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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오랫동안 혼자 사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건 외로움일까.

 

너 : 그런 말이 많지.

 

나 : 쓸쓸하지 않다면 오래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까.

 

너 : 그건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

 

나 : 사람은 하고 싶고 바라는 게 있어야 살아가는 게 즐겁겠지.

 

너 : 그렇지 않을까.

 

나 : 무엇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거 하나라도 있다면 혼자여도 살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너 : 혼자라 해도 진짜 혼자는 아닐지도 몰라.

 

 

 

 

 

조용하고 쓸쓸한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김동영

  달  2013년 11월 19일

 

 

 

 

 

 

 

 

 

 

 

 

의학이 아주 발전한 세상은 어떨까. 지금도 사람은 오래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수술을 해야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수술을 받을까.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것도 가진 사람이나 하지 않을까. 있으니까 오래 살아도 걱정 없을 거다. 없는 사람은 오래 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라니. 여기 나온 ‘나’도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수를 하다가 연구소를 다녔다. 나이가 여든일곱이 되어 정년을 맞았다.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았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다른 계획없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든일곱에 정년을 맞다니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세상은 의학이 발달해서 사랑니에 있는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그 수술을 한 나이에 겉모습이 멈춘다. 나이를 더 먹어도 늙지 않는다. 그것은 겉만 그렇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암에 걸려도 죽지 않았다. 가끔 의학에 도움을 받으면 젊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 수 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노인 일자리가 가장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진데. 그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쩐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거의 그것을 괜히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사람 이야기가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수술을 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나’는 여든일곱을 맞고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어떤 연구소냐 하면 수학 공식 연구 아니 검토라고 해야 하나. 일을 그만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나’는 그곳에 가는 걸 잠시 늦추고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글로 적기로 했다. 누군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정리였다. ‘나’가 글을 쓰는 곳은 카페 ‘노웨어’다. ‘나’는 그곳에서 주인 J와 고등학생 여자아이를 만난다. J와 음악 이야기를 하다 친해지고 여자아이하고도 비슷했다. 여자아이한테는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악, 책. 나이를 먹으면 지난 일을 떠올리고 살아간다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이럴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겉모습은 오십대고 진짜 나이는 여든일곱이라는 거다. 겉모습 때문에 여자아이는 ‘나’를 아저씨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나’가 말해주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해주지 않는 이야기니까. ‘나’는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옛날 일을 생각했다. 첫번째 부인, 두번째 부인 그리고 딸과 아들. 지금도 식구가 참 멀어진 느낌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더 멀다. 딸은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아들은 그것을 자연에 거스르는 일이다 생각했다. 나라라는 것도 없어졌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때가 지금과 같은 2014년이다. 연도를 좀더 뒤로 했다면 나았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우리 세계하고는 다른 세계라 생각하면 괜찮겠다. 세계가 여러개 있으면 과학, 의학이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이상하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쓸쓸한 느낌이 든다. 이 소설도 그렇다. ‘나’가 쓸쓸해했다. ‘나’와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까. 이 점은 조금 이상하다. ‘나’와 친한 사람은 다 오래 사는 것을 싫어했다는 말이 되니까. ‘나’가 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다른 사람이 하나 둘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그렇구나 할 텐데. ‘나’는 이제와서 왜 자신이 줄기세포 이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둘레에 사람이 없다 해도 그렇게 희망이 없을까. 오래 살면 사는 게 지칠지도 모르겠다. 함께 추억을 나눌 사람도 없다면. 사실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나’가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잘하지 못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직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 본 게 없다. ‘나’는 겉모습과 나이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지금도 나이하고는 다르게 젊은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것은 성형수술로 그렇게 만든 거겠지. 사람은 나이 드는 것도 두려워한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더 두려워하는지도. 책속에 나온 것 같은 시대가 올까. 아주 아니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성형수술보다 안전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면 거기에 따르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젊은 모습으로 오래 살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좋아할까. 앞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구나. 오래 살아도 할 게 없으면 그 시간이 지루할 것이다. 친구가 있어서 가끔이라도 만나면 모를까. 나이 먹고도 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른 것은 잘 안 할 것 같다. 지금처럼 책이나 보면서 살겠지. 알고 싶은 게 언제나 있으면 좋겠다. 가끔 뭔가 안다고 좋을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옛날을 기억하고 살기보다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게 좋겠다. 지나간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잠깐 그리워하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 매이면 안 좋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때도 없다(슬프구나).

 

이 책을 쓴 작가를 아주 몰랐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 알고 있어선지 작가 자신의 일도 썼다는 걸 알았다(작가는 나를 잘 모른다). 그것을 느낀 사람은 나만이 아니겠다. 다른 작가도 자기 일을 소설에 쓸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런 거 몰라도 상관없겠다. 글을 보는 거지 작가를 보는 건 아니니까.

 

 

 

 

☆―

 

“죽을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거의 모든 친구들은 죽었거나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식구들도 어딘가에 있긴 하지만 이젠 만나지 못하니까.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지.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만 빼고 모두 숨어버린 것 같구나.”  (64쪽)

 

 

“사람이 늙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겉모습은 바뀌지 않더라도 몸안에서는 나이가 들어간단다. 당연히 기억력도. 그리고 결국 죽어.”

 

“죽어요?”

 

“그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단다. 그리고 녹슬어가는 기계처럼 노쇠해가고……. 오래 살긴 하지만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구나. 이상하네요. 저는 그냥 그대로 멈춰 있는 줄 알았는데.”  (102쪽)

 

 

 

 

 

 

 

잠깐 시간 내줘

 

  말하자면 좋은 사람

  정이현   백두리 그림

  마음산책  2014년 04월 25일

 

 

 

 

 

 

 

 

 

 

 

*밑에 쓴 제목은 여기 실린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건 소설과 별로 상관없지만, ‘비밀의 화원’ ‘시티투어버스’는 소설을 본 느낌에 가깝습니다.

 

 

 

 

견디다

 

 

사는 건

견디는 일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지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어때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야

 

 

 

 

 

비밀의 화원

 

 

여자가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 그때 찾아낸 곳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곳에서는 자신을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 하지 않아.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일 잘하고 쉴 때는 여기저기 다니는 이십대 아가씨가 말이야. 거기에 잠깐 빠지는 것은 좋지만 그게 바로 나야, 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그렇지. 집에서 식구들한테 자신이 지금 어떤지 솔직하게 말하고, 예전에 자신은 무엇을 좋아했는지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

 

 

 

 

 

또다시 성탄절

 

 

멈추지 않는 시간은 또다시 그날을 데리고 온다.

다시 찾아와서 좋지만 그날이 언제나 같은 건 아니다.

어느 한 날을 정하고 해마다 추억을 만들면 어떨까.

자신이 태어난 날도 좋지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성탄절이 더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그날 추억만 떠올리게 될지도.

추억은 많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나라도 마음에 깊이 새기면 좋은 거겠지.

 

 

 

 

 

시티투어버스

 

 

새해 첫날에는 시티투어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자기 혼자라면 쓸쓸하겠지. 누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조금 나을지도. 그렇게 모르는 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와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때로는 현실이 더 영화나 소설 같다고 하기도 하는구나. 두 사람이 꼭 남자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 남자 둘은 좀 재미없을까. 그때는 나이 많은 아저씨와 고등학생 남자아이면 괜찮을지도. 두 사람은 잠시 그 도시를 함께 돌아보다 이야기를 나눈다. 아저씨는 아들을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아닌가. 집에서는 자기 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는 스스럼없이 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누구나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큰눈

 

 

일백년 만에 내린 큰눈은 사람들 발을 묶어두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짧은 환상,

산골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보고 싶을 때는 밤하늘을 봐

 

 

 

 

 

그 여름 끝

 

 

올여름은 다른 해보다 그렇게 덥지 않았다. 입추가 지나자 벌써 가을이 온 것 같았다. 아침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때는 여름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일 없는 여름이지만 간다고 하니 조금 아쉬웠다. 가을 겨울 봄이 지나면 다시 여름이 오겠지만.

 

그 여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 때였던가.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름이 끝나갈 때마다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가깝지 않으니까. 가끔 어떤 말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니 신기하다. 추억이 없어도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거겠지. 이 세상에 그 사람이 없다 해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좋은 거겠지.

 

 

 

 

 

잘 가 하는 말 대신

 

 

우리가 지금 헤어진다고 해도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거야

조금 흔한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잘 가”하는 말 대신 “잘 부탁해” 했어

이 말 좋지 않아

 

“앞으로 잘 부탁해”

 

 

 

희선

 

 

 

 

☆―

 

‘자신을 완벽하게 고백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다.’  (198쪽)

 

 

 

 

 

  

반달가슴곰/가문비나무  산양/모데미풀   수달/산개나리   하늘다람쥐/솔나리   새홀리기/참배암차즈기

사향노루/설악눈주목   담비/노랑무늬붓꽃   꼬리치레도로뇽/금강초롱꽃   금강모치/구상나무   열목어/주목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고유 동식물

 

2014년도 크리스마스 씰 그림은 우리 고유의 자연문화의 인식을 다시 생각함과 함께, 환경오염, 기후변화로 점점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이끌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 백두대간에서 자생하는 동식물을 소재로 살려 썼습니다. 백두대간을 총 10개 구간으로 구분하고 해당 구간에 서식하고 있는 20종의 고유 동물을 골라 동식물 저마다의 특징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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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어떤 것을 보다가 예전에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을 잘못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잘못 기억한 것을 다른 데 쓰기도 했다. 그때는 고쳐야 할 텐데 했지만 어디에 썼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걸 고치라는 것인지 며칠 뒤에 어디에 잘못 썼는지 알았다. 게으른 나는 아직 고치지 않았다. 제목과 내용 짝을 잘못 지어 기억하다니. 그 두 책은 예전에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한권은 뒤에 인쇄가 안 된 부분이 있었다. 제목은 잘못 기억했지만 그것은 잊지 않았다). 예전에 읽은 책 가운데는 아주 잊어버린 거 많다. 읽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읽으면서도 잊어버리는구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쓰고 안 쓰고하고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것일 거다. 책을 읽고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중에 내가 써둔 것을 보면 그 책이 조금 생각나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왜 썼는지 모르기도 한다. 그걸 자꾸 생각하다보면 왜 썼는지 생각난다. 끝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다음은 별로 상관없는 소설 세 편, 거기에서 둘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어서. 올해 히가시노 게이고 책 많이 나왔다. 많이보다 엄청을 써야 할 듯. 히가시노 게이고가 실제 많이 쓰는 것도 있고, 우리나라에 올해 나온 것 가운데는 예전에 쓴(일본에 나온 지 오래된) 것도 있다.

 

 

 

 

비밀을 감춘 집

 

  수차관의 살인   水車館の殺人 (2008)

  아야츠지 유키토   김은모 옮김

  한스미디어  2012년 03월 29일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책은 별로 못 본 작가가 아야츠지 유키토다. 그래도 관 시리즈 첫번째인 《십각관의 살인》은 보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대작이라고 한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도. 어쩌면 이 집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관 시리즈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일까. 이 나카무라 세이지도 수수께끼에 싸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죽은 지 한해가 지나고 여섯달 뒤에 십각관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카무라 세이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차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으로 보면 수차관 사건이 먼저 일어난 거였다. 그때 일어난 일은 가정부 네기시 후미에가 탑방 발코니에서 떨어져 수로에 빠져서 죽고, 그날 수차관에 찾아온 네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차관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 친구 마사키 신고를 누군가 죽이고 몸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서 소각로에서 태웠다. 후지누마 잇세이가 그린 그림 하나도 사라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마사키 신고를 죽이고 그림을 가져간 걸로 마무리 지었다.

 

한해가 지나고 1986년 9월 28일이 돌아왔다. 수차관은 후지누마 기이치가 열한 해 전에 지었다. 후지누마는 열두해 전에 차 사고로 심하게 다쳤다. 그 뒤에 휠체어를 타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끼었다. 사고를 같이 당한 사람이 마사키 신고로, 마사키 애인은 죽고 마사키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평소에 수차관에는 집사 구라모토와 후지누마 기이치, 후지누마 아내 유리에만 있었다. 가정부는 가끔 일하러 왔다. 수차관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먼 곳에 있다. 유리에는 이제 스무살로 수차관에서 지낸 지 십년이 되었다. 바깥 세상은 하나도 모른다. 이곳에서 한해에 한번 모임을 가졌다. 후지누마 기이치 아버지 후지누마 잇세이는 환상화를 그렸다. 9월 28일은 후지누마 잇세이 기일로 미술상, 외과의, 대학교수, 절 부주지(오이시, 미타무라, 모리, 후루카와) 네 사람이 왔다. 후루카와는 한해 전에 어딘론가 사라졌다. 그대신 후루카와를 알고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를 아는 시마다 기요시가 찾아왔다. 후지누마 기이치는 수차관을 짓고 아버지 그림을 되사들여 그곳에 모두 모아두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 ‘환영군상’을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보고 싶어했다.

 

지금이 1986년이지만 소설은 1985년 9월 28일에서 29일에 일어난 일도 말해준다. 시작할 때 충격을 주고, 그때 생각한 게 하나 있는데 맞았다. 그 뒤 일은 제대로 생각 못했다. 불청객으로 보이는 시마다 기요시가 탐정처럼 나온다. 1985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한해 전에는 천둥 번개도 쳤다. 무엇인가 일어나기에 딱 좋은 날이다. 한해가 지난 지금도 일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나 죽는다. 그렇게까지 죽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마다 기요시는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사람을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했다. 시마다는 그때 일을 밝혀낸다. 벌써 이런 말을 꺼내다니. 그 사람은 언제부터 그 일을 계획했을까. 그 사람 처지를 생각하면 안 되기도 했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책 제목은 ‘수차관의 살인’이니 누가 죽지 않으면 안 되기는 한다. 이런 소설을 볼 때면 늘 생각한다. 소설 안에서는 원한을 오래 끌지 않으면 안 되고, 한순간 일어나는 화도 참으면 안 되겠다는. 소설을 보고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만 자신한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 그곳을 지은 후지누마는 세상 사람을 피해 그곳에서 살았을 테지만, 그런 집을 지을 돈이 있었으니 그렇게 살 수 있었다. 한가지 문제는 아버지 제자 딸인 유리에까지 세상과 연을 끊게 한 거다. 유리에는 어리다. 바깥 세상이 어떤지 알고 나서 바라면 수차관에서 살게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아내로 삼다니. 유리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유리에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 사람과 동떨어져 자연과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나는 본래 사람 사귀는 걸 못해서. 할 수 있는 한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집은 싫다. 건축가가 감추어둔 공간이 있는 집은 재미있을 듯하다. 나카무라 세이지는 자신이 설계한 집에 그런 곳을 만든다고 한다. 수차관에도 있었다. 거기에는 후지누마 잇세이가 마지막으로 그린 환영군상도 있었다.

 

여기 나오는 후지누마 잇세이 같은 화가가 정말 있을까. 잇세이는 환시자로 마음의 눈으로 잡은 환상 풍경을 그렸다. 사람들은 그 환상에 사로잡힌 건지도. 마지막 그림에는 누군가의 일이 그려져 있다. 잇세이는 앞을 보는 사람이기도 한 건지. 이런 화가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도 일어날 테니까.

 

 

 

 

☆―

 

“마치 이 커다란 집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 골짜기 이 공간에 멈추어두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43쪽)

 

 

“아버지처럼 나도 그 그림이 무서워. 꺼려질 만큼 오싹해. 그래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뒀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고,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93쪽)

 

 

 

 

 

 

 

현실이 괴롭고 힘들어도 제대로 마주해야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

  パラレルワルド·ラブスト (1995)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4년 05월 26일

 

 

 

 

 

 

 

 

 

 

 

패럴렐월드, 곧 평행우주(세계)는 지금 이곳과 똑같은 세계가 또 있다는 거다. 이곳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똑같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평행우주가 단 하나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꽤 많을 수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평행우주가 생겨난다는. 그러면 셀 수 없을 만큼 평행우주가 있겠다. 결정한 일을 하고 사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아쉽게도 우리는 하나밖에 모른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 평행우주가 생겨난 것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재미있을 테니까. 내가 아는 건 겨우 이 정도뿐이다. 좀더 깊게 생각한 책도 있는 듯한데 그런 건 본 적 없다(이 말은 제목만 아는 미치오 카쿠 책 《평행우주》를 생각하고 쓴 건데, 여기에서는 평행우주라기보다 우주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생각한 것은 그런 건데,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SF 같으면서도 좀더 현실에 가깝다. 다른 공간을 찾는 게 아니고 뇌에 자극을 주어 현실과 똑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온다. 또 다른 사람은 기억과 관계있는 것을 연구한다. 공통점은 뇌다.

 

지금 뇌 연구는 어느 정도나 했을까. 이 책은 1995년에 나온 거다. 그전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고 해서 뇌이식수술을 받은 사람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뇌이식은 할 수 없지 않을까(얼마전에도 비슷한 말을. 뇌이식을 하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변신’ 봤지만 거의 잊어버렸다. 해설을 쓴 사람이 이 책 이야기를 잠시 해서. 이 책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어떤 실험을 하는 것이어서 기억이 조금 이상해지는 건가 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쓰루가 다카시가 연구하는 차기형 리얼리티인가 했다. 다카시 뇌에 자극을 주어서 이 사람이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지만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카시한테 일어난 일은 기억이 바뀐 거였다. 그 연구는 다카시 친구인 미와 도모히코가 했다. 왜 다카시 기억이 바뀐 걸까. 차근차근 보다보면 그 까닭은 나온다. 처음에는 그 일을 꾸민 게 도모히코인가 했다. 책을 보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도모히코와 도모히코 연구를 돕던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모히코는 미국에 갔다 하고, 또 다른 사람(도모히코를 돕던 사람)은 한해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일까.

 

다카시가 어떤 일을 기억하게 되자, 지금 애인인 마유코가 사라지고 곧 상사도 모습을 감추었다. 다카시는 마유코가 자기 애인이라 여겼지만, 한해 전에 미와 도모히코가 자기 애인이라 하고 마유코를 소개한 일을 기억해냈다. 그 일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기억이 실제와 다르면 혼란스러울 듯하다. 다카시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다카시가 그러게 할 때 우리는 한해 전에 다카시와 도모히코 그리고 마유코한테 일어난 일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카시가 기억해 내는 것이기도 하겠지. 사람은 자신한테 일어난 일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잊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안 좋은 일을 잊게 해주는 약을 주었다. 사실 그것은 나라에서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였다. 쓸데없는 생각 못하게. 슬프고 괴로운 일을 잊게 해주려고 무언가를 연구해도 그것은 나쁘게 쓰일 수 있다. 과학에는 그런 위험한 면이 있다. 누군가는 위험을 느끼면 그것을 그만두려고 할 테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한사람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또한 그러하겠다.

 

여기에 커다란 음모가 숨어있는 건 아니다. 잠깐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을 적게 느끼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다. 아니 상대가 확실하게 했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그 사람도 흔들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을 접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하는 노랫말이 생각나는구나. ‘잘못된 만남’ ‘사랑과 우정 사이’도 있다. 우리나라 노래에도 이런 이야기가 많구나. 아마 내가 말한 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한쪽이 물러나기도 하겠지. 어쩐지 그럴 때가 많을 것 같다. 그게 서로 좋을 테니까. 마음을 감추고 물러나는 사람, 마음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이 물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 뒤 그 사이는 깨어질까. 마음을 감추었을 때는 괜찮겠지만 드러내면 깨어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때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오래 가면 좋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진다. 그때는 그것을 잘 모른다. 사람은 다 그렇다. 나도 비슷하다.

 

두 사람만 좋은 게 아니고 둘레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만남은 정말 좋은 거다. 아니 둘레에서 축하해준다 해도 그 안에 마음을 숨긴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도 쉽게 다른 사람한테 소개하지 않기. 이러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두 사람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라면 괜찮을지도. 이런 말보다 다른 말을 해야 하는데. 슬픈 일 괴로운 일에서 달아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그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을 많이 겪어도 마음은 무뎌지지 않을 거다, 그래도. 그것은 나를 만드는 기억이고 추억이니까.

 

 

 

 

☆―

 

“자신 따위는 없어. 있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는 기억뿐. 모두 거기에 얽매여 있는 거야. 나나 다카시 씨나.”

 

“그러니까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을 바꾼다는 뜻이 되겠군.”

 

“그래. 바꿨으면 좋겠어, 자신을.”  (468~479쪽)

 

 

 

 

 

 

 

꾸기 알은 재능일까

 

  꾸기 알은 누구 것인가   カッコウの卵は 誰のもの (2010)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3년 11월 15일

 

 

 

 

 

 

 

 

 

 

 

 

“재능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395쪽)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 것도 아니고. 유즈키 씨 당신 것도 아니지.”  (396쪽)

 

 

뻐꾸기 하면 다른 새 둥지에 자기 알을 낳기만 하고 새끼를 키우지 않는 게 생각난다. 그런 뻐꾸기를 아이를 낳고 제대로 돌보지 않고 다른 곳에 보내는 부모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것은 뻐꾸기가 아닌 ‘뻐꾸기 알’이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뻐꾸기 알을 재능이라 말한다. 글을 쓰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을까. 뻐꾸기 알을 자기도 모르게 아이한테 물려주는 재능(유전자)이라 보고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아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어떤 사람이 그 말을 꺼낸 거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된 거다. 이것은 좀 아닌가. 이야기를 쓰기 전에 어느 정도 설계도는 그렸을 테니까. ‘백은의 잭’과 이 책 가운데서 무엇을 먼저 썼을까. 스키 선수가 나와서 스키장이 배경인 ‘백은의 잭’이 생각났다. 이걸 쓰다보니 그것도 생각난 거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쓸거리가 그렇게 바로 떠오를까. 하나를 쓸 때 거기에서 또 다른 게 떠올라서 쓰는 건 아닐까 싶다. 떠오르면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바로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나중에 쓰는 것도 있겠지).

 

지금 과학은 사람 유전자를 어느 정도나 알까. 여기 나온 것처럼 유전자로 운동선수 재능을 알 수 있을까. 스키 선수 히다 카자미, 스키 선수로 잘될 유전자를 가진 도리고에 신고. 두 사람이 가진 패턴은 다른 거다. 카자미한테는 비밀이 있어서 아버지 히다 히로마사가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 도리고에 신고 아버지한테 F패턴 유전자가 있어서 아들 도리고에 신고 유전자를 검사하니 같은 게 있었다. 신고 엄마 아버지는 헤어졌다. 아버지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고 제대로 일을 못해서 집안 형편이 안 좋았다. 신세 개발 스포츠 과학연구소에서는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해주는 대신 도리고에 신고한테 크로스컨트리 부문 스키를 하게 한다. 신세 개발 스포츠는 운동선수도 키우고 과학연구도 하는 곳이구나. 과학으로 운동선수를 뽑은 것일 수도 있을까. 카자미는 아버지가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올림픽에 나간 스키 선수였다. 카자미는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타고 재능이 보였다. 아버지는 카자미가 올림픽에 나가고 메달을 따기도 바랐다. 하지만 신고는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신고는 스키 훈련을 받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신고는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치고 싶어했다.

 

앞에서 카자미한테 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카자미는 히다 딸이 아니었다. 히다는 이 일을 카자미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알았다. 히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 도모요 화장대를 정리하다가 아기 유괴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를 본다. 신문 날짜는 카자미가 태어난 때와 가까웠다. 이 일을 보면 도모요가 다른 사람 아기를 훔쳐다 자기 아이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히다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도모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는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모든 일을 다 알고 나서도 도모요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잘 모르겠다. 남편을 속이는 게 괴로워였을까. 그것도 있겠지만 진짜 자기 아이를 잃은 데서 온 우울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한테도 그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식구라도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신고도 아버지한테 자기 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두 사람 다 그랬구나. 못살면 못사는대로 살아가면 될 텐데.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먼저 돈을 벌고,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떨까 하는. 이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야 즐거우니까. 남이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이기도 하다.

 

어떤 한사람이 가장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옛날 일을 알아서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들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사람은 어떤 일을 결심해도 마지막에는 자신한테 좋은 쪽으로 결정하고 마는구나. 좋은 쪽이라고 해서 이익을 얻는 건 아니다. 누군가하고 관계를 그대로 지킬 수 있는 거다. 나는 어떤 일을 밝힌다고 해도 무엇이 크게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사자는 내 생각과 달랐다. 혹시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생각이기도 할까. 예전에 본 《내가 옛날에 죽은 집》에 나온 사람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걸 알고 달라졌다. 이 말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밝히지 않았는지 알겠다. 어떤 일은 묻어두는 게 낫기도 하다. 이번에는 빨리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잃을 것을 생각하고 시간을 끄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웃음은 누군가의 울음이 있어서기도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게 웃기 어려울까. 행복과 불행이라고 할까 하다가 웃음과 울음이라 했다. 누군가 죽는 데서 이야기는 좋게 끝나기 어렵겠다. 이런 일이 있다면 이 사람처럼 하지 않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지도.

 

여기에서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재능’은 누구의 것도 아닌 그것을 가진 사람 것이다는 거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딱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다를 수도 있다. 재능 때문에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는 일 자주 있을까. 부모가 자기 아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일이 생각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걸 아이가 이루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 부모는 부모 아이는 아이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 부럽고,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잘 아는 사람도 부럽다. 부러워만 하면 안 될 텐데.

 

 

 

희선

 

 

 

 

☆―

 

“망설여, 뭘?”

 

“지금까지 제가 고집해 온 방식이나 생각이요. 전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재능을 살리면 삶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어요. 스포츠든 예술이든, 남보다 뛰어난 결과가 나오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고, 설사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차츰 열의를 보이고 몰두하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삶의 자양분으로 삼으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도 기꺼워하지 않는 사람 말이에요. 바로 도리고에 신고처럼 말입니다. 신고한테 올림픽은 꿈도 무엇도 아닙니다. 신고 꿈은 마음껏 기타를 치는 거죠. 프로 뮤지션이 되지 못하더라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신고는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누가 ‘너는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시키는 건 인격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요.”  (397~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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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있다

 

  그 무렵 누군가   あの頃の誰か (2011)

  히가시노 게이고   이혁재 옮김

  재인  2014년 04월 30일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산다. 모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열심히 살아서 꿈을 이루고 자신이 바라는 성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돈이 좀 있는 사람 덕을 보려는 사람도 있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남을 속이고 죽이기까지 하면 그 뒤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나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본래 성격과 다른 자신을 연기해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꾸미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거다. 세상은 어떻게 보면 무섭다. 그렇다고 그런 것만 보고 살아가기 어려울 거다. 믿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쪽에 의심이 싹튼다고 해도 말이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일까.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한순간 그렇게 되는 것일지도.

 

아버지 재산이 많으면 자식과 친척은 그 재산에 욕심을 낸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텐데 이런 소설에는 그런 사람이 자주 나온다. 유언장에 써서 그런 건지도. 아버지가 쓴 다른 유언장이 사라졌다.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사람 딸이 나타나서 아버지는 유언장을 다시 썼다. 그 유언장을 찾으려는 사람과 찾지 않으려는 사람. 그 안에 자신한테 좋게 적혀 있으면 세상에 알리겠지만 반대로 안 좋으면 없애려고 할 거다. 그러니 누구보다 먼저 유언장을 찾아야 한다. 찾은 유언장에는 두 자식한테 줄 돈을 한사람한테 주라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정말 그런 유언장을 남겼을까. 또 다른 수수께끼가 나타났다. 그것은 쉽게 풀린다. 완벽하게 모두를 속였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쁜 것은 들키고 만다. 돈이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듯하다. 나쁜 것은 돈일까. 다른 사람 말에 넘어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평상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못하는구나. 실수였다 해도 깨끗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오랫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양자를 들이기로 하고 그 아기를 만난 날 남자는 엄청난 일을 알게 된다. 좀더 자기 지위를 높이기 위해 조건이 좋은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저지른 죄. 죄를 짓고도 잘 살아가던 날 그게 자신한테 돌아왔다. 아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그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거기에서 달아났다. 이것은 죄를 뉘우쳤다기보다 자신이 한 일이 드러날까봐 겁을 먹은 것뿐이다. 오래전에 죄를 짓지 말지 불쌍하구나. 왜 사귀는 사람 결혼하는 사람 따로 생각할까. 두 사람 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 영혼이 딸 몸에 들어간다. 이것은 장편 《비밀》이 나오게 한 이야기다. 장편이 아닌 단편이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나오지 않는다. 그랬을 거다 생각해야 하는 거구나. 남편은 딸 몸에 아내 영혼이 들어와서 그것을 딸로 봐야 할지 아내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장편에서 그랬다는 거다. 여기에서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아내는 정말 딸을 위해서 산 걸까. 사람은 영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내 마음에는 다시 산다는 것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딸 대신 자신이 살아서 마음 아팠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 딸을 위해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아무리 명탐정이라 해도 나이를 먹으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지.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바뀐 게 더 크게 움직였다. 탐정보다 과학이 다 알아내주었다. 그런데 탐정이 쓰려는 수기 때문에 안 좋은 사람이 있었다. 오래전에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힘들었는데 탐정이 수기를 쓰면 그 일이 다시 이야깃거리가 될 게 뻔했다. 탐정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탐정이 푼 사건이 정말 옳았는지. 탐정은 그 일 때문에 수기를 쓰지 못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해결한 일이라 해도 그냥 놔두는 게 나을 듯싶다. 글로 써서 남기는 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죄를 지었을 때 자신이 형벌을 골라야 했다. 하나는 호랑이, 하나는 여자였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죄를 지은 사람이 고른 문 뒤에 있는 것은 여자였다. 그 사람은 여자와 결혼하고 살았다. 그런데 여자는 술꾼이었다. 그런 여자라 해도 헤어질 수 없었다. 그게 바로 벌이니까. 그 사람은 자신이 고른 게 여자도 호랑이도 아닌 다른 거였나 했다. 예쁘지 않아도 여자여서 처음에는 좋았겠지만 살아보니 그게 더 끔찍한 일이었다. 죄를 지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는다, 일까.

 

자고 싶고 죽고 싶지 않지만, 자면 죽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다면 억울하겠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났다면 좋을 테지만 어쩐지 어려워보인다. 세상에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잔인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런 사람 눈에 띄지 않고 걸려들지 않는 거다. 자신이 정직하게 살아도 안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왜 21세기에 잭인가

 

  살인마 잭의 고백   切り裂きジャックの告白 (2013)

  나카야마 시치리   복창교 옮김

  오후세시  2014년 03월 06일

 

 

 

 

 

 

 

 

 

 

 

1888년 런던에서 8월 31부터 11월 9일까지 두달 동안 ‘적어도’ 매춘부 다섯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장소는 이스트 엔드 화이트 채플 지역. 피해자 모두가 예리한 날붙이로 목을 베인 뒤에 장기를 빼앗김으로 그때 런던 시내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적어도’ 라고 한 것은 그 피해자가 좀 더 많았다는 설이 있기는 하나 수법 차이로 동일범 짓이라고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50쪽)

 

 

잭은 19세기 런던을 두려움에 몰아넣은 살인마다. 끝내 잭은 잡히지 않았다. 지금은 21세기니 잭은 오래전에 죽었겠지. 이 잭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나왔다.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예전에 본 만화속에서 잭을 모티프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거기에서는 다 만들었을까(그 만화는 보다 말았다). 잭이 무서운 건 사람을 죽이고 장기를 빼가기 때문일 거다. 오래전에 잭은 그 장기를 먹었다는 말도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랬을까.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니 참모습은 알 수 없겠다. 이 책 제목 ‘살인마 잭의 고백’에 나온 잭은 바로 그 잭이다. 공원에서 발견된 여자 시체에는 장기가 없었다. 장기를 꺼낸 솜씨가 좋았다. 경찰은 범인이 의료 관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해부학을 잘 아는 사람 현역 의사, 의대생, 정육업자……. 얼마 뒤 방송국과 신문사에 범행 성명이 온다. 그것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잭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진짜 일어나면 무섭겠다. 책이니까 이렇게 볼 수 있는 거긴 하다.

 

첫번째 피해자를 검시한 사람은 범인한테서 아무런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그 말은 맞았다. 그 뒤에 두 사람이 더 잭한테 죽임 당하고 장기까지 빼앗겼다. 잭이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반드시 공통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맡은 사람은 많지만 자주 보이는 사람은 이누카이와 고테가와다. 이누카이는 본부 형사고 고테가와는 관할 경찰서 형사다. 이누카이는 범인을 잘 잡는 형사고 고테가와는 형사가 되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두번째로 죽임 당한 사람도 여자였다. 사실 두번째 때 같은 점을 알았다. 무엇이냐 하면 둘 다 이식수술을 받은 거다. 장기는 같은 기증자 거였다. 그렇게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은 둘이 더 있었다. 둘 가운데서 한사람이 먼저 죽임 당했다. 이누카이와 고테가와가 이식 코디네이터를 찾아가서 장기 기증자와 기증받은 사람을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환자 정보는 본래 가르쳐주는 게 아니기는 하다. 사람 목숨이 걸려있을 때는 가르쳐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식 코디네이터가 장기를 기증한 사람과 받은 사람을 가르쳐주지 않은 데는 다른 까닭이 있었다. 이런 일(이식 코디네이터)은 잘못하면 감정에 휩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걸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을 죽이고 장기를 빼간 것은 범인이 정신이 이상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런 것을 즐긴 걸까. 그러고 보니 한사람한테서 장기를 받은 사람이 죽임 당했구나. 고테가와는 이런 말을 했다. 마술사의 속임수를 알려면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잘 보아야 한다고. 이 말처럼 잭은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거다. 잘못한 일을 솔직하게 말하고 어떻게 하면 그 잘못을 바로잡을지 생각하는 게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보다 나을 텐데. 죽임 당한 사람은 장기 이식을 받기 전에 괴롭게 살았다. 장기 이식을 받는다고 해도 건강이 아주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식받기 전과는 달랐겠지만.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텐데 잭은 그것을 빼앗았다. 세 사람 가운데서 한사람은 여러 사람한테서 도움을 받고 신장이식을 했다. 그러나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면역억제제는 평생 맞아야 하고 일도 찾지 못해서 도박에 빠졌다. 그런 것을 도움을 준 사람들이 알고 실망했다. 장기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을 사람이 이식을 받고 목숨을 이으면 처음에는 기쁠 거다. 하지만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준 목숨이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좋은 마음으로 행한 일이라고 해도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할 때는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나쁜 짓만은 안 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줄 수 있는 장기도 있지만 죽었을 때 줄 수 있는 것도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죽었다고 할 수 없다. 뇌사판정을 받은 것뿐이다. 나는 뇌사가 어떤 건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뇌가 죽으면 사람은 더는 생각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다. 그냥 두면 결국 장기와 함께 사람은 죽는다. 그렇게 죽게 놔두는 것보다 다른 사람한테 장기를 주고 죽는 게 더 낫다고 여기고, 뇌사판정을 받은 사람한테 장기를 기증해달라고 한다. 물론 그 사람 식구한테. 전에는 그게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뇌가 죽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주 죽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주 죽으면 장기는 쓸 수 없다. 그랬구나, 장기를 기증하는 일은 그런 거였다. 그런 장기를 받은 사람이 잘 살아가면 좋을 텐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다. 또 이런 말로 흐르다니.

 

 

 

*더하는 말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에 묻어가서 나쁜 마음을 드러낸다. 잭이 범행 성명을 보내자 그것을 따라한 사람이 많았다. 자신이 잭이라고 하거나 누군가 잭이라 했다. 경찰은 그게 진짜가 아니라 해도 확인해보아야 한다. 진짜가 섞여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익명에 숨는 사람 많겠지. 그런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매스컴도 그것을 이용한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까. 아니 윤리를 생각하면 모두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윤리를 크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세상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윤리를 지키려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아주 어두워지지 않을 거다.

 

 

 

 

☆―

 

“다른 사람 장기를 받았으니 살아가는 것에 책임이 생길 거야. 게으름 피우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테니까. 살아가는 것에 속박될 거야. 둘레에서 감시받고. 사야카는 그것이 무서울 뿐이야.”  (289쪽)

 

 

 

 

 

 

 

화가는 어느 때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エコル·ド·パリ殺人事件 (2011)

  후카미 레이치로   박춘상 옮김

  한스미디어  2014년 01월 29일

 

 

 

 

 

 

 

 

 

 

 

에콜 드 파리는 제1, 2차 세계전쟁 때 활동한 화가를 일컫는 말로 모딜리아니, 수틴, 파스킨, 위트릴로, 후지타 쓰구하루, 사에키 유조가 있다. 화가 이름을 몇 사람 썼는데 그밖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콜 드 파리는 미술에서 무슨 파라고 하는 것 가운데서 ‘파리파’라고 하는 거다. 에콜 드 파리에 들어가는 사람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한사람 한파라고 한다. 파라는 건 왜 나눌까. 그것을 모르면 그림을 설명하기 어려워서일지도. 그림 그리는 사람 생각과 다르게 어떤 파에 들어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콜 드 파리였던 사람은 별로 잘살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화가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살지 못한 사람이 다른 파 화가보다 많은 것 같다. 때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딜리아니는 처음에 조각을 하다가 그림으로 바꾸었다. 이 사람 형편이 안 좋은 걸 파리 화상들이 알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가 죽으면 그림값이 오를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때로는 잔인하다. 모딜리아니가 죽고 임신 여덟달인 아내도 뒤따라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일본에서 손꼽히는 화랑인 아카츠키 화랑은 에콜 드 파리 화가 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화랑 주인 아카츠키 히로유키는 자기 집 서재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서재는 밀실이었다. 아카츠키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은 누군가 서재 창문으로 나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린 발자국과 가슴에 칼을 망설임없이 찔러서였다. 괴로워보이는 아카츠키 얼굴도. 아카츠키를 가장 처음 본 사람은 집사다. 사람이 죽으면 경찰은 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한 건지 살펴본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닐지도. 처음부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네, 하는 생각은 안 하고 조사를 해 보고 결론을 내리겠다. 왜 이런 말이 나온 건지. 운노는 수사 1과 강력범죄 수사 10반 형사들과 아카츠키 시체를 보러온다. 그날 운노 조카 신센지 슌이치로가 나타난다. 다카츠키 콜렉션을 보러왔다고 했다. 설명하기는 어렵구나. 형사들이 수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 듯하다.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슌이치로는 운노한테 아카츠키 히로유키가 쓴 책 《저주받은 화가들》을 보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은 운노뿐 아니라 이 책을 보는 사람한테도 한 것 같다.

 

탐정이 나올 때는 형사는 엉뚱한 쪽으로 생각한다.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탐정을 돋보이게 하는 걸거다. 운노 조카 슌이치로가 무엇인가를 할 것 같았는데 그게 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카츠키 아내가 밤마다 밖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서야 슌이치로가 나섰다. 아무도 알지 못한 것을 슌이치로는 알았다. 아카츠키 히로유키가 쓴 책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맞았다. 슌이치로가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에콜 드 파리 사람과 닮았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지 않고 살아가기. 좋은 말이 있었는데 정리 못하겠다. 자기 스스로 일을 하게 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은 편할 거다. 여기에 나온 사건 광역 우 34호는 《살인마 잭의 고백》을 생각나게 했다. 노란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이고 몸 속 한 부분을 가져가서. ‘살인마 잭의 고백’하고는 조금 다른가. 아니 어쩌면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매춘부를 죽인 살인마 잭과는 비슷할지도. 이 일은 아카츠키 아내 때문에 해결한다. 그것을 좋게 봐야 하는 건지. 밀실이 어떻게 풀리는지 말 안 해도 괜찮겠지. 밀실은 누구를 위해 만든 걸까.

 

그림은 영감이 뛰어날 때만 그려야 할까. 나이가 적을 때 말이다. 스스로 붓을 꺾고 그림을 그만 그리면 좀 낫겠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게 만들면 괴로울 거다. 아카츠키가 쓴 《저주받은 화가들》에도 나이를 먹어서까지 그림을 그리는 건 안 좋다고 했다. 일찍 죽거나 예술가로서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 그림값은 비싸지니까. 화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화가는 언제나 그림 그리는 것만 생각한다고 한다. 자기가 예전만큼 그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거다. 화가한테 그림 그리는 일은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림은 젊을 때 그린 것만 비쌀까. 피카소 그림은 젊을 때 그린 게 비싸지만, 세잔 그림은 나이 들어서 그린 게 비싸다고 한다. 이 말은 우연히 들었다. 글도 일찍 죽은 사람 글은 지금까지도 읽힌다(글이 좋아야 하지만). 일찍 죽는 사람은 자신이 빨리 죽을 것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그때 잘 그리고 잘 쓰는 건지도. 모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안 좋은 형편에서 더 좋게 나오기도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도 할 거다. 좋을 때 기쁠 때도 좋은 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돈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바란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 사람은 그것을 늦게 깨달았구나. 그림은 잘 봐도 사람 마음은 모르다니. 사람을 좋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곁에 붙잡아두면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늘 보살펴주어야 한다. 거의 그렇게 살아갈거다. 몇몇 사람만이 그냥 내버려둘거다.

 

 

 

희선

 

 

 

 

☆―

 

예술가는 글을 쓸 수 없다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곡을 지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절정에서 죽어야만 한다. 물론 세상을 떠나는 게 더 바람직하겠으나 그렇게 못하겠다면 예술가로서 죽어야 한다. 그것이 예술가라는 선택받은 아니, 저주받은 인종에게 찍힌 낙인이다.  (169쪽)

 

-별로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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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우인장 18   미도리카와 유키 (2014년 09월 05일)

 

 

 

다른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여름(칠월)이 아닌 가을(구월)에 책이 나왔다. 이 책도 오래 나와서 1000만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만큼 팔린 거겠지. 바다 건너에 사는 나도 열여덟권 샀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일본만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알려져 있으니까. 다른 나라 말로 나온 책까지 합치면 1000만 넘겠다. 18권과 함께 야옹 선생과 관계있는 책도 두권 나왔다. 그것은 나왔구나 할 뿐이다. 일본에서는 책이 어느 정도 나오면 원화 전시회를 하거나 여러 행사를 한다. 나츠메 우인장도 원화 전시회했다. 그런 것도 사람이 많이 와야 할 수 있겠지. 만약에 내가 가까운 곳에 살았다면 그림 보러갔을까. 아주 먼 곳은 어려워도 가까운 곳이라면 갈지도. 실제 일어나지 않을 일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캐릭터로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만화나 그렇게 할까. 사람들이 좋아하고 살 만한 것을 만들 것 같다. 나는 다른 것보다 편지지, 엽서가 있으면 사겠다. 이것은 만들어도 많이 안 팔릴까. 나츠메 우인장 홈페이지를 보면 사람들이 여기 나오는 사람과 요괴로 꾸미고 담은 사진이 있다. 사람이나 요괴는 사람이 했는데 야옹 선생은 인형이다. 그런 것을 만든 것도 대단한가. 본래 모습(마다라)으로는 만들기 어렵겠지. 무엇인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코스프레 사진 보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나츠메와 레이코는 좀……, 어쩔 수 없겠다. 만화와 사람이 똑같을 수 없으니까.

 

어딘지 확실히 모르지만 나츠메가 간 곳을 다스리는 요괴를 스승으로 둔 요괴가 나타났다. 나타났다기보다 나츠메와 만났다고 해야겠다. 땅 여기저기가 패이고 요괴는 쓰러져 있었다. 모습은 염소처럼 보인다(앞에 그림에서 나츠메 왼손 밑에 있다). 그 요괴 이름은 시로로, 요새 스승 몸이 안 좋아서 후계자를 정하려고 친구 아케와 힘겨루기를 하려고 하는데 아케가 자꾸 피했다. 시로는 작고 힘이 세지 않다, 아케는 시로보다 크다. 그래도 시로는 지지 않겠다고 했다. 시로가 나츠메한테 부탁한 건 심판이다. 시로가 싸우려고 하는 아케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서, 나츠메는 정말 아케가 있는 거냐고 했다. 아케는 진짜 있었다. 시로가 없을 때 나츠메 앞에 나타났다. 아케가 나츠메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시로가 나타나서 못했다. 아케는 시로한테 사흘 뒤에 싸우자고 했다. 사흘이 흘러서 시로와 아케는 만나서 힘을 겨루었다. 시로가 이겼다. 둘이 힘을 겨룰 때 아케가 뭔가를 떨어뜨렸다. 그것은 약초였다. 아케는 스승을 위해 약초를 찾으러 다닌 거였다. 시로는 앞으로 둘이 같이 약초를 찾자고 했다. 그때 둘 스승이 나타나서 단련을 빼먹다니 하면서 데리고 갔다. 야옹 선생은 시로와 아케 스승을 보고 아직은 괜찮겠다고 했다. 요괴한테 스승이 있다니 하겠다. 힘이 세서 어떤 곳(땅, 산)을 지키는 요괴는 나쁜 힘을 몰아내는 듯하다. 나쁜 요괴라고 해도 되겠지. 지금 같은 시대는 요괴 힘이 약해진다. 시로는 힘이 별로 없는 자신이라도 스승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후계자가 꼭 하나여야 할까. 아케하고 같이 그 땅을 지키면 될 텐데. 시로 모습을 보고 나츠메도 토코 아주머니한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츠메가 고장 난 오르골을 고치려고 했는데 잘못해서 부서진 듯했다. 그것 때문에 나츠메 기분이 안 좋았는데, 집에 가니 토코 아주머니가 오르골 소리가 난다고 했다.

 

우인장 이야기를 나츠메가 한 사람이 있던가. 친구 타키한테 할머니 유품이라고 했구나. 이것은 요괴와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노릴 만한 거다. 요괴보다 사람이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나츠메는 나토리와 요괴연구를 하다 죽은 사람 집에 간다. 하코자키가 남긴 요괴연구자료 때문이다. 하코자키 손녀는 요괴를 안 좋게 여겼다. 왜냐하면 볼 수 없으니까. 할아버지를 만나면 자신은 볼 수 없는 요괴 이야기를 해서 싫었다고(타키와는 다르구나. 타키 할아버지는 요괴를 볼 수 없었는데 요괴는 그 모습을 보고 놀러오기도 했다). 자신한테 필요없는 요괴연구 자료는 빨리 없애고 싶어했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숨긴 서재를 찾는 사람한테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주겠다고 했다. 나츠메는 그것을 좀 아쉽게 여겼다. 죽은 사람 때문일까 손녀 때문일까. 둘 다겠지. 하코자키 집에서 나츠메는 우인장을 빼앗으려고 하는 요괴를 만났는데 둘이 하는 이야기를 나토리가 들었다(요새 나토리는 우인장을 알아보고 다녔다. 이번에도 우인장을 떠올렸다). 나토리는 지금 들은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고 했다. 나츠메는 이번 일이 끝나면 말할 테니 나토리한테 들어달라고 했다. 나츠메가 하코자키 집에 온 것은 우인장이나 할머니 레이코에 대해 알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레이코가 아닌 나츠메와 닮은 남자를 만난 적 있다는 말을 들었다. 레이코 말고 나츠메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니, 누굴까. 나츠메는 할아버지인가 했는데, 이렇게 수수께끼를 남기다니 언제쯤 이 이야기 나올까.

 

하코자키가 숨겨둔 서재는 나츠메가 찾았다고 해야 할까. 나츠메는 하코자키를 따르던 요괴(식)를 찾아냈다. 거기는 문이었다. 요괴는 안에 있는 건 아무한테도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토바 집안 사람들은 억지로 빼앗을 수 있었다. 요괴는 누군가한테 빼앗기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서재는 불에 탔다. 진짜 불은 아니고 자료만 태우고 집은 멀쩡했다. 하코자키를 따르던 요괴가 하코자키 이야기를 했는데 좀 쓸쓸해 보였다. 하코자키는 사람보다 요괴와 더 가까이 지냈다. 요괴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다렸다. 손녀를 위해서 단풍나무도 심었는데. 나츠메 우인장에 나오는 요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사람과 잘 사귀지 못한다. 하코자키도 비슷했을 거다. 나츠메는 요괴를 볼 수 있고 아는 나토리, 타키, 타누마를 만나서 아주 외롭지 않다. 다른 학교 친구도 있고. 지금은 요괴하고도 거리 조절을 잘 하는 것 같다. 나츠메는 레이코가 요괴와 싸워서 이기면 요괴 이름을 적게 해서 모은 게 우인장이 된 걸 나토리한테 말했다. 우인장은 할머니 유품으로 자신이 할 일은 요괴한테 이름을 돌려주는 일이다고. 나토리는 지금 다른 말은 안 하고 듣기만 했다. 서재가 타는 걸 보고 나토리는 그런 위험한 것(우인장)은 태워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했다. 이건 나츠메를 걱정해서 한 생각이겠지. 나토리는 우인장을 왜 찾았을까. 다른 사람은 우인장을 몰라야 할 텐데, 내가 더 걱정한다.

 

요괴를 볼 수 없는 사람이 요괴를 보면 꿈으로 여기게 할 때도 있다. 요괴인지 모르고 하얀 올빼미(요괴가 동물로 모습을 바꾸면 보통 사람도 볼 수 있다)를 도와준 여자아이 꿈에 하얀 올빼미가 나타나서 반지를 갖다달라고 했다. 그것은 하얀 올빼미 발에 걸려있던 거다. 여자아이는 꿈속에서 들은 하얀 올빼미 말대로 숲에 갔다. 그곳에서 나츠메와 야옹 선생을 만났다. 나츠메는 여자아이와 함께 하얀 올빼미를 찾았다. 나츠메가 찾던 숲 주인을 먼저 찾았다. 나츠메가 이름을 돌려주려는 요괴와 하얀 올빼미가 같은 게 아닐까 했는데 맞았다. 하얀 올빼미는 반지를 받으면서 부리로 돌을 조금 깨서 여자아이한테 주었다. 여자아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빨간 돌조각만 여자아이 손안에 남았다. 나츠메는 여자아이 기억을 마음대로 지우는 건 안 좋은 게 아니냐고 했는데……. 요괴한테는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있는 거겠지. 이 말은 야옹 선생이 한 거다.

 

하얀 올빼미는 그림에서 나츠메 어깨 위에 있다. 책 안에 나오는 요괴가 책 맨 앞에 나와서 반갑기도 하다. 처음 그림만 봤을 때는 몰랐지만. 두번째에서 나츠메는 하코자키와 손녀가 아기였을 때 담은 사진을 찾았다. 나츠메는 그 사진을 손녀한테 주었다. 손녀는 그것을 보고 할아버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을까. 세상에는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다른 사람한테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남한테는 잘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식구한테는 나타내면 좋을 텐데 쉽지 않겠지. 남 이야기는 이렇게 잘한다. 나도 잘 못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다 잔잔하구나. 늘 그랬던가.

 

 

 

희선

 

 

 

 

 

 

*사진 가져온 곳 http://www.hakusensha.co.jp/natsume/narik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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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루시드폴(2009, 2014)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편지를 쓴다

‘보내기’만 누르면 되는데,

내게 다시 돌아올까봐

임시보관함으로

보내지 못한 편지가 쌓여간다

 

 

 

이 책이 나오고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조윤석)이 나눈 전자편지가 책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조금 관심을 가졌는데 바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얼마전에 우연히 두번째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때 루시드폴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해요. 그냥 갑자기 한 거죠. 그런 일 가끔 일어나잖아요. 우연히 생각한 것을 만나는 일. 마종기 시인 이름은 알지만 시는 많이 못 보았습니다. 루시드폴은 2집이 나왔을 때 알았습니다.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 이야기를 해서 시인한테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집 한권 샀는데 제대로 못보았네요. 루시드폴 알고 나서 ‘미선이’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음반은 못 샀군요. CD 플레이어가 고장나서 CD 듣기 어려워서 그렇다는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루시드폴이 스위스에서 하던 공부를 끝내고 우리나라에 와서 한 라디오 방송은 들었습니다. 그때 ebs에서 <세계음악기행>이라는 방송을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책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읽어주는 라디오’로 바꾼 걸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음악방송이 하나도 없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ebs인데 음악방송 하기를 바라는 건 억지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ebs를 들은 건 음악방송이 있어서였어요. 교육방송인데 음악방송이 다 있구나 했습니다. 그것은 밤 방송이었습니다. 루시드폴 라디오 방송은 안 해도 음악은 여전히 하고 있엇꾼요. 제가 관심을 덜 가져서 그것을 빨리 몰랐던 거네요. 생명공학 쪽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어쩌면 두번째 책에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전자편지(앞으로는 그냥 편지라고 할게요)라고 해도 오랫동안 주고받기 어렵습니다.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한테 편지를 썼다 해도 마종기 시인이 답장을 쓰지 않았다면 주고받는 대화가 되지 않았겠지요. 마종기 시인을 시를 쓰고 루시드폴은 음악을 해서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두 사람한테는 공통분모인 과학이 있었습니다. 과학이라 해도 분야는 다르지만(마종기 시인은 의사고, 루시드폴은 공학박사). 시와 음악은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니죠. 시는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니까요. 예전에 친구와 루시드폴이 쓴 노랫말은 시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루시드폴은 시를 쓰고 싶다고 하더군요. 벌써 쓰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어쩌면 시인이 인정해주는 시를 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를 보니 저도 편지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건 전자편지가 아니고 그냥 편지예요.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보니, 내 생활은 정말 단순하구나 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일이 있어야 그런 일을 말할 텐데, 날마다 거의 비슷한 날이어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한사람(마종기 시인)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사람(루시드폴)은 스위스 로잔에서 할 일을 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더군요. 갔다 와서는 그곳 이야기를 하고, 책과 CD 를 서로 보내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그냥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나이 차이를 아버지와 아들에 가깝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종기 시인 아들과 루시드폴 아버지는 두 사람 사이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종기시인 아들은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군요. 한글이어서 읽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부러움을 느끼지 않게 마종기 시인은 아들과 루시드폴은 아버지와 잘 지냈을 것 같네요.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서 사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조금 다른 형편이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게 서로 마음을 열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은 편지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에 한번 들었을 텐데 잊어버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마종기 시인 아버지가 동화작가 마해송이라는 거예요. 마종기 시인과 마찬가지로 이름은 알지만 만나 본 동화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 신기해서. 동화가 시와 닿아있다는 거 아세요. 시·소설 이런 갈래가 있지만 모두 글이라는 것은 같군요. 어떤 게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사람이 시를 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시를 많이 보고 잘 아는 게 아니어서, 여러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말하기 어렵네요. 루시드폴은 마종기 시인 시를 여러번 보았다고 하더군요. 좋아하는 시, 시인이 있는 것도 좋은 거예요. 저요, 저는 아주 많이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쉬워요. 이 말은 전에도 했군요(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우연히 괜찮은 시를 보면 그 시인은 어떤 시를 쓸까 조금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 한편은 좋아도 시집 안에 있는 시가 다 좋지는 않더군요. 음악은 CD 한장에 들어있는 게 다 좋기도 합니다. 제가 시집 한권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겠지요. 편지보다 시 이야기를 했군요.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저도 아직 시를 좋아합니다. 생각만 하지 않고 앞으로는 시를 봐야겠습니다. 예전에 사둔 마종기 시인 시집을 먼저 만날까봐요.

 

마종기 시인은 과학을 하는 사람도 문학을 알면 좋다고 했습니다. 꼭 문학만 말한 건 아닙니다. 철학, 음악, 미술……. 마종기 시인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학과 의학’ 강의를 했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과학에만 관심을 갖는 건 아니겠지요. 마종기 시인처럼 의사면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소설을 쓰는 의사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하는 사람 부럽군요. 저는 하나도 못하는데……. 책을 보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저를 생각했습니다. 루시드폴은 공학뿐 아니라 여러 나라 말도 하더군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니 그쪽 말을 알아야 했겠지만. 루시드폴 소설도 쓰고 다른 나라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두권 다 아직 못 봤지만.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여러가지를 다 잘하기도 하더군요. 이런 것도 그런가 보다 해야죠.

 

나이 차이가 나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 좋다고 봅니다.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 나온 의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대 사이에 소통이 없는 게 문제다고(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서로 상대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다 자기 말을 더 하려고 하니까요. 어른은 아이 말을 아이는 어른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어떨까 싶네요. 말로 하기 어려우면 이렇게 편지로 하는 것도 좋겠지요.

 

 

 

임시보관함에 쌓인 편지를 하나씩 지운다

끝내 너에게 건네지 못한 마음

 

 

 

*더하는 말

 

조금 쓸데없는 말인데 짧은 글은 제 이야기 아닙니다. 글은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보는 것이기도 하죠. 이 말을 듣고 저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글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말 나중에 들었습니다. 제가 말을 조금 바꾸었네요. 글을 쓸 때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써보는 것도 좋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편지 쓰면 쌓아두지 않고 다 보냅니다. 저하고는 다르게 쓰고 차마 보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얼마전에 본 책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습니다. 제가 본 이 책은 개정판이 아니고 예전에 나온 겁니다. ebs 라디오 음악방송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는데 얼마전에 개편을 했습니다. (음악과 책을 함께 들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조금 들어봤는데 다른 라디오 방송과 비슷해졌습니다. 몇번 듣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했네요). 전에 하던 방송이 거의 없어지고 아주 달라졌습니다. ebs는 많은 게 한번에 바뀌더군요. 날마다 들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없어지니 아쉬웠습니다. 좋아하는 걸 만들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런 생각은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헤어질 텐데 사람(친구)을 왜 사귀나 할 수 있으니까요(친구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어쩌다 연락이 끊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하고 라디오 방송은 좀 다르기도 하죠.

 

 

 

희선

 

 

 

 

☆―

 

서둘러 윤석 군의 《국경의 밤》 앨범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첫 결과는 ‘어리둥절함’이었습니다. 내가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아니면 이게 세대 차이라는 것일까.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아주 좋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던 생각이 나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아, 이 노래들은 혹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흐처럼 나를 맑게 정돈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나를 압도하고 소름 끼치게 진리를 설파하는 것도 아니고, 모차르트처럼 천상의 황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이 음악이 외롭고 고달픈 또래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같은 세대가 느끼는 동류의 슬픔을 같이 흐느끼면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가 동료 의식으로 힘이 되는 그런 부드러움. 부드러움이 결국 힘이 되고 열기가 되어 불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는 그런 노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84쪽)

 

 

 

 

 

청솔 그늘에 앉아

 

이제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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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2 1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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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4 0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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