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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 (1disc) - 할인행사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린다 블레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어릴 적에 엑소시스트를 아마 여러 번 봤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욕설과 이상한 액체 등이 강한 기억으로 남았을 뿐, 영화 전체를 쭈욱 따라가며 감상한 흔적, 하나의 긴 맥락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감상하는 경험을 가졌다.
이런 심령영화(엑소시즘, 퇴마)의 초기작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서둘지 않는 노련미가 있다. 즉 결정적인걸 어디서 얼만만큼 보여줄지를 절묘하게 골라내고 있다. 그로인해 영화 앞부분이 느슨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이 영화가 선 보인 시기가 70년대 초임을 감안한다며, 그리고 이런 영화가 부재한 상황이라면 '충격 효과'를 제대로 달성하기에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그렇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충격적인 것은 관객이 예상하는 순간보다 느리게 혹은 너무 빠르게 뭔가를 선사한다는데에 있는 것 같다. 소녀가 악령에 쓰인 걸 관객은 눈치채지만, 영화에서 엄마와 의사들은 기존 상식의 범위 안에서 그것을 해결하려 애쓴다. 뇌 안의 어떤 육체적 원인에서부터 정신병의 여부로. 그래서 첨단 의료 장비를 통해서 그 원인을 찾느라고 헤멘다. 그런 헛다리 짚는 첨단 과학의 행동들을 관객은 답답한 시선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정신과 의사들이 마지못해 권하는 제안이 '주술의식'?이다. 그것이 신빙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간혹 그런걸 믿는 환자들에게 심리적으로 효과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가짜 믿음엔 가짜가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고 오래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젊은 신부와 소녀가 대면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영화는 빠르게 이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는 늙은 메린 신부까지 불러 들인다. 악령에 제대로 씌인, 악령이 장악한 소녀와 두 신부와의 만남. 그리고 엑소시즘이라는 일종의 퇴마의식이 차가운 입김과 함께 시작한다.
영화 맨 앞부분에 이라크 유적 발굴 현장에서 메린 신부가 악마의 상징물을 발견하고 나서, 그 불길한 조짐이 분명 현실화될것임을 우리는 예상했다. 그 지점이 바로 아주 뒤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루하게 기다렸으니, 그들의 만남에서 불꽃튀는 한판 대결이 있을 법도 한데, 그 무서운 장면들을 대비하면서 호흡 조절을 하는 관객의 바램을 영화는 보조를 맞춰주지 않는다. 잠깐 하는 사이에 메린 신부는 싸늘하게 죽어버렸고, 젊은 신부가 그것을 발견하자 마자 소녀의 악령은 그에게 전이된다. 신부의 얼굴에 악령의 모습이 깜빡일때, (관객이 이게 뭔가? 좀 생각을 더듬기도 전에) 그 신부는 너무나도 빠른 판단과 그 권투로 다져진 운동신경?을 발휘해서 창밖으로 뛰어든다. 그래서 공포를 즐기지도 못하고 공포의 빠른 습격, 그것도 카운터 펀치라기 보다 적절한 잽에 불쾌한 타격을 맞은 꼴이 되버렸다.
바로 그러한 묘한 불일치가 개운하지 않은 맛을 주고, 이 영화가 주는 어둑 어둑한 뒤끝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지금에서 보면, 그렇게 강한 시각적 공포를 조장하지 않고서도(물론 그 당시에는 파격일 수 있지만) 뭔가 심리적으로 무거운 공포의 잔상을 남기는지도 모른다.
덧붙임: 어린 소녀의 아빠는 로마에 있다. 즉 소녀에겐 아빠가 부재하다. 그런데 소녀가 위험에 처했을때, 다른 아빠가 찾아온다. 파더, 바로 신부(Father)다. 아빠가 없는 소녀에게 파더들이 구제하러 오는 것이다. 여기에 담긴 미국 사회에 대한 메타포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