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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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걸어야 했는데, 빨리 걸어서 다리가 아픈 느낌이 듭니다. 다리가 많이 아픈 건 아니고, 빨리 걸어서 다른 생각은 못한 것 같아요. 이런 건 처음이 아닙니다. 늘 그래요. 실제 걸을 때도 둘레 잘 보지 않을지도. 하나도 안 보는 건 아니고 오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보면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걸 알지도 모를 텐데. 그냥 지나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제가 걸으면서 천천히 자세히 둘러보지 않아서 쓸 게 별로 없는가 봅니다. 걸으면서 여러 가지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도 해요. 지난날을 돌아보는 건가. 그러기도 하고 앞으로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볼 일을 마치면 뭘 해야지 하기도 합니다.


 제가 걷는 길은 거의 비슷해요.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서 백수린은 집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는 길을 잃지 않으려 하고, 다른 나라에선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사는 곳이어도 잘 가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몇 달 전에 거의 가지 않던 곳에서 길을 헤맸군요. 잘 모르는 길을 걸으면서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거 아닌가 했네요. 한동안 모르는 곳이었지만, 다행하게도 제가 아는 길이 나왔어요. 그저 걸으려고 나간 게 아니어서 잘 모르는 길을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네요. 그냥 걷기도 하면 좋을 텐데 여전히 그러지는 못합니다. 볼 일이 있어야 밖에 나가고 걸어요. 그러면서 걷기 좋아한다고 하는군요. 어디든 걸어다니니 걷기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요.


 서울 하면 많은 사람과 높은 건물이 먼저 떠오릅니다. 서울 잘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했네요. 아직 서울에도 옛모습이 남은 곳 많을 텐데. 옛모습이라 해도 아주 오래전은 아니고, 미처 재개발 되지 않은 곳. 그곳 그러니까 백수린이 사는 곳도 재개발 될지 모르지요. 이젠 달동네라는 말 잘 안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수린이 오래된 단독주택에 사는 모습 보니 백수린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 소설은 그 집에 살기 전에 쓴 거군요. 그곳은 재개발이 된다는 말이 있었던 곳이었어요. 재개발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해도 되는 곳이 있고 안 되는 곳이 있겠지요. 서울, 하니 한국은 오래된 걸 그냥 놔두지 않는군요. 건물이 오래되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에 튼튼하게 지으면 나을 텐데. 아주 많이 만드는 산업혁명 뒤부터는 튼튼하게 만들지 않게 됐을지도. 집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언덕 위 집이라는 말 좋게 들리지만, 살기에 편하다고 못하겠습니다. 단독주택이니 마당이 있다면 좋을 텐데, 마당은 없다고 합니다. 마당이 있다 해도 콘크리트 바닥이겠군요. 넓지는 않아도 그런 곳 있지 않을지. 제가 집을 잘 몰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없다고 하면 없는가 보다 해야 할 텐데. 백수린은 M 이모가 사는 곳을 알게 되고 자신도 그 동네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살게 됩니다. 거기가 언덕 위 집이에요. 이모는 친이모는 아니고 백수린 어머니 친구예요. 저는 이모도 엄마 친구와도 친하지 않네요. 백수린도 친하게 지낸 사람은 M 이모뿐이었군요.


 어느 날 백수린이 사는 동네에 예전에 알았던 E 언니가 이사왔어요. 이사온다는 걸 안 건 아니고 이사했다는 말을 듣고 물어보니 같은 동네고 집도 아주 가까웠어요. 그런 거 보니 부럽더군요. 가까이에 친구가 있다고 자주 만날 것 같지는 않지만. 시간이 가면서 백수린은 이웃하고도 알고 지내요. 서울에도 이웃과 이야기 나누고 사는 사람이 있네요.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을 텐데. 아파트에 살아도 앞집이나 옆집과는 친하게 지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그런 사람 많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백수린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는 소설에서 본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다는 아니어도 소설 속에 백수린 할머니 모습도 조금 있겠습니다.


 여기에는 백수린과 함께 산 개 봉봉이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수린은 어렸을 때는 개를 무서워 했다고 해요. 봉봉이는 달랐습니다. 백수린은 봉봉이가 떠날 때까지 함께 했군요. 그 시간 쉽지는 않았겠습니다. 봉봉이 어릴 때는 괜찮았겠지만, 나이를 먹고 아팠을 때는 백수린 마음도 아팠겠지요. 봉봉이가 건강할 때는 함께 걸었지만, 봉봉이가 인대를 다치고 걷기 어려울 때는 백수린이 안고 걸었어요. 봉봉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백수린은 봉봉이와 걷던 길을 걷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봉봉이 떠올리겠군요. 처음보다 많이 슬프지 않기를.




희선





☆―


 허름한 산동네의 낡고 작은 단독주택에서 사는 게 관리인이 따로 있는 공동주택에서 사는 것보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또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이 집을 무척 좋아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유난히 활달한 고양이들 울음소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빗소리. 집에는 유리창이 많아서, 나는 집 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짙어지는 우듬지 색깔과 석양 농도로 계절이 깊어가는 걸 알 수 있다.  (196쪽~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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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02-22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작가 단독주택에 사는군요. 저도 단독주택에 사는 게 꿈입니다. 어디든 기회만 되면 재개발을 하려고 하는데 대부분이 돈 때문이겠지요. 사람이 사는 곳이 돈으로 치환되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전세 사기도 그렇고 말이죠. 원수에게나 권한다는 재건축 조합도 그렇구요. 취지는 좋았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그저 돈, 이익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말씀처럼 처음 지을 때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으면 좋을텐데… 뭔가 따뜻한 느낌의 책인 것 같아요^^

희선 2024-02-23 00:22   좋아요 1 | URL
단독주택에 살게 되고 이런 책을 쓰기도 했네요 지금도 살겠지요 책이 2022년에 나와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같은 동네에 이사왔을 때는 참 반가웠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백수린 작가가 다른 사람 개를 봐주기도 했어요

백수린 작가가 사는 곳도 재개발 하기를 바라는 사람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나 재개발하고 그건 늘 해요 집이 오래된 곳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그런 것 때문에 골목이 거의 없어지기도 했지요 그걸 그렇게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단독주택은 관리하기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아요 꼬마요정 님 언젠가 단독주택에 사시기를 바랍니다 집짓기부터 하시는 거 아닐지...


희선

페넬로페 2024-02-23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돌아보며 느낌들을 적은 이 에세이집이 저도 좋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나름의 정취가 있어 좋았어요.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생각이 아주 깊은 곳까지 가 있어 역시 작가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희선 2024-02-23 00:39   좋아요 1 | URL
걸을 때 여기저기 잘 보면 좋을 텐데, 볼 만한 게 없네요 겨울엔 더... 제가 사는 곳도 거의 도시니, 그나마 서울보다 덜 복잡합니다 서울은 아주 복잡해서 걸어다니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걸어다니면 괜찮을 듯합니다 멀리에서 봐서 복잡하다 생각하는 거겠네요 어릴 때 단독주택에 사셨군요 여러 가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서 좋게 보셨군요


희선
 
드립백 콜롬비아 나리뇨 산 로렌조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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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콜롬비아 나리뇨 산 로렌조, 이름 길다. 포도 자몽 밤색 설탕. 맛 잘 모르겠지만, 괜찮은 편이다. 내가 알라딘 커피를 괜찮지 않다고 한 적은 없구나. 드립백이 담긴 봉투색을 보니 커피가 맛있을 것 같아 보였다. 봉투색이 예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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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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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오르는 마음은 뭘까요. 동네 뒷산에 오르는 건 그저 운동이겠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더 높은 산에 오르고 싶다 생각할지. 저는 그런 마음 들었던 적은 없어요. 산에 자주 가지도 않습니다. 거의 안 가는군요. 산에 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여기저기 잘 다니는 것 같더군요. 그것도 장비를 갖추고.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고 누구도 가지 않은 곳에 가려고 했습니다.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히말라야가 어디에 있나 했습니다. 이름만 알고 어디 있는지 잘 모릅니다. 파키스탄, 티베트에서 갈 수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막연히 중국이랑 가깝던가 했는데 아주 틀린 건 아니었네요.


 유메마쿠라 소설 《신들의 봉우리》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썼나 봅니다. 이 소설을 생각하고 쓰기까지 스무해 걸렸대요. 유메마쿠라 바쿠가 실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여섯번이나 갔다 왔답니다. 뭔가를 써야겠다 하고 오랜 시간 동안 준비를 했군요. 대단합니다. 예전에 산에 갔다 온 사람 이야기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그때보다 덜하네요. 여전히 산에 가는 사람은 있을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려 한 건 1924년 영국 사람 맬러리와 어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 이 책 보고 알았습니다. 아무도 해내지 못한 걸 하려는 건 무슨 마음일지. 지금 생각하니 사람은 남극탐험도 하려고 했군요. 히말라야 말하다 남극을 말했네요.


 오래전부터 사람이 그렇게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설 이야기보다 다른 걸 먼저 말하다니. 사람이 자연을 정복한다고 하죠.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면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더군요. 여기에 나온 하부 조지나 후카마치 마코토는 많은 사람이 아닌 혼자 오르려 했지만. 오래전부터 에베레스트에 사람이 다녀서 자연이 안 좋아졌을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있지만 파키스탄 사람은 나무를 베어 연료로 쓴다더군요. 1990년대에 그랬는데, 지금은 어떨지. 그 뒤로도 나무를 벴을지. 지난 2022년에 파키스탄에 엄청나게 비가 왔잖아요. 산에 있던 눈이 녹아서 피해를 입은 곳도 있는데 거기는 어디였는지 잊어버렸습니다. 히말라야 눈도 많이 녹지 않았을지. 파키스탄 사람이 나무를 베는 걸 탓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파키스탄은 가난해서 다른 연료를 사지 못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지금도 가난한 나라겠습니다. 지구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후카마치 마코토는 사진작가로 산악회 사람과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했는데 실패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카트만두에 머물렀어요. 후카마치와 에베레스트에 간 사람은 여섯인데 거기에서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후카마치는 등산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어떤 카메라를 보고 그걸 삽니다. 그 카메라 기종은 베스트 포켓 오토그래픽 코닥 스페셜이었어요. 그걸 보고 후카마치는 1924년에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한 맬러리 카메라라는 걸 알았어요. 후카마치는 그 카메라를 도둑맞고 우연히 그곳에서 일본 사람을 만나요. 비카르산(독사)입니다. 비카르산은 파키스탄 사람이 아닌 일본 사람으로 하부 조지였어요. 하부 조지는 일본에서 암벽 빙벽을 오르던 클라이머로 맬러리 카메라를 발견한 사람이에요. 하부 조지는 에베레스트 높은 곳까지 오른 거지요.


 카메라가 오래 되었다 해도 그 안에 필름이 있으면 그때 사진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맬러리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사진이 있었을지도. 아쉽게도 필름은 없었습니다. 실제로도 그건 없었어요. 후카마치는 일본으로 돌아가 하부 조지를 알아봐요. 하부 조지는 산에 오르는 게 사는 거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걸 먼저 하려 하고 위험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것만이 자신을 증명해준다는 듯이. 하부 조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으로 산소 없이 오르려 했습니다. 후카마치가 하부 조지를 알아 보다 다음에 하부 조지가 할 걸 알아낸 거죠. 후카마치는 그런 하부 조지한테 사로잡혔어요. 아니 어쩌면 후카마치 자신도 그런 거 하고 싶었던 건지도. 저는 그런 마음 잘 모르지만. 한가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 알겠습니다. 산에 미쳤다는 말도 있지요. 하부 조지는 산에 올라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 게 아닐까 싶어요. 누구보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마음이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겠지만.


 지금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 있겠지요. 이젠 그건 나라보다 개인이 하고 싶은 게 됐을 것 같습니다. 산에 오르려면 돈을 내야 한다더군요. 자연을 정복한다 여기지 말고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하부 조지는 꿈을 이뤘을 것 같아요.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하부 조지는 그걸로도 괜찮다 여기겠지요. 뭔가 하나에 미치는 마음도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희선





☆―


 9


 잘 들어.


 쉬지 마.


 쉬면 내가 용서 안 해.


 쉬면 죽는 거야.


 살아 있는 한 쉬지 마.


 쉬지 못해.


 내가,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하나.


 쉬지 않는다.


 다리가 안 움직이면 손으로 걸어.


 손이 안 움직이면 손가락으로 걸어.


 손가락이 안 움직이면 이로 눈으로 씹으며 걸어.


 이도 안 되면 눈(目)으로 걸어.


 눈으로 걸어.


 눈으로 가는 거야.


 눈으로 노려보며 걸어.


 눈도 안 되고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정말로 안 된다면 정말로 안 된다면 정말로, 이제, 있는 힘을 다했는데 이제 안 된다면 안 된다면 정말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상상해.


 온 마음을 다해서 상상해.




 10


 상상해…….  (743쪽~7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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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20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꽤 두껍네요.

희선 2024-02-20 23:46   좋아요 1 | URL
두껍기는 해도 재미있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거 별로 못 썼네요


희선
 
소설 보다 : 봄 2023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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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소설 보다’가 처음 나왔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이것도 여러 해 보는 것 같다. 시간이 참 잘도 간다. 시간 잘 가는 걸 책을 보고 생각하다니. 이렇게 정해진 때 나오는 책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해에 네번이잖은가. 늘 그때 그때 바로 못 보지만. 좀 늦을 뿐이고 보기는 한다. 단편소설 세편이니 마음 편하게 보면 될 텐데, 여전히 그게 잘 안 된다. 언젠가도 이 말 했는데, 이건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아주 안 보는 것보다 조금 낫다고 해야 할까.


 새해, 어느새 지난 2023년 봄에 나온 《소설 보다 : 봄 2023》은 다른 때보다 두껍고 책날개가 없어졌다. 소설가는 셋 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강보라, 김나현, 예소연. 셋은 모두 2021년에 작가가 되었나 보다. 난 처음 봤지만 누군가는 한번 정도 소설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소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강보라)이 가장 긴 것 같다. 처음 하는 말이 이런 말이라니. 발리섬 우붓에 간 ‘나(재아)’는 모험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발리에도 인도 같은 계급 제도가 있는가 보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에만 있는지 알았다.


 소설 제목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그림이기도 하다. 앞에서 제목 쓰면서 비슷한 그림 제목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구나. 그림은 소설 마지막에야 나온다. 재아가 우붓에서 만난 호경한테 받은 그림이다. 그 그림 제목은 없었던 것 같다. 뱀과 양배추를 그린 그림이다 했다. 그렇게 별날 것 없는 그림인가. 누군가한테 그림을 선물한다면 좀 멋진 거 하고 싶을 것 같은데. 호경은 왜 그 그림을 골랐을까. 재아한테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나타낸 걸까. 사실 이 소설 잘 모르겠다. 예술을 해도 계급이 있다, 그것보다 사람은 계급이 있다일지. 재아가 발리에 간 건 요가를 하는 사람이 그곳에 와서였다.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른 나라에도 가다니 대단하구나.


 두번째 소설 <오늘 할 일>(김나현)에서 ‘오늘 할 일’은 ‘나’와 남편 선일이 일기장에 쓰는 세 가지 계획이다. 선일은 평범한 계획이어도 있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걸 두 사람이 쓰고 서로 보여주다니. 쓰기는 해도 혼자 보면 안 되나. 내가 그런 걸 할 일도 없을 텐데 별 생각을 다했다. ‘나’와 선일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고 집을 샀다. 선일이 두 사람이 돈을 버니 집을 사자고 해서다. 그런 선일이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쉬었다. 다른 일을 알아본다면서 한해 쉬겠다고 했다. 선일이 하겠다고 한 건 웹소설 쓰기다. 선일은 세 가지 일을 하나도 못했다. 글쓰기, 달리기, 장보기였던가. 글을 쓰려고 하니 비행기 소리가 났다. ‘나’와 선일이 산 아파트에서는 낮에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낮에만 들린다고 해도 그런 곳에는 살기 어렵겠다. 내가 사는 곳은 가끔 새벽에 들린다. 그게 오래 들리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어쩐지 소음 문제 같지만 그건 아니다. 선일이 다니던 회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선일은 거기를 그만뒀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할지. 선일은 피해자일까. 끝까지 안 했다면 나았을걸. 선일은 청소년한테 주는 문화카드를 상사한테 받았다. 그건 신청한 사람이 찾아가지 않고 남은 거였다. 그걸 쓰지 않으면 실적에서 1등이 안 되니 선일한테 쓰라고 했다. 이건 잘못인 거지. 안 찾아갔다면 그냥 둬야 하지 않나. 선일은 그걸 쓰고 그 카드를 신청한 사람한테 돈을 보내줬다. 그 일을 회사에서 알게 되고 선일은 월급이 깎이고 본래 하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이런 일 실제로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일이 잘 안 됐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한다. 씁쓸한 느낌이 들면서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은 예소연 소설 <사랑과 결함>이다. 고모와 ‘나’, ‘나’와 어머니. 고모와 어머니는 ‘나’한테 사랑을 주지만 괴로움도 준다. 어머니는 아니고 고모만 그랬구나. 고모는 열다섯살이나 차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돌봤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으니 고모가 거의 부모와 같았구나. 그러고 보니 고모는 ‘나’의 엄마를 올캐보다 며느리처럼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모르겠다. 고모는 외로운 사람이어서 괴팍하기도 했다. 조울증 때문이다 여겨야 할지. 고모는 ‘나’한테 사랑을 주면서 ‘나’가 엄마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안다. ‘나’가 고모 앞에서는 아무리 고모 편을 들어도. 자기 앞에서 좋은 말해도 그게 진심이 아니면 상대는 알지.


 이 소설은 “삶은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 기괴한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71쪽)’ 같다. 누군가 자신한테 잘해줘도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고, 잘 못해주면 그것도 안 좋겠다. 사랑에는 사랑만 있지 않은 건가. 사랑을 주기만 하고 받을 생각 안 하는 게 나을지도. 고모가 사랑을 받으려 했다는 건 아니다. 고모가 불안정했던 건 조울증 때문이구나. 고모도 그것 때문에 괴로웠을 것 같다. ‘나’는 우울증이 덜하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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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
기도 소타 지음, 부윤아 옮김 / 해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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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학교라는 건 서양에서 건너 온 거겠지.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 근대로 들어섰다. 많은 게 일본을 거쳐서 왔구나. 그건 그리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오래전 그대로인 게 많다. 학교 교육도 그렇다. 무언가를 배우는 건 마음을 닦고 단련하는 것이기도 할 텐데, 학교에서 배우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시험을 잘 보려는 것뿐이다. 공부는 시험을 잘 보려고 하는 건 아닐 텐데. 학교 교육이 바뀌어야 할 텐데, 바뀔 날 올까. 공부가 중요하지만, 도덕 윤리도 중요한데. 공부는 학교 다닐 때만 하는 게 아니다. 나도 열심히 하지 않고,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가정이나 학교를 작은 사회다 하는데, 가정보다 학교가 좀 크겠다. 집에서는 식구만 보지만, 학교에서는 친구 선배 선생님을 만나니. 《그리고 유리코는 혼자가 되었다》를 보니 학교도 폐쇄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만의 법, 규칙으로 돌아가는. 학교를 다니는 기간이 길지 않고, 아주 안 다니는 것보다는 좀 나을지. 초중고 다 합치면 학교 다니는 기간 길구나.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힘들겠다. 입시, 성적만 생각하지 않기는 한다.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겠지. 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지만. 학교 생활을 하다 뭔가 하나 잘못하면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왜 많은 사람이 몇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건지.


 여기에 나오는 학교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유리코 님 전설’이다. 본래는 여자고등학교였는데 스무해 전부터 남녀공학이 되었다. 남자아이도 다니는 학교지만 여자아이가 더 힘을 가졌다. 그건 유리코 님 전설 때문인 듯하다. 대대로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은 ‘유리코 님’이라는 절대 권력을 갖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불행이 찾아온단다. 유리코 님은 단 한사람이 된다. 야사카 유리코는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1학년이다. 1학년에는 유리코라는 이름인 아이가 여럿이고, 3학년에 유리코 님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유리코가 여럿이니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런 말 들으면 좀 무섭겠다. 유리코라는 이름이면.


 야사카 유리코는 친구 시마쿠라 미즈키를 따라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들어온 건데.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1학년인 유리코라는 한 아이가 죽임 당하고 그 뒤에도 차례차례 죽임 당한다. 그런 거 보면 진짜 유리코 님이 있고, 유리코 님 힘이 나타났다고 여길까. 학생은 그런 것에 영향 받을지도 모르겠다. 유리코 님은 신인가. 신처럼 여기기는 하는구나. 유리코 친구인 미즈키는 유리코 님을 믿지 않았다. 미즈키는 탐정 같은 아이였다. 축제 날 미즈키는 1학년 유리코 셋을 죽인 범인을 밝혀낸다. 난 범인은 몰랐지만 초대 유리코가 쓴 일기를 보고 알아챈 건 있었다. 그런 게 뭐 중요할까 싶지만.


 어떤 이야기가 있으면 믿고 싶을까. 유리코 님 말이다. 유리코 님을 믿지 않고 거스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니. 그 전설이 있어서 좋은 사람은 누굴까. 유리코 님이 되는 아이, 유리코 님을 믿는 아이. 유리코 님이 되면 힘이 생긴 것 같겠다.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지만, ‘유리코 님’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 남은 야사카 유리코가 그 유리코 님이 된다. 이 이야기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것도 유리코 님을 믿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구나. 그렇게 한다고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야사카 유리코는 그저 순진한 아이일까. 야사카 유리코 생각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야사카 유리코가 유리코 님이 되었으니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지는 않겠지. 그것만은 다행이다 여겨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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