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오카모토 유지 지음, 최종호 옮김 / 진선아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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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기차 타고

#서평단《기차를 타고》는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를 담은 그림책이다. 아빠와 아이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풍경 속을 지나간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일상 나들이를 기록한 듯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발휘된다. 장면 하나하나에 담긴 미묘한 변화와 연결, 그리고 목판화 느낌이 나는 정갈한 그림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 페이지를 채운다.

책은 기차 여행의 목적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창밖에 펼쳐진 삶의 조각들—빨래 널린 마당, 자전거를 타는 사람, 논밭에서 일하는 이들—을 그저 조용히 보여준다. 인물을 중심에 세우기보다 풍경과 사람들의 관계를 드러내며, 그림책 속 시간은 연속된 삶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특히 앞에서 스쳐 지나간 인물들이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독자 스스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립하며 따라가게 만드는 구조적 매력을 지닌다.

이 책은 아이에게는 단순한 ‘기차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지만, 어른 독자에게는 삶이 흐르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성찰을 건넨다. 아무 설명 없이 등장했다가 연결되는 인물과 배경, 시간을 들여야만 드러나는 세부들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관계의 형성과 축적을 닮아 있다. 감정보다는 관찰에 기반한 서사가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기차를 타고》는 거창하지 않아 오히려 특별한 그림책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 설명 없이 연결되는 삶의 조각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말 거는 그림이 빛난다. 목적지보다 풍경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조용한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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