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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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상영중인 하정우 주연이 영화 <더 테러 라이브> 는 아나운서인 윤영화와 폭탄 테러범 박노규와 계속되는 줄다리기로 이어진다. <복수의 탄생>도 이와 같은 맥락처럼 아나운서 한석호와 그를 목을 조르듯 하루하루 그의 산소를 줄여 나가듯 하는 남자 '조태웅'과의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로 비춰지는 '아나운서 한석초' 그는 잘나가는 아나운서에 그의 처가의 백은 그야말로 그를 하룻밤사이 신분상승을 시켜주듯 그가 발을 들여 놓고 있는 방송계 회장의 딸이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언덕을 가지고 있는데 외모도 훤칠하니 어디를 가도 식을줄 모르는 인기에 그의 육욕은 식을줄을 모른다.

 

결혼 일년후부터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한 한석호,너무도 대범하게 아내의 그늘 밑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듯 처남댁과의 불륜도 겂없이 행하는 이남자 과연 누가 가속도를 막을 것인가? 함께 방송하고 있는 막내작가 은정으로도 모라자라 처남댁과의 불륜을 저지르고도 무사하게 승승장구를 바랐던 그에게 어제와 오늘은 너무도 다르다. 누군가 자신의 목을 조르듯 그의 지금까지 모든 불륜의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남자 조태웅의 출현은 장애물없이 아우토반을 달리던 한석호를 하루아침에 날개 잃고 추락하게 만든다. 과연 누가 그를 조정하고 있는 것인가? 조태웅은 누구고 그이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인가?

 

처남댁과의 불륜으로 인해 아내의 사촌인 같이 방송일을 하고 있는 친구 재우를 불신하게 되지만 그는 조태웅의 배후자인지 아닌자 의문이 들게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점점 조태웅은 그의 목을 점점 날카롭고 섬짓하고 물러설 수 없이 조여오고 만다. 아내,연이,막내작가 은정중 누군가를 죽여야 게임은 끝난다고,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불륜의 증거들이 폭로되지 않고 소멸된다고 말한다. 그가 불륜에 이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자신과 함께 했던 여자중 한 명은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한다.과연 행할 수 있을까? 조태웅의 손이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가운데 연이는 스스로 자살을 한다. 그렇다면 게임끝,행복시작일까? 하지만 조태웅은 게임오버가 아니라고 한다. 아직 게임은 유효한 것이다. 아니 연이의 죽음은 무효나 마찬가지다. 살인이 아닌 자살이기 때문에.해결사까지 수소문해서 조태웅에 맞서보지만 그 또한 힘에 부친다.그렇다면 이제 그가 나설 차례다. 직접 그와 아니 그의 뒤에 숨은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 마지막까지 그가 지키고 싶은 것은 아내와 아이들,자신의 행복한 가정이다.가정과 일을 지킬 수 있을까?

 

요즘 한국영화의 붐처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한국영화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어제는 <숨바꼭질>을 보았다. 범인이 남자일까 했는데 아줌마의 힘이란. 터미네이터와 같은 힘을 가진 불사신 아줌마,대한민국 아줌마를 우숩게 보았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본보기처럼 아줌마의 파워는 대단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아줌마의 힘이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슬며시 급소를 찌르듯 조용히 조여온다. 아줌마의 힘을 무시하면 아니 자신의 것을 소중히 여길줄 알아야지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다니다간 정말 큰코 다친다. 가정도 지위도 모두다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아줌마의 힘은 소리나게 아니 표시를 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조용히 거사를 치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인 얼굴로 돌아온다 것,내것을 소중히 지킬 줄 아는 현명함이라고 할까?

 

저자의 소설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는 SBS 라디오 PD 로의 자신의 능력을 십분 소설에 발휘하여 깨알같은 웃음 준다. 자신이 하는 프로인 <두시 탈출 컬투쇼> 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관련되고 방송과 관련된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 나온다. 늘 글을 쓸고 소설을 발표하는 저자라 그런지 이 작품이 벌써 17번째 책이라고 한다.정말 대단하다. 그만큼 자기관리도 철저한 PD로 알고 있는데 자신이 일과 관련된 분야를 소설로 녹여내서일까 더 자연스럽고 방송과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보는 듯 해서 재밌게 읽었다.아침에 <이숙영의 파워 FM>에서는 깨알같은 등장으로 웃음을 주기도 하는데 정말 다재다능한 저자이다. 한석호,그는 분명히 악마다. 현대인들 속에는 한석호와 같은 악마가 어딘가에 있다. 그 악마의 존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 그 악마의 힘을 꺾을 수 있는 존재는 누굴까? 인간의 욕망이란 죽음과 함께 끝난다. 그런 욕망이라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텐데 우린 인간이기에 늘 어느정도의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추리소설을 읽듯 한편으로는 '범인이 누구야?' 하면서 재밌게 빠져들며 읽을 수 있으면서도 섬짓하다.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계절 여름, 조금 잠재울 필요가 있다.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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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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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 장서가 탐서가라면 어느 시점에서는 한번 북카페나 헌책방등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것이 꿈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내이름으로 북카페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혼자만의 북카페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구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을 읽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현실로 나타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장서가이며 애서가였던 웬디와 잭은 여행중에 빅스톤갭을 가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마땅한 '집'을 발견하게 되지만 수중에 가진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꿈을 미루고 싶지 않았던 그들,서브프라임에 여웃돈및 현금을 가지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열정과 자신들이 가진 책 그리고 고양이와 개 남이 보기엔 무모할 정도의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일을 시작하기로 한다.

 

"이 책방의 경우 '아이쿠, 우리 마을에 저런 이웃이 들어왔네.' 라는 말에 기분 좋은 뉘앙스가 깃들어 있따. 손님들은 책을 고르면서 잠시 앉아 쉴 수도 있고, 직접 구운 쇼트브레드나 태블릿이라고 하는 스코틀랜드식 퍼지를 먹으면서 커피나 차를 한 잔 해도 된다.

 

웬디와 잭이 '이익'을 따지고 시작했다면 책방은 오랜시간동안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들의 무모함이 어쩌면 빅스톤갭에 책방이 주민들과 함께 공감의 공간으로 주민들과 교류하는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저것 많이 따져보지 않고 정착하고 시작하고 가진것이 많지 않았기에 더 성공적인 공간이 되지 않았나 한다. 책을 좋아해서 책방이나 책과 관계된 일을 하면 책을 많이 읽을것 같지만 그와 관계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독서 보다는 '노동'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현실은 환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책방이라고 해도 마이너스만 내며 뿌리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소점포를 열었다고 해도 뭔가 이익이 있어야 그곳에서 지역민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익이 없다면 도시민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갈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지역민들에게는 손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잠깐 정착한 그들을 곱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마찰음이 웬디와 잭에게도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일년여 지난후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지역민과의 마찰,하지만 멋지게 마찰을 벗어날 수 있는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와 기사가 실려 하향곡선은 다시 상승곡선을 이루게 되고 그들이 빅스톤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준다.

 

중고책이 상품인 것은 맞다.그래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책을 아주 소중하게 다룬다. 그 책들에게는 그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속의 글자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여러분도 알 것이다.

 

인구 오천의 작은 곳이나 마찬가지인 빅스톤갭에 책방이 없었고 헌책방은 더더군다나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는데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긇어주듯 웬디의 생각은 멋지게 들어맞았지만 자신들의 열정만으로 책방이 버티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과 하나가 되어 톱니바퀴가 잘 굴러가야 하는데 많은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그들은 하나 하나 자신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잘 허물어 나가며 지역 주민들과 하나로 이어지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며 잭의 '주전자 올려야겠네..' 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책방 주인이 아니라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말로 그들의 가슴을 보듬어 주어 더 하나가 되어 나가지 않았을까.헌책만 팔고 산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또 그렇게 친근하게 하나로 연결되는 장을 만들어 함께 어울리며 이웃으로 뿌리를 내리며 책방도 점점 자리를 잡아 나가고 그곳은 모두가 한번씩 경험하고 싶은 '일터' 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책냄새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고양이 두마리의 털이 날리고 오물 냄새가 나도 행복하고 아늑한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매일같이 손님들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 책방으로 들어온다. "시간이 좀 남아서 구경이나 하려고요." 책을 사려고 들어오는 게 아니다.평화롭고 책 냄새 가득한 공기를 폐 한가득 들이마시려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우리는 반가울 뿐이다.

 

요즘은 인터넷 서점이 우위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오프의 서점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나마 헌책방은 찾아 보기가 힘들다.거기에 전자책의 등장으로 인해 종이책은 더욱 위험에 처했다고 한목소리를 하고 있지만 독서가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며 그 위세를 꺾지 못하고 종이책의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나 또한 전자책이 실용적이라고 해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더 좋다. 종이가 주는 질감이나 냄새 정감을 전자책이 주지 못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작은 서점과 헌책방이 얼마전에 생겼다.헌책방이 새로 생겨 기분 좋게 얼른 방문했는데 내 기대와는 다르게 주인의 너무 잇속만 챙기는 앙칼진 말에 그만 정이 뚝 떨어져 두어번 발길을 하다가 지금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리곤 인터넷 서점의 '중고책'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새책도 물론 너무 좋지만 중고책으로 산 책들도 대부분 새책이나 마찬가지다. 중고책이 주는 냄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그렇게 중고책으로 책장을 많이 채우기도 했다. 워낙에 예전에는 헌책방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점점 사라져 보이지 않으니 그런 재미도 잊었다.인터넷 서점과 전자책의 시대에 작은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텐데 너무도 능숙하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지역민이 스스로 하나로 뭉쳐질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기에 저마다 한번씩 그곳에서 경험하고픈 생각을 갖게 만들었나보다. 책을 판매하게 보다는 '사람'과의 정을 나눈 책방이라 할 수 있다.

 

빅스톤갭에 책방을 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일이었고 누구나 실패할 것이라 이야기 했다. 하지만 웬디와 잭은 보란듯이 모두의 생각을 뒤엎고 오년여가 넘는 시간동안 멋지게 책방을 운영하고 있고 자신들이 노후에 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헌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책에 다 담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고비마다 그들을 믿어주고 함께 하고 픈 책을 좋아하고 지역에 문화 센터와 같은 곳이 생겨 책을 통해 지역민을 한의 공동체로 연결하는 장소로 거듭나기 까지는 그들이 이익보다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순진함이 빅스톤을 다른 곳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지역민들도 자신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휴식같은 공간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니 글을 읽지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종류의 책을 구매하여 다른 곳에 기부를 하는 이도 있고 글을 모르니 배우고 싶어서 오는 이도 있고 그곳에서 때로는 '추억'을 찾는 이도 있고 빅스톤갭의 책방이야 말로 지역민에게 '힐링'의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나도 이런 책방에 가면 하루종일 그곳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아니 내가 주인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곳의 단골이 되지 않을까.시간이 남아서라도 아니면 뜨개질을 하러가도 좋을 곳이고 헌책의 책 냄새를 맡으러 그곳에 가도 좋을 듯 하다.우선은 작은 책방이 상점이 아니라 개인주택이라 더 안정감과 아늑함을 안겨 주는 듯 하고 주인들이 인정이 넘치고 멋진 냥이가 있고 누군가 인생이 담긴 책을 가져 오기 때문에 더 정감이 가는 곳인듯 하다.잘 된다고 다른 곳에 분점을 내기 보다는 자신들만의 색으로 오래도록 작은 책방이 잘 운영되어 지역만과 오래도록 함께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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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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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복주머니까요."

 

하루키의 책으로 내가 만나 본 것은 <상실의 시대>와 <1Q84> 다. <1Q84>는 전권을 다 읽지 못했다. 그 소설은 단편이었던 것을 장편으로 고쳐 쓴 것이라 알고 있는데 그런면에서 그의 능력이 탁월한 듯 하여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곤 몇 권 그의 책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을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그의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가 달리기와 번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이 책은 1979~2010년 까지 31년이라는 그이 삶에서 어떻게 보면 '노른자'와 같은 글을 오롯이 담아 놓았으니 그의 삶을 총망라한다고 볼 수 있을까.

 

그의 소설에는 음악이 중요하게 깔린다. <상실의 시대>에도 그랬고 <1Q84>에도 그랬는데 이 잡문집을 읽다보니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겠다. 글을 쓰기 전 칠년동안 오로지 음악을 많이 듣기 위해서 음악에 관련한 가게를 직접 운영했다하고 그 전에는 많은 음악을 접하며 음악에 심취하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이 잘 아는 부분이기에 음악은 소설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듯 하다. 말이 삼십년의 세월이지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을 변할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을 간추려 놓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터 그래도 소박하면서도 너무 강하지 않은 글들을 읽다보면 그의 '글쓰기' 의 삶과 '번역가'로서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같은 소설을 한 출판사에서 번역자를 달리 하여 낸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는데 그렇다고 독자들은 한번 읽은 작품을 번역가가 다르다고 일부러 찾아 읽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마니아가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 번역을 하고 번역에 대한 그만의 자존심의 깊이를 볼 수 잇어 좋았다.

 

내가 소설을 쓰는 한 가지 큰 목적은 이야기라는 하나의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 그 공유성을 지렛대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개별적인 터널을 뚫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어디에 있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그 이야기를 당신이 '자기 이야기'로 확실하게 끌어안아주느냐 마느냐,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가 번역한 작가나 그외 그가 만난 작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접했던 '레이먼드 카버'나 그외 작가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더 기분 좋았던,아니 덤으로 무언가 잔뜩 보따리 보따리 얻은 것과 같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읽었지만 그의 명성에 불구하고 난 그리 '대단함'을 깊이 느끼지는 못했다. 하루키가 전해주는 그의 삶을 조금 더 읽다보니 작가를 통하여 다른 작가의 삶을 얻어 들으니 더 관심이 가지는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되었다.수상소감에서도 뭔가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담백하면서도 자기 소신을 뿌리 깊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알고 자신이 뜻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깊이가 있는 작가라는 것을 한번더 느꼈다.

 

수상소감, 음악에 대하여,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과 그의 짧은 단편소설이 있고 인터뷰 형식의 글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팬들에게는 그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겠고 하루키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하루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잡문집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글 쓰기 뿐만이 아니라 번역가로 이야기를 읽으니 소설 또한 정교하게 짜여진 직물처럼 여겨졌는데 그가 번역해낸 작품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언젠가 다른 책에서 그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읽은 적이 있는데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것을 알았다. 달리기도 글쓰기도 번역도 어느 것 하나 게을리 하지 않고 자신의 궤도에서 철저하게 운항을 하고 있는 하루키,그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 하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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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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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눈의 결정체를 만나니 우선 시원하다. 여름에는 특히나 더 장르소설을 더 찾게 된다.장르소설을 읽다보면 더위도 잊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읽게 된다.일본 추릿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넬레 노이하우스' 의 영향일까 '북유럽 추리소설'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한번 손에 잡으면 정신없이 읽어나가다 급기야 마지막 장을 덮어야만 헤어나올 수 있다. 한사람이 '살인'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이유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그야말로 평범한 이웃 사람이 '범인' 이거나 인간의 내면을 더 들여다 보게 하는 소설로 일본 추리소설에 식상했다면 북유럽 장르소설에서 새로운 맛에 빠져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두껍지만 빠져 들며 읽었다.이야기의 구성이 단조롭게 되었다면 범인을 금방 알아챌 수 있지만 시간차를 두고 이야기를 늘어 놓았기에 추리를 해야 한다. 추리소설에서 범인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살인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범인이다.이 소설에서도 그럴까?

 

첫눈,첫사랑,눈사람 하면 괜히 설레인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었다면 이젠 첫눈이 더이상 설레임이 아닐 것이다.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인기 뮤지션이며 저널리스트이고 경제학자이다. 누구보다 다방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인데 장르소설에서 또한 유명한가보다. 이 소설에는 키가 휜칠한 술과 친하며 누구보다 까칠하지만 수사에 있어서는 논리적이고 동물적 감각도 뛰어나고 반항적인 '해리 홀레'반장이 등장한다. 그가 집안에서 싸우는 것은 '곰팡이'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과 싸우는 그,정말 집안에는 곰팡이균이 있었을까? 그가 지금 수사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현 노르웨이에 '곰팡이균'과 같은 '연쇄살인범'이다. 11년전 여성살인부터 하여 수사를 하다 사라진 경찰까지 그가 쫓는 연쇄살인범은 현장에 '눈사람'과 함께 사건을 시작하고 그리고 누군가 살해된다. 처참하게. 어떤 시체는 설치미술처럼 눈사람과 함께 숨겨 놓기도 하지만 꼬리가 길면 범인은 반드시 잡히는 법이다.

 

아직 노르웨이에는 연쇄살인범이 없다고 자부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지만 해리 홀레만은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쇄살인이라고 단정을 짓는다.그는 미국에서 연쇄살인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왔기에 누구보다 사건을 들여다보는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단점인 술,술을 멀리 할 수 없는 그는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도 종종 있지만 누구보다 냉철하고 논리적이게 사거늘 파헤쳐 들어간다. 1980년 11월 첫눈이 내리던 날 '엄마'가 사라졌다. 아이를 차 안에 두고 어느 집으론가 사라졌던 엄마, 40여분 뒤에 나온 엄마와 아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날 왜 엄마는 사라진 것일까? 엄마가 집 안에서 보았던 눈사람은 누가 만들어 놓았던 것일까? 그리고 2004년으로 사건은 이어진다. 아이가 있는 엄마가 사라지고 사건 현장에는 눈사람이 있다. 왜 실종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는 '스노우맨'이 있는 것일까? 길을 향하지 않고 집안을 들여다 보듯 서 있는 스노우맨,스노우맨이 나타나면 누군가 사라진다.아니 살해된다.

 

어느 날 해리에게 '스노우맨이 보낸 편지'가 도착하게 되고 새로운 파트너로 여자 경찰이 오게 된다.그녀는 해리의 특성과 사건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해리의 손발이 되어 잘 움직여 주어 해리와 함께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짝을 이루어 조사를 해 나간다. 그런가하면 해리에게는 함께 하고 픈 여자가 있고 그녀에게는 전남편의 아들이 하나 있다. 그녀와 잘 되어가는 상황에서 그녀가 다른 남자인 '겉모습'에 반했다고 할 수 있는 의사 남친이 있다. 해리의 여친인 라켈의 아들인 올레그는 해리를 아빠처럼 정말 잘 따른다. 늘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둘은 헤어지지 못하고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남자친구의 눈치를 보게 되고 라켈의 의사남자친구가 특이한 혈액형과 유전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을 남겨 놓고 사라진 여자와 쌍둥이 딸을 두고 살해된 여자의 두 사건을 조사하다 우연히 공통점을 찾아 내게 되면서 사건은 겁잡을 수 없이 속도를 내게 되고 개별적인 사건으로 보였던 사건이 '연쇄살인'으로 묶이게 된다.

 

첫눈, 첫눈이 아니어도 눈이란 의미는 깨끗하고 때 묻지 않은 무결점의 결정체처럼 여겨진다.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실종 또는 살해 되었다.왜 일까? 그녀들과 첫눈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이의 엄마라면 때문지 않은 상태에서 제2의 분신이 나와야 할텐데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첫남편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라켈'은 어떤 의미로 경찰의 여친으로 선택된 것일까. 그녀가 해리의 애인이 된 것에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의 사건을 조사하던 나이 든 경찰은 그렇다면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스스로 숨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그에겐 딸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딸은 어떤 아이로 자랐을까?

 

어떻게 보면 범인은 '원죄' 어머니들의 원죄에 대하여 자신이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 '즉결심판'을 거쳐 죄를 벌하는 입장이 된다.그런가 하면 그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아니 그의 삶은 갈수록 점점 고통의 연속이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누군가'를 벌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자신처럼 홀로 남겨지는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하고 그저 자신이 벌하는 것에만 '만족'을 느끼며 자신이 죽여야 하는 이들의 리스트 대로 움직이듯 그만의 '버킷 리스트'는 그야말로 '연쇄살인 리스트'가 되며 점점 시한부의 삶이 줄어들기에 촉박함을 느끼고 한 해 한번 첫눈이 오던 날에 행해지던 살인이 연달아 발생을 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무척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 고통을 누군가가 함께 했다면 지금처럼 연쇄살인범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엄마의 사랑이 없는 아이가 얼마나 무섭게 자랄 수 있는지 보여주듯 그는 독을 먹고 자란 것처럼 그의 몸은 온통 독과 악 뿐이다.아니 살인으로 충만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말았다. 누군가 어린시절에 바로 잡아 주었다면 노르웨이에 연쇄살인범은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해리의 말처럼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보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해리의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항해와 함께 그의 집에서 곰팡이 몰아내기 공사도 함께 시작되고 그가 사건을 마무리 하는 순간에 '곰팡이' 공사도 마무리 된다.그렇다고 집 안에 더이상 곰팡이균이 없을까? '스노우맨'을 잡았다고 더이상 '스노우맨'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현재도 어디선가 사건은 일어나고 있고 모방범재라는 것이 또한 일어날 수도 있다.저자는 여기저기 '함정'을 만들어 놓고 실종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그리고 한사람의 병적인 집착과 악행이 많은 이들을 파멸과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지 보여준다. 그가 존재하게 만든 것은 세상의 '엄마'들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남자'도 있다. 한남자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유전병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야 하는 원죄의 분신들은 눈처럼 맑기만 하다.

 

추리소설에 많이 사용되는 밀실트릭이나 데드사인등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삐뚫어진 내면이 어떻게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끝부분을 읽으면 쉽게 범인을 알 수 있고 범인이 왜 '살인'을 저질러야 했는지 알 수 있는데 소설은 앞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부분의 '뒷이야기'를 하듯 하며 살인자와 살인에 대하여 풀이를 해준다.눈이 오는 겨울에는 영화 <나홀로 집에>를 보며 웃던 시대는 가고 첫눈이 내리면 <스노우맨>의 연쇄살인을 상기해야 하는 것처럼 강인함을 남기는 저자의 이 소설은 저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강인한 인상을 남겨준 작품이 되어 그의 작품을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여자이고 엄마의 입장에서 소설의 주제가 된 이야기는 조금 기분이 좋지 않은 이야기였고 우리와는 문화가 달라서일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자유연애시대를 살고 있고 두 딸이 있어서일까 더 섬짓함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한여름 더위을 잠시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고 더이상 눈사람은 기분 좋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곰팡이균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가 하면 눈이란 결정체는 '증거'를 보여주기도 하고 순식간에 증거를 삼겨 버리기도 하는,그리고 때로는 누군가는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는 무서운 힘을 가진 자연이다.스노우맨이 편지를 당신에게 보냈다면 그 거래에 응할 생각이 없다면 받지도 말고 펴보지도 말라.처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반전' 이 있어 씁쓸하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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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미루지 마라 - 하버드대 긍정심리학 보고서
탈 벤 샤하르 지음, 권오열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다음에 한 잔 할까? 젊어서 고생하고 나중에 놀러 다니지 뭐.' '나중에,다음에..' 나중에 밥 한 번 먹자고 하고 그 '나중'을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통계로 보면 지켜지는 예가 드물다는 글을 읽었다. 왜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을 지금은 안된다는 것일까? 왜 미루어나 하나? 인사치례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마음에 있어 '나중에 꼭 해야지' 했다가 지켜진 약속이 얼마나 될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라는 노래가 있다. 정말 젊어서 다리가 성할 때,관절이 성할 때 놀러도 다니도 여행도 다니는 것이지 지팡이 짚고 다리가 후둘후둘 하는데 여행 다닐 수 있을까? 행복 또한 현재가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지 미래를 위해 행복을 미룬다면 현재는 불행해도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래를 행복하기 위하여 현재를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현재도 행복하고 미래도 행복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맘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보기 보다는 '네 잎 클로버 숨은 세 잎의 행운' 을 찾기 위하여 현재의 행복을 지나치듯 그런 삶을 사는 경우도 많다. 행복은 자신이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요즘 날이 정말 덥다. 더운 날에는 시원한 물을 자꾸 자꾸 마셔도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난다.아니 아이스커피로 대신해 볼까? 한 잔의 아이스커피를 받은 순간은 정말 시원하고 행복하다.하지만 자꾸 마시다보면 줄어드는 아이스커피의 시원함, 반 잔이 남았다면 그 반 잔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 다를 것이다. '벌써 다 마셔 버렸네' 하는 사람도 있고 '반 잔이나 남았네.'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를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맘도 달라진다. 요즘은 '긍정심리학' '힐링' 이라는 말이 참 많이 들린다. 나도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스스로 스트레스에 갇히고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에 잘 살기 위하여 더 열심히 산다. 하지만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삶은 나아지기 보다는 마이너스가 안되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래도 모으는 재미를 느끼고 살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정말 하루하루가 부대낌의 연속이다. 얼마를 가져야 풍족하다고 할 수 있는 개개인의 기준치가 없기는 하지만 마이너스 나지 않고 한 달 잘 버티면 정말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인 씀씀이가 큰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하루하루 행복을 저축하여 미래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듯 하다.

 

지금 등에 짊어지고 있는 불필요한 짐을 내려 놓아라. 용서하고 더 가볍고 더 평화롭고 더 행복하게 인생길을 여행하라.

 

저자는 어느 날 버거운 자신의 현실과 마주한다. 피해야 할까? 부딫혀야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처럼 그는 현재를 기꺼이 받아 들이며 '긍정적'으로 현실과 마주한다. [행복은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간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150번이나 선택의 귀로에 선다고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정말 잘 가는 길이고 행복할까? 누구나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미련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현재 선택한 길이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하여 더욱 미련이 남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안전 혹은 행복'을 위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울퉁불퉁한 삶에 맞기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많은 이들이 지나간 안전한 길을 선택하면서 내가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을 평생 지니고 살아 간다. 행복 또한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가하면 한번 큰 사고나 아픔을 겪고 나면 내 삶에 더 감사하게 되고 현재에 감사하게 된다. 현재에 감사하며 살게 되면 긍정적이고 현재를 행복하다고 더 느낄 수 있다. 늘 불만을 품고 있다면 세상이 온통 먹구름이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현재의 먹구름 뒤에 있는 무지개를 보고 웃는다. 현재 아무리 힘들어도 말이다.

 

인생이란 시내에서 황금빛 순간들은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가 보는 것은 모래뿐이다. 천사들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들이 떠나 버린 뒤에야 그들이 왔다 갔음을 안다. -조지 엘리엇

 

챕터 하나 하나 읽어 나가다 보면 '긍정' 이 자꾸만 쌓여 긍정적 마인드로 중무장되듯 자꾸만 마르지 않는 긍정의 샘물을 퍼 올리는 기분이 든다. '인생이 속도를 높이면 행복은 멀어진다.' '부정적인 사고 습관에서 벗어나라.' ''칭찬은 상대방의 가슴을 기쁨으로 채워 준다.'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분투하라.' 현재의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려 하면 자꾸만 고통이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져 하루하루 부정적이고 불행한 하루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인정하며 순순히 받아 들이고 부딫히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도 빠르다. 고통 없이 항해하는 삶이 있을까? 모두가 한꼭지씩 모두 고통을 등에 지고 나아가고 있다. 고통이 내게 왔을 때는 무척 크게 느껴지지만 남의 고통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 다 지나가리라.' 이다. 현재는 모두 지나간다는 것이다. 고통도 지나간다. 행복도 물론 지나간다. 하지만 기억의 창고에 쌓이고 쌓여 미래를 더욱 웃음짓게 만든다.

 

병이 든 사람만이 인생에 유머를 덧칠하고 행복과 관계와 건강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일상에 가벼움과 유머를 유입시켜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를 찾아 읽어나 당신을 웃게 만드는 친구와 자주 만나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운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내 자신을 부정하는데서는 절대로 행복이 올 수 없다. 남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해줘야 좋지만 내 자신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해 줘야 한다. 가끔 자신에게 '정말 멋진데..정말 잘했어.대단해.' 라고 한마디 해주면 더욱 힘이 난다.가끔 지치고 힘들 때 거울 앞에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한번 씨익 웃어줘 보라.그러면 거울 속의 나도 따라서 웃는다.그리곤 힘차게 '너 정말 대단해' 하면 정말 거울 속에 대단한 녀석이 날 보고 웃는 것 같다. 그렇게 현실속 내 자신도 대단한 사람처럼 에너지가 충만해 진다. 그런 상태에서 부정적인 말들보다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 더 나오게 되어 있다. 저자 자신이 경험이 우러난 글이라 그런가 더 와 닿기도 하고 저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가 느끼는 감정들이고 가진 자 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더 나누고 웃고 행복하다는 것.행복지수 또한 선진국보다는 우리가 정말 못산다고 하는 그런 나라에서 더 높게 나오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의 우리는 행복도 저축하려 하고 있지만 현재를 즐겨라.그리고 행복을 미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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