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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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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수능을 준비할 무렵, 어느 수험서에서나 보이던 에세이중 하나.
 바로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 당시에는 상당히 어려워보이던 문장과 단어로 나를 괴롭히던 건축적 에세이로만 느껴졌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보다도, 혹 수능시험시 비문학지문으로 나오면 빠른시간내에 풀기 위하여 중요부분만 속독했던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우리 문화에 대한 여유로운 음미함이 없이, 그저 점수와 이해만을 위한 독서. 물론 지금은 그러하지 않다.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지낼 때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책속에 빠져들었고, 그 책들중에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역시 들어가있다. 
 

 이번 '문화유산답사기'(이후 답사기)는 1장 경복궁 2장 순천 선암사 3장 달성 도동서원 4장 거창합천의 문화유산 5장 부여논산보령의 문화유산을 담고, 마지막으로 직접 찾아다닐 독자들을 위해 지도와 함께 일정,루트를 담고있다.
 특히 내가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가슴벅찼던 부분은 1장 경복궁 부분이다. 작년 여름 7일간 기차여행을 할 때, 처음으로 상경하여 하루 머물렀는데, 2번째 코스였던 경복궁에서 감동, 흥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고 무려 8시간을 돌아본 나로서는, 다른 장보다도 작가의 무한한 애정이 담긴 경복궁에 대한 서술이 심신을 한껏 흔들어 놓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경복궁의 기본 구조와 각 건물의 명칭, 그 명칭의 유래, 어떤 인물들, 어떤사건들,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애정담긴 글투로 서술하고 있다. 내가 작년에 8시간만에 경복궁을 돌아보고는 '참 오래도 돌아다녔구나' 하면서도 '이정도면 다 봤겠지' 하고 돌아왔지만, 이 책을 보고는 다시 한번 봐야할 필요성, 아니 그 경복궁이 나를 다시 부르고 있다는 필연성을 느낀다. 물론 경복궁 내에도 가이드하시는 분이 있거나, 설명문이 적혀있지만 그로서는 알 수 없는 각 건축 하나하나, 무늬하나하나가 드러내고 있는 의미는 파악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작년 내가 찍었던 수 많은 사진들을 다시 뒤져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는 흥분한 채 다시가고 싶어 잠들 수 가 없는 것이다.

 책 내부에는 고맙게도 어렵게 느껴지는 생소한 단어들과 구조들에 대한 실제 교수님이 적은 사진들이 요소요소에 수록되어있다.(물론 역사적인 옛 사진들은 발췌한 것 같다) 어찌보면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외에도, 최근에 이 문화유산들과 관련된 사건들과 그에 대한 견해도 담겨있다. 우리가 학생시절이나 취업후 여행, 결혼 후 자식들과 함께 가는 답사 등에서도 쉽게 지나쳐버리고 마는 요소들, 예를들어 절 계단의 곡선의 미나 팔작지붕밑 무늬들의 아름다움,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석등들의 차이 등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2주라는 기간동안 2번밖에 못돌려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던 경복궁외에도 책표지에서 웅장함과 귀여움을 함께 자랑하고 있는 합천 영암사터 쌍사자석등의 조각사적 의미와 다리사이의 비어있는 공간의 미, 석굴암의 한치의 오차도 없는 중앙집권적의미를 지닌 절대미와 비교했을 때 숨막히는 권위가 아닌, 비례가 맞지 않고 괴이하게 생겼지만 오히려 친밀한 토속적인 관촉사 은진미륵의 의미를 사진과 함께 보며 이해했을 때 느끼는 뇌와 눈과 가슴의 카타르시스, 그리고 이 문화를 만든 위대한 선조님들의 의지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내려오고 있고, 그 후손이 나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 그 짜릿함은 도저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인생도처유상수. 이 말이 가슴속에 조용히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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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사람들은 말의 8할이 부정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정선희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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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사람들은 말의 8할이 부정이다.




 사람들 각자가 하는 말을 분류하면 상당한 범위로 나누어지겠지만, 그 중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긍정과 부정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Yes or No 라는 너무 단정적인 구분일지는 몰라도 생각해보면 결국 저 두 가지 선택지로 나뉜다. 부탁을 받든지 타인의 이야기를 듣든지, 어떤 현상을 판단하든지…….

 나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내 말의 태반이 부정이라고 한다. 나 스스로는 내가 타인의 말도 잘 들어주고, 부탁도 흔쾌히 승낙하며 기분 나쁘지 않게 하게 위하여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의외였고, 뭔가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있어 이 책의 제목 ‘실패한 사람들은 말의 8할이 부정이다.’ 라는 말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자기비하라 할 만큼 낮추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실패자라니…….

 이 책의 광고에는 ‘어떻게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볼까?’, ‘어떻게 미움 없이 세상을 이겨낼까?’, ‘어떻게 시기 없이 인생을 가꿀까?’, ‘어떻게 상처 없이 사랑을 이룰까?’ 라는 4가지 긍정을 위한 질문을 내놓으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한번 역으로 생각해보자.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있기에 사람을 편파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타인을 시기하며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매 사랑마다 상처입고 있지 않은가’... 그 역이 모두 해당되어 버린다면 심각하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 심각한 사태의 사람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버릴 만큼 만만한 내용이 아니다. 성공하고 싶어서 읽는 개발서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부정이라는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듯 습관적으로 부정부터 생각하여 부정으로 끝내는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의 의미로라도, 밝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라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긍정의 4가지 질문을 큰 테마로 각각의 설명과 조언을 내놓는다. 잘 살펴보면 내가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있다. 맙소사, 하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다. 특히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 예술이나 정치, 종교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판단에 집단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중략)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야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중략) 그러나 현재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을 정당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 p.168

 라는 부분은 보고 30분넘게 생각하고 있어야 했다.

 이 말고도 여러 가지 글이 내가 살아온 이 때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다. 자기 반성과 그 반성을 토대로 한 자기 발전. 이 책이 가진 최대의 매력이 아닐까. 누구라도 자신의 그동안의 언행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부정에서 긍정으로, 사랑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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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 윤판사가 보내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
윤재윤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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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날이 밝아지고 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해는 길어지고, 밤은 짧아지고... 
 여러 수목들이 풍성한 녹음을 뿜어내며 밝은 나날들을 꾸며대고 있다. 거리에는 겨울때와 달리 사람들이 넘쳐나고, 옷도 밝아지고 화려해졌으며, 환해졌다. 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그렇다면 요즘 나온 책에 맞게, '웃는 사람과 함께 웃어라' 가 되어야 하지 않나. 라는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앞에는 저렇게 말했지만, 정작 나는 울고 싶은 날이 많다. 아니 울어야 할 일이 많다.
 주변에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아지고, 억울하게 사기당하는 분들도 있었으며, 멀쩡하던 분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웃으며 분위기를 밝게 하더분이 상을 당하여 이전의 모습이 다시 보이지 않는 다거나 하는.. 
 울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울지 못했다. 꼴에 성인이랍시고, 남자랍시고, 참는 것도 아닌데 그저 눈물이 메말랐는지 나오질 않는다. 내 마음은 진심이 아닌 것이었을까.
 마침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라는 책이 보인다. 

 이 책을 지은이는 현재 판사다. 수 많은 사건, 범죄, 갈등을 여러가지 정황과 정확한 증거로 확실하게 구별해내야 하는 직업의 최고봉에서 일하고 있는 자다. 흔히 우리는 판사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냉정하게 자신의 동정과 연민에 이끌리지 않고 주어진 정황증거에 따라 공평하게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적기에는 뭔가 이상한 제목이 아닌가?

 지은이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유명함을 미리 조사하지 않고, 작가 이력도 미리 보지 않으며, 제목과 잠깐 볼 수 있는 책 내용에서 이것이다 하고 느껴 다 읽고 난 후에야 지은이에 대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 판사인지는 알았지만 얼마나 판사라는 직업에 종사했고, 꽤 유명한 사람이란 것을 다 보고 난 후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로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글에 써진 책 내용자체에서 그는 위대했다. 아니 위대하다는 말을 이 지은이는 싫어 할 것 같으니, 다시 말하자면 그는 영혼의 인도자라는 느낌이었다.

 책은 크게 4가지 파트로 나누어져있다.

 첫째, 마음-모든 것의 시작. 둘째, 관계-나만큼 소중한 너. 셋째, 눈물- 가장 인간적인 소통. 넷째, 성장-진흙 속에 피는 꽃. 이라는 4가지 큰 파트 속에 좋은 생각처럼 여러가지 야이기들이 맞춰 들어가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도 중간 중간 한 두가지씩 읽고 책갈피를 끼워놓고는 나중에 다시 읽고 할 수 있는 독서의 편리함이 있다. 내용이 짧다고 의미없는 이야기로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꼭 한번이상은 생각해봤거나, 해봐야 할 만한 내용들이 강한 임팩트를 주며 들어가있다. 저자가 이때까지 맡았거나 보아왔던 사건,재판들. 그 사건들의 주인공인 피고와 원고들, 그들을 보면서 느낀 감동, 슬픔, 안타까움, 깨달음... 그리고 재판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의 눈과 머리, 그리고 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우리 심장을 강하게 두근거리게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난 요즘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유를 알면 나도 울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가슴은 아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건 꽤나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가 어느 순간 눈이 살짝 흐려졌다는 것이다. 그저 판사가 일반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보고 느끼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적어놓은 이야기에서 나는 일반적임의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사람의 눈물을 잡아빼는 신파극도 아니고, 흔히 TV드라마나 영화속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소재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담담하면서도 안타까운 문체에 나는 내 눈물샘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게다가 나는 현재 24살의 대학생. 삶의 방식에 대해 길을 헤매고 있을 나이이다. 어느정도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보답을 바라는 건지, 아니면 보람을 느낀다고 세뇌시키고 있는건지 모를 나에게 있어 저자는 많은 조언을 제시한다.

책의 어느 부분이었던가, '내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봉사를 통한 남의 신뢰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봉사를 통해 보답을 얻으려 했지 신뢰를 얻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베풀고 그에 대해 감사해라고 하는 나쁜 마음가짐으로 행했으니 그런 것에 민감할 사람들이 나에게 신뢰를 주었을 리 만무하고, 그런 신뢰를 받지 못한 내가 변할 수 있었을리가 없다. 정말 밤에 졸린 채로 보다가도 눈이 확 깨이고 가슴속이 쿵쿵 뛰며 얼굴이 새빨개진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생각은 바로 남을 도움으로 인해서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법원의 비행소년들을 맡아 바른길로 인도하는 자원보호자 제도에서도 알 수 있고,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사회봉사를 강제로 하게 되었지만, 그 봉사활동중에 자신의 마음이 감화되고, 결국 그 기간이 끝나고나서도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스스로 사람들을 돕고 살아가는 실제 사례, 자폐아를 낳고나서, 충격에 빠졌지만 그 충격을 딛고 자폐아로 태어난 자식의 순수한 영혼을 느껴 자신의 미숙했던 면을 깨닫고 고친 어머니, 그런 류의 이야기가 4장에 보면 많이 나온다.
 

 과연 우리는 우는 사람옆에 같이 진심으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날이 갈 수록 세상은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어지고, 정은 없어지는데, 그 옆에서 무언가가 힘들어 서럽게 울고 있는 사람 옆에서 같이 울어주며 감싸줘본 적이 있는가. 같이 동감하며 느끼며 행복해하며 슬퍼하는 우리 조상들의 덕목들을 요즘에 행한 적이 있는가. 
 
 인터넷이니 신문이니 뉴스에서 어디를 공격해야한다느니 어느대학 어느여학생의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일이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지하철에서 사소할만한 일로 감정이 상해 노약자를 상처입게 하는 등의 정말 울고 싶어질만한 일만 나오는 요즘 세상에, 유난히 눈에 띄어 전국민이 울면서 함께 변해가길 바라게 하는, 그 전에 우선 나를 울린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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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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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作

시체가 죽는다. 어라?... 시체가 죽어? 시체가 뭐였더라…….? 내가 알고 있는 시체랑 다른 건가?
  屍體 - 주검, 즉 죽은 사람의 육체.
맞는데 왜 시체가 죽어 아하하하 뭐야 이 제목은. 

하고 웃어넘겼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지긋지긋하게 배우는 모순이다. 
살아있는 시체에 콤보어택으로 그 시체가 죽는단다. 근데 살아있으니 죽는 건 모순이 아니다.
뭐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럼 좀비인가? 하지만 좀비라는 건 살아있는건 아니잖아.

내가 본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런 의문을 주며 다가온다. 책 겉에 붙어있는 종이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빛나는 본격 추리소설의 걸작’
    ‘199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선정 과거 10년간 최고의 추리소설 1위’
    ‘2008년 다카라 지마 선정, 과거 20년간 가장 재미있는 추리소설 2위’
  

라는 소개가 붙어있다. 코페르니쿠스가 누구더라……. 좁디좁은 상식세계를 가진 나로서는 그게 누군지 기억을 못해, 검색을 했더니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란다.

‘아~ 천동설이 세상에 만연하던 시대에 정반대의 생각을 주장한 학자.

그렇다면 이 소설 역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어 줄 것이란 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제목 자체가 이미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있다는 걸 깨닫는다.


 

 

  소설의 세상은 미국 뉴잉글랜드 툼스빌 이라는 지방도시다. 도시자체가 무덤마을이라니..

  무대가 미국인만큼 등장인물 역시 대부분 미국인이다. 발리콘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장례회사 ‘스마일리 공동묘지’ 가 위치해 있다.

  소설의 맨 첫 장을 펴면 머리에 도끼 맞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옆에 있던 등장인물의 멍한 반응까지. 역시 명불허전, 독자를 초반부터 사로잡는 방법을 아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인 개성 넘치는 펑크족 그린과 함께 다니는 체셔.

  내용을 널리 퍼뜨려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세계에서 공공의 적이 될 생각은 없다.

  줄거리를 간단히 말해보면 이 주인공 그린과 체셔가 주인공으로 이끌어가는 이 소설은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것도 기억을 잃고, 판타지 소설처럼 네크로맨서가 등장해서 그 시체를 조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기억은 온전히 다 가지고 있는 채로, 생각도 할 수 있으며, 달리기까지 하는! 그런 시체들이 다시 살아나는 세계에서 그린은 아버지 몫의 유산을 받기위해 툼스빌로 돌아온다. 그러나 죽는다 ― 죽고 나서 500페이지 더 남아있으니 미리니름이라고 욕하지 말자, 목차에도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지 라는 목차가 나와있을정도.― 의도치 않게 죽는다. 누군가가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초콜릿에 독을 탔으나, 그것을 그린이 먹어버린 것. 그 후 그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체가 살아난다는 비현실적인 세계와 그와 관련된 학문, 즉 사학(死學)이라는 현실적 세계를 접목시켜 독자에게 실제로 함께 나아가는 듯 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죽음, 그리고 삶,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것을 어느 샌가 함께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이란 소재는 어찌 보면, 아니 거의 대부분 죽음이란 소재자체가 음울하다. 자칫하면 어느새 스토리가 암울하게 나아갈지도 모르는, 소설로서는 함부로 쓰기 위험하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우습다. 비웃음의 우스움이 아니다. 정말로 웃긴다. 진지하게 읽다보면 피식피식하고 긴장을 풀어 헤친다. 그리고 다시 긴장하게 만든다. 죽어버린 주인공이 만드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독자로 하여금 이 많은 페이지의 압박을 견디고 끝까지 단숨에 읽어가게 만든다.


 

  삶과 죽음은 영원히 함께하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법칙과 어긋난, 죽었는데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나타나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런 법칙이 자연화 된다면 이 세계에서의 관념, 상식도 모조리 바뀌겠지. 죽음에 대해 노래한 고대 선조들의 멋들어진 시가들이 '이 무슨 헛소리야'라고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과감히 그런 세계를 만들어냈고, 그런 세계 속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으려 하고, 생각하려 하고, 추적해나간다.

  이 소설에서 그린이 진정 쫒고 있는 것은 과연 범인일까, 이 모순이 일어난 법칙에 대한 진실일까. 작가가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 과연 단순한 범죄에 대한 추적, 추리일까, 아니면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단순하지만, 깊게 생각하라는 의미일까.


나는 후자였지만, 그것은 독자가 읽기 나름일 것이다. 내일은 일어능력시험이고, 4일후엔 대학 시험시작이다. 나에겐 이 거대한 양의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읽었으면 안되는 입장이었음에도 결국 책을 펴자마자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자극 강한 소재로, 읽는 이에게 호기심이라는 지적 자극을 주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눈과 집중력, 시간을 빼앗기게 하지만, 빼앗긴 것에 대한 후회도, 한탄도 남지 않고 그저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의 미스터리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편하게 다가가게 해줘서 다 읽고 나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지식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장편 미스터리 소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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