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962년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와 잭 커비는 브루스 배너-헐크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창조한다. 주인공 부르스 배너 박사는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되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분노를 조절 할 수 없게 되면 난폭한 녹색의 근육질 괴물, ‘헐크로 변신한다. 부르스 배너가 인간의 아폴로적인 이성의 표상이라면 한다면 헐크는 디오니소스적 비이성의 표상이다.

 

물론 '헐크'의 모티브는 1886년 간행된 R.L.B.스티븐슨의 괴기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일 것이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재생산에 그치지 않고 보다 모던한 지점까지 촉수를 뻗는다. 지킬 박사의 하이드씨가 심리적 이면에 악을 내재한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는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헐크의 헐크는 선악 구분이 없는 혼란 상태로,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를 겪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을 은유한다는 것.

 

헐크가 등장하는 최근작은 영화 어밴져스다. 영화의 절정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배너 박사는 아직 헐크로 변신하지 않는다. 별 달리 분노를 이끌어 낼 기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일촉즉발의 상황, 혼자말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배너 박사. “사실 나는 늘 화가 나 있었지.” 적들에게 뛰어가는 배너의 하얀 셔츠는 이미 갈기갈기 찢어지고 이내 거대한 녹색 등판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 2


최근에 일을 관뒀다.

 

내 일은 오왕(吳王)의 새침한 연인 같아서 나는 그것을 사랑하였으나 그것은 나를 늘 파국으로 몰아갔다.

 

매달 받는 월급과 그 대가로 내가 포기한 것들이 늘 의식속에서 대립했고, 내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과 역할행동이 나의 정치적 정체성과 마찰을 일으켰다. 기대는 과도했고, 시간은 촉박했다. 일에 대한 상반된 감정이 가져오는 스트레스와, 스트레스로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업무적 긴장은 매일 밤 나를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멜랑콜리라는 진단명은 내 상황을 수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낭만적인데가 있었다.

 

나는 단지, 나는 그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을 뿐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초록색의 근육 괴물로 변해 주변의 모든 것을 두들겨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는 정보를 입수한 가 따로 조촐하게 마련한 술자리에서 나는 추에게 고백했다, 실은 이 모든 것을 다 두들겨 부숴버리고 싶다고. 침착한 베테랑인 추는 한참 내 얘기를 듣다 차분하게 말 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헐크의 은유는 옳아서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헐크를 하나씩 품고 있는걸까?

 


#. 3

 

헐크의 이야기는 1962년 마블 코믹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여러 지면과 TV애니메이션을 거쳐 TV시리즈로 방영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 영화로도 최근작 어밴져스를 제외하고 두 번이나 제작되었다.[2003년 이안 감독, 헐크(Hulk), 2006년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둘 다 평작이다.] 


열심히 찾아본 편은 아니지만 위에 나열한 시리즈 중 대부분을 일람하였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TV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다. 오래되어 단편적인 것 밖에 기억나지 않으나 드라마 속 헐크는 어쩐지 어밴져스의 헐크보다 외롭고 쓸쓸한 캐릭터였다. 그는 하나의 소동이 정리되면 석양을 등지고 어디론가 떠나곤 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장면을 늘 인상적으로 감상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 혹은 단지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세상과 멀어지려는 것이었을까?  

 


#. 4


내게도 하나의 소동이 끝났다.

 

떠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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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7-0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떠날 땐 몰랐는데 남이 떠난다니 서운하네요. 내재된 분노를 다스리고 돌아오도록!

뷰리풀말미잘 2012-07-09 02:14   좋아요 0 | URL
굿모닝 뽀! 문득 여왕개미 논쟁이 생각나네요.

언니 없는 사이에 언니 그늘 벗어나서 무럭무럭 자랐나요? ㅎㅎ

2012-07-09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0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2-07-1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너지를 꼭꼭 눌렀다가 펑 하고 터트려서 떠나는 이의 왠지 부럽고 대견한 등짝.

안녕하세요. 모처럼이예요 뷰리풀말미잘님.

뷰리풀말미잘 2012-07-10 19:17   좋아요 0 | URL
아, 우리 덩덕덕쿵덕쿵님! 오랫만에 서재 둘러보니까 또 많은게 변해있네요. ㅎㅎ 아가가 휘모리 님의 총명하고 야무진 모습을 닮았나요?

반갑습니다! :)

무해한모리군 2012-07-11 12:47   좋아요 0 | URL
나는 내가 늘 많이 변할걸로 생각했어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여하간 미래에 뭔가가 되면 말이죠..
실상은 별로 변한게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 쫌 실망중 --;;

아이는 남편만 닮았어요.. 아무리봐도 저 닮은 구석은 없어요 ㅎㅎㅎ

뷰리풀말미잘 2012-07-12 13:47   좋아요 0 | URL
예전에도 휘모리님은 좋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좋은 사람일건데 뭘 자꾸 변하려고 하나요. :) 욕심도 많으셔.

그의 미모와 휘모리님의 지성도 훌륭한 조합이네요. ㅎㅎ
 

당신은 


지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것이었어.


쉿,


오늘


희망은 구차한 언어로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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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12-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

아, 난 이 짧은 글을 보고 무슨 뜻일까. 어쨌든 미잘을 보니 반갑네.. 이런 심정이었어요. 새해가 다가오는데 점점 멍충이가 되는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12-01-01 16:35   좋아요 0 | URL
아치-

부비적부비적- ㅠ_ㅠ

Arch 2012-01-02 10:27   좋아요 0 | URL
어딜 부비적하는거에요~ ㅋㅋ 고마워요 미잘!

Forgettable. 2011-12-3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고싶을 땐 울어야지<3 보고싶네요 힝

뷰리풀말미잘 2012-01-01 16:37   좋아요 0 | URL
뽀! ㅎㅎ 희망찬 새해가 밝았어요!

신년 계획은 좀 세워봤어요?


2012-06-17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0

혼미한 정신을 정리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어휘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조립되지 않는다. 이건 일기도 뭣도 아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언어로 나 스스로를 지지하는 방편이다.  

#. 1

새벽 4시. 누군가 침대가 흔드는 느낌에 잠에서 깬다. 아무도 없는 병실, 나 하나 뿐이다. 환각인가.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그리고 곧 또 침대가 흔들리는 느낌에 잠에서 깬다. 실제로 침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지독한 환각인가. 그래, 무시하면 그만이다. 나는 다시 누워 설핏 잠을 청한다. 그리고 거의 잠드는 순간 원인을 알아냈다.

나는 떨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 병실에서, 침대가 흔들리도록. 

창 밖은 캄캄했다. 가로등 등불만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보름전이었다.

#. 2     

나는 퇴원하기를 원했고, 닥터는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놓고 온 일들과, 내가 업무의 스트레스로 몰아넣고 나온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 더 이상은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이후 두번째로 자퇴 사유서를 썼다.

캐리어를 끌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더운 공기가 숨통을 틀어막는다. 햇볕이 쨍쨍한 날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단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새 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3주만에 돌아온 일상이었다.  

내 자리에는 내 동료가 앉아있었다. 나는 이전 직책으로 복직했고 내겐 거의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환청인지 실제인지 모를 소리가 정신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내 오감은 나락으로 가라앉는다. 예상했던 일이다.

분노인지, 좌절인지, 변명인지 구분이 안되는 뭔가가 목구멍으로 자꾸 치밀어 오르고 나는 숨을 들이키고 담배로 입을 막아서 뭔지 모를 그것을 틀어막는다. 숨기고 싶다. 사실 내가 그렇게 나약하고, 무능하고, 평판에 연연하고, 한줌 밖에 안 되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내 허세를 들키기 싫었던거다.

이제야 최진실의 자살을 이해한다. 그 많은 돈으로 아무도 모를 곳으로 떠나 살 것을, 그렇게 새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을, 왜 죽음에 기댈 수 밖에 없었을까. 자존심이었을거다. 그것이 그녀의 발목을 묶어 집요하고 잔혹한 현실에 짖밟히게 만든거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에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  

#. 3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 오온이 이산하고 육신이 소멸하는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현실의 불안과 고통이 두렵다. 그래서 닥터는 퇴원을 반대했다. 아마 그녀의 휴머니즘은 내가 죽음을 도피처로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불러일으켰을 거다. 하지만 죽음이 삶보다 편한 사람에게 삶을 강요하는 것이 올바른 휴머니즘일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살아서 노인이 되고 싶다.  

삶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내가 누릴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고 싶지도 않다. 그 사람과 사랑하고, 술 먹은 다음날 아침마다 해 주는 기름진 토스트를 먹고 싶다. 예쁜 여자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에게 밤마다 팔베개를 해 주고 내가 아는 온갖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세계 각국의 신화와, 사람과 동물의 역사와, 우주의 이야기. 그 아이가 자라면 복싱과 칼 쓰는 법과 총 쏘는 법도 가르치고 싶다. 도시 근교에 작은 집에서 살며 평범하고 소박한 일자리를 가지고 책 읽고 글 쓰고 싶다. 지금은 연락되지 않은 그 사람이 행복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매너리즘을 이기고 재기한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들을 보고싶다.  

아, 퇴원하기 전 날 무려 천장의 종이를 접어서 예쁜 항아리를 만들어 준 전직 조폭 아저씨와 빼곡한 편지로 나를 격려해준 그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아직 못 했다.

그리고 예쁜 노인이 되서 씩 웃으며 이만하면 충분했어. 안녕. 하고 삶을 마치고 싶다.  죽음의 장소로는 깨끗하고 하얀 침대가 좋겠다.

#. 4

가끔 죽음이 삶을 뒤덮을 때 내 친구들, 아치, 뽀, 다락방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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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5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1-06-2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럴 때 미잘을 생각해요. 그러니 먼저 떠나면 안됩니다.

뷰리풀말미잘 2011-06-25 16:35   좋아요 0 | URL
살아서 노인이 될 거라구요. 가긴 어딜가. 다음에도 과일깍기의 진수를 보여줄게요.
 

#. 1 

거울에 비친 몸을 본다. 치골에서 쇄골까지 내 시선은 애정없는 연인처럼 무심하게 몸을 더듬는다. 체지방이 늘어 근육의 윤곽선의 희미해지고 근 매스가 줄어 볼륨감이 떨어졌다. 체중도 줄었다.   

기울어진 선반에 올려놓은 샤워타월이 떨어진다. 눈으로 보면서도 잡지 못한다. 반사신경이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심폐지구력, 근지구력, 유연성, 스트렝스. 신체 능력을 판단하는 지표 전 분야에서 내 신체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 된 것을 느낀다.  

하지만 건강검진 결과는 체내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고 말했다. 초음파도, 심전도도, 혈압, 엑스레이도 내 몸에 흐르는 이상 징후를 잡아내지 못했다. 

왼쪽 가슴 언저리를 더듬어 본다. 심장이 맥동할때 마다 싸 한 느낌이 퍼져 나간다. 뭐라고 딱 집어 얘기하긴 곤란한데. 아무튼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했다.

#. 2 

과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귀에 웅웅하고 울린다. 어디 안 좋으세요? 하고 그가 묻는다. 묻는 그의 얼굴이 척추 부러져 울던 그 녀석의 얼굴과 겹친다. 괜찮아. 라고 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혼미하다. 뭐 부터 해야 할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보고서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화가 울린다. 과장님. 회의 들어오시랍니다. 과장님? 순간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야, 이 새끼야 그런 직함으로 불러대면 월급 존나 많이 받는 것 같잖아. 과장님! 그는 다시 나를 부른다. 익숙한 목소리다. 잘린 제 손가락 한 마디를 들고 얼어붙어 있던 그 녀석의 목소리. 회의 들어오시랍니다. 나는 어질한 머리를 감싸쥔다.  

메일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로 일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끊임없이 서류들이 문으로 들락거렸고 하루 세번 회의하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짧았다. 용량을 늘릴대로 늘린 약이 듣지 않았고, 약 기운에 하루 종일 비몽사몽해 일을 할 수 없었고, 거지같은 인수인계에 업무파악조차 되지 않은 신임 과장은 일주일이 넘도록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난 주. 토요일을 꼬박 새고 일요일 오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급기야 사단이 나고 말았다.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와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이런, 젠장.  

나는 처음으로 나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 3 

닥터는 약을 바꿀 것과, 입원치료를 받을 것을 제안했다. 그녀는 멋드러진 병명을 붙여줬지만 내 증상은 예민한 신경줄과, 업무 스트레스, 과로에 따른 약간의 정신과적 질환, 약물 오 남용에 따른 피로누적 정도가 전부였다. 어쨌거나 shut down. 업무는 불가능한 상태. 놀란 보스는 당장 치료를 받을 것을 종용했고 보스 재량에 의해, '아마' 연가를 까지 않은 무기한 병가를 받았다. 전화도 하지 말란다, 걱정도 하지 말란다, 심지어 과장도 하지 말란다. 내 공석도 내가 알 바 아니란다. 터프한게 멋지고, 배려가 감사하긴 하지만. 안 봐도 훤하다. 나 없는 자리. 개판 오분전.   

내내 마음이 무겁다. 일신의 병환을 이유로 책임을 헌신짝 버리듯 하다니. 18세기 사무라이였다면 할복으로 사죄할만한 송구스러움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 편하게 회복하기는 글렀다. 아, 눈 딱 감고 씨발, 그냥 한번 콱 그어? 

#. 4     

몸에 난 숱한 자상과 창상의 흔적, 피부에 아로새겨진 화려한 그림이 그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말한다. 내 신상명세를 꼬치꼬치 캐 묻던 그 중 하나가 내가 묻는다. "어이 미잘이! 내 동생이 사십인데 자네한테 말 놔도 되나?" 아, 혈압. 씨발. 그게 말이 돼? 나는 거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공손하게 말 했다. "네." 

하지만 그들은 매우 친철하다. 밥 먹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끼니마다 밥을 가져다 주고, 커피며 과자등 온갖 주전부리를 제안한다. 싫다고 말 하기도 지쳐서 다 받아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나 없을 때 그들은 종종 옹기종기 모여서 내 얘기를 한다. "왜 걔 있잖아. 미잘이. 걘 얼굴도 이쁜데 아픈게 참 아까워." "밤에 잠도 못 자더라." "바둑은 못둬." "티비도 안 보던데?"  

간호사가 혼자 쓸 수 있는 병실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가격이 비싸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귀찮기도 하고. 또 낮에는 재활훈련으로 셋 다 나가버려 조용하므로 당분간은 여기에 있기로 했다.  

#. 5 

겁이 난다. 날 수 밖에 없다. 2주만에 훌훌 털고 일어 날 수 있을지, 또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지, 동료들의 눈초리, 그리고 정신과 입원 전력이 내 경력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그런 고민들이 입원하고 있는 내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하지만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어. 하고 애써 위안을 삼지만, 이미 나는 나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핵폭발 뒤 피폭 중심지를 그라운드 제로라고 한다. 어쩌지? 가엾은 미잘, 그라운드 제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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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5-3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심플하게 Hi~ 인사나 하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1-06-01 07:48   좋아요 0 | URL
Hi- 좋은 아침이에요.

2011-05-31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1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2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1-05-3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따라 하이~

뷰리풀말미잘 2011-06-01 07:49   좋아요 0 | URL
굿모닝. 오랫만이에요.

가시장미 2011-06-01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연히 보게 된 글인데,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네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산발적으로 흩어진 생각들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고민중입니다.

전 소아정신과에서 아이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전공이 심리학이라..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지요. 큰 병원은 아니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다 보니,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심각한 생물학적 결함에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는 경우는 조금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 감기나 바이러스성 질병을 앓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정시간이 지나 상황이나 심적인 요인이 변화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사실 님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나 님이 처한 상황에서 힘들고 고단한 일들을 모두 떠안고 오랜시간을 보내왔다면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을테고, 지금 님이 아픈것처럼 똑같이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님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여러요소들을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의사가 입원을 하라고 하는 경우는 병적인 상태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과의 격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지금 님이 처한 상황에서 격리되지 않으면 호전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입원을 권하셨을지도 몰라요.

입원을 하셨으니, 님의 빈자리로 인해 생길 일들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잊고 그동안 못하셨던 수면, 독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는데에만 몰두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실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걱정하신다고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 일들이 님의 건강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주변사람들 말대로 신경 뚝 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모두 다 내려놓으시고 나면 정말 님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실지도 몰라요. 불안해하지 마시고, 좋은 생각, 편안한 생각만 하시길 바랄께요.

사실 님이 다 아시는 이야기라는 거 알아요. 그런데 가끔은 내가 다 아는 이야기라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글을 통해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일 때가 있어요. 님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드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 글이 마음을 놓으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해서.. 그 마음을 남겨요. 아무쪼록 건강관리 잘 하시고, 힘내시길 바랄께요.

뷰리풀말미잘 2011-06-01 09: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가시장미님. 큰 힘이 되네요. 저는 물론 제 상태와 환경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하지요. 상담사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서도 내담자에게 넌 거지같은 자식이라고 말 하지는 않지요. ㅎㅎ 예, 저는 참 피곤한 사람이고 위안을 얻기 힘든 성격입니다.
 

북한의 연평도 폭격으로 인한 사태의 추이는 천안함 사태를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미 7함대와의 합동훈련 이후로 북한도, 언론도, 여론도 잠잠해 질 것 같습니다. 대북정책은 오늘 대통령 담화문 대로 강경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이미 더 이상의 어떤 조치가 남아있는지 의문입니다. 다만 군사적인 대응을 강화시키는 정도겠지요. 

관련해서 연평도에 MLRS가 들어온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네요. 그런 것도 국민의 '알 권리'에 속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알려주려면 제대로 알려주던가 해야죠. 동아일보 홍진환 기자의 기사입니다. 요즘 동아일보, 이렇게 일 해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나봐요.   

http://news.donga.com/Politics/3/00/20101129/32945431/1   

혼란스러우실 거에요. 정리해 드릴게요.

한국에는 두 종류의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가 있습니다. 독자개발한 k-136 130mm 다련장과 미 육군에서 들여온 M270 MLRS. 먼저 기자가 얘기한 130mm 다련장은 군단 및 여단급 부대에 130여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36연장으로 0.5초당 1발 18초에 36발 사격이 가능한 무기입니다. 몇 발에 축구장 초토화. 요즘 언론에서 이런 얘기 좋아하던데 오히려 이해하기가 어렵게 들리더군요. k-136의 한발당 유효 살상범위는 45m입니다. 이 k-136은 전술적으로 연평도에 배치 될 일도 없고, 기자가 올린 사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k-136

사진은 M270 MLRS네요. 12연장으로 227mm. 약 k-136의 두배 구경을 사용합니다. k-136의 업그레이드된 형태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사거리도 10Km 가량 더 길고, k-136은 고폭탄(내장된 화약의 힘으로 '인마'를 살상하죠)을 사용하는데 비해 M270 MLRS는 DPICM탄을 사용합니다. DPICM(이중목적 고폭탄)은하나의 탄두에 수백발의 자탄子彈이 들어있는 형태의 탄인데 '인마' 뿐 아니라 102mm의 철판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적 기갑무기에 쥐약이죠. 살상범위가 축구장이 어떻고 하는 얘기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M270 MLRS

그럼 왜 연평도에 k-136이 아닌 M270 MLRS가 배치되었을까요? DPICM으로도 갱도에 들어있는 대포를 잡을 수는 없는데.  답은 M270 MLRS로 DPICM탄 외에 ATACMS(전술 지대지 미사일)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TACMS는 북한이 개머리 등지에서 운용하고 있는 갱도포병을 잡을 수 있는 유도탄 기능과 충분한 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또 다른 의문.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서해 5도에 MLRS가 배치되지 않았을까? M270 MLRS는 일반 포병부대가 아닌 유도탄 사령부에서 운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해병에도 포병 병과가 있지만 MLRS를 운용할 줄은 모르죠. '연평도=해병'이라는 고정관념. 그리고 세계최강의 자주포 K-9이 해답이라는 단순함이 전술적 실수를 만들어 낸 겁니다. 굴 속에 있는 두더지를 돌멩이로 잡을 수 없다는 건 상식인데 말이죠.     

체크메이트.

M270 MLRS의 연평도 배치, 한미합동군사훈련. 자, 이제 북한은 꼼짝없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지금 정부의 후속조치는 당분간 서해에서 대북 억지력을 발휘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쪽은 방송으로 나불거리는 것 외에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당장은 뭔가 움직일 말이 없어보이네요. 하지만 이것이 곧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사실 남한이 자체적인 군사력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한 것은 이미 꽤 오래 된 이야기 입니다. 국지적으로 전투력을 증강시킨들 그게 전체 판도에 어떤 심각한 영향을 끼칠까요? 관점을 바꿔 볼 필요가 있을것 같네요. 왜 남측은 충분한 정치, 군사, 경제적 억지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빈번한 도발과 테러를 허용하는걸까. 그건 억지력이 사태의 키-포인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뭔가 잘못 흘러왔고,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부 정책이든 동아일보의 엉터리 기사든 뭐든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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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1-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사이익을 노리는 단체나 개인은 숨어서 빙그레 웃고 있을 것이 뻔할 뻔자...기회는 이때다 묻어버릴 껀 빨리 묻을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보이다 보니..

뷰리풀말미잘 2010-11-30 22:21   좋아요 0 | URL
굿 이브닝! 오랫만이에요 메피님. 날씨 쌀쌀한데 감기 조심하세요!

다락방 2011-01-01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 총 26129 방문


2011년 말미잘님 서재의 첫 방문자는 다락방임.
해피 뉴 이어.

뷰리풀말미잘 2011-01-05 22: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해피뉴이어! ^^ 다락방님 신나는 한해 되세요!

다락방 2011-02-2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 총 26665 방문


나 스토커같다. 그쵸. 히히

뷰리풀말미잘 2011-02-27 00:31   좋아요 0 | URL
ㅎㅎ 세상에는 아직도 신기한 것 투성이에요.

nlboe 2011-03-1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예요!
방명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회원가입 하라고 해서..
알라딘에 회원가입을 했다간 큰 사고를 치게 될 것이므로
걍 요런 방법을 택했어요 흑흑흑
이히히 요 댓글을 보면 좀 두려우시겠지 우후후후훗

2011-03-20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