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오래전 당신에게 띄웠으나
띄우지 않은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문득 보여드리고 싶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나의 선장님.
어느덧 제가 도서관을 그만둔 지 열흘이 다 되어갑니다.
지난 유월은 이별의 달이었습니다. 어느덧 4년이나 쌓인
시간 속에서 만났던 인연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소중히 여겼던 만큼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날과 기억을 보내다가 가장 정성스럽게
인사하고 싶었던 한 명을 그만 놓칠 뻔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는,
‘처음 봤을 때 선장님을 떠올리게 했던’ 소년 말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어쩌나 쉴 틈 없이 일하는지
곁에서 보는 사람 마음을 다 졸이게 만들던.
그래서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자질구레할 것들을 챙기게 하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달려가 계속 확인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 소년이요.
‘쉴 새 없이 일 한다’는 점 외에도 이 소년은 선장님과 마찬가지로
(종류는 약간 다르지만) 현명함, 간결함, 온화함 등의 많은 재능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나중에야 차츰 깨닫게 되었지만요.
그 외에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많은 재능을 품고 있었기에
저는 이 아이가 꽃피웠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했습니다.
2015년 6월에 처음 일하게 되어 꼭 반년만인 2016년 1월에
만나게 된 소년은 여러모로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워낙 똑똑한 아이라
제가 연구할 때 여러 조언을 준 것도 있지만, 그냥 그런 아이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운을 차리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이런 식입니다.
맞지 않는 업무에 시달리느라 모니터 앞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도,
같은 시간 지척에서 일하고 있을 그 애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저 혼자 일하는 1층에 꼭 동료 한명이 더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로 그 애는 이따금 도서관에 들러 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새로 들어온 책을 소개하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이 책 저 책 보여주고 싶어서 몸이 달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 아이는 가볍게 권한 책자 한권도 진지하게 읽어주었기에 매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2016년 5월, 그 아이에게는 평소와 다름 없었을 하루가,
저에게는 세상이 뒤집힌 것과 같았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퇴근한 어느 날 저녁 그 아이와 문자를 주거니 받기니 하다가 둘 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알고 그 애가 제가 있는 쪽으로 온 날이었습니다.
(길다란 팔다리로 임팔라처럼 펄쩍펄쩍 달려오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자신의 모습을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예, 그 그림이 바로
선장님께서 가지고 계신-제가 선물해드린- 머그컵 안의 그림입니다.
간단하게 적었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줄곧 그 아이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초상화도 아니고, 캐리커쳐도 아니고,
무어라 불러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그림이었지만,
적어도 그 애를 무어라 불러야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뮤즈(MUSE)였습니다.
한 번도 본인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다른 사람에게도 말한 적 없네요.
누가 그 아이와 제 관계를 물어보면 적당히 대답했지만(전부 사실이기도 하고)
저에게 있어 그 아이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 그만한 단어는 없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약간의 비극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후 저는 그 아이를 그리는 것에 조금씩 집착하기 시작했던 거 같거든요.
눈동자에 어린 동그란 빛과 마치 마스카라를 바른 듯 짙고 새까만 속눈썹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따위를 고민하다가, 그 아이를 진실로
아름답게 하는 것은 외양이 아니라는 걸 망각했습니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는 짙노란 보석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토파즈나 오팔, 호박처럼 부드러운 광채를 가진 ‘자긍심’이
그 속에 있는 걸 믿었거든요. 눈으로 보듯이 분명하게.
그랬는데, 어느새부터인가 제 눈은
그 애의 피부 표면 위에만 고정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걸 분명히 깨닫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년 중순 업무가 바뀌고 또 업무장소가 바뀌면서 그 아이를
만나기 더 힘들어졌거든요. (변명 같은 해명이라는 걸 압니다)
분명 마음 한 켠에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분명 있었습니다.
선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혈연에 아무 의미도 두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미 동생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선장님을 떠올리게 하는’
‘나를 친구라고 여겨주길 바라는’
‘나의 동생과 같은’
그 아이 앞에 붙일 수 있는 수사는 이렇게나 많았는데
한순간 한 개의 단어로 모든 것을 뒤덮어버렸던 지난날들을
후회해야할지, 안타깝게 여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럼에도 저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 감사를 오롯이 기꺼워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과와 감사를 같이 전하려 합니다.
그동안 고맙고 또 미안했다고. 그동안 신세 많았다고.
앞으로 쭉 건강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입니다.
길었던 서두에 비해 전하는 말은 단 다섯글자 뿐이라니,
고마웠다는 단 몇 글자 뿐이라니 다소 허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글들이 제 심정을 조금이라도 설명해줄 수 있길 바랍니다.
쓸데없는 말만 잔뜩 적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왜곡될까 또 염려되지도 하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많이 미숙하고 미욱합니다.
그러니 이만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이 편지를 실제로 선장님께서 읽으실 리는 없지만
그래도 으레 그렇게 하듯 끝을 맺습니다.
이 글을 읽게 될 한 사람에게 직접 말하기 멋쩍어
편법을 쓰는 한심한 제자에게 '너답다'라고 말해주실 것만 같습니다.
그도 그렇게 여겨주길 바랍니다. 그럼 진실로 여기까지.
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요. 늘 행복하길.
-2018년 7월, 사무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