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트 오브 킬링
안와르 콩고 외 감독, 하지 아니프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 1

 

 

하이데거와 나의 견해가 일치하는 드문 부분. ‘한나 아렌트’. 담배피우는 모습이 섹시한 그녀는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나치즘의 광풍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한나 아렌트는 1960년 생포된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다. 그리고 절대악이라 믿었던 자의 범상함에 충격을 받는다. 이럴 수가, 그는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노인이었고, 좋은 가장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우리의 삶과 행동에 침잠한 ‘일상의 악마성’과 마주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도 악이 될 수 있다.” 야무지기도 하지. 그녀의 결론이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안와르 콩고’. 인도네시아 극우 테러단체 ‘판차실라 청년단’의 행동대장으로 천명의 공산주의자를 학살했고 중국계 상인들의 삥을 뜯었으며, 외국인 노조원들을 폭행했다. 단언컨대 영화사상 가장 화끈한 캐스팅. 그와 그의 옛 동료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감독은 그를 만나 그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재연한 영화를 찍겠다고 했다. 주먹이 날아왔을까? 천만에, 흔쾌한 승낙을 받았단다. 그들은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애국’을 한 것이었으므로.

 

영화는 영화를 찍는 콩고와 동료들을 다시 찍는다. 이른바, ‘메이킹 필름 다큐멘터리’다. 콩고, 험상궂은 사람 아니다. 호리호리한 체구로, 룸바 스텝을 사뿐거리는 노인이고, 영화를 평론할 정도로 지적이며, 손주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사려 깊음마저 느껴진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때로 가해자, 때론 피해자의 입장을 재연하는데 좋은 추억을 되새기듯 사뭇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다만, 그 내용이 때론 조금 극단적일 뿐. 철사로 목 졸라 죽이고, 책상 다리로 눌러 죽이고, 베어 죽이고, 빠뜨려 죽이고… 이 선혈이 낭자한 역사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천진난만하게 되풀이 된다. 그들도 알고는 있다. “사실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건 안 될 일이겠지.”

 

그들이 찍는 영화는 재연극이었다가 뮤지컬로 바뀌고, 리얼리즘을 닮았다가 때론 판타지가 된다. 그들이 가해자의 역할을 재연할 때 죽은 피해자들은 천국에서 말한다. “나를 살해해서 천국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의미는 때론 말보다 형식에 내재한다. 영상에 얼비치는 그들의 내면을 보라,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할이 바뀌어 피해자를 연기할 때의 콩고의 모습이다. 고문당하는 연기가 끝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콩고. “물 한잔 마실래요?” “아니, 마시고 싶지 않아.” 즐거움이 싹 가셔버린 그의 표정. 온 몸에 소름이 쫙 오른다. 세상에, 당신은 단 한 번도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흐르는 눈물에 당혹스러워하며 그는 묻는다. “내가 죄를 지은 건가요?” 누가 대답할 수 있으랴.

 

학살의 현장에서 진행된 마지막 인터뷰 씬에서 콩고는 헛구역질을 한다. 치미는 욕지기를 참아가며 과거의 입장을 강변하는 그의 몰골에서 처음에 없었던 어떤 당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이 압도적인 실존의 위기에 구토로 반응하듯, 그의 범상함도 자기 존재 자체에 깃든 어떤 부조리를 눈치 챈 것이리라. 그가 토하려 한 것은 화려한 형식으로 기만하려 했던 추악한 자신의 실존. 그러나 새까맣게 열린 콩고의 목구멍에서는 아무것도 쏟아지지 않는다. 소화된 음식이 넘어오지 않듯, 지나간 부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육신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와 같은 경우를 한 다스씩은 알고 있다.

 


#. 2

 

 

 

안와르 콩고와 Pancasila Youth

 

인도네시아의 판카실라 청년단은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얼룩덜룩한 카모플라주 패턴의 군복을 입고, 집회를 열고, 소란을 벌인다. 악랄한 가해자들의 권력이 선한 피해자들을 압도하는 묵시록적 세계에서, 선한 주인공의 역할은 나쁜 놈이 맡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서북청년단’을 생각한다. 그들은 주로 북쪽의 탄압을 피해 남하한 지주들, 기독교계 인사들, 민족주의자나 일부 친일파들로 구성된 준군사조직이었다. 이 분노로 가득한 젊은이들은 이승만의 홍위병이 되어 반대파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했다. 고은의 시 ‘오라리’를 읽어보자. 테러는 ‘백색’이었으나 그들이 지나간 거리마다 선홍빛 핏물이 잘박거렸다.


70년이 지나고, 그들을 흉내 내는 무리들이 등장했다. 정규군은 아니나 군복을 입고 무리를 짓는다. 어설픈 대오로 어깨를 맞대 걷는 그들은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었다. 소란스러운 음악을 틀고, 악다구니를 쓰고, 모여 난동을 피우는데 심지어 별 제재도 받지 않는다. 철 지난 반공이념과, 어그러진 애국을 와글거리는 그들 중, 제법 머리가 굵은 녀석 하나가 나와 새까만 입을 벌리고 말 한다.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는 10개가 더 나와도 괜찮다” 가만, 이 사회는 과연 어떤 자들이 승리해온 사회란 말인가.

 

태교에 안 좋을 수 있음

 

 

펼친 부분 접기 ▲


낡은 전투복까지 꿰어 입은 그 ‘청년’ 가라사대. “길게는 2년, 짧게는 6개월 만에 나는 크게 성장해서 진출하고 있다. 즉 ‘듣보잡’이라는 용어는 낡은 386세대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한 청년의 초고속 성장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봐라, 조만간 용어의 개념이 바뀌게 될 것이다.” 헐, ‘초고속 성장’이라니 고추에 3차 성징이라도 나타났으려나. 어쨌거나 스스로를 ‘듣보잡’이라 일컬을 만큼 범상함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크게 성장해’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출마한단다. (최근엔 영화도 찍었다. 감독이 강의석이긴 하다.) 다만 해프닝인가. 아니면 묵시록적 사회의 전조인가. 진지하게 곱씹기엔 웃기고, 웃어넘기기엔 우리 역사가 지나온 골이 너무나 깊다.

 


#. 3


오, 듣보 범상함이여,


역사는 그대들의 심장 속에서 새카만 입을 벌리나니.


돌아보라, 반성에 게으른 범상함은 악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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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따 2015-11-2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비하고 지루한 다큐멘터리. 이들의 폭력과 살인은 아류 느와르의 연출만큼도 세련되지 못했고, 이 영화에 대한 놀라운 찬사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감상은, 안와르 콩고의 목에 철사가 감길때 180 도 반전되었죠.

진짜 폭력과 살인은, 사실 그렇게 극적이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번 반복되어 가책이 사라질때 그들에게 그것은 일개 `막노동` 이었겠죠. 조르고, 자르고 ,누르고, 옮기고, 투닥거리하고의 반복..
수백번을 반복하는 살육중에, 그들은 영화속에서 발견한 미학을 추구해야 했을 정도니까요. 어쩌면 그 와중에 살인은 그의 내면에서 예술로 승화 되었던 것은 아닐까도 싶습니다만..

인간이 굶지 않기위해 싸우고, 살기위해 죽였을 때
그것은 야만스러울 지언정 잔인하지는 않았는데.. 미개하고도 순수했었는데..
사상이 생기고, 상대의 생각을 부정하고, 그것이 분쟁이 되었을 때, 잘 짜여진 이성에 지배받는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 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추악해 질 수 있는건지..
내가 그였다면, 나는 그와 달랐을지..
네, 그는 그저- 예민하고 흥이 많은 평범한 노친네 였으니까요.

왜 콩고 그 노친네가 가쁜 호흡으로 물한모금 넘기지 못했을때 연민하고, 눈물 흘릴때 저도 눈물을 훔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미련한 연기력 수준으로는 연출될 수 없는 토악질 속에서
그 평생을 다바쳐도 덜어내지 못할 `카르마`를 수십년간 모르고 살다가 한순간 그 노쇠한 어깨에 져야 했던 자의 중압감을 동정해서 였는지도요.

모순된 그들의 사회상과 뒤틀린 자부심은 희극적이었고,
안와르 콩고의 내면의 변화는 더 극단적일수 없는 비극이었죠.
우습고도 어설픈 3류 콩트에서 비극적인 휴먼 다큐멘터리까지-


그래서 그는 그 토악질을, 게워내도 게워내도 아무것도 게워지지 않는 그 업보를, 남은 평생 그의 정당한 살인처럼 반복하며 살아갈까요?
자유인이길 자처하던 그들이, 인간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소양을 얻는 순간 `카르마` 라는 무거운 족쇠를 얻게된다니 이런 `웃픈` 역설, 아마 감독조차 생각하지 못한것은 아닐런지

뷰리풀말미잘 2015-11-25 17:42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싸라미, 리뷰를 댓글로 쓰면 어떡해요. 이 글은 내리지도 못하겠네. 이거, 정말이지 엄청난 영화 아닙니까. 엄청나요. 엄청나.

꿈 내용이 생각났어요. 세뇨리따님 나왔는데 cross dresser였음. 요즘 크로스 드레서 나오는 드라마를 봐서 그런가.. 닉네임은 세뇨리따인데 성별이 XY라서 그런가..

세뇨리따 2015-11-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간신히 마초이스트에 미치지 못하죠. 마크 헌트에 버금가는 상남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세뇨리따에 대해서 해명하자면, 스페인의 찐득한 억양으로 miss를 부르짖는 그 강렬한 염원을 담고싶었달까요. 특수문자의 사용이 가능했다면 세뇨뤼~따! 였을겁니다. 한결 남자적이어 보이죠? 정리하자면, 제 정체성에 대한게 아닙니다. 제 기호에 대한 것이죠.
 

 

 

날이면 날마다 오는 그 ‘맨’이 아니다. 바로 그 ‘맨’이었던 배우, 다시 그 ‘맨’이 되길 바라는 배우, ‘리건 톰슨’의 얘기다. 톰슨은 수퍼 히어로 ‘버드맨’으로 헐리우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나 후속편을 고사하고 브로드웨이의 자발적 연극 제작자이자 비자발적 ‘추억의 배우’가 됐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판으로 돌아가 예전의 인기를 되찾고 싶다는 속물적인 생각과, 연극무대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이 대립하고 있다. 전자의 생각은 ‘버드맨’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자아가 되어 그의 미련을 부추기고, 후자의 생각은 지난한 현실과 악다구니하며 싸워나간다.

 

성공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자금은 딸리고, 가까스로 섭외한 인기배우는 통제가 안 된다. 대마초를 피우며 그의 허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딸도, 그의 연극에 악평예고를 한 평론가도, 심지어 자신을 팬티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만든 악운과 그걸 SNS로 전송하는 대중들까지 아뿔싸, 사방이 적이다. 어쩌지? 연극, 영화, 현실의 무대를 넘나들지만 어딜 가도 시각적으로돈 심리적으로든 좌우가 꽉 막힌 골목 뿐. 게다가 그를 쫓는 화면은 놀랍게도 초지일관 롱테이크다.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 그 좁은 복도에서 오달수는 얼마나 외로웠나.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가혹한 외길로 리건 톰슨을 내몬다.

 

그는 쌉쌀한 현실과, 달콤한 환상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까? 영화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으나, 열연(?)의 결과로 부상당해 붕대로 온 얼굴을 감은 그의 모습은 어쩐지 버드맨과 판박이다. 결국 현실을 극복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현실과 뒤섞이지도 못한 남자는 차라리 수퍼히어로를 닮고 싶어지는 법. 그렇지 않은가?

 

상 복 많은 영화가 그렇듯, 영화는 갈피갈피마다 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눈짓으로도 상대를 속이는 농구선수처럼 음악, 구도, 대사, 분위기 하나하나에 의미가 녹아있다. 예술과 평론, 키치와 아방가르드, 현실과 이상,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까지 짧은 러닝타임에 많이도 꾹꾹 눌러 담았다. 그 흘러넘치는 의미론적 허세에 대해서도 영화는 스스로를 풍자하는 안전장치를 달아놔 평론가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다. 거리의 배우가 맥베스를 독백하는 바로 그 장면, “꺼져라, 꺼져라 갸냘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제 시간이 오면 무대 위에서 장한 듯 떠들어대지만 지나면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일 뿐.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한바탕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헐. 그래, 너 잘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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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그렇게 좋다고 해서 저도 볼 생각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3-11 11:09   좋아요 0 | URL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영화인데 락방님은 어떻게 정리하실지 궁금하네요.
 











미생이 대세다. 웹툰이 떠들썩한가 싶더니, 누적 판매부수가 백만부가 넘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요즘엔 아예 드라마로 나와서 밤마다 직장인들 혼을 쏙쏙 뽑아가는 모양이다. 죄다 미생 얘기다.


듣자하니 '未生'은 살지도, 죽지도 못한 바둑판의 대마를 얘기한단다. 나는 미생이라는 단어를 여섯 살 때부터 알았지만 의미가 이렇듯 금즉하게 다가온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건 살얼음판 같은 회사놀음 속에서 속 끓는 비정규직의 삶이겠다. 혹은 집, 회사, , 회사를 반복하며 사는 것 같지도, 죽은 것 같지도 않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겠다.

 

반딧불이를 잡아 유리병에 꽉 채우면 가까스로 책 종이의 글자를 구분할만한 빛이 모인다고 한다. 아까 얼핏 보니까, 유리로 뒤덮인 잠실의 고층 빌딩마다 불빛이 훤하다. 얼마나 많은 직장인 녀석들이 그 속에서 파닥거리고 있을까.

 

으 추워, 이 엄동설한에 아직도 퇴근하지 못한 친구 B를 생각하며 시를 한 수 적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서로 사귄 직장동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숲속,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서로 다투는 업무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상사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동료들과의 유희나 잡담

혹은 회식의 유혹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칼퇴 사유를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퇴근시간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야근의 유혹을 물리치고

평판에 연연하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원룸이라도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일자리를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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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알라딘에서 슈퍼스타에스엠타운 하는 애는 나 밖에 없겠지.. 외롭다.

다락방 2014-12-01 21:20   좋아요 0 | URL
슈퍼스타에스엠타운이 뭐에요?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1:48   좋아요 0 | URL
왜, 스마트폰 리듬게임 있어요.. 엑소 노래 많음.

2014-12-02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7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4-12-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서 서울의 야경이 그렇게 멋있다...라고 한다지요.
그 야경을 밝히며 노상 야근하는 직장인들의 설움은 알랑가 몰라.

뷰리풀말미잘 2014-12-02 18:19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덴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전 대체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퇴근하는 편이죠. 하하.
 
무질서의 효용 - 개인의 정체성과 도시 생활
리차드 세넷 지음, 유강은 옮김 / 다시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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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거처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도시화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도시 기저에 응축된 문화적 무질서의 힘으로부터 성숙한 사회가 태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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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0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도 어려운데 말미잘님 백자평도 어딘가 어려워요. ㅎㅎ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02   좋아요 0 | URL
ㅋㅋ 악.. 이거, 올해의 책 투표를 했을 뿐인데 제 서재에 버젓이 뜨는 걸 몰랐네요. 평생 백자평도 안 쓰는 인간이 상품에 눈이 뒤집혀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욕심에 눈 먼 인생이 부끄럽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4-12-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이런걸 읽는분을 내가 알다니 ♥♥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02   좋아요 0 | URL
이게.. 사실 여러가지로 사연이 쪼까 있는 책이올습니다. 고모리님. ㅎㅎ

Mephistopheles 2014-12-0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래서요....??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03   좋아요 0 | URL
역시 예리한 눈매의 소유자 메피님. 원래 이거 세 문장 쓸려고 한 거였거든요? 하지만 회사 윗분이 매의 눈을 하고 제 등 뒤로 다가오셔서. 하하하.
 

 

 

 


언젠가부터 우리는 실제가 아닌 상징적인 가치를 만들고 소비한다. 가령, 페이스북에 올린 윤기 흐르는 맛집 음식들과, 멋진 여행사진이 어디 삶의 현실이던가. 하지만 이미지는 현실을 압도하여 우리는 맛깔나게 업로드 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하고, 혹은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점점 비어가는 우리의 삶을 허상이 대체하는 풍경.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말 했듯 우리는 ‘땅(현실)이 아닌 지도 위(가상)를 실제로 알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이런 현상을 ‘시뮬라시옹’으로 정의했다. 그는 우리 삶에 실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가상의 이미지가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 던과 에이미 부부의 삶이 꼭 그렇다. 남편 던은 칼럼리스트이자 평범한 대학 강사이지만, 아내 에이미의 커리어는 범상치 않다. 그녀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기반으로 한 동화 ‘어메이징 에이미’를 통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자 하버드 출신의 알파걸이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실제로 어떠했는가에 대해서 영화는 단 한 조각의 시퀀스도 할애하지 않는다. 관객은 다만 드러나는 단서들을 통해 ‘심히 막장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뿐.

 

어느 날 에이미가 사라졌다. 실종 포스터 속 섬뜩하게 상큼한 미소만 남긴 채로. 빈집의 곳곳에는 혈흔과 수상쩍은 단서들 뿐. 사태는 오직 실종된 에이미의 다이어리를 통해서만 재구성된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닉은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결백을 주장하지만, 애인의 팬티가 사무실에서 발견되는 등 그에게도 미심쩍은 구석이 한 두 가지는 아니다.  관객들은 에이미의 다이어리와 닉 사이에서 심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동아줄이 된다. 동아줄이 두 부부 중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다시 반대편이 힘껏 줄을 잡아당기는 상황. 이 치정극의 종국에서 에이미는, 그녀의 모습을 한 진실은 어디로 기울어질까.

 

바야흐로 진실이 가문 시대다. 개인도, 기업도 이미지로 자신을 치장하기 바쁘고, 정치가들은 현실의 해법보다는 환상을 공약으로 내 건다. 던 부부의 생활은 잔혹한 성인 버젼으로 돌아온 ‘어메이징 에이미’. 이 시대에 구미에 맞게 미디어가 재창조한 동화에 대중들은 열광한다. 감독은 던 부부가 연출하는 연극 같은 삶의 모습을 통해 알맹이 없는 현대 사회와, 포장지 같은 미디어의 본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진실은 종잇장 같은 속살을 드러내고 펄럭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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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11-1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요즘은 모모모방송이라고 먹는 방송과 게임방송이 인기이기도 하죠. 일종의 대리만족인가요?

(웃기는 이야기로 게임방송을 보는 친구를 질타하며 `게임은 직접해야지 남이 하는 걸 보면 무슨 재미?` 라고 타박했던 어떤 사람이 그 친구의 ˝그럼 넌 야동 왜 봐.?˝ 한마디에 기브업 했다고 하더군요)

뷰리풀말미잘 2014-11-10 20:38   좋아요 0 | URL
ㅋㅋ 혹자는 현실보다 야동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현실과 가상의 위계가 뒤바뀌는 현상이겠죠. 최근엔 3D야동도 개발되었다고.. 이렇게 현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