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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세트 - 전5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성자가 된 죄수이야기.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온전히 남을 위해 사는 삶에 대한 경건함. 위고 스스로도 장발장은 점점 예수가 되어가고 있다 이야기했다. 레 미제라블의 대강을 아는 수준에서 듣게 되는 아주 일반적인 내용이다. 나도 그러했다. 그런데 성자가 된 죄수이야기로 민음사판 번역본으로도 2500여 페이지나 되는 내용을 어떻게 채웠지? 하는 의문이 세트를 받아보자마자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위고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과 시선은 모두 거세당한 채, 위대하고 착한 성자가 된 죄수이야기로 압축된 체제순응적인 면만 보도록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고의 시선은 언제나 맨 아래의 사람들을 향한다. 그래서 제목도 '비참한 사람들'일 것이다. 장 발장의 시작부터가 그렇다. 아무리 일해도 배고플 수 밖에 없는 부당한 사회에서 배고픈 형제들을 위해 빵 하나를 훔쳤다 해서 5년이라는 중형을 받아야 하는 세상, 나와서도 신분을 표시하는 종이엔 징역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표식으로 사회적 배척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 위고는 그런 장발장에 그만의 능력을 부여하여 신분과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나 어려울 적의 그와 다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게 한다. 팡틴의 비참함, 코제트의 어린시절, 테나르디에의 비굴함, 가브로슈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 등등.. 이들을 통해서 1800년대 초의 프랑스 사회에서 돈이라는 문제로 비참해져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과 인간상들을 폭넓게 묘사해낸다. 어쩌면 위고는, 장발장이라는 주인공의 시선은 부차적으로 둔 채, 그런 이들의 삶을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공화정과 왕정의 격변속에서 사상적으로 갈등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마리우스의 경우가 그렇다. 마리우스가 겪어야 했던 아버지의 비참함, 할아버지와의 사상적 갈등과 스스로 비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젊은이의 패기 또는 치기.. 그 주변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폭동에의 조짐. 위고는 폭동의 시작을 장엄하게 그리지 않는다. 누군가 그러했듯,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다름아닌 빵이다 말했듯이, 폭동은 배고픔, 불안, 불만, 짜증등이 쌓여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와 시작하는 것이라 묘사한다. 마리우스는 소설의 이어짐을 위해(?) 장발장에 의해 살아나지만 그렇게 시작된 폭동이 결국 잔인하게 진압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온다.
2500여 페이지 안에는 그 시절 프랑스의, 또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군상의 다양함이 들어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음을 철칙으로 살아가던 수녀가 마들렌의 탈주를 돕기 위해 결국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마는 상황적 인상, 사람사람들을 거쳐 전해지는 말과 지시에 의해 누구의 탓도 아닌 상황에서 비참의 극을 겪어야만 했던 팡틴, 권력에의 충실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지켜나가던 자베르가 장발장의 도움이후로 생각과 소신에의 혼란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장면, 테나르디에의 비굴함과 교활함이 이야기의 끝까지 이어지는 모습, 태연하고 용감한 듯 살아가다 어린 나이에 태연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가브로슈.. 아버지를 도운 이의 교활함과 잔인함 비굴함을 바라보며 도움과 내침 사이에서 교과서적인 고민에 괴로워하는 마리우스, 그리고 부성애와 또다른 애정으로 코제트를 바라보며 질투와 시기의 악마를 물리쳐내야만 했던 노년의 장발장. 위고가 하고 싶은 말과 그려내고 싶은 사람들은 이마저도 무척 부족해보일 지경이다.
수도원과 하수도, 폭동과 나폴레옹, 전쟁 등에 대한 위고의 생각과 의견은 곳곳에서 무척 길게 적혀있다. 어쨌든, 장편의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위고는 장발장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장발장의 시선을 통해 보게되는 사람과 사물, 현상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물 하나하나를 바닥과 하늘 위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걸리는 계층적 사회적 현상들을 짚어나가며,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내놓는다. 그것은 1800년대 초의 프랑스사회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관계적 면모에 있어 지금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게다가 글이 무척 쉽고 자연스럽다. 프랑스 인민들이 위고를 좋아한 이유는 그의 쉽고 편안한 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보니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일까? 방대한 소설은 물흐르듯 읽혀 마지막장을 덮고도 일말의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