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개저녀기는 성균관에 간다 똑똑! 역사 동화
최영희 지음, 유설화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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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세종 때에는 150명이던 유생 수를 200명까지 늘리기도 했다고 한다.200명의 유생이 있다면 밥도 200인분이 있어야 하는데 100인분만 하고 출석 점수를 받아야 했다니 밥 먹는 것보다 출석 점수를 따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을 듯 하다. 성균관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전국 팔도에서 소과에 합격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고 유생들은 몇 년 동안 유교 경전과 나랏법 역사를 공부 했다고 한다.그리곤 대과에 합격 하면 벼슬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하니 벼슬길에 뜻을 둔 이들은 열심히 공부했을 듯 하다.

 

개저녀기는 덕쇠가 길에서 발견하고는 부모를 찾았지만 엄마를 잃은 후 어린 몸으로 홀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는 것을 알고는 데려다 키우게 되었다.하지만 성균관 주변 반촌에는 아무나 들어 와 살 수 없는 곳이었기에 덕쇠는 개저녀기를 열 살이 될 때까지만 키우겠다고 하고는 데리고 살게 된다.개저녀기는 성균관을 다나들며 잔심부름을 해주고 있는데 그를 괴롭히는 흔돌이란 녀석이 있다. 흔돌은 개저녀기가 열살이 되었으니 반촌에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덜커덕 성균관 직동이 된 것이다. 개저녁기가 맡게 된 유생은 성균관에서 천대라고 소문이 '성상문', 그는 탄생 비화부터 하여 남달랐는데 개저녀기가 보기엔 헛똑똑이에 바보와 같다.자신의 직동도 알아보지 못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과 출석점수를 딸 방법을 알려 주어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배를 곯아도 늘 공부만 한다.

 

그런 성상문이 개저녀기를 두둔해 주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흔돌과 흔돌이 모시는 정말 부딪히고 싶지 않은 담뱃대 유생과의 일에서 개저녀기 편을 들어 주었던 것이다.자신의 얼굴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소문대로 성상문 유생은 천재였나보다. 그렇게 마음을 열게 된 개저녀기의 성균관 생활은 재미를 더해 가고 있던 중에 누군가 성삼문 유생을 곯려 먹는 일이 발생하여 개저녀기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나무에 묶이게 되고 개저녀기의 진심을 알게 되고 전범을 알고 있던 성삼문의 개저녀기의 이름풀이에 개저녀기는 마음에 아니 인생에 별 하나 새겨 넣게 되면서 성균관에서 쫒겨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개저녁기의 진심이 통해서일까 진범이 잡혀서일까 흔돌은 개저녀기를 다시 성균관으로 데리러 오고 '착착 착착' 달려간 성균관에는 그가 모시는 성삼문도 있고 그를 괴롭혔지만 이젠 그의 편이 되준 흔돌뿐 아니라 다른 직동들도 있고 수복도 있다.개저녀기의 출생으로 보면 성균관에서 가까운 반촌에서는 살 수 없었지만 부지런함으로 성균관 생활을 할 수 있음은 그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하는 듯 하다. 반촌 사람들은 그러니까 성균관을 위해 일하고 농사 짓고 그들의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거나 그들을 도와 주며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성균관에는 공부하는 유생 뿐만이 아니라 유생들을 가르치는 이 뿐만이 아니라 직동과 수복들 그리고 식당도 있었다.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재를 키워 내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함께 하던 성균관,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개저녀기와 성삼문 그리고 흔돌과 그외 직동과 수복의 이야기로 얽혀 그 시대의 생활이나 역사를 살짝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더 재밌고 깊이 있게 읽기 위한 뒷부분에 '생각깨우기'를 읽다보면 성균관이 어떤 곳인지 반촌이 무엇인지 성삼문이 누구인지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하여 간략하게 정리해 놓아서 좀더 관심 있게 읽을 수 있다. 성삼문,개저녀기가 헛똑똑이로 알았던 그는 충남 홍성 출신 인물로 성삼문이 태어나던 날에 "태어났는냐? " 하고 묻는 소리가 세 번이나 울려 퍼져서 이름을 삼문이라 지었다고 한다.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면 하늘에서 알고 이렇게 물어 보았을까.개저녀기가 보기엔 밥은 먹지도 않고 책만 파는 성삼문 유생이 바보인 줄 알았는데 사건을 유추해 나가며 진범까지 잡아내는 추리력을 보면 그가 앞으로 어떤 인물이 될지를 미리 이야기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는 개저녀기와 성균관 생활의 일부만 나온 것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 계속되는 이야기로 이어져도 재밌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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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만난 고구려 왕자 푸른숲 역사 동화 10
백승남 지음, 홍정선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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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의 봄> 이후 받아 보는 푸른숲역사동화 <부처를 만난 고구려 왕자>는 고국양왕의 어린시절 이야기,불교가 전래되고 토템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에서 불교를 어떻게 정착시켜 나가는지 토템과 불교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고 우리의 역사이면서 우리가 잊거나 잃어버린 역사와 인물들을 어린친구들을 통해 그시대를 함께 호흡하게 만드는 재밌는 역사동화이다. 고국양왕,소수림왕의 동생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구려의 대표적 왕인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이다.광개토대왕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데 마로라는 토템 신앙을 믿고 고구려의 사무인 할아버지를 따라 자신 또한 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를 통해 이련과 마로의 어린시절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련은 어머니를 잃고 깊은 시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밤마다 그를 괴롭히는 꿈도 그렇고... 그런 이련에게 태왕은 사라져버린 고구려 사무를 찾아 오라는 비밀 임무를 내린다.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 사무라니... 지독한 가뭄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나라가 어수선해 진 것을 바로 잡아 보려고 태왕은 사무(무당)를 찾아 오라는 것이다. 불교를 믿는 나라이니 내놓고 찾기 보다는 어린 동생에게 비밀임무를 내린 것이다. 궁에서만 생활하던 이련이 아달구라는 어린 호위친구를 데리고 간다고 하지만 태왕도 찾지 못한 사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찾는다 해도 정말 사무가 극심한 가뭄을 해결할 수 있기나 할까.

 

궁을 벗어나자마자 그들의 시련은 시작되고 굶주린 백성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풀뿌리 나무껍질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백성들인데 자신은 불교를 믿는답시고 고기를 먹지도 않았고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사냥도 하지 않았다.그런 이련과 아달구에게 사무를 찾으러 가는 길은 험난한 고행길과 같았다. 그리고 자신들을 구해 준 비범한 소년을 만나게 되고 그 소년을 따라 가게 된 '무령골'에 가면 정말 사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달구의 부상으로 인해 마로와 함께 아니 마로의 뒤를 미행하며 무령골에 들어서게 되는 이련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궁과는 너무도 다른 곳이기도 하면서 이곳은 자신이 살던 곳인 불교세상이 아닌 토템 신앙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토템신앙을 가지고 서로 격없이 지내며 서로를 도와주고 나누어 주며 가족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마로의 할아버지가 고구려의 사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 "왕은 위로 하늘, 아래로 땅, 가운데 있는 백성을 하나로 꿰뚫어 헤아려야 한다고 배웠어.그걸 말하는 거 같아."...... 백성은 하늘과 땅과 이어져 있고 그걸 아는 자가 왕이다. 위에서 내려 보는 게 아니라 백성과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보는, 고통받는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진정한 왕이다.'

 

마로의 할아버지인 사무는 왜 고구려 사무를 버리고 이곳에 왔을까. 태왕 또한 불교를 믿으며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위해 가뭄을 걱정했다면 마로의 할아버지는 토템 신앙에 근거하여 기우제를 지내고 백성들이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사무를 시기하는 세력이 존재하여 호시탐탐 할아버지의 생명을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불교를 누구보다 몸으로 느끼고 받아 들이고 온 사람이었던 것.그렇다면 사무는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었을까.3년 동안 지속된 극심한 가뭄에서 벗어나 백성들의 삶이 안정을 되찾고 불교도 정착될 수 있었을까.불교와 토템으로 볼 수 있는 이련과 마로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토템을 완전히 배쳑하기 보다는 끌어 안고 함께 숨 쉴 수 있게 하는 태왕이나 이련의 포용력이 더 굳건한 고구려를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무시하고 나라가 바로 설까요? 억지로 퍼뜨린다고 불도가 뿌리내릴까요? 믿음은 비가 땅을 적시듯 자연스럽게 번져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린 친구들인 이련,아달구,마로,해달비 등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 속을 달리다 보면 고구려 벽화 속에 뛰어 든것처럼 생동감이 있고 사실적이며 재밌다. 고국양왕이야 역사 인물이지만 저자가 그려 낸 다른 인물들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시대를 잘 보여주고 읽으며 역사공부도 할 수 있다.주변국가들과의 마찰및 불교와 토템신앙과의 마찰이 있지만 강한 고구려의 기상을 보여주듯 광활한 벌판을 용맹하게 달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도 완수하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지고 한 뼘 더 상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련에게서 고구려의 역사 또한 함께 보여져 미소 짓게 한다.이련과 마로의 이야기만큼이나 그림도 생동감 있어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높여 준 듯 하다.이련과 마로처럼 우리가 모르고 있는 역사 인물들과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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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주목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3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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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스페셜 컬렉션 중에 <봄에 나는 없었다>와 <딸은 딸이다>를 읽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자신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심리소설들은 추리소설만큼이나 그녀의 대단한 필력을 엿볼 수 있어 한 권을 잡으면 다음권으로 이어 내달리게 한다.

 

이 작품의 표지 또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이다.남자의 상체와 함께 손에 들려 쥔 붉은 장미 한 송이,건장한 남자의 상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의미는.남자의 건장함과 여자의 매력의 생은 너무 짧았다고 볼 수 있다.작품에서 말이다. 휴 노리스,우연하게 만났던 여인에게 빠져 그녀와의 봄날을 만들기 위해 만나러 가던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하반신 장애를 입게 되어 휠체어에서의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건강한 몸이었을 때에는 운동이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즐겼다면 이젠 휠체어에 앉아서 타인의 시중을 받아가며 남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한번씩 다가와서 푸념처럼 하는 이야기나 그외 행동으로 상대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으며 인생이란 길고 짧은 것에 의미가 있을까.

 

교통사고 이후에 화가인 형과 형수와 함께 살게 된 노리스,그곳에서 그는 이사벨라라는 아가씨를 알게 되고 선거에 나선 존 게이브리얼을 만나게 된다. 노리스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이사벨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이사벨라의 마음을 받아 들일 수도 있었을텐데 그저 그녀가 이야기 상대로만 만족할 수 있는 노리스는 이사벨라에게 가는 마음을 자신안에 가두게 되는데 게이브리얼은 이사벨라라는 그녀가 가진 귀족이며 모든 것에 대하여 혐오를 하듯 둘은 노리스가 보기엔 무척이나 관계가 좋지 못한 듯 한데 그들은 모두의 생각을 뒤엎고 둘만의 탈출을 시도하여 모두에게서 사라져 버린다.안정적이며 지역에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성의 주인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이사벨라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노리스 또한 무척이나 놀라지만 그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가 그의 몸이 목발을 짚고 절뚝절뚝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의술의 영향을 받게 된 어느 날 우연하게 게이브리얼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그녀 이사벨라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그들은 결혼을 하여 평범한 가정을 이룬 것도 아니고 그가 생각했던 그런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그런 중에 이사벨라는 게이브리얼을 구하고 자신이 총에 맞아 죽게 된다.너무도 짧게만 느껴지는 그녀의 삶,과연 기회주의자에 바람둥이에 평판도 좋지 않은 게이브리얼을 택한 이사벨라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게이브리얼의 죽음과 대면하며 만나는 지난 날의 삼각관계,죽어가는 게이브리얼은 '수척한 그의 얼굴은 성자의 얼굴이었으니까.그 얼굴에는 번민과 고뇌의 흔적이 있었다...... 고행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혼의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노리스가 기억하고 있는 젊은 날의 게이브리얼은 바람둥이에 선거에 당선되기 위하여 그에게 이득이 될만한 일에는 모두 끼어 들어 이슈를 만드는 남자였고 출세를 위해서는 모든지 할 남자로 보였다.그런 그가 무척이나 싫어하던 귀족녀 이사벨라와의 바닥과 같은 삶은 도통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그를 위해 이사벨라가 죽음을 맞이했다니그리고 게이브리얼 또한 죽음 앞에 있다.그는 지난 날을 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노리스 앞에서 그녀와의 삶과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는 말처럼 그는 삶의 승리자일까.동화같은 삶을 꿈 꾸었던 이사벨라라 어떻게 게이브리얼과 누추한 다락방에서 누더기 같은 삶을 살다 갔는지.노리스에겐 그러니 자신의 이사벨라를 빼앗아 간 게이브리얼에게 화가 무척이나 나 있었을 듯 하다. 휠체어에서 목발을 짚는 삶으로 인생전환이 되었으니 이사벨라를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던 문제인데.

 

소설에서 노리스의 형수인 테리사는 다른 누구보다도 타인에 대한 평가를 적확하게 해낸다.그녀를 어떻게 보면 저자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해 냈는지 모른다.알 수 없는 건 여자의 마음이고 사랑이라고 했던가 이사벨라와의 꿈 같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노리스 자신은 자살의 충동을 이겨내고 그 긴 고통의 시간을 인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런 자신의 질곡의 젊은 날을 지나 왔기에 게이브리얼에 더 화살이 꽂히게 되지 않았을까.하지만 그 또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지나고보니 젊은 날의 사춘기와 같던 시간들이 다 무의미하게 퇴색해 버리고 말았다. 그 길고 짧음이 다 무엇이랴.게이브리얼과 이사벨라의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그리고 나 자신에 대하여는 또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끝은 시작을 의미하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알고 있다는 그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타인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인생,사랑 그 모든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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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물건들이 사는 나라 라임 어린이 문학 10
윤숙희 지음, 심윤정 그림 / 라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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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는 학용품이나 그외 모든 것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겨여만 하는 그런 시대였다. 몽당연필을 조금이라도 더 쓰려고 깍지에 끼워쓰기도 하고 다 쓴 종이도 다시 한번 더 사용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왔기에 자연스럽게 아끼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요즘 시대는 무엇이든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자신이 물건을 아끼기 보다는 유행이 지나서 혹은 관심이 없어져서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 혹 그렇다면 내가 버린 물건이 나를 물건처럼 사용한다면,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그곳에서 나라는 물건의 값어치는 어떻게 평가될까.

 

여기 수호라는 아이가 있다. 키가 크고 뿔테 안경을 쓰고 농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화가 나면 물건들에게 분풀이를 한다.책가방을 거꾸로 집어 던진다던가 농구공을 집어 던지곤 한다. 그러다 친구에게 농구를 져서 농구공 점프를 분리수거하며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수호와 함께 하는 컴퓨터 척척이, 농구공 점프,요일마다 무지개색으로 끈을 바꾸어 시는 운동화 멋쟁이, 수호를 좋아하는 강아지 예삐,수호의 책가방인 덜렁이, 그리고 여백의 미를 가진 일기장 백치미까지 수호와 함께 하는 일곱가지 물건들이 '와와랜드'라는 곳으로의 여행처럼 수호가 물건이 되고 물건들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인간세계에서 당했던 것을 고스란히 돌려주 듯 수호를 평가하고 판결을 내리며 수호를 변화시키는 이야기다.

 

"수호야, 물건들의 분노 지수가 극에 달했을 때 인간 세상과 와와랜드를 오가는 문이 열려. 아무래도 그때 네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 같아. 하지만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라려면 물건들이 널 변호해 줘야 해.널 아끼고 사랑했을 법한 물건 없니?"

 

"수호야, 우리 물건들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저 쓰임이 다할 때까지 즐겁게 지내고 싶을 뿐이란다."

 

자신의 물건을 물건이 가진 특성을 잘 활용을 하기 보다는 늘 분풀이 대상으로 여기 듯 발로 차거나 거꾸로 놓아 자신과 함께 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몰랐다면 와와랜드에서 자신이 물건이 되어 자신이 인간세상에서처럼 물건에게 행했던 행동을 그대로 보상받으며 좀더 성숙하고 의젓해지는 수호로 거듭나게 되면서 읽는 친구들에게도 교훈을 안겨주기도 하는가하면 '와와랜드'라는 환상적인 나라를 상상할 수 있게 하여 상상력을 키워 주기도 한다. 내가 만약 와와랜드에 가게 된다면 그렇다면 내가 버리거나 쟁여두고 쓰지 않는 물건들의 쓰레기더미에 깔려 헤어나오기나 할 수 있을까.예전에 한동안 '아나바다' 운동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쑥 들어간 듯 하다.수호가 자신의 물건이나 예삐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었다면 와와랜드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지 모르듯이 평소에 내가 사용하는 물건에 좀더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면서 새로운 것을 사달라고 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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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숲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권수연 옮김 / 포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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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릴러의 황제라고 불리는 저자의 책을 한권도 읽지 못하고 이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왜 이제야 만난 것인지.두꺼운 책은 오랜동안 책을 멀리 했던 내게 인내를 다시금 불러 일으키게 해주기도 했지만 소설은 정말 물 흐르듯 술술 막힘이 없이 읽을 수 있어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범인을 먼저 알려주고 그가 왜 범인이 되어야 하는지 밝혀 나가는 저자만의 방식을 이 소설에서도 따르고 있었지만 범인을 잡기 위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기 보다는 그가 왜 범인이 되어야만 했는지 그 근원이라고 할까 밑바닥까지 따라가며 인간 내면의 그 속을 좀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 주는 듯 하여 재밌게 읽었다.

 

늘 남자한테 체이기만 하는 수사판사 잔,그녀는 남편도 아이도 없는 노처녀이다.외양이야 번지르하게 메이커로 휘둘러 멋지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약물에 의존하고 남자에게 목말라 떠나간 남자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낸다.그런 그녀가 텐과 함께 식인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그녀를 버린 남자의 뒤를 캐기 위한 수단으로 그가 다니는 정신과병원의 도청을 하게 되면서 그 속에서 우연하게 살인사건과 밀접한,아니 범인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를테면 그들이 범인이라고 처음부터 단정을 지으며 알려준다. '아버지의 아들' 자폐가 있는 아들 속에 또다른 자아가 들어가 있고 그소년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이다.거기에 '예고살인'까지 알려주게 되고 정말 그들의 말처럼 예고살인은 실제 살인사건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디에 가서 어떻게 찾으면 될까?

 

하지만 살인사건은 너무도 잔인하면서도 희귀하기도 하고 식인을 하는가 하면 원시인의 흔적을 남기기도 하는둥 너무도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파리의 잘생긴 변호사, 그안에 또다른 자아로 숨쉬고 있는 자폐 소년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그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까.자신의 친구 텐이 살인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잔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그녀가 아닌 씩씩하고 당당하며 그 누구보다도 더 위험을 헤치고 나아가는 인물로 살인사건의 두 부자와 사라진 정신과 의사를 찾아 뒤를 좇는다.정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악의 숲'은 존재할까? 어떻게 하면 그 악의 숲에 도달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숲에 사는 게 아니야.숲이 내 속에 사는 거지." 라는 범인의 말처럼 잔의 추적을 따라가다 보면 고고학, 인류학, 심리학, 유전학, 정신이론등 중남미의 아픈 역사까지 있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아마존 정글과 같은 중남미에서 만난 '악의 숲'과 '원시인'이라 자칭하는 그들과 살인자,악의 숲과 살인자는 교묘하게도 우리가 만들어내고 키운 인물이다. 누군가는 악의 근원을 죽음이라는 단어로 덮으려고 했지만 그런다고 악의 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라나 그 힘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 잔처럼 나서서 근원을 파헤치는 이도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환경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는 그 폭력을 답습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가끔 접하기도 하는데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폭력을 답습하며 자란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살인자로 거듭나지만 그가 성장하는 동안 그에게 죄값을 치르게 하기 보다는 두둔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악의 숲'을 이루지 않았을까? 다중인격처럼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살인자들을 그 안에 품고 있으면서 악의 우두머리처럼 자신만의 숲에서 악의 근원을 다스리며 그가 살아야했던 것은 알게모르게 우리가 그가 악의 환경을 조성해 나간 것은 아닌지.우리의 내면에는 선과 악의 두 얼굴이 있지만 스스로 악을 성장시켜 나가는 이는 드물다.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이 이기기에 지탱할 수 있는 것이 삶이지만 내면에는 악의 숲 또한 존재한다고 본다.특별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던 요아킴의 정체를 알고 있던 이들이 그를 좀더 양지로 끌어 들이고 그의 잘못을 표면화시켜 죄값을 달게 치르게 해주었다면,그에게 당근만 안겨주려했지 채찍을 휘두르려 하지 않은 듯 하여 살인자로 키우지는 않았을까.덮어주고 눈감아 주며 죽음으로 그의 폭력성과 살인에 대한 죄값을 덮으려 했기에 요아킴이란 인물 속에는 악의 숲이 더 무성해지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은 흐린 날도 만지만 악을 키우기 보다는 선을 키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수사판사 잔은 식인 살인사건을 추척하며 씩씩하고 당당해져 예전의 그녀가 아닌 잔다르크처럼 되어 저자의 다음 이야기에서도 만나도 좋을 인물로 거듭났다.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동안 그녀는 남자에게 기대지도 않았고 약물에 의존하지도 않았다.그녀의 정체성을 찾아 그녀로 우뚝서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악과는 거리가 멀것처럼 여겨졌던 인물이 너무도 당당하게 악과 대처하며 악의 근원을 파헤쳐 나가기에 그녀와 함께 여전사처럼 정글을 누비며 살인자를 찾아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읽게 만든 듯 하다.이 소설을 계기로 그의 다른 소설을 좀더 읽어봐야겠다.아직은 그의 숲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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