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잎사귀들이 소스라친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노출을 계산하는 사이에 어둠이 창공을 할퀴고 지나간다. 해가 하늘 모퉁이로 몰렸다. 아직도 적절한 농도의 어둠은 아니다. 그렇다고 뷰 파인더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왠지 부정한 일 처럼 느껴진다. 기다린다. 초조하다. 땀이 흐른다. 땀이 흐른 자국을 피해 작은 벌레가 눈썹 위를 천천히 기어간다.  

그리고 보면 타이밍은 늘 그 엇비슷한 속도로 다가온다.  

그것은 항상 인내심이 멀어지는 것 보다 조금 빠른 속도다.   

09. 06. 17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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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19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한 말미잘님이 보여주는 세상은 참 멋지구나.

뷰리풀말미잘 2009-06-19 11:04   좋아요 0 | URL
우울하고 씁쓸하지 않나요. ^^ 멋지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Mephistopheles 2009-06-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장마 시작이랍니다. 말미잘 촉수에 수분을 듬뿍 머금는 장마시즌 되시길...

뷰리풀말미잘 2009-06-19 11:05   좋아요 0 | URL
어쩐지 공기가 눅눅하다 했어요. ㅠ_ㅠ 휴.. 비 싫은데.

Forgettable. 2009-06-1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스름한 저녁에 선유도에서 누구랑 데이트를? +_+

뷰리풀말미잘 2009-06-19 11:08   좋아요 0 | URL
늦깍이 폭주족이요. ㅋㅋ

다락방 2009-06-1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게 말미잘님의 하늘이구나!

뷰리풀말미잘 2009-06-19 15:35   좋아요 0 | URL
맑고 쨍한 하늘도 좋지만 낮과 밤이 질펀하게 뒤섞이는 그 순간의 하늘이 더 좋아요. 뭔가 찌릿한 긴장감이 있거든요. 아주 어렸을때부터 해질녁에 나가 노는 걸 좋아했어요.

2009-06-23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세상에 정상적인 하늘 같은 건 없어. 제 멋대로인 하늘만 있지.  

- 응.  

- 사랑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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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9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9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30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1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1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2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2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으로 산책을 했다. 어둑어둑한 저녁, 게으른 밤 고양이처럼 눈을 뜨는 가로등 사이로 오래 걸었다. 실타래 같은 골목길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뒤엉켜 새 길을 열었다. 나는 길 사이로 내 몸을 밀어냈고, 서릿발 선 찬 공기와, 낮 모르는 사람들과, 본 적 없는 주택단지들이 내가 몸을 밀어내는 속도로 다가왔다.

송곳 낫으로 고등어 아가미를 퍽퍽 찍어대는 아저씨의 어물전과, 갓 구워낸 식빵을 파는 빵집 앞에서 머뭇거렸다. 잡화점에서는 플라스틱 다라이와 밀폐용기, 다림질 판 머리를 샀다. 노점 구둣방에서는 망가진 구두를 고쳤다. 망치와 작은 모루로 금방 구두를 고쳐준 아저씨는 돈을 받지 않았다. 희끗 거리는 머리에 툭툭 불거진 팔 힘줄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시장을 지나 커다란 은행을 끼고 한 바퀴를 빙 돌았다. 밤은 깊었고, 나는 길치라 돌아가는 길을 되짚어 갈 수 없었다. 집이 있는 방향을 짐작해 그 쪽으로 무작정 걸을 뿐이었다. 꼭 집이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헤맨다는 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니까.

그래, 그건 정말로 사소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아주 긴 헤메임의 과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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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8-03-0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셨나요?
저도 길치이므로, 가는 길마다 빵가루라도 뿌려놓고 싶은 지경이에요. 고로, 직선으로 가거나 기억하기 쉬운 상점들을 외워둬야 해요. 저는 그런 헤메임을 굉장히 불안해 하거든요. 아무리 많았던 불안도, 또다른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나봐요. 그 곳과 빨리 친해지세요.
그리고 주말 잘 보내세요~^^

뷰리풀말미잘 2008-03-09 10:06   좋아요 0 | URL
네, 어쩌다 보니 사는 곳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얼마전까지는 대저택에 살았는데 지금은 옥탑 단칸방의 주민이 되어버렸답니다.^^ 빵가루는 새가 쪼아먹기 쉬우니 자갈을 한 주머니 준비하는게 좋겠어요. 하나씩 되 주우며 돌아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군요. 상점 외우기 스킬은 저도 열심히 시전하는 중입니다. 이게 다에요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Mephistopheles 2008-03-0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래시장 풍경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제가 사는 곳 건너편에 있는 재래시장도 사진 속의 모습과 그닥 틀리지 않으니까요.^^ (설마...우리 동네는 아니겠죠?)

뷰리풀말미잘 2008-03-09 10:19   좋아요 0 | URL
서울에 재래시장 남아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은데.. 라고 생각했으나. 검색해 본 결과 아직도 꽤 많은 재래시장이 남아있네요. 25개 구 중에서 강남구, 강북구, 강서, 관악, 광진, 구로, 마포, 성동, 성북, 양천, 종로, 중구, 중랑. 이렇게 13개 구에 재래시장이 있답니다. 메피스토님과 제가 같은동네에 살 확률은 대충 1/169이네요.
 


송어

모네의 후기작을 연상하면서 찍었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노회한 화백의 눈은 분명한 사물의 경계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가 볼 수 있는 건 흐릿한 초점 속에서 강렬한 햇볕 사이로 뒤채여 이지러진 풍경. 그 속에서 가물가물 피어나는 하얀 연꽃의 신비함.

식스센스의 그 꼬맹이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 만 본다. 예술가가 범인과 다른 건 보고싶은 것을 주관이 아닌 객관의 범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주관을 객관의 객관성을 뒤집는 주관으로 표현해 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네를 아는 사람은 '수련'을 떠올릴때 모네의 '수련'이 다른 수련의 이미지를 지배한다. 그것이 인상파의 거장, 모네의 수련이다.

모네의 작품은 유니크하다. 그래서 모방은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작품이란 없다. 누구나 그런 모네를 따라할 이유도, 방법도 없다. 나도 그렇다.




이지러진 여울 속으로 아릿하게 보이는 송어떼는 사실 모네의 모방이 아니다. 저것은 햇볕의 이지러짐을 사용한 '인상'이 아니라 물결의 이지러짐을 사용한 '인상'이다. 물론 초점을 물결에 맞춰 송어떼 자체의 이미지를 잡아 낸다는 발상 자체는 모네의 유산이다. 유식한 말로는 영감이라고도 하고 모티브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왠지 써 놓고 보니까 쑥쓰럽고..

송어는 예쁘다. 늘씬한 유선형의 몸통에 부드러운 지느러미. 그것들은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를 추스르며 물 속을 휘젓는다. 온통 황금빛으로 채색된 수조는 모네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살아 움직이는 한 폭 유화가 아닌가. 게다가 모네의 그림은 뜯어 먹을 수 없는 반면, 이 화폭의 그림은 맘껏 뜯어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거. 송어- 킬로그램당 단돈 2만원. 모네의 그림- 킬로 그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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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1-1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미잘님. 저거 사진이에요? @ㅁ@

뷰리풀말미잘 2008-01-10 20:37   좋아요 0 | URL
네, 강원도 송어양식장에서 찍었어요 ^^

자발적실업자 2008-01-1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져.

뷰리풀말미잘 2008-01-13 23:30   좋아요 0 | URL
으헤헤-

Artois 2008-05-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미잘님, 미술엔 많이 약하시군요. ㅎㅎ
그리고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처음 했던 말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8-05-14 10:49   좋아요 0 | URL
헉... 님, 제 빈곤한 교양수준을 한 눈에 간파하시다니.. ㅠ_ㅠ 부끄럽사옵니다. 그 말이'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이었군요. 삐질삐질..

Artois 2008-05-1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우연히 지나다, 너무 훌륭한 글솜씨에 반해 이렇게 놀다 갑니다.

뷰리풀말미잘 2008-05-14 10:55   좋아요 0 | URL
아르투아.. 님이시죠? ^^ 이제서야 댓글을 다네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의 등장? 다시한번 알라딘에 피바람이 불 듯한 예감입니다.. 쿡쿡.. 자주 놀러오셔요..
 

 

떼지마라 너희에게 그럴 권리는 없다.

 

-성신여대 레즈비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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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6-07-3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심이 많으신 님/ 참 당차고 씩씩해 보이기는 하는데 안타까운 건 아직도 우리나라 성적 소수자 운동이 적극적 주장보다는 소극적 방어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그게 왠지 좀 찜찜하네요.

뷰리풀말미잘 2006-07-3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군요. ㅡ_ㅡ 정말 어디가나 그느무 기독찌질이들이 말썽이네요.. 다른곳도 아니고 학교에서 그런 행패를.. 에휴.. 그 일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학교차원에서 징계를 받았겠지요? 주동자를 색출해서 목만 남기고 확 묻어버린다던가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처벌 말입니다.
학교에서 성적 소수자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우리학교만 놓고 봤을땐 양성적으로 들어난 움직임은 거의 전무하다 싶은 실정이구요.. 사회과학쪽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학생들의 성적 소수자 운동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낮은 수준이죠. 음.. 안타까운 일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6-07-3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여하튼 차별은 나빠요!

Mephistopheles 2006-08-0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안가는데도 불구하고
차별을 자행하고 소수를 묵살하는 행위는 왜들 할까요..??

뷰리풀말미잘 2006-08-0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 메피스토님.. 그렇게 어려운걸 물어보시다니;; ㅠ_ㅠ 저는 잘 모르겠구요 다우님이나 로드무비님이나 푸하님은 아실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