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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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만들어 낸 이야기속 먼 앞날은 그리 좋지 않다. 공기는 아주 나빠지고 사람은 돔을 만들고 그 안에 살지. 모두가 그 안에 사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 못 가진 사람은 돔 바깥에 살아야 해. 돔에 사는 사람은 바깥을 그리워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어. 바깥에 살기 좋은 곳이 있다는 소문이 있을지도 모르지. 이런 이야기 정말 있었던가. 나도 모르겠어. 이건 그저 내가 생각한 걸지도. 돔 바깥에선 살기 어려울 텐데. 살기 좋은 곳이 있을지. 시간이 많이 흐르면 돔 바깥은 달라질지도 모르겠어. 지금도 지구를 망치는 건 사람이야.


 지구를 생각하고 해야 할 것도 있을 텐데. 아니 지구를 생각한다면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건물을 새로 짓거나 새로운 물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 나무를 베는 것도.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이 소설 《랑과 나의 사막》은 49세기로 사람이 전쟁을 하다가 세상이 망한 느낌이야. 푸른 나무는 없고 사막만 펼쳐진. 사람은 많지 않고 조금만 사는가 봐. 소설 시작은 고고가 랑이 죽은 걸 말하는 거야. 고고는 로봇으로 2844년에 만들어진 거래. 그때는 전쟁이 일어났던 때고 고고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이 말은 랑 친구인 지카가 했어. 물건, 로봇은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드는 걸까. 그러기는 하겠지.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찾아야 하는 걸까. 사람이 태어난 데 다른 까닭은 없을 텐데.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찾는 건 괴롭잖아.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 이건 살면서 생각하는 거겠군. 이런 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야. 소설과는 아무 상관없어. 이 이야기는 사람보다 로봇 고고 이야기거든.


 로봇은 함께 살던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살아가는군. 지카는 고고한테 자신과 떠나자고 하는데, 고고는 지난날로 돌아가는 곳으로 간다고 해. 다시 랑을 만나고 싶어서겠지. 고고 기억은 사람과 다르게 뚜렷하고 선명해. 그건 좋겠어. 고고가 사막을 걸을 때 어느 순간 랑과 있었던 일이 재생되기도 했어. 그건 랑이 고고 머리에 망치를 떨어뜨린 다음부터 생긴 문제였지만. 정말 사람과 비슷한 것 같군. 살다 보면 어떤 기억이 불쑥 떠오르기도 하잖아. 어떤 일이 기억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고고는 사막을 걸으면서 랑을 생각해. 그러다 모래 폭풍을 만나고 모래에 묻힌 사람을 구해. 사람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어. 드물게 보이는군. 고고가 만나는 건 사람만이 아니야. 트랙터가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로봇 알아이아이도 만나. 알아이아이는 누가 자신을 만들었는지 알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아. 고고는 사막에서 죽은 사람도 봤는데, 그 사람은 알아이아이가 찾는 카일 같았어. 고고는 그걸 알아이아이한테 말하지 않아.


 사막이라고 하니 《어린 왕자》가 생각나는군. 고고가 마지막에 만나는 외계인 살리는 금빛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야. 어린 왕자도 금빛 머리카락 아니었던가. 어떻게 보면 어린 왕자도 외계인이야. 사막을 건너고 이런저런 걸 만나는 건 로봇 고고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자신은 감정을 모른다고 하는. 하지만 고고는 랑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가졌어. 이것도 자라는 이야기겠군. 로봇 고고가. 고고는 랑을 만날 수 있을지.


 세상이 어둡고 희망이 없으면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걸까. 그건 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지난날로 돌아가는 곳이 있다는 말. 지난날로 가면 어떻게 될까. 고고가 돌아간다 해도 랑은 또 죽잖아.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고고는 다시 지난날로 가려고 할지. 난 랑이 부러운가 봐. 랑을 그리워하는 고고가 있다는 게. 고고는 랑을 만나기 전에 부서질지도 몰라. 고고가 부서지지 않고 건강한 랑을 만나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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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후에 죽는다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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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십오초를 길다고 느낀 적은 없다. 죽을 때가 되면 십오초를 길다고 느낄까. 사람이 죽을 때 나타나는 주마등은 어느 정도나 시간이 걸릴지. 그런 일은 없어서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사고로 자신이 죽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일이 짧은 시간 동안 죽 흘러갈지. 영화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런 게 나오는 일본 드라마도 있었다. 아니 주마등을 죽은 다음에 자신이 보는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원작은 소설이었을 것 같다. 이 소설 《15초 후에 죽는다》에는 15초 뒤에 죽는다는 설정으로 네 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어느 순간엔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것 같다. <15초>에서 ‘나’는 시간이 멈추었을 때 자신이 어떤 일에 놓였는지 알게 된다. 그때 사람 크기 만한 고양이가 나타난다. 그런 게 나타나면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 바로 들기는 하겠다. ‘나’는 등에 총을 맞았고 앞으로 15초가 지나면 죽는다. ‘나’가 살 시간이 15초 남았다는 걸 알려준 건 고양이다. 고양이는 15초 동안 ‘나’한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한다.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난다면 난 뭘 할까. 허둥지둥 하다가 십오초를 다 쓰고 죽을 것 같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한다. 범인을 밝히려는 걸까 했는데, 마지막엔 다른 일이 밝혀진다. 자신이 죽는다 해도 오해는 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좋은 뜻으로 한 일을 누군가는 잘못 알기도 하겠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살의를 느끼기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을 못 보고 마지막이 나오면 이건 뭐야 할 때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이야기 <이다음에 충격스런 결말이>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겼다. 여기에서 십오초는 잠을 자다 일어나서 드라마가 끝나가는 걸 보고 다음에 무슨 일이 있겠어 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드라마에 나온 사람이 죽음을 맞았다. 자리를 비웠던 사람은 왜 그 사람이 죽는지, 십오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누나는 동생한테 그걸 알게 하려고 드라마에서 중요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어떤 건 착각하게 만들고. 이건 드라마를 죽 보면 알 수 있는 거였다. 그래도 보다 안 보다 한 사람은 깜짝 놀라겠지.


 세번째 <불면증>에선 죽는 장면이 자꾸 되풀이 된다.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알기 어려운 거였는데, 어쩌면 둘 다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고가 일어나고 어머니가 죽기까지 시간 십오초 동안 일어난 일을 되풀이해서 꾸는. 그러면서 다른 곳에도 가는. 거기에서는 어머니가 실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그건 아주 잘못 본 건 아니었다. 자신이 죽는다 해도 뭔가를 알려주고 싶었던 어머니였구나. 아이는 제대로 못 들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나. 앞으로 아이가 힘을 내서 살기를 바란다.


 마지막 이야기는 제목이 길다.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우리의 머리 없는 살인 사건>이다. 일본과 떨어진 섬 적토도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 사람은 모두 머리와 몸이 떨어져도 십오초 안에 붙이면 괜찮다. 머리와 몸이 십오초 동안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이런 게 왜 나왔을까 했는데, 읽어보니 이런 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한테 공격을 당한 가쓰로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말이다. 친구인 고가 그걸 보고 가쓰로를 구하고 그러면서 가쓰로와 고는 머리를 바꿔 달기 바쁘다. 이걸 생각하니 얼마나 바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도모히로도 함께 한다. 이 이야기는 참 복잡하기도 하다. 복잡하면서 재미있기도 하다. 머리를 자꾸 바꾸는 걸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 텐데. 한 몸을 머리 둘이 왔다 갔다 하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겠지만, 실제 보면 무서울지도. 그래도 피는 안 나오니 좀 괜찮은가.


 몇해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지금 일이 일어났는데, 그때 일어난 일에는 다른 일이 있었다. 어떻게든 이야기는 좋게 끝나지만,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든다. 몸과 머리가 바뀐 사람. 모두가 살 방법은 그것밖에 없기는 했구나. 모든 주민 나이를 아는 순경 모로즈미가 대단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알았지만, 그 모습 정말 무서웠을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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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창 탐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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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아니고 사람에 기생하는 인면창이 말을 하다니. 믿고 싶은데, 그것보다 미쓰기 롯페이가 만들어 낸 인격 같은 느낌이 든다. 인면창은 동양 기담이나 소설에 요괴로 나온다고 하지만. 미쓰기 롯페이는 후루하타 상속 감정에서 감정사로 일한다. 상속 감정사라 한다. 그런 일도 있구나.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인명창 탐정》에서도 많이 알려진 일은 아닌 듯하다. 미쓰기는 다섯살 때 산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어깨를 다쳤다. 어깨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고 나중에 그 자리 흉터가 사람 눈 코 입처럼 남았다. 미쓰기가 그걸로 놀다 보니 갑자기 인면창이 말을 했단다. 그건 아무래도 미쓰기밖에 못 듣는 것 같다. 이러니 미쓰기가 만들어 낸 다른 인격 같다는 생각을 하지.


 외진 사쿠마 마을에서 부자인 혼조 구라노스케가 갑자기 죽어서 미쓰기는 유산을 감정하러 간다. 혼조 집안은 사쿠마 마을 경제를 쥔 집안이다. 거기 사는 사람은 혼조 기업에서 많이 일했다. 구라노스케는 아들이 셋에 딸이 하나였다. 사쿠마 마을은 가부장제가 남아 있고 시대에 뒤떨어진 곳이었다. 여성이 제대로 살기 어려운 곳이었다. 외진 마을 유지에 가부장제라는 게 나오니까 요코미조 세이시가 떠올랐는데. 이 소설 《인면창 탐정》은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 《이누가미 일족》과 《악마의 공놀이 노래》에서 영감을 받고 썼다고 한다.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몇 권 본 게 있어서 떠올리기도 했구나. 그런 소설 못 봤다 해도 이 소설 보는 데 문제는 없다.


 혼조 기업이라 하지만 여기에서 하는 혼조 제재는 잘 안 되고 산은 별로 돈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쓰기가 산을 돌아보다 산에 몰리브덴이 묻혔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고 형제들이 조금 이상해졌다. 돈을 나눠 가지려고 하던 게 회사 경영권 싸움이 됐다고 할까. 첫째 아들 부부가 죽는다. 창고에 불이 났는데 그 안에서 나온 시체가 첫째 아들 부부였다. 둘은 불에 타 죽지 않고 먼저 목이 졸려 죽임 당했다. 그 뒤로 사람이 더 죽고 하나는 미수에 그쳤다. 책 목차를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연쇄살인이라니. 이건 유산 상속 때문에 일어난 일이구나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유산을 받을 사람에 용의자가 있는 거겠다.


 용의자가 집안 사람이라는 건 짐작이 가도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그 사람 마음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고만 생각했다. 가부장제로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도 거기에 거역하지 않다니. 그런 일이 소설에서만 일어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어딘가 폐쇄된 마을에서는 지금도 일어날지도. 사람 욕심은 무섭구나. 죽으면 다 끝인데, 왜 근거없는 믿음을 갖는 건지. 그 믿음으로 상처받는 건 여성이다.


 미쓰기가 산을 둘러 보는 모습을 보면서 왜 산을 팔고 거기에 무언가를 지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사는 나무나 풀이 살 곳을 없애려 하다니. 땅속에 묻힌 몰리브덴을 채취해도 둘레 자연은 죽겠다. 자연을 그대로 두면 좋을 텐데, 산 주인이 있다니. 얼마전에도 생각한 건데 그 주인이라는 건 정말일까. 자연은 사람이 주인일 수 없는데. 땅이구나. 소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건 얼마전에 본 《나의 초록목록》(허태임) 때문이구나. 이 소설은 분명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인면창이 말한 게 맞기는 할 거다. 이건 나카야마 시치리 새로운 시리즈다. 인면창과 미쓰기가 이야기하는 거 재미있게 보인다. 미쓰기가 혼자 상상하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지만. 나도 그런 친구 있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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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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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겪은 일이나 생각을 누군가한테 다 말하는 사람 있겠지. 난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할 것이 없기도 하구나. 그것보다 내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해설지도. 내가 나를 이해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보다. 어쩌다가 난 이렇게 됐을까. 나도 모르겠다. 그저 살다 보니 이렇게 흘러 온 거겠지. 난 부모, 엄마가 아이를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도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는 없다고 말하던데, 그건 자신이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었을까. 마지막 이야기 <유급휴가>에 나오는 미리 마음을 다는 아니어도 알 것 같다. 가까운 친구인 현주는 그러지 못했지만.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아닐 때도 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자기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것도 소설에서 봤구나.


 짧은 소설이 담긴 《애쓰지 않아도》(최은영)에는 이야기가 열네편 담겼다. 친구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 느낌이다. <애쓰지 않아도>에서 ‘나’는 엄마가 사이비 공동체에 간 걸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 유나한테만 말했는데, 유나는 그걸 다른 아이한테 말했다. 유나는 왜 그랬을까. ‘나’가 생각한 것처럼 언제나 ‘나’보다 유나가 먼저 다가왔을지. 사람 사이는 참 어렵다. <데비 챙>은 다른 나라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구나. 최은영 소설엔 이런 이야기가 보이기도 하는구나. 이 이야기에서 인상 깊었던 건 남희가 장만옥을 처음 영화에서 보고 좋아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걸 보면서 이건 최은영이 경험한 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난 그런 일이 한번도 없어서. 누군가를 보고 바로 좋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할까. 작가는 그런 감정도 잘 느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만나고 친구가 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여러 편인 것 같구나. 친구로 보였는데 서로 좋아한 사이도 있는 것 같다. 서로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멀어진 <꿈결>. 다른 나라에서 만난 친구와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못한 <숲의 꿈>. 사람 사이가 멀어지거나 끊기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과 <한남동 옥상 수영장>은 편안해 보이는 사이다. <저녁 산책>에서 해주는 딸인 유리가 자신과 다르게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으면 했는데, 세상이 그걸 막는 느낌이 든다. 왜 신부는 남자밖에 못 되지. 짧은 이야기도 여러 편이다. <우리가 그네를 타고 나눴던 말>은 이곳이 아닌 평행우주를 말하는구나. 사는 게 좀 더 나은 곳, 죽지 않은 곳. <운동>은 선생님과 중국사람 학생.


 옛날엔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살았는데 하는구나. 이웃과, <호시절>에서 한별은 부모와는 다르게 어린시절이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두려웠다. 그 마음 알 것 같기도 하구나. 전라도 사람이어서 멀리 하기도 하다니. 한별은 어른이 되고 영국 사람과 결혼하고 그곳에서 살았는데 은근히 인종차별을 받았다. 한별은 그때서야 어린시절 전라도 사람이어서 이웃들이 멀리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손편지>에서는 그땐 왜 몰랐을까 하는 마음이 보이는구나. 관심을 갖고 알려고 해도 몰랐을 것 같다. 상대가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테니. <임보 일기>에선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가 나온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기는 하다. <안녕, 꾸꾸>는 병아리를 기르다 자라서 농장에 보내고는 닭고기를 먹지 않게 된 사람 이야기다. ‘나’가 닭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걸 부모는 놀렸다. 그게 놀릴 일인가.


 여기 담긴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사람이라는 게 슬펐다. 모두 이해받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 봐주기는 하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희선





☆―


 일어나서 살아갈 하루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꿈결>에서, 58쪽)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 모든 사실을 알려준 건 현주였다. 현주와 함께 있을 때면 미리는 안전함을 느꼈다. 현주는 미리에게 미리의 존재 이외의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무급휴가)에서, 220쪽~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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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1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도 궁금하지만
제목인 <애쓰지 않아도>가 일단 좋네요.
희선 님 뿐만 아니라 누구나 나를 드러내는 일이 힘들어요.
최은영 작가의 문장을 좋아해서 이 책도 읽어 보겠습니다^^

희선 2024-01-21 03:28   좋아요 1 | URL
애쓰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애써야 하는 것이 있기도 하네요 어쩌면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하는 건지도...

자기 이야기 남한테 쉽게 하기 어렵겠지요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말해도 괜찮은 사람, 아예 모르는 사람한테 할지도...


희선

새파랑 2024-01-20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너무 좋았어서 책상 책꽂이에 꺼내놨습니다. 다시 읽으려고 ^^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기도 쉽지 않지만 말할 상대가 있다는 것도 쉽지 않은거 같아요~~~!!

희선 2024-01-21 03:19   좋아요 1 | URL
정말 그러네요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자기 일을 말하겠습니다 그런 사람 있는 사람 부럽네요 어떤 때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할지도... 다시 읽으시려는군요

새파랑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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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바라보면 눈뿐 아니라 마음에 좋은 게 식물이겠다. 풀과 나무. 요즘은 여러 가지를 그저 바라본다고 해서 불멍 물멍이라 하는데, 풀이나 숲을 봐도 괜찮겠다. 풀멍, 숲멍. 하늘을 보는 하늘멍, 구름멍은. 내가 잘 하는 건 없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기는 하던가. 그건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다. 뭐든 할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이 책 《나의 초록 목록》을 보는 데 시간 많이 걸렸다. 책을 보는 시간은 같아도 조금씩 여러 날에 걸쳐서 본 거구나. 초록(草錄)은 풀을 기록한 거고 목록(木錄)은 나무를 기록한 거다. 풀과 나무의 기록이다.


 허태임은 식물분류학자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에서 한국에서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려고 연구한단다.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는 건 아니고 식물이나 나무를 찾아다닌다. 그런 일도 있구나 했다. 식물을 분류하고 어떤 게 있고 그걸 지키려는 사람이 있어야 지구를 생각하겠다. 그런 사람은 나라마다 있겠다. 김초엽 소설 《지구 끝 온실》이 생각나는구나. 식물이 나오는 소설이나 책 많을 텐데. 여기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풀이나 나무가 더 많이 나올지도. 이 책을 봤다 해도 시간이 가면 잊어버리겠다. 요즘 반려식물이라고 해서 식물을 기르는 사람도 많구나. 난 식물을 잘 기르지 못해서 그저 길에서만 만난다. 그게 편하지 않나.


 한국에도 많은 풀과 나무가 있을 텐데, 개발로 기후변화가 생기고 사라지려는 게 많은 것 같다. 개발은 기후변화로 이어졌구나. 지금도 내가 모르는 지구 여기저기에서는 자연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겠다.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동물이나 식물도 죽인다. 식물이나 동물이 있어야 사람도 살 텐데. 그런 걸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는 사람 것이 아닐 텐데, 땅주인은 사람이기도 하구나. 본래는 그런 게 없었을 텐데, 누가 그런 개념을 만들고 땅을 갈라 가진 건지. 산 주인도 있지 않나. 그런 걸 팔고 그곳은 개발되는. 거기 살던 동물이나 식물은 살 곳을 잃고 사람은 돈을 가지는구나. 사람은 개발이라는 걸로 사람도 쫓아낸다. 이건 사람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구에 주인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 해도 사람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무엇이든 지구에 잠시 왔다가 간다. 그 잠깐 동안 사람은 욕심을 많이 내는구나. 식물에도 동물에도 그리고 지구에 묻힌 자원에도. 그런 건 영원하지 않을 텐데. 오래전 사람은 자연에서 나는 건 끝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게 다시 나타나려면 훨씬 어렵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보다 아주 사라지는 게 더 많겠다. 한국에서도 사라진 풀이나 사라지려는 나무 많다. 식물만은 아니구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마찬가지구나. 기후변화는 어느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한테 영향을 미친다. 그걸 생각해야 할 텐데.


 풀과 나무 이야기를 보고 지구를 생각했구나. 이제 제주는 더운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아열대로 바뀌려나. 동물이 북쪽으로 옮겨가듯 식물도 그런 모습이 보이는구나. 새였던가. 추운 곳에 사는 건 아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어디나 다르지 않을 거다. 걱정스럽다. 생물은 여러 가지여야 한다고 하지 않나. 많은 생물을 죽이는 개발 한 하면 안 될까.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산사태나 물난리가 일어나는 것도 개발 때문이겠다. 자연재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 때문에 일어난 재해가 더 많을 거다. 지구를 더 생각하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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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15 0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찜해 둔 도서인데, 리뷰글 감사합니다.

희선 2024-01-16 02:08   좋아요 0 | URL
여기 나온 풀과 나무는 하나도 못 썼다는 생각이... 이 책을 쓴 사람이 개발로 사라지는 풀 나무 같은 걸 써서 그랬나 봅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