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이 주는 아름다움! 자연은 어찌하여 이러한 대칭을 곳곳에 품기도(숨기기도) 하고, 드러내 보이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지. 물론 인간적인 시선으로 훑는 호기심일지라도 말이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는 이러한 대칭을 과학적으로 흥미롭게 다룬 책이다. 이언 스튜어트는 자연과 수학, 그리고 패턴에 관한 여러 책들을 썼다.  

 

 

 

 

  

무더운 여름인데, 멋진 이미지들과 함께 눈이라도 여행을 떠나볼까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오스카 애니메이션>은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여러 작품에 대한 소개가 아닌, 인터뷰 형식을 통해 현장감을 살린 것이 큰 장점으로 보인다. 그러한 속살에는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표현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도 담겨있을 것이다. 

<상징과 비밀>과 <이콘과 아방가르드>는 딱 내 취향의 책이다. 이미지 안에 의도적으로 새겨진 상징, 그러나 쉽게 들춰지지 않는 비밀스런 위장. 그러나 결국은 (미래 누군가에게는) 보이기 위해 감춘다는 것 아닌가? 대중의 초점을 비켜가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다가서려는 그 중층적인 위장과 힘은 꽤 매력이 있다. 

출판사 예경에서 나온 -아트 라이브러리 시리즈-에는 갖고 싶은 책들이 많다. 그래서 옮기다 보니 꽤 양이 많아졌다. 이 중에서 <20세기 정치선전 예술>, <사진에 나타난 몸>, <오늘의 미술>은 우선 보고픈 책들이다.  

 

끝으로 위의 책들과는 사뭇 다른 분야의 책을 골라본다.

-요가수트라- 최근에 학문적인 무게를 갖춘 <요가수트라 주석>이란 책이 나왔다. 그 전에 나온 책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요가수트라가 단순한 번역과 어원과 철학적인 깊이까지 고찰하면서 다룰 때,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가수트라'는 서양이 갖지 못한 (동양-인도에서 보여지는) 몸-마음 사다리를 내성의 힘으로 탐구, 구성하려는 의도를 가진 체험의 텍스트다.  불교의 유식학파도 출발점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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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 한 권을 고르다가, 예전에 들춰보던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을 간단히 추려본다. 그리고 새로운 기법?을 소개하는 책들도 곁가지로 붙인다. 

 <애로우 잉글리시>는 같은 지은이의 책, <사진기사 50개로 끝내는 영어>를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시점 이동'이라는 발상을 통해서 그 과정을 이미지화하는 방법이 독특했고,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아마 독자들한테 반응이 괜찮았는지 '애로우 잉글리시 시리즈'가 제법 나왔다. 먼저 <애로우 잉글리시>를 통해 시점이동을 통한 순간적인 이해방식의 감각(원어민식 사고?)을 익히고, 실전용을, 즉 <애로우 잉글리시 : 실전편>(<사진기사 50개로..>의 개정판으로 보임)을 보면 된다. 그리고 전치사나 영단어까지 확장된 방법들이 포진해 있다. 나는 시간이 난다면,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로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어공부를 해볼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해 본다.

 

 

 

 

 

 

 

 

 

 

 

 

 

 

 

 

 

 

나는 아무래도 교과서적인 방식보다는 우회적인 걸 더 선호한다. 영어공부도 그러했는데, 그래서 결과가 신통치 않았나? 

 

 

 

 

 

 

 

 

영어의 길을 잘 따라 가려면, 문법과 동사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고들 한다. 죽은 동사가 아닌 팔팔한 동사의 율동을 엿보려고 <동사를 알면 죽은 영어도 살린다>를 접했었다. 그때만 해도 이러한 방법으로 영어를 소개하는 책들이 적었는데, 빠른 시간에 핵심적인 걸 얻고자 하는 욕심을 비켜가지만, 동사의 감을 맛보는데는 효과가 있었다. 단, 꾸준히 그 두툼한 책을 완주해야 하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영문법에서는 <뒤집어 본 영문법>이 이와 유사한 자극을 주었다. 

이젠, 독해로 넘어가자. 어쩔 수 없이 영어 원서를 접할 일이 많은데, 늘 애를 먹는 형편이다. 그나마 아래 책들 중 몇 권의 도움으로 지렁이가 도랑에 살짝 고개를 내미는 숨고르기 정도는 되었나.. 

 

 

 

 

 <영어독해! 너는 끊어서 생각하니, 나는 한번에 이해한다>는 쉬운 영문을 독해하면서, 문법의 감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는 책이다.  <영문독해 기법 100>은 스기노 다카시라는 일본인의 책인데, 특유의 일본식 집중공략법이 눈에 띤다. 마치 검도와 유사한.. 그러나 처음 타격에서 오는 열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간다는 단점이 있다. 적당한 수준에서 들춰보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1분에 끝내는 완벽 독해법>도 제목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것 같다. 

 

 

 

 

 

 

 

 

      

영어 독해에 대한 여러 기법들이 있는데, <스피드 리딩>과 <영어 리딩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 독자 반응도 미지근해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 속독이라니? 이런 놀라운 일이 있나!  영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아마 이런 책들도 찾게 되지 않을까? 

다시 영어책... 정도의 길이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놓지 않은 책이 있으니, <영어순해>라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사고습관을 고려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다른 책들과 다른 장점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영어순해>를 제대로 마치면, 영어의 흐릿한 구름도 살짝 걷히지 않을까? 

 

 

 

 

 

 

 

어휘책 보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그래도 몇 권 정도는 봐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어는 외롭지 않다>는 보던 책인데, 다른 어휘책하고는 약간 다른 맛이 있다. 시스템적인 구성을 갖췄다고 해야 하나?

<능률 VOCA 어원편>은 뭐 꽤 유명한 책이다. 예전부터 판을 거듭하면서 계속 많은 시람들과 만나는 대표적인 어휘책 중 하나다.

 

 

 

 

끝으로, 영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발음, 그리고 고급스런 단어책? 하나를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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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하이데거를 동시에 스치는 책이 보인다. 카자 실버만의 <월드 스펙테이터>, 서양철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뿌리인 시각(성)을 다룬다. 데리다는 음성중심주의을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시각과 음성(목소리) 둘 다 큰 몫을 가진게 아닌가?  어떤 철학자는 서양의 전통에서 시각에 비해 소리(음성)를 소홀하게 취급했다는 볼멘소리도 한다. 음성(소리)이 텍스트에 한해서만 우위를 가지고, 다시 시각과 비교해서는 차별을 받는다?  그럴수도 아닐수도..

 

 

 

 

다시 <월드 스펙테이터>로 돌아오자. 이 책을 곧 구해서 볼 생각인데, 책소개글을 보자이 이런 말이 나온다. "저자는 시각의 행위가 존재와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는 주체인 우리 스스로에게 세계의 존재가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자신이 보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 자신이 보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늗다-라는 말이 정말 저자가 진정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미끼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나만의 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캉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정점을 찍은게 아닐까? 한때 라캉을 후끈하게 몰던 지젝도 이젠 어느정도 목적을 달성했는지 헤겔과 (정치적인 문제로) 연락을 더 자주하는 눈치다.  라캉에 관한 책이 꽤 많이 나왔는데, 임상에 대한 책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 부족함을 채웠던 책이 <라캉과 정신의학>이었는데, 이 책의 역자 맹정현이 스스로 라캉의 임상을 보강하고 나섰다. <리비돌로지>라는 책인데, 왠지 라캉에 대한 충실한 되먹임 역할을 해줄 거 같다.  

 

  

 

 

 

글쓰기에서 속도와 이상한 과잉을 몸소 보여주는 지젝, 한번 쓰면 엄지와 검지가 쫙 벌어져야 잡을 수 있는 두툼한 책의 질감과 무게까지 선사한다. 전도자이기도 하지만, 스승 뒤에 얌전히 숨지 못하는 본성! 그것이 지젝이 우리에게 주는 큰 매력이 아닐까.  

아마 내가 지젝의 책 중에서 하나를 선뜻 잡지 못한다면, 그 책은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이 될 것이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데, 거기다 지젝의 현란함을 어찌 견디겠는가?  그렇다면, 지젝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나의 대안을 찾아야겠다. 이때,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라는 책이 붉게 반짝거린다. 그러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어수선하게 흩어져 놀이에 열중인 철학동네에 대한 선전포고같은데.. 포스트모더니즘이 된통 혼날거 같은 예감이다.  지금 막 <시차적 관점>을 읽는데, 이것을 마치기 전에 이 책으로 갈아탈지도 모르겠다.  

지젝이 나온 김에, 잠시 가라타니 고진을 불러오자. 지젝과 고진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스타일은 꽤 다르다. 지젝이 양각(양, 돌출)이라면, 고진은 음각(음)에 가깝다. 지젝이 역동적이고 텍스트를 비트는 것을 좋아한다면, 고진은 정적인 바둑 한판처럼, 마주보고 대화하는 듯한 착각까지 주면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그러면서도 둘은 반복성이 뒤따른다. 비슷한 내용이 여러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그 반복에서 다시 새로운 버전과 내용을 추가하는 동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 둘(지젝과 고진)은 서로를 지그시 응시하는 것 같다. <시차적 관점>이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하나의 반응인 것처럼 말이다. 

 

 

 

 

 고진의 책도 참 많다. 여기서 고른다면, <탐구>시리즈가 쉽고 괜찮았던 거 같다. <언어와 비극>은 고진의 여러 책에 담긴 것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고진의 야심작이라 할 만한, <트랜스크리틱>은 스스로도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어려울 수 있다고 밝히지만, 원래 글을 쉽게 쓰는 스타일이라서 겁을 먹을 필요는 없겠다.  참고로, 이 책은 여기 알라딘에서는 품절로 나오지만, 다른 서점에선 판매중이다.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가타리>는 전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출판사가 바껴서 나왔다. 번역자(이정우)도 그대로고 쪽수도 엇비슷한데, 아마 큰 차이는 없나보다. 로널드 보그도 들뢰즈에 대한 책을 꾸준히 내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도 여럿 번역되어 나왔다. 나름대로 어렵지 않게 들뢰즈의 진의를 전달하려고 애쓰는 흔적이 보인다.  

   

오랜만에 프로이트에 관한 흥미로운 책을 찾았다. <프로이트가 꾸지 못한 13가지>라는 제목을 가졌는데, 최근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입장에서 과거 프로이트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라 하겠다. <굿바이 프로이트>도 이와 유사한 책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현상을 단지 시각에 호소하는 물리적인 인과관계로만 해석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젠 좀 가벼운 마음으로 살필 책이 한 권 있다. <해인의 진실>이란 책인데, 최근에 소설 <해인의 비밀>을 읽었는데, 이 책과 연장선에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해인은 의상대사의 '법성게'와도 관련이 있지만, 자연이 품고 있는 기, 에너지의 상징기호(회로)를 가리키기도 한다. 상식의 차가운 경계와 합리적인 시각을 벗어난 지점을 간지럽히는 소설이다.  

 

 

 

 

 

끝으로 최근에 고른 언어학, 기호학 책들이다. 

 

 

 

 

 

 

 

 

 

 

  

 

위 책에서 가와다 준조의 책이 묘하게 눈길을 잡는다. 일본어 특유의 것들을 건드리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자칫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언어(학)에 대한 새로운 색깔과 바람기를 느끼게 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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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에 나온 라캉의 책이 보인다. <라깡과 언어와 철학>인데, 이제는 라캉을 가지고 왠만한 변주들은 나온 것 같은데, 이 책에서도 그러한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간판이 비슷해도 그 내부를 어떻게 꾸미는 가는 그 주인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욕망의 전복>은 전에 읽은 책인데, 잠시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온 모양이다. 그만큼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는 것일게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가진 피터 왓슨의 <생각의 탄생> 시리즈를 보자니, 입이 잠시 벌어진다. 이런 거대한 지식의 기획을 무슨 생각으로 하는지 참 신기하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를 하게끔 만든 그 생각의 탄생이 더 궁금하다.   <쾌락의 역사>라는 책은 개인적으로 꼭 구해서 볼 생각이다. 

몸에 관심이 많다. 전에 도올이 기철학, 몸철학을 말하더니 요새는 좀 조용한 거 같다. '몸의 철학'에 대해서 잘 정리해서 페이퍼를  쓸 예정인데, 미리 몇 권을 골라서 올려본다.  

-> 이 세 권은 연관이 깊다. <몸의 철학>과 <마음 속의 몸>은 마크 존슨의 책이고(<몸의 철학>은 레이코프와 공저), <몸 언어 철학>은 이들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던 노양진의 책이다.  

 

 

    

 

 

 

 

 

몸철학의 다양한 재료와 자극들은 동양엔 상당히 많다. 즉 서양에선 몸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동양에선 기철학의 바탕에서 철학이든 종교든 몸은 늘 중요한 대상이었다. 그것이 단지 사고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천에서도 그러하다. 어떻게 보자면, 주역과 기의 운행이 몸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까지 자연스럽게 시도가 되었는데, <태을금화종지>나 <주역참동계>에서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불교에서 몸을 부정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그러한 흐름이 없지는 않지만, 밀교에서는 분명, 몸은 중요한 방편으로 긍정된다. 특히 외부로 향하는 관법이라는 것도, 결국엔 자신의 몸으로 수렴해서 완성이 되는데, 세속의 몸이 성(聖)의 장소로 변용되는 것이다.  

<기의 철학>은 전에 상, 하 두 권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 튼실하게 한권으로 묶였다. 동양사상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그 근저에 흐르는 기의 혈맥을 따라가봐야 할 터,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몸, 국가, 우주 하나를 꿈꾸다>는 전에 사려다 품절이라서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에 다시 살아난 책이다. 논문 형식을 갖췄는데, 어떤 체계적인 서술로 결론을 이끌어낼지 호기심이 생긴다.

  

짧게 요약한 황제내경 개론서는 몇 번 읽어 본 적이 있다. 동양학 관련 책들을 보다보면, 한의학 책이 아니더라도 황제내경이 자주 등장한다. 이 책은 자칫 비과학적으로 몰리기도 하는 한의학을 나름대로의 합리성, 과학성을 살피는 의욕이 묻어있다.  

 

 

  

위의 책들에서 보이듯, 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단순한 요청을 가지고, '몸의 철학'이나 '몸철학'의 색깔이 다 같을 순 없다. 그러한 동양과 서양의 시각과 방법론적 차이는 더 배워야 할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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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간의 출현! 그것도 니체를 비스듬히 스치면서 나타난 '호모 크레아토'. 요새 책 구경을 하다가 발견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목차를 보니까 논문형식에 가까운데, 이 점은 조금 아쉽다. 글의 형식마저도 곁가지들이 마치 새로운 공간을 탐닉하듯 뻗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니체의 책을 건드렸으니, 간단히 아직 접해보지 못한 다른 것들도 살짝 만져봐야겠다.   

 

 

 

 

 토마스 만이 프로이트를 자신의 문학을 통해 어떻게 (적극적으로) 반응했는지는 몇몇 작품을 통해 알수 있다. 니체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이 책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를 통해 직접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기회가 생겼다.  

니체 해석은 아무래도 하이데거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이데거의 눈을 통과한 니체가 과연 진정한 니체였는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그 결과물에 대한 반응들으로 새로운 니체 해석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나온 <니체 1>은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강의한 여러 주제들 중 일부다. 니힐리즘에 관한 것이 오히려 <니체와 니힐리즘(박찬국 역)>이란 제목으로 먼저 번역되었는데, 이 책<니체 1>을 통해서 차례대로 제대로 우리말로 옮겨질 것 같다.   

하이데거나 들뢰즈를 통한 니체 읽기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지만, 클로소프스키는 우리에겐 조금 낯설다. <니체의 악순환>은 저자 자신이 '영원회귀'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면서 터득한 결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색다른 니체를 기대하게끔 한다. 

 

 

 

 

페터 추다이크의 <니체>는 주기적으로 나오는 간략한 니체 입문서이고, 프로이트는 그렇게 달갑지 않겠지만 니체와 한 묶음으로 다뤄지는 책들이 여럿이다. 그것도 맑스와 엮어서 3명의 버릇없는 자식들로 불리워지는 기류... <맑스, 프로이트, 니체를 넘어서>는 오래 전부터 떠돌던 책인데,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모양이다. 그런데 표지를 새롭게 바꿀 생각은 안했나 보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은 강영계의 책인데, 이 분은 니체에 관한 책을 여럿 썼다. 하지만 제목에 비해 내용들은 개론서 범위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색다른 임펙트를 구경하기 힘들었던 거 같다. 

이진우는 <지상에서 내려온 철학> 같은 무게를 줄인 책도 있지만, 이렇게 집중력이 느껴지는 책들도 쓴다. 문장도 어느 정도 단련한 맛을 낸다. 그런 호감 탓인지, 이 책 <니체, 실험적 사유와 극단의 사상>도 기억을 해뒀다가 읽을 작정이다.  

김진석은 전에 니체적 사유를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연달아 쓴 적이 있다. 최근에는 정치 사회 안으로 글이 섞여 들어오는 모양을 보인다.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왜 그랬을까? 

  

오늘의 책 오디세이는 니체로 시작했는데, 끝으로 성 담론이 꿈틀대는 책을 가볍게 짚어본다. 

 

 

 

 

작가이기도 한 파스칼 키냐르의 <섹스와 공포>는 긴 역사를 훑는 성 에세이인데, 부담없이 읽을만한 책으로 보인다. <성의 페르소나>는 정말 제대로 된 성의 오디세이가 아닌가 하는 책이다. 900쪽이 넘기도 하지만,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는 성과 이교도의 얼룩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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