만 의역이 많고 포가 의도한 의미와 운율의 맛을 전달하는데는 실패한 듯 합니다.

이백의 월하독작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혹시 번역의 모티프를 그렇게 얻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我歌月排徊 (아가월배회) 내 노래 소리에 달이 춤추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나, 춤추니 그림자는 더욱 신나 흔드네.

사이러스님 덕분에 좋은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 사실 오역이든 뭐든 잘 눈치도 못 채는 편인데 이렇게 한번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도 좋구요.

 

#. 1


금요일에 가을은 불현듯 쳐들어왔다. 새파란 하늘이 거짓말 같았다.   





#. 2


일요일엔 강변북로를 달리다 무지개를 만났다. 컸다. 얼마나 컸냐면, 그런 규모의 어떤 것도 전에 본 적이 없었다. 색이 꽉 차서 그 쪽으로 계속 엑셀을 밟으면 언젠가 부딪힐 것 같은 존재감이었다. 급하게 강변 공원에 차를 대고 핸드폰 카메라를 꺼냈다. 1/2.3인치 센서로는 일부도 담을 수 없었다. 다행히 파노라마 모드를 생각해 냈다. 


옆에서 하늘을 보고 있던 어느 한남이 “오 신이시여!”라고 외쳤다. 


이건 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 3


돌아오는 길에 해가 내렸다. 뿜어져 나온 빛이 산란해 하늘을 귤색으로 물들였다. 셔터 한번 누르고 스마트폰을 조수석에 집어던졌다. 차라리 그 시간에 눈으로 더 볼걸 그랬다.    





#. 4


오늘 낮에는 한강을 산책했다. 줄창 흐르는 강도, 낮게 엄습하는 구름도, 소슬한 바람도 다 좋은 날씨였다. 





#. 5


회사 근처로 돌아오니 또 색이 달랐다. 


가을에 며칠, 하늘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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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8-3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롯데빌딩이
소생의 아내가 겨털 뽑을 때 쓰는 족집게모양과 너무 흡사해서 순간 깜짝 놀랐어요 오호호호
쓸데없는 소리 지껄여서 죄송해요 ㅜㅜ

뷰리풀말미잘 2016-08-30 22:59   좋아요 0 | URL
저는 늘 이쑤시개 같다고 생각했어요. 항간에 뜬소문으로 어느 점쟁이가 신격호 회장이 백수하려면 큰 빌딩을 지어야 한다고 해서 짓는 거라는데, 어쩐지 남근을 닮은데가 있는 것도 같고. 게다가 잠실은 사실 물을 막아 만든 동네라 풍수적으로다가 음양의 조화가.. 흠흠.. 쓸데없는 소리라면 이 정돈 되야죠.
 

 

 

 

 

 

 

 

 

 

 

 

 

한수철님, 프로필 사진의 주인공은 왕좌의 게임에 '가시여왕', 올레나 티렐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다이애나 리그입니다. 전에 쓰던 프로필 사진도 동일인물이고요. 1938년 무인년(이렇게 얘기해야 될 것 같은 역사적 연도로군요)생이신데. 젊어도 예쁘고, 나이 들어도 예쁘고.

 

예전에' 007여왕폐하 대작전'에 본드걸로 나왔어요.

 

 

 

 

 

 

 

 

 

 

 

 

 

 

 

 

 

 

 

 

 

 

 

 

 

 

 

 

 

 

 

 

 

 

 

 

 

 

 

 

 

 

 

 

 

 

 

 

 

 

 

 

 

 

 

 

 

 

 

 

 

 

 

 

 

 

 

 

 

 

 

 

 

 

 

 

 

언니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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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6-08-1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아름다운 그라데이션.
 















#. 1


급우들에게 고고한 인상을 주려고 칸트를 읽는 여고생이 나오는 소설 제목이 뭐더라. 나에게 리처드 도킨스는 소녀의 칸트와 같았다. 당시 누군가 ‘인생의 책’을 물으면 ‘이기적 유전자’를 꼽곤 했는데, 그건 나쁘지만 섹시한 체취 때문이었다. 서가에서 처음 이 책을 꺼냈을 때 심장이 뛰었다. 책 뒷 표지에 뭐라고 써 있었냐면,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다.” 오, 그 다크한 매력이란. 카드빚 내서 명품 걸치듯 도킨스를 사 모았다. 알고나 읽었던가, 낮에는 잡일로 몸 팔고, 밤엔 술집에서 술 팔던 스무살 무렵이었다.  


어쨌거나, 내 인간관의 많은 부분은 도킨스로부터 왔다. 나는 ‘이 책의 영향으로’ 시니컬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계보를 따지자면 도킨스는 '악마의 사도'였고, 나는 도킨스의 사도였다. 술자리가 거나해지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는 개똥철학 시간이 돌아오면, 심연으로 통하는 캄캄한 구멍을 열어 도킨스를 소환했다. ‘어차피 인간이란 DNA를 보관하는 캡슐일 뿐이야. 너네 성격과 태도와 활동은 다 너네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프로그램일 따름이지. 너네가 의지라고 생각하는 건 모두 환상일 뿐이라고!’ 소환된 거인은 천진한 꼬마가 개미굴 짓밟듯 조무래기들을 짓밟았다. 그런 소란을 즐겼다. 


하지만 명품을 둘렀어도 살림은 그대로였다. 읽어도 마음이 공허했다. 좋은 책은 삶을 바꾼다던데, 왜지? 왜 마음에 악다구니만 그득해지는 걸까. 그런 의문이 패퇴한 수두 바이러스처럼 피부 표층에 잠복하고 있었다.  



#. 2


십년 쯤 지났다. 나는 제법 말쑥한 회사원 코스프레를 하고 어느 알라디너 모임에 초대받아갔다. 저녁을 먹고 막걸리 집으로 옮겨 술을 마셨다. 알라디너들답게 주로 책과 관련한 얘기가 오갔다. 그 자리에서 마태우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번역 문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솔깃해서 몇 마디 장단을 맞췄던가. 


술이 불콰해졌을때, 별안간 그의 말 한마디가 창처럼 찌르고 들어왔다. 맥락은 놓친지 오래였지만, 끄덕거리던 고개는 일시정지. 보통 술자리에서 싸움은 그렇게 일어난다. 


“..그러니까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한 건 미잘님의 잘못이 아니예요.” 


하, 이보시오 의사양반. 내가 바보라니! 나는 사나운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봤다. 


“여길 봐요. 미잘님, 그건 미잘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콱, 상을 엎으려고 시도했으나,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래서 일단은 참아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상대는 의학박사가 아닌가. 게다가 나는 평화주의자다.  


“알았어요.”


“그건 미잘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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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잘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가 네 번째로 같은 말을 했을 때 마침내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술에 젖어 말랑말랑해진 의식의 표층을 비집고 바이러스가 열꽃을 피웠다.


“Don’t fuck with me!!”


주점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는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미잘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무너진 건 그 그윽한 깊이 때문이었던가. 주르륵 하고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건 미잘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목으로 차오르는 복받침이 거대한 무게가 되었고, 장마에 둑 터지듯 쏟아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의 가슴팍에 안겨있었고. 술집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박수는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그날 도킨스를 언팔했다. 어차피 그가 뭐라고 찌끄리던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게 사실이다. 허영을 내려놓으니까 체증이 내려가듯 가슴이 후련했다. 



#. 3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마태우스와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었다. 


“저는 술을 먹지 않았어요. 아내가 음주측정기를 샀거든요.” 


“알았어요.”


“그런데 이건 아셔야 돼요. 저는 술을 먹지 않았어요. 아내가 음주측정기를 샀거든요.” 


“알았어요.”


“저는 술을 먹지 않았어요. 아내가 음주측정기를 샀거든요.”


“으아악!!!” 



#. 4
















지난 주 금요일, 점심나절에 반디앤루니스에 놀러갔다가 확장된 표현형이 새 번역으로 나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호. 


퇴근하는 길에 북플로 오늘 나온 글을 검색했는데, 마태우스님이 몇몇 책을 나누고자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http://blog.aladin.co.kr/747250153/8639431)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제목과 이유를 써주세요. 선착순입니다.” 그 다섯 권 중 한 권이 ‘확장된 표현형’이었다. 올린 지 5분여 밖에 안 되는 따끈따끈한 글이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편이면서 도킨스 자신이 훨씬 더 아낀다는 이 책이 번역이 엉망이라 읽히지 않는 그간의 현실이 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무식해서 이해를 못하는 건가?”라며 자신을 탓하기도 했지요. 십년도 넘게 발번역인 채로 남아있어야 했던 저간의 사정을 알고 나니 안타까움이 몇 배로 더 커졌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저처럼 원서를 읽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라면 다들 속상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드디어, 제대로 번역된 <확장된 표현형>이 나왔습니다. 앞부분을 조금 읽어봤는데, 무슨 말인지 드디어 이해가 됩니다. 도킨스는 물론 한국의 독자들에게 경사스러운 일이지요.


다시 도킨스를 읽을 때가 온 것인가. 댓글은 운명적이었다.





#. 5


까지만 쓸까 했는데, 이 글로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오해가 생길까봐 잇는다. 


#. 5-1


사실 ‘이기적 유전자’는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니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1도 없어도 어찌어찌 페이지는 넘어가는 과학교양서다. 이 책이 어렵다는 편견의 절반은 발번역 때문이다. 


방금 랜덤으로 펼친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이전 버전이다) 369페이지의 문장은 이렇다. 


하나 불안한 긴장이 이기적유전자 이론 핵심을 교란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 근본적 담당자로서 생물 개체 몸과 유전자 사이 긴장이다. 


힙합하냐. 원문은 이렇다. 


An uneasy tension disturbs the heart of the selfish gene theory. It is the tension between gene and individual body as fundamental agent of life.  


다음은 나의 번역이다. 


불편한 긴장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핵심을 교란하고 있다. 그 긴장은 유전자와 생명을 구성하는 근본 물질로서의 개별적 신체 사이에서 발생한다. 


여기에서 역자는 'agent'를 사전 1번 항목인 ‘대리인’으로 번역했다. ‘물질’(player의 느낌의..)로 번역하는 게 맞다. 아마 도킨스는 ‘DNA modifying agent’따위의 용례를 생각했을 것이다.  


몇 줄 아래로 내려가면 이런 구절이 있다. 


정자나 난자에 실려 거대한 유전적 산거(散居) 또는 분산 집단의 다음 여정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거의 서로 알지도 못했을 대항적인 유전적 담당자의 느슨하고 일시적인 연합의 산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지와 감각기관의 협조를 조정하는 충실한 뇌를 가지고 있다. 생물의 몸은 그 자체로서 매우 훌륭한 주체인 것처럼 보이며 또 그와 같이 행동하고 있다. 


히에엑!? 


원문은 이렇다. 


A body doesn't look like the product of a loose and temporary federation of warring genetic agents who hardly have time to get acquainted before embarking in sperm or egg for the next leg of the great genetic diaspora. It has one single-minded brain which coordinates a cooperative of limbs and sense organs to achieve one end. The body looks and behaves like a pretty impressive agent in its own right. 


나의 번역이다. 


생물의 신체는 전쟁 중인 유전체들이 맺은 느슨하고 일시적인 연합체가 아니다. 유전체들은 위대한 유전적 디아스포라의 다음 여정을 위해 정자나 난자에 실리기 전에는 서로 알지도 못했다. 신체는 팔다리와 감각기관의 협업을 조율해내는 하나의 확고한 뇌를 가진다. 신체는 꽤 정당한 자격을 가진 인상적인 대행자처럼 보이며 그렇게 행동한다. 


1. 원문에 ‘대항적인 유전적 담당자’로 해석될 여지는 어디에 있는가. 2. '산거'가 뭔지 아시는 분? 디아스포라(diaspora)를 번역한 '산거'는 국어사전에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만 드물게 쓰는 말이다. 굳이 번역하고자 할 때는 ‘이산’이란 말을 쓴다. 아마 저자는 디아스포라가 뭔지 몰랐을 거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번역을 했는지 찾아보다가 일역이 ‘산거’로 되어있는 걸 발견했겠지? 일문판을 구할 수 없어 가설로 놔두기로 한다. 3. 그 밖에도 자잘한 오역과 문제점들은 셀 수도 없다.    


이 책의 번역은 대체로 이 모양이다. 그때 마태우스님은 이런 점이 못내 아쉬웠던 것 같다. 다행히, 이런 문제들은 새로운 역자 두 명이 추가된 30주년 기념 전면개정판에서 상당부분 해소됐다. 하지만 아예 갈아엎고 새로 번역한 것은 아니고 기존 판본을 교열해 문장을 정돈하고 문제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데 그쳤기에 아직도 난해한 감이 있다. 확장된 표현형도 같은 번역자가 번역을 했기 때문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개정판의 구체적인 번역과 내용에 대해서는 읽고 리뷰로 남기기로 한다. 

 


#. 5-2


첫머리에 ‘이 책의 영향으로’ 시니컬한 소년이 되었다고 썼다. 그러나 도킨스는 인간의 삶 자체가 유전자의 농간이라고만 주장하지 않았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도킨스의 표현방편일 뿐이지(영장류 학자 Frans de Waal등이 언급한다.), 유전자가 인간의 윤리기준에서 볼 때 정말로 이기적 의사를 갖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DNA에 각인된 생존본능이 생물 개체의 삶으로 상당부분 표현된다는 의미다. 그것은 인간의 도덕률로 기준했을 때 이기적인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도킨스는 인간이기에 유전자의 굴레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지적인 허영심을 명품이라도 되는 양 뽐내던 나는 이 책을 오독했다. 내가 무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번역이 엉터리였던 탓도 있다. 마태우스님을 만나서 이 책을 새로 읽게 됐고,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도킨스의 이론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유전자 결정론도, 환원주의도 아니다. 우리 의지의 무가치함을 역설하는 니힐리즘도 아니다. 도킨스는 본성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통해 본능조차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 6


모름지기 책을 선물 받았다면 리뷰로써 보답해야 하는 것이 도리일진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용기를 내 도킨스의 새로운 저작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분의 은혜인 따름에야. 

 

이도 늦었으나, 우선 고맙다는 말이라도 남기는 게 베푸신 홍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리라. 계신 곳을 향해 삼가,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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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6-08-1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archive.org/stream/TheSelfishGene/RichardDawkins-TheSelfishGene_djvu.txt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 원서 전문은 여기서 무료로 볼 수 있다. (1976년 출간된 버젼.)

한수철 2016-08-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생각해 보면 저도 과거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결국 포기했던 것 같은데- 어지간히 읽었다면 아주 기억이 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제 잘못이 아니었겠구만요?

아무튼 두 분의 대화 및 행동양식 덕분에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덕분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6-08-11 08:29   좋아요 0 | URL
그것이 어찌 한수철님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It`s not your fault!! 히히.

한수철 2016-08-11 23:31   좋아요 0 | URL
^^

그건 그렇고 저

프사의 아름답고 시크하게 정지된, 동작선을 구현한 여성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뷰리풀말미잘 2016-08-12 11:21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Escargo/8689028

다이애나 리그라는 영국 배우입니다. : )

레논 2016-10-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킨스뿐만이 아닙니다. 칼 세이건의 저서도 그렇고, 폴 데이비스의 저서도 반드시 원서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과거 70~80년대는 일본어번역본을 재번역함에 있어서의 오류가 많았고, 90~00년대는 비전공자인 전문번역가가 하였기에 그랬었죠. 간혹 교수가 대학원생 여럿에게 시킨 번역도 많았고요. 전문번역가 양성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6-10-18 08: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레논님, 번역이 참 학문적으로 중요한 기초 작업이기도 한데 중요성에 비해서 괄시받고 있는 것 같아요. 80년대에 김용옥이 그렇게 번역 번역 외쳐댔던 것도 말씀하신 맥락이겠죠. 승정원 일기 같은 중요한 사료들도 번역이 안 되고 있잖아요.

말씀하신대로 원서를 참고해야 올바른 독해가 가능할텐데, 제가 읽는 게 느리고, 엄청나게 귀찮은 작업이라서 거의 포기하는 편이예요. 좋아하는 소설만 원서 발견하면 일단 사 두긴 합니다.

웬만큼 번역을 해도 돈도 안 되고, 고용이 보장도 잘 안되니까 전문번역가로 나서는 사람이 잘 없는 것 같아요. 딱한 현실입니다.

2016-10-24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늘보는 수락산에 살았다. 연령은 미상이나, 400년은 산 듯하다. 영물이라 인간 행세를 한다. 늘보는 고기를 좋아한다. 특히 소고기에 환장한다. 소고기를 사 준다고 하면 처음 보는 사람도 따라갈 정도다. 늘보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양질을 소고기를 얼마나 공급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같이 고기를 먹으러 가면 3인분을 시키는데, 본인이 2.2인분을. 내가 0.8인분을 먹는다. 자기 고기라고 생각한 고기에 손을 대면 격분하므로 세심한 젓가락질이 필요하다. 먹이에 예민한 것은 야생동물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고기는 보통 스스로 구우나, ‘진실한 사람’(진늘)이라고 판단한 자들에게는 고기를 굽도록 허용해주는 것 같다. ‘진늘’의 몇 안 되는 혜택이다. 내가 집게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요즘 늘보는 내년, ‘프로듀스101’ 시즌 2에 출전하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개인기로 준비하고 있는 폴댄스가 수준급이다. 하긴 늘보인데 매달려 있는 게 어려울쏘냐. 잘 하는 게 당연하다. 프로듀스101 프로젝트에 있어서 늘보의 최대 고민은 소속사 사장님이다. 일정 레벨에 올라가게 되면 소속사 사장님이 스튜디오에 나와야 하는데, 사장님이 워낙 바쁜 관계로 나와 줄지 모르겠단다. 아무리 바빠도 회사 홍보차원에서 나와주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늘보를 안심시키진 못한 것 같다.

 

늘보는 최근 일주일에 한번씩 만화방(물론 누워서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여차하면 바로 잘 수 있다.)에 가서 슬램덩크 완전판을 읽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떨리는 손으로 넘겨가며 가끔 ‘으으’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아오!’ 하는 소리도 낸다. 때로는 책을 확 덮고 상기된 얼굴로 한참 쉼호흡을 하고 다시 읽기도 한다. 슬램덩크를 다 읽은 늘보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농구가, 농구가 하고 싶”다며 고백했다. 하지만 현실에 안감독님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애먼 나를 그 대타쯤으로 삼아 이 폭염에, 주말마다 학교 운동장으로 농구하러 간다.

 

열대 생물이어서 그런지 별로 더운 기색도 없다. 마른 오징어처럼 말라 비틀어져 가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다. 농구를 끝내면 떼루와에 가서 1L짜리 오렌지 쥬스와 500mL짜리 복숭아 쥬스, 두 통을 사 마신다. 물론 나눠 먹는 게 아니라 혼자 다 마신다.(오렌지를 먼저 다 마시고 복숭아를 입가심으로 마신다.) 충분히 고기를 사 줘 호감도를 쌓았을 때 레어한 확률로 한입 주기도 하는데, 빨대의 유속을 관찰해 몇 ml가 빠져나가는지 유심히 살피고 있으므로 한 모금 이상은 주의해야 한다. 경험상 30ml이상은 그냥 먹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1.5L가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그래도 늘보의 몸무게는 하여간 50kg을 넘지 않는다.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근자에 늘보는 오버워치(블리자드의 새 슈팅 게임이다.)에 맛을 들인 듯하다. 지난 주 금요일에도 친구들과 우르르 피씨방에 가서 멀미가 날 때까지 오버워치를 한 모양이다. 나도 시도해 봤지만 화면이 어질어질해서 도저히 30분 이상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낮부터 오버워치를 하러 피씨방에 갈 예정이란다. 함께 플레이 할 고수도 한명 섭외해 놓은 모양. 늘보는 승부욕이 강해서 경쟁이 붙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전에 ‘모두의 마블’을 같이 했던 적이 있는데, 몇 판 연속해서 지면 불같이 화를 낸다. 임전무퇴의 정신만큼은 화랑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날릴 수준이다.

 

늘보는 물론 게으르다. 내게 빌린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거의 반년 째 반납하고 있지 않다. 반납을 종용할 때마다 신경질이 나는 듯하여 더 말하지는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요일마다 16시간씩 잔다. 조는 시간까지 합치면 18시간은 되는 듯하다. 도대체 생산적인 활동은 언제 할까 싶지만 오래 살았기 때문인지 의외로 잘 하는 게 많다. 댄스 전문가이며, 부적 작성의 전문가이며, 여행 전문가이며, 5개 국어(늘보어 포함)의 전문가이며, 경제학 전문가이며, 공부 전문가다. 상당한 역덕으로 국사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늘보를 읽는 주요한 키워드는 질투심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질투의 여신 헤라의 머리 꼭대기에서 늘보는 태어났다. 늘보는 ‘진늘’로 분류되는 인사가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나의 여행 파트너이기도 한 루리를 매우 경계하고 있는데, 언젠가 실수인 척 루리 엉덩이를 후려갈긴 적도 있다. 늘보는 루리를 ‘한 주먹거리’로 생각한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루리는 코웃음으로 화답했다.) 루리의 막강한 전투력과 늘보의 임전무퇴 정신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나의 중립적 판단으로는 용호상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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