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 발짝만 더 갔더라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 가슴에 끌어안았을지도모른다. 그러나 내 속에 남아 있던 이성이, 아직 극복하지못한 모든 것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거는 것에 반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짧은 순간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의 모든 생명을 눈에 담고 매력을 서로에게 발산하며,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저항하며,그러다 나는 굉장한 의지의 힘으로, 그리고 동시에 갑작스러운 실망의 씁쓸함을 맛보며 돌아서서 가버렸다. 여전히 침묵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말을 할 수 없었던 걸까?
그리고 그녀는, 왜 그녀도 그렇게 말이 없었을까? 왜 그녀는 그렇게 매혹된 눈으로 내 앞에서 말없이 뒤로 물러섰을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마치 쇠가 자석에 끌리듯 그렇게 무심하고 불가피한 맹목적인 이끌림이었을까? 우리는 한 번도 얘기를 나는 적이 없다. 우리는 완전히 이방인이다.하지만 어떤 영향력이, 거인의 손아귀처럼 강력한 힘이 말없이 함께 휩쓸렸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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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기는 일본
현해탄 너머 
나라를 사랑하려는
나의 슬픔을
이 나라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 이 땅에서
흙이니 물이니 하늘이니 구름,
혹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조국을 사랑할 순 없다

나에게
조국을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
나에겐
조국을 느낄 살갗이 없다
- P59

대학 교단에 서면서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이다.그는 지식이 한없이 세분화되고 부품화된 현대 아카데미즘의 존재 방식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역사 서술이나 문학에 있어 지배층의 이야기에 피지배자 측의 대항적인 이야기를 대치하는 것이 미래 인류의 새로운 보편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는 일본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지배층의 이야기에 대한, 재일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입장의 대항적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 P53

복수의 아이덴티티를 끌어안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그야말로 분열된 상태다. 그 복수의 아이덴티티가 서로 대립하는 것일 때 자기 분열의 고통은 한층 심해질 것이 뻔하다. 구 식민지에서시작된 디아스포라는 누구나 이러한 자기 분열의 고통에 시달리고있다.
- P54

나는 엄숙한 사념으로 가득 찼다.
나는 어디서 어떤 실천을 해야할까? 한시바삐 ‘원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찬 반도‘로 건너가 그 땅의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싸워야 하는 것 아닐까? 

참다운 현장에서 처절한 투쟁을 할 때 비로소 나의 문학도 존재할 수 있으리라. 일본이라는 허구의 현장에 얽매여 있으면서 도대체 무슨 문학을 할 수있다는 건가?-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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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꿨던 ‘진짜 부모님은 동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돈 많은 부자나 귀족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겨우 일고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몽상을 했던 것일까? 누군가 "어린아이의 세계에 민족 차별이란 없다" 고 했다. 그 말은 진정 사실일까?

실제로 당시 어린 나의 머릿속에 민족이나 국가 같은 거창한 관념은 싹트지않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주위의 아이들과 다른 소수파라는 사실은 잘 알고있었기에 그 점을 막연하게나마 불행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쉽게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아니 세상에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소위 오염된 공기를 호흡하는 것처럼 이른 세계에 가득찬 고뇌와 비애를 그 작은 몸에 받아들이는 듯하다.
- P46

1970년대말, 당시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던 셋째형이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아니었다.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
이라 부르던, 수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편지였다.

나는 곧바로 형의 이 말을 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항변의 여지가 없었다.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P146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소외의 상황을 의식하는 일이야말로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전진이란 다름 아닌 답답하고 옹색하게 굴절된 일상에서 광활한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인적 인간의 승리." 일본사회 한 구석에서 끙끙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재일조선인인 나 역시도 그 승리의한 자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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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설과 현실의 관계는 단선적인 반영의관계가 아니라 섭취,흡수,소화의 관계인 탓에 확실히 소설에서 현실의 인력을 투명하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자본의 활동이 초국가적,전지구적 층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그것의 운신과 패악도 점점 미시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던 시대에 소설은 그 금지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제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이제는 현실과 실재의 간극을 인식하는 것이 성숙한 소설의 덕목이 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상호작용과 생산과정에서 연루된 현실적 사람들의 사회적 현실인 반면, 실재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것을 결정하는 자본의 냉혹하고 ‘추상적인‘ 유령적인 논리이다."(지젝)

재현의 구성적 요소이지만 그 자체 재현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실재라 명명한다면, 오늘날 초국적 자본의 전방위적 인력이야말로 실재의 심급을 차지한다.그것이 재현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우리는 현실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무중력공간‘이 존재한다고 간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P42

살아갈수록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 몽롱한 것들과 확실한 것들. 희뿌연 것들과 뚜렷한 것들은 뒤섞인다.
‘살아갈수록‘ 이라든지 ‘뒤섞인다‘ 같은 말들은 사실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다.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은 살아갈수록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뒤섞여 있는 것이며,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것들을 분별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토기』 79쪽)- P45

김훈의 인물들은 영웅이 되기보다는 다만 자신의 삶의 구체성들에 충실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 할 뿐이다. 이순신은 바다의사실에 입각할 뿐이고, 우륵은 소리의 본질에 충실할 뿐이며, 인조는임금의 도리를 다할 뿐이다. 그들의 내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담론은 그야말로 고담준론이다. 

이는 김훈의 소설이 정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좋다. 그의 소설들은 근본적으로 반정치적소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적인 소설로 읽히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의미심장한 경향 중의 하나는 정치에 대한 거부다. 마치 정치 같은 것은 본래 없었다는 식이다.
- P55

" 가을이 오듯 한 생명은 죽는다." 바로 이것이 김훈의 소설을 막막하게 만든다. 역사와 자연의 우열이 전도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이런 식으로 김훈의 역사소설은 역사소설이되 역사의 목적과 진보를 승인하는 역사주의 와는 무관한 곳으로 간다. 

그는 이미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인간으로부터 역사를밀쳐내버릴 것을 도모" 하였다. 이 반(反) 역사주의가 내장하고 있는 사관은 차라리 ‘자연사(自然史)‘의그것에 가깝다. 굳이 명명해야 한다면, 그의 소설은 ‘역사소설‘ 이 아니라 ‘자연사소설‘ 이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무상한 것이라는 인식이 소위 ‘자연사의 이념‘ 이다.

역사는 몰락의과정일 뿐이고, 역사가 남긴 것은 잔해와 파편일 뿐이라는 인식이 그이념 안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특정 시기의 국면을 인류 역사 전체로 확대해서 일반화하는 무지의 소치이며, 역사의 진행을 무위로 돌리는 반동적인 입장인가.- P57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끝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우는 울음이다. 이 울음이인간과 역사에 대한 필사적인 진정성의 표현이자 순도 높은 예의가 될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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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첫 문단은 EL 코닉스버그의 《클로디아의 비밀 (1967)이다.

클로디아는 촌스러운 옛날식 가출은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등에 배낭을 메고 씩씩거리면서 집에서 탈출하는 일 말이다. 클로디아는 불편한 걸 정말로 싫어했다. 심지어 소풍도 지저분하고 불편해서싫었다. 그 모든 벌레들이며, 컵케이크 위로 끈끈하게 녹아내리는이싱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클로디아는 자기의 가출은 어딘가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생각했다. 되도록 넓고 안락하며 실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름다운 공간이라면 더 좋겠다. 그래서 클로디아가 집을 나와가기로 한 곳은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 P164

인터넷은 모든 일에 "나"를 적용한다. 인터넷은 누군가를 지지하면 자동으로 그들의 경험을 나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게한다. 연대는 정치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고 그것은 일상생활에서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최대한 성취된다.

경찰의 탄압에 맞서는 흑인의 투쟁과 신중하게 고른 스타일리시한옷을 입어야만 무시당하지 않는 과체중 여성의 행보를 지지하고 싶은가? 인터넷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이들과 연대를 표하는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대를표현하라고 권한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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