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가벼운데 주제는 참 무겁다.
미국에 산 지 꽤 시일이 지난 내게 인종과 관련한 담화는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다.
물론, 1920년대 넬라 라슨이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인종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는 백인과 흑인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니까.
작가의 성장 배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인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종 인식이 얼마나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정말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이야기 전반에 묻어난다.
라슨이 이 이야기를 집필하던 시기에는 흑인 브루주아 계층이 부상하고 재즈, 뮤지컬, 문학 등 흑인들의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백인과 흑인 아티스트들 간에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피부색이나 혈통을 기준 삼아 ˝우리˝ 아니면 ˝너네˝로 구분 짓고 차별하던 기준이 얼마나 얼척없는 짓인지가 점점 시각화 됐다. 동시에, 흑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인들이 누리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백인인 ‘척‘ 살아가는 패싱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고 한다.
언뜻, ˝차별이 심한 옛날이니까 그럴 만 하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가기 쉬운데, 사실 현재 미국에 사는 나조차도 국적이나 인종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을 스리슬쩍 이용하려고 일부러 머리를 염색하거나 화장을 진하게 하는 걸 생각하면... (내 경우는 ‘외국인‘ 취급으로 인해 업무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부러 확- 머리와 화장 스타일을 바꿨더니, 다들 ˝여기서 자란 애인 줄 알았다˝며 태도가 바뀌는 걸 경험한 케이스다.) ˝패싱˝같이 스스로의 인종적 정체성이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탓에 일부러 아닌 척 하는 경우가 현대에서도 덜 노골적이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더 왕성히 하지 못 하고 세상을 떴다는 게 안타깝다. 인종 차별을 탐구하는 소설은 많지만, 보통 두 그룹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데, 이 책은 같은 인종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면서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를 탐구해서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