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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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나였다면? 아마도 과거 기억을 지우러갔을거 같다.



 좋아하는 책인, [당신의 완벽한 1년]작가다. '샤를로테 루카스'라는 필명으로 냈다고 한다. 작가에 대한 글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뻔 했다. 그런데 그 책과 이 책은 시간과 기억이라는 단어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당신의 완벽한 1년에서는 남자친구를 잃는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친구에게 1년 계획이 완벽하게 짜인 다이어리를 선물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간다. 그 남자는 다이어리에 적힌 대로 인생을 산다. 1년 동안.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여주인공 찰리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명문고에 진학한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환경 친구들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첫 남자친구와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을 놓고 살게 된다. 원나잇스탠드 남자는 수도 없이 많고, 친구의 남자친구와도 밤을 보낸다. 그랬던 그녀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을 선택할 기회가 왔다. 


고등학교 때 그 기억을 지운다. 그랬더니 현재가 바뀌었다. 영화 [어바웃타임]이 생각났다. 과거를 바꾸었더니, 현재 달라진다. 첫사랑 남자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 기억을 지우기 전, 매달 생활비에 쫓기던 모습이 아니었다. 경제력이 있는 남편과 직업이 생겼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고 싶은 인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버릴 기억은 없다고.
 원래는 직장상사이자 친구인 팀을, 남편 회사 사장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우린 친구고 가까운 사이라고 말이다.  그의 도움으로 지운 기억을 다시 찾게 된다. 

122쪽
"누구나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이 꽤 있죠. 언젠가 실패했던 일들 말이죠. 민망하고 창피했던 모든 사건들,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 수 있다면? 만약 그런 모든 일을 우리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마치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138쪽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인생은 수백만, 수천만 개의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무한히 많은 숫자 조합이 가능한 숫자 자물쇠처럼 말이죠.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갔을 때와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거죠. 출근을 단 5분만 늦게 했어도 우리의 남은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쳤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결과가 따르죠. 당신의 흉터를 예로 들어볼까요?"

317쪽
나는 아직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모리츠에게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멋지고 성공한 친구들과 멋지고 성공한 아내와 함께 멋지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는 그다지 멋지지 않다. 매일 아침 체중계 바늘이 점점 더 위로 올라가는 것과 비례해서 나를 향한 모리츠의 사랑은 하루가 지나갈수록 식어갔다. 식을 게 아직 남아 있다면 말이다. 

373쪽
"어떤 일들은 바로 우리 코앞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우리가 걸려 넘어져도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어."

381쪽
"이제 그만 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네가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뒷부분에 지은이의 말이 나온다.
386쪽
팀 크라머의 완벽한 모델이 되어준 멋진 스벤 하르트비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은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났지만 우리들의 가슴속에, 당신의 아들 라세 안에 그리고 이 소설 안에 계속 살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작가가, 찰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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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사전 -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한
치아(治我) 지음 / 책들의정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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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두 가지에 놀랐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더니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자가 여자일거라 착각했는데 내용흐름상 남자분이라는 걸 알았다. 임경선작가님께서 메트로에서 캣우먼으로 활동하실 때처럼 여자분이줄 알았다. 고정관념이자 착각이었다.

한국 상담학회 정회원 등 

저자 치아(나를 다스린다) 저자 블로그 orichia.blog.me

245쪽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이고, 내 마음 속에 변화가 생기면 그 생각의 변화가 나의 행동을 바꾸고, 나의 변화된 행동이 내 주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바꿉니다. 간혹 내가 바뀌어도 주변은 바뀌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이미 나의 마음이, 나의 행동이 변했기 때문에 주변 따위 바뀌지 않아도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바뀌어야 하는 나의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가 주체적이며 긍정적인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일을 첫 번째로 하셔야 합니다.


238쪽
부탁드립니다. 내가 꼭 지키고 싶었던 나만의 신념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절대 타인이 원한다고, 타인이 비난한다고, 내 신념을 포기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만약 내가 생각해도 그게 잘못된 신념이었고 이제는 정말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신다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바꿔 가면 됩니다.
어찌 되었건 달라지는 건 없고, 우울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인생의 낡은 부품 하나, 수많은 인간관계 중 고작 하나가 갈아 끼워지는 것 뿐이며, 교체되고 나면 이전처럼 내 인생에는 ‘해피엔딩’만 남을 테니까요.


234쪽
결혼은 영화에 비유하면 ‘등장인물도 평범하고, 내용도 부실하며, 재미도 없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라도 기대 없이 보러 들어가 오히려 그 영화의 빈 곳을 상상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완성도 있는 경험을 하는 분들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야 말로 “결혼은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매력적인 연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게 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이후로 두 사람이 늙을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13_'알아서 해 주겠지'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249쪽
자존심이 과도하게 강한 분들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남에게 아쉬운 말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포기하고 안 하고 말지,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내가 특별하게 노력하거나 고개 숙이지 않아도 주변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떠받들어 주었고 나는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따라가기만 해도 되었으니 아쉬운 말이나 행동이 결코 익숙할 리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항상 그렇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대부분은 서로 주고받는 영향 속에 변화, 발전해갑니다. 그러니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부사이라도 대화하지 않으면 상대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알아서 해주겠지." "내가 이런 것까지 요청해야도ㅣ면 그저 일대일 인간관계일 뿐입니다.  해? 비굴하게."라는 생각이 드실지 모르지만, 부부는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맞추고 살 없는 관계입니다. 
결혼 전 아무리 대단했던 분이라도, 결혼해서 부부가 되면 일대일 인간관계일 뿐입니다.

두 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잘 통한다."라고 셨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내가 가진 불만과 상대가가진 불만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서로 이해하고 둘 다 적극적으로 맞춰주려고 노력하기 위한 대화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넌지시'는 의미가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게 있다면 진심으로 들어줄 의향이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91쪽
과거에 대한 기억이 어떻든 간에 지금의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종이에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곁들여 작성하면 더 좋습니다.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면 또 한 장의 종이에는 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내가 하면 좋을 ‘위시 리스트’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개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면서도 즐겁고, 하고 나면 자부심을 갖게 될 내용이면 더 좋겠죠. 그리고는?
 하나씩 실천하는 겁니다.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본인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랬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이제라도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주체적으로, 내가, 내 인생을, 나 스스로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을 말하고 있었다. 타인과 관계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나와 나 자신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볍게 접근했지만, 책을 덮을 때는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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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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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눈길을 끌었고, 표지를 보고 내용이 궁금했다. 부부 작가다. 평소 서로 영역에 침범하지 않는다. 글만 읽어도 서로 정말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앞 부분에 나온다.
" 이 글은 부부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온 격투의 궤적이다."

비슷한 부부도 있겠지? 아마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이해하지 못하고 지적하느냐에 따라 부부싸움 횟수가 달라진다. 이 부부처럼 글쓰기로 대화를 나누는 부부들이 많이 있을까? 평소는 뱉고 나면 흩어지는 말들로 대화한다. 주워담을 수 없다. 한 단어 한 단어 심사숙고하며 고를 수도 없다. 부부는 일상생활이다. 부딪히고, 또 겪는다.

남편에게 제목을 보여주는 순간 그런다. "이 부부 아직 아이 없지?" 그에게 부부는 아이를 낳은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 둘로 나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연애 할 때는 비슷한 점을 찾는다. 결혼하면 다른 점이 더 크게 보인다. 이해하기 힘들고 다투게 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도 많다. 인생 상당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부부마다 겪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작가 부부는 책추천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마지막에 갈수록 궁금해졌다.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지.

249쪽
이렇게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진 부부이면서도 같이 사는 이유는 (적어도 한 명은)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로 나는 결혼한 뒤 예전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던 여러 가지 것에 흥미가 생겼다. 인간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흥미의 방향이 뒤틀리는 일을 고통스럽게 느낀다. 이렇게 다른 쪽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일도 많다. 역시 소박하게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다"생각하면서도 "이상하네" 중얼거리긴 하지만.
 혹시라도 우리 집은 '상호 이해가 달성되면 해산'이 돼어버리는 가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호 이해를 위한 연재는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그런 면에서 우리 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쉴 새 없이 공준분해되는 듯한 연재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내에게는 다양한 뉘앙스로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담아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남편의 마무리가 와닿았다. 어쩌면 부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더 힘들겠다 싶었다. 있는 그대로 모양을 관찰해보는 것에서 시작하는게 나을거다. 연애 때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는 순간부터 결혼은 시작하는거니다. 그래서 더 힘들다. 나와 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멀리 있으니 말이다. 놓칠까 두려움에 휩싸이면 스스로 보호하게 된다. 서로에게 독한 말을 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까이 가서 관찰하고 보듬어주기 전에 더 벌어질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이면서 돌아서면 남남이 되어 버리는 관계.




일본 작가 부부가 연재하는 내용이었다. 같은 학교 출신 부부 번역가가 작업했다. 책 맨 뒤에는 작가 부부 대화도 있고 번역가 부부 대화도 있다.

글쓰는 부부들의 생각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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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든 인생은 자존감에서 시작된다 - 내 삶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이끌어갈 단 하나의 선택
남인숙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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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듯, 작가님들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 다르다. 남인숙 작가님 글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싶은 부분이 많다. 얼마 전 읽은 ‘우아하게 걱정하는 연습’에서는 작가 본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네이버오디오클립 ‘정.신.여.고’(정신과 의사가 여러분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듣는 거고 이건 책으로 읽는거다. 

독자마다 책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중개업자처럼 책을 대한다. ‘여긴 역세권이라 가치가 높아요. 평당 천만원 넘어요.’, ‘여긴 뭐 평당 오백원요. 누가 사겠어요.’ 
 다른 이들은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책을 대한다. 어떤 땅이든 파다보면 값진 보물이 나올 수도 있다. 보물이 있는데도 내가 땅을 파지 않아 못 찾을 수도 있고, 정말 좋아 보이는데 아무 것도 없을 수 있다. 

타인의 삶도 그렇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없다. 다만 내 삶에 참고할 수는 있겠지.

이 책은 총 5장으로 나뉜다. 1장 타고나지 못한 자의 희망, 2장 내 안으로 떠나는 여행, 3장 편견없이 나를 인정할 것, 4장 나를 위해 용기를 내다, 5장 나를 위한 성을 짓다 이다. 책 속에 다양한 사례가 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어떤 사연은 나와 비슷한 모습이다 싶은 경우가 있었다. 나는 이런 마음이었는데 타인의 눈에는 저렇게 비추었겠구나, 싶었다. 철저하게 제3자 입장에서 정리해놓으니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19쪽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맥락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뚜렷이 알고 있기 땜누에 그에 맞게 일관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은 한 가지 행동과 그다음에 따라오는 선택이 맥락 없이 뚝뚝 끊어져서, 전체적으로 뭘 하려는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기인의 행동 양식과도 다르다. 특이한 가치 체계를 가진 기인들의 행보 역시 예측할 수 없을 뿐, 나름의 맥락이 있다. 
 맥락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자기 이해에 따른 철학과 행동 양식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기분이나 상황 혹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판단을 내리고 움직인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게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203쪽
신기한 것은 타인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품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세상과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나는 것인데 그것이 단절되었으니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생각의 초점이 정확히 자신을 향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이 종일 생각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어떤 것’이다.
 내 자아를 지탱시켜 줄 최소한의 관계조차 없다고 느낀다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나는 정말 엉망이야’하며 내 안의 문제에만 집착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라. 그리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되짚어라. 다른 원인을 찾기 전에 이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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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
김정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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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큰아이는 38도 열감기에 둘째아이는 이유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다. 다 읽으려면 며칠 걸릴까 고민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펼치고 마지막까지 읽은 후 덮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앉아 있는 둘째에게 딸기를 챙겨주고 태권도장 다녀온 첫째에겐 따뜻하게 전기장판을 켜주고 이부자리를 봐주었다.



작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에 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인공 삶도 그렇다. 한국에서 미국을 거처 영국, 프랑스에서 마무리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 싶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변 누군가의 삶을 재구성한건 아닐까 했다. 어떻든간에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덮고 나면, 마음을 날카로운 칼로 한 장 한 장 저민듯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인물들 삶이 그랬다. 지금 내 눈 앞에 고민들은 정말 우주의 먼지 정도 되는구나 싶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6.25때 부산 피난 시절, 국제시장을 기억한다. 대여섯 살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칠십중반 정도일 것이다. 딸 셋 집안 아버지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떨어져 살다 영영 같이 살기 힘들게 되었다. 엄마는 재혼했고, 자매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큰 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맏딸이 되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떠나 공부를 하게 된다. 원래 유학 목적지는 더블린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각자 저장방식이 다르다. 더블린 세글자를 보는 순간, 난 TV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 생각났다. (기존의 한국 가수들이 인지도 전무한 해외로 떠나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들은 버스킹을 했다. 영화 '원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공간은 풍경과 음악으로 저장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바람의 옷'여주인공이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나은 공간이라는 기억이 추가될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더블린으로 왔다. 그 후 5년 동안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또 한 아이와 시부모님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남편과 자신이 낳은 아이가 그의 첫 아이가 아니라는 걸. 사촌누이와 남편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 동안 남편에게 얇은 막이 느껴졌던 건,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온전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따뜻하지 않아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처럼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본문 중에 자신의 업보를 아이에게 물려주어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 떠올랐다.

170쪽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목격한 것을 자신의 나름으로 저장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각자가 목격한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나 역시 내가 맞닥뜨렸던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해 기억한다기보다 그것이 그때 내게 남긴 인상, 후유증, 아니면 그 여파를 기억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목격하고 무슨 일을 기억하건, 언젠가는 어딘가에 가서 닿고야 만다. 결국, 끝내, 누구나 같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행로로, 어떤 시간에 도달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정말 그럴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너무 가볍게, 또는 너무 무겁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54쪽
사람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렇게 대단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속물들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소박한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기 때문이다. 많이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왜 많은 걸 빼앗긴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고 있었다. 왠지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내용에 같이 정리해두고 싶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중
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당신에게 불현듯 휘몰아치는 깊은 고독과 쓸쓸함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외로워지거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번 좌절하거나.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이 책은 가장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고, 고독한 무인도에서 허황된 기대와 함께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 이것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바람의 옷> 속 주인공들은 외로웠다. 그들은 온전히 혼자임을 말하고 있다. 뒷 부분에 친구 혜주를 회상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상상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 그리고 화방의 그 젊은 남자에게 이야기가 와닿기를 바란다.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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