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 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평화 발자국 19
김금숙 지음 / 보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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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소설 《한 명》을 보고 거의 한해가 지났습니다. 한해가 조금 지나고 또 이런 이야기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풀》은 만화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예요. ‘위안부’라고 써야 한다는 건 이걸 보고 알았습니다. 한반도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어느새 일흔해도 훨씬 넘었습니다. 일흔해가 됐을 때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했을 텐데, 일흔해에서 몇해가 더 흘렀네요. 시간은 사람과 상관없이 잘도 갑니다. 시간이 가기에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것도 있군요. 그런 것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이 있네요. 이 일본군 ‘위안부’ 가 알려진 것도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지요. 그때는 일본이 아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아는데 그 뒤 인정했는지 그건 잘 모르는군요. 인정했다면 일본이 사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직 사과하지 않은 걸 보면, 그 일을 깨끗하게 인정한 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살아 있을 때 일본이 사과하면 좋을 텐데요.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는 못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잘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 사람은 친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못사는 서민은 아이를 제대로 기르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힘든 건 아들보다 딸이었습니다. 가난해도 아들은 학교에 보내고 딸은 집에서 일을 시키고 동생을 돌보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옥선 님도 그랬어요. 오빠는 학교에 다녔지만 이옥선 님은 집에서 동생을 돌봤습니다. 학교에 간다고 즐거운 일은 없겠지만 가지 못하면 더 가고 싶기도 하지요. 이옥선 님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이옥선 님한테 우동집에 수양딸로 가면 굶지 않고 학교에도 다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옥선 님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우동집에 수양딸로 가기로 해요. 하지만 이옥선 님이 간 우동집에서는 양딸이 아닌 식모를 찾은 거였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알았다면 이옥선 님을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때는 아이를 돈을 받고 남의 집에 보내기도 했다고 하지만.

 

 우동집에서 일하다 이옥선 님은 술집으로 팔려가요. 거기에서도 허드렛일을 합니다. 이옥선 님은 심부름을 갔다가 남자 두 사람한테 끌려갔습니다. 이옥선 님을 끌고 간 건 조선 사람이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는 억지로 끌려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 벌 수 있다고 속은 사람도 많고 아버지 빚 때문에 끌려가기도 했어요. 다들 어린 여자아이였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옥선 님이 처음 끌려간 곳은 연길 동비행장으로 거기에서는 힘든 일을 했어요. 일만 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 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먹을 것도 얼마 주지 않고. 일본 이름으로 바꾼 건 왤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들었습니다. 군인이 모르게 하려는 건 아닐까 싶네요. 군인은 여자아이들이 조선 사람으로 억지로 끌려왔다는 걸 몰랐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정말 몰랐을까요. 처음에는 몰랐다 해도 시간이 흐르고는 알았겠지요.

 

 한반도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여자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겠지요. 돌아간 사람은 그리 잘 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옥선 님은 연길 동비행장에서 알았던 사람을 찾아가고 결혼했는데, 그 사람은 인민군이 되어 북한으로 떠났습니다. 이옥선 님은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시집 식구 뒷바라지를 했는데, 열해 뒤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걸 알았어요. 두번째 남편은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술과 도박에 빠진 사람이었어요. 이옥선 님은 그걸 알고 떠나려 했지만 자신을 따르는 남편 아이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집을 떠난 지 쉰다섯해 만에 이옥선 님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동생을 만났지만 반가운 건 잠시뿐이었어요. 동생은 이옥선 님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걸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이옥선 님은 피해자인데 손가락질 당하다니 말입니다. 그런 일은 여전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 역사에는 숨기고 싶은 것도 있겠지요. 그런 것도 잘 알리고 잊지 않아야 합니다.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이 잘못한 일도 제대로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어요. 이 만화 많은 사람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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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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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여자는 학교에 다니기 힘들었다. 남자도 다 학교에 다닌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사는 사람은 농사 지어야 해서 공부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도 여자보다는 쉽게 공부할 수 있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일지라도 아들을 학교에 보냈더니 공부를 잘하자 희망을 가졌을 거다. 딸은 집에서 일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부모가 결혼할 사람을 찾아줬겠지. 한국은 언제부터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건 언제 처음 생각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공부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쉽게 시키지 못한 건 아닐까 싶다. 양반이거나 돈이 많아야 여자도 공부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결혼하면 집안 일을 해야 했겠다. 왜 여자는 그랬는지. 어쩐지 슬프구나. 조선시대에 양반이면서 자기 딸을 결혼시키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다니. 결혼하게 해서 더 힘들었던 사람도 많았을 거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사니 그걸 따를 수밖에 없었겠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남녀차별이 있지만,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여자도 자신이 하기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나라 하면 미국이 생각나지만 미국도 옛날에는 여자가 공부하기 어려웠다. 조앤은 1911년에 열네살로 아버지가 학교에 그만 다니라고 했다. 조앤 엄마는 조앤이 열살에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조앤이 공부를 하고 학교 선생이 되기를 바랐다. 지금도 엄마가 있었다면 조앤은 공부를 더할 수 있었겠다. 조앤은 아버지가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조앤이 집안 일을 하지 않자 아버지는 조앤 책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세 오빠도 조앤을 도와주지 않았다. 조앤은 집을 떠나기로 한다. 열네살에 집을 떠나 자기 삶을 살려 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여전히 그러지 못하는데. 혼자 사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힘들어서. 열네살 조앤보다 나이 많은 내 마음이 더 단단하지 못하다. 이런 말 창피하구나.

 

 집을 나가 조앤이 기차를 타고 간 곳은 볼티모어다. 조앤이 살던 곳과 볼티모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조앤은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한테 안 좋은 일을 당할 뻔하고 공원에 있었다. 그곳에 솔로몬 로젠바흐가 나타나서 조앤한테 자기 집에 재워주고 집에서 일할 수 있는지 자기 어머니한테 묻겠다고 한다. 조앤은 다행하게도 좋은 사람을 만났다. 로젠바흐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온 유대인 집안이지만. 조앤은 자기 나이를 열여덟이라 하고 이름을 재닛 러브레이스라고 한다. 로젠바흐 부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은 듯하다. 로젠바흐 부인은 조앤이 열여덟살보다 어리다고 여겼다. 조앤은 로젠바흐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싶다 생각하고 일하게 된다. 조앤이 로젠바흐 집에서 오랫동안 일한 말카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됐다. 말카는 나이가 많고 좀 까다로웠다. 조앤은 본래 집안 일을 해서 로젠바흐 집에서도 일을 잘했다. 로젠바흐 씨는 조앤한테 일이 끝난 밤에 서재에서 책을 읽어도 된다고 한다. 좋은 집주인이다. 조앤이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책을 읽게 하다니. 조앤은 로젠바흐 집안 사람과 잘 지내고 막내 미미와는 친구가 되었다. 미미가 조앤을 가정부보다 친구로 생각해서겠다.

 

 일은 그럭저럭 해도 조앤이 열네살이어서 열네살다운 모습도 보인다. 예쁜 옷이나 향수 양산 그런 것도 좋아해서 거기에 돈을 썼다. 종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떤 종교 하나가 좋은 건 아닌데, 조앤도 나중에 그걸 알게 된다. 조앤은 학교 선생보다 작가가 되는 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조앤이 쓴 일기기도 하다. 미미는 책읽기를 싫어하는데 조앤이 쓴 일기는 재미있게 보았다. 일기를 이야기처럼 쓰려면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일이 없다. 조앤한테 조금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고 잘 해결된다. 조앤이 만난 로젠바흐 집안 사람이 좋아서겠구나. 옛날이어서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다 지금 세상에도 좋은 사람은 많다. 말카도 조앤 사정을 알고 조앤을 격려한다. 조앤은 바라던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 책을 보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자기 삶을 이끌어 가야 좋은 일도 일어나겠지. 그러려면 바라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게 있어야겠다. 꿈을 가져야 그것을 이루려 애쓰겠다. 큰 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희선

 

 

 

 

☆―

 

 “삶이 네게 좋은 걸 주려고 하면 냉큼 받아. 알아듣겠니? 좋은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우도록 하고. 교육받은 여성, 배운 여성이 되는 거지. 넌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5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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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범람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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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다 하고 보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한번 볼까 하고 보는 책이 있다. 보고 싶다 생각하고 보는 책도 보다보면 생각한 것과 다르기도 한데 그냥 한번 볼까 하는 책은 그럴 때가 더 많다(뜻밖에 재미있는 걸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가끔이다). 그래선지 요새는 한번 볼까 하다가 그만둘 때가 많다. 어떤 책이든 즐겁게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쉽지 않다. 이 책은 어렵다기보다 까다로운 느낌이 들었다. 집중도 잘 안 되고. 연작소설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고 아주 아닌 것도 아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가 나오는 게 두편이니 말이다. 첫번째와 마지막이다. 하무라 아키라는 여자다.

 

 처음에는 하무라가 일하는 탐정사무소가 있었지만 마지막에서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로 하무라가 일하던 탐정사무소가 없어졌다.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는 더 있을까. 여기 나오는 소설에 나오는 어둠은 가까운 사람한테 갖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건 처음에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드러난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이 동생 것이 더 낫다는 걸 안 오빠는 어떻게든 그것을 자기 걸로 만들려 한다. 형제라 해도 그럴 수 있겠지. 어떤 사람은 부모가 남긴 재산 때문에 사이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저 물려받는 것인데도 누구는 괜찮고 자신은 별로라 생각하다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밀이 생각난다. 그럴 수도 있다 여겨야 할지도. 돈은 사람 마음을 흐리는 것이다. 그것에 지지 않아야 할 텐데.

 

 소설 다섯편에서 조금 달라 보이는 건 네번째 이야기 <광취>다. 그렇기는 한데 마지막에 드러나는 일을 보면 아주 다르지 않기도 하다. 그걸 반전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기 실린 소설에서는 뒤에서 다른 게 드러난다. <광취>는 조금 충격을 주었다.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 일어난 사고를 알고는 그렇단 말이지 하고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도 있고, 나이 많은 사람 재산을 가로채려는 사람이 들키자 자신은 들키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건 반전과도 같았다. 그걸 먼저 말하다니. 다른 건 말하지 않았으니 자세한 건 알기 어렵겠지. 마지막 이야기에도 어떤 일이 드러나는데 그건 소설로 썼다. 마지막 이야기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 떠오르게도 했지만 조금 달랐다.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든 남한테 말하고 싶어할까. 어설프게 쓴 소설에라도 그것을 쓰다니. 그것을 한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은 그 일을 모를 테니 그냥 묻히겠다. 하무라와 그 이야기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책 이야기를 애매하게 했다. 나이 들고 병든 부모 때문에 힘든 사람도 나온다. 부모 자식 사이라 해도 오랫동안 간병을 하면 안 좋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한테 도움을 바라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 오래 살게 된 게 아주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한테 신세지지 않고 살다 죽는 게 가장 좋은 일인데. 여기 나온 일 실제로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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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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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두껍지 않지만 여기에는 단편소설이 여덟편이나 실렸습니다. 잘 쓰지 못해도 뭔가 할 말이 떠오를까 해서 한국단편소설은 두번 읽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서예요. 한번 보는 데도 거의 나흘이 걸렸습니다. 책을 만난 기간은 그럴지라도 책을 읽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예요. 책을 보기 전에는 하루에 한번 다 보고 두번째도 조금 볼 수 있겠다 했는데 마음과 다르게 첫날 끝까지 못 보고 둘째날에는 조금 보고 셋째날에는 하나도 못 보고 넷째날에야 끝까지 봤습니다. 책을 만난 기간을 나흘이라 한 건 잘못된 거군요. 정확하게는 사흘이네요. 어쨌든 이 책을 한번 잡고 여러 번 쉬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황정은 소설은 이번이 세권째예요. 지금까지 나온 책이 세권은 넘을 텐데 조금 만났네요. 두권은 그럭저럭 봤는데 단편은 어렵군요.

 

 제목 ‘아무도 아닌’은 네번째 소설 <명실> 앞에 붙었던 거더군요. ‘명실’은 처음에 ‘아무도 아닌 명실’이었어요. 이걸 알았다고 해서 <명실>을 아는 건 아니네요. 책을 많이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한 실리 이야기를 하더군요. 실리는 사람이 맞을까요. 실리는 소설을 다 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실리가 썼떤 소설은 끝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마리코를 죽 기다리겠다고 명실이 말했어요. 기다리는 일은 좋지만 쓸쓸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있을 테니까요.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 자체가 기다림으로 가득하지만. ‘아무도 아닌’ 이 말을 생각하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고 옆에서 누구야 하면 ‘아무도 아니야’ 하고 말하는 게 떠올랐습니다. 여기에서 그런 뜻으로 쓴 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상대는 그 사람과 친하다고 여길지도 모를 텐데, 자신을 ‘아무도 아니야’ 했다는 걸 알면 마음이 좋지 않겠습니다. 어쩐지 제가 그런 사람 같기도 합니다. 아무도 아닌, 아무 사이도 아닌. 이 말로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다니.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도 쓰기로 했습니다.

 

 여기 실린 소설을 보니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니 이 말은 나중에 생각한 거군요. 익숙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낯설게 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上行>에는 시골에 사람이 얼마 없는 일과 도시에서 비정규직으로 사는 사람 이야기가 담겼어요. 지금 현실을 잘 담아냈지요. 마지막 소설 <복경>도 요즘 많이 나오는 갑, 을 이야기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말 잘 몰랐어요. 제가 아는 말은 많이 가진 사람이 못가진 사람을 낮잡아 보는 일인데(자신보다 밑에 사람을 부려먹는 것도 있네요). 시대에 따라 널리 퍼지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텔레비전을 안 봐서 그런가. 컴퓨터 인터넷은 써도 잘 모르는군요. 몰라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알려면 좀더 좋은 걸 아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그런 것만 아는 건 아니지만.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 처지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가진 사람은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요.

 

 두번째 소설 <양의 미래>는 무슨 뜻인가 싶네요. 양이 뭔지. 진주라는 아이가 사라져도 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 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잘 못 봐서 아쉽습니다. <상류엔 맹금류>에서는 예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걸 조금 아쉽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나’가 바라는 건 따듯한 식구 사이였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거기에서 멀어졌어요.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보다 식구에 들어가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건지도. <누가>에서도 층간소음 문제를 낯설게 쓴 듯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해야 했는데 잊어버렸네요.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지금 더 심해진 걸까요. 여기에 나온 여자는 저 같기도 했어요. 바깥에서 들리는 소음에 괴로워 하는 모습이. 그 뒤에 조용한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층간소음이 들려요. 마지막에는 밑에 층 사람이 여자 집에 쫓아왔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지만 먼 사람이기도 하네요. 위층 아래층 사람은. 예전에는 멀리 사는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제 이 말도 옛말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두 소설 <누구도 가 본 적 없는>과 <웃는 남자>에서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는군요. 그 이야기만 죽 나오는 건 아니지만. <누구도 가 본 적 없는>에서는 아이가 <웃는 남자>에서는 도도와 함께 살던 디디가 죽었어요. 아이를 잃은 슬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평생 가겠지요. 도도는 차 사고가 났을 때 디디가 아닌 가방을 잡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도도를 구할 수 있는 건 디디일지. 아니 도도 자신이겠네요. 자신을 용서해야 도도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다. <누구도 가 본 적 없는>도 끝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소설이라고 다 좋게 끝나지는 않아요. 우리 삶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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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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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알고 싶다 생각한 사람도 있고 모르면 어때 하는 사람도 있다. 알고 싶다 생각한 건 나와 먼 사람이고 알고 싶지 않다 여긴 사람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알고 싶지 않은 게 아니고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싶다. 요새 기분이 별로여서 이런 걸 쓰는 걸까.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걸 썼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고 걱정을 사서 하지만, 어떤 일은 일어날 걸 알고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그건 나만 그래서고 그걸 생각하면 무척 우울하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때문에, 지금은 또 다른 누군가 때문에 떨어야 한다니. 슬프기 그지없다. 가끔 내가 지나친 건가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일어난 일을 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으면 내가 할까 한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지. 자세한 건 쓰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걸 왜 썼을까 할지도 모르겠다. 벌써 여러 번 그랬지만. 책 읽고 이런 걸 쓰다니. 이 책도 조금 힘들게 보았다.

 

 이승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처음으로 이승우 소설을 만났다. 소설이 아닌 다른 글은 악스트에서 먼저 만났다. 이승우 글이 어떻다 뚜렷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나 말한다면 바로 알아듣기 어렵다는 거다. 이건 이승우 소설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한국 단편소설은 거의 그런 면이 좀 있다. 그렇다고 아주 모를 이야기는 아닐지도. 알려고 조금 애쓰면 자기 안의 생각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 그게 작가가 말하려는 것과 다르다 해도. 어쩐지 여기에는 아버지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하나 더 생각나는 건 외국인 노동자, 그것도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에 온 사람 이야기다. <넘어가지 않습니다>에는 M국 국적이라 쓰여 있지만, <찰스>에서 찰스가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 해서 M국도 말레이시아가 아닐까 했다. <넘어가지 않습니다>는 어쩐지 실제 일어날 법한 일로 보인다. 그것뿐 아니라 여기 담긴 소설은 거의 다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을 섞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더 잘 지낼까. 아니 아들이 더 아버지를 생각할지도. 그건 어렸을 때가 아니고 자란 다음이다. <모르는 사람>에 나오는 아버지는 쉰살이 된 어느 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열세해가 흐른 다음에야 아들은 아버지가 선교사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한 일을 알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살아보려 했지만 쉰살이 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아들 처지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지도. <복숭아 향기>에서는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아들한테 조금 했다. 하지만 그건 다 맞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고 결혼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떤지 알고 받아들였다. 그 마음은 무엇일까.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들은 세상에 오지 않았겠지. 어머니가 아버지 정신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아들을 만나서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이야기 <윔블던, 김태호>는 아버지 이야기와 조금 다르지만. 아버지 이회장이 오래전에 저지른 일을 말한다. 아들은 그걸 믿지 않았다. 이회장이 1970년대 독재자 심복 김태호를 영국 윔블던에서 만나고 김태호 돈을 가져온 일은 정말일까. 그 돈으로 이회장은 사업을 하고 아주 잘됐다. 이회장은 자기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려는 사람한테 김태호를 찾아달라고 말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 옛날에 저지른 잘못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회장이 한 말은 그런 걸까. <강의>에서 아버지는 어느 날 집에 와서 이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 아들은 아버지한테 빚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빚이라니. 어떤 사람은 빚은 빚으로 갚아야 한다 말한다. 그 사람은 혹시 감옥에 있는 걸까. 아들은 대체 어디에서 1304가 하는 말을 듣는 건지. 수렁에 빠진 아버지 이야기 같다. 지금은 아버지만 수렁에 빠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빚을 지는 사람은 자꾸 빚을 진다. 처음부터 없으면 없는대로 살고 쉽게 돈을 벌려 하지 않는 게 좋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돈은 쉽게 들어오면 쉽게 나간다. <강의>에 나온 아버지가 큰 걸 바란 건 아닌 것 같지만, 잘못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늪에 빠진 듯.

 

 친한 친구 사이라면 자신이 아는 걸 제대로 말하면 좋을 텐데 <신의 말을 듣다>에서 김승종은 고등학생 때 자신이 살던 자취방 난방이 안 된다는 말을 수철한테 제대로 하지 않고 그 방을 넘겼다. 자신은 떠나야 하고 수철은 그 방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는 말로 자기 자신을 속였다. 이건 예전 일이고 김승종과 상관있는 M시에 짓던 높은 건물이 무너졌다. 그 건물이 무너진 것과 승종이 수철한테 자취방 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이어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속이는 것 말이다. 승종은 마지막에 수철한테 옛날 일을 말하고 미안한 마음도 나타냈다. 승종은 M시 시장이 퇴진하길 바라는 단식농성에 참여했다. 건물이 무너진 일은 시장이 저지른 비리 때문이었나 보다. <안정한 하루>는 피해자 식군데도 힘있는 사람한테 짓밟힌 사람 이야기로 보인다.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잘못한 일도 힘으로 해결한다. 장필수 동생 장철수가 예전에 본 사진은 진짜였을까 가짜였을까. 제목은 ‘안정한 하루’지만 일부러 그렇게 지내려 한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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