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저의 생일이 다가옵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체로키 족의 방식대로

 '작은나무'가 알려준대로 "태어난 계절이 곧 그의 생일"이라면.


 당신의 계절은 온통 연두빛 물드는 여름이요, 

 저의 생일은 전부 새하얀 겨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겨울이 다가오며 저의 생일 역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전에 달력 상의 생일을 헤아릴 때에는, 

 나의 생일과 당신의 생일 때 작은 조각 케이크를

 사다가 캡틴의 연구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이 아이는 언제나 생일이면 케이크를 사들고 와요."

 라고, 언젠가 동시간대 방문한 손님에게 그렇게 소개할 정도로

 어느샌가 그렇게 기억될 정도로, 저는 집요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저만의 문화'였습니다.

 "생일에는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라는 강박에 가까운 인식과

 "생일 음식을 (다른 사람이) 많이 먹어주면 장수한다"는 

 아주 어린시절 들었던 기억 등이 뒤섞이고 버무려져 

 "생일 케이크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라는 결론이 나온 것 같아요.


 그래서 매번 조각 케이크를 포장해 들고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홀케이크였다면 좋았겠지만 캡틴이 서재 한켠 냉장고에서 묵혀 버리는 음식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보다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조각 케이크 1개도 채 다 드시지 못한 적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진짜 딱 1조각'만 포장해서 가져간 날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드시겠다고 냉장고에 넣어두지 못하게 할 심산이었나봐요) 


 그날도 당신은 수많은 업무에 치여 파도에 휩쓸려가는듯 했고

 저는 바다와 같은 서재의 책들을 찬찬히 구경하며 기다렸습니다.

 책장를 둘러보며 새로운 책들과 익숙한 책들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을 방문하고 캡틴을 기다리며 밟는 당연한 수순과도 같았습니다.


 케이크 포장 상자를 열어보시고 

 당신이 건넨 말씀이 "반씩 먹자"였는지 

 "너 먼저 먹으렴"였는지, 둘 다 였는지는 헷갈립니다.

 하지만 적잖이 당황해했던 기억은 분명히 납니다.

 

 '아니, 캡틴 온전히 드시게 하려고 하나 사온 거라구요...!'

 라고는 미처 말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반으로 나누고', '먼저 먹고', 그리고 다시금 기다렸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마침내 서류의 산에서 빠져나온

 캡틴은 물끄러미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안 먹었구나." 

 

 '아니 저 정말 먹었...?'다고 이번에는 말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믿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캡틴은


 투명한 플라스틱 포크를 쥐고 1/2조각 남은 케이크를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 1/4조각 케이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함께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로써 행복한 결말 :D 




 이라기엔 웃지 못할 에피소드입니다만

 그래도 어째서인지 자꾸 웃음이 납니다.  


 매년 생일이 되면 조각케이크를 사다가 캡틴에게 달려가야할 것 같은데.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려서, 

 언젠가 찾아뵙는다면 체면 때문에라도 

 큼지막한 홀케이크를 사다 가겠지요. 

 (그래요, 이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철부지 꼬마와 나눠먹던 

 1/4조각 케이크를 캡틴은 기억하실런지요.

 당신은 그것이 1/4조각이었는지도 몰랐겠지만. 

 아니, 혹시 아셨으려나요.



 당신의 수업에서 다뤘던《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제가 처음 읽었을 때의 나이는 열 네살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작은나무의 할아버지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전부 그대로 믿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일어나라고 한 다음날 아침 

 일부러 집 벽에 몸을 부딫히는 등 갖은 수선을 피우다 

 덕분에 잠이 깬 나(작은나무)를 발견하고 "아니 정말 일어났구나!"

 라며 놀라시는 걸 보고 뿌듯해했던 작은나무와 마찬가지로.


 

 캡틴은 '함께' 나눠먹고 싶어했던 

 어린 저의 마음을 알아주셨던 걸까요.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물론 진짜 몰랐을 수도 있지만요.)


 기억을 더듬으며 흐릿해진 부분을 되짚느라 

 여러 번 헤맸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캡틴께서 

 '정말 맛있겠다'라고 말씀하셨던 케이크가 

  포슬포슬한 연노랑 고구마 맛이었다는 겁니다.



 다음 번에... 다음 번엔 다시금 한 사람당

 한 조각씩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가겠습니다.

 여전히 고구마 맛을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 캡틴, 다가오는 겨울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작년보다 늦게 찾아온 겨울이 이번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지내시길, 포근하고 따뜻한 겨울 되시길 바랍니다.



 -12월의 초겨울, 사무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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