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가을은 언제나 "미칠 것 같은 계절"이었죠.

 "단 한순간이라도 뜨거울 수 있다면 저는 그저 행복할 겁니다"

 라고 말했던 그 사람으로 인해, 그 계절은 미칠듯 뜨거운 계절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수업이 <여행 문학>이었던가요? 아아. <논픽션>이었습니다.

 첫번째, 문학으로 쓰는 다큐멘터리. 두번째, 여행 문학으로 진행되었지요.

 완벽했던 수업이었습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기에 최고의 수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소위 '미쳤다'고 말하기에 적합한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과제 주제를 '백로'로 정하고, 제 1급수에만 산다는 노랑부리백로를 렌즈에 담기 위해 

 일주일 간 학교도 빼먹고 야생동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머리도 감지 않은채 강가를

 쏘다녔다는 '그 사람'. 그에게 저는 과제 후 기념으로 노란 장미 한송이를 선물했지요.


 저 역시 미쳐있었습니다. 온 힘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수업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치 그런 수업의 상징 같았습니다. 우연히 '그 사람'과 또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땐 '이런 학우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가 학교에서 보이지 않으면, 모두 다 너무도 당연하게 '글 쓰러 갔다' 혹은 

 '또 뭔가에 빠져서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짐작하고 받아들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입니다.

 계절은 돌고 도는데, 피처럼 붉은 순간들이 이때의 가을 속에 낱낱이 박혀있는데.

 내가 사랑한 수업 시간이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뜨거울 수 있다면 저는 그저 행복할 겁니다."

 그 학우의 말은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어울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먼 미래조차 예측한 것이었을까요? 이렇게나 까마득히

 먼 훗날에도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몸부림치게 될 상황은 상상하지 못했을까요?


 캡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더이상 미칠 것 같지 않습니다.

 매년 가을마다 괴로워했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불타고 불타다 더이상 탈 게 없어 화르륵 사그라진 재처럼, 저의 그리움도

 이제 깜빡 깜빡 불씨가 꺼져가고 있습니다. 끝나버린 순간의 미련도, 모두 다.

 흩어진 연기조차 남지 않기 전에, 한번쯤 이렇게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캡틴. 저는 '현재'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직 물들지 않은 나무와 숲은 녹색과 초록색, 짙푸른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차차 노랗게, 주홍색으로, 빨강으로 변해갈 겁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사랑스러운 가을입니다.


 캡틴, 캡틴. 

 당신이 모든 날 모든 계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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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오래전 당신에게 띄웠으나

띄우지 않은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문득 보여드리고 싶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나의 선장님.



어느덧 제가 도서관을 그만둔 지 열흘이 다 되어갑니다.

지난 유월은 이별의 달이었습니다. 어느덧 4년이나 쌓인

시간 속에서 만났던 인연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소중히 여겼던 만큼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날과 기억을 보내다가 가장 정성스럽게

인사하고 싶었던 한 명을 그만 놓칠 뻔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는,

‘처음 봤을 때 선장님을 떠올리게 했던’ 소년 말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어쩌나 쉴 틈 없이 일하는지

곁에서 보는 사람 마음을 다 졸이게 만들던.


그래서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자질구레할 것들을 챙기게 하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달려가 계속 확인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 소년이요.


‘쉴 새 없이 일 한다’는 점 외에도 이 소년은 선장님과 마찬가지로

(종류는 약간 다르지만) 현명함, 간결함, 온화함 등의 많은 재능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나중에야 차츰 깨닫게 되었지만요.


그 외에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많은 재능을 품고 있었기에

저는 이 아이가 꽃피웠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했습니다.


2015년 6월에 처음 일하게 되어 꼭 반년만인 2016년 1월에

만나게 된 소년은 여러모로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워낙 똑똑한 아이라

제가 연구할 때 여러 조언을 준 것도 있지만, 그냥 그런 아이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운을 차리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이런 식입니다.


맞지 않는 업무에 시달리느라 모니터 앞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도,

같은 시간 지척에서 일하고 있을 그 애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저 혼자 일하는 1층에 꼭 동료 한명이 더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로 그 애는 이따금 도서관에 들러 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새로 들어온 책을 소개하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이 책 저 책 보여주고 싶어서 몸이 달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 아이는 가볍게 권한 책자 한권도 진지하게 읽어주었기에 매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2016년 5월, 그 아이에게는 평소와 다름 없었을 하루가,

저에게는 세상이 뒤집힌 것과 같았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퇴근한 어느 날 저녁 그 아이와 문자를 주거니 받기니 하다가 둘 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고 그 애가 제가 있는 쪽으로 온 날이었습니다.

(길다란 팔다리로 임팔라처럼 펄쩍펄쩍 달려오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자신의 모습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예, 그 그림이 바로

선장님께서 가지고 계신-제가 선물해드린- 머그컵 안의 그림입니다.


간단하게 적었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줄곧 그 아이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초상화도 아니고, 캐리커쳐도 아니고,

무어라 불러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그림이었지만,

적어도 그 애를 무어라 불러야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뮤즈(MUSE)였습니다.


한 번도 본인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다른 사람에게도 말한 적 없네요.


누가 그 아이와 제 관계를 물어보면 적당히 대답했지만(전부 사실이기도 하고)

저에게 있어 그 아이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 그만한 단어는 없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약간의 비극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후 저는 그 아이를 그리는 것에 조금씩 집착하기 시작했던 거 같거든요.

눈동자에 어린 동그란 빛과 마치 마스카라를 바른 듯 짙고 새까만 속눈썹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따위를 고민하다가, 그 아이를 진실로 

아름답게 하는 것은 외양이 아니라는 걸 망각했습니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는 짙노란 보석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토파즈나 오팔, 호박처럼 부드러운 광채를 가진 ‘자긍심’이

그 속에 있는 걸 믿었거든요. 눈으로 보듯이 분명하게.


그랬는데, 어느새부터인가 제 눈은

그 애의 피부 표면 위에만 고정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걸 분명히 깨닫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년 중순 업무가 바뀌고 또 업무장소가 바뀌면서 그 아이를

만나기 더 힘들어졌거든요. (변명 같은 해명이라는 걸 압니다)

분명 마음 한 켠에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분명 있었습니다.


선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혈연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미 동생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선장님을 떠올리게 하는’

‘나를 친구라고 여겨주길 바라는’

‘나의 동생과 같은’


그 아이 앞에 붙일 수 있는 수사는 이렇게나 많았는데

한순간 한 개의 단어로 모든 것을 뒤덮어버렸던 지난날들을

후회해야할지, 안타깝게 여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럼에도 저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 감사를 오롯이 기꺼워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과와 감사를 같이 전하려 합니다.

그동안 고맙고 또 미안했다고. 그동안 신세 많았다고.

앞으로 쭉 건강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입니다.


길었던 서두에 비해 전하는 말은 단 다섯글자 뿐이라니,

고마웠다는 단 몇 글자 뿐이라니 다소 허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글들이 제 심정을 조금이라도 설명해줄 수 있길 바랍니다.


쓸데없는 말만 잔뜩 적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왜곡될까 또 염려되지도 하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많이 미숙하고 미욱합니다.


그러니 이만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이 편지를 실제로 선장님께서 읽으실 리는 없지만

그래도 으레 그렇게 하듯 끝을 맺습니다.


이 글을 읽게 될 한 사람에게 직접 말하기 멋쩍어

편법을 쓰는 한심한 제자에게 '너답다'라고 말해주실 것만 같습니다.

그도 그렇게 여겨주길 바랍니다. 그럼 진실로 여기까지.


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요. 늘 행복하길.



-2018년 7월, 사무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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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저는 제가 사냥개인 줄 았았죠. 


 잘 훈련된 짐승처럼 말이에요.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사냥개, 혹은 양치기 개일 수도 있겠죠. 어쩌면 여우도 가능할까요?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가져오자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엄연히 여우도 개과(科)잖아요. 사과나무 아래에서 만났던 붉은여우.


 "난 보통 다른 발자국 소리와는 다른 어떤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나를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마치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내게 될 거야." (p.99 『어린왕자』, 오증자 역)


 실제로 저는 사람의 발소리를 구별하죠. 저는 당신의 발소리 역시 알아듣습니다. 

 수업이 끝난 오후의 복도 창가에 걸터 앉아 있다보면 종종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읽던 책을 무릎 위에 엎어놓고 졸면서도 스치는 소리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철저하게 여우라고 믿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너는 내 장미잖아."


 내가 장미라니. 난 여우인데?

 그러나 곧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알았죠.


 "내 여우도 전엔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았지. 하지만 내가 

 친구로 삼았으니까 이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된 거야." (p.104) 


 하나밖에 없는 여우. 하나뿐인 장미. 

 친구로 삼았기에, 길들였기에 이 세상 단 하나의 존재.

  

 그래요.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길들여졌습니다.

 인간을 경계하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제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제가,

 나도 모르게 종종 걸음쳐 당신을 뒤쫒고 마음 깊숙이 따르고 있었죠.


 당신이 가는 길을 감히 나역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아들처럼, 스승의 발자취를 쫒는 제자답게. 


 이렇게 직접, 동시에 시적으로 듣게 되리라고 예상치는 못했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당신답다'고 여기며 소중하게 그 말을 담아두었습니다. 

 

 아, 어찌나 어리석었는지.

 아셨겠지만, 저란 녀석은 너무나 느립니다.


 그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별안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에겐 내가 수많은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가 필요하게 된단 말이야.


 넌 나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테고, 너에게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테니까."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p.97)



 내가 당신에게 길들여졌다면,

 당신 역시 나에게 길들여진 게 아닌가.



 나는 줄곧 당신이 나를 길들였다는 사실만 인지하고서

 내가 당신을 길들여버렸다는데는 생각이 닿지 않았었습니다.


 이 무슨... 얼마나 멍청한지. 그렇다면 당신이 그날 제게 했던 말은

 우회적인 질책이었던 셈입니다. 동화와 같은 비유가 아니라.



 "잊지 마. 넌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해.

 넌 네 장미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해."(p.106)



 책임감. 내가 제자로서 스승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미 스승님은 이 한심한 제자에게서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계시죠.  

 너무 무거워서 제가 빨리 덜어들어야 할 정도로.



 아무래도 제가 여우라는 착각은 

 지나친 오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리함과는 일만 광년쯤 떨어져있는데, 

 여우는 무슨요. 사냥개는 더더욱 무슨요.


 저는 그냥 X싸는 선인장(*)입니다.

 손아귀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사정없이 손바닥을 가시로 찔러대는.


 그런 말썽쟁이 녀석이 이제야 느즈막히

 새까만 사막의 밤을 건너 당신의 별로 가겠습니다. 



 


 

 *고슴도치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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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보드게임 해본 적 있으세요?


친구의 권유로 처음 해본 보드게임, 

그 패배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달았거든요. 너무 달아서, 짜릿한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패배해도 좋다."

"져도 괜찮아."



매순간 살얼음판 위를 기어가는 것처럼

단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저 말이 가당키나 한가요? 


"너는 패배자야", "너는 실패했어"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음에도 기어코 자근자근 짓밟아서 

두번 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결국 절벽 아래로 걷어차여 굴러떨어져야 속이 시원하다는 듯


그런 사회에서 어찌어찌 아직 살아있는 저에게

보드게임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습니다.


게임판 위에서 저는 얼마든지 '져도 괜찮은'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래서 '져도 된다'는 사실에 저는 태만해졌을까요? 아무렇게나 게임을 했을까요?



저는 두려움을 버릴 수 있었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나의 선택에 자신감이 붙었고, 얼마든지 다시 도전할 의지가 불타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당연히 새로 도전할 때마다 신중을 더했습니다. 약간 안이해지는 순간도 물론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해버린 플레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그 안이함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근사한 게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할테니.


저는 그렇게 '게임 자체'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패배가 두려워 도전할 엄두도 못 내던 웅크렸던 삶에 너무 큰 위안이었습니다.



이기는 즐거움, 도전하는 즐거움, 더 잘하고 싶은 기분 좋은 욕심.

그 모든 것이 실패 속에 있었습니다. 다시 도전해도 좋은 실패 속에.




*


캡틴, 다음에 저랑 제자들이랑 보드게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쯤 선배들과 다같이 보드게임방에 가서 논 적이 있어요. 


"용용이의 분노!" (규칙에 따라 이런 말을 외치기도 해야합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선배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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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어도 하는 게 어른이죠."


유독 지쳐보이는 날, 한숨 섞인 당신의 말에 대한 


저의 대꾸였죠. 당돌한 꼬마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는 게 어른이다.'


라는 글을 어디서 또 읽었는지, 대번에 써먹는 어린아이였던 것이죠.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해본 적도, 체감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래도 당신은 선선히 웃으며 대꾸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아마 언젠가 이런 날이 제게도 오리란 걸 알고 계셨겠죠.



하기 싫은 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나의 책임. 나의 의무. 내가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길.


제가 선택했습니다. 제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때때로 '하기 싫어'진다는 것이 참 우습긴 하지만


가야합니다.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일 수는 없는 거죠.

자신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어린아이가 되야하는 거죠.



*


설령 한밤의 축제에 여전히 마이클 와조스키

인형을 들고 다닌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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