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시인선 214
안희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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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밭엔 당근이 많겠지. 당근밭에 가 본 적 없다. 어떤 밭인들 가 봤으려나. 다 못 가 봤다. 당근은 토끼나 말이 좋아하겠지. 두더지도 좋아할까. 안희연 시집 제목이 《당근밭 걷기》여서 잠시 당근밭을 생각해봤다. 무는 뿌리인 무뿐 아니라 잎도 먹는데, 당근 잎은 못 먹을까. 나물 같은 거 해 먹으면 안 될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당근 잎 먹어 본 적 없다. 파는 당근엔 잎이 없다. 채소에도 꽃이 피는데 당근 꽃은 어떨까. 파는 당근은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겠다.


 채소는 거의 몸에 좋겠다. 몸에 안 좋은 것도 있을까. 당근은 날 걸로 먹어도 되지만 익혀 먹는 게 좋다고 한다. 기름에 볶아서 먹으면 좋던가. 그렇게 먹어야 당근에 있는 영양소를 몸이 잘 흡수한다던가. 난 당근 잘 안 먹는 것 같다. 당근이 들어가는 걸 거의 안 먹는 듯하다. 당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뭘 해 먹지 않으니. 여기에는 시집 제목과 같은 시 <당근밭 걷기>가 실렸다. 두더지가 나오니 뜰에서 두더지 잡는 일을 하다가 그만둔 사람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세한 건 모른다. 당근밭에 두더지는 천적일 것 같다. 두더지가 당근밭에 나타나면 늘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동물하고 나눠 먹으면 안 될까. 두더지가 한두 마리면 괜찮아도 많으면 어려울지도. 별 생각을 다했다.




토끼는 의미를 덧씌우기 좋은 동물이다


너에겐 삶이 선물이니? 물으면

굴을 파는

그럼 저주 같니? 물어도

굴을 파는


내일은 다를 거라 믿고 싶을 때

너무 오래는 말고 한 사나흘만

나를 좀 갖다 버렸으면 싶을 때


빈 공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토끼는 그럴 때 나타난다


순백의 토끼 더러운 토끼 겁에 질린 토끼 속는 토끼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며


토끼는 몇 겹의 세계를 건너간다

창밖에는 백 년 전의 눈이 내리고 있다


겨우 이런 곳에 오고 싶었던 거야?

이곳에선 너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박힌 못을 빼는 심정으로

계속 질문을 건네보지만


결국은 내가 만든 날씨

깊어진다는 착각


일렁이는 불은 화면 속에 있고

이곳엔 추위를 느끼며 토끼 탈을 뒤집어쓴 내가 있을 뿐이다


빈 공책을 할퀴고 지나간다, 바람소리

깨어 있는 나를 어디까지 깨우려는 것일까, 한낮의 자명종소리


토끼 탈을 벗어 곁에 둔다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여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모든 시간이 다 자국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꽁꽁 언 얼음 아래서 들려오는 기척

아직 있다


-<토끼굴>, 52쪽~53쪽




 토끼가 생각났는데 <토끼굴>이라는 시가 있었다. 토끼 탈을 쓴 걸까. 토끼가 나오는 다른 시도 있다. 이 시집에 담긴 말에는 ‘새’가 많다. 누군가는 새라는 말을 슬프게 여겼다. 사람이 죽으면 흰 나비가 되어 나타난다는 말이 있는데, 새가 되어 나타난다는 말도 있던가. 어디선가 누군가 죽고 새가 날아오자 죽은 사람을 떠올린 것 같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속눈썹이 얼어붙었어.


 이 세상 추위가 아니구나.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비겁해 보여도 할 수 없다고 이쯤에서 생각을 끊어내려 했는데


 본섬은 이미 점처럼 작아진 지 오래였고 배는 계속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어. 이 여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너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고이고 고여 바다를 이루고 한 척의 배를 띄웠다는 거.


 이 배엔 조타실이 없고 발로는 올라탄 흔적이 없다. 무엇이 배를 움직이는 걸까. 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나니 꺼내줄 사람을 기다리게 되더라. 그런 존재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와 하늘의 구분이 의미 없어지는 때가 오고. ‘새는 북쪽으로 갔다’고 적었다가 ‘새가 날아간 곳이 북쪽이다’고 고쳐쓰는 일을 그만두게 돼. 그런 말장난은 반쪽짜리 믿음일 뿐이다고.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무엇이 배를 멈출 수 있을까. 어떻게든 너를 찾아 본섬으로 되돌아가고 싶은데 이제 그곳은 눈을 감으면 큰불로 타오를 뿐이야.


 안 그래도 잔잔한 바다가 간밤에 더 고요했어. 숨소리조차 시끄러울 만큼. 어둠속에서 뒷걸음질치다 무언가를 밟았는데. 뭘 봤고, 뭘 밟았을까. 그후론 배고픔을 모르게 되었어.


 손가락을 움직이면, 손가락이 움지이지 않는다. 이곳이 너의 나라구나. 사월이 끝났을 뿐인데 세상이 끝나버린 기분이 들어.


-<본섬>, 74쪽~75쪽




 이 시 첫연을 봤을 때부터 죽음이 떠올랐다. 배는 세월호일까. 마지막 연엔 ‘사월’이 나오는구나. 이 시 다음부터 여러 편에 죽음이 담겼다. 누군가의 죽음을 겪고 시를 썼을까. 할아버지는 그럴지도. 귤 상자를 들고 너의 집을 찾아가는데, 너의 집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어느 십일월의 저녁이었지

비가 오고 있었고

밖으로 나왔는데 놀랍도록 날이 포근했어


지구가 단단히 미친 것 같아

인간은 숨만 쉬어도 지구 붕괴에 가담하고 있어

멋지게 비를 맞으며 살고 싶은데 오늘 또 우산을 샀지 뭐야  (<긍휼의 뜻>에서, 37쪽)




진심을 다하려는 태도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고

멀리 두고 덤덤히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미결>에서, 140쪽)




 여기 담긴 시를 다 알지는 못한다. 시가 길어서 다 옮기지도 않았구나. 읽다 보니 괜찮은 느낌이 드는 시가 여러 편 있었는데. 어쩐지 슬프기도 쓸쓸하기도 한 시다. 시는 거의 그럴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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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09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집을 사 놨어요. 완독하진 못했어요. 분명히 구매할 때는 꼭 읽어야지, 하고 구매했을 텐데 몇 편만 읽었네요. 몇 편이라도 읽는 게 어딘가, 뭐 이러면서 시집을 사는 것 같습니다.
시를 읽고 좋은 것 뽑아 알라딘에 올리자, 고 또 한 번 다짐합니다!!!
˝진심을 다하려는 태도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고˝ - 진심을 다했는데 결과가 나빴을 경우를 생각하게 됩니다.

희선 2025-11-12 19:09   좋아요 0 | URL
시집 끝까지 못 봐도 괜찮겠지요 조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입니다 남은 건 언젠가 볼지도 모르죠 저는 한번에 죽 다 봅니다 한번 죽 보고 다시 한번 더 봅니다 시는 한편 한편 천천히 보는 게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군요 언제 그렇게 할 날이 올지... 처음에 볼 때 마음에 드는 게 있기를 바라는데, 하나도 모를 때도 많아요

진심을 다해도 결과가 안 좋을 때 있겠지요 진짜 진심이었나 생각해 봐야 할지도...


희선
 


복수, 악마





받은대로 대갚기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당한 것보다 몇 배로 돌려줘야 해


사람 마음을 모르는 사람

사람일까

자기 마음만 생각하는 사람

사람일까


겉만 사람이지


세상엔 겉만 사람이고

속은 악마가 있다네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은데

운이 없게 만나기도 한다네


악마한테 복수는 안 먹혀

괴로워하며 살 수밖에

그냥 모르는 척하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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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1-09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수는 자기 손에 뜨거운 무엇을 갖고 던지는 행위다, 이런 글귀가 떠오릅니다. 남을 해치기 전에 자기 손이 화상을 입는 거라는 거죠. 복수하고 나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겁니다. 복수는 또 하나의 복수를 낳을 뿐이죠. 각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 라고 이해하고 내 기준과 당신 기준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할 듯싶어요.

희선 2025-11-12 19:14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한테 안 좋게 하면 결국 그건 자기 자신한테 돌아오고, 자신한테 오지 않으면 그 밑에 사람한테 오겠지요 그런 거 알아도 복수하고 싶을 때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보면서 복수하려고 할까 하는데, 자기 일이 되면 좀 달라질지도 모를 듯합니다 복수는 다른 복수를 낳기는 하죠 전쟁이 일어나면 그런 일이 많을지도... 생각 안 하고 살면 좋을 텐데...


희선
 


뭐든 남 탓을 하네





자신이 태어난 것부터

무엇이든 남 탓을 하네


자신이 정한 것도

모두 남 탓이네


남을 탓하면 편할까


뭐든 남을 탓하고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거겠지

자신은 책임이 없다

모두 남 때문이다고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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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골짜기로 가는 길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이유진 옮김, 토베 얀손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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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 알았던 무민이다. 무민 시리즈는 소설도 나오고 만화로도 나왔을까. 그림책이 있길래 이걸 먼저 보기로 했다(다른 건 볼지 잘 모르는데 이렇게 말했구나). 《무민 골짜기로 가는 길》은 토베 얀손 원작을 알렉스 하리디와 세실리아 다비드손이 각색하고 세실리아 헤이킬레가 그림을 그렸다. 무민은 75년 전에 나왔나 보다. 이 책이 나온 건 2020년이니 시간은 더 흘렀겠다(80년 전). 무민은 나이를 먹지 않지만 무민이 나오고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난 무민을 잘 몰랐다. 지금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림책으로 여러 권 보고 조금 알아볼까 한다.


 지금 생각하니 무민은 이름이구나. 무민은 트롤이라는 핀란드 괴물 요괴인 듯한데. 무민은 하마처럼 생겼다. 트롤이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른다. 토베 얀손이 처음 그린 무민은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지금 모습이 되고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마를 닮았지만 무민은 하마가 아니다. 토베 얀손은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썼구나. 자신이 쓴 이야기 캐릭터를 자신이 그렸으니 말이다.


 며칠째 비가 내렸다. 무민마마와 무민은 겨울을 나려고 햇볕이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곳에 집을 지으려고. 둘은 어디에 있다가 겨울 준비를 하게 된 걸까. 소설에는 그것이 나올지. 무민마마와 무민은 숲에서 스니프를 만나고 함께 집을 지을 곳을 찾으려 했다. 늪을 건너다 커다란 뱀을 만나기도 했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자 뱀은 그곳을 떠났다. 음악은 노란 텐트에서 나왔다. 거기에는 자유롭게 사는 스너프킨이 있었다. 스너프킨은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가 보다. 스너프킨한테도 함께 가자고 했지만 스너프킨은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한다. 무민은 다시 스너프킨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민마마와 무민 그리고 스니프가 다음에 만난 건 대머리황새다. 대머리황새 안경을 스니프가 찾아줘서 대머리황새는 셋을 등에 태우고 나무를 살펴본다. 나무 위에 무민파파가 있을지 몰라서. 비가 꽤 오랫동안 오고 물난리가 났던가 보다. 다른 생명체도 나무로 피하고 무민파파도 나무 위로 피했다. 그건 병속 편지에 적혀 있었다. 그걸 무민과 무민마마가 보다니, 신기한 일이다. 무민파파도 만난다. 무민파파는 어딘가에 가는 걸 좋아했다. 무민과 무민마마와 같이 살지 않은 건 얼마나 됐을지. 이번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을지.






 셋에서 넷이 되어 따듯한 곳을 찾아다닌다. 걷다가 넷은 따듯한 숲을 찾아내고 거기엔 무민파파가 지은 집이 있었다. 그런 놀라운 일이 있다니. 집이 빗물에 떠내려가기만 하고 부서지지 않았구나. 무민과 무민마마 무민파파는 그곳을 무민 골짜기라 이름 지었다. 얼마 뒤에 스너프킨도 찾아온다. 무민 골짜기는 이렇게 생긴 거구나. 미이와 무민과 같은 트롤인 스노크메이든도 만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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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이코패스

둘 다 만나고 싶지 않아


사이코패스를 만나고 싶지 않아도

처음부터 옆에 있다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이코패스는

마음을 죽이지

남의 마음을 조종하려들고

자신이 가장 위에 있다 여겨

그 앞에선 조용히 숨을 죽이는 게 나아

언젠간 멀어지겠지

멀어지기를 빌 수밖에……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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