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11월 18일 월요일 

신문에 월요일마다 책 관련 기사가 나온다. 나는 월요일만 신문을 읽는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강신주님의 칼럼이 실린다. 강신주님 칼럼이 아니면, 고미숙님. 둘 다 챙겨서 본다. 

칼럼 제목은 <내 서재 속 고전>. 어제 칼럼은 "온몸으로 노래하고 산다는 것, 시인이 된다는 것". 강신주님이 사랑해 마지 않으시는 김수영 시인과 [김수영 전집]에 대한 이야기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계속 아이로 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들, 그들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담은 글들이 바로 시라고도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그렇다. 온몸을 던지고 온몸을 노출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삶의 현장에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럴 때 정직한 리듬이 나올 테니까. 그래서 우리 시인 김수영도 <시여, 침을 뱉어라: 힘으로서의 시의 존재> (1968. 4)라는 명문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18일 월요일)

온몸을 던지고 온몸을 노출해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밀고 들어갔던 시인 김수영. 그런 김수영을 사랑하는 강신주. 그도 온몸을 던져 온몸을 노출해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자신을 치장하는 데 쓰지 않고, 타인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내어주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사랑하는 이 남자는, 


정말, 

 

너무 부담스럽다. 


 


2. 오늘은 11월 19일 화요일 

나는 예약판매되는 책을 사 본 적이 없다. 이번에 강신주님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처음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고생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책 출간일인 11월 18일이 오지 않더니만, 이제는 발송예정일인 11월 19일이 왔음에도 나는 아직 책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일인데도, 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강신주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현대택배 아저씨여. 



3. 강신주의 보조개 

벙커 라디오에서 진행되었던 <강신주의 다상담>이 지난달 마지막 강연을 마쳤다. 님도 보고, 강연도 들으러 가고 싶었지만, 강신주님 열강에 거의 매회 12시에서 새벽 2시 넘어 끝나는 강의를 들으러 가기가 좀 어려웠다. 어떤 분의 홈피에서 마지막 강연날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럽지만, 내 심히 사랑하는 강신주님의 사진이다. 언론에 공개되는 사진은 대부분 카리스마 작렬이기에, 나는 귀여운 걸로 골라봤다. 

 

 

 

 

 

 

 



나는 항상 그가 섹시하다고 생각했는데, 등산바지에 보조개는 아무래도 귀여운 포스라고 하겠다. 

지적이고, 섹시한데다가, 귀엽기까지...  


아, 나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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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은 ㅎㅎ 정말 사람 좋은 아저씨로 나왔네요. 저 모습만 보면 과격하고 센 표현을 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겠어요. ㅎㅎ

저는 신간 소개가 토요일마다 실려요. 그래서 신문은 토요일 것만 읽어요;;

단발머리 2013-11-19 13: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마지막 사진 너무 마음에 들어요.
보조개에 쏘옥~~
돌직구가 팍팍!!

나는 월요일, 다락방님은 토요일이 신문 DAY!!

순오기 2013-11-2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를 잘못 골랐다~ 너무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 남자~~~~~~~~ 이런 고백 너무 좋아요!ㅋㅋ
난 신문도 칼럼도 안 보고,
오로지 단발머리님 페이퍼로 강신주를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슬슬 좋아질려고 하네요.^^

단발머리 2013-11-21 13:16   좋아요 0 | URL
하핫~~ 저의 솔직하고도 솔직한 고백이지요.
좋은데, 부담스럽고,
사랑하는데, 약간 무서운....

순오기님도 강신주를 좋아하신다면야 전 완전 환영입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2013-11-21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3-11-21 13:19   좋아요 0 | URL
아하..... 너무너무 감사해요.
제일 감사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손 꼽을 정도로 너무나도 바쁘신 님께서, 제 생각을 해 주신것이요.
왜 그럴까, 이게 왜 이럴까, 이렇게 제 생각 해주신게 너무 좋아요.

그렇게 한 번 해 볼께요.
그래서 만약 제가 ㅅㄱㅍㄱㄷ이 된다면, 그건 오로지 님의 지도와 안내, 그리고 저에 대한 사랑 때문일거예요.

감사해요.....
 

 

 

그래서, 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 했고 (정직해야지, 하지 않았고), 대학다닐 때 많이 놀지도 못 했다. 회사일도 미친듯이 열심히 해본적이 없고, 연애도, 아, 연애도 많이 해보지 못 했다. 그러니, 뭐 살림이야. 두말 할 것 없다. 근데, 책 읽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잡히는대로, 스치는 대로, 설렁설렁, 대충대충. 그런 식이다. 



 

1. [보통의 독자] 

 

[자기만의 방]을 대출하면서 같이 빌린 책인데, 울프 읽는김에 같이 읽으면 좋으련만, 몇 꼭지를 읽어봤더니, 생각같지 않아서 쌓아두고 있다. 민음사판 [자기만의 방]에 들어있는 <3기니>를 먼저 읽고 싶다. 나랑 가까이 있는, 집에 있는 책은 나두고, 집에 없는, 멀리 있는 책이 읽고 싶은 이 심리는 뭘까. 

 

 

 

 

 

 

 

 

 

 

2. [공부하는 인간] 

 

퓨전 분식집에 돈까스 사러 들어갔다가, 음식이 포장되는 동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된 책이다. 무식하게 공부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생들, 무섭게 공부하는 중국과 인도의 학생들의 생활이 흥미로워 빠르게 읽어가다가, 아, 5부작 다큐를 볼거면 이거 안 읽어도 되나, 하면서 잠시 중단한 상태다.    

 

 

 

 

 

 

 

 

 

 

3.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알라딘 서재의 소세키 열풍에 합류해야 한다, 우리도 소세키 전집을 사야한다, 주장에 주장을 거듭하는 내게, 신랑이 한 마디 한다. 일단, 집에 있는 거 읽고 말하자. 집에 있는 것도 예쁘지만, 난 현암사판이 읽고 싶은데... 아무튼 전집 마련을 위해 급 시작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재미는 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건 도대체 무슨 경우?) 

 

 

 

 

 

 

 

 

 

4.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수학공부법]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하지만, 해도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어 일단 상호대차로 대출한 책이다. 영어학습법 책은 꽤나 읽었는데, 수학에는 너무 신경을 안 쓴 듯 하다. 초4 딸보다 초1 아들이 걱정되는 가을이다. 

 

새로 나온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도 읽고 싶기는 한데, 기존의 책과 많이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어 어쩔지 모르겠다. 

 

 

 

 

 

 

 

5. [이모부의 서재] 

 

 


차분한 말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런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내 몸 또한 그렇게 소리 내 울었을 텐데 나는 과연 새로운 균형을 찾았을까. 아니면 공연히 징징거리기만 했을까. 언감생심 새로운 문장은 바라지도 않고 (바랄 수도 없겠지만), 다만 더 이상 깊어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이어지기만 하는 얕은 우울증세만이라도 이젠 제발 내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54쪽) 

 

 

 

 

 

 

 

 

6. [그리운 나무] 

수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았으니까, 10년이 넘었다. 멀리사는 친구가 명동까지 나와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앞에서 만났다. 파니니를 먹고, 청포도 주스를 마셨다. 짧은 시간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이번주에 친구를 만나기로 해 미리 시집을 준비했다. 이책 저책 많이 골라보다가 결국엔 시집으로 하기로 했다. 

빨간책방에서 다뤘던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과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도 눈이 갔지만, 표지가 예쁜 창비에서 고르고 싶어 잠시 미뤄뒀다. 마지막으로는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와 [그리운 나무] 중에서 고민하다가 [그리운 나무] 두 권을 주문했다. 포장을 풀고, 시집을 본 친구가 말했다. 

 

 

 

"내 친구 중에 아직도 시집을 읽는 친구가 있구나." 
"나도 시집은 자주 안 읽는데... 가을이잖아..."   


 

 

7. [자기앞의 생] 

 

'비밀' 결말, 지성, 황정음 책에 힌트 있다!

 

포털에 자꾸 뜨길래 찾아본 책이다. 알라딘서재에서도 리뷰를 꽤 봤던거 같은데, 그 때는 왜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다. 표지가 참 예쁘다.   

 

 

 

 

 

 

 

 

 

8. [말]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다.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아 처음인게 많다. 장폴 사르트르의 작품도 이 책이 첫번째다. 그의 특별한 삶처럼, 특별한 기억력이고, 특별한 작품이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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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11-1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문의 헤닝 쉬르프 글이 맘에 드네요...

단발머리 2013-11-15 13: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비연님. 제 서재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헤닝 쉬르프 글은 '직업이 저를 더 이상 규정'해 주지 않던 시기에, 제가 꽉 움켜줬던 문장이라
한 번도 바꾸지 않았거든요.
좀 산뜻하게 바꿔볼까 했는데, 비연님 말씀 듣고 지금 다시 보니까, 아직도 좋네요.
바꾸지 말아야겠어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

2013-11-15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11-2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고등학생 때 '회색노우트' 읽기가 유행이었고
그 다음이 에밀아자르의 '가면의 생'과 '자기 앞의 생' 읽기로 번져갔어요.
시작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졸업 후에 그 열풍이 이어졌다고 기억되지만....

단발머리 2013-11-23 08:02   좋아요 0 | URL
저는 '자기 앞의 생'만 많이 들었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웬지 '잠언집' 같은 거 아닌가 해서요.
읽어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지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저희 반은 로맨스 소설 읽기가 유행이었다는 ㅋㅎ
저도 합류해서 한 권 읽었는데, 나름대로 쪼금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 9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소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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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 기량이 워낙 뛰어난 작가 

울프는 이 책의 출간 후 예상되는 반응을 일기에 적으면서 다음과 같은 평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이 글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기량이 워낙 뛰어난 작가의 글이라 그런지 글이 쉽게 읽힌다." (서문, [자기만의 방]의 정체성, 미셸배럿, 10쪽)

조금의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글에 대해 확신을 갖는 모습이 보기 좋다. 기량이 워낙 뛰어난 그녀의 장담처럼 그녀의 글은 쉽다. 물론, 쉽게 읽힌다 해서 다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2. 부드럽게 대하세요 

그러니까 저명한 남자가 쓴 소설을 비평하려고 손에 펜을 쥐자마자, 천사는 내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속삭였습니다. "아가씨, 당신은 젊은 여성이에요.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호의를 베푸세요. 부드럽게 대하세요. 듣기 좋은 말을 해주세요. 기만하세요. 당신의 성이 가진 모든 기술과 책략을 동원하세요. 당신이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세요. 무엇보다 순수함을 지키세요." 그리고 그 천사는 마치 내 펜을 이끄는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부록, [여성의 전문직], 1931년 여성참여협회에서 낭독했던 울프의 강연문, 185쪽)
 
남자가 쓴 글을 여자가 비평하려 할 때, 그녀가 만나는 '검열의 천사'는 펜을 잡은 그녀의 독특한 세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그녀를 압박한다. 펜을 쥔 그녀는 좋은 말로, 긍정의 말로, 속삭이듯 자신의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여자의 의견은 평범해야 하고, 무난해야 하며, 특징이 없어야 한다. 여자의 의견은 그저 그런 의견이어야만 한다. 

3. [자기만의 방] 

예전에는 얼마되지도 않는 영어실력 공중분해되면 어쩌냐고 원서를 조금씩이라도 계속해서 읽었다. 물론, 읽은 책들은 대부분 청소년 대상의 쉬운 책들이었다. 큰 결심하고 구매한 [11/22/63]랑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는 우리집 서가에서 잘 지낸다. 

 

나는 원서를 읽을 수는 있지만 (읽을 수는 있지만^^), 잘 읽지는 않는다. 나는 번역에 관한 문제를 얘기할 만한 영어 실력이 안 된다. 물론, 고 이윤기씨나 김화영씨가 번역한 책을 읽다보면, 이게 번역된 글인지 원래 한국어로 쓰인 글인지 헷갈릴때가 있다. 너무나도 찰진 한국어이고, 너무나도 우아한 한국어이다. 말그대로 그 분들은 특A급의 번역가들이시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라도 번역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소설이든 다른 종류의 책이든 읽다가 잘 이해가 안 되면 난, 나를 탓한다. 아, 기초지식이 없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아, 한글로 된 글을 읽고도 이해 못 하는 이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이여, 하면서 말이다. 난 보통, 나를 탓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겠다. 나는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시작이 이렇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부탁한 것은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것이지 않았나요? 이게 자기만의 방이라는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민음사의 [자기만의 방]의 시작은 이렇다. 

 

 

 

 

"하지만 '여성과 픽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내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말하겠지요."

[A Room of One's Own]의 시작은 이렇다. 
  

 

 


But, you may say, we asked you to speak about women and fiction - what has that got to do with a room of one's own? (Grafton Books, 1977)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세세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단어는 하나, 바로 "but"이다. 울프는 여성과 픽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함을 말했다. 원래 강연에서 요청되었던 부분은 '자기만의 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여성과 픽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요청받은 것과는 다른 이야기, 부탁받은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청받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부탁받은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시작은 이렇다. "But".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또는 그 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마자 느닷없이, 가차없이, 어이없이 등장하는 "but"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시작하자마자 말한다. "하지만.."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아직 앞에 논의된 게 없는데, 시작이 이렇다. "하지만..." 내 짧은 생각에, 펭귄클래식코리아의 번역은 이 "하지만"이 주는 파급력을 반의 반으로 줄여버린 것 같다. 울프가 쓴 글을 읽었던 최초의 독자들이 느꼈던 충격을 한글로 읽는 독자들도 똑같이, 아니 거의 비슷하게라도 느껴야한다는 점에서, 앞의 몇 문장만 놓고 봐서는 "하지만"을 그대로 살린 민음사의 번역이 더 적절해 보인다. 

또 한 가지는, "but"이라는 단어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울프의 모든 생각, 모든 주장은 이전까지의 주장과 상반된다.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최고의 환경에서 자랐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과 직간접적인 교류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고, 후에는 남편과 함께 직접 출판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녀를 압박하는 '여자'라는 굴레, '여성'이라는 족쇄는 그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그러한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녀가 이 정도로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했다는 것은 그녀 자신만의 업적이다. 그녀 자신만이 오롯이 칭찬받을 만하다. 

그녀는 말한다. "But". 하지만.

상류층과 중류층 여성은 아버지가 골라준 사람과 결혼해야 하며, 그녀들에게 남편은 주인이자 지배자로 군림한다는 문화에 대해, 여자는 칼리지 연구 교수와 동행하거나 소개장이 있을 때만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다는 관습에 대해, '여성'의 열등성을 증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교수들의 주장에 대해, '여성 존재의 본질은 남성의 부양을 받으며, 남성의 시중을 드는 데 있다'는 오스카 브라우닝, 그레그의 주장에 대해, '블루스타킹'이라는 세간의 조롱에 대해,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멸시와 차가운 시선에 대해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잘못된 믿음, 문화와 관습의 이름 아래 이어져온 폐단에 대해 "하지만"이라는 단어로 반대의 뜻을 표명한다. 여자의 주인이 남자라는 말에 반대한다. 여자는 혼자 여행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가장 훌륭한 여자라도 가장 열등한 남자보다 못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녀는 말한다. BUT!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여러분에게 사소한 부분을 지적하는 의견 한마디,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38쪽)  

조앤 K. 롤링이 나라에서 지급하는 분유값으로 어린 딸을 먹이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해리포터]를 써내려갔던 커피숍이 '스타벅스'라고 말했다가, 요즘 '해리포터 시리즈'에 푹 빠져 있는 딸롱이에게 그 커피숍은 '스타벅스'가 아니라 '니콜슨'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내가 원래 할려고 했던 이야기를 까먹었다. 내가 못한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상상력'이야. 상상할 때, 공상할 때,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라도 갈 수 있는거야. 상상력을 통해서 인간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새로운 걸 '창조'해 내는 힘의 원천은 '상상력'이야. 그런데, 이 가난하고, 가진 게 없는 이 여자는 자신이 가진 '상상력'의 힘으로 네가 이렇게 재밌게 읽는 이런 책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야. 알겠지? 

울프는 조앤의 성공을 보지 못 했다. 하지만, 울프의 예언이 틀렸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조앤은 극심한 가난을 이겨내야 했지만, 남자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았고, 적어도 그녀의 창작활동은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방해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울프는 말한다.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한다." 그녀를 따라가 본다. 

울프가 살펴본 위대한 작가들 대부분은 대학교육을 받았고, 키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물론, 가난하다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가난한 작가는 유복하게 자란 작가보다 좋은 작품을 쓰기가 더 힘들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울프가 왜 '자기만의 방'을 이렇게 강조했을까 생각하다가 초기의 많은 여성 작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즉 남편과 아이들, 하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작품을 집필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들의 작품은 가족들의 공동 생활 구역, '거실'에서 쓰여졌다. 

 

 

[모든게 노래]가 생각난다.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다른 글을 쓰는만큼 글을 쓰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조용한 방에서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작가도 있고, 벽을 바라보면 절대 글을 쓸 수 없어서 책상을 방 한가운데로 꺼냐야만 하는 작가도 있고, 창밖으로 나무가 보여야만 마음이 안정된다는 작가도 있다. 모두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소설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거기 비치는 자신의 내면까지 흠쳐봐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내밀한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219쪽)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이 부재했을 때도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던 여자들은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내면의 외침이 너무나 커, 그것을 스스로 붙잡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이 없다'는 공간의 문제 이외에도 그녀들의 글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물질적인 어려움은 매우 극심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어려웠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환경이었지요. 키츠나 플로베르, 다른 재능 많은 남자들이 견디기 어려워했던 세상의 무관심은 여자의 경우에는 무관심을 넘어선 적대감이었습니다. 세상은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하듯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써라. 나는 상관없다. 세상은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글을 쓴다고? 네가 쓴 글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101-2쪽) 

1661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귀족 집안과 결혼했던 윈칠시 부인은 시를 썼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과 그녀의 '시'에 대해 '반대'하는 '반대무리'와 계속해서 직면해야만 했다.  

안타깝도다! 펜을 들려고 시도했던 
여성은 주제넘은 종으로 여겨지고,
그 과오는 결코 속죄될 수 없다네. 
그들은 말하지. 우리가 성과 그 역할을 잘못 알고 있다고. 
자녀 양육, 유행, 춤, 의상, 사교, 
이것이 우리가 선망해야 할 소양이라고.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거나 질문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며, 우리의 미를 가리고, 
꽃다운 우리를 정복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반면 노예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는 무미건조한 일에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써야 한다고.  (109-110쪽) 

이런 글을 자주 읽다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가뜩이나 집안일에 젬벵인데, 이런 글을 읽으면, '노예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는 무미건조한 일에 내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써야겠느냐'며 바로 실생활에 응용하기 때문이다. 피폐해지는건 가정사이고, 걱정되는건 아이들의 영양이다.

개인적으로는 집안 살림에만 신경쓰시는, 집안 꾸미기에만 집착하시는, 집안 청소에만 몰두하시는 분들이 이런 글을 읽고, '아, 그래, 노예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는 무미건조한 일에만 집착하지 말자'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집안 살림에만 신경쓰시는 분들은 울프의 이 에세이를 읽지 않으실테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비난과 질시 속에 일부의 귀족 여인들이 글쓰기를 이어가고, 이제는 중산층 여성도 '글'을 쓰게 되었다. 또한, 원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글쓰기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도 조금씩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작된 글쓰기 역사에서 왜 여성의 영역은 소설로 제한되었을까. 울프의 지적처럼, 처음 여성 문학이 나타난 장르는 '시'였는데, 말이다. 

여성이 작가가 될 시기에 모든 문학의 옛 형식들은 고착되고 굳어진 상태였습니다. 소설만이 여성이 쓸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여성이 소설을 썼던 또 다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133쪽)

소설의 탄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소설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영향력 있으며, 가장 많이 읽히는 문학 장르이다.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소설, 소설의 주된 독자층은 '2-30대 여성 독자들'. 최근에는 여성 소설가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여성'이 '소설'을 쓰고, '여성'이 '소설'을 읽는다.   

울프는 윈칠시 부인, 애프라 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등 여성 문학사에서 길이길이 기억되는 뛰어난 여성 작가들 중에서 '메리 카마이클'을 특별히 높이 평가한다. 그녀는 위대한 선조들이 지녔던 자연에 대한 사랑, 격렬히 불타오르는 상상력, 거침없는 시심, 뛰어난 재치, 깊이 있는 지혜가 전혀 없었다(153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천재가 아니었음에도 '메리 카마이클'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그러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고서 글을 썼습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작품은 성이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성적 특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154쪽)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는 글쓰기란 무엇일까. 남성에게는 이런 질문이 무의미할 듯 하다. 남성들은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자신의 성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어디까지나 '남성=사람'이며, '남자=인간'이니까. 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정확히 여성 작가는 다르다.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하며, 그럼에도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는 글쓰기가 가능하다. 

"위대한 책", "무가치한 책", 같은 책도 이렇듯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찬사와 비난은 똑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소일거리이건 간에 그것은 모든 일 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평가 법칙에 굴복하는 것 역시 가장 굴욕적인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한 글이 오랫동안 가치를 지닐지, 아니면 단지 몇 시간 동안만 가치를 지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171-2쪽) 

나는 스스로에게 다른 무엇이 되는 것보다 간단하고도 그저 평범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다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십시오. (178쪽)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쉽고,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선명해서 다르게 이해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의 평가에 굴복하지 마라. 쓰고 싶은 것을 써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꿈꾸지 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라.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보다는, 여러겹으로 에워싸인 두터운 모순과 불평등의 시대를 먼저 살아온 선배라는 점에서, 격려가 되고, 도전이 되는 구절구절이다. 

그녀 자신의 평가처럼, 역시, 그녀는 기량이 뛰어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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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1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저는 말씀처럼 울프의 글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오래전에 [댈러웨이 부인]을 아주 지루하게 며칠에 걸쳐 가까스로 읽어낸 경험이 있거든요. 그 뒤로 울프의 글을 안 읽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쉽고 잘 읽힌다니..정말 그래요? 인용해주신 부분들을 보면 참 좋아요.

저 위에 '하지만'의 번역에 대해서라면, 제가 보기에도 울프의 뜻을 더 잘 살린 건 민음사 같아요.

단발머리 2013-11-12 10:50   좋아요 0 | URL
전 [댈러웨이 부인] 읽다가, 던져서.... 버리진 않았지만, 확 던졌어요. T.T.

어디서 들은건데, 울프가 소설은 좀 어렵게 써도, 에세이는 쉽게 쓴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그래서요.

저는 울프 다른 소설은 어려워서 어쩔지 모르겠고요.
이거 읽었으니까, [3기니]나 읽어볼까 하고 있어요.
요 위에 민음사책에는 두 에세이가 같이 들어있더라구요.
전 펭귄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구매는 [3기니] 때문에 민음사로 해야겠다는...

그렇게혜윰 2013-11-1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스포드판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전 ㅋㅋ
버지니아 울프 책이 이 책 말고는 쉽진 않은 거 같아요 ㅠㅠ [제이콥의 방] 읽다가 많이 졸았어요 ㅋㅋㅋ
[댈러웨이부인]은 표지가 예뻐서 열린책들 판으로 샀는데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더라만 어여 읽어야겠죠?^^

단발머리 2013-11-12 13:4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님~~~

옥스포드판으로 읽으시게요? 전, 예전에 읽은 걸로 퉁치고, 이번에 한글로 읽었는데,
알고 보니 그 때 도대체 뭘 이해한건지...... *^^*
그렇게님이 읽다가 졸으셨다니, 전 [제이콥의 방] 패스할래요.
저도 [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판으로 읽다가, 읽다가 던졌어요~~ 휙~~

그렇게혜윰 2013-11-12 17:51   좋아요 0 | URL
옥스포드판...그냥 깆고있게요ㅋ 표지가 좋아요^^

단발머리 2013-11-13 07:22   좋아요 0 | URL
넹..... 옥스포드판 표지 예뻐요.
제꺼만큼 이쁘네용^^
 

 

 

 

 

 

 

 

 

 

 

 

 

 

 

 

강신주님 새 책이 나왔다.

 

사실, 강신주님 책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 (사실, 강신주님도 이해하실거다. 책이 좀처럼 많아야지.) 새 책 소식에 장님 눈 떠진듯 반갑고 반갑다.

 

안 그래도 벙커 라디오에서 10월 중에 책 한 권이 나올테고, 연말에 한 권이 더 나올거라셨다. 독자들이 자기 집필속도를 못 쫓아오게 하는게 자기 목표라며. 참, 목표 한 번...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갑게도 알라딘에서 <예약판매> 문자를 보내줬다.

 

책 소개에는 '감정의 종류와 성격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라 되어 있고,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보이는 걸로 보아 문학작품 속에서 감정의 변화, 내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신 듯 하다.

 

최근에 읽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이 보인다. 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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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샹탈은 왜 장마르크에게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했나

그녀는 심각한 토론에서 벗어나려고 이 말을 끄집어냈다. 그녀는 가급적 가장 가볍게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자신의 목소리가 쓸쓸하고 우울한 데에 그녀 자신도 놀랐다. (31쪽) 



질문 2. 장마르크는 왜 샹탈에게 비밀편지를 보냈나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어떤 미래도 겨냥하지 않았으며 그냥 그녀를 즐겁게 해 주고 남자들이 더 이상 그녀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그녀를 당장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녀의 반응이 어떠할지 미리 상상해 보려고 들지도 않았다. 굳이 상상을 했다면, 만약 그녀가 그에게 편지를 보여 주며 "이봐! 남자들이 나를 아직은 잊지 않았어!"라고 말하면 시치미 떼며 낯선 이의 찬사에 자기 찬사까지 덧붙이리라는 상상 정도였다. (107쪽) 

질문 3. 샹탈은 왜 편지를 장마르크에게 보여주지 않았나

해답은 간단해 보였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것은 훗날 그녀에게 접근하여 유혹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이 편지를 비밀로 간직한다면 그것은 오늘의 조심성이 내일의 모험을 보호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편지를 간직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이 미래의 모험을 사랑으로 이해하려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109쪽)

질문 4. 그런 편지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서랍은 무슨, 세계 만방에 자랑하겠다. 

팀에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왔다. 둘은 형제라 했는데, 형은 드러머, 동생은 일렉기타리스트라 했다. 팀에서는 내가 막내 아닌 막내급이라 20대 초반 화사한 형제들의 출현이 내심 반가웠다. 연습 중에, 템포를 바꿀 때 서로 어떻게 사인을 주고 받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도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오른쪽으로 45도 각도로 내가 보이고, 드럼이나 기타쪽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자는 나를 바라보는게 편하고, 나머지 세션들에게는 내가 정면이었다. 드럼 치는 형이 말했다. 

"저희는 누나 보고 맞출께요." 

어머나, 세상에. 나를, 나를 '누나'라고 했다. 그 때는 '얘야, 나는 '누나'가 아니라, '이모'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는 혼자 있을 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보고 누나래. 

그 다음 달이던가. 연습을 마치고, 잠깐 기도하러 모이는데, 이번에는 일렉 튕기는 동생이 말했다. 

"저희는 결혼 안 하신 줄 알았어요." 

엥? 이건 또 뭐야? 나는 초등 고학년 딸롱이랑 초등 저학년 아롱이가 있는데, 나보고, 결혼 안 한 줄 알았다니. 아... 나는 이 깜찍한 형제에게 밥을 다섯 번쯤이나 사 주고 싶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을 위해, 일렉 동생은 지난달에 라식 수술을 했고, 드럼 형은 라식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말해야겠다. 

나보고 아름답다고 한 것도 아니고, 이쁘다고 한 것도 아닌데, '누나' 정도로 어려보인다는 말이,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 그렇게도 기분 좋아, 나는 이 얘기를 100번 정도 했다. 엄마는 이 얘기를 3번 정도 들으셨고, 아빠는 2번 정도 들으셨다.  

만약 이런 편지를 받게 된다면, "나는 당신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라고 쓰인 편지를 받게 된다면 어떨까. 물론, 샹탈처럼 편지 보낸 사람을 궁금해 할테고, 주위를 살펴 나를 살피는 사람이 누구인가 찾으려 할 테고, 빨간색 잠옷을 (아니다, 나는 분홍색) 구매할 테지만, 무엇보다도 난, 이 편지를 자랑할 것이다.  

난 이 편지를 남편에게 보여주지는 않더라도 남편에게 얘기를 할텐데, 그 이유는 오직 남편에게 이 사실을, 내가 아직 '젊고', '남자들의 시선을 받을만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물론, 주위 사람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할테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바,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만나기 쉬운 그이에게 이 기쁜 사실을 자랑하련다. 

나, 편지 받았어. 
상상만으로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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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0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 안할것 같아요. ㅎㅎ
말 안하고 들통나지 않아야 그런 편지를 계속 받고, 그와 만나고 하는 일들이 가능해질 듯.
저는 아마도 속에 음탕한 여자가 한 열일곱명쯤 들어있나봐요.

단발머리 2013-11-05 14:24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은 하고요.
설마 말하고 만나겠느냐할 때, 그 지점에서 딱 만나려고요.
상상만으로도 호호홍

다락방 2013-11-05 14:26   좋아요 0 | URL
새벽 세시의 레오같은 남자가 똭- 나와줘야 되는데 말예요. 홍홍홍

단발머리 2013-11-05 16:53   좋아요 0 | URL
이 레오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레오 맞나요?
다락방님 페이퍼에서 본 것 같은데, 책을 안 읽어 어떤 남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외모되고, 매너 좋은 남자주인공일테니,
나와주신다면 감사 땡큐입니다~~