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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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에 기억되는 것은 많은 것이 있겠지만 '사람과 음식' 으로 오래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잊지 못할 사람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다면 그곳은 더욱 잊혀지지 않고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오래도록 그곳을 놔누지 않게 된다.그런가 하면 그곳의 모든 것은 다 잊었어도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의 맛'으로 또한 오래도록 기억되는 여행이 있다. 먹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여행을 가면 꼭 옆지기에게 듣는 말이 있다. 나 때문에 그곳의 음식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다는, 잘못 먹으면 탈이 나서 고생하는 경우가 있어 꼭 끼니마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지,아니 소화를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또 그게 몹시 싫다. 못 먹고 소화를 못 시킬것이 없는데 그렇게 한번씩 짚고 넘어가면 그게 또 맘에 걸려 기분이 상한다.기분좋게 먹으려고 했다가도 기분이 나빠 소화를 못 시키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일단 그런 이야기 모두 빼고 기분 좋게 먹어보자고 늘 말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먹거리를 기분 좋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찾아가서 먹는 경우도 있고 어찌하다 우연히 들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맛을 찾게 되는 기분 좋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에 쫓겨 밥시간을 넘기고 겨우 식당을 찾거나 먹거리를 찾아 들어가 허겁지겁 먹는 경우도 많다. 한 곳이라도 더 보려는 욕심이 빚은 화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어릴 때 남해여행을 갔을 때 보성녹차밭을 구경 갔던 경우,그곳을 구경하고 여유롭게 그곳 근처에서 맛난 것을 먹으려고 계획을 했다.당연히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겠지 생각을 했다.그땐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었으니 지금처럼 검색해서 바로 갈 수 있지 않았다. 며칠 여행이라 차에 간단한 먹거리와 김치 간식을 가지고 다녔지만 식당이 없어 식겁했다. 밥시간도 한참 늦었고 생각했던 식당도 없고 할 수 없이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사서 아저씨께 부탁해서 주전자에 끓인 녹차물을 얻어 컵라면을 추운 휴게소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또한 지금은 추억이 됐고 무척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음식이 주는 '포만감'이라고 할까? 포만감이란 많이 먹고 배불러서의 포만감이 아니라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자신이 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느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타지를 여행하는 입장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할 수 있는 음식이란 그리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타지를 여행하다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고향의 음식,엄마의 손맛이 자꾸만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런 속에서 함께 머물렀던 사람의 슬픔도 나누게 되고 그땐 알지 못했지만 자신 또한 그런 슬픔과 대면하게 되면서 그 슬픔을 정말 최고의 음식아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감자볶음' 하나에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주는 미각적이면서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하는 이들과의 이야기를 참 감성적이면서도 맛깔나게 썼다.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남긴 텅 빈 도시의 저녁, 오늘은 그날과 닮았고 그날 혼자 먹던 그것을 나는 오늘 또 혼자 대면하고 있다.하지만 그날과 오늘이 간격은 아득하고 그곳과 이곳은 지구의 반대편처럼 아득하다.  시간을 메우고 거리를 메우는 것에는 많은 양의 추억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다가올 것이 아닌, 이미 지나간 슬픈 추억은 허기지지 않다. 그저 만두처럼 덤덤할 뿐이다.

 

그의 여행이야기에서는 외로움도 고독도 뚝뚝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고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늘 사람과 음식이 함께 있고 외로움을 혹은 슬픔을 음식으로 채우며 허기진 외로움을 달래듯 고향의 맛으로 달래주고 있어서다. 고향에 가지 못한 그에게 전해진 커다란 만두,아니 힝카리는 우리네 만두와 닮아 있지만 고향에서 먹던 그 맛하고는 다르다. 고향의 맛을 먹고 싶다. 만두국을 끓이기 위해 비슷한 재료를 찾고 무가 아닌 사과를 넣고 달콤한 만두국을 끓여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가족' 의 정을 느끼면서 먹는 만두국의 맛은 또 감칠맛나게 그것이 비록 고향에서 먹던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라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은 달콤한 맛으로 전해진다. 여행을 하다보면 전문 셰프보다 더 요리사에 가깝게 변하고 현지의 요리와 우리의 요리가 합쳐져 퓨전 요리가 탄생하는 듯 하다. 그 속에서 타지지만 가깝게 고향을 느끼고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 달달하게 전해진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렇듯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을 예상 했던 것처럼 대면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을 기꺼이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일,그리고 그것을 당해내거나 덤덤하게 일상처럼 살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 발로 이곳을 선택했으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여행'이 직업이 되고 그것이 일이 되었다. 누가 등 떠밀어서 떠난 여행도 아니고 나의 선택이었으니 좀더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일상처럼 충실하게 대하는 그의 이야기는 솔직하면서도 뭉글뭉글 나도 이런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느 한 곳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면 만났던 사람과 맛에 대한 이야기라 시간에 한정되지 않아 읽기 편하고 외로움이 혹은 고독이 '달다'로 표현되기까지 그의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감성적인 연애편지를 읽는 기분도 든다. 때로는 별거 아닌 음식으로 인해 소화시키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곤욕을 겪기도 하고 때론 분위기에 취해 기억해내지 못하는 지난 시간으로 인해 갸웃뚱 하면서도 못내 그 시간을 되새겨보면 행복하기만 시간들,그것이 여행의 추억이고 기억이 아닐까.분명 여행은 일상에 익숙한 것을 경험하려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낯설고 음식도 낯설고 모든 것들이 낯설다. 그 낯설음이 달달함으로 전해지기까지 여행이라는 일상이 점점 그에게 편안한 옷이 되어 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유명한 여행지를 여행해서라기 보다는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과 맛이 있다는 것이 참 기분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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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전은주(꽃님에미)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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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으로 지난 이월에 올해 대학생이 되는 두 딸들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제주여행'을 2박3일 다녀왔다. 제주란 곳이 2박3일로는 정말 터무니 없이 맛만 보는 여행이 될 수 밖에 없는, 모든 곳을 다 가고 싶고 느끼고 싶고 정말이지 한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란 것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큰딸은 고등학교 때 '싸스' 때문에 해외여행이 취소되어 부득이하게 제주여행을 가야 했고 막내는 일본여행을 다녀왔기에 제주를 가지 않아서 꼭 한번 함께 올레길도 걸어보고 느긋하게 제주여행을 해보자고 한 것이 시간에 쫓기어 겨우 여행일자를 잡고 코스도 제대로 짜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훌쩍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는 날 오전에만 조금 반짝 하다가 점심경부터 안개비처럼 내리더니 급기야 앞도 보이지 않는 날이 되어 오후 5시가 안되었는데도 캄캄하여 초보인 육지인은 길을 잃기에 딱 맞춤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날은 화창해서 제주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무척 남는 여행이 되었고 딸들은 '이제 자주 제주여행 갑시다' 로 굳어졌다.

 

 

 

올레길도 걸어보지 못했고 해안도로도 눈 앞에서 그냥 지나쳐야 하는 '변수'들이 많이 생겨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하자고 여유롭게 다녔던 제주여행,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마음이 구석구석 느껴진다. 어른들만 여행이라면 금방 준비하고 나설 수 있지만 그것도 스물고개에 들어선 딸들과 여행이니 녀석들 시계에 맞추어야 한다. 스물이라고 해도 준비하는 것에는 애나마찬가지,늘 우리가 먼저 준비하고 넉넉하게 기다려주어야 서로 얼굴 찌푸리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스케줄을 빡빡하게 잡아 놓으면 항상 생기는 '변수'에 의해 조급함만 생기기 때문에 옆지기에게 그런 마음을 모두 버리라고 했다.우리가 지금 제주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모두 함께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했다.제주의 바람을 느끼고 제주의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 됐고 더 감사한 것은 좋은 곳을 한 두곳이라도 더 다닌다면 행복한 것이라 여기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하자고 했다.욕심을 부리면 또 탈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하는 제주 한 달 생활이 아닌 '아홉살 딸과 다섯 살 아들'과의 제주 한 달 생활은 쉽고 재밌고 즐겁게 표현해 놓았지만 힘든 상황들이 정말 많았으리라 본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또한 중고등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이 아니라 더 즐기는 여행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나 또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가족여행을 조금 더 많이 다녔다. 아이들이 기억하건 기억하지 못하건 시간이 허락하면 그때는 그냥 떠나자고 하면서 자유여행을 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거나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에도 쫓기고 '사춘기'라는 고약한 친구가 찾아와 부모와 함께 하지 않으니 그 전에 한곳이라도 더 여행을 하자며 서둘러 여행을 다녔다. 아이들은 나중에 여행을 다녀 온 곳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곤 했는데 그것도 잠시인가보다.이제 크고 나더니 그 때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이 정말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며 그런 여행을 가보자고 하지만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란 정말 힘들다.

 

 

 

아이들이 어려서 더 가능했던 여행이고 아이들이 어리니 바닷가에서 도서관에서 하는 시간들이 많아 경비가 더 절감되는 이유가 되었으리라. 여행 경비나 그외 것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난 엄마가 그런 시간을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정말 돈주고는 사지 못하는 귀중한 경험을 해주게 하였다는 것을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 어느 부모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는 학원이나 그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정말 대한민국 부모라면 이런 여행을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하면 '뒤쳐진다'라고 생각하여 불안해 할텐데 그보다 더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함으로 하여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얻는 자신간을 키워준 듯 하다. 분명 어린시절의 이런 소중한 경험은 훗날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밑바탕이 되어 나타나리라 본다. 꼭 그래서 선택한 여행은 아니었겠지만 정말 저학년 부모들이 한번은 꼭 읽어보고 내 아이에게 무엇이 옳은 일인가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래본다.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정말 밝은 모습이 자연에서 건강하게 뛰어 놀고 창조하고 발견해 내는 무한 가능성이 보여진다. 학원에 보내서 수학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게 한다면 좋기야 좋겠지만 그나이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실천한 듯 하여 재밌게 그리고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어릴적에는 방학이라고 하면 정말 외가댁에서 한달을 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제주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은 세상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우리도 아이들이 다 커서 곁을 떠나게 된다면 이런 방법으로 살아보는 것은 또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제주의 속살을 보는 듯하여 너무 좋았다. 가족은 좀더 가까이에서 부대끼다보면 더 정이 들고 우애도 깊어진다. 그것이 아이들이 커서라면 싸우게 되는 일도 많겠지만 어린시절에는 더 많이 챙겨주고 위계질서가 잡히는 듯 하다. 큰아이에게서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도 있는 것을 나 또한 경험했기에 큰아이가 때론 엄마몫을 하며 동생을 잘 챙겨나가는,그야말로 여행을 통하여 서로 더욱 돈독한 가족애를 느끼고 공감대를 가졌다는 것이 부러움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여행은 정말 이야기거리가 많다. 점점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사춘기라는 고약한 친구가 찾아오면 부모와 이야기는 커녕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하고 정말 남과도 그런 시간은 없을 것만 같은 서로 개개인의 여행을 하게 된다. 사진 한 장을 찍으려 해도 빌고 빌고 또 빌어서 겨우 찍거나 찍어도 부모 맘대로 못한다. 저희들 맘에 들어야 무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표정 장난감이 없어도 자연에서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며 낯선 아이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이'는 아이들이다. 그런 것에서는 어른들도 정말 배워야 한다. 나도 그렇지만 부모는 교육적으로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숟가락으로 넘겨 주려고 한다.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찾고 어른들과 눈높이가 다르고 호기심이 다르고 중요도가 다르다. 그런 속에서 제주의 속살을 너무도 건강하게 잘 적응하고 보여주고 즐기고 한 아이들이 고맙고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내 주어 언제 나도 이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로망을 갖게 만들어 준 저자의 글쓰기도 참 부럽고 내가 알지 못했던 제주의 가고 싶은 곳을 많이 알게 해 주어 고마운 책이다. 다음에 제주여행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곳도 생겼고 '늦은 때'란 없는 것 같다. 내가 우리 딸들에게 못 해 주었다면 언제 함께 좋은 시간 함께 마련하면 된다. 그렇게 제주를 또 한번 건강하게 즐기고 싶다.관광여행지 제주보다 아름다운 제주를 느끼게 해 주어 고맙고 읽는 동안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제주를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이년전의 이야기에 이년후의 이야기가 더해져서 더 알찬 이야기로 나온듯 한데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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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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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템포 쉬면서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불행한가?' 난 생각도 해보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재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니까 살고 있다. 행복과 불행은 정말 백지 한 장 차이고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차이다.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 있고 불행이 될 수 있다. 파랑새를 찾아 떠난 아이들은 파랑새가 늘 자기들과 함께 했다는 것을 고난의 시간을 겪은 후에 알아 차리게 된다. 우리하 흔히 찾는 '네잎 클로버'의 행운은 세 잎의 무수한 '행복' 속에 어쩌다 나오거나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다. 행복을 지나서 행운이 오는데 우린 늘 그 어떠다 오는 '행운'에 더 목을 매듯 한다. '나 지금 행복해' 라고 큰소리로 말하거나 생각하면 행복하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올해의 화두는 '행복'이란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장식하는 것도 방송에 등장하는 것들도 그리고 출판물에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들어간다. 왜 행복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그동안은 우리가 불행했다는 것인가? 이 책 또한 한번의 방송으로 인해 들불처럼 서점가및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화두'처럼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화려하게 등장했던 프로는 몇 번 맛을 보기도 전에 폐지되고 말았다.책과 관련된 프로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정말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인지.대학가나 학교주변을 가보거나 우리집 또한 옆으로 앞으로 주변이 모두 초중고등학교이지만 서점은 겨우 한두곳이다. 먹거리와 술집이 더 많다. 그것도 서점은 겨우 가끔 드나드는 사람들에 지하에 있어 서점이 있는지 잘 모른다. 한 편으로는 이 책이 좀더 많은 이들에 책에 관심을 갖게 해줘서,아니 '행복'이라는 것을 좀더 생각해 보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요즘은 '행복' 보다는 '힐링'이라는 말이 더 대세이기는 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들은 무엇을 해도 '힐링' 이 되는 것을 원한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만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난 남들이 '죽을 고비' 라고 하는 내겐 좀 큰 사고를 몇 번 당했다. 산행사고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교통사고로 인해 살아 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면 작년에는 수술후유증으로 즉음 직전까지 갔다 왔다. 그렇게 죽음에 임박해보니 내 나머지 삶은 '감사'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많이 해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꾸뻬 씨 또한 강도들에게 차를 빼앗겨 벽장에 갇혀 죽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는 조금더 자신의 삶에 의연해진다. '행복'에 대하여 한차원 더 발전된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늘 건강하다고 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오늘의 모든 일들은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뻬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무엇보다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는데,그 이유는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타인에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나 스스로가 느끼고 만족해야 한다. 행복이란 많이 가진 자보다는 부족함으로 문명이 덜 발달되거나 도시보다는 시골의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지수가 높다고 한다. 언제가 '행복지수' 에 대한 다큐프로를 본 적이 있다. 많이 가진자들은 남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오늘 더 열심히 일한다. 그것을 가지기 위하여.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것을 가졌다고 그것이 행복일까? 목표달성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높은 곳이 아니라 나보다 낮은 곳을 보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더 느낀다. 사람이 위를 쳐다보면 살 수 없지만 아래를 보면 살아갈 용기와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내가 현재 불행하고 살아갈 이유가 없을 때 한번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라.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사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몇 마리의 물고기와 하루 두 번 끼늘 이울 수 있는 것도 행복으로 여기는 이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행복지수는 그들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정신과 의사가 더 많은 걸까? 이런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꾸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꾸뻬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꾸뻬 씨는 정신과 의사이기에 많은 이들을 더 많이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만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 또한 '과부하' 상태가 되고 뭔가 다른 '행복'을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가 여행에서 만나며 적는 수첩에는 진료실에서 느끼지 못했던 살아 있는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며 경험하고 느끼며 '행복' 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를 찾아 가듯 하나 하나 늘어가는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은 다 다르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행복에도 정답은 없다. 하나 하나 행복을 느끼는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꼭 정확한 정답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모든 것이 다 함께 작용을 해야 할 것이다. '풍요속의 빈곤'처럼 가진 자는 더 가지고자 함에서 현재가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행복은 남과 비교하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자신을 받아 들이고 봐야 하며 현재에 행복을 느끼기 보다는 우리는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어야 비로소 그때가 행복했었구나 하고 느낀다. 행복은 먼 미래의 것이 아니다.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것을 좇아가지 보다는 현재를 받아 들이며 본다면 소소한 것들 모두가 행복이다. 나에게 '오늘'은 별 의미가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제 죽은 자에게 그토록 원하던 '오늘'이다.그런 생각을 하면 값지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노승은 꾸뻬에게 태고적부터 있어 온 한 가지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고 있었다.그것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져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준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근원적인 행복감이었다. 이 근원적인 행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지만,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세상에서 얻는 다른 모든 행복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우연하게 찾아 온 '행운'을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에게는 행운과 행복이지만 그보다 더 나은 경험을 했던 사람에게는 현재가 불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목표를 세우고 주머니를 어느 정도 채운다고 그것이 행복달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족은 또 다른 목표물을 찾아 나설 뿐이다. 자신의 주머니에 채우기 보다는 주머니 안에 채운 것을 남들에게 베풀 때 거기에서 얻어지는 행복은 돈으로 값을 따질 수가 없다. 약간은 동양적이고 철학적으로 풀어가기도 했지만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보게 하기도 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현재를 즐겨라' 난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내가 즐겁고 현재를 즐긴다면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되는 것이다. 행복 그 정답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가,그렇다면 꾸뻬 씨와 함께 여행을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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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해 - 개그맨 김영철의 톡톡 튀는 도전기
김영철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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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영철에서 이젠 작가 김영철 번역가 김영철이 되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다른 어떤 직업에 관한 수식어 중에 '개그맨'이란 것이 정말 잘 어울리고 우리에게 익숙하다.그런 그가 '영어정복'으로 인해 얻는 또 다른 꿈의 도전과 꿈을 이룬 이야기는 정말 그의 부단한 노력이 가져온 결과물이 아닐까? 난 그가 다른 곳보다 라이오에서 나와 자신이 그동안 영어에 기울인 노력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정말 놀랬다.강남에 있는 영어 학원이란 학원은 안가본 곳이 없이 모두 가 보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어디가 잘한다고 하고 그곳에 우르르 몰려 가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고 입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수강생들이 몰린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정해진 선생님은 없다는 것이다.물론 학원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에게나 배울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 가 보고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자신에게 맞는 영어학원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1만 시간의 법칙,하루에 세 시간 일주일에 이십시간 그것이 십 년이면 꿈을 이룰 수 있다' 는 일만시간의 법칙이 그를 움직였다. 아니 지금도 누군가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꿈을 이루지 못해다고,실패했다고 하면 '일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여 보았는가?' 하고 묻는다. 정말 일만 시간이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것은 물론 '끝 없는 노력' 에 비유한 말일터지만 그와 같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직장을 십년 다녀도 슬럼프가 오고 주머니 안에 '사직서'를 몇 번을 꺼냈다 넣었다 할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꿈을 향해 그렇게 노력하라고 한다면 끝까지 노력을 하는 사람보다는 중도 포기자가 더 많을 것이다. 그는 개그맨이지만 자신이 직업과는 멀거라 생각한 '영어'를 접하면 제2의인생을 살고 있다. 작가 번역가 강의,그것은 그가 개그맨으로 가져보지 못할 직업군이지만 '영어'라는 새로운 꿈을 향하야 일만 시간이라는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의 노력을 기울인것 같은 그의 노력으로 일군 또 다른 세상이다.

 

"영철아,너는 선배들을 보고 배우려고 하고 또 부러워하느라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네 밑의 후배와 동생들은 너처럼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자신이 아닌 다른사람을 흉내 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듯 자신의 본모습이 진짜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부분을 보았다. 그런 그에게 유재석 선배의 말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누군가는 자신을 흉내내는 것이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 하여 자신이 한번 더 기억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다시 흉내를 내는 사람도 보았다. 늘 웃음만 주는 개그맨인줄 알았던 그에게도 굴곡이 있고 웃음 뒤의 세상이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이미지로 그려질 때 그는 또한 어떤 마음일지. 그런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너무도 멋지게 그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가 나오는 프로는 조금더 신경써서 보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 들이 많으면서도 지금 한창 20,30대에게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 하며 그들에게 충고 아닌 충고도 아낌없이 해주는 듯 하여 기분좋게 읽었다.

 

그가 번역한 <치즈는 어디에?> 라는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꼭 한번 기회가 되면 읽고 싶다. 그 또한 모든 것이 '우연과 같은 기회' 였다. 서수민PD의 말을 듣고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코미디언 페스티벌'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손미나 전 아나운서가 준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는가 하면 코미디언 페스티벌에서 영어로 하니 귀가 열리지 않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고 거짓 액션만 취하다보니 자신 또한 모두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국제적인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것에서 그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시작되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 온다고 하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것이 내게 온 정말 값진 기회구나' 하고 기회를 정말 잘 활용하여 자기것으로 만들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같은 밥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매번 다른 밥상이 들어온다.아마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또한 그렇게 올 것이다. 좋았더 과거의 기억과는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그래서 번쩍 하는 황홀한 순간이 지금 왔는지 아직 오고 있는지 잘 구별되지 않는 모습으로.

 

다양한 부분에 멀티적인 멘토를 가지고 있는 그,그런가 하면 선배들의 이야기를 그냥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어 다시금 되새김질 하는 그는 분명 '노력형' 이다. 하지만 꿈을 향해서는 '현재진행형'이다.아직도 그의 꿈이 어디까지인지 다 드러나지 않았다.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개그맨으로 안주하고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더 크게 더 다양하게 펼치며 자신의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그 한계에 도전하는 개그맨 같다. 분명 이런 부분은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노력해보지 않고 실패를 포기를 너무 쉽게 일삼는 친구들이 많다. 1박2일을 촬영하며 '영어 과외' 때문에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방송보다는 어쩌면 '영어'에 더 열심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두마리를 다 놓치게 되는 경우가 아닌 두마리를 아니 그 이상의 토끼를 잡는 경우처럼 어느 프로에선가 나와 왜 영어였냐는 MC의 질문에 자신의 '개그 리액션과 영어가 너무 잘 맞았다 ' 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다른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것을 하다보니 또 다른 꿈을 이룬 것은 아닌가 본다. 하지만 그 부분이 해외파도 아니고 그야말로 토종으로 이루기엔 힘든 일임을 안다. 그 밑에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했던 그의 진실이 있음을 안다.

 

"영철아, 지금처럼 사는 것도 좋지만 네가 꿈꾸었던 영어의 세계에서 한번쯤 가슴 떨리는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니?"

 

우리는 살면서 '가슴 떨리는 삶'을 살 수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얼마나 올까? 아니 그런 기회를 얼마나 만들며 살까?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 안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가며 가슴 떨리는 삶을 산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많이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멀리 보면서 만족하지 않아도 현재에 적응하며 길들여지며 살아간다. 자신의 꿈을 향해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것은 현재를 벗어난다는 어쩌면 불안과 근심을 낳을 수도 있어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분명 누구보다 '가슴 떨리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제의한 '강의' 난 그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누구보다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하고 포기를 했다면 또 다른 삶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즐기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새로운 꿈을 개척하듯 꿈을 이루어 가는 그의 이야기 밑바탕에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열정적인 독서'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겉모습을 보면 책을 읽지 않을 것만 같은 그이지만 책에 관하여 작가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부분에는 그의 감추어졌던 부분에 해가 들듯 방대한 독서량을 볼 수 있다. 계획하는 사람은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글을 보았다. 계획에 앞서 먼저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더 성공을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꿈을 이룰 계획만 무성하게 하기 보다는 지금 바로 행동에 옮겨 보는 것이다. '일단 시작해!' 늦었다고 시작할 때가 제일 빠를 때라는 말처럼 머뭇거리기 보다는 일단 시작해 놓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누구보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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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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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불확실성' 보다는 '확실성'에 더 안주하게 된다.하지만 아직은 '도전'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 가끔은 불확실성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경우가 있다. '안티프래질은 회복력 혹은 강건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회복력이 있는 물체는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진다. 이런 특징은 진화,문화, 사상,혁명, 정치 시스템, 기술 혁신,문화적이거나 경제적인 성공,기업의 생존,훌륭한 조리법,도시의 성장, 법률 시스템, 적도 지방의 삼림, 박테리아의 저항,심지어 지구상에서 인간의 존재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모든 것들의 배후에 있다..' 이 책은 <블랙스완> <블랙스완에 대비하라> <블랙스완과 함께 가라> 등으로 월가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상가로 불리는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의 전에 읽어봐야할 책이라 할 수 있다.

 

 

'블랙스완' 한참 유행처럼 번지던 때에 블랙스완에 관한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을 좀더 쉽게 이해했을 터인데 그와 관계한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블랙스완,예측할 수 없는 일. 즉 '구글의 성공'이나 '9.11테러' 같은 경우를 블랙스완이라 일컸는단다. 우리가 겪은 일로는 'IMF'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예측블가능한 일이지만 그 파장이 큰 일들이 과거보다는 현대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안티프래질'은 무엇일까? 그는 사상가라고 하지만 현대 경제영어를 잘 만들어내는 인물이기도 한 듯 하다.프래질은 '깨지기 쉬운' 확실한 것이라면 그에 반대되는 말로 그는 '안티프래질'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한다. 안티프래질은 불확실하면서 가변성을 가지고 시간이란 것을 좋아한다.

 

프래질은 고요함을 좋아하지만 안티프래질은 무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그리고 강건함은 이 두 가지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바람은 촛불 하나는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바람이란 것은 촛불을 꺼뜨리기도 하지만 모닥불이란 것은 바람으로 인해 더 크게 일어난다. 바람이라는 것과 시간이 필요하며 어느 정도로 살아날지는 불확실하다.이 책을 처음 펴 들고는 무척 갑갑하고 먹먹했다. 두께도 그렇고 경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괜히 벽에 막힌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건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읽다보면 깨닫게 된다. 경제용어들이 등장하고 철학자 사상이나 그외 여러 방면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생각보다 힘겹지 않다는 것이다. 재밌게 술술 읽아나갈 수 있는 책인데 왜 이렇게 두꺼울까? 1장이 아니라 '1권' 에서 1장 2장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게 7권까지 있고 용어해설과 부록까지 또 부담스런 분량이 존재하지만 이 분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레르나 호수에 사는 뱀처럼 생긴 생명체,히드라가 등장한다. 히드라는 머리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머리 하나를 자를 때마다 두 개가 다시 생긴다. 따라서 히드라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기를 원한다. 결국 히드라는 안티프래질을 상징하는 셈이다.

 

*블랙스완의 오류

예측을 요구하지 않는 접근 방식:어떠한 혼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정해놓은 원칙을 따른다. 따라서 미래의 변화에도 강건함을 잃지 않는다.

 

*트라이애드:프래질,강건함,안티프래질 세 개가 모여서 한 벌을 이룬다.

 

*프래질리스타:어떤 대상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때문에 프래질을 초래하는 사람이다.그들은 대체로 유머 감각이 부족하다. 의원성 질환에  대해서 살펴보라. 프래질리스타들은 때로 무작위성을 좋아하는 시스템에서 무작위성을 제거하고, 작은 실수를 좋아하는 시스템에서 이런 실수를 제거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프래질하게 만든다.

 

*바벨 전략:이원적인 전략으로서 하나는 안전하고 다른 하나는 위험한 두 개의 극단을 조합한다. 일원적인 전략보다 더 강건하며, 때로 안티프래질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회계사와 결혼하고 가끔은 록 스타와 바람을 피려는 전략,작가가 안정적인 한직을 갖고 남는 시간에 직업이 주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서 글을 쓰려는 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심지어 시행착오도 일종의 바벨 전략이 될 수 있다.

 

*비선형성,볼록성 효과: 비선형성은 볼록성, 오목성 혹은 두 가지의 혼합으로 구분된다. 볼록성 효과는 기본적인 비대칭성을 연장하거나 일반화한 개념이다. 부의 볼록성 효과는 프래질을 기술적으로 표현한 개념이고,정의 볼록성 효과는 안티프래질을 기술적으로 표현한 개념이다. 볼록한 곡선은 웃는 모습을 하고 있고,오목한 곡선은 찡그린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안티프래질,자기조지화, 자연 치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과거에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고 이런 특성을 숭배했다. 인간은 발전을 신의 섭리로 여겼다.또한 이런 신의 섭리가 없었더라면 스스로 자신을 보살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남편이 옆에서 묻는다. '안티프래질'이 뭐야? 글쎄 나도 확실하게 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회사원이다. 회사원은 프래질이다. 난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고 가끔 부동산투자인 집장만도 알아서 하니 안티프래질이라 할 수 있다. 불확실한 것에 더 도전을 하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우리집은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이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트라이애드란 것은 회사원인 남편인 프래질과 그 사이에 '강건함'이 있고 안티프래질인 내가 있는 것을 놓고 저자는 설명을 한다. 만약이 그렇다는 것이다. 프래질에서 강건함을 거쳐 오른쪽에 있는 안티프래질로 옮겨 가는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그는 사상가라고 하지만 폭 넓은 분야에 걸쳐 설명을 하고 예를 들어 보임으로 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지적호기심에 불을 지필 수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프래질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그가 예로 들은 정해진 자리가 있는 직장인과 보수가 정해져 있지 않는 책시운전자를 비교해서 설명을 한다. 밖으로 보여지는 것은 월급이 달달이 잘 나오기도 하고 정년이 보장 된 직장인이 안정적으로 보인다. 택시운전자는 하루 한 달 보수가 일정치 않기에 불확실한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로 직장인은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택시운전자는 나이가 들어서 자신이 운전대를 놓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수가 일정하지 않지만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보면 택시운전자는 안티프래질이며 미래를 보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당신에게 잠재된 이익이 잠재된 손실을 능가한다면,당신은 무작위성에 대해 안티프래질하다(그리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또 당신이 하강국면보다 상승국면에 더 많이 있다면, 무작위성과 스트레스가 부족할때 피해를 볼 수 있다.

 

안티프래질은 불확실성하면서 그에 충격을 가하면 그 힘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안티프래질을 '바벨 전략'이라는 용어를 접목하여 해설을 한다. 바벨이란 운동기구로 한쪽은 안정에 둘면 다른 한 쪽은 '불안정'에 둔다.두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바벨 전략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안정적인 것만 추구할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 듯 하다.불안정하고 불확실하지만 우린 가끔 이런 불확실성에 '도전'을 한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고 늘 회피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고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듯 하다. 구글이 이렇게 성공할 줄 누가 알았는가. SNS가 이렇게 하루 아침에 큰 시장으로 번성할 줄도 몰랐다. 바람은 촛불을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바람을 기다리며 활활 타오른다. 현대사회는 바람을 기다리는 모닥불이 어디에서 활활 타오를지 모르는 시대다.그런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모닥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시대다. 불확실하다가 회피하기 보다는 맞부딪혀서 그 힘을 느껴보는 것이다. 인생은 도전이다. 안전한 길만 찾아 걸어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안티프래질로 성장해 보는 것은 어떨지.이 책을 읽다보니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도전성이 고개를 든다. 하나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일을 현실로 이루어야겠다는 모닥불에 바람을 가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두께가 부담감을 주는 책이지만 읽다보면 생각과는 다르게 다양한 지식세계가 펼쳐져 재밌게 읽을 수 있어 저자의 '블랙스완'에 관한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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