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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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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의 제목을 이해했던 것 같다. <건축을 위한 철학>은 건축물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일 것이라는 생각. 마치 '철학적 시읽기', '철학적 영화읽기'와 같은 '철학적 건축읽기'라는 내용을 예상했던 것이다. 뭐 그건 원제가 '건축'이 아니라 '건축가'를 위한 철학임을 알았어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쓴 의도 중 하나는 대학원 수준의 건축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그런 강의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의 더 넓은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책을 읽고나니 이 책이 처음부터 철학개론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구나라는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아예 이 책을 철학입문으로 받아들였다. 각 장의 구성자체도 앞 부분은 철학사를 정리하고 뒷 부분은 그 철학사가 어떻게 건축에 적용되는지를 다뤘기 때문에, 원한다면 각 장의 앞 부분만 읽어서 철학사를 정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철학과 건축이 얼키고 설켜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철학에 초보인 독자들, 즉 나 같은 사람들에겐 혼란을 줄여주는 매우 친절한 책이다. 이 책의 끝에 따로 정리된 참고문헌을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흔히 철학입문 수업을 들으면 강의자가 입문용으로는 어떤 책이 좋은지, 한 철학자의 책은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은지를 추천해주기 마련이다. 그런 건 오프라인 직강(?)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니 정말 친절한 미트로비치 선생님이시다. 그러면 그 철학사에 대한 설명이, 그러니까 설명하고자 하는 철학사상에 대한 설명이 적절했는가는 알 수 없다. 한 사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존재'는 알지만 '내용'은 모르기때문에 판단할 수 없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을 따랐을 거라 '믿으며' 읽었다. 한편으로는 두꺼운 철학개론서들을 읽다보면 철학자나 사상에 대한 방대한 내용때문에 종 잡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 책은 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혼란이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단순히 철학사를 다룬 또 한 권의 책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스콜라 철학자나 이마누엘 칸트의 윤리 이론 같은 주제는 현대의 건축 이론 문제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에 다루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이 책에서 선택한 철학적 견해들은 현대 상황과 관계가 있는 건축 및 건축 이론 문제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위와 같은 나의 느낌은 서문에서 저자가 언급한 내용과 연관이 있겠다. 나는 이 부분에서 철학을 입문하는 새로운 접근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된 철학개론서를 읽다보면 어느 새 집중력이 떨어진 나를 발견하다. 모든 것이 중요해서 내내 힘을 주면 읽다보니 뒤로 가면서 점점 힘을 잃는 것이다. 선생님의 존재가 아쉬운 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 철학책을 읽게 되면, 하나의 일관된 흐름 속에서 철학을 접할 수 있게 되고 리듬감있게 철학사를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철학책을 읽다 보면 늘 드는 질문, "이 사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와 같은, 철학을 현실 속에서도 찾고 싶은 마음을 져 버리지 않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하나의 주제에 입각해서 정리된 철학사라는 것을 독자가 끊임없이 상기해야한다는 전제하에.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한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타학문 전공자들은 단순히 철학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과 철학을 연결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좋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철학과 내가 공부하려는 학문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정말 눈물나게 고마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런 책은 드물어 보인다. 철학은 그냥 개인적으로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자기 학문과 연결시켜야 할 그런 것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나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이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건축은 물론이고 다른 어느 학문분과에서도 철학과 타 학문을 연결시키려는 '친절한' 시도는 잘 보이지 않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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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쿠르트 프리틀라인 지음 / 서광사 / 1990년 8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3년 04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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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분석 입문
존 호스퍼스 / 담론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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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방법
서광선 외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1989년 9월
6,000원 → 5,700원(5%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2013년 04월 1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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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이후의 삶 - 역사, 철학, 예술로 3.11 이후를 성찰하다

서경식 | 다카하시 데쓰야 | 한홍구 (지은이) | 이령경 (옮긴이) | 반비 | 2013-03-04

 

앞으로 3월이 올 때마다 의무적으로라도 후쿠시마에 대해 이야기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면서 환경과 에너지라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주제를 본격적으로 화두에 올린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외에도 다양한 맥락이 후쿠시마를 타고 흐르기에 3.11은 그 동안의 현대인의 삶을 전방적위적으로 돌아보고 각성할 수 있는 사건일 것이다. 이 책의 장점또한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핵전문가나 환경전문가가 아닌 역사, 철학, 예술 분야의 지식인들이 '성찰'의 태도로 3.11을 바라보고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3.11이후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든 생각이 '핵에너지에 대한 공포'인데 이 원초적인 공포상태를 잠시 가라앉히고 '후쿠시마 이후의 삶'에 대하여 차분하고 진지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한 시간같다.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도시, 역사를 바꾸다

조엘 코트킨 (지은이) | 윤철희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13-03-10

 

'도시'라는 단어는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현대를 사는 내가 '현대적'이라고 일컫는 것 다시 말해 '동시대적'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즉 '도시'라는 개념은 최대한 거슬러 올라가도 18세기의 그림 속에서나 어울릴 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고대나 중세의 도시들이 지금 못지 않게 발달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 점, 즉 도시가 '시대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라는 사실이 내가 이 책에 흥미를 갖게끔 만들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서구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그 밖에 지구상의 다양한 도시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니 도시가 가진 역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이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를 하게 된다. 마치 세헤라자드의 '천일야화'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말이다.  

 

 

 

 

철학자의 여행법 - 세상의 모든 길들

미셸 옹프레 (지은이) | 강현주 (옮긴이) | 세상의모든길들 | 2013-03-15

 

한 달뒤쯤 여행을 가볼까하던 참이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이 책에 시선이 가서 책소개까지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여행은 내가 하려는 여행, 그러니까 관광으로서의 여행은 아닌 듯 싶었다. '노마드적인 삶'이 저자가 말하는 여행에 가까운 것 같았는데, 이미 몽골제국에 대한 책을 읽으며 '유목민'의 삶에 대한 매력을 느낀 적이 있던 나로서는 처음과는 또다른 호기심으로 이 책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이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철학자'의 여행법이니만큼 수많은 철학적 개념이 자유자재로 인용될 것이고 그럼 나는 제목에 걸려들어 이 책을 선택했다가 '여행'을 성찰하기는커녕 한자한자 읽어나가는 것도 버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독자의 편의를 위해' 편집자의 친절한 주가 달렸다고 하니 안심하며 이 책을 골라본다.  

 

 

 

 

자연모방 - 언어와 음악은 어떻게 자연을 흉내 내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을까?

마크 챈기지 (지은이) | 노승영 (옮긴이) | 에이도스 | 2013-03-15

 

부제에 끌려서 눈이 간 책이다. 앞뒤가 바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언어와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언어와 음악이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에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진화와 관련한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그 주체가 인간이 아닌 언어와 음악이라는 것,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과 언어라는 대상을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매우 새롭다. 평상시에 그냥 던질 수 있는 질문들, 이 책과 관련짓자면 '석기시대 사람들도 말을 했을까?',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하는 것들은 답이 나지 않는 호기심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답을 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흘려보내지 않고 꽉 붙잡아다 설득력있게 설명해내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독자로서는 고맙고 즐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설명이 참신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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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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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시기적절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격하게 표현하면, 사회가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찬반을 일으키는 다양한 현안을 지켜보며 으레 '뭐 저렇게 반대하니까 그렇게 안되겠지.'했던 것들이 거의 정반대의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목도하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지 않으면, 더불어 나와 생각의 궤를 함께 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손쉽게 무너질 수 있겠구나, 실제로 무너지는구나라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수순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낸 것이 시민단체 활동이었다. 그러면서 각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나는 활동을 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직접 의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데, 단체들은 회비나 후원금을 모금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인 듯 보였고, 시민이 직접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아. 내가 접근하기 어려운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을 활동가들이 대신해서 하고 있으시 회비라도 열심히 내야겠다.'라는 답이 나왔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건가? '내가 낸 세금으로 일하는 국회의원'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세금을 회비로, 국회의원을 활동가로 바꾸기만 하면 시민단체라는 것도 똑같이 대의제가 적용되는 것 아닌가?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닌데!

 

 

  이런 의문이 답답함으로 바뀔 때쯤, 이 책이 그 답답함이 내 개인적인 소회가 아님을, 구조적인 것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 (중략) ... 그 세대의 후예들이 자신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설득력 있는 호명을 누구로부터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력할 것일 가능성을 무시한다. 시민권의 쇠퇴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일 수 있는 것이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30쪽

 

 

  이익집단들이 대중적 회원 기반을 동원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틈새시장의 출현은, 시민사회의 쇠퇴가 아니라 정부 제도의 변화에 그 책임이 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31쪽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든지 뭉치지 못한다든지 하는 견해에는 늘 "자기만족과 자긍심을 중히 여기는 문화적 맥락(23쪽)"에서, 혹은 "사회자본이 침식된 것의 정치적 결과는 정치 참여의 원천들을 뒤흔들어 놓았다(28쪽)"라는 식의 해석이 가장 많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문제는 개인주의'인 것이다. 나도 이런 견해를 상당히 설득력있게 받아들이고 있던 터였는데 그것을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고 또 희망적이었다. 사람에 대한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제도에 변화를 꾀해보려는 시도가 훨씬 해 볼만한 일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족일수도 있겠지만 이는 몇년 전부터 일반화된 20대에 대한 (성토성의) 평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IMF를 겪으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더 중시 여기게 되었고 그 결과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게 되었으며, 혹여나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386세대처럼 집단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한편으로는 맞는 얘기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싶은 20대들이 적지않고 그 뜻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은데 단지 뭉쳐본 경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관점에서는, 87년 체제 이후에 민주정부가 등장하면서 실질적으로 20대들은 "설득력 있는 호명"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페리클레스를 언급하면서 "최고의 포상이 있는 곳에, 포상을 위해 경쟁하는 최선의 시민들도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 (중략) ... 이른바 정부를 민주화-법원에 접근하거나 행정 규칙의 제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 등-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오늘날의 개혁 조치들은, 실제로는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 정치의 장을 우회해 민주적 지지를 동원하지 않고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21쪽 中

 

  다른 한편에서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낀 강렬한 인상은 바로 '역설'이었다. 민주화의 조치들이 오히려 민주적이지 않은 현상을 빚어내는 그 아이러니함. 그것을 드러내주는 것이 나에겐 이 책의 매력이었다. 저자들의 말마따나 "그렇다고 미국 민주주의가 죽은 것은 아니다. (중략) 이런 변화가 미국 정치에서 일반 대중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어떤 거대한 음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15쪽)" 그저 민주화의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것들이 "서로 결합해 작동하면서, 정부에 대해 개인으로서 접근하는 새로운 정치를 낳았고, 그 가능성을 이용할 수 있는 지위의 사람들을 위한 '개인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17쪽)"낸 것이다.

 

  잘못된 결과는 응당 잘못된 출발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인과론적이고 단선적인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쉽고 편리한 접근이 잘못된 해석을 낳을 확률이 많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특히 현대사회의 현상들을 저런 식으로 파악해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뒤돌아서면 그 사실을 까먹고 다시 단순한 해석과 방법을 내놓는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 책에서 느꼈던 역설은 저자들의 날카로운 분석때문에 가능했고, 그 분석에 허를 찔린 것 같으면서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조를 보고, 또 그 관점에서 역설적인 지점을 짚어낸 것만으로도 이 책은 굉장한 몰입도를 가지고 책을 읽게 만들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그들의 관점과 분석이 다방면에서 응용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이 책은 해부학의 교과서 격인 '그레이스 아나토미(Gray's Anatomy)처럼 최근의 민주주의에 대한 훌륭한 해부학 교과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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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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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문득 생각난 책이 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더불어 숲>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바로 전, 운전면허학원을 다니며 읽었던 책이었다. 전 세계를 돌며 그 곳에서 보고 느낀 바를 적어내려간 그 책은 나에게 내 자신의 배경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중간중간 막히는 대목이 참 많기도 했지만 끈덕지게 책장을 넘기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목 그대로의 '더불어 숲'의 의미만큼은 어렵지 않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강대국에 가서 그들의 지배를 받던 약소국을 생각하는 것, 문명의 찬란함에서 그 문명의 그늘을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통해, 입시라는 긴 경쟁의 터널을 막 뚫고 나온 나는 뭔가 위안 이상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몇년 뒤,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을 직접 듣게 되었을 때의 그 벅참과 감격은 지금도 두근거릴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보며 <더불어 숲>을 떠올렸던 것일까? 아마도 여느 여행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인문학적 성찰(?)'이 담겨있을 거라는 기대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명', '그리스', '인간의 탁월함', '근원' 등의 단어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그러하였고, 게다가 저자가 박경철이었기에. 그러니까 정치인 안철수와 돋보이는 우정을 보여준 그였고, 당연히 그러한 우정이 정치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절대 정치계에 입문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여행기를 들고 찾아온 그였기에 나는 이 책이 정치의 최후방에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결국에는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올바른 통치란 무엇인가?'와 같은 탐색의 결과물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예상은 절반 정도 맞았던 것 같다. 저자가 젊은 시절부터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떠난 여행이라는 점, 이 책이 그 점을 매개로 하여 전개된다는 점을 몰랐기에, 이 책의 처음에는 '내 생각과는 달랐구나!', '문학과 여행이 결합한 여행기인가보다!' 하면서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간접적으로나마 그가 위의 질문과 관련하여 어떤 성찰을 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50%의 확률이었던 것 같다.

 

  그럼 감동도 <더불어 숲>만큼이었을까? 아직까지는 아니다. 이유는 이 글의 제목 그대로이다. 너무나 교훈적이어서 그 무게가 무거웠다. 거두절미하고, 이 책에서 내가 느낀 거리감을 표현하자면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두 책의 비교를 통해 잘 드러날 것 같다. 우선 인용해 본다.

 

... (중략) 비록 인생이 부조리한 것(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올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 설령 바위가 또다시 굴러떨어지더라도 그것에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기필코 올려놓겠다'는 목적은 환상이다. 부조리한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끝없이 도전하는 행위, 그것만이 진실이며 거기에서 역설적인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삶은 좌절이나 권태가 아닌 고독한 투쟁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숙명지워진 존재가 아닌 온전히 실존하는 내가 된다는 뜻이다. (중략) ...

<문명의 배꼽, 그리스> 97쪽 中

 

... (중략) 피투성이가 된 손발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려올리면 다시 평지로 굴러내리고 마는 절망의 무한궤도 속에서 과연 우리는 그 절망으로부터 '도전과 책임'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수긍할 수 있는가. 그러한 자각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한 폭력이라고 단어하였습니다.

  절망으로부터 도전과 책임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초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초인적인 초상을 들어보이는 것은 환상을 강요하는 것이며 환상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언했던 당시의 열정이 떠오릅니다.

<더불어 숲> 51~52쪽 中

 

  카뮈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는 <문명의 배꼽, 그리스>의 저 대목을 읽으며 나는 '지금까지 내가 카뮈를 잘못 이해해왔던건가?' 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지금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인간이 살아야 하는 부조리한 삶, 부조리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좌절하지 말고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껴라는 대목에서 잠깐 멈춰서 골똘히 그 의미를 생각하다 결국엔 화가 났다. 난 자꾸 '인간'인 나에게서 보이는 어쭙잖음, 나약함이 먼저 보이는데 왜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는가, 이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있는가하고 묻고(라고 쓰고 '따지고'라고 읽는) 싶어졌다. 이 지점이야말로 내가 이 책 전체에서 느끼는 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아니라 '교훈적인, 너무나 교훈적인' 결과물들이었다.

 

  한편으론, 이 모든 것이 탁월함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동양 중심의 판도를 서구로 가져온 그리스 문명. 그 거대한 흐름의 시작을 연 이들에게서 어떤 종류의 탁월함을 발견하고, 또 그 근원을 찾고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인,

 

  가슴 뛰는 말이었다. 이성이 신에 굴복하고 영원히 그 너머의 것을 동경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이성은 어둠 속을 방황하며 추위에 떨고 있었을지 모른다. ... (중략) ... 그의 말대로 불행은 결코 인생의 교훈이 될 수 없으며 위대한 비이성적 모험은 영원히 되풀이되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그의 운명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며, 비록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장렬한 순교일 것이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61쪽 中

을 보면서도, 나도 가슴은 뛰는 말이나 문명을 만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가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는 의욕을 꺽이게 만들었다. 차라리 인간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려면, 그것을 발견하기 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그 탁월함이 나올 수 있었는지에 방점을 찍고, 그곳에 현미경을 들이대야 하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스파르타 시민들에게서 용기와 우정으로 대표되는 탁월함을 읽어낸 점은, 이미 그런 해석이 있었던 것도 같으나,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다. 더불어 그 이면에서 스파르타의 가혹한 노예제도를 언급하며 그들의 이중성을 언급한 것은 스파르타를 언급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니 익숙한 배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전체적인 비중이 스파르타 시민들의 탁월함에 좀 더 쏠려있는 듯 것처럼 보였고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책과 계속 충돌했다. 그럼 다시 부제 탓을 할 수 밖에 없겠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왜 저자가 인간의 탁월함을 찾아나선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스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 이것이 답변이라면 난 마냥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하겠다.   

 

  그렇기에 나는 앞서 <더불어 숲>에 대한 감상과 이 책에 대한 감상을 견주며 '아직까지는'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러한 조건을 단 이유는 이 책이 총 여정의 10/1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를 보고서야 이 시리즈가 10권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큰 작업에서 이 한 권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1권이니 서문 정도에 해당하는 것 아니겠는가?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이 책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그림 속에 이 그리스 시리즈 10권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를 비롯하여 문명이라 불리지 않는 존재에 대한 기록도 들어가 있길 바라본다. 아마 난 그 그림 속에서야 지금의 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재고해보고, 더불어 내 의문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부제가 여전히 인간의 탁월함이라면 다시 만나기조차 좀 힘들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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