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 야마구치 마사야 作

시체가 죽는다. 어라?... 시체가 죽어? 시체가 뭐였더라…….? 내가 알고 있는 시체랑 다른 건가?
  屍體 - 주검, 즉 죽은 사람의 육체.
맞는데 왜 시체가 죽어 아하하하 뭐야 이 제목은. 

하고 웃어넘겼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지긋지긋하게 배우는 모순이다. 
살아있는 시체에 콤보어택으로 그 시체가 죽는단다. 근데 살아있으니 죽는 건 모순이 아니다.
뭐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럼 좀비인가? 하지만 좀비라는 건 살아있는건 아니잖아.

내가 본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런 의문을 주며 다가온다. 책 겉에 붙어있는 종이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빛나는 본격 추리소설의 걸작’
    ‘199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선정 과거 10년간 최고의 추리소설 1위’
    ‘2008년 다카라 지마 선정, 과거 20년간 가장 재미있는 추리소설 2위’
  

라는 소개가 붙어있다. 코페르니쿠스가 누구더라……. 좁디좁은 상식세계를 가진 나로서는 그게 누군지 기억을 못해, 검색을 했더니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란다.

‘아~ 천동설이 세상에 만연하던 시대에 정반대의 생각을 주장한 학자.

그렇다면 이 소설 역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어 줄 것이란 건가?’ 라고 생각한 순간

제목 자체가 이미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있다는 걸 깨닫는다.


 

 

  소설의 세상은 미국 뉴잉글랜드 툼스빌 이라는 지방도시다. 도시자체가 무덤마을이라니..

  무대가 미국인만큼 등장인물 역시 대부분 미국인이다. 발리콘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장례회사 ‘스마일리 공동묘지’ 가 위치해 있다.

  소설의 맨 첫 장을 펴면 머리에 도끼 맞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옆에 있던 등장인물의 멍한 반응까지. 역시 명불허전, 독자를 초반부터 사로잡는 방법을 아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인 개성 넘치는 펑크족 그린과 함께 다니는 체셔.

  내용을 널리 퍼뜨려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세계에서 공공의 적이 될 생각은 없다.

  줄거리를 간단히 말해보면 이 주인공 그린과 체셔가 주인공으로 이끌어가는 이 소설은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것도 기억을 잃고, 판타지 소설처럼 네크로맨서가 등장해서 그 시체를 조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기억은 온전히 다 가지고 있는 채로, 생각도 할 수 있으며, 달리기까지 하는! 그런 시체들이 다시 살아나는 세계에서 그린은 아버지 몫의 유산을 받기위해 툼스빌로 돌아온다. 그러나 죽는다 ― 죽고 나서 500페이지 더 남아있으니 미리니름이라고 욕하지 말자, 목차에도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지 라는 목차가 나와있을정도.― 의도치 않게 죽는다. 누군가가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초콜릿에 독을 탔으나, 그것을 그린이 먹어버린 것. 그 후 그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시체가 살아난다는 비현실적인 세계와 그와 관련된 학문, 즉 사학(死學)이라는 현실적 세계를 접목시켜 독자에게 실제로 함께 나아가는 듯 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죽음, 그리고 삶,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것을 어느 샌가 함께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이란 소재는 어찌 보면, 아니 거의 대부분 죽음이란 소재자체가 음울하다. 자칫하면 어느새 스토리가 암울하게 나아갈지도 모르는, 소설로서는 함부로 쓰기 위험하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우습다. 비웃음의 우스움이 아니다. 정말로 웃긴다. 진지하게 읽다보면 피식피식하고 긴장을 풀어 헤친다. 그리고 다시 긴장하게 만든다. 죽어버린 주인공이 만드는 슬랩스틱 코미디는 독자로 하여금 이 많은 페이지의 압박을 견디고 끝까지 단숨에 읽어가게 만든다.


 

  삶과 죽음은 영원히 함께하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법칙과 어긋난, 죽었는데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나타나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런 법칙이 자연화 된다면 이 세계에서의 관념, 상식도 모조리 바뀌겠지. 죽음에 대해 노래한 고대 선조들의 멋들어진 시가들이 '이 무슨 헛소리야'라고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과감히 그런 세계를 만들어냈고, 그런 세계 속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으려 하고, 생각하려 하고, 추적해나간다.

  이 소설에서 그린이 진정 쫒고 있는 것은 과연 범인일까, 이 모순이 일어난 법칙에 대한 진실일까. 작가가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 과연 단순한 범죄에 대한 추적, 추리일까, 아니면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단순하지만, 깊게 생각하라는 의미일까.


나는 후자였지만, 그것은 독자가 읽기 나름일 것이다. 내일은 일어능력시험이고, 4일후엔 대학 시험시작이다. 나에겐 이 거대한 양의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읽었으면 안되는 입장이었음에도 결국 책을 펴자마자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자극 강한 소재로, 읽는 이에게 호기심이라는 지적 자극을 주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눈과 집중력, 시간을 빼앗기게 하지만, 빼앗긴 것에 대한 후회도, 한탄도 남지 않고 그저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의 미스터리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편하게 다가가게 해줘서 다 읽고 나면 아무런 미련도 없이 지식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장편 미스터리 소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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