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펜과 비밀 쪽지 라임 어린이 문학 2
엘렌 리스 지음, 이세진 옮김, 앙투안 데프레 그림 / 라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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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온 학생은 설레이게 마련인데 오는 첫날부터 짝꿍과 오해가 있어 서로 오해로 멀어지게 된다면? 그런 오해가 서서히 풀리면서 서로 간에 우정도 쌓게 되고 친구의 아픔을 속시원하게 해결은 해주지 못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처방을 해주며 우정을 돈돈하게 해나가는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가끔 두껍고 어려운 책보다 이런 책이 정말 깊고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아이들 책이라 얕볼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기도 하다.

 

한여름 무덥던 날 얼굴이 북극에서 온 것처럼 새하얀 아니 하얗다기 보다는 투명하여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인 여자친구가 전학을 왔다.그런데 이친구는 말을 하지도 못하지만 함께 짝꿍이 된 남자친구의 책상 위에 있는 '까만 펜'을 가리키며 남자친구의 까만 피부색을 지적하듯 한다. 자신의 피부가 까맣다고 하는 줄 알고 오해를 하게 된 친구, 그런데 그 친구는 원래 말을 못하는 것인지? 아님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지.에리파를 파트릭만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어려워한다.왜일까? 그녀가 말을 안해서일까?

 

그런데 파트릭이 집에 가서 책을 펼치다보니 '비밀 쪽지'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탱크도 있고 불을 뿜는 대포도 있고...이런 그림들이 왜 자신의 가방에 들어가게 됬고 누가 넣은 것일까? 짝꿍인 에리파가 넣은 것인줄 알게 되고 기다리게 되는데 에리파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녀가 말을 못하게 되었고 악몽에 시달리는 것일까? 에리파는 전쟁이 있던 체첸에서 오게 되었고 전쟁으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고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파트릭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고 그녀의 마니또가 되기로 한다.

 

처음엔 까만 펜을 가리키며 자신의 피부색을 가지고 무어라 하는줄 알았는데 에리파가 간직하고 있는 아픔을 알게 된 후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자신이 악몽을 꾸면 엄마는 그 악몽을 그려보라고 한 후 그 그림들을 태웠다.그렇게 하면 악몽에서 헤어날 수 있다고 믿는 파트릭은 에리파에게도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그만의 비법을 실행하기로 한다.하지만 그가 학교에서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고 급기야 교장선생님 앞에 에리파와 담임선생님까지 불려가게 된다.친구를 위한 행동이 모두를 난처하게 했던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잘못이 없음을 이야기 하는 파트릭,하지만 교장선생님은 그런 파트릭에게 벌을 주려고 하자 에리파는 잃었던 말을 하게 된다.친구를 돕기 위하여.그렇게 하여 그들은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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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체
이규진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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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영화 <역린>에서는 정조가 즉위하고 그를 암살하려던 하루 24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역린'은 '임금의 분노'인데 영화에서는 다른 누구를 믿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 노력했던 그를 만날 수 있다.스스로 몸도 단련하고 잘못된 일은 찾아 벌하는 일까지 그가 도맡아서 한다.누구를 시킬 수 없었던 시대,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하여 선왕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그런 왕의 분노를 역린에서 보았다면 이 작품은 '수원화성'과 '천주교박해'라고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원화성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하여 지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처럼 '파체'란 '슬픔을 기쁨으로 돌리어 생각함' 이란 뜻처럼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슬픔이었지만 수원화성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바뀌길 바란것은 아닐까.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강하거나, 약하거나, 잘 났거나, 못났거나, 그 어떤 이라 해도 이 성안에 다 살게 하라. 복되게 살게 하라."

 

그런데 소설은 슬프다고 해야하나.슬픔이 기쁨으로가 아닌 슬픔으로 끝난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한기만 했다. 작가 이규진은 습작만 하다가 이번에 <파체>로 처음 책을 냈다고 하는데 이런 역사소설 정말 좋아하는데 그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질 정도로 빠져들며 읽었다. 정조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정말 많이 있는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보다는 좀 특이하지 않았나싶다. 여자이면서 남자로 살아야 했던 '정빈'이나 왕의 자손이면서 자신의 과거를 알지 못하고 노비로 산 '유겸' 이란 인물은 어쩌면 그시대를 잘 나타내주는 인물들이지 않을까.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며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그렇다고 그것이 행복한 삶도 아니고 슬픔으로 끝나서 더 슬프고 먹먹한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참 재밌게 읽었다.역사소설은 어떻게 풀어내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듯 하다.

 

서출이라 재주도 많고 학식을 갖추고 있어도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던 태윤,그런 태윤의 광대노름을 보고는 그런 인재를 쓰기위한 시험이 있고 태윤은 잘못되긴 했지만 정조의 눈에 들어 수원화성 공사를 맡게 된다.화성에는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염원도 담겨 있지만 사학이라 하는 천주교가 곳곳에 담겨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천주교는 사학이라 하여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그와 관계된 것을 믿거나 가지고 있어도 안되던 시대,하지만 태윤과 유겸 뿐만이 아니라 왕도 사학에 관한 책을 읽었음을 시사한다.그만큼 쉬쉬하면서도 많은 이들속에 존재하던 신앙이지 않았나 생각되며 뜻 하지 않은 무원당의 사고로 인해 정연을 구하러 연못에 빠졌던 정빈이 죽고 정연만 살아 남았던 것을 아버지 차원일은 가문을 살리기 위하여 딸을 아들로 키우며 정빈을 딸도 아닌 아들로 아닌 괴물처럼 키우면서도 그녀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 정빈을 옆에서 달래는 것은 이집 무원당에 오게된 노비 유겸,그의 과거는 드러난 것이 없다.부모가 다 죽었다는 것 밖에.그는 풀과 꽃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선한 사람인데 정빈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를 달래주는 인물로 정빈과 함께 한다.

 

궁인이 자신의 아이를 배임하지만 궁에서는 진실을 밝힐 수 없었던 정조, 아버지를 위해 건설한 화성은 자신의 아들인 유겸과도 천국을 거닐 듯 조우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어떻게 보면 그곳에서 자신의 자손이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을 건설한 것이기도 했다.모두가 평화롭기를 바랐던 왕이었고 그런 곳으로 화성을 건설하였는데 어떻게 보면 그곳은 사학을 눈감아 준 곳이기며 드러내기도 한 장소라 볼 수 있다.왕도 자신을 모두 드러내고 살지 못했지만 어떻게 보면 백성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을 백프로 드러내 놓고 살지 못했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딸을 아들로 만들어야 했던 차원일도 그의 딸이며 아들로 살고 있는 정빈도 그렇고 유겸이나 정빈의 아내로 들어왔던 영신은 자신의 신분을 속이면서라도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고 유겸의 어머니 자운향 또한 자신의 드러낼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모두가 자신들을 성에 가두고 살아가는 인물들처럼 자신들을 둘러 싸고 있는 성이 무너진 날에 모두가 죽음에 이르는 그야말로 슬픔이 넘쳐 흐르지만 정빈과 유겸의 죽음처럼 죽음후 그들의 이루지 못함이 더 가슴아프고 구구절절함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지.

 

"혹 파체破涕라는 말을 아느냐."

"어려운 말은 모르옵니다."

"눈물을 거두란 뜻이다.슬픔을 이기고 기쁨을 얻으란 뜻이니 내 오늘 너에게서 그 말의 뜻을 알겠다."

"......

"제게도 한 뜻이 떠올랐나이다."

"오 그러한가.무슨 뜻이련고?"

"먼 데 나라말로 그것은 평화를 부르는 말 이라고 합니다.그 나라사람들은 마음이 곤고할 때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도나 노비스 파쳄.도나 노비스 파쳄."

 

엉킨 실타래처럼 모두가 매듭을 풀지 못한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 맺힌 매듭이 하나 둘 풀리면서 그들이 천국에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이란 기도를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만약에 정빈이 자신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당당히 밝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삶이 정빈이 누렸던 것만큼의 힘을 얻는 삶을 살았을까?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삶 속에서 살아야했던 어떻게 보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자보다는 남자와 같은 힘이 필요했던 시대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힘도 권력도 다 필요없다는 것을.인생에 어떻게 기쁨만 있을까,슬픔도 있고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것이 인생인데 모두가 평화롭기를 기원한 곳이 어떻게 보면 서학이라는 것으로 평화가 한순간 깨져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고 화성 또한 인간의 삶처럼 그렇게 세월을 이겨내며 견디어낸 것은 아닐까.그곳에 가면 이제 태윤이나 유겸 정빈등의 이야기가 생각날 듯 하다.그들이 다 이루지 못하고 남겨 놓은 삶이 어딘선가 헤매이고 있을 것만 같은.영화 <역린>에 이은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역린'후의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 든다.문화부흥기였던 정조,이야기도 많고 회자되는 이야기도 많은데 모두 특색이고 그나름 다 재밌는 듯 하다.정조가 아버지를 위하여 화성을 건설하였다면 소설은 더 나아가 그 다음 아들로 이어져서 좀더 폭넓은 화성과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나싶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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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집은 아빠가 다르다 - 대한민국 30만 부모들이 열광한 구근회의 아빠 바로세우기 프로젝트
구근회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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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아이들 교육에 적극적인 알파맘들의 이야기가 유행처럼 뜨겁더니 엄마들만 아이들 교육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알파대디가 또한 아이들의 교육및 미래까지 바꾼다는,자식 교육은 엄마 혼자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 함께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아빠 바로세우기 프로젝트' 라는 부제처럼 아이들 교육에 아빠들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 아이들의 사회성및 리더십을 아빠에게서 비롯된다는 말이 자식들이 어느 정도 크고보니 실감이 간다. 어느 누구 혼자만 뛰어서 될 일이 아닌 백년지대계의 교육이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듯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니 자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아빠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참 공감이 간다. 세상이 바뀌길 바라기 보다는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하듯이 말이다.

 

작은 습관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닮아라!'라는 말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자는 ' 공교육이 살아야 대한민국 교육이 바로 선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학부모와 학생, 교사를 위한 '오름 부모 학교' ,'오름 자기주도학습관' '오름 교사연수 아카데미' 를 운영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단다.저자는 학부모 학생 교사를 위한 교육전문가로 '자민 자우 자언 삼형제'를 키우는 아버지로 글에서 '자쓰리 브라더스'라고 하여 삼형제를 키우며 좌충우돌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재밌고 실감나게 읽으며 교육전문가의 이야기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요즘 아이들은 '친구같은 아빠'를 원한다. 그런데 친구같은 아빠도 좋지만 그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있다면서 지적을 한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밥상머리 교육' 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아빠의 한마디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며 늘 부딪히는 문제라 공감이 간다.

 

Reading, 책을 많이 읽어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

Speaking, 설득력 있게 잘 말할 수 있는 능력

Writing,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능력

 

 

'누구나 아빠는 될 수 있어도 모두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정말 공감이 간다.물론 아빠 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은 쉽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감및 엄마 아빠 보다는 더 많은 노력이 깃들어야 한다. 우리도 분명히 부모로부터 배우고 물려받고 살았지만 내가 부모가 되고보니 부모된 도리로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란 것을 늘 깨닫게 된다.그러므로 자식들에게 제일 큰 욕인 '너도 너 닮은 애 낳아서 고생을 해봐' 라고 하면 울딸들은 그런 욕하지 말라고 하는데 엄마가 되는 길도 힘들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빠들이 자식 교육에 참여를 하기란 힘든 것이 우리 사회이다. 요즘은 세대가 달라서인지 아이들 유치원 프로그램에도 보면 아빠와 함께 하는 참여프로가 참 많다. 그것이 다른 곳이 아닌 밥상머리에서부터 그리고 잠자리까지 아빠가 함께 한다면 아이의 미래는 바뀐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예로 '유대인의 기부 저금통 체다카' 는 정말 본받을만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한다.

 

아빠가 10퍼센트 바뀌면 아이는 100퍼센트 바뀐다는 것을 명심하며 오늘부터 작은 것부터라도 바꿔나가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들은 인생의 방향을 아버지를 보고 결정한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 혼자서 감당하기엔 정말 힘들다.그것도 사춘기 때에는 정말 더 힘들다. 엄마가 아무리 말을 해도 안들을 때 아빠가 옆에서 다독이며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면 돌아서 뉘우치며 안기는 아이들을 경험으로 많이 보았다. 엄마가 채찍이라면 아빠는 당근이었던 그런 교육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사춘기 아이들의 날카로운 감정에 아빠들은 욱하면서 감정이 상해 큰소리로 모두가 냉전에 돌입할 수 있는데 한번 더 생각해보고 '역지사지',아빠도 아이도 역지사지의 대화를 해보면 어떤가하고 서로 이야기를 해보면 뜻이 통할 때가 있다. 좀더 참고 기다려줘야 할 때가 있는데 되지 않을 때는 한번 내가 아닌 '너'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부모도 힘든 시간을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정말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디에 풀 곳도 없이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그야말로 다치기 쉬운 아이들을 좀더 따뜻하고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이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힘이 크다.가정에서 아빠가 바로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 엄마의 힘이 넘친다고 교육이 되고 가정이라는 배가 순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노를 젓어 나아가는 배가 망망대해로 나아간다고 본다.

 

훌륭한 위인들은 그들 스스로 원래 훌륭하기보다는 훌륭한 부모의 인내심으로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뿐이다.부모가 참는 것이 아이의 자존감 키우기의 첫 단추이다.

 

자쓰리 브라더스를 키우는 아빠로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도 많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매일 실천해야 할 '자존감을 키우는 3.3.3 실천법'에서 '3번 참고! 3번 웃고! 3번 칭찬하자!' 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점점 웃는 일이 줄어 든다. 아니 웃는 일보다 화내고 큰소리 치고 칭찬하는 일보다 실망하는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3번 참고 3번 웃고 3번 칭찬'하고는 이제부터라도 실천해봐야겠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자식들에게 크면 클수록 칭찬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그럴 때는 칭찬을 만들어서라도 해준다. 객지에 나가 있는 딸들은 작은 일이라도 칭찬을 해주면 큰 힘을 얻는다며 무척 좋아할 때가 있는데 칭찬은 자식은 물론 부모인 나도 좋다. 좋은 말은 더 자주 해주는 연습이라도 하며 좀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야할 듯 하다. 부모가 앞서서 걸어가지 말고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좀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못 해준것만 생각나 미안하기만한데 부모의 품을 떠났다고 교육이 끝났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것은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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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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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오트리브에 있는 '슈발의 궁전',우체부 한사람이 평생을 혼자서 지었다고 볼 수 있는 슈발의 궁전. 그는 건축,조각,미술 그외 집 짓는 것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해본적도 없던 이가 길에서 이상한 돌을 줍게 되면서 그의 평생의 건축은 시작되었다.늘 같은 길을 오고가야 하는 삭막함 속에서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했던 그가 우체부가방에 돌을 줍다가 다른 가방에 그러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줍게 되었다.그렇게 삼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양함을 담아 낸 그만의 건축물인 '슈발의 궁전'은 피카소마져 그곳을 찾아 대단하다고 칭송을 했다고 하는데 그는 그만의 궁전을 짓느라 아들도 그리고 아내도 잃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니 그가 가고도 '슈발의 궁전'은 작은 마을의 명물로 남게 되었다. 그는 건축을 하면서 그만의 탈출구는 되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은 지켜내지 못했다.

 

왜 처음에 '슈발의 궁전'과 루트비히 2세가 건축한 '린더호프 성'에 대한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시마다 소지의 '건축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소야 곷 끝의 오호츠크 해를 내려다보는 대지 위에 기울어진 집과 피사의 탑을 닮은 탑이 있는 저택이 있다. 기울어진 저택의 주인 '하야모토 고자부로'는 70이 되기 전에 부인을 잃고 이곳에 기울어진 저택을 짓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가 기거하는 곳은 피사의 탑처럼 기운 탑모양의 제일 꼭대기에 방,그곳에서는 사방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조망권을 자랑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 기울어진 저택에 그가 거래하는 '기쿠오카베어링'의 사장과 그와 관계된 이들을 크리스마스에 초대를 하고 저택에서 뜻하지 않은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을 경찰들로 고개를 절래절래 내두르며 풀지를 못하는데 지원병으로 온 이가 다름아닌 점성술사인 '미타라이 기요시' 라는 인물이다. 저자의 소설에서는 이 점성술사가 등장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인물로 유명한 듯 한데 이 작품에서는 후반부 사건의 끝부분에 등장해서 모두가 풀지 못한 살인사건을 점성술이라고 하기 보다는 증거에 입각하여 세세하게 풀어낸다. 왜 누가 어떤 살인동기를 가지고 살인을 한 것일까? 그것도 연쇄살인을.먼저 기울어진 저택이 위치한 곳이 마을과는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기도 하고 건물 또한 평범한 것이 아니라 기울어지기도 하고 피사의 탑과 같은 것이 옆에 붙어 있다.그런가하면 회장인 고자부로의 곁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는 딸인 에이코(23)는 대저택의 안방마님과 같으니 모두가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저택에 모인 인물은 기울어진 저택인 유빙관 주인인 하마모토 고자부로와 딸 에이코 그의 운전수 고헤이와 그의 아내 치카코와 요리사 하루오. 초대손님으로 기쿠오카와 그의 여비서 아이쿠라 구미와 가나이 미치오와 가나이 하쓰에및 알바 의대생 구사카 슌과 도쿄대생 도가이 마사키 등이다. 그들이 기울어진 저택만큼이나 서로 과거와 현재로 얽혀 살인까지 이르게 되고 저택은 그야말로 '살인'을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라니. 우체부 슈발은 자신의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평생의 건축물인 '슈발의 궁전'을 남겼지만 하마모토 고자부로는 살인을 위해 살인에 안성맞춤인 저택을 지었다.아니 작가의 상상속 건축물인 기울어진 저택은 밀실트릭의 완벽함을 제공해주면서 독자와 숨바꼭질을 하듯 한다. 범인은 정해져 있는데 '트릭'을 풀 수 있으면 풀어보라고 당당하게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기묘한 저택을 제공해 놓았지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연쇄살인사건은 약간은 지루한 감도 있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다.살인을 위해 변형된 건축물과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점성술사,기묘한 조합이지만 시마다 소지의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추리소설인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니 <점성술 살인사건>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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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변명 - 이야기꾼 김희재가 전하는 세월을 대비하는 몸.마음 준비서
김희재 지음 / 리더스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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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맘에 들어 책을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손에서 놓지 않고 다 읽어 버렸다. 내 나이에 어울리는,아니 내 나이에 하고 싶은 말들이나 가려운 곳을 콕콕 짚어 잘도 긇어주듯 내 맘을 잘 표현해 준 글들이 많아 '어쩜'하며 읽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을 한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흰머리를 새치라 우기며 거울 앞에서 쪽집게로 흰머리를 아픔을 참으며 뽑던 시절이 있었다.그것도 잠시 한두개 보이던 흰머리는 어느 순간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이 찾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흰머리만 보이는 것처럼 변하게 되었고 이제 나도 내 나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알게 되고는 남들 잘하는 염색도 몇 번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흰머리 온통 검은머리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나면 그냥 흰머리로 살 것이라 했더니 딸들이 이쁜 색으로 염색을 하란다. '싫어,그냥 이렇게 살거야.'

 

딸이 둘이다보니 늘 딸들과 작은 일에도 말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말 큰일이어서 문제가 되기 보다는 정말 사소한 것들,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싸울것도 말다툼할 것도 안되는 것들이지만 서로 의견차이로 인해 큰 문제가 된 경우가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니 '어쩜 어쩜 우리집 이야기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아니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변명'이라고 했는데 변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당연한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는데 애교 섞인 변명이라고 해야할까. 이제 옆지기도 나도 반환점을 지나거나 혹은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라 그런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가하면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한두번은 경험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맞아 맞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 옆집 아줌마와 수다를 나누는 기분으로 읽었다.

 

'뽀글이 파마,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빛나는 '여덟 번째 일곱'의 시간',난 파마라는 것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해보았고 미용실을 가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뽀글이 파마가 낯설다. 워낙에 파마약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십대에도 몇 번 할까말까 아니 한두번 하고 결혼식 때 한번 했나보다.그리곤 파마와는 담을 쌓고 살기도 했지만 요즘은 내가 직접 내 머리카락을 자르니 뽀글이 파마는 먼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나도 뽀글이 파마 대열에 끼지 않을까. 우리 엄마 아니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 아줌마들은 뽀글이파마를 했다.그것이 편하고 여러모로 경제적이기 때문에 뽀글이 파마를 하지 않을까.이십대나 삼십대는 자신의 젊음에 돈을 투자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다보면 자신에게 투자하기 보다는 가족을 위해 먼저 투자하게 된다. 그것이 아줌마,아니 어머니의 당연함이 아닐까. 그렇게 하여 아줌마라면 대명사처럼 뽀글이파마가 붙게 되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인자함을 읽게 되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화병은 우아하고 싶은데 우아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이상한 일입니다. 우아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높이고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처럼 울고불고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내 나이가 가슴 속에 쌓인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그런 나이인가 보다. 그럴 때는 가족들에게 공표를 한다.'지금 짜증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 조심해 주세요.' 라고 먼저 한마디 운을 띄운다. 나도 그러고싶지 않은데 내 맘과 다르게 가슴 밑바닥에 쌓여 있던 것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온다. 그것이 '여자의 화병' 편에 나오니 속이 다 시원하다.'딸이까 아내이니까 엄마이니까..' 그렇게 참으며 '여자'라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가 자식들 크고 나니 허하다.정말 '참어 참어..' 아니 '참아야해' 라고만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그 속에 내가 없는 것 같은 허함은 뭔지.가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식이고 남편이고 다 필요없다' 라는 말을 가끔씩 한다. 누가 알아 준다고 참으며 살아왔는지.그렇다고 보장된 내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오늘날이기 때문에 더 즐기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키우기도 한다.그래도 그때 뿐이지만 속은 후련하다는 것.그런 이가 나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이가 옆에 있다는 것도 위안이 된다.

 

울집에도 '배불뚝이 아저씨'가 한 명 있다.옆지기는 다른 계절에는 그런대로 보통인데 연말에 과한 회식으로 인해 '배불뚝이'로 자동 전락하고 만다.그것을 덜어내기 위하여 일년을 고생하고 또 다시 배불뚝이로 그것이 늘 반복이라 정말 옆에서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난다.조금 회식을 줄이면 좋을텐데 집에서는 '줄일거야.아니 덜 마시고 덜 먹을거야'하고 나가지만 막상 나가면 다 잊나보다.예전에는 배불뚝이는 인격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건강과 직결이라 식스팩은 아니어도 만삭은 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늘 충고하고 함께 산행도 다니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이 비슷한 시스템이라 그런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배의 모양도 비슷하다. 성인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외식문화및 회식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본다.

 

뽀글이 파마,화병,배불뚝이,새는 실수,가려움증, 몸에서 나는 채취,다리절임,이명등 그야말로 젊은 세대하고는 안통하는 '나이 든'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 속 시원하게 아니 적나라하게 있어 재밌게 술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 참 좋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피부가 건성이 되어 철이 바뀔 때마다 '가려움증'으로 고생을 한다.그러다 피부과를 찾았는데 샤워를 날마다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또 그러고 사는가.가려운 곳을 긇으면서도 샤워를 해야지. 나이 든다는 것은 마음 뿐만이 아니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어디 한 곳 세월을 역행하는 곳이 없다. 세월을 거부하려고 하면 더 탈이 나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 들이며 인정하며 살면 편하지만 거부하려고 하면 더 힘든 것이다. 거부라는 것은 또 한계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제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제일 기분 좋은 말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나이든다는 것을 자식들도 인정하지 않고 받아 들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당연하게 될 때가 있다.

 

우아해지고 품격 있어 보이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악만 남은 사람처럼 아줌마라면 뽀글이 파마를 하고 큰목소리에 건망증도 있어야 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 듯 하다.많은 시간을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타인의 악을 보면 그사람이 마음에 화가 많이 쌓여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를 하기도 하고 그가 지나 온 삶이 그려지기도하는 것은 부모의 삶을 보아왔고 그 그렇게 내가 부모의 삶을 살고 있으며 밑으로 나오 같은 자식을 키우고 있음을.그렇게 나 또한 나이 들어 가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단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자식들의 사춘기를 받아 주며 지나쳐 갔듯이 '우리'의 사춘기도 무리없이 지날 것이라 믿는다. 나이 든 다는 것을 변명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스스로 자신이 행복한 나이인 듯 하다. 주름살을 보면 그사람이 웃어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찡그려서 생긴 것인지 알 수 있듯이 남은 시간은 좀더 웃어서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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