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난 여기 있단다
안 에르보 지음, 이경혜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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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달 전 할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다 함께 여행을 가는 꿈이었고, 할머니는 전에 없이 정정하게 걸어 다니셨다. 할머니를 업어야 한다는 내 말에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왜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내 꿈에 나왔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때는 내가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달을 때이기도 했는데 그날은 온종일 싱글생글 웃으며 지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퇴근길에 MC몽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제목은 죽도록 사랑해였는데, 마지막에 한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게 사세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요. 보고 싶어요.’ 라는 말에 나는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도 내 할머니 보고 싶어서 그 말에, “나도-”라고 말해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날, j와 저녁을 먹으며 그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고 하면서 또 울어버렸다.



나는 할머니한테 못된 말만 많이 했다. 할머니는 왜 엄마를 낳아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할머니 때문이야. 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는 못된 손녀. 내가 힘들다고 할머니 탓을 많이 했다. 할머니는 발광하네,라고 하면서도 그 말들을 다 받아줬다.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할머니!” 하고 부르면 총 열 명의 손주가 있는데도 거의 대부분을 “리라냐?”하고 물으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내게 고맙다는 말만 하셨다. 또 와- 라고 말하던 할머니였는데, 정작 나는 할머니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사무친다.




책 「언제나 난 여기 있단다」는 “언제 올 거야, 할머니?” 하고 묻는 손주의 말에 대답해주는 책이었다. 몇 번이고 읽으면서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고 정돈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그곳에 있을 것 같아서. 책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는 어쩌면 할머니가 새로 변해서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문을 활짝 열고 지냈다. 할머니가 있을 때는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할머니를 보내면서도 그렇게 많이 울지 않았는데, 지금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



할머니, 몇 년 전에 손주사우가 맹장수술한다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무섭다고 했을 때 할머니가 전화 안 끊고 내 말 다 들어준 걸 기억하고 있어. 할머니도 알잖아, 그렇게 무서웠을 때 막상 나는 전화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는걸. 할머니, 하늘에서 보는 나는 참 헛똑똑이지? 그래서 꿈에 놀러온 거지? 할머니, 내가 무섭고 힘들어할 때 꿈에 나와줘서 고마워. 그날은 할아버지랑 할머니 덕분에 온종일 기분이 좋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만이라도 나 웃게 해주려고 나왔나 싶었어. 나 열심히, 잘 살게. 그러다가 힘들면 또 와줘. 또 만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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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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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는 내내 뭔가 자꾸 생각이 나서 그게 뭘까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명료해졌다. 구병모 작가의 <한 스푼의 시간>에서의 은결이었다. 문장들로만 봐서는 감정이 있는 로봇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아니라 은결은 로봇이었지. 로봇인 것을 사람들이 다 알았고.


로봇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집에 들인 물건 중 로봇청소기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자기 집도 못 찾아가고 자꾸 헛돌아서 굉장히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청소를 시키고 집에 돌아와보니 청소를 다 끝내고 충전단자에 앉아 충전을 다한 흰둥이를 보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 제 집을 찾지 못해 충전단자로 옮겨달라고 해서 귀찮아죽겠지만)


최근에 AI가 30시간 만에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보게 되었다. 그 책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렇지만, 나는 끝내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는 것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자존심의 영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로봇 따위가 써내는 문장들에 감탄하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존심은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까지나 로봇의 역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도와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특히나 3D 업종인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로봇이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지게 된다면? 그도 아니면 인간인지 로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달마는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한때는, 아니 지금도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이고 싶다. 특히나 감정적인 부분에서. 하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해내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다면 그것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결국 나는 .에 대해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에 대해서도.


내 사춘기는 어쩌면 20대 후반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도대체 누구지? 뭐 하는 사람이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지?” 이 물음을 10개 아닌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생각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지금도 매 순간 그 물음들을 끌어안고 지내면서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끊임없는 자아탐구이며 어쩌면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나로 바로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인 까닭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매 순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무척이나 고역에 해당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자 나름의 험난한 시간들을 거쳐 살아온 나 자신에게 박수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203.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나는 운명 따위를 믿지는 않지만 죽는다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었고 독서모임에서도 그렇게 말했는데, 바로 그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말을 내뱉은 날이 하필이면 그날이어서, j에게 내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세상에는 우연 같은 죽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영역으로 할 수 없는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영원한 이별에 대해 가지를 뻗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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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현대지성 클래식 48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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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 살았던 순간들을 곱씹어 본다. 나는 전에는 절대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아빠의 말인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도 이제는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방인,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처연하면서 잔혹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나를,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어쩌면 평생토록 나를 따라다닐 이름과도 같다. 나의 모습은 언제나 같은 것 같지만 이곳에서와 저곳에서 다른 다중적인 인간이기도 한데, 그런 나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들 덕에 녹록지 않은 이방인의 삶도 즐거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기에 나는 이방인이 된 나를 가엾게만 여기지 않기로 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그래서 읽고 싶지 않았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순간들을 열렬하게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던 날들을 지내면서 구태여 부랑자(라고 말해도 된다면)가 된 타인의 모습을 읽어내려가고 싶지가 않았던 탓이었다. 제목만으로 유추하는 것은 이래서 위험하다. 하지만, 허공을 부유하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책을 읽고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둔 이유이기도 하다.




27. 

에서 느껴지는 문장이 이 책의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읽은 독자라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방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뫼르소의 짧은 날들을 기록했다.

1부_ 양로원에 모신 엄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른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다가 이웃인 레몽과 연관된 아랍인 중 한 명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


2부_ 재판을 받는 뫼르소




이 책을 읽고 고등학교 시절의 동아리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의 아버지가 아주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입원해계셨고 그 친구는 그 영향을 받아 간호대학교를 졸업하여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구는 장례식장에서 슬퍼했고 장례식이 끝난 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게 과연 도덕성에 위배되는 일인가? 나는 당시에 친구를 봐도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삼을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친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뫼르소는 어머니의 시신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등의 행동과 눈물은커녕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 이후의 유희들로 인해 도덕성 결여라고 판단하고 그것이 ‘살인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인간’으로 분류되면서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어떤 변호를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다. 단지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고 했다. 그가 자신을 변호했다면 끝은 좀 달랐을까.





139.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를 매장했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그렇지만, 나는 뫼르소를 책으로 읽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무나도 분명하게 태양 때문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막을 모른다면 그가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더라, 그런데 그가 최근에 이런 행동을 했다더라라는 말들을 듣게 되면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할 것임을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재판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됐다.고 말하면서도 두 가지의 생각이 자꾸만 충돌한다.

인간은 자신의 신조대로 사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행동이, 나의 말이, 나의 눈빛이, 나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결국 인간은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곁에 두고 오래도록 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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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여섯 시, 일기를 씁니다
박선희 지음 / 나무발전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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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잘 일기를 밀리곤 한다. 밀린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은 내 일기의 내용이 내가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데 그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기장에 내 생각을 적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하루의 일기를 쓰는 칸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거나 생각할 거리가 있어 쓰는 글들은 일기장에 적지 않고 다른 수첩을 꺼내게 될 때가 많았기에 일기가 일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2년부터는 만년 다이어리를 쓰면 괜찮겠지? 싶어서 주문해서 잘 쓰고 있기는 한데... 아뿔싸, 그렇게 생각들을 모아 모아 쓰다 보니 11월 중순부터 종이가 없어 기록조차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하하; 이 당황스러움은 어디에서 채워야 할까.



나의 경우에는 일기를 쓰는 것에 힘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그날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하는 단순한 기록장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떤 하루를 살아있었다는 방증들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빼곡 쓰여있다. 그렇게 열심히 쓰다 보니 2011년부터 일기를 써서 10권이 넘는 일기장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딱히 보게 되는 일기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일기장을 없애버릴까 하다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실패했고, 또 앞으로는 일기장을 사지 말까 하다가 아니 그럼 내 하루들은 어떻게 기록을 하지? 싶은 마음이 들어 내키지가 않는 것이다. 도대체 뭘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기를 쓴다는 제목을 보게 되었고 나는 당황했다. 내가 아는 일기와 사전적의 일기는 동의어였다.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ㅡ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활동하지 않은 아침 여섯 시에? 다른 것도 아닌 일기를 쓴다고?’ 라는 것이 나를 당황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나도 2018년에 시시때때로 무언가를 적었다. 시간을 정해두고 쓴 것은 아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생각이 들 때마다 노트를 펼쳐 그때의 감정들을 적어내려가곤 했다. 그것은 일기라기보다 ‘생각노트’에 불과했지만 단순한 일기장보다 생각노트가 더 의미 있다는 생각도 하기는 하지만 생각노트를 쓰려면 많이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에(...) 비연속적으로 쓰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나저나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이라는 것을 가동하려면 우선 활동을 해서 몸이 따듯하게 데워져야 하는데 저자는 아침 여섯 시에 어떤 내용을 썼을까 궁금해져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하고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저자가 스스로 정체성을 찾고자 했을 때 하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나는 어떤 글을 제대로 써보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시도도 해보지 않았지만 그것에 대한 핑계는 길든 짧든 글을 시작하는 것이 늘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그냥 써. 아무거나. 내가 답장해 줄게.”라고 말을 한다면 나도 용기를 내볼 수 있었을 것도 같다. 저자도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일기(日記)라기보다 수필에 가까워 보였고 이질감 없이 읽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나도 이런 글을 써본 적이 있다는 동질감과 더불어 나의 경우에는 밤에 쓰는 일기에는 이런 힘이 거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왜냐하면 밤에는 잠을 자기 직전이라서 얼른 쓰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매일매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쓰는 것이 진정한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읽으면서, 저자는 글을 쓰고 싶은 시간을 잘 잡아서 썼네. 하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또 글은 평온해보이고 담담하지만 내면에 깊이 출렁거리고 있는 슬픔이 보이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저자는 그게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으니까. 슬플 때 쓰는 글들은 유난히 담담했고 덤덤해서 내가 괜찮아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했으니까.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에 있던 친구의 물음에는 내가 더 화가 났다. 만약 선택이 가능하다면 남편의 죽음을 겪지 않는 쪽을 고르지 않겠느냐고 묻다니.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뇌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런 물음을 했나. 나는, 타인의 슬픔을 물을 때 가감 없이 순진한 얼굴로 상처를 헤집는 사람들을 경멸하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2년 전에, 여러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내게 묻고 결정적으로 ‘그러고 나면 그곳이 더 깨끗해져서 더 잘 들어선... 블라블라’라고 말하는 20년 지기 친구와 결별했다. 오랜 친구였고 마음을 나눠왔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당시에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상처를 꺼내 보일 수는 있지만, 누군가 내 상처를 단순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으로 헤집어놓는 것을 용인할 수가 없다는 것은 여전하다. 우리는 타인의 상처가 비록 내 것이 아닐지라도, 아니 내 것이 아니기에 조금 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마지막 챕터를 보고 느꼈다.




이 책을 다 읽은 직후에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하게 생각노트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노트를 적어볼까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단단하게 서있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자주 무너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말과 행동이 다른(즉 언행불일치인)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가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는 다중인격 같은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제어할 수 없어서 등등의 이유들로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그 생각노트를 말이다. 요즘의 나는 생각이 넘쳐흐르는데 그 생각들을 굳이 글자를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으니 굉장히 단순해지는데 그 느낌이 조금 낯설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생각들은 쓰지 않으면 휘발되고 만다. 그때의 나는 기록되지 않는다. 나를 기록하는 일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다시 용기를 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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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네 웅진 우리그림책 97
나오미양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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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올 즈음이면 눈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지금의 나는 눈을 퍽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던 나는 눈이 오면 꼭 내 몸통만한 눈사람을 만들어 사진을 남겨놓은 것으로 봐서는, 매년 눈썰매를 신나게 탄 기억이 나는 것으로 봐서는, 눈이 온다고 눈을 비비며 창문을 내다보던 기억이 선명한 것으로 봐서는 눈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은 눈이 조금만 와도 제설작업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곧 눈으로 겨울왕국을 만들 수 있는 지역으로 가야하는 나는 눈에 다시 익숙해져야할텐데, 그동안의 ‘눈이 오지 않는 겨울’에 만족하고 살았던 탓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것과는 별개로 하얀 눈으로 덮인 동화책 <겨울 동네>를 보는 순간 포근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표지의 그림이 어쩐지 워터볼의 안에 꼭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워터볼을 천천히 흔들어보기도 했다.



아이는 이모가 사는 겨울 동네로 떠나는데 그곳에는 산과 숲이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곳으로 아이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뒷마당에 가끔 놀러오는 사슴! 사슴을 보기 위해 잘게 부순 별사탕이 밤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겨울 동네를 왔는데, 막상 사슴이 놀러오지 않아 아이는 속상해하다가 사슴을 만나러가기로 한다. 아이의 사슴 만나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사슴을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소망을 보면서 어떤 형태로든지의 소망은 참 소중한 것이구나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또 아이가 소망을 이루기 위한 여정 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게 되는데 그것에 충분히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어른이 된 우리들은 지금 확고하게 답을 정해놓고 무표정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 알기에, 어린이들은 어떤 답을 정해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뚝딱 가볍게 읽고자 책을 펼쳤는데, 내 머릿속에는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겨울 동네가 펼쳐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의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마대자루를 질질 끌면서 눈썰매를 타러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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