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gh Street (Hardcover)
Alice Melvin / Harry N Abrams Inc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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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도서 #그림책 #2-5세
최근에 우연히 발견하여 구매한 그림책인데 일러스트가 무척 사랑스럽다.

부르주아 냄새 나는 제목이 좀 에러인데 그냥 길 이름이 ˝하이 스트릿˝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물론 허름한 동네는 아니지만, 어느 작은 서양 마을의 다운타운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동네 사람들이 인사와 얘기를 나누는 그런 평범한 길이다.

각 장마다 한가지 가게가 등장하는데 접혀있는 페이지(fold)를 열면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 가게 안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하게 만들고, 매 책장을 펼칠 때마다 마치 선물 상자를 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대형 쇼핑센터(mall)와 컨베이어 벨트가 쇼핑문화를 장악해버린 시대에 작은 사탕가게 골동품가게 장난감가게를 하나하나 구경하며 점원에게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의 소소한 재미를 아이에게 느끼게 해주는 책.

그리고 라임(rhyme)을 이룬 쇼핑 리스트(yellow rose, garden hose, bunch of grapes, roller skates...)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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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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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1세기, 여름, 서투른 청춘들, 20대 여성들의 삶의 때 자국 같은 이야기,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기는 찌꺼기와 그것을 치우고 지우기 위한 끝없는 노동에 대해,
치우고 치워도 생기는 먼지, 죽여도 죽여도 나오는 벌레를 다루는 여인의 얼굴을 하고,
때로는 절망적으로, 때로는 집요하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입술을 모으고 집중하며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레가 들끓는 계절, 장마의 계절, 그 계절의 서울, 그 속에서 노동하고 사랑하고 웃고 울고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이 진득하게 배어있어서 참 좋았다.

서울이 뉴욕만큼이나 썩어서 예술이 꽃피우기 좋다고 말했던 백남준의 말이 생각난다. <비행운>은 썩어있는 도시,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분투를 주로 여성의 시각에서 기록한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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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계속해보겠습니다 : 황정은 장편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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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를 한 대 맞은 듯..


˝잊으면 괴물이 되는 거야.˝

(비록 ebook으로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 다른 책을 집어 들고 글을 쓰고 저녁을 짓고 설겆이를 하면서도 이 말 한 마디가 따귀 맞은 볼의 통증처럼 계속 따끔거렸다.

Post-세월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생의 무의미를 경험/목격한 후의 좌절과 절망에 대해, 그리고 고통에 대해
한 사람인 듯 세 사람인 소라, 나나, 나기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타인의 고통을 잊으면 어떻게 인간이 괴물로 변하게 되는지, 작가는 (나기를 통해)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따귀 한 대를 때려준다. 소설에서는 `나`만의 것인 줄 알았던 것, 그리고 `너`만의 것인 줄 알았던 고통이 어느 순간 겹쳐지면서 모두 고통 받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부각된다(비록 이 깨달음이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연대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 책이 상실과 고통을 경험한 이들에게, 우리들에게 내미는 것이 값싼 위로나 동정의 손수건이 아닌 `잊지 말라`는 따귀라는 점이 좋다.

커다란 상실과 고통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게 반응하며 겪어낸다. 애자처럼 죽은 삶을 사는 경우, 아니면 누군가처럼 정말로 죽어버리는 경우, 소라 나나 나기처람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는 경우.. 애자의 생각처럼 삶은 무한히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무거운 무의미의 무게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쩌면 유일하게 숭고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른다.

나나가 반복하는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서술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계속해내가는 것, 따라서 삶 자체를 계속해나가겠다는 의지와 다짐이다.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살아야겠다는 의지.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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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우니 르콩트 감독, 고아성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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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제작하고 우니 르콩트 감독과 공동 각본을 쓴 프랑스와의 합작 영화라고 한다.

고아성의 연기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 보다 김새론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 해준 영화 (영화 아저씨를 통해 먼저 알았기 때문에)

김새론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김배우가 만 9살에 개봉되었다. 촬영은 짐작건대 아마도 한 두 해 전에 이루어진 것 같은데 8살의 나이에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농도 짙은 감성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최근 들어 한국전쟁을 전후로 특히 60-80년대에 외국으로 입양된 많은 한국계 입양인(입양아가 아님)들이 ngo나 기업에서 주관하는 모국 여행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을 방문하거나 `귀국`하기 시작했다. 또 성인이 된 입양인들이 학계나 예술계에서 해외입양을 반대하는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들의 역사와 경험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는데, 2009년에 해외입양이라는 키워드를 스크린에 담아낸 이 영화의 시도는 이런 맥락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한국계 입양인들이 자신들이 입양된 서구권 국가의 민족 정체성과의 인종적 차이로 인해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이나 인종차별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과 이들이 모국을 찾았을 때 다시 한 번 느끼는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이질감을 고려한다면 입양인을 ˝여행자˝로 묘사한 영화의 관점은 적절한 것 같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Brand New Life인데, 이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고아`들의 환상이기도 하며, 한편 주인공 여자아이가 가장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마음에서 지우는 것, 아버지와의 인연의 끈을 포기하는 것,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의 딸로서 자신을 구성해온 과거의 기억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입양의 경우 입양을 통해 아이의 과거(기억, 끈, 유대 등)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부여/강요한다는 점에서 이를 풍자하는 영어 제목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창동의 많은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에서도 불필요한 말/대사가 과감히 생략되고 인물들의 감정/심리를 표정이나 행동으로 대체하여 표현하는데 그래서인지 관객이 받는 울림이나 파장이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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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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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재개발이 진행 중인 낡은 전자상가 단지에서 오랜 세월 생활 터전을 자리잡고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

소설은 전자상가의 40년 역사를 그 속에서 70, 80년대의 경제개발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삶과 노동을 주인공들이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 대화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해서 2010년대에 88만원 세대가 된 오늘날 자신들을 키워준 생계수단이, 그곳에 깊이 배어든 부모님들의 노동의 때와 흔적이, 가족이 겪은 고통과 상처의 기억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담담하고 아련하게 지켜본다.

아파트 단지 경계 너머, 다닥다닥 붙은 낮은 상가건물과 그 뒤에 조용하게 존재하는 천막집, 무당집, 구멍가게, 철물점, 베어링가게 등이 있는 골목에서 오후를 보냈던, 손님을 상대하며 언쟁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빨개지곤 했던 내 유년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21세기답게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이뤄지는 조용하고 차가운 철거의 현장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노동의, 사랑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따뜻한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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