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옷
김정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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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큰아이는 38도 열감기에 둘째아이는 이유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다. 다 읽으려면 며칠 걸릴까 고민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펼치고 마지막까지 읽은 후 덮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앉아 있는 둘째에게 딸기를 챙겨주고 태권도장 다녀온 첫째에겐 따뜻하게 전기장판을 켜주고 이부자리를 봐주었다.



작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에 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인공 삶도 그렇다. 한국에서 미국을 거처 영국, 프랑스에서 마무리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 싶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변 누군가의 삶을 재구성한건 아닐까 했다. 어떻든간에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덮고 나면, 마음을 날카로운 칼로 한 장 한 장 저민듯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인물들 삶이 그랬다. 지금 내 눈 앞에 고민들은 정말 우주의 먼지 정도 되는구나 싶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6.25때 부산 피난 시절, 국제시장을 기억한다. 대여섯 살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칠십중반 정도일 것이다. 딸 셋 집안 아버지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떨어져 살다 영영 같이 살기 힘들게 되었다. 엄마는 재혼했고, 자매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큰 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맏딸이 되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떠나 공부를 하게 된다. 원래 유학 목적지는 더블린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각자 저장방식이 다르다. 더블린 세글자를 보는 순간, 난 TV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 생각났다. (기존의 한국 가수들이 인지도 전무한 해외로 떠나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들은 버스킹을 했다. 영화 '원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공간은 풍경과 음악으로 저장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바람의 옷'여주인공이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나은 공간이라는 기억이 추가될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더블린으로 왔다. 그 후 5년 동안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또 한 아이와 시부모님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남편과 자신이 낳은 아이가 그의 첫 아이가 아니라는 걸. 사촌누이와 남편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 동안 남편에게 얇은 막이 느껴졌던 건,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온전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따뜻하지 않아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처럼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본문 중에 자신의 업보를 아이에게 물려주어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 떠올랐다.

170쪽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목격한 것을 자신의 나름으로 저장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각자가 목격한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나 역시 내가 맞닥뜨렸던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해 기억한다기보다 그것이 그때 내게 남긴 인상, 후유증, 아니면 그 여파를 기억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목격하고 무슨 일을 기억하건, 언젠가는 어딘가에 가서 닿고야 만다. 결국, 끝내, 누구나 같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행로로, 어떤 시간에 도달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정말 그럴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너무 가볍게, 또는 너무 무겁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54쪽
사람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렇게 대단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속물들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소박한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기 때문이다. 많이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왜 많은 걸 빼앗긴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고 있었다. 왠지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내용에 같이 정리해두고 싶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중
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당신에게 불현듯 휘몰아치는 깊은 고독과 쓸쓸함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외로워지거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번 좌절하거나.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이 책은 가장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고, 고독한 무인도에서 허황된 기대와 함께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 이것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바람의 옷> 속 주인공들은 외로웠다. 그들은 온전히 혼자임을 말하고 있다. 뒷 부분에 친구 혜주를 회상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상상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 그리고 화방의 그 젊은 남자에게 이야기가 와닿기를 바란다.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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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걱정하는 연습 - 생각이 많아 섬세한 사람들을 위한 일상 안내서
이나 루돌프 지음, 남기철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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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에 여러 종류가 있다. 학교 다닐 때 돌이켜보면 그렇다. 교과서로 학교에서 공부한다. 집에 돌아와서 교과서를 읽으며 개념을 이해한다. 전과 등 세부적인 설명이 있는 문제집을 풀어본다. 시험치기 전에 대략적인 설명과 연습문제가 많은 문제집을 한 번 더 풀어본다.


이 책은 연습문제가 많은 문제집이다. 자세한 상황 설명과 그때 감정,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나온다. 부제가 '생각이 많아 섬세한 사람들을 위한 일상 안내서'이다. 시험치기 전 갈무리 문제집과  교과서, 참고서는 다르다.

각 장마다 실전에서 적용해볼 수 있게 질문이 나온다.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다르며 같은 책을 읽더라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스스로 선택이다.



작가 이나 루돌프는 TV탤런트이자 영화배우, 심리코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책 전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코칭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그 내용을 풀어간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 싶었다.

91쪽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만 않는다면 솔직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92쪽
피해를 입지 않는 한 상대방을 상냥하게 대하는 건 그리 곤란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즐겁기도 하다. 다만 친절한 태도를 보일 때의 마음은 가식이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서로 싸울 일도 없고,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여유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솔직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94쪽
당연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솔직해서는 안 된다. 솔직함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127쪽
특별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
타인의 비판이 시작되면 내가 할 일은 없다.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그의 감정을 이해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비록 나를 비판하는 발언일지라도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고 친숙해질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비판 속에 숨 쉬고 있는 진실-

책 속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밤늦게 들어오는 딸을 향해 야단치는 어머니, 사실 딸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강연 후 솔직한 피드백, 강연자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피드백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비판할 때는 잠시 멈추어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말이다.

152쪽
다른 사람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나까지 기분이 나빠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내 일만 하면 된다.

154쪽
상대가 반드시 나를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가 나를 이해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미 겪었듯,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이해 여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를 이해하고 말고는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나름대로 노력했으며 이제 현실적인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도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인정하라-
155쪽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느끼고 싶으면 그들을 존중해 그들의 일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나 혼자 처리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다.

-나를 머리 아프게 하는 생각들로부터 멀어지는 방법-
167쪽
감정이 달라지는 것은 스스로 내 생각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들을 믿지 않으면 그 생각들은 나에게 달라붙지도 않고, 죄책감을 주지도 않는다.
168쪽
생각은 붙잡지만 않으면 왔다가 다시 사라진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증명되지 않은 과도한 생각-
171쪽
증명도 되지 않은 과도한 생각은 나를 음울한 기분으로 몰아넣고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일정한 거리를 두면 내 생각이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74쪽
내 생각은 물론 타인의 생각 또한 믿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무시한다거나 내 생각이 편파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은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생각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것은 없다. 한두 가지 정보를 얻기만 해도 생각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변경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움직이는 생각에 나를 내어줄 필요는 없다.

177쪽
스트레스를 받는 생각이 떠오를 때 그런 생각으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나보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 생각이 전부 진실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법-
181쪽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꿋꿋하게 내 갈 길을 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러면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일을 고쳐 써보기-
181쪽
슬프고 고통스러운 지난 일이 아직도 생생해서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고쳐 쓰기를 해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실행해보자.
1단계,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2단계,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쓴다. 당신은 거기서 무얼 얻었고 보았으며 배웠는가? 유용하고 실용적인 측면이 있는가?
이것을 하다 보면 어떠한 일이든 다른 측면을 내포하고 있으며 경험한 모든 것이 유용하고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183쪽
내 생각을 믿지 않으면 걱정할 일이 없다. 끔찍하게 불길한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한 발짝 물러나 서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하, 이건 상상일 뿐이야' 또는 '아하! 이거 정말 끔찍한 상상이군!'하고 말이다.
상상 이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내버려둘 것인가?
194쪽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느긋하게 내버려두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195쪽
쓸데없는 것으로 나를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면 머리 아프게 만들었던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간단히 그렇게 될 수 있다. 내가 원치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진정 하고 싶으면 그때 하면 된다. 내가 원할 때 일을 하면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216쪽
삶이란 물처럼 흘러간다. 나도 함께 흘러간다. 타인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충돌하거나 붙잡거나 변화를 바라거나 내 맘대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217쪽
세상의 온갖 색깔도,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취미들도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 어느 것이 옳은 건지 결정 내리면 안 된다. 나는 이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며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나는 세상의 일부로서 세상 어느 것과도 뗄 수 없는 관계다.

224쪽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나 자신이 내 편을 들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나를 짓밟지 못한다. 뒤바꾸기를 한 번 더 해보자.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기-

책을 읽으며 소제목들이 와닿았다. 여러 심리서의 실전문제편이라 생각하고 읽고, 다 읽고 난 후 굵은 글씨 내용들을 휘리릭 한 번더 읽어보니 머릿속 걱정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내용을 신경쓰지 않는 법,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라는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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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강병융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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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이거 무슨 맛이고?"
둘째 어린이집 하원 후, 마을 도서관에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어떤 엄마가 과자를 한 봉지 사왔다. 그 중 아이들이 특히 재미있어하는 간식이 있다. 전화기 모양인데 카드를 넣으면 노란 동그란 알과자가 나온다. 한 엄마가 하나를 씹고는 그렇게 말했다.
또 다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 맛에 불량식품먹죠."

소설도 그렇다. 연애소설, 역사소설, 창작소설 등등 여러가지가 있으면 불량식품같은 소설도 있다. 이책이 그러하다. 병맛소설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이렇게 소설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작가소개 사진을 보다 깜짝 놀랬다. 페이스북 친구추천에서 추가한 분이 아닌가. 그때는 슬로베니아 류블라냐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라고 되어있길래, 외국계시는 분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책 저자였다.

표지와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상상이 갔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불량식품인 걸 알면서도 맛을 보게 되니까.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우라까이는 신문기사를 모아서 단편으로 만든 것이다. 일부를 발췌하면 이렇다.

*우라까이 : 원래 기자 세계의 은어로 '기사의 내용이나 핵심을 살짝 돌려쓰는 관행'을 으르는 말입니다만, 최근에는 그냥 '기사 베끼기'를 통칭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쓴 것이 '절대'아닙니다. 2008년 2월 25일부터 2013년 2월 25일까지의 기사들을 '복사하고(ctrl+C), 오리고(ctrl+T), 붙여서(ctrl+V) 만든 일종의 '(복사하고 붙여서 만든)복붙소설'입니다.

36쪽
해충 쥐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소망으로 바라던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디 중병 걸렸나?"마치 놀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정치에 대해 많이 알거나 예리하게 말할 능력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지난 10년 두 아이를 키우며 산 엄마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며 울컥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여러 단편 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가 그랬다. 

아마 호불호가 많이 나뉠 책이다. 그리고 기존 소설 패러디한 부분은 원작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불량식품을 입에 넣으면 여러가지 맛이 난다. 신맛, 단맛, 짠맛 등 이 책은 딱 그러하다. 

불량식품 같은 책을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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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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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쪽
"우리는 모두 보잘것없다는 것. 정말로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들이죠. 특별한 척해도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아등바등 살아가요. 어떻게든, 그저 존재를 확인받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존재를 어떻게 확인받아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뭘 확인받느냐고요." (.....)
"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무서운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만 반복이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100쪽
미안해. 나 아줌마들이 애 낳고 힘들단 뻔한 소리 하는 거 정말 듣기 싫었거든. 그런데 그 힘듦의 본질을 깨달았어. 그냥 육체가 힘들고 잠을 못 자서가 아니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화장실 가는 그 몇 초. 밥 한 숟갈 목구멍 넘기는 그 순간. 냉장고 문 열고 물 한 번 마시는 그 잠깐. 그런 순간 조차 좌절돼. 그런 사소한 행동이 하나하나 저지당하고 울음과 떼쓰는 소리로 멈춰지고 그런게 반복되잖아? 사람이 미친다. 농장에선 그냥 내 노동력의 속도와 숙련도를 높이면 됐거든. 그냥 힘들어도 꾹 참고 더 많이 하면 되는데, 이건 아니야. 고도의 심리적 고문이지. 진째 왜 옛날 아줌마들이 애 들쳐업고 밭에 나갔는지 알 거 같다니까. 차라리 밭 나가서 애 휙 던져놓고 일하는 게 나을걸. 거기다 남편이란 새끼는......"



82년 김지영은 울면서 읽었다면 88년 김지혜 이야기인 [서른의 반격]은 다르게 풀어간다. 책장을 덮고 나면 뭔가 후련하다. 그런데 가볍지 않다. 그래서 좋다.

택시 운전사였던 아버지, 지금은 어머니와 딸기농장을 하신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계열사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10개월차에 정직원이 된다. 부장은 나가기 전 지혜씨에게 이야기한다. 세상은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행동들에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내 몫이다.

우연히 아카데미 우쿨렐레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춤추겠다고 유학을 가버린 아내,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남은 아저씨, 아이가 사춘기가 되자 아저씨는 외로워졌다. 홀로 먹방을 한다. 그는 요리를 했었다. 고생해서 떡볶이에 딱 맞는 장맛을 완성했다. 그런데 훌쩍 동업자가 앗아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

지혜 동생 지환은 대학을 가지 않았다.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정비소에서 일하다 영업사원이 되고 실적도 좋다. 목표도 뚜렷하다. 그가 말한다.


"난 사실 인문학이 무슨 뜻인지도 몰라. 요새 좀 유행하는 단어 같긴 한데, 잘난 척하면서 사람 기죽이고 싶을 때 들이밀면 되는 말 같더라? 근데 그거 알아? 인문계 나온 사람들 팔십 프로가 논대. 한마디로 사회에 전혀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거지. 누나처럼 말야."(122쪽)
"난 그게 다 겉멋으로 보여. 티비나 문화강좌에서는 핫해 보여도 현실에서는 인문대생은 아무도 환영 안 해주잖아. 허구한 날 뉴스에 나오는 거 못 봤어? 대학생들 비싼 등록금 내고 도서관에선 책도 안 빌려간다며. 다들 스펙인지 뭔지 쌓느라고 수험서나 파고 있다며. 근데 현실에선 왜 그렇게 인문학 운운하는거지?" (123쪽)
"내가 보기엔 다 허영이야. 그나마 최소한의 돈과 여유라도 있어야 하는 허영. 죽어라 자격증 따고 영어 점수 올려도, 막상 회사 들어가면 일이란 사람과 사람이 하는거거든. 하다못해 좌판에서 물건을 팔아도 판을 어떻게 짜서 어떤 물건을 배열하고, 누구한테 어떤 물건을 팔아야 잘되는가를 알아야 해. 사람을 알아야 한다고.(.......)


지혜씨가 정직원이 된 후 강의를 기획하게 된다. 그렇게 선정된 강사는 알고보니 학창시절 자신을 그렇게 처참하게 만들었던 이였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어디까지 짓밟을 수 있나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다. 


지혜는 단 한번도 자신을, "나도 지혜야"라고 말한 적 없다. 지혜는, 그냥 지혜였다. 내가 백사장에 깔린 모래알 중 하나에 불과했다면 그 애는 고유명사였고 굵은 대문자로 써진 이름이었으며 오로지 그녀 그 자체였다.(152쪽)

지혜는 이야기했다. 강사가 된 지혜에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얼마나 부당한지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둘이 친구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그 악몽을 이제는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혜는 깨닫는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아도 되는구나.


232쪽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이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책 마지막 줄이다.
그런데 왜 책 속 지혜씨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밝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82년생 김지영은 그렇지 않았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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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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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쪽-61쪽
의뢰받은 일은 지인들에게 이혼 보고를 하는 편지였다. 결혼 볼고라면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혼 보고 편지에 관한 주의 사항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밖에 없다.
내용이 너무 감상적이어도 좋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사무적이어도 좋지 않다. 의로인인 전남편 얘기로는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린 직후, 하객들에게 정중하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참고로 부부에게 자식은 없다. 이혼 원인은 전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라고.
"그런데 일방적으로 아내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
"써주십시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행복한 결혼 생황르 보냈다는 사실도 꼭 써주었으면 합니다."

.
.
그렇게 멋진시간을 쌓아왔는데 아주 잠깐 일어난 인생의 장난 때문에 평생 함께하기로 맹세했을 부부가 어이없이 이혼했다. 결혼도 이혼도 경험한 적 없는 내게는 무언가 신기한 세계였다. 나는 아직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전 남편은 내 눈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편지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잘 부탁합니다."
메일로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이혼 보고를 굳이 정식 편지로 전하려는 걸 보니 아주 예의 바른 사람같다.


결혼을 약속했던 소꿉친구에게 안부를 전하는 편지, 돈을 빌려달라는 걸 거절하는 편지, 친구였다가 인연의 끝을 알리는 절연편지 등등 츠바키문구점에 다양한 사연으로 포포(하토코)를 찾아온다.


할머니를 선대라 부른다. 무척 엄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엇나갔다. 선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참 후 돌아왔다.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그 인연이 끝어진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선대가 살아계실 적 펜팔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이탈리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단단했던 할머니 속살이 드러난 편지였다. 그때 포포 마음이 말랑해지기 시작했을까.



그러나 어쩌면 세상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연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다 보면, 설령 혈육인 가족과는 원만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지지해줄지도 모른다.(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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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말이죠.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답니다. 깨달았다고 할까, 딸이 가르쳐주었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하기 보다 지금 손에 남을 것을 소중히 하는 게 좋다는 걸요. 그리고......"
모리카게 씨는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어부바를 해주었으면 다음에는 누군가를 어부바해주면 되는 겁니다. 나도 아내가 많이 업어주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당신을 업고 있는 거랍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모라카게씨가 말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다음에 꼭 가마쿠라에 여행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는 책 번역이 끝난 후, 그곳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 마음이 뭔지 알겠다. 가슴속에 따뜻한 몽글몽글한 그것을 찾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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