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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씨 현대시 기획선 45
황주은 지음 / 한국문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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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집 첫 페이지 전체를 장식한 무릎샷 속 시인을 들여다본다.

정글만한 호기심에 가득차 있으나 간신히 한 발 물러서서 독자와 거리를 둔다.

분명 동그란 안경인데 그게 다 눈동자처럼 보인다. 머리를 흔들고 다시 촛점을 맞추고

순간적으로 얼굴에 손가락을 터치해서 확대하려 든다. 스마트폰의 폐해.

여는 시가 장엄하다. 불의 씨.

깃털 달린 뱀의 등장으로 아즈텍 문명의 케찰코아틀이나 쌍둥이 테즈카틀리포카를 떠올리며

와, 이거 스케일이 너무 큰 거 아냐.

맨하탄에서 파는 깨찰빵이든 먹고 나면 치카포카를 깨끗이 해야되는 것이든

시인은 자신 앞에 서 있는 건물이 피라미드로 보이고

행인들이 제전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읽혔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디에서? 신호등 앞에서.

파란 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그 지점이 나의 기원을 묻는 자리가 되어 시인은 상상력을

펼쳐 삶의 제사를 읽어낸 것 아닐까. 결국 제사란 창조와 생명과 관련된 일로 시인은

사랑을 바탕색으로 선택한다. 그 이후의 시들이 묻고 대답한다.

베리를 사러 갔다가 온몸이 멍들었어요

정염에 불타다 한 대 맞았다고 하면

모두 코웃음을 치겠지만

베리,

당신은 대서양 저편 장미 향기 날리는

아키디아 벼랑으로부터 왔지요

매혹의 베리,

빨리 당신을 사고 싶었어요

(...)

야속한 베리,

당신도 알게 되겠지요

사랑은 공평이 아니라 공습인 것을 - <베리베리 블루베리> 중

일상이 엄습한다.

파만두 만드는 법을 너는 전화로 알려 준다

아무것도 넣지 말고 파만 넣으라고

해풍 맞은 진도 대파를 꼭 써야 한다고

파만 넣으면 속이 뭉쳐지나

그럼 돼지고기 한 근만 갈아오라고

두부는 생략하나

그럼 한 모만 으깨 넣던지

소금, 후추, 마늘만 넣고 아무것도 넣지 말라고

달걀을 넣어야 접착력이 생긴닫고 하니

정 그러면 달걀 하나만 넣고

다른 것 아무것도 넣지 말라고 - <토요일의 소일거리> 중

레시피를 알려주는 친구가 이상하다.

당장 만들 것처럼 숨차게 들이댔다가 빠졌다하는 시인 또한 이상하다.

결국은 주문한 만두가 현관 앞에 도착한다. 이 세상에 없는 파만두와 현실적인 냉동만두가 자리바꿈하는 것이 먹지 못할 시와 섭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세계로 읽힌다.

베란다에서 대파를 까면

구름은 매운 구름이 된다

양산을 펼치면

비가 그친다

(...)

당신이 침을 뱉고 떠난 피부에

부스럼이 생겼다 - <조용한 일들> 중

테라야마 수우시의 시 <나의 이솝>이 생각난다. 초상화에 수염을 그려 넣어서 수염을 기르고,

문지기를 고용했으므로 문을 짜고, 수영복을 사면 여름이 온다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뒤집어도 돼요. 기껏해야 모래시계처럼 시간은 흐르고 일어나야 할 일들은 결국 일어날 테니까요.

살아가는 순서를 뒤집고 생각을 뒤집으면 얽히고 답답한 삶이 조금 비칠지도 모르잖아요?

풀 수 없는 문제집을 샀더니 답지가 딸려오는 것처럼. 끝내 답을 알 수 없으면 그 문제를

덮는 법이라도 깨우치는 것처럼. 문제집을 다시 펼쳤다 도로 덮게 되더라도 답이

도망가버리는 게 아닌 것처럼.

귀여운 드라큘라

내 품에서 안락을 누리는 아가

젖이 돌아 뻐근하구나

네 송곳니로 가볍게 찍으렴 - <To. 드라큘라> 중

거즈로 입가를 닦아주마…,싱싱한 젖을 다시 채워 오마…, 오, 앙증맞은 나의 분신 뚜껑을 덮어 줄게.

내면의 타자로써 시인과 거울을 같이 쓰고 있는 것은 드라큘라인가 보다.

먹어 치운 싱싱하고 앙증맞은 피들이 시속에서 내내 돌고 있다.

휘발시키고 싶은 기억들은 휘핑크림이 되고 상처는 성공의 가능성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인의

어조가 시집 전체를 뚫고 있다.

나의 첫, 평원

이라고 시인은 고백한다. 시집을 엮고서 비로소 똑바로 누울 수 있게 됐다는 걸까.

길이가 다른 것 같았던 두 다리로 반듯하게 설 수 있게 된 걸까.

비스듬히의 세계에서 시인은 비로소 수평을 잡고 어떤 기울기의 세계에서도 똑바로 설 수 있는

능력을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난 빨강이 좋아, 빨강으로 살 테야, 지렁이를 찧어 입술

에 바를 거야. 휠체어를 굴리며 새신랑을 맞을 거야. 당신

의 모순에 불화살을 먹일 거야. 당신의 알몸에 느낌표를 찍

을래. 학문과 항문을 구별하지 않을 거야. 가랑이 사이 노

란 질투를 마실 거야. 당신의 뒤꿈치를 노리는 뱀이 될 거야.

- < 색상환 > 중

이상하게도 시집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시인의 니샷을 본다.

시인이 고요한 장난기를 머금고서 윙크한다. 끼로 가득찬 내면은 살짝 들췄다 도로 덮는다.

아마 저 사진은 현상이 잘못 된 것이리라.

시인은 분명히 머리엔 난나바나나를 얹고 있고 블루베리 브로치에 색상환 치마를 입었을 것이다.

청재킷을 입었던 기타리스트에게서 낚아챈 기타를 앵글 바깥에서 발가락으로 퉁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표시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시작해야 하지만, '가지 못한 길이라고 사라진 건 아닐'(Da Capo)테지.

아닐 거야.

완성이란 없고 완벽도 없는 세계에서 직진만 할 수는 없잖아.

종지부로 가서 연주를 끝내고 쉬고 싶지만 이건 또 무슨 기호지? Fine에서 끝낼 것!

지휘자와 관객이 눈 앞에서 눈알 부라리고 있다. 호흡은 이미 다 썼고 근육은 파열될 지경.

Fine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 음악을 펼치면 악보가 그칠 거야.

간다. 흘러간다. 곧 닿을 수 있을 거야. 내겐 끝나지 않더라도 아름다우리라는 확신이 있어.

그게 내 음악이고 미술이야. 시야. 인생이야.

어때, 파도 소리 옆에 앉은 기분, 노랗디노란 참회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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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 옮겨 적기 -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 달을쏘다 시선 8
강주 지음 / 달을쏘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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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을 알고부터 매일 꿈을

꾸었네. 흰 개가 흰 개를 물고 돌아오네. 꿈속에서 흰

개는 한 마리였다가 떼를 이루었네. 오직 흰 개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 나는 있고 나는 보이지 않았네.

흰 개를 뭉쳐 던지는 손이 있고 흰 개가 핥는 손이 있

네. 흰 개는 소복소복 쌓이기도 했네. 흰 개를 부르

는 방법은 말 할 수 없네. 말이 아니라 몸이었으므로

(....)

흰 개는 울려 퍼졌네. 흰 개를

쓰다듬네. 흰 개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흰 개

를 흰 개로 옮겨 적네. 흰 개로 나를 지우네. 흰 개. 흰

개.

                                        - <흰 개 옮겨적기> 중

개는 어디까지 될 수 있을까. 시 속의 개는 목줄이 없는 것 같고 눈에서 몸으로 꿈으로 종소리로 종이로 계속 변신한다. 우리는 묻는다. 어떻게 그것이 되었으며 왜 그것이 되었는가.

시인은 답변한다. 자, 잘 보세요. 그것은 그것으로 존재하며 결국 그것 때문에 그것으로써 사라지는 거죠.

괜찮을 걸까. 개의 윤리학으로 볼 때 개를 그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이 시를 읽고 세 가지가 떠올랐다. .

1. 안톤 체호프의 <개를 끌고 다니는 여자> - 개의 표정이 줄로 연결된 사람의 표정을 대신한다.

                                                 표정은 얼굴의 표현이면서 얼굴의 고요를 가리고 방해한다.

2.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 - 얼굴을 가릴 때 얼굴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3. 장자의 호접몽 - 이것은 개가 꾸는 개의 꿈(?)인가, 사람이 꾸는 개꿈인가

.

  흰 개가 있다. 떼로 변했다가 다시 한 마리이다. 시인은 심한 난시를 앓는가, 몽상 중인가.

그것과 상관없이 흰 개는 있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있다. 늘 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경험으로 흰 개는 있다. 나눠졌다가 합쳐지면서 다시 여러 개로. 떠올린 게 아니고 떠올랐다. 생각한 게 아니고 생각났다.

 한 사람으로부터 촉발된 흰 개가 모든 걸 뒤덮어서 흰 개로 살다가 흰 개 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흰개를 옮겨 적는다는 것은 잘 옮겨적을 수 없는 일에 대한 증명이다.

결국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어조는 말을 잘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삭제하겠다는 것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안다는 것이라고. 이해했냐고. 우리가 이해했다는 말을 기어이 듣겠다는 표정으로,

아니 이해하지 못한 게 이해한 것이라는 질문과 답을 동시에 듣는다.

하얗게 변한 혀를 감추고 짙은 어둠 속에서만 짖는 흰 개의 표정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흰 개라는 확신도 지우면서.

하지만 사라짐이 완전한 붕괴일 리 없다고 쓰면서.

시인은 권한다.

이 거 한 잔 드시겠어요? 이게 얼마나 신 지. 앗, 뜨겁죠. 퉷, 쓰죠. 힛, 그런데 달콤하죠.

거봐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니까요. 어머, 제가 미리 말 안 했나요?

좌회전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기, 숨 참기, 급브레이크 밟기 같은 돌변하기.

너무 가까우면 시가 성립되지 않고

너무 멀면 무의미가 되는 현실에서.....

말을 통하지 않고는 그 어느 것에도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종이는 떨고 흰 색은 막막하다.

시인은 떨며 막막하다. 신기함으로만 끝나지 않는 숱한 이미지들과 싸운다.

새로운 악기를 만들 것인가. 새 연주법을 고안할 것인가.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이 비행기 엔진소리로 지워질 때.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며 진통제를 삼킨다.                                       -<새·꽃잎·눈> 중

세계의 진동으로 잠들지 못하는 시인의 몸에 진동은 진통으로 오고

모든 소리와 소란과 소동의 마일리지가 시인의 몸에 시로 적립되는 것은 아닐까.

한밤에 한 편을 읽고 아침에 한 편을 읽는다.

밤에 읽는 시와 아침에 읽는 시의 속도와 어조가 현저하게 다르다. 아침에 읽은 시를 한밤에

한밤에 읽은 시를 아침에 읽는다. 계속 다르다.

강주 시인은 미학교실의 순수멤버가 아닐까.

한 창작기금 수혜를 받을 때의 심사평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동의한다. 시 속의 사물과 화자들이 화면 속 또 하나의 액자 속에서 다른 층위로 일렁인다.

하나의 시가 다른 시에 어깨를 기대고 다리를 휘감고 손을 붙들면서 지탱으로써, 겹침으로써,

위험을 감수한 채 서로의 배경이 되며 대칭으로 비대칭으로 재생되고 있다.

흰 개는 잘 옮겨졌을까.

종이를 깊게 파서 심었는지, 종이를 접어서 이층집을 지어주었는지, 종이로 싸서 이동을 시켰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의 결과로 검정개의 출현할 수도 있고, 인간의 탈을 쓴 개가 출몰할 수도 있다.

스스로 마음을 차지하려면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부작용은 지나치게 몰입해서 생기므로

이제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기로 해요. 의미가 제거된 관점으로

-<G의 징후> 중

당신이 사라진 종이는 바다로 일렁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를 본다. 새는 언제나 손잡이로 있다.

-<수상한 손잡이> 중

종이의 주기는 달에 있는 걸요. 달빛을 낭비하며 아무도 모르게 달을 위험헤 빠뜨리는 것까지/

종이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다시 종이를 진행할까요?

-<다시< 종이>,> 중

바다에 대해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을 다 지우면 비로소 진정한 바다일 거라고 믿으며, 수평선을 향해 달리는 소녀가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 중

이제 알 것이다.

모든 세계가 종이 위의 세계임을. 구겨지고 펼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이 종이임을.

그래서 우리는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새를 접어서 밤이 오고, 밤이 와서

별을 접어야 한다고. 시인이 하려는 일은 종이를 알기 위해 종이에 대해 아는 것을 다 지우고

진정한 종이와 대면하기라는 것을.

접고 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종이로 부르려 한다는 것을.             

흰개들이 잘 달리는 종이 위의 숲, 시인아, 그곳의 매혹 위

겨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눈 앞에 느닷없는 작약이기를...

사람을 가장 깨끗하게 하는 비밀은 죽음(패러디)이지만 그런 건 좀 모른 척 접어두고 조금 덜 깨끗한 채

용기를 내어 오늘을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은 이제 막 얼.굴.을. 시.작.한.다. 흰 천을 걷고서. 종이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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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문예중앙시선 55
임재정 지음 / 문예중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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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다층에서 <바누비누 이민 안내>로 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되었을 때 내놓은 시인의 소감을 기억한다.

나는 벽을 마주하는 직업을 가졌다. 
더욱 낮은 자세로 시와 나와 세계에서 면벽! 이런 다짐으로나 갚을 밖에.
깨어 부은 두 손을 맞주무르는 아침마다 늘.

 

벽을 마주 대하여 더욱 낮은 자세로 갚겠다는 시인이어서일까.

이번에 발표된 첫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에서는

눈보다 높이 고개를 들어 꾼 허황된 꿈을 발견할 수 없다.

시집에 엮인 시 중 고도가 인식되는 낱말은 헬리콥터와 십자가 혹은 사다리.

꿈에서나 촛점을 잃고 대상을 쫓아갈 뿐이다.

대신 그는 저수지이거나 지하이거나 변기와 구근이다.

모란과 동백과 참꽃으로 만든 삶의 향기를 침묵으로 흘리면서.

면벽보다는 벽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려고 벽에 바짝 달라붙어 얼굴을 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스며들어 벽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은주*

나를 볼까 눈을 찔렀다는 너에게
손목을 잘라 보냈다
잡을까 두려웠다고 단면에 썼다
붉은 소포가 검게 얼룩져 되돌아왔다

뉘신지, 저는 눈 찌른 뒤 그 밖의 것들이 열려, 온 데가 꽃일 것 같습니다만

밤하늘엔 온통 검은 속 흰자위 하나

발바닥에 든 초승달을 품다 
떨리는 꼬리를 얻고 나머진 다 잃었던가요

반목하는, 눈 찌른 밤을 손목 자른 밤에 잇느라
뜬눈으로 가로지르던
새 한마리



* 마침내 꽃이 된 이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

 


스패너와의 저녁 식사


 모차르트와 칸트는 잘 몰라요 마구 대하면 물고 열 받
은 만큼 체온이 변할 뿐이죠 스패너 말이에요 내 손바닥엔 
그와 함께한 숱한 언덕과 골짜기로 가득해요 지친 날엔 함
께 사촌이 사는 스페인에 갈 수도, 집시로 가벼워질 수도,
공통적으로 우린 공장 얼룩 비좁은 통풍구 따위에 예민합
니다

 초대합니다 나의 반려물들과 친해져보아요 틱 증세가
있는 사출기는 덩치가 커다랗지만 사춘기고요 스패너는
날렵한 몸매에 입과 항문을 구분하지 않아요 악수할까
요? 융기와 침하를 거듭하는 진화론을 두 손 가득 담아드
리죠

 아홉 시 뉴스를 쓸어 담은 찌개가 끓어요 (패륜이란 내
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세게
로 지문에 퇴적된 기름때를 문지릅니다 무지개를 문 거품
을 분명한 목소리로 무지개라 부릅니다

 함께 늦은 저녁을, 숟가락에서 마른 모래가 흘러내려요
건기인가 봐요 우리를 맺어준 물결은 어제처럼 흔적뿐
 몇 개의 공장 지나 강을 따라 우린 바다에 닿을까요 출
항을 꿈꾸는 침대가 삐걱댑니다 마침내 스패너는 분무하
는 고래가 되고 나는 검푸른 등을 타고 남태평양을 항해하
는 꿈, 당겨 덮습니다


 

 캐서린의 <빨강의 자서전>에서 주인공 헤라클레스가 이야기한다.

'무하마드 알리에게 콥스 씨라는 코너맨이 있었는데 라운드가 끝나면

둘이 링 로프에 웅크리고 앉아서

시를 썼지'

영화 <패터슨>에서 꼬마 시인이 마중나온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 버스운전기사를 만났어요'

이야기는 얼마나 세계를 확장시키는가. 


 

'다시 태어날 땐 사물의 몸을 빌릴 것, 뭐가 좋을까?

윤활유를 쳐야하는 것이라면 뭐든!'(마리에서 로렌까지)

 

올리브 식빵을 입에 우겨넣다말고 생각한다.

음. 나도 다시 태어난다면 망치가 어떨까.

머리와 자루가 같은 소재로 된 일체형의 망치,

나는야

녹슬면 커다란 화분이나 땅에 머리를 박고

흙에 철분이나 조금씩 흘리며 연명하는 망치가 되고 싶네.

불안한 영혼따위 없이,

머리를 아무리 세게 부딪쳐도 흔들리는 생각 없이.


 

 밀물을 견디다; 달이 지구로부터 돌아앉듯 나를 피해

당신이 숨는다; 웅크린 자세로 짓는 그믐이라는 당신의

표정; 당신이 들여다본 나란 낭떠러지일 수도 있다는 생

각; 나의 어제에 볼모 잡힌 당신은 이제 어떤 날개를 얻어

불치인 꿈에서 벗어나시려는지

 

(...)

 

 우편함에 날아든 나비를 보았다 내가 지구에서 만난 가

장 눈부신 혼인색, 봄꿈이라는 당신

 나비 겹눈 속 밀물이다, 붉은 폭설이 흩날린다


                                              - 나비 중 부분


 

 

나는 즐거워

세상엔 온통 고장 난 것들뿐이니


                                                      - 시인의 말


나는 상상한다. 

일하다 짬이 날 때 공구를 오른쪽에 내려놓고 메모하는 시인을.

어쩌다 엎지른 종이컵의 커피가 새소리가 되고 전선줄에 전기를 통하게 하고 
간혹 구름을 흔들어 비가 내리게 하는 문장들이 종이에 못처럼 박혔지.

 

진흙과 얼룩과 구릿함과 발꿈치를 든 시인의 시집이다.

'어쩌다 물 냄새에 웅크린 사구의 한 움큼 모래, 밤이면 사막 한가운데 끌려가서 물기란

다 빼앗기고 쫓겨오는' 삶이지만

 지느러미 혹은 지상엔 무효한 양식인 날개로 간절히 가벼워지는 연기의 구도처럼

 가볍게 리드미컬하게 꽃잎을 헤아려 겹겹 구근을 다 알게된 듯한 자세로.

 

는 즐거워

세상은 온통 치받을 것뿐이니.

 

고장난 것은 또 고장나겠지만

결국엔 '삐걱대면서 여기를 떠난다, 안녕'이겠지만

즐겁고 우울한 고장의 세계에서 오늘도 스패너를 들고 건배.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하는 것은 패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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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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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온동물로 산다는 것에 깊은 피로를 느낄 때가 있다.

더위와 추위에 맞서는 육체뿐 아니라 감정도 그 육체의 일을 답습하니 말이다.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 채 통과하기 바쁜 생에서 계절이 '울컥'의 다름아닐 때

분명 시간은 지나갔는데 지나가지 않는 계절이 있다면 어떠할까.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바깥은 여름....의 의미는 그렇게 풀이된다.

바닥이 없는 계절에 푹푹 빠지기에 표면장력으로 세상에 닿지 않고 살아가는 소금쟁이 같은.

지난 계절에 버려져 언제 회수될 지 모르는 사람.

 

자루에 담겨 끈으로 묶인 채 나뭇잎 다 떨군 나무 옆에 덩그마니 버려진 개.

자루 아래 따뜻한 피가 서서히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는 데도 외면당하는.

피의 사연에 손을 대면 피가 전염되리라는 미신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수식어가 없는 눈물, 아프다 발설하지 못하는 통증으로 가득찬 문장들이다.

폭설과 결빙이 심장을 통과하며 흘리는 이야기들이다.

비극이 바라보는 타인의 생을 맑게 한다. 비극적이게도.

 

작가의 손가락을 따라 눈물 몇 방울 떨구다 보면 잊고 있는 타인이라는 단어가 오롯이 떠오르고

달빛이 천처럼 드리워진 테이블 앞에 앉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오래 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책을 덮어도 책 속의 인물들이 가족처럼 이웃처럼 느껴져서 신경이 쓰인다.

사라진 이웃과 묽어진 가족이 그리워서일까.

훗날 이 책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기 위해 하나의 글을 요약한다.

 

          

*노찬성과 에반


찬성이는 트럭운전사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소년.

휴게소 음식점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는 퇴근해서 돌아오면 담배 한 대를 물고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읊조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용서가 뭐야? 없던 일로 해달라는 거야? 잊어달라는 거야?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휴게소에 묶인 채 버려진 강아지에게 얼음을 먹여준다.

손바닥에 에반의 혀가 남긴 분홍의 감촉 때문이었을까.

찬성은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로한(?) 강아지를 데려와 에반이라 이름 붙여준다.

이 년이라는 세월 동안 에반은 늙고 소년은 성장한다.

찬성에게 중고 핸드폰이 생기게 되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긴 찬성은 노쇠한 에반이 예전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병들어 투병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는 에반에게 안락사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광고전단지를 돌리며 그 비용을 마련하지만 다른 소비의 욕구에 시달린다. 핸드폰을 치장하는 데 조금씩 사용하다가 결국은 턱없이 모자라게 되는 비용.

 

찬성은 이제 자신의 욕망과 타협한다. 자신의 욕구에 찬성한다.

에반에게 안락사가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어. 나와 함께 지내다가 아프지 않게 죽을 수도 있어. 에반의 통증은 날로 깊어갔고 찬성의 욕구도 커져갔다.

 

어느 날 귀가해보니 에반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자 휴게소로 가보는 찬성.

입구에서 한 자루를 보게 되고 직감적으로 유기견을 처리한 자루임을 알지만 찬성은 생각한다.

찬성은 끈을 풀고 주머니를 열어 에반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루 아래 따뜻한 피가 서서히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애써 확인할 이유가 없었다.

 

에반이 유기견은 아니었잖아.

식사를 마친 주유소직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정말이야, 그 개는 마치 죽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뛰어든 것 같았다니까.

 


 

극은 예쁜 여인의 눈동자와 개의 코와 사자의 이빨과 뱀의 피부와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다.

얼마나 반짝이는 눈인가. 얼마나 민감한 코인가. 얼마나 빠르게 낚아채던가. 얼마나  매끈하게 날아오르던가. 비극은.

그것의 온전한 외부는 또 얼마나 높이 솟아오르던가.

 

비극에 감염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희극을 쫒아가다가 희극이 원래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감지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왔다.

그리고 늙어가고 있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오늘을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주문을 걸며.

소리를 내고 공중을 울리다가 사라지는 음정을 보는 것처럼 그것을 하나의 연주처럼 듣고 보고 견디며.

그러다 주인공이 되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사라질 때만 내가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온전히 의식하면서.

희극이라 여겨다오.

가끔은 피할 수 있었던 것과 가끔은 피할 수 없었던 것과 가끔은 선택했던 것들이

하나의 계절이 되고 하나의 사람이 되고 하나의 사고로 남는다.

그 중심에 늘 나는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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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를 걷다 - 나를 지우고, 나를 세우는 힐링 여행 산문집
동길산 지음, 조강제 사진 / 예린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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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는 마음속 피안이기도 하며 피안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멀다면 한없이 멀고 가깝다면 한없이 가까운 마음속 포구에 오늘 또 나를 세웁니다.

수평선은 늘 봐도 모르겠습니다. 곡선인지 직선인지. 곡선과 직선을 뛰어넘은

선 너머 선인지.    

 

포구를 걷다, 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동길산 시인과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조강제 사진가 함께 만들어 낸 여행 산문집이다.

부산 포구들에 얽힌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 잔잔한 사유가 사진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포구를 등지고 선 가이드가 포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듯 쉽게 읽히며 포구라는

경계의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 사진은 풍경을 돋을새김한다.

글. 동길산 + 사진. 조강제, 라는 나란함에서 알 수 있듯이 글 따로 사진 따로 보아도 포구를

걷다라는 제목은 흐려지지 않는다.

 

 

 

 

부산의 포구는 기분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어린 날 귀에 바닷물 들어 군인 대신 시인으로 몰아갔다는 추억의 송도 해수욕장,

자신이 미워질 때 찾게 된다는 부산 동해 끝자락 포구 월내,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비린내와 하나가 되는 대변,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풍광 탓에 겉을 보고 판단한 성급함을 꾸짖게 만드는 공수,

성이 동가인 탓에 늘 동심이며 얼굴은 동안이라는 입심이 오십대엔 통하지 않을까봐

조형!에게 투정을 부리게 되는 월전.

푸르지 않은 것이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갈매기의 눈도 푸른, 마지막 해녀가 물질하는 청사포,

머리가 되라는 세상에 떡하니 꼬리를 내세우는 미포.

 

내가 선 자리, 포구. 포구는 경계다.

물과 뭍의 경계다. 젖음과 젖지 않음의 경계다. 나아감과 돌아옴의 경계다.

 

포구는 경계이기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발을 뻗는 에너지가 나이먹는 것에 대한 전진같아서 두려워지고

서 있다는 것의 고됨과 먹먹함을 생각하게 된다.

꼭 필요했던 것들이 경계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몇 킬로그램까지 덜어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포구를 걸었더니 살이 빠지더라는 말은, 왠지 몸이 가벼워졌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말일 것도 같다.

 

 

 

 

풍부한 텍스트를 가진 사진은 포구라는 공간 너머의 시간의 혼돈과 질서를 생각하게 한다.

물고기의 장례식에도 예법은 있어서 그들의 영혼이 떼지어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 부딪치지 않게 배열한 어부의 마음과 생의 뜨거움이랄지

오로지 시각에만 집중하게 해 생선 노점도 꽃집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이랄지

고작 낚싯대를 메고 가는 사람들과 갈매기 한 마리의 소품이 고층 스카이라인을 무릉도원처럼

읽히게 하는 낯설음이 있다.

 

 

 

 

부산에는 약 70여 개의 등대가 있다 한다.

그 빛은 40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며 빨간 등대는 빨간 불을 깜빡거리면서 입항을 유도하고

녹색 불 깜빡이는 흰 등대는 출항하는 배를 도와주는데 육지에서 보면 흰 등대는 우측에,

빨간 등대는 좌측에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다.

 

오륙도가 남해와 동해의 경계이며

해남 땅끝 마을이 남해와 서해의 경계가 된다는 것.

명지엔 바다 아래 장애물을 피해 다니라 꽂아둔 참나무 작대기가 있고

다대포엔 파래 양식에 쓰는 대나무가 꽂혀 있다는 작대기들의 의미, 그리고

정선에 있는 몰운대가 다대포에도 있으니 이른바, 해운대, 태종대, 이기대 등과

함께 부산의 절경으로 꼽힌다는 것도 덩달아 알게 된다.

 

 

 

 

미포의 새벽풍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배가 나가는 새벽 두세시가 분주하고 배가 들어오는 새벽 여섯 시 또 한 번 분주하다'

배가 고기를 풀어 어물전 난전으로 흥청대느라 완전 분주하다.

한 접시 만 오천원!

새벽 6시에 열리는 시장은 횟집 영업시간과 겹치지 않게 오전 11시에 철시한다.

배려하고 묵인하는 신기루 같은 새벽시장.

제일 느리게 변해서, 거의 변한 것이 없어서 아름답지 아니한가 시인은 묻는다.

 

밑반찬 없이 깻잎,고추, 마늘 초장과 함께 먹는 방어와 쥐고기 회.

자갈치시장에 가면 먹을 수 있다는 4천원 짜리 고등어 구이와 시래기국 정식에 침이 고이는 걸

보니 허풍을 좀 치고 싶어진다.

책 한 권 읽고 부산 사람 다 됐다 아이가.

얼레? 부산의 모든 포구가 낯설지 않다.

 

 

 

 

구를 걷는다는 것은 제 반영을 밀어내며 끌어당기며

자신이 세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아닐까 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쓰러뜨려 놓고 한 판 질기게 씨름해 보는 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아무나 이겨도 내가 이기는, 아무나 져도 내가 지는 그런 싸움말이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어폰을 끼고 강허달림의 <하늘과 바다>를 들어보는 것도 참 좋을 일.

나 아닌 모든 나에게,

나를 잊은 모든 나에게 말을 걸어도 좋을 일.

포구에 가고 싶다, 실없이 내뱉게 되도 참 좋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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