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쓱이와 싹싹이
오세나 지음 / 달그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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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의 캔버스처럼 결이 살아 있는 패브릭 커버다.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질감 덕분인지 네 살 아이도 이 책은 유독 조심스럽다. 책을 펼치기 전, 꼭 묻는다. “엄마, 이거 봐도 돼요?”

그런데 그렇게 고상한 표지를 넘기면 예상 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연필, 지우개, 사인펜이 티격태격 싸우는 하찮고 또 하찮은 이야기. 콧구멍 크다고 놀리고, 작다고 또 놀리면서 시작된 다툼은 “나 너랑 안 놀아”라는 폭탄 발언으로 이어진다. 감정은 쌓이고, 글씨는 덧칠되고, 지우개는 또 그걸 박박 밀어버린다. 아이들의 싸움 방식이 이보다 더 정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단순한 갈등 속에는 반전이 있다. 연필은 덧칠하면서 글자를 지우고, 그 까만 바탕을 지우개가 지우며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연필과 지우개의 역할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걸까.
어쨌건 그 갈등의 흔적은 곧 상상의 바탕이 되고, 필통 속 작은 문구들은 어느새 공책 위 바다를 누비는 생명체로 변한다. 아이는 깔깔깔, 신나게 웃는다.


겉은 조심스럽고 단정하지만, 속은 유쾌하고 자유롭다. 

《쓱쓱이와 싹싹이》는 아이들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싸움과 화해, 말실수와 후회, 그리고 “미안해, 괜찮아, 고마워” 같은 단순하지만 중요한 말들을 다시 꺼내게 한다. 아이에게는 감정의 언어를, 어른에게는 관계의 용기를 건네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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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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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자들을 대신해서 말한다.

이 소설은 시에 관한 소설이다.


#서평단 


셀레스트 잉의 『우리들의 잃어버린 심장』은 잊혀진 이름과 사라진 목소리를 시와 사랑으로 다시 불러내는 깊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잃어버린 시를 찾아가는 길 위에 서 있는 마거릿이자 버드가 되었다. 엄마와 아이,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세상의 무게를 동시에 품으며, 존재의 흔적과 기억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시간.

소설은 가까운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정부의 억압과 검열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저항을 그린다.

엄마 마거릿이 아이 버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견뎌내는 작은 ‘지도’에 다름 아니다다.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만 비로소 우리는 잊히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울린다.

‘나는 네가 단지 자라난 어른이 아니라, 스스로를 키우는 사람(grower)이 되길 바랐다’는 엄마의 바람은 이 소설이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 자기 삶의 주체성과 용기에 대한 묵직한 질문임을 보여준다. 버드가 더치스와 함께 ‘세상이 불타고 있다면 너도 밝게 타올라야지’라는 말을 나누는 장면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존엄 그 자체이다. 

우리에게 잃어버린 감정과 용기, 그리고 인간다움을 다시 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라고 재촉하는 이야기.


“잃어버린 시를 찾아가는 길, 나는 마거릿이고, 버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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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오카모토 유지 지음, 최종호 옮김 / 진선아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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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기차 타고

#서평단《기차를 타고》는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를 담은 그림책이다. 아빠와 아이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풍경 속을 지나간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일상 나들이를 기록한 듯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발휘된다. 장면 하나하나에 담긴 미묘한 변화와 연결, 그리고 목판화 느낌이 나는 정갈한 그림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 페이지를 채운다.

책은 기차 여행의 목적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창밖에 펼쳐진 삶의 조각들—빨래 널린 마당, 자전거를 타는 사람, 논밭에서 일하는 이들—을 그저 조용히 보여준다. 인물을 중심에 세우기보다 풍경과 사람들의 관계를 드러내며, 그림책 속 시간은 연속된 삶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특히 앞에서 스쳐 지나간 인물들이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독자 스스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립하며 따라가게 만드는 구조적 매력을 지닌다.

이 책은 아이에게는 단순한 ‘기차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지만, 어른 독자에게는 삶이 흐르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성찰을 건넨다. 아무 설명 없이 등장했다가 연결되는 인물과 배경, 시간을 들여야만 드러나는 세부들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관계의 형성과 축적을 닮아 있다. 감정보다는 관찰에 기반한 서사가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기차를 타고》는 거창하지 않아 오히려 특별한 그림책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 설명 없이 연결되는 삶의 조각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말 거는 그림이 빛난다. 목적지보다 풍경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조용한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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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선생님 노는날 그림책 24
사비나 콜로레도 지음, 세레나 마빌리아 그림, 김여진 옮김 / 노는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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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누군가에게 선생님이었나요?
#서평단


『안녕, 나의 선생님』은 한 명의 학생도 없이 시작된 선생님의 이야기다.
가르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지도를 펼쳐 들고 세상으로 나선 이 인물은, 정작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 여정은 점차 목적을 잃고, 대신 삶의 감각들로 채워진다.산양이 다니는 눈 덮인 산,
그물과 문어, 조개껍질이 흩어진 바닷가 마을,
학용품만 가득하고 아이는 없는 도시의 골목.
선생님은 그곳들을 지나며 풍경을 수집하고, 마음을 배우고,
세상의 조각들을 하나씩 안고 돌아온다.
기나긴 여행 끝에 마침내 한 아이를 만나게 되지만,그 순간조차 이 책은 과하게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과 사물의 배열, 정돈된 장면과 작은 눈빛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란 세바스 마렐라의 그림은 이 책이 지닌 감정의 깊이를 정직하게 끌어올린다.

연필의 잔결이 살아 있는 풍경,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색감,
그리고 장면마다 녹아든 시간의 질감까지.
말보다 풍경이 먼저 이야기를 끌고 가고,
인물보다 배경이 감정을 먼저 흡수한다.
이야기를 설명하려 들지 않기에,
그림 한 장 한 장이 더 길게 머물게 된다.

『안녕, 나의 선생님』은 결국 ‘가르침’이라는 말을 다시 쓰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을 꺼내어 함께 나누는 일이 아닐까.
이 책은 그렇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 누군가의 선생님이었나요?"
아이보다 어른에게 먼저 말을 거는 그림책.
가르치려는 마음을 품었던 모든 사람에게,
혹은 그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누군가에게,
이 책은 조용히 찾아와 손을 내민다.
“너희들이 있어 비로소 선생님이 되었다는
나의 선생님에게.”
그 마지막 문장이 이토록 오래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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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일까? 흙산일까? - 아름다운 우리나라 산 나의 첫 지리책 6
최재희 지음, 이장미 그림 / 휴먼어린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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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산의 풍경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돌산일까? 흙산일까?』는 아이가 지형을 처음 인식하게 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붙잡아,
‘지리’라는 개념을 삶과 연결해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시작된 여정은 강원도의 험한 돌산과 남부의 완만한 흙산을 지나
“저 산은 돌산일까?”, “이 산엔 어떤 동물이 살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단순한 지형 분류를 넘어, 지형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
산을 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아이의 시선에 맞춰 풀어낸다.

이야기와 함께 구성된 정보는 명확하고,
그림은 구체적인 관찰을 도와준다.
무엇보다 실제 여행이나 풍경과 이어질 수 있는 책이기에,
읽은 뒤 가족 간의 대화가 깊어지고, 산을 보는 감각이 바뀐다.

『돌산일까? 흙산일까?』는
아이의 첫 지리 질문이 ‘지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관찰’과 ‘생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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