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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스타 닉네임이B월입니다. 


일곱 살 때 처음 읽었던 『무지개 물고기』,

아름다운 홀로그램 인쇄술도 여지껏 마음 속 깊이

간직해온 동화입니다. 오랜만에 서점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펼쳐보았다가, 이렇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 동화의 주제는 '나눔의 미학', 욕심 부리지 말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조건 '양보해라'라고 강요하는 것은 조금

마음 아픈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무언가를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만일 없는 용기를 쥐어짜서

거절하게 된다면 죄책감과 불안함에 힘들어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양보

-부드럽고 분명한 거절

-정중하고 진심어린 요청

-거절 당했을 때도 잃지 않는 예의


어린 시절의 저와 친구들이 이런 것들을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좀더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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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알라딘


도서 명: 별이 내리는 밤에

도서 정보: 센주 히로시, 열매하나, 2020

 

0. 너에게


안녕. 별을 쫓는 아이. 지금 여행은 어때?

우리 함께 여행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너는 또 새로운 여행을 떠나고, 나는 여기서 너에게 편지를 쓰네.

 

별을 쫓는 아이, 네 덕분에 나는 이번에도 멋진 별들을 볼 수 있었어.

아직도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별들의 잔상이 남아서 반짝거리는 것 같아.

하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흐려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한 가지 수를 내기로 했어. 난 너처럼 사진을 잘 찍지 못하고, 내 어쭙잖은 그림실력은

장대한 별하늘을 옮겨놓기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찾기로 했어.

너와 내가 보았던 밤하늘과 가장 닮은 그림책을 말이야.

 

 

1. 간단한 책 소개를 하자면


별이 내리는 밤에는 제목대로 

별이 쏟아져 내릴 듯한 푸른 밤하늘로 가득 채워진 그림책이야

저자는 일본의 화가 센주 히로시님으로, 이 분이 만든 유일무이한 그림책이라고 하네


본래 자신의 아이와 젊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리기 시작했는데

점차 자신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 ‘자신을 위한 책이라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믿어


그림책 속 주인공인 사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사슴이 되어있고내가 여정을 마친 듯한 기분이 될 테니까 말이야.

 

 

2.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면

 

깊은 숲속에 사슴 가족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밤, 아기 사슴이 별똥별을 쫒다 낯선 세상을 마주합니다.

하룻밤 사이의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림책의 첫 페이지이자

이 책에 등장하는 유일한 활자라고 할 수 있겠네


이것만으로 충분하고, 오히려 없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건 저자의 친절한 배려란 생각이 들어.

 

이어지는 장면들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아.

 

1)아기 사슴이 가족과 함께 초저녁을 맞고 있어. 밤하늘이 맑고 밝은 파랑이거든.

2)가족들 사이에서 아기 사슴 혼자만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별똥별을 발견해.


3~4) 아기 사슴은 홀로 별 길을 따라, 강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

간간이 돌아보는 이유는 와중에도 망설이는 걸까, 왔던 길을 확인하는 걸까.

5) 그러다 낯선 별빛을 발견했어. 그건 바로 잠든 도시에 밝혀진 불빛이었지.


6~7) 알알이 빛나는 도시는 별과 닮았지만, 어쩐지 황량하고 고독한 기분이 들게 했어.

8) 그러다 도시의 틈새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하고 아기 사슴은 하천을 따라 걷기 시작해.

9~10) 아기 사슴은 강에 다다라, 끝없는 별의 바다를 바라보았어

         조금 지쳤지만 별길을 보며 찬찬히 걸음을 옮겼어.


11) 그리고 다시 한 번, 별똥별이 길을 가리켰지.

12~13) ‘저기, 저곳이야!’ 아기 사슴은 다시 힘을 내어 달려가

           그 사이 동이 트고 별들은 사라지기 시작했어.

14~15) 마침내 엄마 사슴과 아빠 사슴을 발견하지

           사슴 가족은 다함께 아침을 맞이하게 돼.


16) 에필로그로 보이는 둥근 프레임의 그림 속에는 

     사슴 가족이 또다른 초저녁 안에 있어. 모두 다리를 꼿꼿이 펴고 있는 모습이

      이번엔 다 함께 여행을 나서보자고 하는 것 같아.

 


3. 나만의 해석이라면

 

이렇게 아주 아름다운 동화이지만

나는 내내 네 생각을 하면서 이 그림책을 넘겼거든.

그래서 매 페이지에 너의 이야기를 집어넣으며 보았어.

 

이 책을 좌우로 펼치면 왼쪽은 아기 가슴의 경로를 그리는 지도가

오른쪽에는 아기 사슴이 담겨있는 풍경이 그려져 있거든나는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라 매번 다른 위치에서 별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슴이 

꼭 각 지역의 별 명소를 찾아다니는 너 같다고 생각했어.


별 보기에 좋은 높은 산, 별빛이 비치는 호수와 강 같은 것들 모두가

네가 보았을 장면과 닮지 않았을까 상상해보았어. 그리고 닮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화려하고 황량한 도시 속을 헤매는 사슴 역시 너와 겹쳐보였어.

우리가 태어났던 고향 역시 그리 작지 않은, 오히려 제법 큰 도시였지만-

나와 달리, 너는 훨씬 더 오래 전부터 낯선 도시들 사이에서 적응해야 했으니까.

크고 화려한 도시 속에서 너 역시 자라나고, 자리를 잡고, 점차 근사해졌지만-

너는 꾸준히, 혼자서 훌쩍 별을 보러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오곤 했으니까.

 

그래서 또 한 번 떨어지는 별똥별을 발견하는 사슴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는,

어느 곳(지역)을 가더라도 밤하늘이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가는 네 뒷모습과 꼭 겹쳐보였어.

 

물론 너를 쓸쓸한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

마침내 아기 사슴을 사슴 가족들을 찾아가잖아만약 네가 이 아기 사슴이라면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사슴들은 너의 친구 사슴들일지도 모르지.

 

너는 때로 혼자서, 때로 친구와, 때로 친구들과 함께 별을 보러 가는

별을 쫓는 아이야.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친구로 둔 아주 운 좋은 사람이지.

 


4. 이 책을 선물하려는 이유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데,

기계치인 나는 너처럼 카메라로 별빛을 잡아두는 방법도 모르고,


내 변변찮은 그림실력이라도 발휘해보고 싶지만 네가 보여준 밤하늘의 별을 너무나도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들의 목록을 샅샅이 뒤져서 이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어.

그리고 부족한 글재주일지언정 진심이라도 담은 편지 하나를 더하기로 한 거야.

 

+추신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할 즈음에 너로부터 여행 간다라는 메시지를 받았지. 그걸 보고

한참이나 웃었어. 그즈음엔 이 편지의 제목을 별을 내리는 너에게라고 쓰고 있었는데,

역시 별을 쫓는 너에게라고 고쳐야겠다 싶었지. (별을 쫒는 아이라는 애니메이션 제목과

겹치는 것 같아 가급적 택하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야) 너에게 무척 잘 어울려.

 

너는 언제나 별을 쫒아가는 사람이고, 나는

너를 떠올리면 별이 내리는 밤을 눈앞에 그릴 수 있으니까.

 

친구들과 남은 여행 잘 보내다 오고,

다음에 또 나랑 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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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종료 된 전시입니다. 개인 감상의 기록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인용된 정보(박스 안의 글)[네이버 미술·전시 정보]를 참조했습니다.

 

전시기간 : 2022.04.30()~2022.09.12()

전시장소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전시명 :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r TIM BURTON)

작가 : 팀 버튼(Tim Burton, Timothy Walter Burton)

 

팀 버튼, 그와의 첫 만남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1995)이었다

뼈다귀 같은 팔다리에 말 그대로 '해골' 얼굴을 한 무언가가 빨간 산타옷을 

훔쳐입고 눈 내리는 거리와 마을을 휘젓는 광경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두 번째 만남은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1999)으로,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검은 표지의 얇은 책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그건 마치 시()와 같았다

간결하고 명료한 일러스트와 짧게 함축된 이야기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 책에 완전히 반해버린 나는 심각한 오해를 안고 말았는데, 그건 바로

 

팀 버튼을 '일러스트레이터, 그런데 가끔 영화도 찍는' 사람으로 인지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어처구니 없음) 영화감독인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알아가면서도( 유령 신부

프랑켄위니, 가위손, 스위니 도트등등) '팀 버튼 =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인지는 

깊숙히 각인되어 도무지 사라질 줄 몰랐다.

 

그저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닳도록 펼쳐 보며, 그의 '새로운 그림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뇌까리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 기도 아닌 기도가 닿은 것일까. 팀 버튼 특별전은 

이런 멍청한 나를 위해 하늘에서 떨어진 전시 같았다.


전시 구성

 

10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열리는 2022은 최근 50년에 걸쳐 발전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 팀 버튼의 예술 세계를 10개 주제로 구분하여 회화, 드로잉, 사진, 영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는 다른 전시에서 선보인 적 없는 팀 버튼의 신작들이 대거 포함됐으며, 이전 전시와는 다른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실감형 멀티미디어 콘텐츠부터 8.5미터 규모의 대형 조형물까지 팀 버튼의 예술 세계가 진화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 마지막 섹션인 팀 버튼의 현재 작업실인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장을 통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를 미리 엿볼 특별한 기회를 만날 수 있다.


팀 버튼의 가장 초기 작품부터 가장 최신 작품까지, 영화 구상을 위한 

초기 이미지 작화에서부터 냅킨에 끄적인 낙서에 이르기까지- 한데 모은 전시라니

나는 소원대로 그의 작품을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전시 장내 사진 촬영은 

불가하였음으로 꼭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는 직접 그리기도 했다


(입장객의 관람·이동에 방해되지 않게 매우 주의했다

평일 저녁 - 마감시간에 가까웠기에 입장객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스태프들도 나를 보고 경고하지 않았다.)

 

섹션 1 : 인플루언스 (INFLUENCES)


팀 버튼의 가장 초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팀 버튼의 유년 시절과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팀 버튼의 예술세계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살펴볼 수 있으며 그가 어린 시절 필기했던 노트와 드로잉 원본들을 통해 당시 상상력의 원천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나는 항상 괴물이 좋았고, 괴물 영화를 즐겨봤다.

한번도 그들이 무섭다 느낀 적 없다.

보통 아이들은 동화 속 예쁨 그림을 더 좋아하지만,

난 사람들이 괴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괴물은 주위 인간들 보다 훨씬 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러하다. 팀 버튼이 그리는 괴물들이 무섭지 않다는 것은

그가 그린 괴물을 눈으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어떠한 악의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피해끼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그린 괴물을 직접 따라그려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인데

펜을 쥐고 괴물들을 따라 그리며 '그것'이 너무나 와닿아 당황스러웠다

정말, 정말 순수한 생명체들이다.

 

섹션 2 : 특별한 홀리데이 (HOLIYDAYS)


캘리포니아의 버뱅크라는 작고 조용한 시골 동네에서 자란 팀 버튼은 연말에 열리는 시끌벅적한 축제가 지루한 일상의 탈출구였다. 그런 축제 분위기는 팀 버튼의 초기 시절 예술관에 많은 영향을 줬으며, 홀리데이 테마는 그의 작품에 감성적이고 풍자적인 암시가 섞인 대표적인 모티프가 됐다 


이 공간에서 사진 찍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으리라 믿는다

공간의 4면 모두에 영상이 상영되고 있으며, 입구 맞은 편에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그 외 벽면은 전부 눈이 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붉은색 배경을 바탕으로 정말 실감나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온 관람객이라면 필시 "Merry Chrismas."라고 서로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로맨틱한 공간에는 큐피드에게 머리를 꿰뚫린 연인들

크리스마스 트리를 먹어치우는 괴물과 같은 일러스트들도 채워져있었다.

 

섹션 3 : 유머와 공포 (CARNIVALESQUE)


카니발레스크는 유머와 공포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동시에 융합된 팀 버튼 예술세계의 가장 상징적인 테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빙글빙글 꼬인 혓바닥, 밖으로 튀어나와 방황하는 눈동자, 기괴한 광대 모습들은 유머와 공포를 조화롭고 균형 있게 표현하며 기괴한 즐거움이라는 이중적인 테마를 잘 보여준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말장난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카니발레스크개념의 대표적인 표현 방식이다  

 

 

이 공간은 '카니발'이란 단어 그 자체였다. 광대의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였고

나는 유년시절부터 광대에 대한 공포를 착실하게 학습해온 전세계의 어린이 중 한 명

(영화 인사이드아웃'라일리'를 떠올려주십시오)이었으므로……

 

단 하나도 모작하지 않았다. (괴물보다 광대가 더 무섭다.)

'유머와 공포'가 아니라 '공포와 공포'……

다만, '기괴한 즐거움'을 주는 공간은 잘 꾸며져있었다.  공간 안의 공간

그러니까 서커스의 천막을 연상시키는 작은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두운 보랏빛으로 칠해진 벽면에는 심해 물고기와 같은 괴물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으며한가운데에는 모빌·회전목마·서커스 천막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파랑·빨강·노랑, 밝고 경쾌한 색깔들로만 

만들어진 구조물은  과연 시선을 사로잡으면서도 어딘지 오싹했다.

 

 

'이 공간은 어떻게 관람하는게 최적의 방법일까?' 

잠시 고민하다 나는 '카메라'가 되어보기로 했다내 눈이 카메라 렌즈라 생각하고 

발을 옮기자멈춰있던 벽면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초롱아귀 같은 물고기의 눈이 

갑자기 커지며 번쩍이기도 하고일정하게 회전하던 구조물은 그 속도를 달리했다.

 

그저 조용히 걸었을 뿐이지만, 잠시나마 영화감독이 된 것 같아 재밌었다

마침 구조물이 너무 '영화소품'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고

이밖에도 팀 버튼이 만드는 구조물은 상상 이상의 재미를 준다.

 

 

섹션 4 : 인물에 대한 탐구 (FIGURATIVE WORKS:MEN, WOMEN, OR CREATURES?)


팀 버튼은 현실의 모습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원근법을 깨고 대상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새롭게 해석하여 표현한다. 사람과 동물, 신화 속 캐릭터가 뒤섞여 새롭게 창조된 인물들은 팀 버튼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강조한다   


 

팀 버튼이 그린 다양한 인물들.

단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그린 소녀(Girl) 시리즈였는데…….

과연 가까운 친구라서 가능했는지, 그저 스쳐가는 사람이라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림 속 분께서 화를 내셨다면, 원만한 합의 보셨기를 바랄 뿐이다.

 

섹션 5 : 오해받는 낙오자 (MISUNDERSTOOD OUTCAST)


팀 버튼의 미술 작품들과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테마로 , , , 등 아이코닉한 캐릭터들이 대표적이다. “동정심을 부르는 괴물들은 비현실적인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팀 버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을 상징하고 있다.   

 

 

풍선은 늘 무언가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공허하게 늘어져 있다가 한편으로 가득 차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아름다우면서 비극적이며 슬프다가도,

활기차고 행복한 무언가가 동시에 존재했다.”


 


가장 좋아하는 섹션, 이곳에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에 등장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굴 소년, 풍선 소년, 유독 소년, 노려보는 소녀……

(괴물이 나쁜 뜻은 아니지만, 이 아이들을 괴물이라 부르는 건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들은 '오해받는 낙오자', 다시 말해 아웃사이더다.

 

이들은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에서 각자의 단편(의 제목이자 주인공)으로 존재하는데

이 전시장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되어- 한 자리에 만나게 된 광경을 보게 되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물론 이들은 로의 대모험의 친구들처럼 마냥 화목하게 지내지는 않지만.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스테인보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이걸 과연 '친구''만난다'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벌어지는 사건들은 미국식 코미디

라고 해야할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니터에서 제각기 재생되는 애니메이션을 한 편씩 보느라 다소 힘들었다.

  

(이 외에도 장내에는 많은 모니터들이 비치되어 다양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데

끝없이 반복재생되며 '시작'''을 구분하기 어렵고, '소요시간'이 표기되지 않아 

선뜻 보기 망설여지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엔딩'은 표시되었다.)

 

섹션 6 : 영화 속 주인공 (FILM CHARACTERS)


팀 버튼의 데뷔작 (1985)부터 가장 최근 작품인 (2019)까지 그의 영화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섹션이다영화의 콘셉트 드로잉, 회화, 대본, 스토리보드 등을 통해 팀 버튼의 상상 속 아이디어가 스크린으로 펼

 

 잘린 내용은 아마도 '펼쳐진다'가 아닐까요.

당황스럽지만, [네이버 미술·전시]에 소개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래서 다음 [박스 안의 글]은 모두 제가 직접 메모한 내용들입니다. 참고해주세요.

 

많은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공간이 아닐까.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유령 신부, 프랑켄 위니에 실제로 촬영되었던 인형과 

소품이 전시되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슨트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배우들이 

온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과연 맞는 말이다. 영상 속에서 움직이던 인형들이 

정교한 자태로 투명한 상자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섬세하고, 또한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답게 다양한 표정의 얼굴(흡사 가면 같은), 

신체 부품까지 함께 전시되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유령 신부인형이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

 

단순히 영화소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몰랐을 것이다. 영상으로는 몇 차례나 보았으면서도, 결코 알지 못했던 것.

 

 

섹션 7 :


팀 버튼은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그냥 놓치지 않았다. 스케치북, 호텔 노트지, 식당 냅킨에 담긴 그의 드로잉들은 팀 버튼의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담고 있다. 영화 촬영은 물론, 필름 페스티벌, 영화 홍보투어 등 감독으로서 세계여행이 일상이었던 그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영감들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상상력을 펼쳐왔다. 팀 버튼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은 이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미공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냅킨에 그린 스케치도

아직 발표되지 않은 작품의 제법 섬세한 설정과 조형물까지 전시되어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로 3, 세로 15열에 이르는 똑같은 모양의 액자와 

그 안에 담긴 냅킨이었다. 냅킨 안에는 때로 흑백으로 때로는 컬러로, 팀 버튼의 스케치가 

가득 담겨있었다. (심지어 맞은 벽면에 3X15 하나 더 있음.)

 

늘 작품을 구상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혹은 그냥 눈앞의 흰 여백을 가만두지 못하는 그림쟁이들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 전부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스케치들이었다.

 

*Burtonesque, 버트네서크, 팀 버튼의 양식을 뜻하는 단어로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은 팀 버튼 만의 독창적인 세계관 혹은 시각적 스타일을 의미한다.

 

'○○의 양식'을 뜻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가 창조되었다. 르네상스 풍도 아니고

바로크 풍도 아니고, 오직 작가의 이름을 딴 양식을 일컫는 단어다. 분명 모든 작가가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양식을 사랑하는지, 그의 양식을 닮아보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섹션 팀 버튼 스튜디오


팀 버튼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계획하고,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고독한 예술가이다. 차에서든, 집에서든 팀 버튼은 종이에는 펜으로 캔버스에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작업할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을 확보한다. 거기서 대본, 무대 디자인 등 영화를 완성하기위해 필요한 모든 작업을 검토하고 진행한다.

 

브라질에서 소개되었던 벽화 스케치나 곧 넷플렉스에 공개되는 그의 신작 <웬즈데이>까지, 코르크 메모보드에늠 팀 버튼의 최근 프로젝트의 탄생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붙어있다. 책상 위에는 미술도구 외에 다양한 소품들이 놓여져있다. 이 방은 한번도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 없는 팀 버튼의 개인적인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그가 작업할 때 즐겨쓰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이 마지막 공간에서 팀 버튼의 삶과 예술적인 정신을 느껴볼 수 있다.

 

가장 마지막 섹션. 이 곳은 팀 버튼의 작업실을 재현해놓았다

직접 방문한 팀 버튼은 "정말 똑같아요! 단 실제 제 방은 좀 더 어질러져있죠."라고 말했다고.

 

그의 책상과 그가 사용하는 도구들, 영감을 주는 조형물들과 벽면에 기대진 코르크 보드

그리고 최근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수십 장의 스케치가 있었다. 신작 웬즈데이에 대한 스케치

요즘 시국 탓에 산책 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강아지, 그리고 아마 한국의 지하철을 묘사한듯한 도형들

그것들을 추측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가 한결 가깝게 느껴질 때쯤

팀 버튼의 인터뷰 영상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의 철학과 열정이 묻어나는 인터뷰 내용이 무척이나 좋았지만

나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부분만 필사하기로 했다. (장시간의 관람으로 지쳐있었다)

 

 

어린애들에게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취한 상태로 집에 와서 집을 엉망진창으로 박살내는 가족이나 친척이에요.

그게 애들에게 무서운 거예요, 괴물이 아니라!”

 


조금 뜬금없다 느껴질 수 있지만, 아이들과 아이었던 기억이 있는 어른들은 격렬히 공감할 것이다.

아이에게 가장 상처주는 존재는 다름 아닌 어른들이었다. 가족(가까이 있는 어른)일수록 더더욱.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살벌한 분위기, 얼음장 같은 집안에서 움츠려 들어야 했던 환경

칭찬과 격려 없는 나날. 냉소, 무시. 무지각한 편애, 무분별한 애정(=폭력).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을 

찔러대는 날카로운 창이다. 그로 인해 굴 소년과, 벌룬 보이, 독 소년을 비롯한 아이들이 탄생했음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메시지가 아니다.

 

팀 버튼은 경고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영화/전시를 보러오며 '아이들이 기괴한 형상

괴물들에 겁먹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른들에게. 정말로 아이들은 괴물들에 겁먹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전시장에 머무는 2~3시간동안 괴물 보고 울며 자지러지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마도 이따 집에 가서 '오늘 뭐 봤어! 말해봐! 정확하게!'라고 다그치면 울긴 할 것이다.)

 

 

팀 버튼은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로한다

상처 받은 아이를 그대로 가슴에 품고 자란 어른들도 위로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팀 버튼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쉽게 꺼내놓지 못한 누더기 심장을

누군가가 천조각과 바느질로 꿰매어 만들어두었다.

내 심장은 아니지만, 내 심장 같아서 반갑고 친숙하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다.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가여운 내 분신의 형상.


전시 리뷰: 팀 버튼 특별전마침.

 

 

마무리하며

 

이번 전시에서 특히나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하나씩 남겨봅니다.

한 명의 관람객 의견이니 필요하신만큼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았던 점 (유지되었으면 하는 점)

 

전시관 내 촬영금지

: 덕분에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요즘 전시에 SNS인증은 필수라고 하지만

그 열기가 과하여 관람 분위기 자체를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이를 방지하는데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전시장 외 포토존

: '요즘 SNS 인증 못하면 전시장 안 찾을 것이다'라는 우려는 이렇게 해소하면 된다고 봅니다

'포토존의 완벽한 분리' DDP는 전시장을 찾아오는 길(안마당), 입구 옆 공간(그림자 괴물 인증샷),

출구 앞 공간(대형 조각품) 등 곳곳에 포토존을 마련하여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아쉬웠던 점 (개선 되었으면 하는 점)

 

원작자 표기 유실

팀 버튼은 본인이 원작자로서 영화를 제작하기도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가져와 영화화하기도 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원작자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하는 편이 

관람객에게 더욱 풍부한 문화정보를 제공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가령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경우 원작자는 소설가 '로알드 달', 

원화가는 '퀜틴 블레이크'입니다. 두 작가 모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뛰어난 작품들을 다량 선보였습니다. 아직 그들을 모르는 관람객(특히 어린이 관람객)이 

있다면 팀 버튼과 함께 다른 훌륭한 작가들도 알아갔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제작자/제작사 표기 유실

이번 팀 버튼 특별전에서는 놀랍도록 다양한 구조물들이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전시장 내 천장에 닳을 듯 거대하게 구현된 '생명체 시리즈'는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구조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팀 버튼이 만들었을까?'

 

팀 버튼이 동료와 함께 했다면 그 동료의 이름이 궁금했고, 다른 작가/제작사에게 주문한 것이라면 

그 이름 역시 궁금했습니다. 책 한 권을 만들 때에도 작가뿐만 아니라 편집자·기획자·표지그림·일러스트레이터·인쇄소 등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처럼, 이런 멋진 구조물들을 어루만져 빚어낸 손의 주인- 그 이름들이 궁금했습니다.

 

이상입니다. 현재 DDP에서는 장 줄리앙 : 그러면 거기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지요. 이 전시 역시 무척이나 훌륭합니다. 아직 안 가보신 분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요, 저도 조만간 그곳에 다녀온 후기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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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캡틴.

 학교 및 도서관을 비롯한 각 기관 곳곳에 

 초청 강연을 다니곤 하시는 캡틴, 오 마이 캡틴. 



 오늘은 친구를 만났던 소식을 전해드리려고요.

 근 1년간 서로 안부만 전하다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혹여 대화거리가 떨어져 서먹해질까 좀 준비를 해 갔습니다.

  

 《도망가자 Run with me》선우정아 지음, 곽수진 그림, 2021

 《산책 Promenade》 이정호 지음, 2016


 너무 좋은 그림책들이라 사실 어제 만나고 또 보는 거였더라도

 챙겨갔을 겁니다. 캡틴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좋은 책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녀석이니까요. 


 그런데 저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특히 서로의 '친구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여행을 가는데 휴대폰은 두고 왔으면서 스파이더맨 인형은 챙기는 친구,

 자취를 하는데 냉장고에 편의점 봉투째 넣어서 보관해버리는 친구, 

 덕분에 여행 단체사진마다 인형이 찍혀서 볼때마다 킹받게 되는 친구,

 덕분에 냉장고를 열어보면 봉지째 유통기한이 지나 있어 매우 킹받는...  


 누가 누가 더 굉장한 친구인가 대결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이 있으며, 둘 다 '나 아니면 누가 얠 챙기나'

 라는 마음으로 지내는 덕에 친구는 '우렁각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더군요.

 친구도 저의 근황을 듣더니 저 역시 우렁각시가 아니냐고 웃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캡틴도 저를 '우렁집사' 내지 '작은집사'라고 부르셨는데

 역시 사람은 좀체 바뀌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도 뒤늦게 드는군요.)


 그렇게 정신없이 웃긴 친구들 이야기, 재밌게 본 영화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챙겨온 그림책들이 뒤늦게야 생각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꺼내보이자

 친구도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하더군요. 


 "아, 그림책이 이렇게 큰 거였지."

 "아니, 이 책이 유독 큰 거야..."  


《산책》을 보고서 한 말이었습니다. (좀 크긴 하죠)

 그리고 선우정아 님의 책을 보고 놀라워하더라고요. 


 "내가 아는 그 선우정아?!"

 "와 이거 내 친구 애창곡인데."라며 역시 반가워하고요.

 찬찬히 넘겨보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달까요.

  

 (그리고 전공수업과 전공책의 무게에 어지간히 시달린 탓인지

 "그래, 책의 질감이란 본디 이런 한 것이었지...! 종이...!"

 라던가 하는 반응에서는 말 그대로 '웃플' 수밖에 없더군요.)

   

 선우정아 님의 노래〈도망가자〉의 가사에 곽수진 님이 그림을 그린

《도망가자》는 참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이미 독자적으로 완성된 가사에

 그림을 더한다면 단지 보조적인 장치로만 그치지 않을까-라는 기우는 정말

 괜한 것이었어요. 그림만 따로 보더라도 독자적인 스토리가 완성되는,

 기존의 '그림책'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그림책이라고나 할까요.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을 보조하지 않고, 글은 그림을 보조하지 않는다. 

 서로는 '보조'하는 관계가 아니라, '둘 다 있음'으로써 온전히 완성되는 것이다.

 즉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다."


 유리 슐레비츠의 정의를, 저는 나름대로 저렇게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발전이란 멈추지 않는 거라서, 이렇게 '각자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붙여놓아도 온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사례를 보게 되어 놀랍기만 했습니다.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는 아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우리를 위로하는 내용이죠.

 곽수진 님의 《도망가자》는 어느덧 나이를 많이 먹은 반려견과의 애틋함을 그려낸 것이었습니다.

 그 둘을 함께 보았을 때, 힘든 나(독자)에게 어떤 형태(반려동물, 친구, 연인 등)로든 

 '도망가도 돼. 너무 힘들다면'라고 말해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는 게 너무나 좋았습니다.


 《산책 Promenade》은 이정호 님께서 글과 그림을 모두 함께 완성한 것이라

  또 그만의 특색이 있었지요. 위 책과 반대로 그림의 내용이 앞뒤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마치 미술관의 액자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오래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게 된답니다.


 "이 그림 속에 있는 거, 다 '책'인 거 알았어?"


  친구의 눈이 접시처럼 커졌습니다. 

  산, 케이크, 호수, 눈밭… 이 모든 것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이거든요. 


  서둘러 다시 책장을 넘겨보는 모습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그리고 앞서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었습니다.


  "멋지다… 마치 거대한 전공책의 산앞에 무력한 나 자신 같아."

  "이것도… 겹겹이 쌓인 책 속에 내려치는 벼락같은 전공책…."

  "오, 이것도. 저 광활한 하늘이 마치 나의 전공과 같군."

  "저 별도, 저 우주도…."


  (그, 그만해 美친자야…!)

  -아무쪼록, 학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참으로 고된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

 

 이 친구는 열여섯 살 때부터 알아온 녀석입니다.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되었지요. 그제나 저제나

 언제나 학업에 짓눌려(?) 있다는 게 참 안쓰럽기 하고

 애잔하기도 합니다. (저라고 그와 다를 바는 없습니다만)


 오랜만에 보니 키가 좀더 자라고 

 얼굴 윤곽이 좀더 또렷해졌을 뿐 (10키로 빠졌대요)

 사려깊은 성품과 현명한 면모는 그대로인지라

 언제봐도 반갑고 소중한 친구입니다.


 캡틴, 당신께선 꼭 한번 이 친구를 보신 적 있었죠.

 고등학교 강연 때 말입니다. 강연을 들은 친구가 제게

 '이런 강연을 들었는데 혹시 전부터 말하던 그 분이 아니냐'

 라고 물었고, 이름을 들은 저는 깜짝 놀라 맞다고 했었죠.


 단순히 강연만 들은 게 아니라 간단한 문답도 나누었고,

 이 얘길 전해들은 캡틴은 '그래, 기억이 난다'며 웃으셨죠.

 바로 그 친구였어요.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쉬운지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 친구는 언제보아도 열여섯살 그 모습 그대로인거 같거든요.

 캡틴을 떠올릴 때도 처음 만난 그 해 그 모습으로만 기억되고요.


 그래서 햇수가 얼마나 되었는지, 셀 필요도 필요하단 생각도 들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소중한 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문득 또 떠오르고

 문득 또 연락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P.S.

 그리고 막상 만나고보니 할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장장 카페에서 4시간을 이야기했더라고요. (기록입니다, 기록)

 책 얘기 뿐만 아니라 근황 얘기 (지난달 한라산 오르며 초코바 10개 먹은 얘기, 

 너도 가다면 꼭 초코바, 아니 '쫀득한 초코칩' 필수라는 얘기-그맛을 잊을 수 없다며),

 즐겨보는 유튜버 채널 이야기 (너도 그거 봐? 너도? 야 나도…), 영화 이야기…. 

                                                                 정말 정말 많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근황과, 책 이야기와, 잡다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참, 이토록 잘 놀고 왔으면서 편지 제목은 왜 이렇냐고요? 사진을 보세요.

오늘 첨부한 사진은 편지 본문과 좀 관계가 있습니다.


실은 저도 여행 때 인형을 챙기는 타입이거든요. (스파이더맨은 아니고,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대학교〉의 마이클 와조스키 인형입니다.) 

그래서 친구의 친구, 휴대폰은 두고와도 '가장 아끼는 인형'을 챙고오고픈

마음을 백분 공감할 수 있었거든요. (친구야, 보고 있니…?)


아무튼 싱글벙글, 유쾌한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기록해두고 싶은 하루요.

(사실 이것도 많이 생략된 것이지만)


그럼 캡틴, 근래에 일교차가 너무 심하더라고요.

햇빛이 닿는 곳은 뜨겁고 바람을 세차게 불어서 순간 

나그네가 된 것인가 착각이 들만큼 놀라운 날씨더라고요. 


모쪼록 건강 조심하시며 지내시길 바랍니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던 봄날, 사무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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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캡틴, 마이 캡틴.

올해의 벚꽃도 잘 보셨나요. 이번에도 변함없이

교정 가득히 흰 벚꽃이 만발 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어째서인지 올해의 봄날이 무척 기다려졌습니다.

아무 것도 약속된 것이 없는데,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데

왜 그렇게 기다려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음 편히 봄날을 만끽한지가 무척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어처구니 없어 할 정도로 

올해의 저는 많은 벚꽃 명소를 돌아다녔습니다.

당연히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면 십중팔구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었죠.)

그래도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벚꽃은 당연하지만 눈이 부시게 예뻤고, 예뻤습니다.



어느날은 늦장을 부리다가 그만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행길이라 헤맨 탓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다행히 어느덧 해가 많이 길어져 

노을이 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고요.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방향을 짐작하여 천천히 걸어올랐습니다.

'○○동 벚꽃길'이라고 불리는 명소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정확히는 등산로 입구와 동네 사이에 자리한 짧은 나무계단길이었습니다.


사진 속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몇번이나 지도를 확인해보았습니다. 

드디어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한 뒤 고개를 들었습니다. 좌우로 늘어선

낮은 가옥들… 그들이 조용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골목길과 한낮의 빛.

분명히 처음 오는 장소인데, 어째서인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물지 않은 하늘, 소란하지 않은 공기. 

분명히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인가(人街), 동네.



아주 예전에, 당신의 뒤를 쫒던 소년시절에 거닐어본 기억이 났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늦봄, 평일, 대낮, 비슷한 장소.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일을 하러 떠난 조용한 동네.

벽화로 유명하여 주말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는 곳.  


그곳으로 저는 여행을 떠난 적이 있죠. 정확히 당신의 수업과제 때문이었는지,

당신이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골목길 여행〉이란 주제의 책 때문이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아마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캡틴, 당신 때문에 떠난 여행이었고,

당신 덕분에 떠났던 저의 첫 여행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저의 고향은 '내 방'이었죠. 

(내방동이 아니라 진짜 제 방, My Room말입니다.)

극도의 내향인인 제게 제 방은 완벽한 세계였으니까요.

곁에 책이 있다면 어느 곳에도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믿었는데,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무턱대고 그렇게 떠났던 것 같습니다. 


숨이 찼고, 더웠습니다. 무작정 걷는다는 건 

좀 무모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낯선 골목의 흰벽에 반사되던 빛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눈이 아리도록 부십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여행.



그 길을 걸으며 줄곧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과제 구상…이라기보다 내가 본 것들을 어떻게 

당신에게 전해줄 것인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제출해야할 과제도 없는데 

어째서 줄곧 캡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연히, 계절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가끔은 거의 똑같은 결과값을 내기도 하는 거니까….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걷는 내내 이 이야기를 

당신께 편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그리운 봄날이었습니다.


화살과 같던 햇살이 사실 누군가가 

돌려놓은 시계바늘이었던 것처럼.



*


캡틴, 올해도 따뜻한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봄날의 새벽, 사무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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