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라 -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김아인 지음 / 허블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4회는 <천 개의 파랑>이, 6회는 <라스트 젤리 샷>이 받았다.

에피네프라는 전염병이 창궐한다. 그래서 넷 중 한 명은 죽은 이후, 살아남은 미래인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지금이 AI의 시작인 시대라면 이 책 속 세상은 AE(Artificial Eden)가 진행중이다. AE, 이 기업은 인간의 뇌와 척수만으로 데이터화하여 갈 수 있는 세상을 창조했고, 현재 5억명이 조금 안되게 입주하여 유지, 보수하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 중 AE에 입사하면 에피네프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이 곳에서 죽은이들의 뇌와 척수를 제외한 “남은 신체인 ‘반송체’를 폐기하는 일‘(p.28)을 담당하는 웨이시안이 남주인공이다. 그는 이 전염병이 돌기 전 홍콩 염습소에서도 일했다. 그의 여자 친구 페이는 AE가 가짜천국임을 증명하려 파고드는 기자이다. 이 AE를 원하지 않던 페이가 강제입주 당했음을 알게 된 웨이시안은 육체를 동면시키는 방법의 로밍셀이라는 새 기술을 연구해낸 하라바야시 가스미와 함께 AE가 은폐하려는 일들을 밝히려 애쓰며 소설은 전개된다.

읽으면서 웨이시안의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에피네프 이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함께 영혼도 사라졌다. 그리고 추모가 있었다. 전염병 이후의 세계에서는, 육체는 사라지나 뇌와 척수가 남아 영혼은 AE의 세계로 이전되므로 추모의 의미가 상실되었다. 영혼이 분리된 육체를 마지막으로 추모하는 사람이 웨이시안이라는 의미이다. 그 많은 시체를 처리하던 남주였기에 죽으면 거기서 끝을 맺어야 한다는 페이의 이야기에 함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웨이시안의 성격이 애매모호한 이유다. 페이와 달리 웨이시안은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건 모르는 거야. 네가 남들 인생을 정하지 마.“(p.206)라고 마지막 부분에 이야기하기도 한다.(이후는 스포라 말을 못하겠음 읍읍) 나는 궁금하다. 하라바야시와 웨이시안은 죽음앞에서 뇌와 척수만 남길 것인지, 육체는 동면시킬 것인지. 아니면 AE를 선택하지 않을지.

신으로 불렸으나 수명이 유한하고 또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이 프로젝트의 개발자 라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의 애매함에 빠져들었다. AE가 능력있거나 특출난 이들을 강제입주 시키는 것만큼은 확실히 잘못되긴 했지만, 그거 빼고는 이 시스템의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하라바야시도, 웨이시안도 이 AE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계를 없애려는 황신부가 오히려 악의 축으로 보인다. 이 불확정성과 불안함이 이 소설의 아우라로 느껴진다. AE에서 빅데이터화되어가는 페이를 설득하기 위해 웨이시안을 보내는 전개라던가, 페이의 인격 데이터를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아네모네라는 꽃잎으로 표현하는 서정성은 덤.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동아시아 SF‘-한국인 작가가 썼고 주인공은 홍콩출신의 웨이시안이며, AE의 주요 기술은 일본인 여성, 하라바야시 가스미가 연구해낸다는 점이다. 홍콩이 지금은 반환되어 사라진 나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육체와 영혼에 대해 뼛속 깊은 유전자가 새겨졌을 웨이시안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설정이라고 상각한다. 그 밖에 ’에덴‘이라던가 ’스파이라‘와 같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유럽인 중심의 세계,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맘에 든다.

또 나는 개인적으로는 황신부 밑에서 일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폴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그런 유일한 권위라는 게 사람보다 중요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도나 형태가 수억 명을 부조리한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준 AE를 파괴할 이유가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AE와 종교, 두 개를 대척점에 위치시키며 이분법적 논리에 빠진 황신부를 구원할 폴을 응원한다. 폴이 벗어주는 외투를 입고 살아남은 웨이시안은 이후 더 용기있게 행동한다는 점에서도 마음에 진하게 남았다.

AI가 진행중인 오늘날을 생각해본다. 기후위기로 더 다양한 전염병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기사를 읽는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다. 불안함 가운데에서도 소중한 것(페이의 소원)을 지켜내는 웨이시안을 만난다. <스파이라>를 덮으며 ”현실로 돌아가는 문을 열었다“(p.207) 나 역시 내일이면 어떤 새로운 기술이 펼쳐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작지만 소중한 것을 지켜낼 용기를 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요즘은 시내의 중심가만 나가봐도 세계 여러나라의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탈리안 피자집, 미국 햄버거집, 마라탕집, 베트남쌀국수, 태국음식점, 인도인이 운영하는 식료품가게 등등. 이 음식들이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세계화의 추세를 따른 1990년대 이후부터일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구촌’, ‘세계화’라는 키워드를 섞어 그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는 광경이. (이게 32년전이라니......) 그 당시의 순진한 나는 UN이 세계와 우주를 지키는 줄로만 알았다. 세계화가 무력에 의한 결과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나!!!! 어쨌든 이 <향신료 전쟁>은 정향, 육두구, 후추 시나몬 을 향한 유럽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부제와 같이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가 덤으로 딸려오는 책이다. 어떻게 보면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운영하며 전쟁도 불사한 사업이야기일수도 있겠다. 향신료 뿐 아니라 튤립 종자도 이 회사에서 다룬 품목임을 떠올려본다. 대체 튤립이랑 후추가 뭐라고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엔비디아, 2차전지, 테마주에 어떻게든 투자해보려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과 그 당시의 사람들이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다.

1장 향신료를 찾아 대항해 시대가 열리다
2장 향신료 교역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3장 북방 향로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인가
4장 네덜란드와 영국의 향신료 전쟁
5장 피로 물든 향신료 제도, 승자는 누구인가
6장 세계로 뻗어 나가는 향신료의 모험
부록 알면 알수록 더 향긋해지는 향신료 이야기

*인간 사냥꾼 식인종 부족이 있다는 세람섬을 읽을 때는 아무래도 뉴기니 근처이다보니 단백질 부족으로 인해 식인의 문화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써있었던 <총, 균, 쇠>가 떠올랐다. 또 세부에 마젤란을 격파한 라푸라푸 동상이 세워져있다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백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중 런섬과 맨해튼섬을 맞바꾼 내용도 재미있었다. 마치 소련이 미국에 판 그린란드 이야기 같았다. 나는 6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정향, 육두구에 생소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종자 소유권 이야기나 그 유명한 목화씨를 문익점이 가져오기 전에 이미 목화를 재배하는 곳이 있었다고 하는 내용, 또 향신료 도둑(심지어 젊을 때는 신학을 전공한!) 피에르 푸아브르, 그리고 세계 3대 향인 용연향, 사향, 침향이야기와 나에게도 익숙한 호랑이 연고 이야기까지. 향신료 보따리 장수가 풀어놓는 갖가지 향에 도취되며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탐구정신에 감탄하며.

*뭔가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가 뼛속까지 DNA에 새겨진 저 유럽인들만 그랬을까? 성종이 후추를 좋아해서 종자를 구하려 애썼다는 짧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 옆이라 저 전쟁에 뛰어들지 못한건가, 먹는 것에 치중하는 모양새가 사대부 정신인 성리학에 맞지 않아서인가?

* 내일 마트가서 정향과 육두구 사올테다.(세계화로 좋은 점은 이런 편리함) 나의 생각이 이정도에 다다랐을 때 쯤에는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라는 호프 자런의 책이 떠올랐다. 따지고보면 이 모든 풍요의 시작이 더 맛있는 걸 먹겠다는, 이 향신료를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만 같아서.

* 이 책을 읽으며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책도 떠올랐다. 나에게는 최광용 저자가 나에게는 앞으로 최테판이다! 심용환 역사학자님은 띠지에 “우리의 지성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주셨으나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우리의 지성과 마음에 향과 풍미를 더하는 책”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순간 소설보다는 논픽션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확실히 비문학을 읽으며 사회를 보는 눈이 좀 더 다양해진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읽을 수 없어 좋고,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이 성립되지 않으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직면할 것을 요구받고 “그래서 너는?”이라는 열린 결말로 마친다. 이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이 딱 그런 책이다. 특히 매 장의 마지막 문단은 나를 18번(총 18장이다!!) 뼈를 때리고 심장을 조여댔다.

이 책은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이미 흑백의 물살 위에 핑크빛으로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글씨 다리가 세로축으로 그어져 있다. ‘연루’ - 저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메인 키워드다. 그는 자신과 우리가 역사에 연루되길 바란다. 나는 저자의, 메인 스트림이 아닌, 잘 몰랐던 열 여덟가지의 이야기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줄곧 들었던 건, 우리의 비참했던 역사를 잊지 말자, 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같은 강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연루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을 이 책을 덮으며 깨닫는다. 그러고 나니 이제 표지가 이해된다. 역사에 연루된다는 것은 저 파도처럼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물살 위로 흔들거리는 저 좁은 다리를 건너는 일이다.

우리에게 ‘역사’ 하면 옆 나라들에게 당했던 이야기들만이 분노로 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역사의 뒤안길에 우리가 회피했던 열여덟 가지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책제목과 관련된 콰이강 다리로 예를 들자면, 2차세계대전, 일본군인들이 사로잡은 영국인포로들의 노동으로 건설되었다는 그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필름 속에는 담겨 있지 않은 내용 – 그 포로들을 감시한 이들은 주로 한국인-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들은 포로감시원이라는 직업으로 일본인 밑에서 일했다. 그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은 일본인들보다 더 잔인하게 포로들을 다뤘다고 살아남은 영국포로들은 기록했다. 비록 그 한국인들도 일본 상사들에게 많이 맞았다고는 하지만, 그 악행이 심해 전쟁 후의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 받은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의 이야기를 다룬 파트가 충격적이었다. 그가 한국인들을 혐오하며 쓴 글들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중국인들을 보며 비하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싶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의 에레나가 된 순이, 팡팡, 나비부인, 미스사이공에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으로 한정된 역사가 아니라 이 세계에 사는 여자로서 연루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공포영화 뿐 아니라 잔인하다는 이유로 오징어게임도 안본 내가 과연 이 이야기에 연루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이미 같은 인간이고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연루되었다.

조형근 저자님의 통찰도 남다르다. 예를 들어 그의 아버지처럼 한국인이라도 그 시대를 살며 들었던 엔카는 일본인에게 엔카의 의미와 동일하다 느낀다. 이에 대해 “감수성의 힘은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의식의 힘과는 다르다. 손의 촉감으로, 몸의 리듬으로, 심장의 떨림으로 기억되기에 의식이 변하더라도 감수성만큼은 대개 질기고 오래간다. 종종 민족의식의 두꺼운 벽도 뛰어넘는다.(pp.68~69)”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런 부분을 읽으며 그래서 우리는 같은 인간종족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이끌린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엄격하게 보려 애써보고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에 연루되어 그 다리를 건너는 초입에 내가 서 있다. 내가 만약 이 다리를 건너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건넌 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는 강하다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행복식당을 운영하던 조끝순 여사의 손녀, 강하다가 주인공이다. 이 아이 “힘도 세고 달리기도 빨라서”(p.40) 참 대견한 고3 학생이다. 문해력이 좋고 수학을 잘 풀고 책을 좋아하고 등등 다 필요없었다. 건강하게 잘 달리는 이 아이 한 명이 할머니도 지키고 친구도 지키고 나이 어린 동생들도 지켜냈다.

소설 초반에 하다의 학교 경비원할아버지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학생에게 상해를 입혀 다들 우르르~ 집으로 도망가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이 다음날 정부에서는 “태전에 거주하고 있는 65세 이상의 시민에게 공격성을 띤 이상증상이 발생되고 있으며,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p.37)고 하며 65세 미만은 변이하지 않기에 도시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시민들은 봉쇄함을 발표한다. 하다의 어머니는 친구의 어머니 장례식으로 다른 도시에 가 있는 상황이었고, 조끝순여사는 75세였기에 태전을 나갈 수 없어서 하다는 외할머니와 함께 있기로 결정한다. 그렇다. 아포칼립스 장르다. 그래서 하다는 제목대로 달려야 하고 이 태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한다는 내용 맞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가 아는 그 장르 맞는데, 맞지만, 맞고요. 그런데 나는 이 장르를 로맨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하면 안전하지 않은 저 태전이라는 도시라 할지라도, 초대해준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하다와 함께하는 저 사람들과 아파트 옥상으로 소풍가는 멤버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밑에는 좀비가 다니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는 이 B급 감성이 넘 따듯-하다.

*인상적인 부분이 참 많았다. 봉쇄 당한 첫 날 할머니와 하다는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한국인이라면 다 끄덕끄덕하며 이해할 이 장면은 읽자마자 무슨 영화보듯 눈에 선했다.

또 “대충 동여맨 헝클어진 머리, 뭘 묻혔는지 얼룩덜룩 더럽혀진 반소매 티, 부르튼 입술과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 좀비를 가까이서 보면 이런 모습이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창백한 얼굴에는 생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p.71) 10층 애기 엄마의 좀비같은 몰골이다. 이 부분에서 빵 터졌는데 이건 진짜 육아를 해봤어야 알 수 있는 현실감이지 싶다. 갓난아기 보살피느라 도망가는 타이밍을 놓친 사정마저. 하다가 8살 지민이를 귀찮아하는 부분도 그렇다. 외동인 하다는 원래 까칠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보살피다보니 엄마를 이해하는 부분도 생겨 조금씩 성장하는 캐릭터, 하다이다. 그렇다. 이 아이이름은 동사진행형이었어!

이런 공동체를 꾸린 사람이 하다가 유일하지 않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동네 태권도 관장님이 간간히 달리는 하다를 도와주기도 하고 본인도 남겨진 아이들을 보살피는 중이다. 그의 아내도 꽃을 기르며 이 시국을 버텨나간다. 물론 차로 좀비 할머니, 할아버지를 치고 다니며 영웅행세하는 몬-난놈들도 있다. 어째서 65세 이상만 좀비가 되도록 작가가 설정해놓았는지도 생각해볼 지점이다. 이 책에서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노인들은 이 고립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문을 안열어주려 하고 어서 자신을 피해가라고 자식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평생 애써왔던 관성처럼 행동한다. 이 책에서는 현동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지하철 구석에 따로 떨어진 4개의 좌석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소리지르는 할아버지들을 좀비처럼 쳐다본 나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닻 내리기’(맨 처음 내린 판단이 이후 모든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 <섀도 워크 저널>에 나오는 생각의 덫 아홉 가지 중 하나이다)에 빠져 모든 노인들을 그렇게 예비 좀비로 바라본 게 아닐까 싶어서.
난 할머니와 자주 만날 일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가 좀 생경하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보면서 항상 부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시 한번 김청귤 작가가 부럽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끝순씨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손녀와 할아버지와의 사랑을 다 잡은!!!)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3월의 기사 중, 인공지능의 IQ를 측정했는데 Claud3 가 100을 돌파 했으며, 4년 뒤에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3년 후인 2027년이다. 이 책의 세계관 속 인공지능 발할라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로 아르카디아라는 유토피아를 창조해낸 상태이다. 인지과학자이자 인공지능, 메타버스 전공자이며 게이미피케이션인 김상균 작가의 설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Open AI, Discord, Midjourney 등등 오늘날의 인공지능업체들은 텍스트뿐 아니라 음성, 이미지, 동영상을 활용한 멀티 모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에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관련 직업군의 사람들은 파업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하룻밤만 자고나도 생성형 AI 회사들은 더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세상에 과시한다. 지금도 ChatGPT에 디테일한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걸맞는 이미지와 음악을 몇초안에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며 신기해죽겠는데 앞으로 3년 후면 오죽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시작도 ‘휴브리스’라는 강력한 단어로 시작한다. 나는 이 단어를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처음 접했다. 그 책에서도 초반에 휴브리스(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인간의 오만함을 뜻한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더 컴퍼니라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모호한 이름의 이 회사는 아르카디아를 운영하면서 ‘조작몽 동반 안락사’, ‘안면이식 동반 작화증 유도술’, ‘부분 마인드 복사술’, ‘트라우마 기억 재설정술’,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사람들의 기억을 재조정한다. 하나 하나 뜨앗하지 않은 상품이 없는데 그중 ‘브로카&베르니케 이식술’은 언어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상품이다. 여기서는 전자쓰레기 소각장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모으는 케냐 열 살 소년 키프로노의 영어능력을 한국의 부모가 원해 자신의 아이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더컴퍼니의 반대세력인 가이아의 도움으로 이 아이는 구출되지만 나중에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더 끔찍했다. 오늘날 분쟁지역의 아이들의 참상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한쪽에서는 아르카디아라는 만들어진 세계속의 테크놀러지를 다루지만 그 다른 끝에서는 여전히 전쟁으로 인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루를 버는 그런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할라의 아르카디아는 매력적인 세상이다. 이 세상의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함무라비 스타일로 안티고니아라는 감옥에 보내는 것도 언뜻 보면 정당해보인다.(사실 주인공이 하람이가 된 이유도 장교수 수업시간에 이러한 견해를 내비친 덕분)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악용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할 수도 있음을 장교수나 L(민지)을 통해 작가는 보여준다. 이런 부분을 읽으며 한참 말많은 디지털교과서의 도입문제가 떠오른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그것을 따라갈 것인가, 어느 정도 검증된 상태에서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르카디아도 마찬가지다. 잘만 써먹는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기술이지만 악용하면 정말 최악의 상황도 가능한 이 테크놀러지에 대해 우리는 좀더 윤리적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라는 점을 시사하는 책, <기억의 낙원>이었다.

p.s 1. 이 책을 덮고서는 딥페이크를 활용한 발전한 보이스피싱이 너무 우스워보였다.
2. 김영하 작가님의 <작별인사>를 즐겁게 본 사람에게 추천한다. 거기서 인공지능 달마의 느낌이 여기 발할라에서도 느껴진다.
3. Gpt와 Claud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직접 쓴 발할라의 스핀오프가 담긴 QR도 즐겨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