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느 밤 세상은 빛으로 가득찼어요

그건 아주 순식간이었어요

누군가는 텔레비전을 보고

누군가는 책을 보고

누군가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는……

저마다 무언가를 하던 사람은 갑작스러운 일에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어요

움직이려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자신조차도

아주 조용한 몇 초가 흐르고

온 세상은 외마디소리로 들썩였어요

“이건 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세상이 끝나는 거야”

“어둠은 어디로 갔지”

정말 어둠은 어딘가로 사라졌을까요

 

다행하게도 곧 세상은 본래대로 돌아왔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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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이야기 잘 알지요

남자가 어렸을 때는 자신 위에서 놀게 하고

남자가 자랐을 때는 자신을 베어 쓰게 하고

남자가 나이 들었을 때는 쉴 곳을 주었지요

이젠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나무와 사람은 없을지도

아니 그건 모르는 일이군요

봄이면 꽃을 활짝 피운

벚나무를 보면

꼭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어쩌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는 걸지도

거기에 사람이 끼어드는 건가

꿈이 없는 이야기군요

 

언덕 위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는

누군가를 기다려요

어린시절을 벚나무와 함께 보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먼 곳으로 가면서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어요

벚나무는 언제까지고 약속을 잊지 않겠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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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언젠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목숨 있는 건

언젠가 끝을 맞이한다

 

사람은 한해를 살면

한살을 먹었다고 하는데

정말 사람은 한해를 살면

한살 먹는 걸까

 

늘 그대로일 수 없으니

나이라는 걸 세는 거겠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철없는 건 그대로다

 

철들면 무겁고 죽을 날이 가깝겠지

할 수 있는 한 늦게 철들자

그래, 맞아

죽을 때쯤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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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모래를 싣고 왔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는 사라지지 않고

모든 것을 덮었다

 

모래속으로 사라지는 시간

모래속으로 사라지는 세상

 

쉼없이 모래바람이 불어도

너와 내 마음은 덮지 못하리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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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을

언제나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마을 어귀 느티나무라네

 

마을 사람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산

느티나무는 모두의 친구지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여름 밤 벼락을 맞고

느티나무는 쓰러졌다네

 

이듬해 봄,

쓰러진 느티나무에서

새잎이 돋아나

마을 사람은 모두 기뻐했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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