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혓바닥처럼 산다. 사랑은 뜨겁고, 사람은 맵다. 돈은 짜고, 일은 쓰다. 날씨까지 더워지니 빼 문 살덩어리만 점점 길어지는데, 그나마의 위안은 바야흐로 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좋아, 냉면을 먹자. 그런데 냉면이란 무엇이지? 찬물에 국수 말았다고 다 냉면인가. 품격을 갖춰야 냉면이다. 들척지근한 설탕국물에 식초와 겨자소스를 버무린 함흥냉면은 보여주지 못해 안달하는 스트리퍼 같다. 품격이 없다. 진주냉면 소수파가 아니라면, 우리에겐 최후의 선택지가 남는다. 물론, 평양냉면이다. 

 

슴슴한 평양냉면을 사발째 들이키면 속이 확 뚫리는 느낌이다. 살얼음에 각얼음에 애를 쓰지 않아도 내장까지 서늘해진다. 국물이 입에 고였을 때, 미각은 온갖 맛을 감당하기 위해 용 쓸 일이 없다. 아직 찬 기운을 간직한 국물이 저절로 몸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서늘해진 위장으로부터 사지로 냉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삐질삐질 기어나오던 땀들은 땀구멍으로 도로 들어간다. 우리 바쁜 혓바닥들은 비로소 쉴 시간을 찾는다.

 

요란한 맛의 세계에서 담백함이란 그 외의 모든 맛과 구분되는 최후의 미덕이다. 당나라 시인 사공도는 이렇게 읊었다. ‘짙은 것은 다하여 메말라지나 담백한 것은 점점 더 깊어진다.’ 옛 사람들은 담박함(淡)을 최고의 맛으로 생각했다. 평양냉면은 담백한 음식이다. 온도를 절제하고, 고명을 절제한다. 잔치국수처럼 면이 안 보이게 고명을 덮지 않아도 맑은 국물에 푸짐함을 다 담아 낼 수 있다. 진정한 매력은 안달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법이다.


 

#. 2

 

냉면의 족보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아니, 뭔 냉면에 역사랄 게 있겠나. 쫄깃한 전분 면이 정석인가, 부드러운 메밀 면이 정석인가. 그런 건 없다. 밀이 많이 나는 해는 밀가루를 썼고, 메밀이 있으면 메밀을 섞었다. 메밀이 잘 되고 밀이 흉작이면 메밀 함유량이 높아졌을 것이다. 육수도 제각각이다 소 육수, 닭 육수, 돼지 육수를 되는 대로 섞어 쓰는가 하면 심지어 동치미 국물만 부어 저어먹기도 한다. 근래에 와서 지역을 나누고 역사를 추적하기도 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평양 옥류관 냉면을 먹어 본 사람 말에 따르면 남한의 평양냉면과는 전혀 다른 맛이라고 한다.

 

평양냉면이란 무엇인가. 다만, 국물이 맑고 차가우며, 간이 슴슴하고, 질긴 전분 면을 배재한 면 요리를 나는 평양냉면으로 정의한다.  


 

#. 3 서북면옥- 청빈한 선비의 육수

 

그럼 어디 냉면 먹어본 얘기 좀 해 볼까. 비록 좁은 견문이나마 내가 먹어 본 중, 가장 평양냉면 같은 평양냉면을 만드는 집은 서북면옥이다. 소위 말하는 4대 면옥, 5대 냉면집은 아니지만 60년이 넘게 한 곳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온갖 음식점이 별빛처럼 명멸하는 시대에 보통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을 일이다.

 

 

 

 

서북면옥은 구의동 귀퉁이에 조그맣게 버려지듯 놓여있다. 90년대 초반에나 달았음직한 초라한 간판을 어떻게 알아보고 오는 건지 식당에는 매일 사람이 바글거린다. 목요일 저녁도 마찬가지다. 낡아빠진 점포는 휑한 실내에 촌스러운 테이블, 뒤뚱거리는 의자 말고는 딱히 인테리어랄 것도 없다. 볼 것도 없다. 다만 벽에 조잡하게 붙어있는 ‘大味必淡(대미필담-가장 좋은 맛은 반드시 담백한 것이다.)’라는 문구만 시선을 잡아끈다.

 

 

 

 

처음 이 집 냉면을 먹었을 때, 머리가 뎅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풍덩. 찬 물을 기대하고 다이빙을 했는데 웬걸, 발바닥에 마른 수영장 바닥이 닿는 느낌이다. 맛이 느껴질 자리를 지나쳐가는 심심한 국물에 어안이 벙벙했다. 비주얼도 심플 그 자체. 하얀 무채 몇장, 양지 고명, 삶은 계란 반개에 면 한 덩어리 뿐. 하지만 아무 자극 없이 목구멍을 쭉 따라 넘어가는 국물은 놀랍도록 깨끗하다. 뒷맛으로 초봄의 산들바람 같은 육향이 혀끝을 잠시 머물다 갈 뿐. 미원 몇 알 들어가지 않은 청정한 국물이 개운하다.

 

‘중용’ 읽다보면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만난다. ‘홀로 있을 때 삼간다’는 말이다. 골방에서도 책 읽는 선비는 허리가 곧다. 의복은 남루하나 기개는 청청하다. 서북면옥의 냉면은 청빈한 선비의 냉면이다. 가난하나 정성을 다하자 문리가 터지듯 맛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다른 음식은 냉면만큼 좋지 않다. 딱딱한 오돌뼈가 박힌 돼지 수육은 육즙이 빠졌고, 김치는 별 맛이 없다. 수육과 함께 나오는 무채만 좀 먹을 만하다. 사람 많을 때 가면 합석을 시키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겠지만 영 못마땅하다. 흥. 

 

별 다섯 만점에 별 넷.

 


#. 4 을밀대- 품격과 여유를 갖춘 소박함

 

내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냉면은 마포 을밀대다. 을밀대를 말하면 목이 마른다.
 
가난한데 표 안내기 어렵고, 부자인데 티 안내기 어렵다. 두 경우 모두 격과 여유를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서북면옥이 청빈한 선비의 육수라면, 을밀대는 검소함의 미덕을 잃지 않은 대갓댁의 육수다. 무명옷만 입고 저잣거리에 나서도 지체 높은 양반은 태가 나는 법. 냉면도 마찬가지다.

 

 

 

 

서북면옥에 비해 조금 기름지다. 가장 드라이한 서북면옥에 비해 기름지다는 것이지 부담스러운 고기맛을 말하는 건 아니다. 메밀면수를 많이 넣어, 비 온 뒤 풀냄새 스치듯한 메밀향이 먼저, 부드러운 육향이 뒷맛으로 남는다. 그릇의 내부는 서북면옥보다 조금 더 호사스럽다. 무채에 오이채, 배 조각과 제법 푸짐한 양지고명, 삶은 달걀 반쪽이 들어간다. 가격은 10000원으로 비싼 편인데, 푸짐해서 섭섭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을밀대는 재료가 좋다. 깨끗한 물을 쓰는지 거슬림 없는 국물이다. 이 집이 담아내는 가볍지만 깊은 맛을 몇 글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궁색한 시절 도스토예프스키를 불러 한 사발 사멕이면 책 한 권쯤은 써 줄 수도 있을듯. (그는 원고료를 많이 받기 위해 한 장이라도 더 쓰려고 기를 썼다.)

 

이 집은 나 말고도 칭찬하는 사람들은 줄을 섰으니 짧게 쓴다.

 


#. 5 대동관- 담한 것과 맹한 것

 

 

 

http://www.siksinhot.com/P/263230

 

평양냉면의 허심한 맛이 유행하다 보니 비슷하게 흉내 내는 집들이 많이 생겼다. 그저 밍밍하게 간을 해서 메밀국수를 대강 말아 내 놓는 집들이다. 좋은 옷을 입어도 알맹이가 없으면 아름답지 않다. 일산의 대동관이 그렇다. 가게는 크고 시설도 좋지만 냉면은 그냥 밍밍한 국수일 뿐이다. 담한 것과 맹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평양냉면 대동관'이라고 써 있긴 한데, 평양냉면 보다는 '어복쟁반'이 메인인 듯.

 


#. 6 청량리 평양냉면- 이만하면 충분하다

 

청량리 경동시장 입구에 가면 이상한 냉면집이 있다. 낡아빠진 건물 2층의 시장통 냉면집. 테이블 서너 개에 바닥에 퍼질러 앉는 자리 두어 개 뿐인데. 고양이까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분위기? 근 20년 내에 이런 음식점은 본 일이 없다. 마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한다면 세트로 쓸 법 하다.

 

 

 

 

가격도 20년쯤 후퇴했다. 냉면 7000원에, 수육 6000원. 냉면보다 싼 수육은 처음 본다. 생각해보니까 만원 하는 서북면옥보다 오히려 양도 많은 것 같다. 인심 하나는 좋다. 맛은 오묘하다. 국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딱 알아챌 수 있다. 미원도 넣고 다시다도 넣는다. 그런데 그 맛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오십년쯤 전에 노인은 남편을 잃었다. 군대에 간 남편은 맞아죽었다. 치약을 짜 먹는 배고픔에 시달리던 몸으로 골병을 이길 수 없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올거요.’그런 시시껍적한 말만 남기고 남자는 갔다.
 
노인은 서른 살이 되던 해, 여덟 살 여섯 살 난 새끼들을 떼 놓고 서울로 왔다. 동생들 학교 보내느라 정작 본인은 숫자를 배울 수 없었다. 버스 표지판도 못 읽어서 용산에서 경동시장까지 팔 물건을 머리에 이고 걸어 다녔다. 그래도 하루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는 성실함으로 돈은 제법 모았다. 그런데 그렇게 모은 돈을 어느 놈이 돈을 빌려가서 도망갔단다. 자식 대학 학비로 쓸 돈이었다. 아무리 쫓아다녀봤자 작정하고 숨은 놈을 무슨 수로 찾나.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니다 문득 몇 끼나 굶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시장 골목 냉면집에 들어갔다. “세상에, 그 냉면이 어찌나 시원했던지.”   

 

노인도 이런 냉면을 먹었던 걸까. 다른 곳 보다 조금 짭짤한 맛이 노인의 땀 냄새처럼 정겹다. 여름에 아무라도 들어와서 “아줌마! 빨리 냉면 한 그릇 주세요!” 하고는 후루룩 들이부어 땀을 식힐 것 같은 그런 맛이다. 어 시원하다. 하고 부른 배를 몇 번 두드리면 들어올 때 보다 조금 더 신난 발걸음으로 저 문을 나섰겠지. 

 

쟁쟁한 면옥 같진 않아도 또, 먹을 만한 맛이다. 아마 양지를 좀 삶고, 간을 보다 부족한 부분은 조미료를 넣어 보탰을 것이다. 그렇게 끓인 육수에 면수와 동치미 국물을 넉넉하게 섞고 부드럽고 두툼한 국수는 인심 좋게 크게 한 움큼. 싸구려 고명 몇 점 올리면 그런대로 번듯하다. 냉면이 이만하면 충분하다. 굳이 별점이 필요할까. 한 여름, 뜨거운 혓바닥을 식혀주기에 충분한 맛이다.


 

#. 7

 

식탐 없는 것 치곤 입맛이 예민한 편이다. 그렇다고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데, 간혹 선택권이 주어지면 면 요리를 고르는 편이다. 가장 선호하는 면 요리는 평양냉면이다.

 

오래 전, 압구정 강서면옥에서 처음 평양냉면을 먹었을 때 미각으로 놀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대단한 맛은 아니었으나, 조미료와 각양각색 진한 양념에 길들여진 내 혓바닥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식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 반전이 일어났다.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을 배재하고 가급적이면 투박해도 조용한 맛을 찾기에 이르렀다.

 

애써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지만 우연히라도 소문난 냉면집을 찾게 되면 들러보는 편이다. 명성보다 더 좋은 집도, 이름값 못하는 집도 있었다. 종종 괜찮은 곳을 발견하게 되면 끄적거려 볼까 한다.

 

덥다. 냉면 먹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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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6-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게 제가 얼마전에 친근한 이와 통화하면서 신독을 읊었는데, 여기서 그 단어를 마주치네요.

저도 최근에 평양냉면 먹고 뭔가 정신이 나가서 평냉투어 다녀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주변에 있던 친구가 냉친이 되어 같이 다니고 싶대요. 저는 면보다 밥을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평양냉면은 아마도 가장 좋아하는 면이 될 것 같아요. 우래옥 먹어봤어요? 아! 정말 좋았어요!!

뷰리풀말미잘 2015-06-07 17:01   좋아요 0 | URL
락방님 동양고전도 읽어요? 디박.

평냉투어는 뭐고 냉친은 뭐야 ㅋㅋ 우래옥 안 가봤습니다. (사실 그 집이 그 집인기 기억이 잘..) 다음에 기회되면 한번 가 보겠습니다. 냉명 땡기네요.

다락방 2015-06-07 17:05   좋아요 0 | URL
뭐래요 ㅋㅋㅋ 동양고전이 아니라 고등학교때 윤리 교과서에 신독이 나왔습니다. 고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안다고요.

웽스북스 2015-06-07 18:25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전에 신독을 생각했어요. 물론 저도 교과서에서 알았습니다. ㅋㅋㅋ

뷰리풀말미잘 2015-06-07 18:32   좋아요 0 | URL
와씨. 역시 배운 양반들은 달라. 저는 고등학교를 못나와서..

웽스북스 2015-06-0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밀대에서 이 글을 봅니다 :)

뷰리풀말미잘 2015-06-07 17:02   좋아요 0 | URL
을밀대는 지점마다 조금씩 맛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어디서 드셨나요? 맛있게 드셨습니까? :)

웽스북스 2015-06-07 17:35   좋아요 0 | URL
물론 마포입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목이 마르죠?

뷰리풀말미잘 2015-06-07 18:41   좋아요 0 | URL
꼴깍. ㅠ_ㅠ

웽스북스 2015-06-0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사람도 적어요)

세뇨리따 2015-06-0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백령도 냉면 드셔보셧나요? 가장 친한 친구 출신성분이 백령도라 종종 맛보곤 하는데 오히려 좀 무심하다 싶을 만큼 담담한 맛에 면이나 국물이나 개성이 강한데 덕분에 극명한 호불호가 갈린다더라는..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6-09 11:42   좋아요 0 | URL
헉. 백령도에도 냉면이 있었나요? 와,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지금 검색해 봤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웽스북스 2015-06-1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서북면옥 다녀왔어요. 국물까지 다먹고 옴! 만두는 좀 아쉽더라고요 ㅠㅠ

뷰리풀말미잘 2015-06-14 22:54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마니아 인정합니다! 저번주에 을밀대, 이번주에 서북면옥. 이제 왠만한 평양냉면집은 다 꿰고 계실듯. 웬디양님 냉면맛집 투어기도 보여주세요. 어디가 제일 맛있는 집인가요?

LAYLA 2015-08-27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 싶다...

뷰리풀말미잘 2015-08-27 12: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나도...
 

 

 

    

비비킹이 죽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떠나고 새로운 것들로만 채워지는 이 세계가 문득 낯설다.

 

내 사랑하는 것들의 시체 위에 지어질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울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열여섯 살 이었다.

    

 

When I first met you, baby

Baby, you were just sweet sixteen

First met you, baby

Baby, you were just sweet sixteen

You just left your home then, baby

The sweetest thing I'd ever seen

    

But you wouldn't do nothing, baby
You wouldn't do anything I ask you to
You wouldn't do nothing for me, baby
You wouldn't do anything I ask you to
You know you ran away from your home, baby
And now you wanna run away from old B too

 

You know I love you, baby
And I'll do anything you tell me to do
You know, you know I love you, baby
Baby I love you and I'll do anything you tell me to
Nothing in the world, baby
Babe, it ain't nothing
Nothing in the world I wouldn't do it for you

 

I just got back from Vietnam baby
And you know I'm a long long way from New Orleans
I just got back from Vietnam baby, oh baby
And I'm a long long way from New Orleans
I'm having so much trouble baby
Baby, I wonder, what in the world is gonna happen to me?

 

Treat me mean, baby
But I'll keep on loving you just the same
Treat me mean, treat me mean baby
I'll keep loving you, keep on loving you just the same
But one of these days, baby
You're gonna give a lot of money
To hear someone call my name

 

Yes, sweet sixteen baby, sweet sixteen
Yes the sweetest thing baby
Yes the sweetest thing I've ever seen
Ye, you know I'm having so much trouble, people
Baby I wonder, yes I wonder, baby I wonder
Oh, I wonder what in the world's gonna happen to me


 

1925. 9. 26 ~ 2015. 5. 14

Good Bye, Blues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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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와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기로 했다. 


..물론 형은 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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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5-04-2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인가요 누난가요?

뷰리풀말미잘 2015-04-27 08:47   좋아요 0 | URL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Mephistopheles 2015-04-27 18:57   좋아요 0 | URL
엥...?

뷰리풀말미잘 2015-04-27 20:16   좋아요 0 | URL
그래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세뇨리따 2015-04-2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일건 없어요. 관우도 유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릇을 보고 기꺼히 형이라 불렀죠. 말미잘님의 글의 행적을 따라서, ˝루리˝의 성별을 유추하자면 상남자쯤이에요. 밥샵 옆에선 사진은 귀엽지만, 그 옆에서면 안귀여운게 탈인간의 기준이니 논외죠.

호탕한 형님 하나쯤 둬서 나쁠게 없죠. 코에이가 정의한 의형제의 기준에 의거하면
아직 두자리가 남았을테니, 저는 셋째 쯤.. 괜찮을까요?

저처럼 막내자리에 미련이 있으시다면 공동 둘째정도로 타협해 드릴 여지는 있어요.

2015-05-03 02: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쓰려고 컴퓨터를 몇번 재부팅 했는지 모를실거에요. 맛이 가 버려서. 그나마 코어가 I7이니 망정이지 부팅 한번 하는데 오분 씩 걸리는 옛날 아수스 노트북 같으면 그냥 부숴버리고 텔레파시로 대체했을겁니다. 믿으시나요, 텔레파시. 전 믿는 편입니다. 텔레파시는 외계인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거랑은 다르죠. 암요. 아, 왜 스마트폰으로 댓글 달 생각을 못했냐고요? 저는 모바일 세계에서는 아주 과묵한 편.. 이라기 보다는 엄지가 네모인지. 하도 오타가 나서 도저히 뭘 쓸 수가 없거든요. 요즘 양반들은 손가락에 모터들을 다셨는지.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도원결의 하실래요? 좋습니다. 피 막 섞어서 청룡언월도로 막 휘휘 저어 마셔요. 그 왜 오렌지 쥬스랑 뭐랑 섞어서 드라이버로 저어 마시는 칵테일 있죠? 그것처럼. 히히. 하지만 전 한잔만 마실래요. 일단 술이 익덕이나 운장급이 아니에요. 소박한 주량입니다. 아, 그리고.. 음.. 싸움 잘 하세요? 제가 동생이 된 걸로 봐서 저희 의형제 순서는 아마 주먹 순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루리보다 동생이 될 일이 그것 말고는 많지는 않거든요..

딱히 막내자리에 욕심이 있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첫째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음.. 저는 사실 평화주의자이고, 인류애에 근거해서 모두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요. 하지만 루리를 포함해서 저보다 쎈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건 그렇고, 왜 유비, 관우, 장비는 넷째를 맞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전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셋이라는 숫자는 사실 아주 안정적에요. 대체로 모든 지지대는 다리가 세개입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기본 구도는 삼각구도죠. 셋이 넷이 되려면 훨씬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니깐요. 성부-성자-성령, 성춘향-이몽룡-변학도, 캔디-안소니-테리우스. 뭐 하나 더 추가되면 이상하죠. 넷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드문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성춘향-이몽룡-변학도-향단이 이건 좀 아니잖아요. 심지어 좀 불순하고 낮뜨거운 막장으로 전개될 여지가 보이기도 하는군요. 흠. 향단이라.

이 빈약한 근거로 북도 치고 장구도 쳐 볼까요? 자, 왜 그들은 넷이 아닌가. 중요도도 높고 한솥밥도 오래 먹은 조운이나 공명을 끼워서 넷을 만들수도 있었을 텐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넷부터는 형제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그건 조직에 가깝죠. 왤까요? 아무 목적 없이 넷을 뭉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생긴다면 넷도 가능하지요. 목적을 가진 형제라. 그건 이상하잖아요. 목적을 가진 인간이 넷이나 모이기 시작하면 이상한게 막 생기지 않던가요. 위계나 강령같은 것들. 어떤 한심한 동아리 나부랭이도 강령이나 못해도 규정 몇 줄 정도는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 넷 이상 모이면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나봐요. 그게 뭔 모임이든, 조직이든, 심지어 국가든. 조직 자체가 싫다기보다 결국 무리를 지으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하이어라키가, 얼비치는 권력의 실루엣이 짜증이 나는 겁니다. 막 두드리다가 생각나는건데 우리가 늘상 써대는 오빠, 언니, 형, 누나 이런 말들도 혈연-조직의 하이어라키를 나타내는 표현 아닌가요? 일단은 친근감의 표현이겠지만 예컨대, `언니, 여기 반찬좀 더 주세요` 이런 표현의 기저에는 `니가 언니고 나는 동생이니깐 네 사회적 서열을 훼손할 생각이 없어. 비록 내가 널 부려먹고는 있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안심하고 반찬이나 더 갖고와. 이년아.` 이런 심리적 층위가 있는거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제가 주변의 닝겐들에게 나이건 뭐건 상관없이 저를 그냥 이름으로 부를 것을 강권했던 모양이군요. 사회에서 다만 단독자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이름의 어감을 사랑하지만, 이름조차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온전히 제 것은 아닙니다. 세뇨리따님은 제 아바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뷰리풀말미잘, 그/그녀에게는 성별도, 직업도, 가문도 없습니다. 제가 만든 것이고 그래서 더 오롯한 저니깐요.

이제 졸려요. 하루만에 목포까지 다녀왔거든요. 밥 한그릇 먹으러. 이 장황한 댓글은 그 피곤의 여파일 겁니다. 저는 대체로 두개의 댓글을 쓰고, 긴 녀석을 버리죠. 오늘은 짧은 걸 쓸 기력이 안 됩니다. 제가 주절거린 말은 잊어주세요. 잠투정이었으니깐.

4444번 택시를 발견하시면 타고 잠실로 오세요.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결혼을.. 아니, 코에이 스타일로 술잔에 피를 섞어서 장팔사모로 휘휘 젓어 홀짝거리며(술 약하다니까요) 형제의 의를 논합시다. 첫째는 주먹으로 정했고, 셋째는 뭘로 정할까요. 섹시함으로 승부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제가 자신 있는게 그거 하나 뿐이라서.

세뇨리따 2015-05-0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휴대폰으로 글 쓰는게 참 싫어요.
100 바이트를 넘어가면 손에 쥐가 나기 시작하다가, 기어이 스스로 빡쳐서 바닥에 쳐 박히는 것은 제 휴대폰들의 통과의례거든요.. 그래서 늘상 액정이 남아나질 않나봐요. 큼지막하고 강인해보이는 균열 한두개는 있어야 비로소 내 폰이구나 싶죠. 혹자는 제가 촌스러운 체질이라 신문물과 안맞는다고 하지만.. 하, 웃기지 말라죠. 터치감은 애플이 잘만든다지만 충분히 크지 않고, 타사 제품들은 영.. 그들이 개선할 필요가 있는거지, 제 크고 아름다운 손은 죄가 없죠.

도원결의 한 그 형제들의 서열 기준은 `도량` 이었죠. 우리에게도 적용한다면, 저는 반드시 막내가 되겠네요. 저는 좋지만, 조금 진부하다 하시면 당초 우리의 연줄이 돼버린 필력 은 어떨까요? 음, 이건 너무 노골이었네요 ㅋㅋ. ˝싸움˝ 이요? 간디 이래 최고의 평화주의자인 메이웨더도 제 평정심에 비하면 폭군입니다. 오죽 자다가도 물방울 소리에 놀라 깨는 새가슴이라, 운동은 하고 있지만 풋웍과 가드, 헤드웍 등 수비에 상당히 치중한 스타일이 돼 버렸죠. 아름다운 말미잘님 본인도 강력히 평화주의자라 자평하시고, 우리가 싸우면 팩맨vs머니의 싸움 이상의 세기의 졸전이 될 것이니, 화끈한걸 좋아하시는 루리의 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택은 아니겠네요. 다만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이것도 제가 막내일겁니다.
-행여 오해하실까 못을 박아 두자면, 저는 웨더의 엄청난 열혈팬입니다. 그리고 이번게임은 상당히 제취향이었고 아주 흥미롭게 봤죠. 그 디펜스 테크닉과 카운터는, 복싱만 놓고 보자면 제 이상형의 스킬이거든요. 하지만 그런걸 떠나서.. 전 언제나 악당의 열렬한 팬이니까요. 모든면에서 완벽한 팩맨은 영, 궁합이 안맞아요.-

하지만, 섹시함이요? 휴, 이것은 좀 곤란하네요. 전 모든면에서 자신있어도 뷰말님께는 도량과 필력 싸움 모든 면에서 패했지만, 섹시함만은 도저히 질거란 생각이 안들어요. 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가 강하고, 또 즐기는것을 좋아해서 뷰말님 서재를 페이보릿 해놓고, 거울을 끼고사는 남자죠.

제가 충분히 섹시하지 않았다면,
전 회의감에 소시오패스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아름다운 말미잘.`
 

 #. 1

 

꿈을 꿨다.

 

나는 상단 간 무역을 보호하는 용병이었다.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라크의 티그리트나 팔루자쯤 되는 무역도시였다. 어느 날 상단의 상선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도착한 물건들을 받아 하역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지프차가 몇 대 다가왔다. 뭐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순간 탕! 하고 저 편으로부터 총알이 날아왔다. IS인지 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우선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황급히 소총을 들고 저 편을 조준하는 찰나, 두두두두 소리가 들리며 등 뒤의 석조계단에서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헉, 이건 5.56mm가 아니다. 최소한 7.62mm. 기관총이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상인과 민간인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나는 대응을 포기하고 계단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기관총을 상대로 고작 머리를 가리다니. 스스로를 힐난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내 옆의 청년이 흐느꼈다. 그가 동료였는지, 상단의 선원이었는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곁눈질로 본 외모만은 또렷하다. 장발에 굽슬굽슬 탐스런 머리칼. 야, 임마 지금 울 때가 아니잖아. 고개라도 숙이라고. 난 한심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쟤가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나?

 

다시 총알세례가 주변을 훑고 지나갔고 난 더 납작 엎드렸다. 그 와중에도 그의 울음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가만, 그런데 그 소리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공포가 아니라 비탄의 농도가 아주 높았던 것이다. 북 밭치는 슬픔을 게워내는 그런 종류의 울음이었다. 뭐지?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Jesus.

 

그는, 예수였다.

 

별 거룩한 개꿈을 다 꿨네.

 

 

#. 2

 

생각해보면, 예수는 종종 울었다.

 

나사로의 죽음을 대하여 울었고, 사랑을 주었으나 그 사랑이 외면당할 때 울었고, 인간으로서 삶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서 울었다.

 

그는 내 꿈에서 또 울고 있었다. 하긴, 내 무의식의 세계에는 사랑이 없었고, 오로지 죽음과 위기만 가득했던 것이다.

 

예수의 최대 아이러니는 영원한 생명(비유든 상징이든 믿음이든 간에)을 소유했음에도 이 유한하고 볼품없는 삶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것에 있다. 그는 신성을 가졌으나, 인간으로서의 구차한 삶을 끝내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이었다.

 

사람다운 예수의 모습은 예수 사후에 근접한 문서일수록 더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사후 오랜 시기 후에 형성된 문서일수록 가필되고 채색된 느낌이 강하다. 사후 90~100년에 편찬된 요한복음은 그야말로 요란하다. 태초에, 로고스에, 빛과 어둠까지 등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으로 편집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 사후 60여년 경 작성된 누가복음은 로마 코스모폴리탄의 관점으로 쓰였다. 누가복음보다 20년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태복음은 유대교의 지평에서, 거기서 또 20년쯤 더 이전으로 소급하는 마가복음에는 갈릴리 지평에서 예수를 조망한다. 요한복음에서 마가복음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예수의 모습이다.

 

마가복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수 사후 40여년경 성립된 경전이다.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도 한 세대 전의 일에 깜깜한데 그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래서 학자들은 예수의 모습에 가까운 더 선대의 자료를 찾아 헤맸고 '마태'와 '누가'에 포함된 '마가자료'를 소거하고 남은 공통된 예수의 어록에 주목했다. 아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편집자들이 참고한 예수의 어록 자료가 있지 않을까? 성서문헌학자들은 이 것을 Q자료라고 불렀다. (‘Q’는 Quelle, ‘자료’라는 말이다.)

 

그러다 지난 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다. 퇴비 찾던 농부가 발견한 이 꾸러미에는 ‘도마복음’이 포함되어 있었고 도마복음은 학자들이 추정했던 Q문서의 35%를 포함하고 있었다. 다소 이견이 있으나 도마복음의 성립연대는 마가복음의 성립연대인 예수 사후 40여년보다 10~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이 아니라 진짜 예수를 만난 자가, 예수의 입에서 나온 진짜 얘기를 실제로 적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문서가 나타난 것이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말한다. “너희가 살아있을 동안에 살아있는 자를 주의 깊게 보라. 죽어서는 아무리 살아있는 자를 보려고 하여도 그를 볼 수 없을 터이니.” 소박한 그의 이야기에는 허망한 과거도 허황된 미래도 없다. ‘지금’, ‘여기’,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 ‘현실의 지평’에서 쓰인 몇 장의 문서는 철학적 거대담론도 가필된 종교적 독선도 침묵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담담하게 ‘구원’ 그 이후를 질문하는 사람의 아들에게 오늘날 교회는 어떤 역량으로 무엇을 대답할 수 있는가.

 

도마복음과 Q문서의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도 아니고, 신화적 영웅도 아니다. 갓 잡은 생선 살처럼 날 것 같은 얘기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싱싱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평온해지는 마음을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기성 교회의 기준에선 이단 심판 감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빌어먹을, 이천년이 넘도록 인류는 예수를 착취하고만 있지 않은가. 권력투쟁으로 간추려 모은 성서 꾸러미들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밀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해석을 강요해 왔다. 그들의 예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이고, 영생의 아이콘이다. 혹은 문화적 우월감의 상징이며, 또 돈벌이의 수단이다. 그의 이름을 간판처럼 걸고 국경을 나누고, 교파를 나누고, 심지어 인종을 나눠 싸웠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예수가 티그리트로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IS무리들의 학살 장면을 목도한다면,

 

물론, 울겠지.

 

 

#. 3

 

어제, 노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꿈 얘기를 했다.

 

“글쎄 그 남자가 예수였지 뭐야?”

 

노인은 조금 심드렁했다.

 

“그랬구나.”

 

삶은 계란 세 개가 식탁에 올라왔길래 물었다.

 

“근데 웬 삶은 계란이야?”

 

약간 한숨 섞인 목소리.

 

“부활절이잖아.”

 

.. 오.

 

 

#. 4

 

오래, 그를 떠나 있었다.

 

앞으로도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도마복음의 그는 말한다.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Juses said, "Be passersby")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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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7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그를 떠나 있었다.
크- 시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15-04-07 07:38   좋아요 0 | URL
락방님 앞에서 제가 시를 논한다면 문둥이 앞에서 고름짜는 격이겠죠.

아무개 2015-04-07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인은 별로입니다만
신앙인은 참 멋찝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4-07 10:18   좋아요 0 | URL
아멘. : )

무해한모리군 2015-04-0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아멘

뷰리풀말미잘 2015-04-08 22:37   좋아요 0 | URL
어떻게 변했을까. 뵌지 오래됐네요. 휘모리님은 아직 방랑자의 마음으로 살고 계시나요? 저는 점점 더 머물러 있기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4-20 10:32   좋아요 0 | URL
늙었죠 뭐... 우리 약속 잡읍시다.. 정말정말 도망가고 싶은 나날이네요.

뷰리풀말미잘 2015-04-21 07:56   좋아요 0 | URL
좋아요!

2015-04-22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1

 

바이킹을 타기엔 겁이 많았고, 공중 자전거는 시시했다. 나는 대관람차가 좋았다. 새 이빨이 잇몸의 빈틈을 차곡차곡 메워가던 무렵이었다. 문을 닫아 세계와 분리되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현실과 유리되는 작은 통. 왕이 다 무어냐.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오크통에 웅크린 디오게네스처럼 그 안에서 나는 단독자였고, 유일자였고, 객관자였다.

 

떠오른다. 레고 같은 세상의 조각들이 나의 자궁 밑으로 무한히 유출되고, 두근두근, 하늘에 오르사 전능한 존재가 된 듯 충만감이 허파에 가득 차오른다. 행복, 내가 자주 도달하지 못했던 단어를 떠올릴 때 쯤, 꼭 그때 쯤 관람차의 궤도는 바닥으로 폐곡선을 그린다. 속도는 1cm/s만큼의 에누리도 없이 차오를 때와 동일하다. 아아, 나는 다 가졌던 고도를 다 빼앗기며 초침처럼 차근차근 떨어지는 것이다. 세상으로, 떠나온 번잡함으로.

 

다시.

 

유년시절의 관람차가 오름의 덧없음과 소유의 무상함을 가르쳐줬다면, 음모가 다 자랐을 무렵 그곳은 비밀스런 음모의 온상이었다. 4분 혹은 5분. 관람차의 운행시간은 라면 하나 끓이기에 충분한 시간. 서로의 몸 냄새가 뒤섞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설익은 나의 빨간 혓바닥을 그녀의 귀에 굴려 넣는다. 하악- 그리고 입술을 조물거려 만들어낸 농밀한 언어들을 그녀의 가장 섬세한 기관으로 불어넣는다. 관람차는 날아오르고, 그녀는 달아오른다.

 

오, 관람차는 보통 놀이기구가 아닌 것이다.


 

#. 2

 

지난 가을 고베항을 걷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난 우산이 없었고, 막차 시간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길을 질러가는데 별안간 관람차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뭐야. 나는 고개를 들어 관람차의 회전축을 노려봤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였다. 와따시노 운메가. 너를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오사카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관람차는 고고하게 빛을 뿜어내며 자, 타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쳤고, 설상가상으로 왼쪽 무릎까지 앓고 있었다. 그냥 탈까. 잠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미 너를 떠난지 오래. 언제까지 쳇바퀴만 돌 수는 없어. 이제 네가 내 안에서 허공을 맴 돌 차례다. 너를 소유하겠어!

 

관람차는 삐걱삐걱 웃었다. 그리고는 새를 노리는 타란튤라처럼 모든 관절을 굽히고 나를 노려봤다. 음, 이 새끼. 쉽게 물러설 생각이 아니구나. 나는 쪼물락쪼물락 미니 삼각대를 설치하고, 다이얼을 돌려 셔터스피드를 맞추고, ISO를 세팅했다. 조리개 개방! 내 여기서 한 줄기 마법진으로 너를 맞으리.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관람차는 빛을 번뜩거리며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센 풍압이 코앞까지 밀려왔다. 우리는 서로를 갖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찰-칵. 찰-칵.

 

흔들리고,

 

 

 

 

노이즈가 끼고,

 

 

 

 

색이 들뜬다.

 

비가 머리칼을 적셔갈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다.

 

구도를 잡고, ISO값을 조절하고. 셔터스피드를 30초에 맞췄다. 나로서는 가능한 최대의 셔터스피드였다. 셔터가 떨어지는 내내 초침과 초침의 거리는 아득했다. 마나가 고갈되기 시작했고, 단전에서부터 빈 기운이 올라왔다. 쿨럭, 이대로라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아. 도와줘 현승희! 나는 그 순간 얼핏, 나의 은인이신 도혜선사의 혜안을 뵈었던 것도 같다.    

 

저편 항구에서부터 파도 소리가 몇 번 들리고. 셔츠 두께를 너머 전해지던 그의 훈훈한 체온과 , 촉촉하고 오돌도돌했던 입천장의 촉감과, 오래 망설이다 기어코 타지 못했던 브리즈번의 빅밴과 그 모든 기억들이 수레바퀴처럼 마구 회전하며 카메라의 센서에에 빛의 구체를 맺어갔다. 주문의 영창이 빨라질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심지어 기독교도 아닌데, 어쨌거나 오오라가 짙푸른 녹색의 광휘로 온 몸을 휘감았다. 

 

황혼보다 찬란한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선명한 자여. 영겁의 회절속에 구속된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걸고 나 여기서 딱히 별 의미는 없이 맹세하노니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리석은 알라디너들에게 나와 그대가 힘을 합쳐 위대한 사진의 힘을 보여줄 것을. 도마키사라무, 자하라독시드, 지크가이프리즈. 돈 값 좀 해라 이 쪽바리 렌즈야.

 

나는 이를 악물어 최후의 진기를 짜 냈다. 진기는 단전으로부터 시작해 중부혈과 경문혈, 견정혈, 양계혈, 천주혈을 돌고는 늘씬한 검지손가락 끝에 눈부신 빛으로 맺혔다가 셔터의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찰-칵-

 

 

 

 

 

#. 4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던가.

 

관람차를 타지 않게 된 것은.

 

세계와 분리될 용기를 잃어갈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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