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예술영재원 미술영역 최종합격_임○현

 ○○대학교 미술영재 3차(최종) 합격_서○은



 오 캡틴 마이 캡틴(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저런 글귀를 어딘가 쓰게 되리라곤요.


 회의에 가득찬 청소년 시절에는 그저 자랑질, 홍보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는 기분'에서 비롯된 것이었군요. 적어도 이 편지에서는,

 선장님께 띄우는 편지에 한해서는 그렇습니다. 자랑스러워요, 저의 제자들이.


 감히 제가 '제자'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고민하기도 전에, 

 또 저만의 공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의 노력이 훨씬 더 컸으며

 무엇보다 당사자 학생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 헤아라기도 전에-

 일단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당장 선장님께 달려와 고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대회나 선발은 학부모와 교사의 욕심으로 빚어진 산물이 아닌가

 회의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 회의에 가득 찬 청소년 그 자체로군요.

 막상 본인도 ○○시 예술영재 창작(문학)영재로 뽑혀 활동했는데 말이에요.

 심지어 졸업할 때는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되어 수상도 했음...)


 하지만 대망의 합격여부 발표날,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평일 저녁 6시 혹은 7시였을까요. 합격소식을 알리는 메시지 캡쳐본이

 당사자 학생으로부터 저에게 카톡 메신저를 통해 날아왔습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이 아이는 평소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아이의 카톡 프로필을 보니 이 아이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좀체 속내를 드러니지 않는 아이였는데, 저에게 보낸 캡쳐본을 딱 걸어두었더라고요.

 본인이, "당사자"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너도 원하고 있었구나. 너도 원하는 일이었구나.

 너의 노력과 수고가 단순히 억지에 떠밀려된 일이 아니었구나.'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본인의 의사는 또렷하게 밝히줄 알며

 조용한 얼굴 속에서도 평온함, 수줍음 등의 감정을 그릴 줄 아는 아이라

 그렇게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뭐든지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다짜고짜 가슴팍을 쭉 찢고 그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구요. ←그럼 죽어...)


 이제 '정말로 기뻐하는 것'을 확인하니 정말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아이가 새롭게 겪게 될 다양한 경험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해온 노력이 (어떤 결과이건 결코 헛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움켜쥘 수 있는 모습로 드러났다는 게 참 기뻤습니다.


 그래서 '제가의 성취가 스승의 자랑'이라던 선장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정확히는 "스승의 이름은 제자의 성취로 빛이나는 것"이란 말씀이었던가요.  

 저도 스승의 이름을 빛내는 제자가 되어야하는데 그 길이 참 멀긴 멉니다.

 이미 수많은 제자들로 인해 빛나는 스승님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에요.



 사랑하는 스승님. 당신의 제자는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나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은 보여야하는' 제자가 이토록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우려가 크시겠지만, 제 안에 스승님은 언제나 함께하고 계십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곧장 서쪽 창을 여는 것으로 제 일과를 시작하는데요.

 그때 언제나 연구실의 서쪽으로 비치던 오후 4시의 석양을 떠올리곤 합니다.

 새겨진 기억은 피보다 더 짙게 혈맥을 오가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럼 또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한바탕 퇴고를 해야하는데 또 수업을 가야해서;

 이 편지를 결코 보실 일 없는 나의 캡틴, 이따 또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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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어울려요."

담쟁이 덩굴을 정리하던 저의 등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가 말했죠.


고개를 돌리지 않고 슬그머니 미소지었습니다.

어울릴 수밖에요. 잊고 있었지만, 익숙한 일인걸요.



제가 작은 집사로 머물던 연구실 창가에는

새하얗고 네모진 화분 속에 조그마한 담쟁이가 담겨있었습니다.

초록 담쟁이는 부지런히 자라서 창가 이끝에서 저끝까지  

팔을 뻗었고요. 신기하게도 딱 거기까지 자란 뒤에는

매일 새 잎을 내고, 시든 잎을 떨구길 반복했습니다. 


노랑잎을 속아내고 갈색잎을 주우며

덩굴 사이사이에 앉은 먼지를 닦아내며

돌보았던 담쟁이. 그 곁에도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요. 

자금우, 금천죽, 테이블 야자, 

스피아 민트, 큰 테이블 야자.

 

창가가 아닌 커다란 탁자 위에는 유리화병 속 

특별한 날 머물다 가는 손님과 같았던 꽃다발.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해의 오월

어느 영화제 장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눈에 띈 담벼락에 가득한-방치된- 담쟁이를

가만 두고보지 못하고 사부작 사부작 정리하며

잠시 떠울리며 웃기에도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P.S.

아직도 제 방 어딘가에는 그때 속아낸 

잎사귀 줄기 몇 가닥이 저의 노트 속에

끼워져있을 겁니다. 

언제까지나 제 가슴을 간질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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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배보다도 더 멀리 너를 데려갈 수 있는걸."

 뱀은 마치 금팔찌처럼 어린왕자의 발목을 둥그렇게 감았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이 별에서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아니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나를 지탱하게 했던, 많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놓아주려고 합니다.


 그들과 만들었던 기억을, 그들과 나누었던 추억을

 마음 속에 묻어둔채로 이따금 가끔씩 꺼내볼테면 언제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갓 생긴 생채기 마냥.


 딱지가 앉을라치면 다시 잡아뜯어서 새 생채기를 만들고

 또다시 상처를 남겨 아픔을 불러내고 고통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 예사롭지 않은 통증에 저는 중독되었던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상기시켰던 예전의 기억들.

 저는 단단한 과거가 현재의 나를 버티게 해준다 믿었지만

 실상은 재차 뒤만 돌아보느라 앞을 보지 못했던 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실로 저는 이 별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사랑했던 것인지도요.

 어쨌던 그 '기억'들을 심장 바로 옆에 자리하게 한 채

 오랜 시간을 버텨왔습니다. 버텨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길지 않더라고요. 

 아니 유효기간이 있단 것 자체가 모순이었질지도요.

 방전될 때마다 보조배터리를 새로 갈아끼우듯

 버터보려했지만 결국 한계는 오기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두 다 놓아주려고 합니다.

 누군가는 '혼자하는 이별'이라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그들은 진작에 모두 다 잊어버렸을텐데.


 캡틴, 밤하늘의 별이 가장 빛날 때를 알고 계신가요?

 듣기론 별은 죽을 때 가장 밝는 빛을 내뿜는다고 합니다.

 

 저의 '기억'들이 별이라면, 그리고 그 별들에게 

 종말을 고한다면 가장 눈부신 형태로 만들어주고 싶네요. 

 이름하야 '눈부신 이별'이 될까요. (오, 촌스러운 작명)



 사랑했습니다. 정말로 많이.

 그 사랑'하는' 힘으로 여지껏 버텨왔단 점에선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가장 오래 사는 별도 언젠가는 죽기 마련입니다.

 

 캡틴, 당신이 살았던 이 별에서 나는 이별을 준비합니다.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떠났던 철새들이 돌아오고,

 또 돌아온 철새들이 떠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는

 새들의 이동을 이용하여 별들의 사이를 여행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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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s Big Scene (Hardcover)
이자벨 아르스노 / Tundra Books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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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연작.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대하면 ‘마야(Maya)‘의 이야기,
다음에는 어떤 친구가 주인공이 될지 또다시 기다려진다. 1년마다 나오는 시리즈라니,
앓다가 죽을 것 같지만... 모쪼록 피너츠 시리즈처럼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해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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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올해 스무한 살이 된, 재수 후 합격 소식을 알려온 친구를 말이죠.


 언젠가 말씀드린 적 있는 친구일 겁니다. 이 친구와의 인연도 어느덧 4,5 전쯤 되네요.

 K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문학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국어 과외를 준비 중이라며 문제집에서 접했던 지문 속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중 윤동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시(詩)는


 "낡지도 않고

  닳지도 않고 

  해지지도 않고

  색이 바래지도 않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래서 불멸하나봐요."

 

 서로 번갈아가며 좋아하는 시를 찾아 보여주던 중 나즈막히 터트렸던 감탄사.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 당연한 것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시를 소리내어 읽고 있었거든요.


 윤동주 - 또 다른 고향

 윤동주 - 쉽게 쓰여진 시

 백석 -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이상- 오감도 11호

 김승희 - 여름의 우울


 눈으로 더듬어내려가다가도 입을 벌려 

 소리를 꺼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기분.

 가둘 수 없는 '그것'이 소리로 변해 튀어나오는 기분. 

 캡틴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를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각종 근황과,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고 왔습니다.


 아, 생애 처음으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스무 살이 넘어 겪게 된 낯선 경험에 당혹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팬픽으로 하루에 오천자 씩, 근래 십만자를 적었다는데 아주 전도유망하지 않습니까?

 (매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물론 퇴고 따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ㅋㅋㅋㅋ) 


 선장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은 자랑스러운 친구입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며, 올봄에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저도 이번 글은 오래 붙잡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올립니다.


 봄이 정말 머지 않았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무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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