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Littor 2020.4.5 - 23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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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잡지는 1/2, 3/4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던가. 내가 그런 걸 자주 본 건 아니지만. 요즘은 잡지 많이 사라졌구나. 거기에서 문학잡지는 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거 알면서 나도 잘 보지 않는구나. 전에는 <악스트> 봤지만. 릿터는 다른 데서 나온 문학잡지다. 책 크기가 같아선지 이걸 보니 악스트 볼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예전에 문학잡지는 철마다(넉달에 한번) 나왔는데 그런 건 이제 나오지 않던가(문학동네 아직 나오는구나). 문학잡지는 릿터 말고 악스트밖에 모르는데 다른 것도 있는지. 미스테리아. 이건 문학잡지 아니다 말하려나. 난 나누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나한테 이야기는 다 소설이다. 소설이 다 이야기인 건 아니기도 하구나.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문학잡지 만들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다르게 그런 거 잘 챙겨보는 사람도 있겠다.

 

 잡지에는 말 그대로 이런저런 게 실린다. 그건 문학잡지도 다르지 않다. 어떤 게 실리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기 어렵지만. 문학잡지마다 어떤 특색이 있을까. 그때그때 주제를 정하거나 그때 말하면 좋을 것을 여러 작가한테 쓰게 할 것 같다. 릿터는 그런 게 ‘이슈’다. 이번 스물세번째 릿터 이슈는 ‘탈/진실 문학사’다. 어쩐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혜석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염상섭 하면 《삼대》와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떠오르는데, 염상섭은 나혜석과 나혜석 남편과 둘레 사람을 모델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게 좋은 이야기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염상섭은 신여성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혜석 이야기도 실제와는 다르게 쓴 것 같다. 소설이 허구라 해도 거기에 참된 것을 써야 할 텐데. 소설가라고 해서 자기 주관이 없지는 않겠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시대가 그래서 거기에 갇힌 생각밖에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슈가 나오기 전에 짧은 소설 세편이 나온다. 소설 세편에서는 참된 것에서벗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소설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짧은 소설은 이슈를 생각하고 쓴 걸까. <구글 신은 알고 있다>(윤고은)에서 소설가 윤은 구글에서 외설작가로 분류됐다. 그런 글을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구글에서 실제 그런 일 일어날까. <어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기도 한다>(김병운>에서 ‘나’는 예전에는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려 한다. 그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거다. ‘나’는 소설가인데 자신과 다른 소설을 썼다. 소설이라고 다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그걸 안 쓴다고 자신이 거짓말 하는 것처럼 느끼다니. <지금 날씨>(김지연)에서 한솔은 친구 미진한테 자신이 하지 않는 트위터 계정에서 자신을 봤다는 말을 듣는다. 미진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계정을 한솔로 여겼다. 한솔은 자신이 아니다 말했는데, 그 계정을 찾아보고 그 사람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걸 보니 그 사람은 한솔이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따라한다. 그런 게 오래 갈 리 없겠지. 시간이 흐르고 그 계정이 한솔이 아닌 게 드러난다. 한솔은 딱히 거짓말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은 한솔이 거짓말 했다고 여긴 것 같다. 자기 뜻과 다르게 거짓말 한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책을 읽고 쓴 글을 보면 나도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몇해째 써도 그리 달라지지 않는구나. 이런 말보다 글을 보니 어떤 책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나을지도. 인터넷 책방에서 제목 본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케이틀린 도티)은 장의사 일을 하는 사람이 쓴 거였다. 처음 책 제목 봤을 때 내가 어떤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먼저 죽음을 생각했겠다. 글은 의사나 그런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썼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의사도 자주 죽음을 만나겠지만, 장의사는 더하겠다. 그런 일을 처음 했을 때는 힘들었을지도. 사람은 누구나 나면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걸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지만 그걸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도 잘 살다 죽어야지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가끔만 한다. 죽음을 말하는 책이라 해도 거기에는 삶이 있을 거다.

 

 단편 소설 두편은 페미니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김혜지 소설 <나쁜 피>에서 나쁜 피를 가진 건 누굴까. 보윤 남편일지 남편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보윤일지.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남편일 것 같다. 남편 피를 이은 아이여서 보윤은 낳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건 나쁜 피가 아니고 싫은 피라 해야 할 것 같다. 보윤이 마지막에 밝힌 말을 보면 보윤이 나쁜 피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단편소설과 시 산문도 실렸다. 김신회가 쓴 <뭐라도 쓴다>를 보니 나도 뭐든 써야지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여기까지 썼다. 김신회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글쓰기 숙제를 하고 선생님한테 ‘넌 작가가 될 거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그런 일 부럽구나. 김신회는 선생님 말처럼 작가가 됐으니 말이다. 선생님 말이 김신회가 힘들 때 힘이 되었다. 그런 게 없다 해도 자신이 자신을 인정해줘도 괜찮다. 나도 잘 못하는 건데. 가끔은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해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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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5-26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인가? 운이 좋아서 한 1년쯤 무료 구독을 했었죠.
좋더라구요. 근데 무료 구독 만료가 되니 영 안 보게 되더군요.
제가 원래 잡지를 잘 안 보는 스타일이라.
잡지도 오래 묵혔다 다시 보면 좋을 것 같더라구요.
잡지만큼 트렌드를 잘 반영하는 것도 없을테니.
잡지 읽으면서 책도 열심히 읽기는 어려운 것 같더라구요.ㅋ

희선 2020-05-27 02:02   좋아요 2 | URL
그 말 예전에 본 것 같기도 하네요 책이 보이면 보기도 하겠지만 일부러 보기 어려운 게 잡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저는 PAPER 사면 조금밖에 못 봤어요 어쩌다 한번 다 보고... 그래도 악스트는 볼 때 거의 다 봤네요 뒤에 장편 소설은 끊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보다 말다 했지만... 이제는 안 보는군요 어쩐지 미안하네요 값 올랐다고 안 보다니... 아직도 나오는 거 보니 다행이기도 합니다 잡지는 그때 일이나 책을 말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면 예전에 이런 걸 말했구나 하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0-05-2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꾸준히 볼 수 있는 문학 잡지가 있었으면 해서 한때 찾아서 봤는데 실패했어요.
딱 맘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너무 두꺼운 것도 싫고요. 그중 녹색 평론이 괜찮았어요.
부지런히 읽지 못해 쭉 이어서 보긴 어렵고 해서 여러 권에서 핵심적인 내용만 모아서
한 권으로 만든 녹색 평론이 있길래 그걸 사 보고 그랬어요.

희선 2020-05-28 01:23   좋아요 0 | URL
문학 잡지에는 주제(이건 이슈더군요)가 있을 테니 그걸 보고 관심 가는 걸 말하면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지금 들었지만 제가 그걸 찾아보지는 않는군요 우연히 주제나 이슈를 보게 되면 한번 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도... 문학 잡지 오래 보기 어렵군요 녹색 평론은 나중에 핵심을 모아서 책을 내기도 하는군요 그런 것도 괜찮겠습니다


희선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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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이름은 알지만 다른 건 잘 모르는 작가예요. 소설 제목은 아는군요. 《설국》.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지요. 본래 《설국》은 장편이 아니고 1935년부터 1947년까지 여러 단편으로 썼어요. 이 말 어디선가 들은 적 있군요. 연작이기에 모아서 장편이라 해도 괜찮겠습니다. 가장 좋게 만들려고 여러 번이나 고쳐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기에 노벨문학상도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소설을 영어로 옮긴 것도.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군대에서 일본말을 배웠어요. 일본말 배운 게 아까워서 외교관이 되지만 외교관이 적성에 맞지 않아 프리랜서 번역가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을 영어로 옮겼어요. 의역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소설 분위기가 잘 전해졌나 봐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에도 관심이 있었다는데, 한국말은 배우지 않았군요.

 

 어릴 때부터 죽음이 가까이 있으면 어떨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찍부터 죽음을 알았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두살일 때 아버지가 세살일 때 어머니가 일곱살에는 할머니가 죽고 누나도 죽어요. 부모가 죽었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할머니가 죽고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와 둘이 살았어요. 그 할아버지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열다섯살일 때 죽어요. 어렸을 때는 무척 쓸쓸했겠습니다. 아니 그건 늘 그랬겠네요. 부모도 친척도 없는 사람도 있지만, 함께 살던 사람이 죽는 걸 겪는 게 더 힘들 것도 같아요. 많은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하잖아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릴 때 죽음을 알아서 지금 삶이 덧없어진 걸지도. 아름다움은 잠시일 뿐이지만, 그걸 생각하는 마음은 영원할지도 모르겠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했어요. 시대와는 상관없이.

 

 소설 ‘설국’에는 그곳이 어디인지 나오지 않지만, 그곳은 에치고유자와라 합니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온다고 해요. 지금도 많이 올까요. 소설 첫문장에 나오는 터널은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를 가르는 장치예요. 실제 기차가 터널을 지나 에치고유자와 역에 도착하면 아주 다른 분위기라 합니다. 그건 눈이 왔을 때 가야 느낄 수 있겠네요. 이 책을 쓴 허연은 일본으로 연구원 자격으로 가고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답니다. 겨울에 그것도 눈이 내린 에치고유자와에 가려고. 전 이 소설(《설국》)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읽어도 잘 모를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설국’에 나오는 시마무라는 서양 무용 평론을 쓴다는데 실제 무용을 보지는 않는답니다. 그걸 안 보고도 평론을 쓰다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소설에 나온 사람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신일 때가 많답니다. 이 책을 보니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허연은 에치고유자와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가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살았던 곳, 소설에 나오는 곳에. 《이즈의 무희》는 인상에 남았습니다. 본래 제목은 ‘이즈의 춤추는 아이’더군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대학에 들어가고 이즈에 가 봤답니다. 어딘가에 가고 소설을 쓰기도 하다니.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교토를 좋아했어요. 교토를 잘 알리는 소설은 《고도》라 합니다. 죽기 전까지 살았던 곳은 가마쿠라예요. 허연이 말한 여러 가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소설 《츠바키 문구점》 만화 <슬램덩크> 말고도 가마쿠라가 나오는 이야기 많을 거예요. 거의 책 이야기를 해서 그곳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도 가마쿠라가 배경이에요. 실제 이런 책방은 없지만. 이 소설에는 지역 이름도 나오더군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하세나 즈시. 성이 가와바타(川端)인 사람도 나와요. 그건 가와바타 야스나리 때문에 썼을지도. 거기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은 안 나왔군요. 아주 오래된 책이 아니어설지도, 언젠가 나올지.

 

 노벨문학상을 받고 네해 뒤 1972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보이는데 정확하지 않은가 봅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남기다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1970년에 죽은 미시마 유키오 영향도 조금 있었을지도. 그때 둘레 사람이 하나 둘 죽었나 봐요.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겠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더 살기 힘들었을지도. 몸이 안 좋아서 마음도 약해졌을 것 같아요. 이건 그저 짐작이군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마음은 알 수 없겠습니다. 소설을 봐도 다 알기 어려울 듯해요.

 

 언젠가 소설 볼 수 있을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은 딱 한권 봤어요. 《명인名人》. 다른 소설과 달라 보이는 듯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여기서도 아름다움 같은 걸 쓰려 했어요. 바둑과 삶인가. 나중에 명인은 죽고. 명인은 바둑을 예술처럼 두려 했군요. 앞으로는 그런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한 듯도 합니다. 이 책 보다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조금 보고 싶기도 했어요, 언젠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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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2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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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이 나온 날을 보니 2019년 1월 1일이었다. 2019년 첫날 나오다니. 1월 1일은 쉬는 날인데. 쉬는 날이라고 책이 나오지 못할 건 없을까.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출판사도 1월 1일에는 쉴 것 같은데. 택배도 1월 2일부터 배달하지 않던가. 책이 나오는 날이 1월 1일이라 해도 그전에 다 만들어두기는 했을 거다. 책방에 놓는 게 1월 1일부터가 아닐까 싶다. 이제 책방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책방도 1월 1일에는 쉬고 1월 2일부터 문 열었겠지. 책 나오는 날이 1월 1일이라 찍혀서 여기 담긴 시를 쓴 이제니는 기분 좋았을 것 같다. 그걸 보고 2019년은 좀 괜찮은 해가 될지도 몰라 생각했을지도. 이런 생각 좀 단순한가. 이제니한테 2019년은 어떤 해였을지. 나한테 2019년은 별로였다.

 

 이제니 시는 처음 만났다. 이번이 세번째 시집이다. 시집은 거의 두번 보는데 이번에는 한번밖에 못 봤다. 한번 더 봐야 조금이라도 나을 텐데. 시가 몇편 빼고 길다. 행갈이 하는 시가 별로 없다. 행갈이 없는 시만 보다가 행갈이 하는 시를 보니 마음이 조금 편했다. 행갈이가 없다 해도 마침표가 있으니 천천히 봤다면 좋았을걸. 한번 더 보면 되잖아 하는 생각을 하고 보다가 무척 숨이 찼다. 한번 보고 힘들어서 다시 못 봤다. 아쉽다. 언제가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란다. 그때는 조금 천천히 쉬엄쉬엄 봐야겠다. 이런 생각하고 내가 지킨 적이 있던가. 바로는 아닐지라도 다시 한번 보고 싶기도 하다. 정말 그러기를.

 

 

 

 고양이는 구름을 훔쳤다. 슬픔이 그들을 가깝게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너의 이름뿐이다. 한때의 기억이 구름으로 흘러갔다. 흔들리는 노래 속에서 말없이 걸었다. 침묵은 발소리로 다가왔다. 돌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의 저편에서 날아오는 것, 시간의 저편으로 달아나는 것.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어둠은 빛을 내고 어제의 귓속말을 데려왔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다.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영원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한때의 구름이 기억으로 흩어졌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언젠가 네가 주었던 검은 조약돌. 바다는 오늘도 자리에 없었다. 물결이 너를 데려갔다. 어둠이 너를 몰고 갔다. 휘파람을 불면 바람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너의 이름은 나와 돌 사이에 있었다. 나의 이름은 너와 물 사이에 있었다. 구름은 돌과 물 사이에 있었다. 돌의 마음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결은 왔다가 갔다. 울음은 갔다가 왔다. 고양이는 노래를 훔쳤다. 바람은 붙잡히지 않았다.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희망이 그들을 멀어지게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이름뿐이다. 나의 이름 위에 너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너의 이름 위에 돌의 마음을 올려두었다. 발소리는 침묵 뒤에 다가왔다. 빛은 어둠을 물들이며 언덕으로 달려갔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언젠가 내게 주었던 검은 조약돌. 나는 나의 이름을 문질러 지웠다. 너는 너의 이름을 감추어 묻었다. 우리의 이름 위로 우리의 그림자가 흘러갔다. 구름이 나를 나무랐다. 나무가 바람을 두드렸다. 물결이 너를 데려갔다. 물결 뒤에는 조약돌만 남았다.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영원을 보았다고 믿었다.

 

-<구름에서 영원까지>, 14쪽~15쪽

 

 

 

 처음 봤을 때 이 시가 좋았다기보다 시집을 한번 보고 다시 넘겨보다가 이걸 옮겨 써야겠다 했다. 왜 그랬을까.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때문일지도. 이 시를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이 시에 나오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은 조용히 나아가는 구름이었다. 찬바람 불어오는 골목골목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그림자였다. 구름에도 바닥이 있다는 듯이. 골목에도 숨결이 있다는 듯이. 흔적이 도드라지는 길 위에서. 눈물이 두드러지는 마음으로.

 

 흰 꽃을 접어 들고 걸어가는 길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봄밤은 저물어가고. 숲과 숲 사이에는 오솔길이 있고. 오솔길과 오솔길 사이에는 소릿길이 있고. 소릿길과 소릿길 사이에는 사이시옷이 있었다. 어머니 흰 꽃처럼 나와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고양이의 길. 누구도 다른 길을 갈 수 없다는 듯이. 잡을 수 없는 것을 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다가갈 수 없는 것을 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향

 그리고 날아가는

 

 어제처럼 오늘도 고양이가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고양이의 길. 얼룩무늬 검은 흰. 얼룩무늬 검고 흰. 누군가의 글씨 위에 겹쳐 쓰는 나의 글씨가 있었다. 늙은 눈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길이 있었다. 그것은 늙은 등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늙은 등은 느리고 흐릿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 발 내딛고 다시 돌아보는 길이었다.

 

-<고양이의 길>, 76쪽~77쪽

 

 

 

 앞에 옮긴 시는 제목이 ‘고양이의 길’이어서다. 이 시가 나오기 전까지 숨차게 읽고, 여기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바쁜 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빨리 보려 했을까. 이 시 다음에 행갈이 없는 시가 몇편 나오고 행갈이 하는 시가 나온다(행갈이보다 연을 나누었다고 해야 할까). 진짜 고양이가 다니는 길을 생각한 건지. 고양이가 구름처럼 보였을까. 고양이는 몸놀림이 가볍다. 그건 새끼 고양이던가. 새끼 고양이는 바람이 불면 멀리 날아갈지도.

 

 여러 시가 담긴 시집을 보고 쓰기는 하는데 여전히 내 마음대로구나. 이 시집 보기 전에 책 읽기 싫었다. 어떤 때는 이것저것 다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기 싫기도 하다. 책 읽기 싫어도 읽는다. 책을 보면 그걸 하기 싫었던 마음이 사라진다. 신기한 일이다. 제대로 못 써도 앞으로도 시 만나고 싶다. 잘 모르면 어떤까. 이 말 언제쯤 안 할지. 어떤 말로 시작하고 이런저런 말로 이어지는 시 재미있기도 하다. 이제니 시에도 그런 게 있다. 행갈이를 하지 않아서 그게 두드러진다. 이런 시는 어떻게 쓸까. 한번에 쓸지, 몇번 나누어서 쓸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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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5-22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은 시를 몇 번 옮겨 적은 적이 있어요. 알라딘에도 올렸었어요.
시집 몇 권이나 사 놓았는데 사 놓을 땐 새 각오가 있었는데 어느새 흐지부지 되고 말았어요.ㅋㅋ
그래도 책상 옆에 쌓아 놓은 책들 속에 시집 몇 권 있어서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해 놓았어요.

잘 쓴 시를 보면, 나도 시를 쓰고 싶당, 합니다.

희선 2020-05-23 01:35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시 공책에 더 자주 옮겨 적기도 했는데 요새는 어쩌다 한번 하는군요 그것도 시집을 봐야... 따로 시만 옮겨 적으려고도 했는데 조금밖에 못했습니다 그렇게 적어둔 걸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이기도 하겠지요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봐야 괜찮게 느끼는 것도 있더군요 좀 긴 시가 그래요

저도 시집 몇 권 사두었는데 아직도 못 봤습니다 한달에 한권이라도 보려는데 그것도 잘 안 됩니다 어떤 때는 여러 권 보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보려고 하는 것도 시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지, 시를 좋아하고 쓰는 사람은 많이 보겠습니다 시뿐 아니라 이 세상도 잘 보겠네요


희선
 
고래 책
안드레아 안티노리 지음, 홍한결 옮김 / 단추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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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는 바닷속에 살아. 이건 다 아는 거군. 바닷속에 살지만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고 포유류야. 포유류는 새끼를 낳고 젖을 먹여. 사람은 포유류에 들어가지. 고래는 많은 포유류하고는 다른 모습이야. 그거 신기하지 않아. 사람이 물속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는데, 고래는 반대로 땅에 살다가 물속으로 들어갔어. 고래한테는 땅보다 물속에 사는 게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어. 고래가 땅에서는 느려도 바닷속에서는 빠를 테니 말이야. 고대 고래를 보니 별로 빠르지 않을 것 같았어. 커다란 고래는 물속에서도 천천히 움직이기도 한대.

 

 공룡을 봤을 때는 그게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고래는 공룡보다 더 커. 고래에서 가장 큰 건 대왕고래로 30미터나 돼. 30미터는 아주 길지. 기차 한량 길이보다 조금 더 길어. 그런 고래를 바다에서 만나면 좀 우서울 것 같아. 잡아먹힐 것 같잖아. 하지만 고래는 온순해. 온순한 것 때문은 아니지만 고래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어. 수염고래는 크릴 새우를 즐겨 먹어. 다른 고래도 커다란 물고기보다 작은 걸 많이 먹는 듯해. 요즘 바다가 오염돼서 고래가 크릴 새우가 아닌 비닐을 먹고 죽기도 한다지. 이건 슬픈 일이야.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고래를 많이 잡아서 줄었는데 바다가 깨끗하지 않아서 더 줄어들게 생겼어.

 

 수염고래라는 거 있잖아. 이 말은 알았는데 왜 수염고래라 하는지 몰랐어. 수염고래는 이빨이 아닌 뻣뻣한 털이 입천장에 붙어 있어. 그걸 수염이라 하는 거야. 먹이를 바닷물과 먹으면 먹이는 입안에 두고 수염 사이로 바닷물을 뱉어내. 참 편하겠어. 고래한테 잡아먹히는 크릴 새우나 플랑크톤은 안 좋을지 몰라도. 아니 그건 자연스런 일이지. 대왕고래는 크릴 새우를 좋아하고 범고래는 펭귄이나 바다표범을 좋아한대. 조금 큰 걸 좋아하는 고래도 있군. 사람마다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다른 것처럼 고래도 그럴 수 있겠지. 펭귄도 크릴 새우 좋아하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군. 크릴 새우는 많아서 펭귄하고 고래가 나눠먹을 수 있겠지. 그래야 할 텐데.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하얀색 고래는 향고래래. 향고래는 무리 지어 다녀. 무리 지어 다니는 고래가 향고래만은 아니지만. 책 맨 앞에 있는 머리에 상처가 있는 고래가 바로 향고래야. 이 고래 보니 <원피스>에서 본 커다란 고래 라분이 생각났어. 원피스에서는 아일랜드 고래라 했는데 모델은 향고래일지도 모르겠어. 새끼일 때 라분은 이스트블루에서 해적을 따라 레드 라인을 넘었지만, 해적은 라분을 레드 라인을 넘은 곳에 두고 갔어. 그 앞은 위험해서. 해적은 라분한테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어. 라분은 거의 50년 동안 해적을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았어. 루피 동료인 브룩이 오래전에 라분과 함께 다닌 해적이었어. 대단한 인연이지. 언젠가 부룩이 라분을 만나는 모습 나왔으면 해.

 

 바다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래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나는 것도 괜찮군. 지금 생각하니 고래 한번도 못 봤어. 본 적 없다 해도 고래가 지금도 바다를 헤엄쳐 다닌다는 거 알아. 사람이 고래를 잡지 않았으면 해. 생물은 여러 가지가 있어야 하잖아. 지금도 지구에서 사라지는 동, 식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잘못하면 그게 인류가 될 수도 있어. 지구에 사는 생물과 사람이 함께 살았으면 해. 이런 걸 보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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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소설의 첫 만남 13
정세랑 지음, 최영훈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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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이야기에는 늦은 밤 길을 가던 사람이 도깨비를 만나고 씨름을 하는 게 있다. 그건 알겠지만 씨름을 한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도깨비를 이기면 도깨비가 사람을 잘살게 해주었던가. 도깨비라고 여겼던 게 아침에 보니 다른 거였다던가(빗자루 생각났다). 씨름에서 도깨비를 이긴 사람한테는 안 좋은 일보다 좋은 일이 일어났을 것 같다. 도깨비는 장난스럽지만 사람한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건 한국 도깨비 이야긴가. 다른 나라 도깨비는 어떨지. 혹부리 영감이 노래하고 도깨비한테 노래가 혹에서 나온다고 하니 도깨비는 뭐든 나오게 하는 방망이와 혹을 바꾸자고 한다.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들은 욕심 많은 사람이 혹부리 영감처럼 했을 때는 도깨비가 그 말을 듣지 않고 혹을 하나 더 붙였다. 욕심을 부리고 남을 속이려 하면 벌받는다는 거겠지.

 

 도깨비가 옛날에만 있었을까. 부모 없이 할머니하고만 사는 ‘나’는 열살에 벌써 60킬로그램이 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는 씨름부에 들어가서 괜찮았다. 잠시 씨름 선수를 했다. 오래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씨름을 그만두고 청기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나’는 거기에서 일하는 게 좋았는데 주유소를 허문다고 했다. 주유소 점장이 ‘나’한테 도깨비와 씨름을 해달라고 한다. 주유소 땅에 자기 지분도 있다면서, 오래전 주유소 점장 고조할아버지는 도깨비와 씨름을 하고 이겼다. 도깨비는 땅을 빌려주었다. 고조할아버지는 돈을 쓸어모았다. 50년 뒤에는 지고 일이 잘 안 되었다. 씨름은 지금도 이어졌다. 곧 50년이 된다. 점장은 ‘나’가 도깨비와 씨름을 하면 ‘나’를 양아들로 삼고 골프 선수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다. 씨름 선수가 아니고 골프 선수라니. 하긴 ‘나’는 씨름 선수로 한끗이 모자랐다. 그건 뭘까.

 

 주유소 점장 말을 ‘나’는 듣는다. 할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 싶어서. ‘나’는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 은혜를 잊지 않았구나.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도깨비는 정말 나타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나’는 도깨비와 씨름을 시작했을 때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어떻게 됐느냐 하면 ‘나’가 도깨비한테 이긴다. 주유소 땅 지분은 점장한데 있으니 점장한테 돈이 더 생겼을까. 짧은 시간 동안 나오는가 했는데, ‘나’는 도깨비와 씨름을 하고 이긴 뒤 골프 선수가 되고 결혼도 하고 딸 둘도 갖게 된다. 도깨비와 한 씨름에서 이긴 일은 ‘나’한테 도움이 됐나 보다. 시간은 흐르고 곧 50년이 또 다가온다. 도깨비는 왜 어중간하게 50년마다 씨름을 하자고 했을까.

 

 그다음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제법 나이를 먹어서 이젠 도깨비와 씨름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릴 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누군가를 돕는 일이기도 하구나. ‘나’가 찾은 아이가 씨름에서 도깨비를 이기지 못해도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도깨비한테 50년에 한번 하는 씨름은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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