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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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띠지의 문구를 보며 문득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매트릭스> 속 세계는 ‘AI에 의해 제어된 환각’이었지만, 보는 눈에 따라 현실은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이유. 그건 어쩌면 우리 ‘뇌가 만들어내는 현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상상을 참 많이 했다. SF 만화나 영화 속 세계를 보며, 언젠가 하늘을 나는 차를 타고 다니고, 로봇과 대화를 나누는 시대가 올 거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상상보다 세상은 덜 극적으로 변했다. 오히려 나의 상상력이 점점 규격화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점점 현실 쪽으로 기울면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가능한 일’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는 걸 느낀다. 그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상상하는 뇌』를 만났다. 저자는 우리가 상상한다고 믿는 그 모든 과정을 ‘뇌의 작동’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다. 상상력과 현실, 그리고 의식의 경계를 오가는 한 편의 지적 여정에 가깝다.


  1부에서 저자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호모 이미지난스’, 즉 ‘상상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실은 단순히 바깥 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뇌가 구성한 해석의 결과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상상’이 단순히 없는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상상은 기억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게 하는 인지의 중심 기능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내일의 일을 계획할 때도 뇌는 끊임없이 상상한다.

  ‘감각은 이성에 앞선다’에서 소개되는 착각 사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접해왔던 것들이라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첫 장에 인용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문장, “사람의 본질이 곧 그의 시각입니다.”는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곧 우리 자신이라면, 상상은 곧 존재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 이르러 책의 관점은 더 과감해진다. 저자는 ‘현실은 제한된 환각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뇌과학에서는 이미 익숙한 개념이라고 한다. 우리의 감각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뇌는 그 불완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을 통해 현실을 완성한다. 결국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은, 뇌가 그려낸 ‘가능한 버전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책은 상상력의 기원을 신경과학적, 진화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기본 신경회로가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며, 루시에서 사피엔스까지 이어지는 진화 과정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생존의 핵심이 되었음을 설명한다. 또한 상상력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 능력임을 강조한다. 아이가 처음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꾸며낼 때, 이미 뇌는 상상의 근육을 단련하고 있는 셈이다.

  3부 ‘상상하는 그림자, 부유하는 뇌’에서는 상상력의 어두운 면이 드러난다. 저자는 환영, 환청, 망상 같은 현상이 단순한 병리적 문제라기보다, 뇌의 예측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한 결과라고 말한다. 현실과 환각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며, 때로는 그 경계의 흐릿함이 창조성을 낳기도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처음 ‘진짜 현실’을 보았을 때의 혼란을 떠올렸다.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사실은 뇌의 해석이라면, 우리가 꾸는 꿈도, 떠올리는 상상도 결국 같은 층위에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책은 비관적이지 않다. 저자는 상상력을 통해 뇌를 긍정적으로 ‘조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믿는 이미지들이 신경망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상상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치유의 힘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니, 어린 시절 자유롭게 꿈꾸던 그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


  『상상하는 뇌』는 우리가 잃어버린 상상의 본능을 과학의 언어로 복원시켜 준다.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으며,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상상 속에 사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결국 우리의 현실은 상상의 산물이며, 그 상상이 곧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상상하는 뇌』는 단순한 뇌과학 책을 넘어, 인간이 왜 꿈꾸고 창조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 작품이다. 창의성과 영감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이들이나, 자신의 마음속 이미지의 정체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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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 - 인물의 변화와 감정의 흐름이 만드는 이야기의 힘
앤서니 멀린스 지음, 이민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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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스토리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나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주로 운문 창작을 해왔고, 그 안에도 자연스레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예전엔 이미지에 더 마음이 갔다면, 몇 년 전부터는 스토리텔링 관련 책들을 읽으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리는 결국 본능이니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2025, 세종서적)이라는 제목이 처음엔 상업적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막상 펼쳐보니 단순히 ‘팔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해하는 법’에 관한 책이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여러 시나리오 관련 도서들의 제목을 보며, 나도 그 책들을 스쳐 지나온 기억이 났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도 아니고 영상 쪽과는 거리가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세계의 이론서를 자주 읽어왔다.

  아마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삶이 이론처럼 정돈되진 않지만, 각자의 스토리를 살아간다는 자각은 우리를 조금 더 깊은 이해로 이끌지 않을까.


  책은 머리말에서 언급된 ‘아크’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아크 분석이란 무엇인가?’, ‘변화형 인물’, ‘불변형 인물’, ‘대안적 아크들’, ‘창작자를 위한 실전 글쓰기’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작법서들이 주로 ‘영웅의 여정’이나 ‘3막 구조’처럼 사건 중심의 구조를 다루었다면, 저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감정의 곡선’을 읽는 법을 제시한다. 그는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일이 인물에게 어떤 감정의 변화를 일으켰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사건의 나열이 아닌, 감정의 여정으로서의 이야기. 그가 말하는 ‘아크 분석’은 바로 그 감정의 흐름을 따라 인물의 변화를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세 가지 아크로 구분한다. 낙관적 아크, 비관적 아크, 그리고 양면적 아크.

낙관적 아크는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인물의 여정이다. 예를 들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비관적 아크는 반대로, 타락과 몰락의 곡선을 그린다. 한때 선했던 인물이 욕망이나 권력에 휩쓸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구조다. 〈대부〉의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그 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이 양면적 아크다. 성공 속의 상실, 실패 속의 깨달음. 삶의 복합적인 결을 담은 구조다. 〈라라랜드〉처럼 사랑과 꿈 사이에서 모두를 얻지 못하는 인물의 이야기.

  결국 아크란, 우리가 살아가는 감정의 궤적을 문학적으로 해석한 개념이다.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물이 ‘무엇을 깨달았는가’를 바라보는 순간, 독자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창작 습관을 떠올렸다. 플롯을 짜는 일도 어려웠지만 인물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감정의 흐름을 ‘아크’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정리해 준다. 앞으로는 글을 쓸 때마다 “이 인물의 아크는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향하는가?”를 먼저 생각을 해야겠다.

  그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전환이었다. ‘아크 분석’은 창작자에게 이론이 아니라 감정의 지도를 제공한다. 5부에서는 실질적으로 아크 분석을 통해 글을 쓸 때의 지침을 다루고 있어 초보 창작자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또, 오래 글을 써온 사람에겐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바라보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것 같았다.


  책을 덮고 나면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 어쩌면 “이 이야기의 아크는 어떤 곡선을 그리고 있을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 하지만 그 정도로 이 책을 명확하게 이해를 한 게 아니기에 그런 분위기만 잡을 듯하다.

  앤서니 멀린스의 『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은 단순한 시나리오 작법서가 아니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야기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에게 감정의 언어를 보는 시야를 뜨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의 이야기이고, 각자의 감정 곡선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떤 아크를 그리고 있을까. 낙관적일까, 비관적일까,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을까. 지금은 분명 흔들리는 중이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끌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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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동물과 식물
허영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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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가톨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올해는 다시 청년 성서 모임에 발을 담그게 됐다. 과거에 그룹 공부는 했지만 연수는 다녀오지 않았던 요한복음도 교재가 새롭게 개정되어 다시 그룹 공부를 시작했고, 지난주부터는 사도행전 그룹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군 시절부터 이어온 신앙생활이지만, 본격적으로 성경을 깊이 접하게 된 건 첫 청년활동을 연합회, 전례부에서 하게 되면서였다. 당시 전례부이자 청년회장 누나의 추천으로 연합회로 시작해 전례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가 내 성경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첫 연수는 늦었다. 그 후로 청년 성서 모임에서 창세기 연수, 마르코 연수까지 꾸준히 이어갔고, 그룹 봉사로 3년을 함께했다. 마지막 그룹 봉사를 2013년에 마무리했으니 꽤 오래전 일이다. (지금의 그룹 봉사자가 당시 내 그룹원이었던 걸 떠올리면 새삼 시간이 흐른 걸 실감한다.)

그나마 매일 미사를 읽고, 그날그날 말씀 구절을 뽑아 ‘말씀 사탕’을 만들어 온 지도 벌써 15년이 되어간다. 이제 성경은 내게 독서와 함께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있다.

  그런 내게 허영엽 신부님의 신간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은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신부님은 과거 직장인 탈출기 연수 지도 신부님이셨고, 예전에 읽었던 『성서의 풍속』이나 사람들 같은 책도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번 책도 성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시기에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말씀 속 살아 숨 쉬는 동물 이야기’, 또 하나는 ‘하느님의 정원을 가득 채운 식물 이야기’다. 1장에서는 43종의 동물이 등장하는데, 각 동물은 짧은 설명과 함께 대표적인 성경 구절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구절에 담긴 상징적 의미와 신학적 해석이 덧붙여진다.

  성경을 읽을 때 종종 부딪히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상징과 비유의 벽’이다. 비둘기, 양, 사자, 물고기 같은 동물들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등장하지만,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직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고, 읽고 공부하며 다시 접하게 될 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은 꽤 걸려야 하고 그만큼의 다른 공부도 필요한 부분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상징의 언어’를 해독하는 열쇠를 건넨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물고기(익투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내가 가방에 달고 다니는 작은 인형이나, 가톨릭 성서 모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물고기 표식을 떠올리며 책을 읽으니 한층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구약에서는 인간을 바다의 사는 물고기에 비유를 했다는 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괜히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하신 게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더 생각을 해보니 물고기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동시에 생명의 근원인 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신앙인의 삶을 닮아 있다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의 또 다른 축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겨자씨 같은 익숙한 식물들이 성경 속에서 어떤 상징으로 쓰이는지 하나씩 짚어낸다.

  특히 올리브나무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홍수가 끝났음을 알리는 비둘기와 올리브 가지는 평화의 상징이자, 생명이 회복되는 신호였다.

  결국 신앙과 생태는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읽으며 단순히 동식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또 하나의 감각”을 깨워주고, 키우는 안내서가 아닌가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함께 구원받는 이야기로 성경을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은 신앙인에게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하는 책이자, 자연과 생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나면 어느새 눈앞의 나무와 새, 풀 한 포기까지도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성경 속에 스며든 자연은 결국 하느님의 손길이 닿은 생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물가에 앉은 비둘기 한 마리에서도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성경은 더 이상 활자에 머무르지 않을지 모른다. 그 말씀은 살아 있는 생명으로, 오늘의 우리 곁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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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맥스 베이저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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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누군가의 비윤리적 행동을 방조하거나 묵인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공모에 가담하는 일상의 심리와 구조를 해부하며,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자기 기만인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우리의 불편한 그 지점을 정면으로 겨눈다.

  책의 1장은 “누구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맥스 베이저먼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소수만이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조차 침묵과 순응 속에서 공범이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기업, 정부, 종교, 언론 등 거대한 조직 속에서 사람들은 상사의 지시나 조직의 분위기에 휩쓸려 판단을 유보한다. 그렇게 작은 타협이 쌓이고 합리화가 반복될 때, 조직은 전체적으로 부패의 길로 접어든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공모의 심리학”이라 부른다.


  책은 1장을 제외한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로 구성된다. 파트 1 ‘명백한 공모’에서는 권력자와 부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공모를 다룬다. 베이저먼은 여러 기업과 정치권의 사례를 통해, 리더가 “충성”과 “협력”을 강조할수록 구성원들이 윤리적 판단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설명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압박이 사람들에게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파트 2 ‘일상의 공모’는 더 섬세하고 불편하다. 여기서는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상황에서의 공모를 다룬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 ‘가짜 예언자에게 빠지다’, ‘권위와 충성’, ‘타인에 대한 신뢰’, ‘비윤리적 시스템에 의한 공모’ 등으로 이어지는 장들은 우리가 “그냥 조직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의에 동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눈 감거나, 동료의 잘못을 알고도 조직의 평화를 위해 입을 다무는 행위가 모두 일상적 공모의 한 형태로 제시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모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는 비윤리적 시스템이 사람들을 공범으로 만드는 구조적 요인을 강조한다. 기업의 성과 중심 문화, 정치권의 충성 경쟁, 종교 조직의 위계질서 등은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 침묵은 곧 생존 전략이 되고, 그 침묵이 반복되면서 조직은 점점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결국 문제는 ‘나쁜 개인’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을 차단하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는 공모를 끊기 위해서는 개인의 양심뿐 아니라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파트 3은 독자가 실제로 어떻게 공모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 ‘공모의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내 할 일이나 하자.”라는 생각이 윤리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어지는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과 ‘리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개인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리더는 구성원들이 윤리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단기 성과보다 윤리적 기준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이야말로 공모를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공모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때조차, 이미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불의는 자라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윤리학 이론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윤리 감수성을 되살리는 행동지침서에 가깝다. 맥스 베이저먼은 “선의의 침묵도 악의의 동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독자에게 윤리적 선택의 책임을 되돌려준다.


  이 책은 단지 학문적인 분석을 넘어, 오늘의 현실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정치적 양극화, 기업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온라인상에서의 집단적 방관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곳곳에는 공모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이러한 시대에 조직 윤리와 공모 심리를 되짚는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면죄하지만, 이 책은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윤리적 사회는 거창한 이상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옳지 않은 일 앞에서 한 사람이 침묵하지 않을 때, 그때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게 아닐지 생각해 보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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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이 답답할 때 부처를 읽는다 - 오늘도 마음이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지혜의 말들
우뤄취안 지음, 정주은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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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잘 풀리는 게 없는 시기다. 겉으로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만 쌓인다. 방향도, 확신도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 문득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삶이 답답할 때 부처를 읽는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같은 불경의 구절이 떠올랐다. 결국은 다 비워야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던 차에 책 하단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내려놓아라.” 예상과는 다른 메시지였다. 무작정 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그 문장 하나에 이끌려 답답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책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시작된다. 첫 챕터 〈고독이 가져다주는 '침묵'이라는 힘〉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이 아닌 ‘자기 회복의 공간’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세상의 소음과 관계의 피로 속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을 견딜 줄 아는 힘, 그 안에서 마음의 중심이 조금씩 잡히는 느낌이었다. 혼자 있는다고 했으나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항상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 또한 피로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망각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두 번째 챕터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자재(自在)이다〉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의 개념을 다시 묻는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오히려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고, 작가는 단호히 말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할 줄 아는 ‘자재’의 태도가 진짜 평화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오래 남는다. 자유는 외적인 조건이라면, 자재는 내면의 질서다. 그 차이를 깨닫는 순간, 조금은 숨이 트였다. 분명 나이가 들며 자유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서는 시간의 제약이 있었고,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경제적인 제약이 항상 따라붙어왔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균형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세 번째 챕터 〈진정한 자아, 무아로 나아가기〉에서는 우리가 붙들고 있던 ‘나’라는 실체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보여준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생각과 감정의 모음일 뿐, 끊임없이 변한다. 작가는 ‘무아(無我)’란 자신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 고집처럼 들러붙은 판단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서 〈마음을 돌리고, 내려놓기를 배우다〉에서는 내려놓음의 의미를 새롭게 풀어낸다. 포기하거나 무감각해지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불안과 집착을 놓는 연습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을 잠시 내려두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힘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에서 비롯된다.

  다섯 번째 챕터 〈참회와 용서로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기〉는 유독 마음을 울린다.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탓하며 살지만, 작가는 말한다. 참회란 자책이 아니라 용기이며,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풀어주는 일이라고. 상처를 붙든 손을 조금씩 놓아줄 때, 마음이 비로소 숨을 쉰다.

  여섯 번째 챕터 〈사랑하기와 사랑받기〉에서는 관계의 본질을 돌아본다. 사랑이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교환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 챕터 〈먼저 원심을 내는 것이 생명의 귀착점이다〉에 이르면, 그동안의 여정이 하나로 모인다. 원심(願心), 즉 ‘좋은 세상을 향한 마음’을 품는 것이야말로 삶의 귀착점이라고 말한다. 나를 돌보는 일에서 시작된 마음의 길이 결국 타인에게로, 세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외로 나를 돌보지 않는다. 나 역시 과거에 성당 연수 때 면담으로 들었던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으나 겉으로만 그러했을 뿐 여전히 나보다는 타인에 더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은 그렇게 불교의 108번뇌와 연결된 108개의 글로 완성이 되어있다. 책을 덮고 나니, ‘부처를 읽는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경전을 공부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소리를 읽는 일에 가까웠다. 답답한 현실을 견디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비워라”가 아니라 “바라보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요즘처럼 모든 게 막막하게 느껴질 때, 『나는 삶이 답답할 때 부처를 읽는다』는 조용히 길을 가리켜주는 등불 같은 책이다. 삶이 단단해지려면, 먼저 마음이 고요해져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드러나거나 분주해야 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과연 그게 옳은지는 각자의 신념에 물어보면 될 것 같다.

  언제 가장 마음이 답답하다고 느끼시나요? 그럴 때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한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가라앉고, 마음속에 잔잔한 평화를 찾을지도 모를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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