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두뇌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며, 둘째는 남이 그 이치를 설명했을 때 깨우치고, 셋째는 전혀 그 이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첫째 부류가 가장 탁월하며, 둘째는 뛰어나고, 셋째는 무용지물입니다. - P159
대신의 윤리와 군주의 시혜 군주가 한 대신의 사람됨을 평가하는 데에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당신의 일보다 자신의 일에 마음을 더 쓰고 그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그는 결코 좋은 대신이 될 수 없고, 당신은 결코 그를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과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항상 군주에 관해서 생각해야 하고 군주의 일에만 관심을 집중해야 됩니다. 한편 군주는 대신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를 우대하고, 재부를 누리게 하며, 그를 가까이 두고 명예와 관직을 수여하는 등 그를 잘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군주는 대신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오직 군주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이미 얻은 많은 명예와 재부로 인해서 더 많은 명예와 재부를 원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자신이 맡은 많은 관직들을 잃을까 염려하여 변화를 두려워하도록 대우해야만 합니다. 만약 대신과 군주가 그러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들은 서로를 계속 신뢰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둘 중의 어느 한 쪽은 항상 불행한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 P160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제3의 방도를 따라야 하는데, 자신의 나라에서 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임하여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것도 군주가 요구할 때만 허용해야지 아무 때나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군주는 그들에게 모든 일에 관해서 묻고, 주의 깊게 그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그 뒤에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나아가서 군주는 그의 조언자들의 말이 솔직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들의 말이 잘 받아들여진다고 믿게끔 처신해야 합니다. 군주는 그가 선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되고, 그의 목표를 확고하게 추구하며, 그가 내린 결정에 관해서 동요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처신하지 않는 군주는 아첨꾼들 사이에서 몰락하거나 아니면 그에게 주어지는 상반된 조언 때문에 결정을 자주 바꾸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 P163
군주는 자신의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오랫동안 다스리던 국가들을 잃게 된 우리 시대의 군주들은 운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시대에 그들은 사태가 변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날씨가 좋을 때 폭풍을 예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입니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뀌어 역경에 처하면, 그들은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도망갈 궁리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복자의 오만무례한 횡포에 분노한 인민이 그들에게 권력을 되찾아주리라고 희망했습니다. 이 책략은 다른 모든 책략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온당할 수 있지만, 다른 해결책들을 등한시하고 이 책략에만 기대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건 일어나지 않건 이러한 책략은 당신의 안전을 도모해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방어책은 당신의 능력 밖에 있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취약하고 비겁한 것입니다. 당신의 주도하에 있고 당신의 역량에 기초한 방어책만이 효과적이고 확실하며 영구적입니다. - P168
제25장 운명은 인간사에 얼마나 많은 힘을 행사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운명에 대처해야 하는가
운명은 우리의 행동의 반 이상을 통제한다 저는 본래 세상일이란 운명의 신에 의해서 다스려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신중함으로써는 이를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런 사태에 대해서 인간이 어떠한 해결책도 강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땀을 흘리며 애써 노력해보았자 소용이 없으며, 운명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인간의 예측을 넘어선 대격변 때문에 우리 시대에 더욱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생각할 때, 저 자신도 간혹 어느 정도까지는 이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서 저는 운명이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이 진실이라고 판단합니다. 운명의 범람은 통제될 수 있다 저는 운명의 여신을 험난한 강에 비유합니다. 이 강은 노하면 평야를 덮치고, 나무나 집을 파괴하며, 이쪽 땅을 들어 저쪽으로 옮겨놓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격류 앞에서는 도망가며, 어떤 방법으로도 제지하지 못하고 굴복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온한 시기에 인간이 제방과 둑을 쌓아 예방조치를 취함으로써, 나중에 강물이 불더라도 수로로 물줄기를 돌려 제방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제방을 넘어왔을 때 그 힘을 통제할 수 없다거나 덜 피해가 가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자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아무런 역량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아무런 제방이나 둑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을 덮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러한 격변의 근원이자 무대인 이탈리아를 살펴보면, 당신은 이 나라가 바로 제방이나 둑이 없는 들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나라가 독일, 스페인, 프랑스처럼 적절한 역량에 의해서 제방을 쌓았더라면, 홍수가 그렇게 커다란 격변을 초래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예 홍수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대체로 이 정도면 일반적인 차원에서 운명에 대처하는 일에 관해서 충분히 말한 셈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잘 적응시키는 사람들은 행운을 누린다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군주가 성격이나 능력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흥했다가 내일은 망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우선 이미 상세하게 논한 원인, 즉 전적으로 운명에 의존한 군주가 그 운명이 변할 때 몰락하게 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저는 군주의 대처방식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할 때 성공하고, 그렇지 못할 때 실패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곧 영광과 부에 대해서 상이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한 사람은 신중하게 다른 한 사람은 과감하게, 한 사람은 난폭하게 다른 한 사람은 교활하게, 한 사람은 참을성 있게 다른 한 사람은 그 반대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처럼 각각의 상이한 행동방식은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중한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합니다. 또한 상이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신중하게 다른 한 사람은 과감하게 행동하는데, 모두 성공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이한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양식이 그들이 행동하는 상황에 부합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말한 것처럼, 상이하게 행동하는 두 사람은 동일한 결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행동했지만, 한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흥망성쇠가 거듭됩니다. 어떤 사람이 신중하고 참을성 있게 행동하고 시대와 상황이 그의 처신에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하면, 그는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다시 변화하면, 그는 자신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이런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 만큼 지혜로운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이 그러한 변화를 용납하지 않거나, 아니면 일정한 방법으로 행동함으로써 항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우리의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중한 사람이 신속하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지를 못할 것이고, 이로 인해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자신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운명은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명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선호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항상 과감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는데, 일처리 방식이 시대와 상황에 적절하게 알맞았기 때문에 항상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조반니 벤티볼리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율리우스가 볼로냐에 대해서 감행했던 첫 원정을 생각해봅시다. 베네치아인들은 그 계획에 반대했고, 스페인 왕 역시 반대했습니다. 그 작전에 관해서 율리우스는 프랑스 왕과 아직 협상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특유의 기개와 과감성을 과시하면서 교황은 친히 그 원정을 지휘했습니다. 이러한 진격은 스페인 왕과 베네치아인들의 허를 찔렀고 이로써 그들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자는 두려워서, 전자는 나폴리 왕국 전체를 재탈환하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서 수수방관했던 것입니다. 한편 교황 율리우스는 프랑스 왕을 끌어들였습니다. 프랑스 왕은 베네치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고 교황과의 친선관계를 확립하고 싶어하던 참인데, 교황이 이미 작전을 개시한 이상 공공연하게 교황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서는 군대 파견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같은 신속한 진격으로 율리우스는 사려 깊은 어떤 다른 교황도 불가능했던 업적을 성취했습니다. 그가 만약, 다른 교황이 그렇게 할 법했던 것처럼, 모든 조건을 합의하고 해결한 후에 비로소 로마를 떠나려고 했더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왕은 군대 파견을 거절할 수 있는 수많은 핑계를 어떻게 해서든지 꾸며댈 수 있었을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교황이 두려움을 느끼고 신중하게 처신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를 내놓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황의 이와 비슷한 다른 행동을 여기에서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모든 행동들은 비슷했으며, 그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생애가 짧았기 때문에 그는 실패를 맛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중한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는 몰락했을 것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타고난 성질과는 다른 행동을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은 대담한 자들과 벗한다 따라서 저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해서 행복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해서 불행하게 된다고 결론짓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운명은 여성이므로 그녀는 항상 청년들에게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덜 신중하고, 보다 공격적이며,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다루고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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