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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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이 맞는 말들이라며 고개 끄덕이며 읽게 되는 책을 만나게 되어 겁나게 행복하다.

법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저널리스트로 여러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래도 내 이해의 반경을 넓혀왔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리고 말과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 스스로 소개하는 주제에... 종종 말문이 턱 막힐 때가 있다.

누군가가 별로 재밌지도 않은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상처받을 만한) ˝농담˝을 하면서 낄낄거릴 때,
내 리걸 마인드가 분명히 저건 뭔가 잘못 됐다고 양심에 속삭이는 데도 ˝너 과민 반응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듣는 게 겁날 때,
그리고 ˝성별, 종교, 국적, 학력, 외모 등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누누이 배워놓고도 정작 내 스스로 생각없이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을 때,

발언해야 하고, 왜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이 인간으로 옳은지 설명해야 할 때.......
결국 모자란 통찰과 말솜씨를 한탄하면서 입을 다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내가 그 때 했었어야 했던 말이 모두 들어있다.

이 책은 영어로 localizing 해서 미국에서 출판해도 좋을텐데 싶다. 아니, 평등을 추구하는 어느 사회에서든 출판되면 좋을텐데.

스스로 ‘공정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의 틀을 깨 준다는 점에서 얼마 전에 읽은 ‘팩트풀니스‘를 연상시킨다.

읽으면서 내내 ‘아, 내가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골백번을 생각했다.

그랬으면 내 인생에서 부끄러운 일 탑 3 안에서 한 일화 정도는 없어지지 않았을까.

미국 저널리즘 대학원 첫 학기 때의 일이다.

미국에는 ALL GENDER RESTROOM이 많다. 말 그대로 모든 성을 가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화장실이다. 사람의 성을 남/여 이분법으로 쉽게 쉽게 나눌 수 없다는 성찰이 만든 공간이다.

사회학과 법학에서 젠더연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은 행동으로 옮길 수 없으면 죽은 것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ALL GENDER INCLUSIVE 라고 적혀있음에도 문 앞에 파란 남자 빨간 여자 그림이 여전히 붙어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빨간 그림이 붙은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가죽재킷을 입고 듬직한 체격에 목젖이 나온 장발의 사람이 날 바라봤다. 같은 학년 학생이었다. 수업도 한 두 개 같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정말 반사적으로 나는 내가 밀고 들어온 문 밖으로 뒷걸음질로 걸어나가 그 놈의 ˝빨간 여자 그림˝을 확인했다. 확인 후 ‘아차!‘ 했다.
그 친구가 화장실 안에서 소리 쳤다. ˝너 제대로 들어온 거 맞아!˝

그 순간에 내 얼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글을 쓰는 지금도 기억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연애 지향 등 백날 배우면 뭐 하나. 성소수자 보호에 대해 교실에서 백날 토론한 건 대체 뭐 였을까.
나는 머리로 ‘알고만‘ 있고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날 오후, 학교 총장이 전체 학생에게 이메일을 돌렸다. ˝ALL GENDER INCLUSIVE 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외모, 어떤 성별 정체성, 어떤 성적 지향을 지녔든 그 사람은 존중 받으며 우리 학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내 이름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받은 나 자신은 알 수 있었다. 내 교만과 몰이해가 낳은 결과였다.

기회를 노리다, 얼마 후, 그 친구에게 직접 사과를 했다. 사과 후에, 짧은 말을 덧붙였다. ˝정말로 미안해. 내가 이제까지 머리로만 알고 있고 정작 살면서 내 컴포트 존 (comfort zone)에서 나온 적이 별로 없는 우물 안 개구리라, 나와 다른 성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보여야 할 예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 했어. 이제부터 열심히 배우겠다고 약속할게.˝

그러자 그 친구가 물었다. ˝한국은 성소수자가 없니?˝ 내가 대답했다. ˝분명 있는데, 내 주변에서 만나보지 못 했어.˝
그리고 그 친구가 ˝왜? 왜 그런 지 생각해봤어?˝ 되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고, 말 그대로 그만큼 내가 주의를 기울여 알려고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전형이다.

지금도 나는 자라려고 발악하고 있다. 머리 속 지식으로 알고만 있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라고 싶다. 스물이든 서른이든 불혹이든 나이를 먹으면서 그저 지식의 지평만 넓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배운 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그렇게 나 또한 존중해주길 바란다.
내 자식의 자식 대가 되면, 완벽하진 못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마 이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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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12-19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말씀들어보니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구별은 차별과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구별과 차별 이분법조차 분명하게 차별일 수 있다는 책인 것 같습니다. ^^

MJ9 2021-12-19 22:15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 ˝누가 구별과 차별을 정하는가, 누가 구별의 기준을 정하는가˝ 도 권력이라는 말 있더라고요. 저도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다르다‘고 생각하고 넘기던 부분이었는데, 이 책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줬어요. :)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공공질서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이 한마디는 상황에 따라 때로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극단적으로는 다수의 입장에서 소수자의 모든 권리를 부정하고 활동을 억압하는손쉬운 한마디가 될 수 있다. ‘공공질서‘라고 할 때의 ‘공공이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다수가 동의하는 질서가 공공질서이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만능논리가 탄생한다.
- P157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lohn Stuart Mil 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 P171

인정은 단순히 사람이라는 보편성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 즉 차이에 대한 인정을 포함한다. 집단의 차이를무시하는 ‘중립적인 접근은 일부 집단에 대한 배제를 지속시킨다.
‘중립‘ 이라고 가장된 입장은 사실 주류 집단을 정상으로 상정하고다른 집단을 일탈로 규정하며 억압하는 편향된 기준이기 때문이다.  - P182

만일 모든 구분이 자의적이고 편견에 의한 것이라면, 오히려 그구분을 없애야 맞는 접근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흑인은 백인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흑인의 생명은소중하다 "Black Line Matter는 구호는 인종의 분리를 강화하는 배타적인 구호처럼 느낀다. 이 운동을 비판하며 나온 구호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All Lives Mater 였던 사실은, ‘보편성‘이 때로 차별을 은폐하는 억압의 기제로 사용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후자의구호는 사실상 흑인이 경험하는 차별이 드러나지 않게 억누르는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 P181

이제 이 심리적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따라 상황은 크게 바뀐다. 부담을 준 사람을 탓할 것인지, 아니면 그 부담을 나의책임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차별에 관한 논의가 과도하고 부당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평등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변화에 불편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정말 평등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변화가 현재의 불평등보다더 부담스럽고 불편한 걸까? 다른 말로, 현재의 불평등은 우리에게편안한가?
불평등한 사회에서의 삶은 자신의 지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위의 유동성에 따라 개인의 만족감이 달라진다. 불평등이 있더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사람들은 안심한다. 하지만 그 편안한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생에걸쳐 쏟는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P185

불평등한 사회가 주는 삶의 고단함이다.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가야 정말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될지도알 수 없다. 결국 일정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인정받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는 동기를 가지며, 이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학식과 경험이 많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도록일을 맡은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저항 세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 P186

차별금지법에 대해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제정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때의 사회적 합의는 적어도 다수결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다수결 제도의 한계에서발생하는 현상인 차별을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것이 의미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8장 참조) 차별금지법이 과연 논란 없이 제정될 수는 있는 걸까? 이 책에서 다루었듯이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의질서를 바꾸려고 하는데, ‘논란‘이 없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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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 규칙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전제가 있다. 우선 무슨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평가기준을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편향이 없어야 한다. 선정된 평가기준은 누군가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게, 평가를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조건이어야 한다. - P106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판단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존 롤스John Rawls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 vail of ignorance 이라는 것이있다. 내가 가난한지 부자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능력이나 재능이 어느 수준인지 등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사회질서를 정할 때, 개인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모두에게 정의로운 규칙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용기준에서 토익 점수의 경우, 자신이 청각장애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라면 당신은어떤 규칙을 채택하겠는가?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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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외롭게 살아서 노후를 돌봐줄 사람이라면 아무리 못생겨도 좋았다.
밥을 해줄 가정적인 여자라면 아무라도 좋았다.
뚱뚱하긴 하지만 조신한 규수 타입이다. 세상 때가 묻지 않고 순수했다.

사망한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가까운 사람에게 한 말이다. 가지이 마나코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거액의 돈을 바친 것은 확실한데, 제삼자에게는 어째선지 가지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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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차별ystemic discrimination20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
- P74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
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지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 P79

흑인 분장의 논란은 "도대체 왜 웃긴가?" 라는 상당히 심오하고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웃음을 차별로 연결시키는것은 과연 얼마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이며 확대해석 인지에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웃자고 한 말을 우리는 가볍게 웃어 넘겨야 할까? 아니면 정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까?

"왜 웃긴가?" 라는 질문은 "누가 웃는가?" 라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흑인 분장을 보고 웃는 사람은 어떤 집단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인가? 웃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가?
토머스 포드Thomas Ford 와 동료들은 비하성 유머가 마음속 편견을봉인해제시킨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규범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때 차별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 결과 규범이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드러내면서 차별을 용인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설명을 편견규범이론 prejudiced norm theory 이라 부른다.
- P88

이런 ‘놀이‘의 잔혹성은 특히 그 표현의 발신자와 수신자의 간극사이에 존재한다. 수신자의 입장에서 "그건 비하예요!" 라고 말할때, 발신자가 "비하할 의도가 없었어요" 라고 답하는 진부한 레퍼토리가 이 간극에서 나온다.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면 무슨 의도가있었을까? 원래의 의도는 웃음을 유도하려는 경우가 많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도 웃기려는 것이었다. 흔한 말로 개그 욕심‘
이거나 상대의 호감을 얻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 멘트들이다.
- P89

능력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많은 불평등이 정당하게 보인다. 본인이 불리한 위치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으로서 직장에서불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 상태를 수긍하게 된다.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집단에 대한 불이익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홈리스는 일하기 싫어한다‘ ‘동남아시아인은 게으르다‘ ‘장애인은 무능력하다‘ ‘비만인은 자기관리를 안 한다‘ 등 능력에 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만들어지면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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