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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가나 2
가이 가브리엘 케이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참 오래도 기다린 소설이다, <티가나>.
삼사년 전에 황가가 계약을 잡았다는 말을 들었고 뭔가 해서 보니 대단한 작품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장르는 환상소설.타자 이영도 작가의 서평 또한 압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던 쯤에 갑자기(?) 출간이 되었고 운좋게 무료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부푼 기대감으로 택배포장을 찢어버리고 티나가를 처음 본 느낌이 좋았다.
홈즈 등의 실패 따윈 전혀 생각나지 않는 튼튼한 양장. 책을 읽지않았음에도 왠지 <티나가>의 느낌이 팍 사는 듯한 색채와 질감으로 이루어진 디자인. 톨킨도 모자라 쉽사리 이름을 같이 볼 수 없는 이영도, 전민희, 진산 등을 끌어들인 홍보문구. 마법, 영웅, 자유, 모험 등의 단어들...
그렇게 겉모습의 감상을 마치고 책장을 넘기니 저자가 한국판을 위해 특별히 쓴 '작가의 말'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작가의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정말 좋다. 그 설레는 작가의 마음...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냥 판타지도 아니고 대하역사, 사극적 판타지라는 말이 괜히 붙어있는 것이 아닌지 서문부터 독자에게 상당한 사전지식과 이해를 요구한다. 그리고 한국의 씁쓸한 역사도 언급하기까지 한다.
이는 서문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도 않고 중요하게 생각되지도 않고 그저 서문이라 좋았을뿐인데 작품을 다 읽은 후에는 서문에 참 많은 내용을 담겨있고, 한국판을 내는 작가의 호의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에 드는 서문을 본 것도 모자라 다음 장에는 '프롤로그'가 나온다. 오오! 작가의 서문도 좋고 프롤로그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 참 멋진 선물이었다. 게다가 프롤로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어떤 중요한 결말 같은 느낌의 이야기가 쭉 전개되다가 결말 중의 진정한 마지막 결말을 보이지 않고 끝맺음 하는 스타일이었다.
기대했던 작품이 표지도 만족시키고 몇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날 흥분시켰다^^.
그리고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
재밌는 소설의 요건이랄까? 처음부터 사건이 자연스레 터진다. 그런 전개 속에 <티가나>라는 작품의 세계관에도 자연스레 빨려들어갔다(환상소설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그 작품의 세계관에 독자가 적응이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서문에서 나왔던 것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가 떠오르는 시대적 분위기 예술, 종교... 그렇게 엑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어느 정도 이야기의 밑그림이 깔리니 기다렸다는 듯이 주요인물에 관한 소개도 이어지며 그의 이야기가 또 다른 주요인물에게 이어지고 그들이 하나가 되어가며 주인공들이 모이게 된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국명은 마법으로 금제가 가해져 그 나라 자체의 존재 - 국민, 예술, 전통 등 - 가 말살될 위기에 있는, 망국이 되어버린 <티가나> 의 후예들. 운명의 실은 그들을 서로 끌어당겨 모이게 만들고...
처참하게 망해버린 <티가나>의 마지막 '왕자'. 그런 망국의 비애로 인해 삶이 망가져버린 <티가나>의 백성이자 왕자의 유일한 영혼의 친구인 강인한 '전사'. 자신의 진정한 고향을 깨닫고 그들의 부모님들이 하지못한 일들을 하기위해 자신의 미래를 정한 젊은이들 - 가수이자 날랜 '관찰자'와 차갑지만 뜨거운 용기를 보여주는 '붉은머리의 여자'. 지배자들에 맞서 싸우다 가족, 부, 명예 등을 모두 잃고 죽은 사람으로 알려진 '미완성의 마법사이자 몰란한 공작'.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진짜 마법사'. 그들은 자신들의 바람인, 자유를 되찾아 <티가나> 수복을 위해, 자유를 갈구하는 수많은 이들을 투합해 험난한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없애야 할, 반도를 둘로 나눠 지배하는 참주 두명.
그저 따스한 한 인간이 되고 싶지만 지어진 짐과 치뤄야할 대가, 복수 등이 너무 많은 '지배자'. 그리고 그와 함께, 왕좌에 앉기를 염원하는 욕망덩어리의 '지배자'. 그리고 이런 이들의 곁에 복잡한 이해관걔로 모인 인물들.
이야기는 자유와 억압의 마지막 한판 승부를 벌이기까지의 모험 속에 흘러가며 중간중간 그들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교차된다.
등장인물들간이 관계가 이곳저곳 얽혀있으며 그 짜임 또한 완벽하다. 사던들의 인과관계 또한 훌륭하여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정말 무엇하나 흠잡을 수 없이 완벽하고 그 무엇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이야기는 가히 압권이다. 이 완벽한 짜임새의이야기에는 환상이 있고, 모험이 있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도 있고, 독재 속의 여러 슬픔들도 담겨있고 지배자의 슬픔과 욕망 등의 주제가 담겨 재밌고도 진중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 완벽한 이야기가 더욱 빛을 발하는 건 그런 외적인 완벽함 속에 담긴 것들 또한 심심치 않다는 것이다. 겉으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들도 있지만 음악, 다양한 형태의 성적인 묘사들, 개인간의 관계 등을 통해 상처와 상실감 등으로 대변되는 인물들의 성격과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데다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도 깊게 표현한 점은 믄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하고 작품의 주제에 힘을 실어준다.
더욱이 작품 자체가 어느 정도 고풍스러운 느낌인 데다가 황가 특유의 직역이 마침 잘 어우러져 저런 면들을 잘 표현해내는 것 같았다.
모험, 위기, 갈등, 전투 등등의 대장정을 지나면 드디어 끝이 보인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마침내 해소되는 그 순간이 말이다.
등장한 인물 하나하나 허투로 나온 것이 아닌 완벽함을 다시한번 느끼며 여러 비밀들이 밝혀지고 급박하게 긴장감 넘치게 돌아가는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 자유를 되찾기 위한 그 전쟁의 끝에서 결국 주인공들의 승리하고 <티가나>라는 이름의 봉인이 풀리게 된다.
자유를 찾은 이들의 기쁨,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이들의 슬픔.
(이 또한 얼마나 멋지게 조화되는지...)
그리고 주인공들의 사랑도 자리를 찾아가며 모두가 웃으며 새로운 세계로, 이제 다시 시작되는 세계로 향하는 마지막...
그렇게 <티가나>는 내 마음 속에 남았다.
글을 다 읽고나니 이영도 작가와 같은 느낌을 받아서 즐거웠다.
이토록 멋진 세계를 만들어내 독자에게 보여준 '가이 가브리엘 케이'에게 감사한다.
인물들 하나하나에 섬세했고, 이야기는 물흐르 듯 모든 것이 이어지는 완벽하게 짜여진 스토리,환상과 리얼리티의 멋진 밸런스, 독자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생각하게 하는 주제, 정성이 담겨있는 듯한 번역과 디자인 등, 그리고 서문, 프롤로그, 에필로그 등 개인적으로 참 호감이 가는 스타일의 글.
음...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적절한 파티의 구성, 환상이라는 것이 재미를 위한 싸구려 도구도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만능 도구도 아닌 고품격으로 이뤄진 정통판타지. 작품 자체도 엄청난 퀄리티인데 그와 더불어 <티가나>는 나에게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시켜줬다. 처음 판타지라는 것을 읽을 때의 순수함, 즐거움. 요 근래 느낄 수 없었던 잊고 있었던 맛을 말이다.
정말 좋은 작품을 읽은 것 같다.
좋다 (^^)
자유를 정체성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산다는 건 얼마나 무섭고 슬픈 일인가.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나 자신으 정체성을 찾고 있는가. 바람을 위한 신념과 삶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리셀카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걸 보기를 희망하는 불안한 상황까지 추락하지 않기를 바라고 리셀카가 주는 미래와 축복 따위는 더더욱 필요없다.설혹 그런 불안 속일지라도 스스로 운명을 정하고 관철시키겠다.
다만 지나가던 행운이 나를 도와 무사히 나의 마지막까지 바라다부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