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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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이 호기심 주욱 잡아당기는 책이다. 표지와 글씨체도 심각하거나 무겁거나 하지 않게 생겼다.  후루룩 읽었다. 하지만, 가볍지는 않았다.

물론 책은 경쾌하다. 시원스레 이야기를 뽑아내고 있고, 꼬거나 메타포를 등장시켜 사람 머리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 소녀의 몸놀림이나 말투와 표정이 읽히고, 짐짓 자깝스런 아이의 고민이나 문제 해결법이 명쾌해서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 조금 아쉬움이 일긴 했지만 가볍게 읽었다.

그런데 덮고 나서가 문제다. 만일 이 상황을 어린 소녀가 아니라 어른이 겪는다면, 어땠을까? 아이의 낙천과 여유가 없는 어른들에게 있을 수 있는 상황. 아니 문제는 이미 오늘을 사는 어른들이 수만히 부딪히는 상황이란 것이다. 
'소녀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만 연구하면 그만이지만, 삶의 무게를 지닌 어른들은 어떻게 한담? 게다가 솔직하지도 못하고, 양심이란 거추장스런 껍질도 얄팍해진 어른. 신뢰할 만한 조력자를 알아볼 만큼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아져 버렸거나, 그 조력자를 만난다 해도 마음을 열 수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시선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때론 희망적이기도 한 것 같다. 
'복잡하게 따지면서 뭉개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구. 난 어른들의 그 모양이 답답해서 보기 싫단말이야.'. 그런 얘기를 던지는 듯도 싶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 주인공 여자아이가 마음 속 구슬을 깨뜨리면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얘기가 나온다. 삶이 무거울 때 상상해 본다. '내 마음 속 구슬은 다 깨어져 버린걸까? 아이들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없을까? 그럼 나도 내 마음을 위로 받을 개 한 마리 훔쳐 위안을 얻을 수 있을텐데.' 하는 부질없는 상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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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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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자신의 존재 이유 삼아 살아가는 예술가는 그 성품이 어떻든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바람의 화원을 보면서 주목하는 몇 가지 것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림에 대해 갖는 그 절절한 마음이다. 한 작품 한 작품으로 세상에 던지는 이야기의 절박함과 그를 드러내기 위한 거침없는 실천이다. 예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예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예인의 방식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는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쿠르베는 사실주의 선언문에서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풍속과 관념, 사회상을 오직 나 자신의 평가와 판단에 의해 표현하는 것,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상상으로 왜곡하지도 않는다“ 라고 밝혔다. 쿠르베는 또 '지금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그리기 위해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열린 눈이다. 그러러면 머리가 아닌 눈으로 세상을 응시해야 한다.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예술가만이 살아 있는 진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고 선언했다.

쿠르베처럼 세계의 이목이 모두 몰려든 만국박람회장 앞에서 개인전을 열고, 선언문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같은 19세기 조선의 화단에 이런 예술가들이 살았다는 것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물론 <바람의 화원>은 소설이며, 작가의 상상력이 불러낸 화인들의 모습이지만, 소설 속에서 재해석된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을 보는 것으로도 그들의 예인으로서의 존재감은 충분하다. 

신윤복이 두려움 없이 세상사의 장면을 보고 그리는 것, 눈으로 본 것은 사소한 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려 하는 것,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내면과 전부를 보기 위해 정향을 찾아가 밤새 그를 만나고서야 화폭 안에 그를 살게 하는 것 이 모든 예술 실천이 <바람의 화원> 안에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신윤복의 그림을 알아보는 김홍도의 눈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도화서의 경직된 눈으로 비판하는 화인들 앞에서 "여기 있는 화인들 가운데 누가 그림 한 장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가?"하며 호령하는 장면은 예인의 단단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화원시험에 논란의 소지 분명한 그림을 그려내는 신윤복의 마지막 붓 끝까지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밀만큼 감동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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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 문파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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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책이라니 눈길이 갔다. 
1920년대 말 일본.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휘젖고 다니던 탐욕은 자기 나라 노동자들을 짐짝처럼 실어내 오츠크로 몰아간 게잡이 배 안에서도 야만스런 본성을 드러낸다.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면서 고향을 등지고 꽁꽁 얼어버린 남의 나라 바다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수시로 코 앞에서 죽음을 만나면서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지내온 '나라', '노동자'.. 들을 재인식한다. 

고바야시 다키지가 의식적으로 당시 일본 사회를 고발하면서 쓴 책이라지만, 80년 전 '게공선' 속에서 오늘의 우리 모습을 본다. 가족을 먹여살리거나 자기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조차도 금기가 되고 죄악이 되는 현장이 겹쳐진다. 100일을 굶고 싸우며 노동조합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눈길 거슬리는 물건 하나 치우듯 하는 오늘, 일하면서 얻은 백혈병으로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데도 모르쇠로 발뺌으로 버티는 기업이 있는 오늘.... 
그래도 그 오늘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날 세운 80년 전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은 답답함 가운데 만나는 작은 희망이다.

게공선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나오지만 그 안에 후쿠다나 이치로들은 없다. 등장인물들에 이름이 없다. 철저히 집단의 집단을 위한 이야기를 쓰려든 작가의 의지 때문이다. 그 어떤 개인도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가 후쿠다나 이치로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이 부분은 <게공선>을 읽고 남은 아쉬움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니 말이다. 

그렇지만 80년 전에 서서 오늘을 보여주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책이다. 
 

위 글은 http://blog.naver.com/winwinte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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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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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삶을 낱낱히 보여주는 건 별로다. 그렇게 세세하게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확 다르다. 아마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마주 앉아서 ’잘 봐. 너 지금 그 나이에, 네가 가진 거. 네 하는 짓...’ 정색하며 따지고 들었으면 난 벌써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찼을 거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지만 위화는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난 삼남매의 가운데 였다. 이상하게 막내보다 내가 먼저 났지만 이상하게도 군더더기 같은 느낌이 내 어릴적을 따라다녔다.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눈치를 보느라 쭈뼛거려야 했다.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랐지만, 난 식구들과 떨어져서 할머니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랑비 속의 외침> 은 내 어릴적 모습과 겹쳐지면서 시작됐다. 

가족들을 떠나 혼자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손광림은 그 덕에 세상과 사람을 객관화 할 수 있는 눈을 갖는다. 안타깝게도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슬픔도 맹맹하게 다가 오지만 애정도 알듯모를듯 희미하기만 하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어느 한 귀퉁이도 봐주고 넘어갈 데 없는 패륜아며, 형은 나약한 위선자이고, 어머니는 구질구질하고 비겁한 화상이다.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면서도 세상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손광재의 죄의식 없는 폭압은 힘없는 가족을 구석기의 무덤처럼 짓누른다. 그런데 광폭한 손광재가 집 밖으로만 나가면 초라하고 가련한 인간의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나약한 위선자인 형은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마다 않는 용기를 드러낸다. 아버지 손광재의 손아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어린 손주를 방패막이 삼는 할아버지 손유원의 추레한 이마와 굽은 등에는 한 생을 노동에 바친 깊은 주름과 고단이 실려있다.

못나고 비루하고 비겁하고 포악해도 저마다 삶과 부딪히고 세상에 휘둘리며 생겨난 상처를 붙들고 바둥질치는 절실함이 있다. 그렇게 얼크러져 가족의 역사를 이루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먼 발치에서 떨어져 보면 비루해 보이지만 그 삶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심장 뛰고 땀 흘리는 사람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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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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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게는 이름이 없다  - 낙천이 주는 힘

' 이게 진정한 구질구질함이야.' 위화의 인물들이 그렇다. 
구질함이 도를 넘어서 해탈이 보인다. 위화의 인물들은 알몸이다. 고전주의 작가들이 신화 속 인물들을 지상에 내려놓고 그린 우아한 알몸이 아니라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등장하거나 에곤 실레의 그림 속 '사람'들 처럼, 때로는 이중섭의 그림 안에서 나무를 타고 멱을 감는 아이들 모양의 알몸이다. 
땀 냄새 거름 냄새 물씬 풍기고, 흙먼지 뽀얗게 뒤집어 쓴 채 세상과 사람들 속을 뛰어다니는 인물들은 고매한 철학 보다도 삶과 사람의 근본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내게는 이름이 없다>는 위화의 단편 모음이다. 형제가 많은 집에 주목 받지 못하는 자식, 먹을 것이 넉넉치 않은 집에서 뭐 하나 하는 것 없어 그저 군입 취급을 받는 노인, 가족이 있어도 비빌 언덕이 되기는 커녕 수렁으로 밀어넣기나 하고, 처음부터 가족이나 이름 따위는 없이 동네의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책 안에 그득하다. 

책을 읽다 보면 목울대를 넘어가던 코피의 찝질한 맛이나, 흙바닥에 넘어져 깨진 무릅팍 상처의 얼얼하고 억울하던 아픔, 먼지 섞인 눈물이 입꼬리를 타고 들어오던 기억들이 되새김질 된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혼란과 고통 그리고 어지러웠던 내 일상이 인물들을 거울 삼아 튀어 나온다.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작은 용기가 고이는 게 느껴진다.' 내게도 이들처럼 잡초같은 생명력이 있지.'  하는 격려같은 거 말이다. 땅에 발딛고 사람들과 부비적 거리며 살아가는 동안 슬그머니 단단해진 뼈마디나 근육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낙천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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