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스위트 홈 8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1년 04월 22일

 

 

 

 

 

 

 

 

 

 

 

 

사람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도 고양이 생활을 다 알 수 있을까. 고양이는 집안에서만 지내지 않을 거다. 아니 요즘은 집에서만 지내는 고양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비싼 것도 많으니까. 그래도 집에서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는 고양이도 있겠지. 치도 처음에는 집 밖에 나오지 못했다. 요헤이네가 전에 살던 집에서는 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치는 길에서 주웠지만(그렇다고 길고양이는 아니다, 어미와 떨어진 것뿐이다), 요헤이와 엄마 아빠는 치를 함께 사는 식구로 여기게 되었다. 요헤이네는 치를 키우기 위해, 아니 치와 함께 살기 위해 동물을 기를 수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시간은 얼마나 흐른 걸까. 새 집으로 옮기고 치가 돌아다니는 곳은 조금 넓어졌다. 검정 고양이를 다시 만나고, 새 친구 코치를 만났다. 코치는 밖에서 사는 얼룩 고양이다. 치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길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아는 듯하다. 만화 속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흘러가는구나. 현실에서 고양이는 몇달만 지나면 꽤 클 텐데, 치는 여전히 귀여운 새끼 고양이다. 사람인 요헤이도 여전히 어리다. 치는 언제까지나 새끼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땅에 내려온다. 몸이 가벼운 것도 있고 땅에 내려올 때 몸에 충격을 덜 받게 하는 방법이 있는 건지도. 치는 먼지떨이로 청소하는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놀자고 한다. 먼지떨이가 강아지풀처럼 생겨서 치는 엄마가 놀자고 하는 걸로 생각한 거다. 엄마가 높은 곳 먼지를 털어서 치 발이 닿지 않았다. 치는 이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먼지떨이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치는 계단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고양이든 물건이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시간은 아주 짧다. 만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냈을까. 공중으로 뜬 치는 뭐지 하는 모습이었는데, 조금씩 몸을 돌려서 바닥에 사뿐히 네 발을 디딘다. 그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다니. 높은 곳에서 내려온 건 이때만은 아니다. 요헤이, 엄마, 아빠가 치와 놀아주지 않자 치는 공원에서 만난 코치를 생각하고 그곳에 간다. 코치는 공원에 있었다. 치가 같이 놀자고 하니 ‘나는 바빠’ 하고 다른 곳에 가려고 했다. 그런 코치을 멈추게 한 것은 빈 상자였다. 치가 먼저 안에 뭐가 들었나 발로 눌러보니 코치도 똑같이 했다. 둘이 앞발을 집어 넣고 뭔가 있다고 하는데 서로의 앞발이라는 것을 곧 알았다. 둘은 조금 아쉬워했다.

 

공원에서 나온 치와 코치는 어느 집을 지나다 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문양)을 보고 둘이 한번에 들어가려고 했다. 두 마리가 한번에 빠져나갈 만큼 크지 않아서 차례차례 들어갔다. 그전에 코치가 뭔가 무서운 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치는 조금 겁을 먹었다. 치는 자기 발로 밟은 나뭇가지가 부러진 소리에 놀라고 얼굴에 닿은 풀잎에 놀랐다. 둘은 빈 플라스틱 통을 굴려보고, 나뭇잎과 벽 사이로 좁은 하늘을 보고 놀라워했다. 별일 없이 그 집에서 나왔다. 얼마 뒤 개가 나타났다. 치는 겁을 냈는데 코치는 줄에 묶여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사람이 개줄을 놓쳐서 치와 코치한테 달려왔다. 치와 코치는 개한테 쫓겨서 나무로 뛰었는데 치는 조금밖에 못 뛰었다. 코치가 치한테 위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치는 잘 올라가지 못했다. 개가 치를 핥자 깜짝 놀라서 빨리 위로 올라갔다. 조금 뒤 주인이 나타나서 개를 데려갔다. 드디어 치가 높은 곳에 올라갔구나.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만 내려오는 건 어렵다고 한다. 치와 코치도 나뭇가지에서 밑을 보고 어떻게 내려가지 했다. 코치가 먼저 내려오고 치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짧게 말하다니. 사람과 사는 고양이는 자기도 사람으로 생각한다는데 치도 그랬다. 그러면서 코치와 놀다니. 코치는 대체 뭐냐고 치한테 물어보고 싶다.

 

한번은 코치가 치를 바깥으로 불렀다. 우유를 먹다가 치는 바깥으로 나갔다. 코치가 좋은 곳을 찾았다면서 치한테 따라오라고 했다. 그곳은 창고였다. 코치와 치가 그 안에서 놀면서 거기 쌓인 물건을 건드려서 큰 소리가 났다. 그 집 사람이 나와서 코치와 치를 내쫓았다. 치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거기 숨어있었다. 사람이 물건 정리를 하고 문을 닫아서 치는 그곳에 갇혔다. 오랫동안 그 안에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치가 나갈 곳을 찾으려고 물건을 건드려서 또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나타나서 문을 열었다. 사람이 치를 잡으려고 했을 때 치는 요헤이와 엄마 아빠를 생각하고 사람을 잘 피했다. 한편 코치는 치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다니고, 집에서도 요헤이와 엄마 아빠가 치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 이런저런 걱정을 했다. 그러다 밖으로 나와서 찾아다녔다. 코치와 치가 함께 오는 모습을 요헤이가 보았다. 배가 고픈 치는 집에 가서 우유를 먹어야지 했는데, 엄마 아빠는 치를 씻겼다. 치가 창고 안에서 돌아다녀서 먼지가 묻어서 지저분했다. 먼지 때문에 치는 눈이 안 좋아졌다. 결막염이었다. 동물이 발로 눈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때 고깔 모양을 씌우지 않는가. 치도 그것을 목에 둘렀다. 그거 이름이 엘리자베스 칼라인가보다. 처음 알았다.

 

요즘은 고양이와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만화와 책이 많이 나온다. 이것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치는 새끼 고양이로 요헤이네 식구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다른 고양이와 노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번에도 코치와 놀았구나. 앞으로도 코치와 노는 일이 많이 나올까. 사람이 모르는 일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데 고양이가 정말 이럴까 싶기도 하다. 실제보다 더 귀여우니까. 아니 진짜 새끼 고양이는 귀여울거다. 그 시간이 짧을 뿐이구나. 큰 고양이는 그것대로 사람 마음을 따듯하게 해줄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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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4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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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5 0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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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이룬 저지

 

  데가미바치 16

  (레터 비 Letter bee)

  아사다 히로유키

  슈에이샤(集英社)  2013년 06월 04일

 

 

 

 

 

 

 

폭풍의 언덕

 

 

 

이 책 15권을 언제 보았는지 모르겠다. 한해이상 넘은 것 같다. 15권 언제 보았는지 찾아보니 2012년 4월이었다. 한해가 아니고 두해 넘게 지나다니. 이 책 16권은 2013년 6월에 나왔다. 그러니까 <원피스>보다 권수 덜 나왔다. 자주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앞에 것을 본 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다. 라그 엄마가 라그한테 ‘깜박임의 날’ 태어난 아이를 찾으라는 말을 남긴 것밖에는(라그를 넣어서 다섯이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이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 고. 그 말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그런 아이들을 찾으러 간 건 아니다. 일(편지배달)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싶다. 아니 지금은 그래도 언젠가는 그 아이들을 찾는 데 힘을 쓸지도 모르겠다. 나도 잊어버렸는데 이 세계를 대충 이야기한다면, 이곳은 밤만이 있는 앰버그라운드다. 수도 아카츠키에는 인공태양이 있고, 유사리, 요다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유사리는 좀 보통이고 요다카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계급이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보다 땅이 그렇다고 해야겠다(이곳은 아카츠키에서 요다카로 갈수록 빛이 약해진다). 보통사람은 유사리와 요다카를 쉽게 넘나들 수 없구나. 통행증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이곳에는 사람 마음을 먹는 엄청 커다란 곤충처럼 생긴 갑충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다른 곳에 잘 다니지 않는다(위험한 걸 알아도 다니는 사람도 있다). 갑충한테 마음을 먹히면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멀리에 사는 친척이나 식구와 소식을 주고받고 싶다. 그 일을 도와주는 게 비(벌)다. 비는 국가공무원으로 갑충과 싸워서 쓰러뜨릴 수 있다. 비는 위험한 곳이어도 편지를 전해준다. 어쩐지 비는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많은 것 같다. 심탄총에 넣을 마음 때문일까.

 

라그와 코너도 나오는데 저지 이야기가 많다. 저지가 비가 된 건 부모 마음을 빼앗은 갑충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예전에는 이렇게만 알았다. 이번에 저지가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지 부모가 저지를 고아원에 버린 건 빚대신 아이를 달라고 해서다. 그렇게 팔려간 아이는 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부모는 저지를 고아원에 버리고 빚을 갚으면 꼭 다시 데리고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부모가 저지를 데리러 고아원에 찾아왔을 때 저지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저지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저지 부모는 갑충을 만나고 마음을 빼앗겼다. 저지 부모가 쓰러진 곳에는 저지한테 남긴 편지가 있었다. 저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이때 저지는 부모가 왜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는지 몰랐다. 빚 때문에 그랬다는 건 나중에야 안다.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리고 부모가 남긴 편지를 본 다음에. 편지에 라그가 심탄을 쏘았다. 라그 심탄은 물건에 담긴 사람 기억을 보여준다. 저지라는 이름은 ‘올곧게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저지 부모는 저지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이름을 지었다. 저지가 부모와 함께 살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런 것을 아주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쩌다 보니 끝을 먼저 말했다. 이런 게 처음은 아니지만. 저지는 라프로이그가 나타난 마을에 가서 폭풍의 언덕이라는 여관에 머물렀다. 며칠 동안 저지는 라프로이그를 찾아다녔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 소설이다. 재미있게도 여관 주인 부부 이름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었다. 저지가 폭풍의 언덕에서 만난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 에밀 브론테였다(이름을 조금 바꾸다니). 에밀도 저지처럼 고아였다. 여관 주인 부부가 에밀을 고아원에서 데려와 일을 시켰다. 주인 부부는 마음 따듯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도 에밀한테 잘해주지 않았다. 에밀 마음은 어둠에 물들었다. 저지도 고아원에서 그렇게 잘 지낸 건 아니었다. 거기 원장이 별로였다. 그래도 저지는 부모를 잠깐이라도 만나서 나쁜 마음을 먹지 않은 건지도. 에밀은 정령호박반지로 라프로이그를 조종했다. 마을 사람과 여관 주인 마음을 라프로이그한테 먹게 했다. 저지는 좀더 빨리 에밀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건 에밀도 마찬가지였다. 에밀이 마음을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에밀과 라프로이그가 하나가 되고 에밀 마음을 모두 갑충한테 주었다. 라그, 코너가 와서 시간을 끌면서 라프로이그 약점을 찾아냈다. 그곳을 저지가 공격해서 라프로이그를 쓰러뜨렸다.

 

에밀을 보니 나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나중에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게 생각났다. 에밀은 이제 열두살인데.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구나. 그동안 힘들고 괴롭게 지냈을 테니. 아이가 느끼는 시간은 길기도 하다. 에밀 기억에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 나왔는데, 에밀이 깜박임의 날 태어났다는 말이었다. 한사람 찾았는데 제대로 말도 못해보다니 라그는 아쉬웠겠다. 다른 사람은 좋게 만나기를 바란다. 갑충 이름을 라프로이그라고 했는데, 어쩌면 러프로이그일지도. 저지가 찾던 갑충이 맞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라프로이그가 얼마나 있는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지는 이제 자기 할 일은 끝났다고 여겼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 산 것처럼 생각하다니. 저지는 앞으로도 라그, 코너와 함께 비로 살아가겠지.

 

어떻게 다른 사람 기억을 볼 수 있을까 할 텐데 심탄(마음탄)이 본래 그렇다. 갑충을 쓰러뜨릴 때 쏜 심탄 때문에 사람 기억이 보이기도 한다. 말로 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보이면 좋을 텐데, 이건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구나.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갑충은 사람 마음을 먹는데, 그 마음으로 갑충을 쓰러뜨린다니 말이다. 그냥 마음은 아니구나. 정령호박과 마음을 모을 총같은 연장이 있어야 한다(총이 아닌 것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나오는 것은 그냥 마음과는 다른 것이겠다. 저지가 지내던 고아원 존그리어는 진 웹스터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디가 있던 고아원 이름이라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 내용은 아는데 소설은 아직 못 보았다. 만화도 제대로 다 봤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에 ebs에서 라디오 소설 시간에 읽어주는 것을 듣고 좀더 알았다.

 

 

 

 

 

 

 

본래 만화책 한권 보고 쓴 것만 올릴까 했다. 나는 읽은 지 오래된 것은 거의 못 쓴다. 아마 그 책을 오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누군가는 책 한권을 만나고 그게 아주 좋아서 읽고 또 읽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무언가를 쓰는 사람도 있구나.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내가 줄거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도 하고 벌써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보고 두번 쓰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어쩌다 한번 더 쓴다).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한번 쓰고 나면 못 쓰다니.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예전에 본 게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보는 책과 비슷하거나 그냥 문득 떠오르는 거겠지. 어떤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과 같다. 내가 읽은 책에 자신을 갖지 못하는 탓도 있다. 좋으면 좋은대로 별로면 별로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책을 잘 못 봐서 그런 데 자신 없다. 좋은 건 좋다 말하지만 별로인 건 말하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테니까. 잠자기 전에 어떻게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써야 했다. 그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그 생각이 다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책을 본 기억을 쥐어짜내볼까 한다.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2014, 자음과 모음)

 

다른 책보다 이 책은 빨리 우리나라에 나와서 놀랐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때와 같거나 조금 차이 나게 나오는 건 이 책만은 아니다. 지난해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일본과 거의 비슷한 때 나왔다. 이런 말은 전에도 했구나.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어느 작가나 비슷하다. 내가 작가를 생각하고 책을 보기보다 그저 책만 보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지도 생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도 이름이 아주 잘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처음에는 본격 추리를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 추리해나가는 이야기보다 왜 죽였는지를 더 생각하게 하고,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조금 건드린다. 깊게가 아니고 조금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그 책을 보고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사형제도가 아주 좋은 건 아니다고 다룬 소설은 예전에도 나왔다. 그런 것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사형을 받거나 형무소에서 형을 사는 것을 ‘공허한 십자가’라고 말한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다. 어떤 사람은 형무소에 잠깐 들어갔다 오면 되잖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드라마에서 들은 거지만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폭력조직은 밑에 사람이 다른 사람 죄를 대신 짊어지고 형을 살기도 한다. 형무소에서 형을 살거나 사형 선고를 받아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본래는 길었는데 형무소에서 모범수가 되면 더 일찍 사회에 나오기도 한다. 그 사람이 정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살아갈지 알 수 있을까. 모범수인 척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것은 잘 알기 어려울 거다. 그래도 잘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앞으로 제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을 안 좋게 보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가까운 곳에 잘못해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있다면 무서워하고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할 거다. 자기 죄를 뉘우치고 평생 죄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제대로 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속에 나온 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테니, 사형을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범인한테 무엇을 바라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범인이 잘못했다고 말해도 용서하기 어려울 텐데, 자기 죄는 뉘우치지 않고 사형을 받아도 괜찮다고 말하다니.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가둬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나도 모르겠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깊이 생각하고 뉘우치게 해야 할 텐데, 형무소에서 그런 걸 하고 있을까. 몸이야 가두어둘 수 있지만, 마음까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을 믿고 싶다, 달라질 수 있다고. 감옥에서 온갖 나쁜 짓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는 게 생각났다. 예전에 일어난 일이 나올 때는 청소년한테 성교육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 일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가 되었다. 한사람은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지만, 한사람은 그 죄에 짓눌려 망가졌다. 둘레 어른(학교 선생님)이 관심을 갖지 않고 보고도 못 본 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도 아주 없지 않을 것 같다.

 

 

 

“내 목숨이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목숨은 당신 한사람 것이 아닙니다. 벌써 돌아가셨다고 해도 부모님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 것이기도 하지요. 아니, 이제 제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슬플 테니까요.”  (312쪽)

 

 

 

 

조선직업실록, 정명섭 (2014, 북로드)

 

본 지 좀 오래된 책이다. 조선시대에 있었지만 잊힌 직업을 소개해준다. 여기 나오는 건 스물하난데 그때 일이 이것만 있지 않았을 거다.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 하지 않는다. 이것도 우리나라 역사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백성 이야기라고 하면 되겠다. 나는 조선시대 백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을 찾아보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겨우 하나 보고 뭔가 한 것처럼 생각했구나. 라디오 방송에서 잠깐 우리나라 조선시대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지나면서 들은 건데, 그때 양반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과거시험을 봐야 했다. 그게 좋은 제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과거시험에 합격해도 문관과 무관이 차별받았다. 문관이 되어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이 나왔다. 이것은 양반 이야기구나. 이 책에는 조선후기 과거시험에 부정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벼슬을 하지 못한 양반이 한 일은 전기수나 재담꾼이었다. 글을 알아야 글을 읽고 외워서 이야기해주니까. 다른 나라 때문에 생긴 일도 있었고 남편이 죽은 여자가 하는 일도 나온다. 장례식에서 곡을 하고 돈을 받기도 했다. 대신 매 맞아 주는 일도 있었구나. 이런 건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할 게 없으면 그거라도 했겠다.

 

 

 

 

혼돈의 도시, 마이클 코넬리 (2014, 알에이치코리아(RHK))

 

이 책은 마이클 코넬리가 쓰는 해리 보슈 시리즈 가운데서 하나다. 몇 번째인지 나도 잘 모른다. 이것을 차례대로 죽 본 것은 아니고 빼먹고 보기도 했다. 마이클 코넬리 책을 처음 볼 때는 이상하게 읽는 속도가 느렸다. 이 책은 보통으로 본 듯하다. 이것보다 먼저 나온 《에코 파크》는 못 보았다. 그때 어떤 일이 있어서 해리 보슈는 한달 동안 일을 쉬고 여기에서 첫일을 맡았다. 해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도 바뀌었다. 해리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해리와 나이 차이가 스무살 이상 났다. 해리가 엄청 선배라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해도 해리는 자신이 선배인 척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수사를 한다. 위에서 하지 마라 하는 것도 하고. 해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는 일 말이다. 이제야 해리 보슈는 죽은 사람을 가장 첫째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한테는 남은 식구도 있는데, 그런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그것을 가끔 잊는 건 아닌가 싶다.

 

큰일에 진짜 뜻을 숨겼다. 이것만 말해야겠다.

 

 

 

“난 살인범들을 찾을 테니까, 당신들은 세슘을 찾으라고.” 보슈가 큰 소리로 말했다.  (83쪽)

 

 

“국민 안녕과 사회안전은 산마루에 죽어 자빠져 있는 저 남자에서 시작되는 거야. 우리가 그를 잊으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130쪽)

 

 

 

 

 

기억을 쥐어짜내보겠다고 했는데 별로 짜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쓰려고 한 건 《천강에 비친 달》(정찬주, 작가정신)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세종과 집현전 학자가 힘을 모아 한글을 만들었다고 배운다(국어사전에서 훈민정음으로 찾으면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세종이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생각하고 한글을 만들도록 한 사람은 신미 대사다. 그러니까 승려다. 조선시대 때는 유교를 따르고 불교를 없애려고 했다. 세종은 다른 왕과 다르게 불교 가르침을 따랐다. 왕이기에 신하가 그 일을 뭐라 하지 못했겠지만, 아무리 왕이라 해도 밝힐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한글을 만든 게 승려 신미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지만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지지 않는 것도 많겠지. 신미가 범어에서 우리 글자를 만든 것은 이 소설보다 먼저 다른 사람이 썼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알았다.

 

한글이 있어서 우리가 어려운 한자나 영어를 잘 몰라도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말은 있지만 글자가 없는 나라 말은 쉽게 사라진다(이건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자가 없어서 말이 사라지기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사라지는 건지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라지고 있는 말이 있을 거다. 일본한테도 빼앗기지 않은 우리말과 글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말과 글을 잘 가꾸고 쓰는 거다.

 

 

 

 

편지를 떠나보내자

 

 

글이 완성되는 건 누군가 그 글을 읽을 때,

마찬가지로 편지가 편지가 되는 건 누군가한테 제대로 갈 때다

빨간 우체통을 지날 때 한번 살펴보자

우체통 속으로 채 들어가지 못한 편지가 보이면

편지가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자

 

 

 

가끔 길을 걷다 우체통 속으로 다 들어가지 못한 편지를 본다. 아니 어쩌면 그건 편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게 보이면 우체통 속으로 집어넣는다. 뒤에 다른 게 생각났다면 좋았을 텐데, 편지가 다른 곳에 갈 수 있게 해주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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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걷히다

 

  나이트 스타   Night Star (2010)

  앨리슨 노엘   김은경 옮김

  북폴리오  2011년 08월 05일

 

 

 

 

 

 

 

 

 

 

 

 

아직 한권 남았지만 곧 끝이 나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겠지만 그걸로 끝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에버와 데이먼은 죽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영혼이 끝없는 어둠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아주 오래 살다가 둘이 함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제나 한사람만 바라보고 지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는 건 그게 부럽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자신의 반쪽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벌써 만난 분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아직 찾지 못한 분은 앞으로 찾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없는 것 같아요. 에버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에바 아줌마한테 물어봤습니다. 뭐냐 하면 누구한테나 자신의 반쪽(소울메이트)이 있느냐구요. 에바 아줌마는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누구나 그 사람을 알아보고 적극 찾아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 했습니다. 알아볼 수 없다면 열심히 찾아보기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죠. 저는 둘 다 어려워서. 어쩌다 이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자주 생각하지 않아요. 이 책을 볼 때만 잠깐 했습니다.

 

지난번에 에버와 로만 모습을 보고 오해해서 주드가 로만을 죽게 해서 헤이븐이 복수하겠다 했어요. 이런 말을 하니 다른 말도 해야겠군요. 헤이븐은 에버 친구로 로만 때문에 죽어갔는데 에버가 엘릭서를 먹여서 살렸습니다. 그리고 헤이븐은 에버, 데이먼, 로만과 같은 죽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헤이븐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헤이븐은 로만을 좋아했지만 로만 마음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지요. 다른 사람은 마음이 엇갈리고 마는데 에버와 데이먼은 그러지 않는군요. 이야기에서 중심인물이니 어쩔 수 없겠군요. 하지만 이번에 그런 일이 잠깐 찾아왔어요. 데이먼은 에버를 사백년 동안 찾아다녔거든요. 만나면 서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드리나 때문에 에버가 죽었습니다. 전생을 데이먼과 에버가 보기도 했는데 데이먼은 좋은 것만 에버한테 보여줬어요. 지금에서 바로 앞 삶에서 에버는 미국 남부 노예였는데 데이먼이 에버를 사서 식구들과 좋아하는 사람과 떨어지게 했습니다. 에버는 그 일을 알게 되고 데이먼이 진짜 자기 운명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주드를 만나면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혹시 두 사람을 방해한 건 데이먼이 아닐까 했습니다.

 

로만, 헤이븐 그리고 주드는 에버보다 더 많은 일을 알았던가 봅니다. 데이먼이 지난날 어땠는지 알아도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말을 했거든요. 데이먼한테는 살아온 삶이고 에버한테는 전생. 지난날은 지나간 일이다 해야 할지, 그것을 제대로 마주보아야 할지. 정말 데이먼이 나쁜 짓을 했을까 하고 에버도 의심합니다. 에버가 헤이븐한테 약한 차크라를 공격받고 섀도우랜드에 떨어질 때, 에버는 모든 전생을 봅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됩니다. 데이먼이 마법이나 다른 힘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전생에서 에버는 데이먼을 만나면 바로 좋아했습니다. 노예였을 때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때는 에버가 흑인이었나보네요. 에버 마음이 확실해지자 에버의 약한 차크라가 나았습니다. 에버는 죽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를 많이 했군요. 헤이븐하고 다시 사이가 좋아졌으면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헤이븐은 엘릭서에 중독되고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힘을 가지면 그것을 올바르게 써야 하는데 헤이븐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를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던 사람이 나중에 괴롭히는 쪽이 되기도 하잖아요. 헤이븐이 그랬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치켜올려주던 스테이샤는 그 반대가 됐습니다. 그런 스테이샤를 데이먼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에버도. 에버는 스테이샤한테 자기 능력을 좋게 쓴다고 약속하면 본래 자리로 가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스테이샤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한 거예요. 헤이븐은 다시 좋아지지 않았지만 스테이샤는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될 듯합니다. 자신이 괴롭힘 당하는 처지에 놓여봐서 그게 어떤지 알 테니까요. 앞에서도 말했는데, 사람은 자기가 가진 힘(재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빛을 내는 듯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군요. 쌍둥이는 전에 서머랜드에 돌아가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는데 다친 주드를 생각했더니 서머랜드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뭐가 뭔지 모를 말을 한 것 같네요. 여기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섯번째가 되어서야 에버는 마음이 좀 자란 듯하고, 그래도 여전히 해독제를 찾으려고 합니다. 고모하고 문제도 아직 있군요.

 

오랫동안 살아온 데이먼은 친구를 깊이 사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친구를 사귀게 됐습니다. 에버 친구인 마일스한테 죽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드하고도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주드는 에버가 마음을 정한 걸 알고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에는 서머랜드 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에버가 찾아낸 어둡고 축축한 곳. 서머랜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밝은 곳인데 에버가 예전에 가 본 곳은 달랐습니다. 데이먼도 지금까지 서머랜드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곳은 에버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또 해독제도 찾아야죠. 이 이야기 끝은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제대로 지켜보는 게 좋겠지요.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

 

“환생의 핵심은 할 수 있는 한 여러 삶을 경험하면서 사랑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거지. 다른 사람 처지에서 느낀 사랑과 공감이 온전한 내 감정이 되는 거야.”

 

“전에는 환생의 핵심이 업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
.
.

 

“사람은 자기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업을 만들어가는 거야. 이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진짜 까닭이 무엇인지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느냐에 따라 업이 달라지지.”

 

“그게 뭐야? 그러니까, ‘진짜’ 까닭이라는 거 말이야?”

 

나는 여전히 심란한 마음으로 물었다.

 

“서로 사랑하는 것. 그뿐이야. 별거 아니어서 아주 쉬워 보이지. 하지만 방금 본 것도 그렇고, 우리 지난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어.”  (26쪽)

 

 

헤이븐 말이 틀렸다.

 

늘 어느 한쪽이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인연으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똑같이 사랑한다.

 

사랑하는 방식은 달라도 그 깊이는 똑같다.  (243쪽)

 

 

 

 

 

 

 

사라지지 않는 영혼

 

  에버래스팅   Ever Lasting (2011)

  앨리슨 노엘   김은경 옮김

  북폴리오  2011년 12월 15일

 

 

 

 

 

 

 

 

 

 

 

 

등불을 들고 여기 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 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 볼 수 있어 단 한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Here I stand for you에서, 넥스트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까지 만났습니다. 여섯권이지만 참 길었습니다. 책이 아니고 제가 이 책을 다 보기까기 걸린 시간이죠. 책을 보면서 죽지 않는 두 사람이 앞으로도 잘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때로는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필요한 걸 찾아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실제 서두르다 잘 안 되기도 했거든요. 마지막에는 모든 시련을 뛰어넘고 잘 살아가리라 여겼지요. 소설은 바라는 걸 얻기 위해 생고생하는 이야기다는 말을 보았는데 이것도 그래 보입니다. 바라는 것을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마지막이 아쉽기도 합니다. 어떤 마지막이었는지 뚜렷하게 말해야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 지금은 생각과는 다른 마지막일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아쉬워도 말이죠. 어쩌면 아쉬움이 남는 게 더 나은 건지도. 뭐든 잘되고 좋게 끝나도 아주 좋지는 않더군요. 사람 마음은 이상하네요. 모두 잘된다 해도 그게 끝은 아니겠지요. 이야기가 끝나도 우리 삶은 끝나지 않으니까요. 살아갈 때는 무언가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걸 시작하지요.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그것은 되풀이되는 일상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네요.

 

오래전 데이먼은 연금술로 마시면 죽지 않는 것 ‘엘릭서’를 만들어서 자신과 몇 사람이 함께 마시고 죽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이먼 삶은 그게 처음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것보다 먼저 삶이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데이먼과 에버는 그보다 더 전에도 만났더군요. 이름도 모습도 달랐지만. 데이먼이 죽지 않는 사람이 되어 에버를 찾아 헤매게 된 일은 아주 오래전 일 때문입니다. 그때 에버와 데이먼만 있었던 건 아니고 지금 삶에서 만난 사람도 거의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사람 옷깃이 스치려면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는 반대구나 했습니다. 전생이 진짜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는 모두 다시 태어나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더군요. 드리나가 에버를 죽인 것도 더 오래전에 시작했던 거고, 자기와 운명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데 상대는 정해져있는 걸까요. 다시 태어났을 때도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클램프가 그리는 만화 세계도 그렇습니다. 짝이 정해져 있고 어떤 세상에서든 그 사람을 만나고,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되더군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은 늘 비슷한 삶을 되풀이하는 게 되잖아요. 그걸 사람이 아는 건 아니지만.

 

죽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둡고 추운 섀도우랜드에 갇힙니다. 우주 법칙은 무엇이든 이 세상에 오면 언젠가는 떠난다잖아요. 거기에 거스르는 게 죽지 않는 사람이지요. 영혼이 갇히는 건 자연 섭리를 따르지 않은 벌일지도 모르죠. 저도 모르게 죽지 않는 사람이 된 사람은 죽음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에버가 해야 하는 건 데이먼과 하나가 되기 위한 해독제를 찾는 게 아니고 모든 것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에버가 오랫동안 다시 태어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는군요. 자연 섭리에 따르는 일입니다. 그때는 해독제가 없어도 괜찮아요. 정말 해야 할 일을 알면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군요. 죽지 않는 사람 영혼이 섀도우랜드에 가는 것이나 해독제. 에버와 데이먼은 섀도우랜드에 갇힌 영혼을 구하고, 드리나와 로만 그리고 헤이븐 영혼도 만나서 좋게 말합니다. 처음에 이 소설을 봤을 때는 죽지 않고 한사람하고만 살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게 나오다니. 마지막까지 보기로 한 걸 잘했다고 생각해야겠네요. 안 봤다면 몰랐을 테니까요. 죽지 않는 사람이 모두 다시 나이 들고 언젠가 죽는 사람으로 돌아간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에버와 데이먼 말고 로만 때문에 죽지 않게 된 사람도 있었거든요. 에버가 그 사람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냉장고에 넣어둔 엘릭서가 사라졌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 잘못해서 죽어서 섀도우랜드에 가도 이제 그 영혼을 구해줄 사람은 없겠네요.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영혼도 살아있을 때 중요할 것 같은데. 가까이에 누군가 있다고 느껴지세요. 이렇게 말하면 무서울까요.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영혼이 가까이 있다면 무섭지 않겠습니다. 삶이 빛나는 건 죽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죽으면 다시 태어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그렇게 슬퍼할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닐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겠지만. 어쩌면 이런 걸 깨달으려면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에버와 데이먼도 많은 일을 겪고서야 다시 만나고 몸이 아닌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끝없는 삶은 지루할 것 같기도 합니다.

 

 

 

데이먼, 영혼은 사라지지 않아

지금과 다른 모습일지라도 나는 너를 알아볼거야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어

두려워하지마

 

 

 

*그냥

 

바로 앞에서 한 말은 에버가 되어서 한 겁니다. 책 속에도 이런 말이 있군요. 모습이 달라도 눈을 보면 그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넥스트 노래 Here I Stand For You에도 ‘단 한번만 내 눈을 바라봐’ 하는 말이 있군요. 눈이라……. 글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쓰기도 하지만 바라는 걸 쓰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한눈에 알아보는 거, 처음에는 바라는 일을 쓴 게 아닐까 했는데 경험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도 그렇다고 할 수 없잖아요. 글로는 실제 할 수 없는 말도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말을 다른 사람 입을 빌려서 하는 사람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내 말은 너희가 엘릭서를 마시는 거 말이야, 음, 뭘 먹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어쨌든 내 요지는 그게 자연 섭리에 어긋난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본래 사람 몸은 영원하지 않아. 영원한 건 영혼이야. 영혼이야말로 영원히 죽지 않는 거야. 영혼은 돌고 돌기는 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우린 몸으로 살아가는 세상 저편을 볼 줄 알아야 해. 이 세상에만 집착하면 안 되고…….”  (51쪽)

 

 

식물과 동물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하나다.

 

살다가 죽울지 몰라도 우리 영혼과 본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같이 끝없다.  (188쪽)

 

 

“우주는 참을성이 많아. 우리가 참된 것을 제대로 알 때까지 여러 기회를 주지. 그래서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거야.”  (192쪽)

 

 

 

 

 

 

 

색칠하기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떠올린 건 동화 《비밀의 화원》(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입니다. 이것도 그런 동화가 아닐까 한 거예요. 색칠하는 책이라는 것을 안 건 지난달이고 그때 엽서로도 나온 것을 알았습니다. 요새 이런 책 많이 나오더군요. 이런 게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알았다고 해도 그렇게 관심을 가졌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엽서여서 색칠해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은 잘 못 그렸지만, 어렸을 때 색칠하기는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색연필이 없어서 크레파스로 색칠을 했는데, 색연필 갖고 싶었습니다. 크레파스로 칠하면 겉이 끈적끈적해서. 학교에 들어가면 크레파스는 사주지만 색연필까지 사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바라면 사줬을지도 모르죠. 저는 사달라고 했는지 안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군요.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크레파스조차 없는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이를 먹고 문구점에서 색연필을 보니 갖고 싶더군요. 그림을 그리고 색칠할 것도 아닌데 그랬죠. 예전에 사둔 색연필을 이제야 쓰게 됐습니다. 하지만 색연필 색이 적어서 조금 아쉽습니다. 크레파스도 열두가지와 스물네가지 색이 있었군요. 제가 가진 색연필은 연필처럼 갂는 것으로 색이 열두가지예요. 흰색은 칠해도 안 보여서 실제는 열한가지죠. 아직 쉬운 것만 몇장 칠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여러장 칠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칠할지 결정하기 어렵네요. 천천히 해도 괜찮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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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9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예뻐요.*^^*
보통아닌 솜씨!

희선 2015-01-10 22:59   좋아요 0 | URL
그렇게 잘 칠하지 못했지만, 예쁘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림까지 잘 그리는 사람에 견주면 별거 아니지만...


희선

2015-01-11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 것 같은데

 

  살고 싶다 : 제10회 세계문학상

  이동원

  나무옆의자  2014년 05월 23일

 

 

 

 

 

 

 

 

 

 

 

 

군대가 어떤지 나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이 꼭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국방의 의무가 있다. 이것은 남녀 모두한테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왜 우리만’ 하는. 그냥 보내는 두 해 조금 넘는 시간은 빨리 가지만 군에서 보내는 두 해 이상은 잘 가지 않을 거다(지금은 두 해 안 되려나). 먼저 그곳에는 남자들만 있고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도 많다. 잘 모른다면서 이런 말을. 책 같은 데서 조금 본 것뿐이다.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군대에 갔다 오고는 몸이 좋아지기도 한다. ‘군대 체질인가 봐’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 그럴까. 군대 이야기를 보다보니 학교도 생각났는데, 학교가 군대보다 좀 나을 것 같기는 하다.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은 비슷하지만. 군대는 모두 같아야 한다. 튀면 안 된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반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그곳에는 그곳만의 규칙이 있다. 그것을 지키지 않고 적응하지 못하면 아주 힘들다. 군대 잘 적응하면 그럭저럭 지내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지옥같은 곳일 듯하다. 하루가 한 해 같을지도.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계급이 조금씩 올라서 전역할 때가 다가온다.

 

가끔 군대에서 사고,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그럴 때마다 걱정이 크겠다. 혹시 저 안에 자기 자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아들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롭힘 당하는 건 아닐까 하고. 돈과 힘있는 사람은 군대도 가지 않게 하기도 하고, 뒤로뒤로 미루다 잠깐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도 걱정하겠다. 군대에 가야 하는 사람이 생각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군대가 더 심할까. 학교나 일반사회에서는 계급이 없으니까 쉽게 ‘그러지 마’ 할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계급이 높은 사람한테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다. 계급과 상관없이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그러지 못하게 말해야 한다. 이렇게 말은 잘하는구나.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인다면 잘 말할 수 있을지. 같은 곳에 있으면 그곳이 어떤지 서로 잘 아니 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왜 자기보다 밑에 사람을 괴롭힐까. 사람은 이상하다. 어느 때는 힘과 마음을 모아 대단한 힘을 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자신만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느 자리에 있든 사람답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이 책에는 군대 이야기보다 군 병원 일이 나온다. 일반병원이 아니어서 여기도 힘있는 사람은 그 힘을 쓰고 자기 쪽 사람한테는 좋게 대하고 다른 사람은 심하게 대한다. 군대에서 다치면 군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그저 훈련받지 않고 잠시 쉴 뿐이다. 시간이 흘러 자대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겉돈다. 위에서도 밑에서도 그 사람을 업신여긴다. 이필립은 군대에서 무릎을 다치고 병원에 여러 번 갔다 왔다. 군대에 오기 전에 이필립은 자신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군대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이필립 같은 사람이 실제로도 많겠지. 어느 날 높은 사람이 이필립을 찾아와서 예전에 있었던 병원에 다시 가라고 한다. 이필립이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정선한 병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이다. 군대에서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다. 정선한은 괴롭힘과는 조금 다른 일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자신이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또 한사람은 정선한의 마음을 잘못 받아들였다. 나쁜 일을 당하면 다시 누군가를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군 병원 안에서도 힘을 가지고 휘두르는 사람이 좀 우스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한 건지도.

 

누군가를 짓밟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면 안 된다. 이필립이 전역을 앞두고 쉬게 되었는데, 그때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필립은 사회는 군대와 다르겠지 생각했는데 별로 다르지 않았다. 힘있는 사람이 힘을 휘두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잘해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힘든 일을 시켰다. 그래도 하나 군대와 다른 게 있다. 그것은 절대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는 거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군대도 해당하지 않을까. 윗사람이라고 해서 꼭 옳은 건 아닐 테니까. 밑에 사람이 하는 말을 윗사람이 잘 들어야 하는구나. 군대도 수직이 아닌 수평이 된다면 좀더 나을 텐데. 조금 어려울까. 앞으로 군대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일반사회와는 다르지만 그곳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피하지 않고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나 아픔처럼 군대도 우리나라 남자한테는 꼭 다녀와야 하는 거다. 그 시간을 나름대로 잘 지냈으면 한다.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이필립은 그동안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아버지를 알려고 하기도 한다. 군대는 아버지 같은 거라고도 하는데 이필립 아버지는 권위만 내세우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필립은 군 병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정선한도 생각했다. 정선한한테 마음을 더 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주 힘든 사람은 한마디 말에도 힘을 얻을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듣고 싶어하는 쪽인지도). 아니, 들어주기라도 하고 싶다(이 말 얼마 전에도 했구나).

 

 

 

 

☆―

 

“더러운 꼴 많이 볼 거다. 억울하기도 할 거고 모멸감도 느낄 거야. 인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세상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구나 싶을 거야. 너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게 느껴져서 죽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 나처럼 될 거야.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잖아? 나갈 때가 오잖아? 군 생활 잘하지 못했다고 좋은 삶 살지 못하란 법은 없잖아.”  (86쪽)

 

 

“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 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한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버린다.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은 사람 삶을 부수는 사랑은 없다. 포도 냄새만 첨가한 탄산 주스처럼 그것은 사랑이라 했을지 모르나 실체는 다른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세워주는 것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을 낳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랑은 가슴에 남아 그 남은 시간을 살아가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너와 엄마를 사랑하지만 너와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다. 너도 그래야 한다.”  (110쪽)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묻는 사람.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가 아니고 ‘옳은 것을 함께 지켜나가자’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괜찮지 않겠냐?”  (156쪽)

 

 

 

 

 

 

 

한번 가면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곳

 

  벚꽃 흩날리는 밤   宵 (2006)

  기타모리 고   김미림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2014년 03월 20일

 

 

 

 

 

 

 

 

 

 

 

 

 

단골 손님 가운데 누군가 “내 그림자를 찾으러 이 가게에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고 얼근하게 취해서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별 뜻 없는 공허한 넋두리일 뿐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슴 속 어딘가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저도 모르게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이 닿는 범위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도감을 안겨준다. 혹은 맥주와 술안주, 그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가나리야’다.  (13쪽)

 

 

사람은 왜 술을 마실까요. 하나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 세번째로 간 별에는 술꾼이 살았습니다. 어린왕자가 술꾼한테 왜 술을 마시느냐고 하니, 술꾼은 잊기 위해서 합니다. 어린왕자가 무엇을 잊기 위해서냐고 하니, 술꾼은 술을 마시는 부끄러움이라고 하지요. 거의 안 좋은 기분을 날리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을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요. 거기에 빠져서 의존하지 않는다면 조금 마시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술 조금은 약이 되어도 넘치면 독이 되잖아요. 저는 싫어합니다. 무슨 맛으로 마시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런 말을. 누군가는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고도 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어떤 건지. 술 싫어한다면서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이 책 속에 나오는 맥주바 가나리야 때문입니다. 맥주바기는 한데 가나리야에 도수 다른 맥주 네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 구도 데쓰야가 나름대로 만드는 음식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주 가끔은 맥주가 아닌 다른 술을 주기도 하는군요. 구도는 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술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만한 걸 줄 것 같아요. 이것은 저만의 바람일지도 모르겠군요. 가나리야는 그리 크지 않아요. 어쩌다 가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골이 많습니다.

 

가나리야가 어딘가를 떠오르게 하지 않나요. 저는 지난번에도 그곳이 생각났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그곳은 <심야식당>입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겠군요. 심야식당 주인(이름은 모르는군요)은 재료가 있다면 손님이 해달라는 음식을 해주기도 합니다. 가나리야는 메뉴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고, 구도가 말하는 것을 달라고 합니다. 구도는 손님 마음을 잘 압니다. 관찰력이 뛰어나지요. 구도는 안락의자 탐정입니다. 심야식당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나리야를 찾아오는 손님은 수수께끼를 가지고 옵니다. 그곳에서 만난 손님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뭘까’ 하기도 하고, 구도가 생각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탐정은 적은 정보로도 잘 알잖아요. 구도도 별말 안 들어도 어떤 일인지 그 일 뒷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잘 알더군요. 확신이 없을 때는 조사를 해보기도 합니다. 신중한 사람이군요. 형사인 사람이 구도가 형사를 하면 범인이 벌벌 떨겠다고 했습니다. 구도 앞에서는 무슨 말이든 솔직하게 하게 되어서요.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요. 보면 무슨 말이든 하게 되는. 어쩌면 ‘이 사람한테 말해도 다른 데 퍼질 일은 없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가깝지도 않고 아주 멀지도 않은 사이로 인상이 좋아서일지도. 구도는 요크셔테리어가 사람이 된 듯한 모습과 분위기라고 합니다. 요크셔테리어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생긴 개인지 모릅니다. 이 말에서는 그저 친근함이 느껴질 뿐입니다.

 

식당, 맥주바가 배경인 이야기뿐 아니라 커피집이 배경인 이야기도 있어요. 책으로 본 건 아니지만 원작은 책입니다. 커피 한잔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 커피집을 하는 사람은 오래전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날 아침에 아버지가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는데 그것을 마시지 않고 나가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커피를 마셨다면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텐데 했어요. 죽은 사람은 좀 나쁜 사람입니다. 나쁘다고 해서 죽어도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죽고 그 사람은 형무소를 나와 커피집을 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커피맛을 내고 싶다고 했어요.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기도 합니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마음 아픈 아내, 아픈 아내 병간호에 지쳐서 나쁜 마음을 먹은 남편, 형무소를 나와 마음잡고 살아가려는 사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칼로 찌르고 그 마을에 온 여자, 남편이 죽임 당한 사람. 생각나는 건 이 정도네요. 이런 사람들이 커피집에서 남자가 내리는 커피를 마시고 생각합니다. 심야식당, 맥주바 가나리야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겠지요.

 

저는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먹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가는 걸 좋아해야겠군요. 저는 이렇게 책으로 가보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가나리야 주인 구도가 만드는 먹을거리는 글로만 보아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것보다 이런 이야기만 했군요. 가나리야라는 곳이 실제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다섯편입니다. 이번이 두번째로 첫번째는 《꽃 아래 봄에 죽기를》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는 저마다 재미있습니다.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해서 엄청난 일을 푸는 건 아닙니다. 한사람 죽기는 하는군요. 여기 나온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일 때문에 어떤 일을 꾸미는 사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귀찮고 크게 바라지 않아서 안 하는 거고, 실제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죄 없는 개를 이용한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것은 예전 남자친구가 불행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이 잘되면 자신은 잘 안 된다고 여겼어요. 자신이 잘되고 잘 안 되고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인데 말입니다. 그 여자가 했을 법한 일은 무섭더군요. 그렇게까지 안 했다면 좋을 텐데요.

 

한해 전에 죽은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내가 남편한테 복수하려고 한 건 아니다 생각했어요. 같은 여자라 해도 저도 여자 마음을 잘 모르지만, 아주 모르는 건 아닌가봅니다. <벚꽃 흩날리는 밤에>에 나오는 연두색 꽃이 피는 교이코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우리나라에도 이 꽃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에서는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 마음도 볼 수 있군요.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를 원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고. 어른 사정 때문에 아이가 마음을 다치는군요. 이런 일은 실제 일어나기도 하겠네요.

 

사람들이 가나리야에 가는 건 맥주와 구도가 해주는 맛있는 먹을거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말을 나누기도 하거든요.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살짝 구도한테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곳에 가면 마음 편하고 즐거운 거겠지요. 거기에서는 하루 동안 있었던 안 좋은 일 쉽게 잊겠습니다. 책을 보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거네요.

 

 

 

희선

 

 

 

 

☆―

 

뚜껑을 열자마자 맛있는 국물 냄새가 김과 함께 코끝에 전해진다. 유자 껍질을 넣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상큼한 냄새도 풍겼다. 조금 전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구도는 조금 독특한 메뉴를 준비해 봤다며 이 요리를 추천했다. 구도가 이렇게 말할 때는 자세히 묻지 않고 바로 주문한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이렇게 주문해서 나온 음식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어긋났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12쪽)

 

 

“뭐, 요리는 그 녀석, 혀에 뭔가 특별한 장치라도 있는 것 같다니까.”

 

“우리들은 마법장치라고 하죠.”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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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소담출판사  2014년 07월 28일

 

 

 

 

 

 

 

 

 

 

 

   글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쓰다니. 그것보다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 이번에 만난 책에 실린 글 제목은 ㄱ에서 ㅎ까지야. 차례가 사전과 같아. 나도 따라서 ㄱ에서 ㅎ까지에 맞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만뒀어. 대신 첫소리 ㄱ이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어쩌면 중간에 쓸데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 이렇게라도 ㅎ까지 쓴다면 좋겠지만 끝까지 못 쓸지도 몰라.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황경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언제일까. 잘 생각나지 않아. 다른 데서 먼저 알고 페이퍼(PAPER)를 본 건지, 페이퍼를 보고 나서 안 건지. 황경신 하면 페이퍼와 뗄 수 없는 이름이기는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페이퍼를 만든 김원 아저씨일지도 모르겠지만. 페이퍼는 잡지 이름이야. 몇해 전까지 보았는데 지금은 안 봐. 사도 다 볼 때가 별로 없어서 그만 보기로 했어(어쩐지 김원 아저씨한테 미안하군). 그때 ‘책을 다 못 보는 것은 책이 크기 때문이야’ 하는 핑계를 댔어, 나한테. 페이퍼에는 멋진 사진과 글이 실려있어. 그 책을 보고 나도 사진을 잘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물론 글도 잘 써 보고 싶었지. 지금은 사진 잘 안 보게 되었어. 맞다, 달마다 주제가 있었어. 책 속에는 그 주제에 맞는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있었어. 그것을 보면서 이런 것은 대체 어떻게 쓸까 했는데, 아직도 글 쓰는 건 어려워. 페이퍼 안에는 황경신 글도 있었어. 시간이 흐르면 그 글이 모여서 책이 되기도 했어. 황경신은 신화, 그림도 이야기했어.

 

 

 

                
                
                
                

                      지금이 11월이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네권 모두 2007년 페이퍼다

                    올해 페이퍼는 열아홉살을 맞이했다고 한다 다음해에는 스무살이다

 

 

 

 

 

   다락방이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그리고 인터넷 속 페이퍼에도. 다락방이 있는 집은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니 내가 모르는 거고 큰 집에도 다락방 만들겠다. 내가 살았던 곳은 방 한 칸에 작은 다락이 있었어. 천장이 낮아서 일어설 수 없지만 앉으면 괜찮았어. 혼자 있기에 딱 좋은 곳이지. 난 그곳에서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썼어. 편지쓰기보다 숙제를 했던가. 책은 안 읽었어. 또 생각하니 아쉽다. 책 읽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일은 없었지만 다락방이 있던 곳에 살아본 것은 괜찮은 일 같아. 다락방은 집집마다 달랐을 것 같기도 해. 자신이 기억하는 다락방과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다락방 다를지도 모르겠어. 이것도 조금 재미있지.

 

 

 

 

 

   라디오는 내 친구

      (책도 내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지

      “고마워”

 

 

 

 

 

   마지막 남은 이야기에서 ‘밀리언 달러 초콜릿’을 말했는데, 나는 ‘초콜릿 우체국’을 생각하고 그것을 꺼내 보았어. 책 제목을 보고 이것은 그냥 ‘초콜릿 우체국’이네 했지. 곧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더 나중에 나온 책으로 봤다는 게 생각났어. ‘초콜릿 우체국’은 어느 날 초콜릿 우체국을 본 ‘나’가 그곳에 들어가서 지난날 자신이 지난날 그 사람한테 초콜릿을 보내는 이야기야. 본래는 초콜릿을 주지 않았는데. 주소 몰라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 신기한 이야기지. 2월 14일이 지나자 초콜릿 우체국은 연기처럼 사라졌어. ‘나’는 집에서 지난날 그 사람한테서 받은 편지, 물건을 보다가 시집 속에서 ‘초콜릿 잘 받았어’ 하는 말이 적힌 종이를 봐. 지난날이 조금 바뀌어도 지금은 그대로인 듯해. 그래도 추억이 하나 늘어난 거니 괜찮은가.

 

 

 

 

 

   밤, 좋아해. 낮도 좋아해.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좋은 거구나. 아니 사실 밤을 조금 더 좋아해. 어두운 것보다 조용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별은 낮보다 밤에 더 잘 보이잖아.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 별빛이구나(언젠가도 한 말). 어쩐지 밤에는 낮보다 신비한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서운 일도 일어나지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지만 늘 반대도 생각해. 빛과 어둠은 바로 가까이 있기 때문이겠지. 살아가는 일도 그렇구나. 기쁜 일 반, 괴로운 일 반.

 

 

 

 

 

   시간은 흘러간다

      사람도 흘러간다

      마음도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기

 

 

 

 

 

   어느새 ㅇ이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 여섯이나 남았어. 무엇을 쓸지 정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쓰니 이야기가 뒤죽박죽이야. 황경신 책을 읽고 느낌을 써 본 적은 겨우 한번이야. 그것은 느낌이 아니었군. 마음에 드는 제목과 내가 쓰고 싶은 제목으로 짧게 썼지. 얼마전에도 한번 그렇게 해 보았는데 좋은 게 생각나지 않아서 유치한 것만 썼어. 그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 어떤 글을 보면 나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막상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지’ 하는 거야. 황경신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부러워. 멋진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 쓰는 사람은 다 부러워.

 

 

 

 

 

   지난날도 다가올 날도 아닌 바로 지금

 

 

 

 

 

   천마디 마음 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 담긴 말이 듣고 싶어

      아니, 아니,

      네가 하는 말은 뭐든 좋아

      내가 다 들을 테니 말해봐

 

 

 

 

 

   코코아, 커피 뭐가 좋아. 쌀쌀할 때는 따듯한 게 좋지. 나는 더울 때도 따듯한 걸로 마셔. 물은 차가운 거. 이건 언제나 그렇구나. 날이 차고 건조할 때는 따듯한 물 많이 마시면 좋대.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알아도 그렇게 안 하거든. 사람 체질에 따라 물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지. 어쩌다가 이렇게 흐른 거지. 코코아든 커피든 반가운(좋은) 사람과 함께 하길.

 

 

 

 

 

   텅 빈 내 마음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따듯한 시,

      따듯한 노래,

      따듯한 마음,

 

      따듯한……

 

 

 

 

 

   피아노는 기다렸다. 뚜껑을 열고 자신을 쳐줄 사람을. 한때 피아노 둘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피아노가 하는 일은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것뿐. 피아노는 차라리 누군가 자신을 부수어 추운 밤을 따스하게 보내길 바랐다. 피아노한테는 그런 기회도 오지 않았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피아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렀다. 피아노 자신이 무엇을 기다렸는지 잊어갈 무렵 여자아이가 찾아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

 

 

해철이는 학교가 끝나면 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가끔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참았다.

 

해철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살았다. 어느 날 해철이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다. “해철아,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엄마가 나중에 해철이 데리러 올게.”  “엄마, 어디가, 언제 올 건데?”  “미안하다, 해철아.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해철이 걱정은 말고 잘 살아.” 하늘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 엄마!” 해철이 울음소리에도 해철이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엄마를 따라 나가려는 해철이를 할머니가 잡았다. 다음날부터 해철이 해바라기가 시작되었다. 정류장에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끔 버스가 서면, 해철이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세 해가 지나도록 해철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해철이는 엄마를 믿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해철이가 정류장에 가자 버스가 왔다. 누가 내리는지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버스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 해철이 엄마가 서 있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바꿨습니다. 이런 글에 이름을 써서 미안하군요.)

 

 

 

희선

 

 

 

 

☆―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 밖을 바라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17쪽)

 

 

이제 아셨군요. 내가 왜 볼펜이 되고 싶어하는지. 나는 내 삶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멋진 사람을 만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겠다는 욕심 같은 건 지나가는 개한테나 던져주면 그만이죠. 누군가한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좀 더 사랑받고 싶다거나, 좀 더 사랑하고 싶다거나 하면서, 자만과 자학을 오가는 정상이 아닌 정신 상태로 밤마다 쓸데없는 감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좋고, 세상을 구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 되지 않고도 죽을 수 있어요.  (38~39쪽)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저마다 만들어 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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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2-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글이군요. 이 글을 읽으니 지나간 몇 가지 것들이 저도 추억이 됩니다. (자꾸만 옛날을 추억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뿐일까요) 페이퍼 잡지 같은 것 말이죠. 예전에 누군가가 `페이퍼`라는 잡지가 좋다고 해서 저도 몇 번 사본 적 있어요. 예전에는 잡지 한 권만 사서 들고와도 뭔가 마음이 들뜨고 그랬는데, 이제는 별로 그런 감흥이 없어요. 학교 앞에 있는 작은 서점에 잡지가 나오는 날을 미리 물어봤다가 나왔다고 하면 연락받고 가서 사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뿐더러, 그런 잡지도 거의 사라지고 없군요. 핫뮤직이나 키노나 서브나 같은 잡지들 말입니다. 이제 집으로 잡지를 가져다주는 좋은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데, 왜 그런 감흥은 사라져버렸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시간도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고, 결국 마음도 흘러가니, 말씀하신대로 흘러가는 것에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


희선 2014-12-12 01: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책이 나오는 날을 물어보고, 그날 사서 왔을 때 감흥은 없어도, 책을 산 다음 그게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오면 책이 왔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고... 아쉽게도 그러고 나면 기쁨이 줄어드는군요 책을 보는 기쁨보다 책을 사는 기쁨이 더 크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저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도 페이퍼는 책방에 가서 사왔어요(한달에 한번 나와서 그런 건지도) 집에서 좀 먼 곳인데, 그게 나오는 날쯤 가죠 그날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어서 다음에 다시 가야 했어요 그걸 사서 올 때는 기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차례대로 안 봐도 괜찮았군요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그땐 그랬지(노래가 생각나는군요)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아쉬워요 시간이 더 흐르면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지나가면 늘 아쉽기 때문에 그때 잘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군요 그리고 지나가지 않으면 아쉬운지 아쉽지 않은지 모르는 것도 있어요 지금 아는 건 뭐지, 싶기도 하네요

흘러가고 바뀌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대로인 것도 있겠죠 뭔가 하나쯤......

며칠은 덜 추웠는데, 다시 추워지고 다음주에는 더 추워진다고 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