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주먹구구식으로 철학을 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다. 나에게 나름의 철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1. 철학이란 무엇인가?(‘나는 누구인가?(존재론)‘ 정도를 이쯤에 삽입하면 철학적 사유의 체계가 잡힐 것 같다.)2.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인식론)3.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윤리학, 법철학, 국가철학)4.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형이상학)그러나 이젠 ‘나‘조차도 불확실하단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겠지.
최근 누군가에게 말에서 비롯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의심하기도 했다. 참고 있자니 열받고 따지자니 좀스러워 보이는 상황. 이도저도 못하는 고뇌의 시간을 겪으며 차라리 내 진심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바에야 언어가 없었다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을 거듭한 끝에 길게 얘기하든 짧게 얘기하든, 서로를 아끼고 믿는 마음이 없다면 즉시 오해가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46개의 화두와 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화두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는 일종의 수단으로 쓰인다고 한다. 한편, 나는 이를 사람 사이의 대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화두는 짧지만 그걸 던진 자는 그 안에 나름의 의미를 담는다. 그렇기에 그 화두에 답변하려면 제시자의 의도와 당시 맥락 따위의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민 끝에 누군가 대답을 내놓는다. 이는 언어의 형태일 수도 있고 행동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그 답변에 화두 제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면, 서로의 마음은 통한 것이다. 짧은 말, 혹은 말이 아닌 행동만 보였어도 전혀 오해를 사지 않는 관계는 서로를 매우 잘 알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몇 번 만나본 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만남과 기억이 쌓이고 또 쌓여야 한다. 염화미소의 관계는 그제서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도 여전히 나는 누구인지 명확히 모르겠다.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와 그 주체가 대상으로 바라보는 ‘나‘가 다르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각각의 이미지가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세포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나의 동일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생은 나를 찾는 여정이라고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나는 존재했다가도 사라진다. 그런 모든 변화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더 긴 경험들이 필요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