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이환희.이지은 지음 / 후마니타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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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그 아이들 중 누군가 아픈 기색을 보이는 날,

또 꼭 오늘 같은 날이 아니더라도 이따금씩

내 삶에 깊숙이 들어온 것들을 떠나보내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때마다 ‘만나면 헤어진다’는 정해진 삶의 공식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2017.05.27.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2014년 1월부터 2019년 7월까지 동료 직원들과 ‘지속가능한 책읽기’ 라는 독서 모임을 운영했었다.

한 달에 한 권 선택해서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던 모임이었다. 이 책의 두 저자는 우리 모임의 핵심 멤버들이었다. 모임에 처음 참여할 때만 해도 그저 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가능’ 할 것만 같던 그들의 사랑은 환희 씨가 2020년 뇌종양으로 사망하면서 너무 빠른 이별을 맞이한다. 결혼 이후 환희 님이 우리 모임에서 탈퇴한 게 2017년 3월부터였으니, 난 그와 고작 20개월 정도를 알고 지낸 셈이다.

20개월의 인연으로 그의 인생에 대해 내가 뭐라 말할 수 있겠냐마는, 그의 죽음 이후 보도됐던 언론 기사들과 그를 아는 사람들의 애도 글이 SNS에 쏟아지는 걸 보며 새삼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성 역할의 고정성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정말 싫어했던 사람,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사람, 나만큼이나 윤종신의 노래를 좋아한 사람, 언제나 예리한 발제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던 탁월한 식견의 남자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반려자인 지은 님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행복한 남자.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는 그런 '환희' 님을 좀 더 내밀하게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지은' 님은 '환희' 님이 남긴 수많은 글을 추려서 모았고, 거기에 지은 님이 애도의 글을 남기는 형식으로 책이 만들어졌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글이라 객관성이 모자란 평일 수 있겠으나, 책을 읽으며 이 책에 우리 사회가 가진 수많은 문제가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숨겨진 폭력에 대해서,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여성 노동의 부당함 등등, 이들 부부는 ‘결혼하면 원래 다 그래’라는 말속에 숨겨진 비수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싸우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행동했다.

(개인적으로 환희 씨가 주장한 대로 ‘남편과 아내 각자 자기네들 집으로 보내기’ 운동은 대찬성이다!)

예전에 우린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었다. 우리가 얘기했던 리뷰를 모아서 책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말만 하지 말고 바로 만들어야 했나 보다. 나만 쏙 빼고 환희 님, 지은 님 둘이서만 알콩달콩 예쁜 책을 만든 듯해서 샘난다. 언젠가 지은 님도 가고, 나도 가고 다른 멤버들도 다 가고 나면, 그때 저 위에서 다시 ‘지속가능한 책읽기’ 모임을 만들어 볼까 고민된다. 이름값은 해야지.


세상 모든 것이 당신을 부른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노래를 듣가가도 문득 정신을 놓고 멍하니 서서 당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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