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펭귄클래식 32
너새니얼 호손 지음, 김지원 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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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 죄가 먼저일까 진실이 먼저일까? 간음을 한 여인을 처형대에 세우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공개재판하듯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가슴에'간음이란 A' 라는 글자를 달고 다니게 한다. 하지만 그 글자는 그녀에게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글자가 되고 만다.왜, 그녀에게만 밖으로 들어난 '죄값' 을 치르게 한 것일까? 분명히 함께 간음을 한 상대가 있었을 터인데 소설에서는 밝히지 않고 숨겨 놓는다.아니 암시적으로 드러내지만 좀더 파고 들자면 헤스터와 함께 '그남자' 를 찾아 공개재판을 했어야 하는것 아닌가. 그시대엔 여자란 어떤 존재인지 소설은 잘 말해주고 있다.

얼마전 이 소설을 읽기전에 '마녀로 추정되는 미라 발견' 이란 글을 보았다. 마녀라는 존재가,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존재를 그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미라는 모든 것을 말해주듯 턱과 머리 윗부분에는 많은 못이 박혀 있었다는 글을 읽었다. 왜 마녀라는 존재가 그렇게 모두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했을까? 아니 여자들이 어떤 행실을 했기에 마녀로 취급이 되었을까? '세일럼의 마녀' 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마녀로 지칭된 여자들은 남자들이 주관하던 약초나 허브등을 가지고 병이나 의술을 행하였다. 그러니 당연히 집주변에도 허브나 그외 희귀한 식물들을 심어 놓기도 하고 아픈 사람들이나 산파역할을 했던 그녀들이라 늘 그런 사람들이 들끓었을텐데 그런 그녀들을 마녀로 취급하기도 했다는 이야기, 왜 여자라서일까. 부활을 막기 위하여 죽어서까지 못질을 당하고 똑 같은 죄를 저질렀어도 남자는 숨겨지고 여자만 드러나는 그런 세상에서 진정한 죄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과연 누가 A의 글자를 달아야 하는가?
누가 과연 죄인일까. 아니 A의 글자를 달아야 할 사람은 진정 누구일까? 죄의 씨앗을 낳은 헤스터 그리고 펄이 주홍글자에 주인공 A일까? 아니면 자신이 간음이라는 죄를 범했으면서 종교라는 허울 아래 숨어 있는 나약한 딤즈테일 목사가 진정한 죄인일까? 그도 아니라면 늙어서 철 모르던 어린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성불구자인 칠링워스, 늘 그들의 주변에서 복수를 행하거나 꿈 꾸고 있는 늙은 의사가 진정한 죄인일까? 그도 아니라면 헤스터와 펄을 죄인취급하며 구경거리로 내모는 시민들과 독자가 죄인일까? 헤스터는 간음을 하여 죄인으로 몰리지만 그녀는 펄과 오두막집에 떨어져서도 나약하게 주저 앉아 있지 않고 스스로 강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고 나누며 봉사를 하기도 하고 펄을 천사처럼 키우기도 한다. 간음의 죄값으로 받은 A라는 글자의 의미는 봉사하는 삶을 통해 천사라는 이미지까지 격상이 되지만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던 남자인 목사는 스스로 자신을 자책하고 나약하게 주저 앉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병약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늙은 의사 또한 복수심에 불타 더욱 혐오스럽고 추해진다.

죄란 무엇인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듯이 '죄가 없는 사람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는 뭐 이런 성격의 성경귀절도 있는 것을 보면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헤스터는 죄값으로는 너무나 큰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힘들어 하는 목사도 곁에서 지켜보고 자신의 전남편이면서 목사밑에서 그를 증오하며 고통에 떨게 하는 의사를 보면서 결코 숨기는 것이 최선책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는 '비상구'를 찾는다. 그것이 모든 것에서 도망이라는 것이라지만 그녀가 취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나 한다. 자신은 죄를 범했지만 자신의 딸인 펄에게는 그 죄가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온갖 것으로 치장을 하고 빛이 나게 하는 그녀,역시나 그녀는 어머니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무엇보다 강한 존재이다. 하지만 아버지인 목사는 나약함에 스스로 죽어간다. 만약에 처음 헤스터가 공개재판을 받을 때 딤즈테일 목사가 그 죄값을 달게 받겠다고 자신의 진실을 폭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늙은 의사 칠링워스가 헤스터의 전남편이라고 밝혔더라면 딤즈테일이 그토록 병약해졌을까? 드러난 죄보다 드러나지 않은 죄가 얼마나 무섭고 큰지 딤즈테일은 여실히 보여준다.

'이 세상에는 숙명 즉 거역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운명적인 힘을 지닌 감정이란 것이 있다.' 죄값을 받으므로 하여 감정을 잘 다스렸던 헤스터와 달리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무너져버린 딤즈테일, 감정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양심' 에 거짓으로 대할 수 없었음이었을 것이다. 목사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여야 했던 허울 좋은 감정이 7년의 긴 세월에 마지막 종지부를 찍으며 스러져 간 목사와 목사의 죽음으로 인해 그 또한 단번에 알맹이가 사라진 쭉정이처럼 되어 버린 늙은 의사 또한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들의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복수의 칼날을 갈고 진실을 숨긴 죄책감에 사로잡혔다고 해도 어느 순간 '진실'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다. '진실하라,진실하라,진실하라..' 라는 귀절처럼 청교도라는 허울아래 거짓과 진실이 뒤바뀌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인간의 양면이란 것이 때론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보면 그녀가 간음을 한것일까 아닐까? 성불구자이고 이미 끝이 난 늙은 의사와의 관계,아니 칠링워스가 자신의 신분을 미리 밝혔다면 일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일 죄값을 크게 받아야 하는 것은 늙은 의사인 듯 하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복수의 칼날만 간 간사한 늙은여우같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딤즈테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 보는 것, 복수가 삶의 의미와 존재이유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의 끝은 얼마나 허망한가.그렇다고 진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옳다고 볼 수 없지만 거짓과 진실 그리고 복수가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지배하는지,생과 사에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그 단면을 오롯이 보여준 듯 하다.'바로 이 애가 저에게는 주홍 글자라는 사실을 모르시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건 이 아이 하나뿐이거든요. 따라서 제 아이는 제가 지은 죄를 벌하는 엄청나게 큰 힘을 부여받고 있지요.'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고전,우려내면 낼수록 진하게 우러나는 그 맛을 새삼 다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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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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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컬링을 알게 된 것은 무척 오래 되었다. 한참 주목을 받기 전,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볼링과도 비슷하게 생긴 얼음판 위의 빗자루질 스포츠를 보면서 '재밌겠는데..' 라고 외치며 컬링을 알게 되었고 동계 올림픽 하면 '봅습레이'와 함께 '컬링' 을 챙겨 보게 되었다. 그리곤 한참 후에 좀더 대중화가 되었다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난 슬쩍 빠져 나오 듯 이젠 가물가물 하다. 아니 기억에 컬링을 좋아했던 시간이 존재했었던 것은 분명히 남아 있는데 아직까지 좋아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 컬링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동계종목이 사계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피겨스케이팅' 이 아니고는 그리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전문 선수가 아닌 고등학생들이 한다고 하면 누가 이해를 해 줄까.적어도 고등학생이라면 수능에 한참 매진해아할 나이이지 스포츠에 적을 두고 매달리면 어느 부모가 좋아할까.하지만 그들이 사춘기라는 성장통을 이겨내기 위하여 선택한 것은 '컬링' 인 비인기 스포츠며 그것도 혼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4명이서 함께 합동해야 하는 그런 게임에 빠져 들게 된 것이다.'왜?' 라고 묻는 다면 이유가 없다. '그냥' 이라서 '그냥 컬링' 이다.

피겨스케이팅과 컬링
우리나라에 걸출한 '김연아' 라는 선수가 나오고 피겨스케이팅은 비인기종목이 아닌 국민 누구나가 좋아하는 인기종목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스링크가 많을까 그렇지도 않으면서 세계인의 눈을 우리에게로 돌렸다. 그래서일까 을하의 동생은 '제2의 김연아' 라는 타이틀을 걸고 대전에서 서울까지,그것도 태능선수촌 앞 허름한 빌라로 입성하게 되지만 생활은 결코 화려하지 못하다. 연화의 뒷바라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엄마와 그런 가족과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했던,인형 눈을 붙이고 있는지 모를 아빠와 제2군 선수처럼 늘 변두리 인생처럼 취급당하고 있는 으럇차인 을하,하지만 서울에 왔어도 왕따와 같은 학교생활 그리고 서울생활은 영 정이 안간다.그게 을하의 현주소이다. 동생은 인기종목인 피겨선수라면 을하는 비인기종목이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컬링' 이란 것을 지각 세번 후 복도청소를 하다가 발탁되었다.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그런데 컬링이냐고... 비질이나 열심히 하는,그런것 돈을 주고 시켜도 하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하며 뒤돌아서지만 그에게도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비행과 우정
촌놈이 서울에 와서일까 늘 왕따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을하,하지만 컬링을 하게 되면서 아니 발탁이 되어 선수로 포함이 되면서,타의이지만 말이다.그에게도 친구가 생긴 것이다. 덩치가 곰같고 산같은  산적 강산과 멸치처럼 말라 비틀어진 며루치와 야구를 그만두고 강원도 오지로 아빠를 따라간 박카스, 그들은 인생 2군소속 선수들처럼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변두리 학생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적처럼 생활하는 운동장의 얼룩말 야구부 남궁최강,날 때부터 모든것을 손에 쥐고 나온 비행청소년과 같은 재단의 아들이다. 그가 야구를 하면서 그와의 마찰로 인해 강산도 며루치도 야구를 그만두고 컬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 하류인생처럼 불쌍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 듯 사는 남궁최강과는 반대로 산적 강산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마져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갔는데도 그많은 빚과 동생들을 떠 안고도 씩씩하게 알바를 해가며 잘 살아간다.덩치만큼이나 우직하면서도 세상을 미리 깨우쳐 가는 맏형같은 인물로 '그냥 컬링' 팀이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어 모두를 함께 우정이라는 이름아래 똘똘 뭉칠 수 있게 한다. 정말 속이 깉은 아이다. 하지만 늘 남궁최강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 들어 힘든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마지막엔 그가 한 일까지 덤태기로 모두 뒤집어 쓰고 경찰서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 또한 친구들이 모두 합심하여 그들만의 방법으로 일을 잘 풀어나가는 뚝심을 발휘한다.

인생은 고속도로일까 우회도로일까.
가끔 내 삶은 지금 어느 도로로 달리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니 길을 떠나기전에 미리 점검을 해 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쉽고 빠르고 누구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지에 도달할 수 있는 쉽고 빠른 길인 '고속도로'나 '지름길'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의 친구들은 지금 한참을 돌고 돌고 돌고 아니 굴러가고 비질하고 그렇게 우회도로를 선택하여 가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길이 결코 나쁠 수 만은 없다. 제2의 김연아라고 지칭하는 을하의 동생 연화도 보면 자신의 선택보다는 엄마의 욕심에 피겨를 하고 있지만 힘들다. 일주일에 한번씩 정신과에 가서 오만원의 침묵을 내려 놓고 오지만 중학생인 그녀가 헤쳐나가기엔 너무도 벅찬 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을하는 자신이 선택하진 않았지만 그냥 가다보니 '컬링' 이란 것이,자신의 현재 삶의 탈출구이면서 뭔가 막혔던 숨을 토해낼 수 있는 비상구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혼자서였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터인지만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동지' 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가정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넉넉한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문제아라면 문제아일 수 있지만 그들의 '컬링' 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컬링' 에 빠져들게 했을까. 찌찌리도 못나 보이는 츄리닝 감독이나 며루치 그리고 산적이지만 그들이 모여 점점 컬링의 한 팀원으로 거듭나면서 컬링이란 무언인가 그림이 그려져 나간다. 비인기를 인기로 만들고 있다. 그들 또한 제2군에서 1군으로 발돋음 하듯이 그들의 삶과 학교생활 모든 것은 컬링을 만나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달라졌다.이젠 무엇이라도 맡겨 놓으면 고랭지 감자밭에서 삼일만에 캤던 감자밭을 하루만에라도 캘 수 있을만큼 자신감이 붙었다. 꼭 삶이 고속도로만을 갈 수는 없는 것이다.우회도로를 선택하여 가게 되다보면 고속도로에서는 가지지 못했던 힘과 용기 자신감 그리고 좀더 삶은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상을 너무 일찍 밟은 사람은 하산을 서둘러야 하지만 오르막에서 고생고생해서 올라간 사람에겐 내리막 또한 더딘 것이다.삶 또한 그런 이치가 아닐까.

'딱 보면 감이 온다니까.넌 컬링 꿈나무야!'
며루치의 눈은 탁월했다. 장래의 처남이 되었으면 하는 으럇차를 첫 눈에 컬링 꿈나무로 낙점하는가하면 어떻게 그가 그런 열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읽으면서 혼자 얼마나 킥킥거렸는지,옆에서 있던 남편이 그렇게 재밌냐며 물어본다. 어찌알까.재밋으면서도 씁쓸한 현실을 보는 듯 하여 쓴 맛이 느껴진다는 것을. 한참 내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고 비슷한 또래여서 일까 그들의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정말 씁쓸했다. 왜 현실이 이렇게 승자만 기억하고 있는 자만 행세하는 세상이 되었는지,아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정말 컬링은 루저의 스포츠일까. 바닥을 비질해 본 사람만이 더이상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지 않을 것만 같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바둥바둥 할 때가 제일 힘든데 그들은 지금 바닥을 비질하고 있다. 그들의 인생이 나아갈 길을 비질하듯 먼지 하나 남겨지지 않게 비질하며 모난 돌이 구르고 구르고 굴러서 둥근 돌이 될 때까지 지금 돌을 굴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먼저 결승점에 도달하느냐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많이 구른다고 이끼가 낄까 때가 낄가, 좀더 구르고 좀더 돌아간다고 해도 늦을 건 없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열정을 다한다면 그것이 참 된 삶이라 본다. 만년 2군은 없는 것이다. '그냥 컬링' 이듯이 그냥 선택한 길이 내 옷이 될 수 있고 내 인생이 될 수도 있다.자신이 얼마만큼의 열정을 쏟느냐가 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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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이긴 날 문학동네 동시집 1
김은영 지음, 박형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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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동시집을 읽다보면 정말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면서 오래전 추억을 떠올려 보곤 한다. 그래서일까 숨겨 놓은 추억의 앨범의 들추는 것처럼 '동시집' 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니 동시집을 들고 있는 그 순간,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하여 넘 맑고 깨끗해져서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너무 멀어진 듯한 그시절, 그리고 가끔씩 만나는 아픔이 묻어나는 글들이 아련하게 한다.


이 책은 '문학동네어린이' 동시집 19권 중에 첫 권이다. 제목의 '선생님을 이긴 날', 선생님을 어떻게 이겼을까 하고 살짝 먼저 읽어 보았는데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자꾸만 자신의 별명을 부르는 선생님을 한방(?) 먹였다고 할까..표현이 그렇지만 그런 의미의 시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꾸만 자신의 이름을 놔두고 별명을 부르는 것이,그것도 무얼 잘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못해서 자꾸만 별명으로 불리워 진다면 아이들이 좋아할까 싫어할까? '선생님을 이긴 날...내가 무얼 잘못하면/ 선생님은 내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선생님이 부른까/ 아이들도 내 별명을 부른다// 오늘은 아침 자습 안 했다고/ 또 내 별명을 불렀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시한폭탄이 터져 버렸다// 선생님/ 내 별명 부르지 마세요/ 차라리 종아리를 때려 주세요// 깜짝 놀라 벌게진 얼굴로/나를 노려보기만 하는 선생님// 떨렸지만/ 속이 후련했다// 얼마나 그동안 맺힌 것이 많았을까. 아이들이 많은 가운데 자신의 별명을 부르는 선생님께 한마디로 대드는 것인데 자신은 속이 후련하다고 느끼고 선생님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생각나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작가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 속에 있는 '어린이와 만나는 길' 이라고 했다.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인 어린이,초등학교 선생님이라 더욱 아이들과 가깝고 친근하여 더욱 좋은 동시가 많을 듯 한데 때론 아이들의 입장에서 때론 자신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 일수도 있는 그러면서 우리 세대에겐 유년의 추억을 떠올려 보게 하는 시들이 가슴에 와 닿기도 했다. '고양이 발자국... 마루 위에/ 꽃이 걸어간 발자국// 비에 젖은 고양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어요// 엄마 여길 좀 봐요/ 꽃무늬가 참 예뻐요// 엄마가 문을 여자/ 고양이가 훌러덩 달아났어요// 고양이 발자국을 보고는 '꽃무늬' 라고 했다. 어린이의 상상 속에서 피워 올릴 수 있는 동심이 그대로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추억을 생각할 수 있는 동시도 있다. '그령... 나를 때린 명진이 오빠/ 발 걸려 넘어지라고/ 억센 풀잎끼리 묶어 놨는데/ 집에 다 와서 생각나네// 동부콩 따시던/ 우리 할머니/ 그 밭둑길로/ 소쿠리 머리에 이고 돌아오실 텐데// 술 드시면 딸꾹거리는/ 외딴집 명진이 오빠네 할아버지/ 그 밭둑길로/ 저녁때 우리 집에 놀러 오실 텐데// 그령,나 또한 시골에서 자라서 이런 일을 정말 많이 했다. 친구들과 논둑길로 학교를 오가며 풀과 풀을 묶어 놓고는 저만치서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넘어지나 안넘어지나 구경하곤 했다. 그것을 가끔 가끔 함정처럼 만들어 놓고 장난을 쳤던 추억이 새록새록.정말 그 길은 우리만 다니는 길이 아닌 농부아저씨들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지나 다니는 길이 었는데...


동시집을 읽다보니 그 옛날 추억들이 하나 둘 어제일처럼 생각나 날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너무 마음에 때가 끼었나 잊고 살고 있다. 올 가을에는 아이의 마음으로 추억도 생활도 삶도 움직여 봐야겠다.'꽃구경하다가' 라는 동시를 읽으며 학교에 가는 시간이 한시간여를 걸어 다니던 시절, 오며가며 친구네 집도 들르고 꽃도 구경하고 시냇물도 구경하고 산도 구경하고 곤충도 구경하고 정말 모든것들 담느라 한시간이 더 많은 시간으로 때론 친구네집 가정방문으로 이어지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그 친구들 다 무엇하고 있는지.이쁜 동시 하나 곱게 써서 친구에게 보내볼까.이쁜 동시들이 가슴을 마구마구 헤집어 놓는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들어 오도록 '틈' 을 만들어 주었다.

<이미지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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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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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을 가지고 있다는 '닭', 하지만 동화의 주인공인 잎싹은 난용종으로 그저 철장에 갇혀 알 낳는 기계처럼 알을 낳으면 주인들에게 빼앗기며 자신의 생명이 다해가는 것도 모르고 살아간다. 주인이 주는 모이만 먹으며 수동적인 삶은 살것인가 아님 가슴이 시키는 일을 찾아 아니 가슴에 그동안 품고 있었던 꿈을 찾아 능동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잎싹은 그런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닭에 비유한 세 가지 유형의 삶이 있다. 주인에 길들여지는 철장안의 잎싹과 같은 닭과 수탉에 의해 보호 받는 씨암탉 그리고 마당을 나와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나중의 잎싹과 같은 삶,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대.

알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낳은 알을 한번쯤 품어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이 또한 잎싹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다. 잎싹은 유정란이 아닌 무정란을 낳고 있고 주인을 알을 낳자마자 모두 거두어가고 만다. 알을 낳지 못한다면 잎싹의 생명은 다하고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지는 닭,아니 개중에 살아 움직이면 그 또한 그곳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족제비의 먹이가 되고 만다. 너무도 피동적인 삶이다. 자신안에는 아니 가슴에는 꿈이 있다. 언젠가 자신이 낳은 알을 한번 품어 병아리를 보고 싶다. 그것이 꼭 꿈으로만 끝날 것인가? 아님 현실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또 한가지 철장을 벗어나고 마당을 지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런 삶이 올 수 있을까? 하루하루 힘도 없고 알도 낳지 못하는 그저 폐닭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니 죽음으로 이루고 있는데.

철장에 있을 때는 마당에서 한가로이 수탉을 보호를 받으며 헛간에서 함께 사는 수탉과 암탉이 부러웠다.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철장을 벗어나고 보니 수탉의 보호아래 있는 삶조차 자신과 별반 다를게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미운오리새끼처럼 모두에게 왕따인 청둥오리를 만나고 그가 함께 짝이었던 오리가 낳은 알을 품게 되면서 모성애를 발견하고 자신이 꿈 꾸던 삶을 사는 잎싹,하지만 늘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잎싹과 초록머리,하지만 초록머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기에 달리 세상을 너른 세상을 보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 보기도 하는 잎싹,결코 족제비에게 먹히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 잎싹의 삶을 보며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지만 먹고 먹히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연속선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 될지 질문을 한다.

'나도 저렇게 우아한 때가 있었을까? 게다가 알을 품을 거라니,그런 느낌은 암탉만 알지...... 참 좋겠구나.' 자신이 암탉이면서 자신의 본능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잎싹,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느날 문득 뒤돌아 지난날을 보면 내가 이렇게 살아오려고 한것이 아닌데,혹은 자신의 알맹이가 사라진 겉데기만 존재하는 삶처럼 의미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때,갑자기 추하고 폭삭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가슴에 품었던 꿈이 있었을까.' 조차 생각나지 않는 무언가 단순함에 젖어 들어 적응되어진 삶, 자신의 현실을 보게 되고 난 후 갑가지 바빠지고 다급해진다. 그렇다면 지금 무얼할 수 있을까.잎싹은 먼저 자신이 원하던 알을 품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줄탁동시, 자신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초록머리를 자신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잎싹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서로의 길은 너무도 다르다. 비록 자신이 품어 깨어나게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할 수는 없다.그것이 삶이고 세상이고 이치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그게 뭔지 네 자신에게 물어 봐.'
다 죽어가던 잎싹이 마당 밖에 아니 세상에 놓여지게 되고는 야생으로 돌아간 듯 힘을 얻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안겨주는 마당이 그립기도 하다. 수구초심처럼 그 옛날을 그리워 하기도 하지만 철장안에 갇혀 있었다면 결코 볼 수 없어간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아보았다. 아니 자기 가슴이 시키는 삶을 살며 더욱 단단해졌다. 그렇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후회 없이 자신을 족제비 새끼들을 위하여 보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을 아닐까. 돌고 도는 세상 속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하여 누구도 하지 못한,과감하게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의 삶은 고난하고 험난했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은 만족이 있고 성취를 얻은 것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열가지를 버려야 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자신의 꿈을 위해서는 과감히 현실을 벗어나기도 해야한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꿈을 이룰 수도 꿈을 간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잎싹을 통해 한번 더 느껴본다.'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소망을 간직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마당을 나온 건 잘 한 일이야. 철망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아,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몸이 원하고 가슴이 원하는 그런 소망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늦지 않았다 그 소망을 잠 깨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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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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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부터 해방구 방송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우리를 눈물겹게 사랑하시는 꼰대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꼰대와 부모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녀석들,나이가 몇 살일까? 13살 14살인 중학교 1학년생인 녀석들이 여름방학 종업식 날 한 반의 남자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유괴 되었냐고 아니다. 처음엔 모두 유괴가 된 줄 알았는데 단 한 명,산부인과 아들만 진짜 유괴가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사라져 버렸다.그렇다면 녀석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 정말 어딘가에 블랙홀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녀석들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던 것이다. 15~6년 전에 부모님들이 겪었던,아니 경험담인 '해방구' 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녀석들 그와 똑같은 해방구를 저희들이 모두 모여 다시 재생시켜 놓은 것이다. 왜일까?

불만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자식은 부모에게 혹은 학교에 선생님들께 불만이 있을테고 반대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불만이 있을테고..물론 사회에도 불만이 있고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겠지만 기성세대는 그 불만을 모두 토로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면서 아니 길들여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이 오래전에 품었던 꿈과 이상을 포기하고 사회에 길들여지면서 그런 생각을 품었었다는 것도 잊고 자신들 또한 밑에 세대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을 하면서 그렇게 길들여지며 살아가고 있다.왜일까? 아니 나 또한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반기를 들고 일어난 대단하고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이 여기에 있다.그들이 모여 '7일간의 전쟁' 을 하면서 기성세대인 부모와 선생님들을 가지고 놀 듯 한다. 아니 그동안 자신들이 당했던 만큼 아니 배로 갚아주면서 즐기고 있다. 이곳엔 공부할 책도 없고 티비도 없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은 언제보다도 더 똘똘뭉치고 기지를 발휘하며 번득이는 지혜를 발휘하여 유괴범도 잡고 그들나름 어른들을 혼내주며 자신들만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7일의 천국'을 즐긴다.

겉표지의 재미난 그림처럼 녀석들 정말 대단하고 재밌다. 학교에선 드러나지 않던 그들 개개인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어 하나로 뭉쳐 누구도 상상해 낼 수 없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일들을 저지른다. 아니 정말 읽고 있으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웃음이 나와 이거 읽고는 내 집의 아이가 아니 다른 아이들이 따라하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지 않아도 사춘기의 두딸,늘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하여 불만이다. 집에 오기만 하면 그녀들의 입에서는 현교육제도와 학교 그리고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으로 늘 업그레이드를 시켜야만 한다. 들어주지 않으면 나 또한 그들과 똑같은 범주로 취급을 하기에 호응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도 그런 시대를 거치며 여기까지 왔기에 그들을 이해한다. 그 시기엔 무언가 바꾸어 보고 싶고 자신들이라면 그렇게 안할 것만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상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현실이 그렇게 바른 길로만 인도할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에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이다음에 우리가 모두 없어져도 별은 저렇게 빛날거야.'
해방구인 버려진 공장건물 옥상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무심코 내 뱉는 아이들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언제 하늘을 제대로 볼 수나 있는 시간을 살고 있는지. 늘 부모들의 리모콘처럼 바쁘게 움직이느라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아이들, 그들이 없어도 별은 빛나고 있건만 그런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다르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고 느끼지 못하고 친구에 대하여 알지 못하던 것들을 세세히 알고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을 그들은 보게 된 것이다. 책이 아니고 학원이 아닌 곳에서 함께 뭉쳐서 힘과 지혜를 발휘해야 하기에 친구에게서 못 보던 부분들을 캐취해 내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은 더욱 친밀하고 가까워진다. 그동안에 자신들 사이에 있던 벽을 허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니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친구를 이젠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모들은 어떻까? 해방구에서 격한 전투세력이었던 그들은 조용히 학원을 하며 지내는가 하면 뒷거래를 하며 건설을 키우기도 하고 생명을 지운 돈으로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며 아이들 리모컨처럼 조종하며 엄마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로 키우고 있다. 중국집을 하며 모자람 속에서도 계속적으로 아이를 낳는 부모도 있다. 모두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 부모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다. 해방구에 모인 아이들의 전쟁과 나오키란 친구의 유괴사건이 맞물려 정말 재밌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또한 아이들의 기지로 유괴사건도 잘 해결하고 교장의 비리도 해결하고 체육샘의 음흉함도 혼내주고 부모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행동과 재치로 사회와 부모 학교에 따끔하게 큰 거 한방으로 일침을 가한다. 결코 십대라고 볼 수 없는 아이들의 행동, 가끔은 혼자 웃으면서 읽다가 심하게 당하는 어른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왜 속으로는 통쾌하다고 생각이 드는지.읽어나가는 동안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행동하는 것처럼 너무 재밌게 읽었다.

이 작품이 85년 작이라니. 지금 읽어도 재밌고 뒤떨어지지 않는 재치와 유머 모든 것들이 다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다고 감동이 없을까,있다.유괴범 아저씨를 돕기도 하고 보건샘을 돕기도 하는 귀여운 녀석들이다. 그들은 해방구에서 단합의 7일전쟁을 마치고 한뼘 정말 성숙하게 자랐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착한 아이'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착한 아이'란 대체 어떤 아이일까요? 그것은 어른의 꼭두각시죠. 다시 말해, 어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순응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훈련시키는 게 교육이죠.'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혹은 교육자들에게 따끔한 일침이 될 수도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둔 부모에게도 '교육'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웃다가 보면 무언가 목에 턱 걸리는 '가시' 가 있는 소설로 '우리들' 시리즈가 있다는데 작가를 한번 주목해 봐야겠다.아이들이 읽으면 '해방구' 를 외치며 일탈을 꿈 꾸고 싶게 만들 것만 같다.나도 한번쯤 학교가 아닌 공부가 아닌 성적이 다가 아닌 친구가 적이 아닌 부모들의 잔소리가 없는 그런 해방구에서 일주일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어 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미소지으며 읽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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