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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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작가는 <바람의 화원>을 읽고 빠져 들어 그의 다른 작품인<뿌리 깊은 나무> <천년 후에> <해바라기> <악의 추억> 그리고 <천국의 소년>에 이어 이 작품은 사 놓고 읽지 않고 있다가 더 기다릴 수 없어 갑작스럽게 읽게 되었다.가을에는 다른 계절보다 詩가 더 와 닿고 시 한편이라도 외우던가 쓰고 싶은 계절이라 그런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를 정말 좋아해서 여고 때에는 윤동주의 '서시 ' 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시를 외우고 또 늘 시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한 듯 한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시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그러다 우연하게 詩를 쓰고 싶어 되지도 않는 시를 마구마구 쓰던 몇 년의 시간이 있었다. 감성이란 소녀적 감성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시들지 않고 샘물처럼 솟아는 감성이 갑자기 막 자신도 모르게 솟아 날 때가 있다. 그때가 잠깐이라도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그런가하면 가을이라 시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류근의 <성처적 체질>을 구매했는데 얼른 읽고 싶다.

 

작가는 소설에 '추리기법' 을 많이 쓰기 때문에 더 재밌고 빠져들며 읽을 수 있다.<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이 혹시 여자가 아닐까? 라는 의문으로 접근을 하며 풀어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소설은 소설일뿐인데 실제 역사인줄 알고 참 많이 회자되었던 소설이고 이슈였던 듯 싶다. 그렇게 하여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고 드라마 또한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뿌리 깊은 나무> 또한 추리기법으로 쓰여져서 재밌게 풀어가며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어서 더욱 작가에게 빠져 들었는데 <악의 추억>은 조금 그의 맛에서 벗어났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만났던 <천국의 소년>은 탈북 소년의 삶을 통해 정권이 바뀐 북한을 어느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작품을 먼저 읽어 보려 하다가 <천국의 소년>을 먼저 읽었고 바로 읽으려 하다가 기회를 놓쳤는데 가을에 읽으니 시와 함께 더 분위기가 있어 좋다.

 

소설은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병인 유이치의 시선으로 그의 선임이었던 스기야마 도잔 간수병과 죄수였던 시인 윤동주가 시를 통해 나누었던 시간들이 그려진다. 스기야마는 그야말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문맹이었던 그가 검열관이 될 수 없었지만 그만의 특징인 글과 문장을 보는 날카로움과 냉철함으로 검열관을 맡게 된다. 젊고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 일년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은 간수병이며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 도잔이 처참하게 살해를 당한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정말 인상깊다. ' 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스기야마 도잔은 분명 '타살' 을 당했다. 그의 죽음은 살아 남은 자들에게 왜 누가 죽였는지 말해 주어야 하는데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니 감옥 밖으로 소식이 전해진다면 크게 번질 우려가 있다. 소장은 애송이 간수병 '유이치'에게 그 대신에 검열관을 맡으라 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라고 한다.과연 누가 왜 죽였을까? 그토록 무섭고 폭력적인 스기야마를.

 

"마음은 가들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거예요."

 

답장을 받아 쥐고 죄수복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자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의 겉모습이나 그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詩'를 전혀 좋아하지 않을 듯 한데 그의 안주머니에서 누군가의 시가 적힌 종이가 발견된다.왜 그가 시를 안주머니에 품고 있었을까? 스기야마는 그야말로 어린 나이부터 밖에서 굴러 다니며 성장을 하였기에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했다.그렇기에 그는 먹물들을 싫어했다. 그러니 그 속에 윤동주,시를 쓰며 감성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를 그가 좋아할리가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지음' 을 하듯 시를 통해서 서로를 읽고 마음을 나눈다.시로 교화가 되듯 서서히 도주가 쓰는 엽서에 길들여지듯 스기야마는 도주의 글을 읽으며 문학과 글과 시와 윤동주에게 빠져든다. 스기야마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피아노 조율도 누구보다 섬세하게 하는 인물이며 문맹이었지만 늦게 글을 배워 무서운 속도로 문학에 빠져 들었다. 욕을 달고 사는 인물이었지만 윤동주는 그야말로 그는 온 몸으로 시를 내뱉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욕도 시가 된다고? 이해할 수 없는 스기야마이지만 윤동주의 글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들며 감옥의 분위기 또한 젊은 청년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죄수와 간수병이다.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시詩는 말의 사원이지요.".......

 

"시는 영혼을 비추는 우물이에요. 우리는 어두운 영혼의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진실을 길어 올리죠. 그리고 시로부터 위로받고, 시로부터 배우며, 시를 통해 구원받아요." 

 

일본이 패하기 바로 전,그러니까 해방이 되기 전 해이니 감정이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해 있던 때라 간수병들이 조선인을 대하는 것은 처참했다.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처참하고 죽어 나가는 일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속에서 독방에서도 살아 남아 절뚝 거리며 걸어 나오는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아름다운 시와 함께 간수병과 죄수는 서로를 이해하며 글로 마음을 나누듯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한다. 하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죄수와 간수병이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대치 상태에서 서로에게 선을 긋고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스기야마의 죽음은 유이치에게 모든 것이 전임되며 그가 덮고 있던 것을 파헤쳐 나가는 형상이 된다. 윤동주의 시집을 불태워야만 했던 스기야마,그로인해 자책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라도 윤동주의 시를 외워 길이 남겨 주고 싶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울림을 주었다.그에게 울림을 주었으니 분명히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울림을 줄것이라 생각하는 정말 폭력적인 사람인 스기야마의 삶을 1권에서는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정명의 소설은 팩션이지만 진짜 이야기처럼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사실과 같은 이야기들이 휘감아 돌며 자꾸만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윤동주가 화자가 아닌 삼자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시인'을 그리고 있다. 그라는 인물은 형무소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스기야마의 생각처럼 그는 형무소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글을 정말 쓰고 싶어하는 젊은이에 불과하다. 그가 쓰는 글은 긴 글이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시킨다. 글의 힘은 대단하다. 폭력성이 강한 악마 스기야마를 변화 시킨것을 보면 그에게 정말 큰 힘이 있는 시인임에 분명하다. 비록 스기야마에 의해 불쏘시개처럼 한 줌 재로 변해버린 詩이지만 그의 시는 모두를 밝혀주는 불쏘시개나 마찬가지다. 2권으로 빨리 달려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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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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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란 부제의 이 책은 '사사키 아타루' 라는 작가의 강연이나 대담을 담아 놓은 책이다. 먼저 사사키 아타루라는 작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읽고 있어도 계속 수박 겉만 핥고 있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다. 그의 전작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 아무리 느낌이 좋은 책이라도 읽지를 않았고 모르는 작가이기에 그저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북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종교사학자이면서 힙합 작사가이기도 하고 소설까지 몇 편 쓴 작가인 사사키 아타루가 급부상 하고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하여 아무런 것을 읽어보지 못하고 마주하는 책은 '낯설음'이다. 거기에 철학 하면 정말 어렵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아무리 읽어도 '철학'이란 그 단어부터 어렵게 다가온다.

 

얼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아니 그의 작품을 조금 어려워하고 있어 잡문집을 읽고나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하여 신간인 <색채가 없는 다카키 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좀더 편하게 읽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사사키 아타루를 알게 된 작품이니 그의 다른 소설들을 좀더 편하게 만날 수 있을까? 그의 작품 한 편이라도 읽었다면 계속적으로 겉돌기는 하지 않았을텐데 대담을 읽는 시간내내 '이건 뭐지' 하는 느낌으로 어쩌면 그런면이 더 '생각'이라는 터널을 넓혀가는 시간이 되어서 모험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글에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들이 낯선 것들 뿐이라 한계가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그렇다고 철학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가 처음부터 작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고 논문이나 그외 다른 일들을 하다가 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는,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그는 이미 소설을 반 정도 완성해 놓은 상태라 더 이상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몇 편의 소설을 내게 되었고 그를 작가의 반열에 확실하게 올려 놓게 되었나 보다. '말 혹은 언어'라는 것은 '글'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무력합니다. 하지만 문학은 승리합니다.단순한 진리입니다.' 라는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힘이 없는듯 보여지면서도 그 속에 힘이 들었다고 본다. 펜의 힘은 강하다고 했다. 한정된 사람들이 보는 글보다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나 그외 글이 주는 힘은 '치열한 노력의 힘은?' 이라고 생각을 하며 읽어 보게 되었다. 그렇게 그 또한 수면위로 올라와 독자를 만나고 있으니 치열한 무력의 힘은 대단하다고 본다.

 

그의 글 중에서 다른 글보다도 '독서' 에 대한 글을 좀더 유심히 읽게 되고 기억에 남는다. 난 한번 읽은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고 한번 쓴 글도 다시 읽지를 않는다. 글쓰기를 배설처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한번 읽은 책을 여러번 다시 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다음에 또 읽어야지' 하는 책들이 분명 있는데 다시 접할 기회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읽을 수 없다면 쓸 수도 없습니다. 이때의 읽기는 필연적으로 ' 다르게 읽기'를 의미하죠.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똑같은 행위가 아니거든요. 쉬운 예로 제2장까지 읽고 졸려서 일주일 정도 내버려뒀다가 다시 다음 장부터 읽는 것과, 하룻밤 사이에 책을 다 읽는 것은 인상이 전혀 다릅니다. 시가에 따라 '읽기' 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마는 거죠. 당연히 개개인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물론 최저한의 수준은 존재합니다만.' 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는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책을 읽은 후에 다시 읽어봐야할 책이다.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하는 단어들은 그 단어자체로 참 난해하고 어렵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느낌도 '난해,낯설음' 이었는데 이렇게 '사사키 아타루'라는 인문학자이면서 힙합 작사가라는 그를 알게 되었으니 그의 작품들과 대면할 때는 '낯설음'은 아마도 '설레임'과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치카와의 말에서 ' 제가 사사키 씨의 백미는 첫째로 <야전과 영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잘 나타나 있는 '사람을 발정케 하는 문체의 힘' 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에 무방비하게 발정하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은 의심스럽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쓰면 일종의 미심쩍음과 함께 사람을 발정케 하는,매우 선정적인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라는 말처럼 '사람을 발정케 하는 문체의 힘'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을 한번 만나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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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 -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87
김선희 지음 / 사계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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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이 강한 것이 있다. 늘 마시는 차나 커피도 그렇고 다른것보다 유독 '매운맛'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나 또한 매운맛을 가끔 찾는다.그중에서도 매운불닭발은 정말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자주 먹는 게 아니고 정말 매운맛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고나서 개운함을 느끼고 싶을 때,마음이 편치 못하고 무언가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에는 한번씩 마트에서 파는 매운양념불닭발을 사다가 한 번씩 먹어준다. 그러면 땀을 뻘뻘 흘리고나서는 개운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 버린다. '더 빨강' 매운맛에 중독된 십대의 이야기,매운맛을 아니 인생을 맛을 알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매운맛에 중독되어야 하는지 현실은 그들은 녹록치 않게 만들었다.아니 현실이 아니라 몇 년 살지 않은 그들의 과거는 그들을 힘들게 붙잡고 늘어져 매운맛으로 무언가 날려 버리게 만들었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던 오십이 넘은 아버지는 어느 날 이삿짐을 옮기던 중 사고로 인해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게 되고 식물인간이 되지 않고 며칠만에 깨어난 것은 하늘이 도운 일인데 쉰이 넘은 아버지가 일곱살 아이가 되었다. 아들은 '큰형아,작은형아' 라고 부르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동생처럼 낮추어 말해야 하나 아님 아버지니까 존대를 해야 하나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말은 이상하게 꼬이고 집안도 꼬이게 되고 세상도 꼬이게 되었다. 재개발지역이라 이사를 가야하는데 보상을 받은 돈으로 엄마는 치킨가게를 차렸다. 형은 취업을 포기하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엄마를 도와 치킨가게에서 배달일을 한다. 중학생인 나는 '작은형아'가 되어 아버지를 보살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뭔가 단단히 꼬여도 정말 단단히 꼬였다. 무슨 이런 엿같은 세상이 다 있나. 어제까지 자신들을 무관심 혹은 폭력,폭언을 일삼던 아버비는 자신들을 형아로 아는 일곱살 지능의 어른아이가 되어 집밖에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매운 걸 좋아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거야. 어떤 사람은 그냥 좋아서 먹을 수도 있고,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 불만일 때 먹을 수도 있고,어떤 사람은 삶이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질 때 매운 걸 먹고 정신이 번쩍 들수도 있고."

 

무언가 풀어내야 했던 나는 '야동'에 심취해서 밤마다 야동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몽정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 온 여자가 있었으니 '오미령'은 친한 친구가 잘 알고 있어 친구를 구워 삶아 겨우 오미령에 대한 정보를 얻어 오미령이 운영하는 '더 빨강'이라는 이름도 야릇한 카페에 가입을 했는데 그 카페가 그러니까 '매운맛'을 찾아 매운맛에 중독된 이들이 함께 하는 카페다. 그들은 왜 매운맛에 중독되었을까? 아니 오미령은 매운맛이 뭐가 좋다고 매운맛에 중독된 것일까? 자신은 매운것을 정말 싫어한다.그래도 오미령을 위해서는 카페에 가입은 물론 매운맛도 서슴치 않고 먹으리라. 그러다 그들과 정모에 참여하여 매운맛을 보게 되었고 혹독한 신고식처럼 매운맛에 얼떨떨,불같은 매운맛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데 이 오미령이란 인물이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왜 그녀는 매운맛을 가장한 자살카페를 운영하는 것일까? 정말 그녀가 자살을 원하는 것일까? 자신과 같은 사람도 살고 있는데 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그녀들이 자살카페에 회원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길동은 미령이가 '먼 미래'라고 말한 시월의 마지막 날을 선생님께 밀고하고 싶지만 참고 그가 한번 그녀를 설득해 보려고 한다. 그런다고 길동의 집안 경제 사정이 풀린 것도 아니다. 일은 점점 더 꼬여 믿었던 형은 주식으로 모든 것을 날려 먹고 사라졌다. 엄마는 가게를 접듯 완전히 밑바닥을 치듯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아 버렸다.아버지마져 집을 나갔다 겨우 찾게 되었는데 그 순간 둘은 아버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한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아버지를 찾게 되고 다시 뛰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길동도 그렇게 다시 집안의 가장이 되듯 아버지를 책임지게 되고 엄마는 다시 치킨집으로 향하게 되었다.형도 어디선가 잘 견디어내고 있을 것이다.이런 현실도 견디어 내고 있는데 오미령을 포함한 더 빨강의 회원들이 왜 자살을 하려고 할까? 그들과 함께 동행을 하기로 맘 먹은 길동은 따라가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녀들의 자살을 막기로 한다.그런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들은 정말 '더 빨강'의 회원답게 '매운맛'에 확실하게 중독된 그들만의 맛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의 매운맛 중독이 와전되어 오해하게 된 것이 잘못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하길 얼마나 다행인가.덕분에 그는 오미령을 매운맛을 통해 알게도 되고 또 그렇게 둘이 연결될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람은 어쩌면 기억이 없을 때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거지. 네가 일곱 살 때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억이 네 삶을 붙잡아 두고 행복해지는 걸 방해한다면 그건 아니라는 거지.그 기억에서 벗어나든지 극복하든지.죽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거지."

 

어느 것이나 중독되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찮다고 생각한 것에 중독되는 것도 벗어나기 힘든데 매운맛은 특히나 중독성이 강해 빠져 나오기 힘들다고 들었다. 매운맛은 점점 더 강한 맛을 빠져 들게 되고 속이 버려도 또 다른 매운맛을 찾는 사람들,그 맛을 알기엔 조금 어리다 싶은 나이지만 그들은 인생의 맛을 알아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미령은 유괴를 경험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른 자기 해석을 경험하였고 길동은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가정이 와해될 위기에서 그래도 가족이 있어 모두 잘 견디어 나가고 있다. 가족이란 위기에서 더 끈끈한 무언가를 발휘해 하나로 묶어주는 듯 하다. 비록 형이 주식으로 재산을 날리기는 했지만 형도 분명 잘살아 보자고 시작한 일이고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지 나쁜 의도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지만 모두 잘 헤쳐나갈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개운한 그 시간이 오듯이 매운맛의 그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모두 지금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언젠가 다시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미령은 어린 나이게 '매운맛'을 보았다면 길동은 지금이 매운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고 그들이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부딪혀 이겨내려고 하고 있어 기특하다. 매운맛을 싫어했던 길동이 점점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지듯 현실 또한 그렇게 이겨내리라 본다. 꼭 그들 가족에게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목마가 힘차게 날아 오를 그 날이 올 것이다.'이랴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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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4 (완전판) -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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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소설을 오래전 15편 정도 읽고는 그동안 손을 놓았는데 늘 바라만 보면서 군침만 흘리다 잡게 되었다.추리소설 전집은 모든 책을 다 구비해 놓고 읽고 싶은데 오십여권이 넘었으니 조만간 더 장만하게 되지 않을까 하기도 하지만 해가 바뀌고 새해 계획으로 추리소설 전집을 좀더 많이 읽는다고 했는데 이제서 읽게 되었다. 이번에 특별부록을 '애거서 크리스티' 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듯 하는 책이 나와 두어권 더 장만을 했다. 그래서인지 책장만 바라보면 뿌듯하다.이제는 읽으면서 만족을 하길 바라며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나본 듯 하기도 해서 집어 보았는데 영화가 가물가물이다.2001년에 영화화 되었다는 보기는 했는데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는 남편이 고고학자라 그런가 이런 류의 소설을 많이 썼다. 역사발굴이 실감나게 그려져 더 재밌게 읽을 수 있고 그야말로 밀실트릭과 같은 곳에서 한정된 사람이 있는 가운데 '살인사건' 이 일어난다.그녀가 잘 사용하는 수법이다. 하지만 완벽한 밀실이란 없다. 사람이 만들어 놓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역사 발굴 현장인 바그다드,그곳에서 라이드너 박사는 부인을 위해서 레더런 간호사에게 함께 해줄것을 요청하여 레더런 간호사는 바그다드로 향한다. 라이드너 부인은 특별한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마성을 지닌 부인은 '불안,초조,강박증' 등에 갇혀서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이 부인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지목되지만 그녀 또한 남을 괴롭히듯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여자들에게는 적과 마찬가지인 존재이다.

 

그녀는 창밖에서 이상한 유령과 같은 존재를 보았다고 하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기도 하여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망상증 환자취급을 한다. 레더런 간호사가 옆에서 지켜본 라이드너 부인인 루이스는 아름답고 지적이며 망상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그런 그녀에게 말못할 과거 비밀이 있었던 것.어린 나이게 결혼한 남자가 간첩으로 몰리고 그녀는 남편을 애국심에 나라에 넘기고 그는 총살형을 받아 죽는다. 죽은 남편에게서 협박의 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던 것인데 남편이 죽었다는 것인지 안죽었다는 것인지 아님 남편의 동생이 남편의 행세를 하는 것인지. 암튼 그런 자신의 과거를 레더런 간호사에게 털어 놓은 그녀는 조금 냉랭한 가운데 어느 날 낮잠을 자러 들어가고 간호사는 자신의 방에서 책에 빠져 있던 사이 그녀가 살해 당한다. 자신의 방에서,완벽한 밀실과 같은 곳에서 말이다. 누가 그녀를 어떻게 살해한 것일까? 왜?

 

이 사건을 에르퀼 포아르가 우연하게 이곳을 지나게 되어 수사하게 된다. 포아르의 옆에서 조수역을 잘해내는 레더런 간호사,그녀는 그녀만이 가진 냉철함과 날카로움으로 포아르의 수사에 도움을 주기도 하며 그녀 또한 그녀 나름 사건을 조립해 나간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발굴단 숙소는 그야말로 요새와 같은 곳이다. 누가 들어 온 흔적도 없으며 들어 올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잠든 방 안뜰에서는 토기를 닦는 이가 계속 붙어 있었으니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러 들어가거나 나올 때 분명 눈에 띄었을 터인데 외부인의 출입도 없었을 뿐더러 이상한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요새와 같은 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발굴단 사람들이니 그 속에서 살인자가 있는 것이다. 포아르의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조립해 나간다.그렇다고 피의 혈액형을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편지의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 조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사건의 정황을 그림을 그리듯 풀어 나간다. .

 

그 속에서 발혀지는 발굴단 개개인의 심리묘사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그런가하면 '살인은 습관'처럼 처음 살인사건을 덮어씌우듯 두번째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을 한다. 그 역시나 레더런 간호사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사건의 단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잘 포착을 해내지만 죽음만은 막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두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사건은 커다란 틀을 만들어 나가고 증인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저마다 속에 숨기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 수면으로 떠 오르면서 평화롭게만 보였던 발굴단의 진흙탕물과 같이 더럽게 변한다. 레더런 간호사와 에르퀼 포아르가 한 팀이 되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기도 하지만 이 사건기록은 레더런 간호사가 써 내려간 것으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그런가 하면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남편이 고고학자라 그런가 중세 역사 발굴 작업 현장이 사실감 있게 잘 그려졌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은 이렇게 한 권을 읽으면 다른 책 내용이 궁금해서 빠져들어 중독되게 된다. 읽지 않았을 때는 바라보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하다가 한번 집어 들면 급류에 휩쓸리듯 자꾸만 찾게 되는 마력은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녹슬지 않고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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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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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첫만남이 나쁘지 않다. 이름을 기억해야 할 듯 하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욕망'이라는 나쁜 괴물이 하나 살고 있다. 사춘기라는 그러지 않아도 2차 성장으로 인해 한참 여러모로 힘든 시기인 소년과 소녀 그들이 자신안에 존재하는 욕망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라 그런가 술술 넘어가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한참 분신사마라고 해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계약과 같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돌기도 했지만 알음이와 소희라는 소녀는 폐가에 가서 '계약'을 한다. 그것이 분신사마와 흡사한 행위인데 계약자와 계약을 한다는,그것이 알음이가 아닌 소희가 자신의 짝사랑과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계약이었는데 계약자가 낮잠이라도 잔 것일까 계약을 한 소희가 아닌 알음이에게 나타난 것이다.어떻게 보면 엉뚱한 계약이다.

 

소희는 첫사랑과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비는 사이 알음이는 자신의  친아빠의 정말 어처구니 없는 오지랖의 끝인 아빠의 아이인지 정말 위기에 처한 아이를 데려 온 것인지 모를 다룸이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빈다. 다룸이가 집에 오면서 그야말로 자신은 찬밥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불행이 터널로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아빠의 오지랖을 참고 참았던 엄마도 이번 오지랖은 더이상 참아 줄수 없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마가 사라졌다. 할머니가 와서 집안일을 거들며 다룸이를 돌보지만 아빠란 존재는 정말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이해할 수도 이해가 가지도 않으면서 아빠로 인해 피해를 보는 가족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온통 알음이를 궁지에 몰아 넣고 있는 사이렌,다룸이만 없어지면 만사형통이련만.

 

그런데 그 계약자가 자신에게 나타난 것이다. 계약자인지 몰랐는데 괴물과 같은 시커먼 존재가 그녀에게 나나난다. '보려는 대로 보이는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라.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남의 것도 될 수 없다. 사라진 것을 찾지 마라. 혼자가 되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넌 나다 나는 너다.' 라는 계약과 함께 그녀의 남자친구도 생기고 반에서 모두가 기피하듯 하는 친구가 눈에 보이기도 하고 부딪히는 경우도 생기지만 나비에게 호기심도 생긴다.그러다 소희와는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만다. 신율과 자신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다보니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를 뺏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신율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의 아픔을 나누며 자신의 현재도 들여다보게 되고 점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계약자의 정체 또한 확연해 진다.

 

계약자의 실체는 무엇일까? 계약자는 바로 자신안에 웅크리고 있는 욕망이라는 괴물이다. ''넌 나다,나는 너다'라는 말처럼 계약자의 존재는 바로 자신이었다.자신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만나게 되는 많은 일들을 통해 성장통을 겪게 되는 알음이와 그리고 그의 친구들 이야기는 사춘기 때에 한번씩 가져볼 수 있는 마음을 잘 표현해 낸 듯 하다.그런가 하면 자신의 세계에 그 누구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것이 그시기의 소녀들의 마음이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집안의 위치를 다룸이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가 와서 모든 것을 차지하며 빼앗아가자 어린아이를 쿠션이나 베개로 질식시켜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자신을 지배해 버리는 욕망이라는 괴물 앞에서 엄마가 사라진지도 모르고 자신안에 갇히게 만든다.

 

결국 자신안에 있는 욕망이라는 실체와 싸워 이겨내면서 그동안 그리지 못하던 그림도 그리게 되고 엄마도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만 이성친구도 동성친구도 좀더 넓은 눈으로 바라보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성장을 하는 알음이가 대견하게 그려진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가족간에 대화가 부족했다. 오지랖 넓은 아빠와도 충분한 대화를 했다면 사이가 멀어지지도 않았을 터이고 엄마가 집을 나가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았을터인데 이 집안은 대화가 조금 부족했다. 이 시기는 부모와 대화를 하기 보다는 친구와 더 많은 대화를 하는 시기다. 그래도 안방문을 가끔 자신있게 열고 부모와 대화를 하는 그런 알음이가 되길 바래본다.

 

그런가하면 율이네 또한 형의 죽음 이후 가족간의 대화가 단절될 듯 하다. 율과 쌍둥이 동생인 나비와의 대화도 그렇고 서로 각자가 홀러서기를 하고 있다는 부분이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런 큰 아픔 뒤에는 가족 모두가 견디어 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서로가 그럴수록 더 대화를 많이 나누고 가슴에 고인 것을 풀어내야 하는데 아직도 모두의 가슴에 고여 아픔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혹은 율과 나비만이라도 서로 남남처럼이 아니라 가족으로 얽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화의 부족에서 오는 가족간의 비극은 정말 많다. 할머니와 알음이도 대화를 더 많이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안에 있는 계약자와 싸우느라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서로 대화의 단절이 부른 아픔이 곳 곳에 있는 듯 해서 마음 아팠다.그래도 욕망이라는 실체와 당당히 부딪혀 싸웠다는 것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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